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5 08:24




오늘도 크게 한 건 벌어졌습니다. 회사동료들이 송별선물로 준 명품백이 제대로 개시도 하기 전에 페인트 범벅이 돼버렸으니, 이웃집 사람들 웬수가 따로 없군요. 명품이고 나발이고, 값비싼 친환경 페인트로 거금을 투자했는데, 엉망이 돼버렸으니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 하는데 이걸 어쩔겨?
어째 이렇게 날마다 꼬여가기만 하는지, 테리강이 방귀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폭풍전야인데, 이것참 야단났습니다. 시어머니가 될 엄청애,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혈압이 오른다는 말많은 시누이 셋과 마주치기만 하면 전투를 치르고 있는 차윤희이니 말입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던 차윤희, 물귀신 보다 무서운 것이 발목을 잡게 생겼습니다. 30년만에 만난 가족, 아니 엄밀하게는 골치아픈 시댁입니다. 이 바닥도 끝이라며 그동안 눈치보느라 할말도 못했던 막장작가에게 "당신 작품 쓰레기야" 대놓고 말하기도 하고, 속풀이를 하는 차윤희였죠. 그렇게도 드라마 소재가 없느냐고, 쓰는 것마다 출생의 비밀, 시한부, 기억상실증이니 드라마가 사골국이냐고 비꼬는 차윤희, 막장소재 드라마 작가를 디스하는 것이, 드라마지만 콜라의 톡 쏘는 맛처럼 시원하더군요.
동료들의 환송선물을 받고는 기분좋아진 차윤희, 한우갈비가 문제입니까? 거하게 한 턱쏘지요. 제자 천재용에게 이별의 허그까지 해주고, 미국유학 가서 드라마도 공부하고, 시끄러운 장수빌라와도 이별이니, 발걸음 룰루랄라 가벼운 차윤희였지요. 그런데 그 모습을 보게 된 이숙, "남편있는 여자가... 세상 말세다", 혀를 끌끌 차고 들어가더니 소심한 복수를 한듯 싶더군요. 장수빌라 복도 불을 꺼버린 듯 보이더라죠. 발목이나 확 삐어버려라는 심산으로 말이지요.

일숙과 이숙에게 나타난 사람들, 사랑 혹은 악연?
형부 남남구(김형범)의 외도로 결혼이라는 것에 불신만 늘어가는 이숙, 천재용이 마음에 있는 것같은데, 이 커플 상당히 재미있고 어울립니다. 천재용은 말끝마다 '여자가 돼가지고'라며 남존여비, 남성우월주의의 못된 사상에 빠져있는 것같기는 하지만, 아주 꼴불견은 아닌 귀여운 남자이기도 합니다. 속정도 깊은 것 같고, 첫사랑 쌤 차윤흐때문에 혼기를 놓친 사연도 있을만큼 순애보 짝사랑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죠. 집안도 아주 빵빵할 것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회사 사장 아들? 공방이 문을 닫아 청년실업자가 된 이숙이 내민 합의금 100만원을 기분나쁘지 않게 돌려주는 속깊은 남자이기도 하죠. 반품된 물푸레나무 식탁을 대신 가져가는 것으로 말이지요. 천재용 볼수록 매력있는 남자에요. 이숙이랑 잘 엮어졌으면 좋겠더라구요.
일숙이 오매불망 좋아했던 과거의 스타 윤빈 김원준, 캐릭터가 딱 어울리더군요. 아쉽게도 아직 옥탑방에 세든 몽달귀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일숙이지만, 남남구같은 형편없는 남자 버리고, 차라리 윤빈이랑 잘 사겼으면 싶더랍니다. 사실 이혼을 쉽게 하는 것이 좋지는 않지요. 아이까지 있으니 참고 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남남구를 보니 그런 말도 해주기 싫더랍니다. 남남구(김형범) 이놈은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정 안가는 놈입니다. 가루가 되게 뽀사버리고 싶은 찌질이,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여사장이 반했는지, 여사장 안목도 참...

 여러분이 싫어요 vs 우린 더 싫거든
실업자가 된 이숙, 100만원을 엄청애에게 용돈으로 드리고는, 잔일이라도 시켜달라고 했는데 그게 페인트칠이었지요. 장수빌라 복도 봄단장을 한 셈인데, 페인트가 또 사단을 일으킬 줄이야...복도 등이 꺼져 벽을 잡고 현관문을 열었던 윤희, 선물로 받은 명품백에 페인트로 도배가 되었으니 눈 뒤집혀 버리죠.
가만있을 차윤희가 아니었죠. 앞집 벨을 눌러 따지는데, 무슨일이냐며 나오는 앞집여자들 하나 둘 셋 넷, 속된말로 쪽수에서 심히 밀리지요. 한 술 더 떠 엄청애는 페인트칠이 엉망이 되었으니 이를 어쩌냐고 따지니, 덤태기까지 쓰게 될 상황적 열세에 몰리고 말지요. 뭐 이런 사람들이 다있어? 201호 여자들 싫어, 엄청 싫어!!입니다. 물론 엄청애의 입장에서는 이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202호 새댁, 마음에 안들어, 이런 며느리 절대사양하고 싶어!!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사이가 벌어지고 있는 차윤희와 엄청애에게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 기다리고 있으니, 테리강이 방귀남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지요.
방귀남을 찾은 것 못지않게 궁금한 것이 둘째며느리 나영희가 왜 방귀남의 존재를 알고도 숨기려고 하는지입니다. 나영희의 남편이자 방장수의 동생도 등장을 했는데, 썩 느낌이 좋지 않더군요. 부부간의 각별한 정도 없어보이고, 나영희가 숨기고 있는 방귀남과의 30년전 비밀이 비뚤어진 이유가 워커홀릭 남편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외로움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방귀남이라고 속인 사기꾼이 그 비밀로 협박을 할 것같은데, 나영희가 나쁜 개에게 물린 것같은데, 죗값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직은 내막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후폭풍이 일 것이라는 것이 암시되었지요.

귀남이의 빨간 스웨터, 긴 기다림의 고통
지척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귀남이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윤희부부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이라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렸던지요. 실수로 열어 본 소포상자에서 빨간 스웨터를 본 엄청애와 방장수, 한 눈에도 그 옷이 귀남이가 입었던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계로 뜬 스웨터도 아니었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남이의 옷이었으니까요. 그러나 3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귀남이라고 찾아온 사람들로 인한 실망은, 선뜻 귀남이 쉐타라고 단정짓지 못하게 하지요.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때마다 땅이 꺼지는 절망스러운 슬픔이 못견디게 힘들었으니까요.
귀남이의 쉐타가 눈에 밟힌 엄청애는 윤희네 벨을 눌러 테리강의 혈액형을 물어보지만, 윤희(김남주)로 부터 B형이라는 실망스런 답을 듣고 힘없이 돌아서 와버립니다. "나는 이렇게 늙어가는데 기억은 늙지도 않고... 아버지, 나는 못살겠어요", 아직도 어린 귀남이가 쉐타를 입고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생생한데, 30년이라는 세월은 유리문이 되어 엄청애를 더 힘들게 할 뿐이지요. 차라리 암흑처럼 새까만 철문이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30년이 흘러도 귀남이에 대한 기억은 투명한 유리문처럼 선명할 뿐입니다. 금방이라도 귀남이가 그 문을 열고, "엄마"하고 뛰어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방장수 역시 테리강의 빨간쉐타가 마음에 걸리지요. 더구나 고아원에 있다가 입양되었다는 테리강의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방장수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밤잠을 서치는 방장수, 운동하러 나가는 테리강을 기다려 고아원에 함께 가달라는 부탁을 하지요. 혹이라도 아내와 어머니가 또 실망할까봐 비밀로 해달라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양평의 고아원에 먼저 도착한 방장수, 어린 테리강이 단팥빵을 좋아했었다는 시설직원의 말에 가슴이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한 방장수입니다. 귀남이임을 확신합니다. 귀남이는 단팥빵을 유독 좋아했어요. "난 아빠가 만든 단팥빵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장용, 아버지의 눈물에 시청자도 꺼이꺼이 통곡했다
한장의 단체사진, 빛바랜 사진 속에서도 아들만 보입니다. 10년을 미친사람처럼 전국팔도를 찾아헤매 찾아다녔던 귀남이, 단 한 번도 잊은 적없었던 귀남이였습니다. 사진을 보며 방장수 장용이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에고 저런저런..",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더군요. 장용의 눈물은 비단 아들을 잃어버린 방장수라는 인물의 눈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 그 분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후 말수도 줄고 귀남이 또래의 남자를 보면, 괜스레 마음이 좋지않아 되도록이면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던 방장수였어요. 어머니(강부자)와 아내 엄청애(윤여정)와는 반대였지요. 귀남이 또래 남자만 보면 혹여 귀남이가 아닐까 유심히 보는 그녀들과는 달리, 일부러 외면했던 것은 그래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가슴에 묻지못하면 쓰러질 것같아서 말이지요. 
아무도 모르게 30년을 하루같이 귀남이 나무 팻말을 박아 둔 살구나무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방장수였습니다. 살구나무가 잘 자라주었듯이, 귀남이도 그렇게 어디에선가 살아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치 귀남이인양 수도 없이 쓰다듬었던 살구나무, 귀남이 나무 앞에서만 말이지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슬픔을 온전히 알 수는 없을 겁니다. 밥 한숟가락, 맹물 한모금에도, 자식은 밥을 굶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밥이 넘어갈 리가 없고, 물조차 쉽게 넘기지 못하고 가슴깨에 얹히는 걱정과 그리움을, 눈물로 겨우겨우 삼켜 온 시간들이었겠지요. 그 30년의 기다림을 눈물로 쏟고 마는 장용,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아버지의 눈물이었어요. 한마디 말도, 신음소리조차 뱉지못하고, 그 시간 동안 가슴에 묻었던 아들 귀남이를 끄집어 내듯이 그렇게 울더군요. 
뒤늦게 고아원에 도착한 테리강, 아니 귀남이가 걸어옵니다. 소리를 내면 새처럼 놀라 날아가 버릴까봐, 꿈일까봐 조심조심, 날아가 버리는 새가 아니기를, 꿈이 아니기를, 그렇게 조심조심 귀남이를 마주하는 방장수였지요.
떨리는 손으로 귀남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봅니다. 날아가지 않습니다. 찬바람에 노출된 귀남이 얼굴에서 차가움이 전해집니다. 꿈이 아닌가 봅니다. 또 누군가가 귀남이를 데려가 버릴까봐 두렵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다시는 이 아이를, 내 아들을 데려가지 못하게 심장이 터지게, 가슴이 으깨어지도록 귀남이를 안는 방장수입니다.
방장수에게 귀남이는 30년간 쉬지않고 가슴에 흐르던 눈물이었습니다. 그 긴 시간 아들을 잃은 고통과 찾은 기쁨을, 장용이라는 명품배우는 표정연기로 압축해서 보여 주더군요. 서민적이면서 친근한 이미지의 장용, 얼굴은 다르지만 그에게서는 아버지가 느껴집니다. 진하게 우려낸 곰국같은 깊은 맛이 나는,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이 말이지요. 그래서였는지 제가 귀남이가 된 것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가슴에 얹혀있던 30년의 한이 녹아내리는 그 뜨거운 눈물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아버지'라며 울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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