2012.02.07 10:24




지난 주에 이어 배우 최민식의 질펀한 입담이 시청자의 시선을 고정시켰는데요, 후배 류승범을 손봐 준 일화부터, 그를 긴장시키는 후배로 하정우를 언급하며, 무섭다고까지 하정우의 작품에 임하는 자세를 극찬하면서, 후배연기자들을 아끼고 인정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최고라고 인정받는 배우에게는 최고일 수밖에 없는 연기철학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최민식의 작품에 임하는 자세나 연기철학은 모든 연기자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민식의 연극 '에쿠우스'는 저도 봤던 작품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연극을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저 사람 크게 되겠다'는 것이었어요.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야망의 세월에서 꾸숑으로 강한 연기를 펼친 최민식을 보면서, 찜해(?) 둔 배우가 뜨는 것을 보고는, 그럴 줄 알았다며 흥분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서울의 달 이후, 최민식의 작품은 파이란 외에는 좋아하지 않았어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의 영화가 제 코드는 아니었거든요. 최민식의 연기가 너무 실감나다 보니 무섭기 까지 했고, 영화는 봤는데 반은 눈을 감고 봤으니, 제대로 보지 못한 영화입니다;;.

최민식의 연기철학을 들으면서, 최민식은 자기 몸에 정을 대는 석공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석공이란 거친 돌덩이를 섬세한 정으로 깎고 깍아 작품을 만드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최민식은 자신의 몸에 그 정을 대고 자신의 결점들을 스스로 깎아낼 줄 아는 배우였습니다.
흔히 성공한 배우나 인정받는 스타들은 자기의 연기력을 알게 모르게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프로의식이기도 하고, 근자감이랄 수도 있지만, 관객들이 최고라고 평가하는 연기자에게는 다 이유가 있죠. 작품 속 인물의 완벽한 해석과 표현, 한마디로 연기력입니다. 
최고임을 알 수 있는 지표는 흥행률, 시청률, 광고출연, 소위 몸값이라고 하는 개런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연기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출연료를 받아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배우들도 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급 배우들은 출연료가 아니라 , 연기력만으로 출연료를 입증합니다. 개런티를 스스로 낮추는 등 모범을 보이는 안성기같은 배우는, 출연료와 연기력이 비교불가인 배우지요. 최민식, 한석규, 하정우, 송강호같은 배우들 역시 최고라는 찬사가 당연한 배우들이고요. 이들 배우 역시 자기 몸에 정을 댈 줄 아는 석공들이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은 배우들입니다.

최민식은 고집스런 연기자였습니다. 자기와 맞지 않은 작품이라면 욕심을 내지 않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자기 연기세계가 투철한 배우입니다. 자기가 좋지 않으면 선택을 하지 않는, 호불호가 칼같은 작품선택 성향이, 결국 최민식이 출연한 작품의 완성도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했고, 연기에 회의를 느껴 4년의 공백기를 가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내린 결론은, 최민식의 연기에 혼을 싣게 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신명나게 할 수 있었고, 그의 작품은 거짓이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죠. 물론 평가와 호불호는 관객들의 몫이지만, 그는 거짓연기를 하지 않았노라 고백합니다. 작품 속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연기도 거짓이 될 수 있고, 영화도 거짓이 섞인다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최민식이 실제 살인마처럼 보였던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최민식이 말 중에 기억남는 것이 두 개인데 하나는, 배우들이 흔히 다른 배우에게 갔던 대본이 왔을 때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 있는데, 최민식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건 참 바보같은 것이에요. 그게 무슨 자존심 상할 일인가?", 좋은 작품 앞에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모 여배우들끼리 먼저 대본을 받았는데 퇴짜를 놓았다느니 어쨌느니 하며, 서로 기분 상해한 일이 있었죠. 어찌보면 작품의 임자가 다 따로 있는 것같기도 한데, 최민식이 한 마디로 정리를 해주더군요. "좋은 작품 앞에 자존심은 없다". 
또 하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였습니다. 모든 남자배우들이 식스팩을 가져야 하고, 여자배우들은 S라인을 가져야 한다는 듯이 작품을 위해 몸부터 만드는데, 배 나온 배우도 있다는 일갈이었습니다. 김제동이 옆에서 시청자로서 공감했던 말을 해주기도 했지요. 실연당해 두 달을 누워 폐인처럼 된 남자배우 팔뚝의 근육을 볼 때, 저게 실연당한 남자의 몸인가 몰입이 안된다는 말이었죠. 
몸매관리보다는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해 솔직해져야 한다는 말은 배우들이 귀담아 들을 말입니다. 피죽 한 그릇 못먹는 가난한 남자가 잘 관리된 식스팩을 보일 때, 시청자들에게 잠시의 눈요기는 되지만, 그 캐릭터에 대한 신뢰는 확 떨어져 버리죠.  여자배우 역시 마찬가지고요. 가난한 여주인공이 치렁치렁 명품옷과 명품가방을 걸치고 나왔을때의 이질감,  액서서리라고는 하지만, 목걸이나 시계 등을 시도때도 없이 바꿔차고 나올 때 현실성을 느끼기는 힘들죠.
요즘 드라마에서 간접광고가 드라마 스토리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배우들이 협찬에서 자유롭지 못한 문제가 없지 않지만, 배우들이 맡은 역할에 솔직해야 한다는 말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 캐릭터가 되어야 하고, 심지어는 사고방식이나 환경까지 그 캐릭터의 환경 속에 스스로를 던질 줄 알아야 한다는 충고이기도 합니다. 
대중들은 그를 최고라고 인정하지만, 여전히 최민식은 그의 멘토이자 스승 안민수 교수앞에서는 부끄러운 제자일 뿐이었습니다. 그 겸손한 명품배우의 명품겸허함은, 여전히 그는 자신의 몸에 정을 대기를 멈추지 않는 훌륭한 석공임을 확인하게 합니다. 스승의 말에 눈시울이 불거지더니, 이내 굵은 눈물까지 쏟는 최민식, 안민수 교수와 얽힌 사연이 있었나 궁금했는데,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제자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린 것이었더군요.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최고의 배우 최민식, 그는 스승 가르침 앞에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는 제자였습니다. "잘 못하고 있는 것같다"는 스승님 앞에서의 눈물 고백은, 멈추기를 거부하는 배우, 끊임없이 변신하는 배우 최민식의 채찍이었습니다. 스스로 대견해 하고 조금은 으쓱해도 될 듯한데도, 아직도 30년전 스승님의 가르침을 다 깨우치지 못했다고 죄스러워 흘리는 눈물, 그 눈물은 명공이 자기 몸을 향해 때리는 정이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다 칭송받는 효자라 하더라도, 부모 앞에서는 늘 불효자이듯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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