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7 10:16




언제부터인가 주연보다는 조연들의 명품연기에 시청자의 눈길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면  어떤 조연배우들이 포진해 있나를 보고 드라마를 선택할 정도로, 조연배우들의 존재감이 커져가고 있는 추세지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연기가 좋다는 것,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죠.
내공있는 조연배우들은 어떤 작품의 경우는 주연보다 열연을 펼침으로써, 작품을 완성해가는 한 축이 되거나, 심지어는 스토리를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전미선 역시 스토리마저 바꾸게 한 주인공 중의 한 사람입니다.

명품 살리지 못한 짝퉁MC들!
시청률 보증수표로 뒤늦게(?) 그 연기의 진가를 주목받기 시작한 '해를 품은 달'의 도무녀 장녹영역의 전미선이 승승장구에 출연했는데요, 데뷔 작품부터 대인기피증을 겪기도 한 공백기, 그리고 결혼스토리까지, 작품속에서 만나는 캐릭터로서의 전미선이 아니라, 배우 전미선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본 후 괜스레 전미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더군요. 뭐랄까 해품달의 높은 인기에 급하게 섭외한 나머지, 욕심만 앞섰지 전미선이라는 배우에 대한 자료조사나, MC들의 알맹이 없는 질문내용 등 준비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승승장구 게스트는 비스트처럼 여러명을 섭외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화제가 되고 있는 1인 게스트를 초빙해, 그의 인생이야기를 묻고 끄집어 내는 프로입니다. 게스트가 토크쇼에 익숙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묻지않아도 잘 풀어간다면, MC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시청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경우도 물론 있지요. 전미선의 경우는 성격 자체는 활달, 아니 화통할 정도로 시원스러웠지만, 의외로 붙임성이 있는 성격이 아니고 매스컴에 자주 노출된 배우도 아니었기에,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서투를 수밖에 없겠지요. 
이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MC인데 네명이나 떼를 지어 앉아 있으면서도, 전미선의 브리핑만을 듣고 있는 병풍들에 가까웠습니다. 시청자가 기억하는 전미선의 극중 역할을 주마간산처럼 뚝딱하고 보여주고 말아서, 수박겉핥기로 1시간을 채워 버린 듯한 서운함마저 들게 하더군요.

전미선의 연기력을 입증한 수많은 이름들
전미선은 캐릭터 분석력이 뛰어난 배우입니다. 물론 타고난 '끼'도 있겠지만, 매 작품마다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모습은 끼때문만은 아닌, 그녀 나름대로의 캐릭터를 해석하는 노력에 기인했을 겁니다.
화제가 된 작품에는 거의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약방의 감초처럼 출연을 했었고, 인상깊은 연기를 펼첬던 그녀였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이 전미선이라는 이름보다는 배역 이름만 기억한다는 고민을 안고 찾아왔습니다. 이는 대중들보다는 전미선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작품 속 캐릭터에 완전동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기에 말이지요.
제 경우 전미선의 연기는 데뷔작이었던 토지부터 봐왔으니, 그녀의 배우인생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본 셈입니다. 토지는 한혜숙의 1대 서희, 2대 최수지, 김현주의 3대 서희까지 다 봤는데요, '토지'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을 두서없이 나열해 보겠습니다.
반효정, 한혜숙, 서인석, 서미경(1대 귀녀 역할을 했던 분으로, 이분은 롯데패밀리가 되어 연예계는 은퇴했지만, 귀녀 역 중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2대 봉순이(이것봐요, 전미선이 아니라 봉순이를 떠올리잖아요^^), 최수지, 유준상, 박혜숙, 박원숙, 선우은숙, 임동진, 유해진, 박상원 등등입니다. 토지에 출연했던 배우 이름을 떠올리는데, 봉순이는 전미선이라는 배우 이름이 아니라, 그냥 최수지의 서희와 함께 나왔던 봉순이로 떠오릅니다. 
 개인적 성향이겠지만, 제 경우는 최서희보다는 봉순이와 월선이, 그리고 포악한 임이네의 캐스팅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길상에 대한 첫사랑을 간직한 봉순이, 그녀의 삶에 점철된 외로움에 더 깊은 연민을 느꼈지요. 용이를 사이에 두고 보살님같은 월선이의 기구한 삶과 월선이의 피를 빨아 기생하고 사는 억척스러운 임이네라는 캐릭터는 항상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3편의 토지 역대 봉순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2대 봉순이 전미선입니다. 배를 타고 떠나는 길상과 서희를 보며, "길상아, 길상아"라며 울던, 젊었던 전미선의 얼굴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봉순이가 사랑했던 남자 길상이, 봉순이를 사랑했던 남자 정석, 이상현(이 사람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단물빨아 먹는 기회주의적인 기둥서방?) 등, 봉순이 인생에 숱한 남자들이 곁을 머물기도 했지만, 결국은 철저하게 고독하게 살다간 비련의 인물, 딸 양현이 하나만을 곡절많은 삶의 흔적으로 남기고 생을 마감한 봉순이는, 서희의 삶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었죠. 벌써 20년이 넘었는데도 그 얼굴이 생생한 것을 보면, 전미선이 얼마나 큰 인상을 남겼는지, 놀라운 연기였다는 생각만이 드네요. 
그럼에도 전미선은 봉순이, 황진이 어머니, 송강호 애인(살인의 추억), 탁구엄마 미순(이때부터는 전미선이라는 이름을 함께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등으로, 이름보다는 캐릭터를 떠올리기가 쉬웠지요. 전미선의 고민거리가 저같은 시청자들 때문이었더군요.

명품배우 전미선, 더이상 흙 속의 진주가 아니에요!
주연들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더이상 아닌 곳이 드라마나 영화 분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시청자들은 주연보다는 조연들의 연기에 환호하고, 비주얼보다는 연기력에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런 분위기의 선구자 역할을 한 인물이 대표적으로 전미선, 윤제문 등 조연들의 열연때문이었습니다. 주연들에만 집중해서 보는 판도를 바꿔버린 것이죠. 
드라마가 한 두 캐릭터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조연들이 주연을 빛내기도 하고, 조연이 더 빛나버리기도 하는 등, 시청자에게 작품을 감상하는 스펙트럼을 넓혀준 것이지요. 연기자에게 연기 스펙트럼이 있듯이, 시청자에게도 작품을 감상 분석하는 스펙트럼이 있듯이 말이죠. 즉 시청자에게 작품을 보는 눈을 넓혀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이렇듯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심지어는 주연배우보다 드라마를 돋보이게 한 명품배우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은 왠지 씁쓸해집니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해를 품은 달에서 주연은 아니지만, 주연보다 더 강한 존재감을 품어내는 인물이 도무녀 장녹영과 대왕대비 윤씨(김영애), 영의정 윤대형(김응수), 상선형선 정은표, 그리고 연우의 모친 정경부인 신씨 양미경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 대왕대비와 장녹영은 짧은 씬만으로 드라마의 몰입도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힘, 아우라를 뿜어냅니다.
좋은 연기자는 시청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 능력을 갖춘 경우가 많지요. 눈빛연기 하나에도 음흉한 속내를 읽게 한다거나, 대사없이 주고 받는 표정으로도 전쟁을 치르는 듯한 격한 감정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폭풍눈물이 아니어도 연우 한가인을 애틋하게 쳐다보는 표정만으로도, 대사 이상의 감정을 전달해 주기도 하고 말이지요. 전미선은 그런 배우입니다.
전미선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시청자는 눈을 떼지 않고 그녀의 행동거지, 표정, 눈빛, 대사에 집중하게 되지요. 시청자에게 친절한 배우, 그 표정 하나에서도 줄거리가 보이기 때문이에요. 마치 엄마따라 시장에 가서 잠깐 한 눈을 팔면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듯한 배우라고 할까요? 전미선의 연기에 한시도 눈을 떼지못하게 하는 흡입력의 이유입니다.
명품조연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모두 배우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 전미선, 그럼 명품배우라는 말은 어떠한가요? 전미선이라는 배우는 흙속의 진주가 아니라, 시청자가 진품으로 감정한, 명품배우라는 수식어를 받을 자격이 있는 빛이 나는 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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