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6 14:21




바보엄마는 신현준과 집사처럼 엉뚱하면서도 코믹하기도 한 일부 캐릭터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드라마에 흐르는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여주인공 김영주(김현주)에게 벌어지는 상황들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우울과 불행의 연속들이지요. 바람난 남편, 성격 예민한 천재딸, 차압당한 친정집 과수원, 유치장에 갇힌 오빠, 그리고 돌볼 사람없는 바보언니에 안하무인 시댁식구들까지, 이보다 고단한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들더군요. 도대체 왜 똑똑한 여자가 야비하기 그지없는 못된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버팅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에요. 물론 닻별이때문에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 했었죠. 남편의 내연녀에게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는, 닻별이가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만이라도 결혼생활을 유지해 달라고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요.
처음에는 남편 박정도에게 애정이 남아서 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글쎄요, 꼭 그런것 같지만은 않더군요. 박정도와의 애정보다는 결혼에 실패했다는 불명예스런 딱지를 달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닻별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말이에요. 그만큼 박정도는 닻별이에게도 최악의 아빠였으니까요. 이중인격자, 도덕적 양심파탄자, 성공과 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던 아내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겨치는 아빠, 닻별이의 아빠로서 좋은 것일까요? 오히려 부끄러운 아빠일 것같은데 말이죠.
박정도라는 인물은 야비하고 못된 남자에 지극히 이기적인 남자입니다. 김영주가 왜 그런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 김영주의 안목이 한심스러울 정도에요. 박정도는 김영주가 과수원이 있는 시골의 대단한 갑부딸쯤으로 여기고 꼬셔서 혼전임신이 되어 결혼을 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결혼날짜를 잡고는 과수원 친정집에 가서 가족들을 보고는 파혼하자는 말까지 했었다는 것을 보면 말이죠. 드라마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결혼전날 김선영(하희라)과 모종의 일이 있어 울며겨자 먹기로 결혼했던 것처럼, 박정도는 김영주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김영주의 친정이 생각보다 가난하다는 것에 실망했고, 무지랭이 오빠와 바보언니는 김영주를 무시하고 모욕하고 군림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죠. 바보언니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집에 알리지 않을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는 막말까지 할 정도였으면, 박정도가 얼마나 김영주의 친정가족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죠. 물론 김영주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고는 했지만, 영주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체면을 유지하고 싶었던 이유가 더 커보이더군요. 영주가 바보언니 김선영을 버리고 싶은 치부로 여겼듯이 말이지요.
정신병원에 김선영을 입원시키고, 영주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습니다. 선영은 가볍게 버릴 수 있는 낡은 브래지어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말이지요. 피붙이, 천륜으로 맺어진 가족이기에 말이지요. 병원 벽에 활짝 핀 배꽃을 그려놓은 선영을 보고 영주는 선영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대학에 들어가 서울로 떠나면서 영주가 했던 약속, 선영에게 배꽃피는 날은 영주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병원에 두고 온 날도 차마 데려가 달라는 말도 못하고, "또 보러 올거지, 내동생 김영주"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던 언니, 그렇게 선영은 영주가 오기를 병원에서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영을 집으로 데리고 간 영주, 오빠 대영의 합의금을 마련할 때까지만 함께 있기로 하지요. 하지만 명품백을 가지러 온 시누이를 도둑으로 오인하고, 코뼈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언니의 존재가 시댁에 알려지고야 맙니다. 가난한 친정집이라고 무시당했던 시어머니와 시누이, 지적장애를 가진 언니가 있었다는 것에 거품을 물고, 기세등등 영주를 몰아세우는 모습을 보니 똥물을 퍼다가 퍼부어주고 싶더군요. 
시어머니(김청)는 임신을 핑계로 아들 발목을 잡은 것 아니냐고, 누구 씨인지 모르니 닻별이의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는 막말까지 하죠. 10년동안 참았던 영주도 눈에 불이 일더군요. 닻별이에게 머리카락 한 올 손대면 평생 며느리로 봐야 할거라며, 병원을 나가려는 영주의 따귀를 때리는 박정도. 자기 엄마를 협박했다고 "니네 집구석핏줄이 그렇게 뻔뻔하다"며, 싸갈통머리 없게 구는 박정도를 보니, 정말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리고 싶더랍니다. 
시청자와 마음이 통했는지 귀싸대기 두 대를 시원하게 올려주는 영주였지요. "우리집이 아무리 후져도 우리 엄마 너같은 자식한테 맞고 살라고 낳아준 것 아니거든. 이혼하자, 원하는 대로 해줄게", 결국 영주도 이혼하자며 법원에서 만나자고 병원을 나가버리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며 차안에서 우는 김영주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되더군요. 박정도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했던 말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언니를 바보라고 놀릴 때 아무런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했던 영주, 바보언니를 부끄러워 했던 자기 자신이 미워서 말이지요. 김선영은 김영주 밖에 모르는 바보인데, 정작 영주는 자기밖에 몰랐으니까요. 가족이라는 핏줄들이 거추장스럽고, 부끄러워 늘 도망치고 싶어했던 자기자신을, 박정도를 통해 돌아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박정도라는 캐릭터가 회가 갈수록 불편해지더군요. 참을 수 없는 캐릭터의 가벼움 같은 것이 느껴져서 말이지요. 김현주는 김영주라는 인물을 정극으로 연기하고 있는데, 상대배우 김태우는 정극과 코믹을 오가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선은 진지함보다는 장난스러운 가벼움이 더 느껴집니다. 깐족거림이 심하다 보니 박정도라는 캐릭터가 지나치게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지요. 인디언 텐트를 만들고는 닻별인줄 알고 엉덩이 춤을 추는 모습, 내연녀 오채린 앞에서,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비굴이 너무 가벼워 보여서 캐릭터의 비호감을 떠나, 김영주라는 캐릭터와 조화롭지가 않아요. 남편이라기 보다는 철딱서니없는 남동생같아서, 복잡한 내면을 가진 김영주가 이런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도대체 왜 김영주가 그런 반푼이 팔랑개비같은 남자를 좋아했었는지, 최연소 편집장이라는 김영주의 똑똑함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김태우의 연기가 물론 나쁘지 않습니다. 천하의 왕재수 나쁜남자, 못된남자라는, 욕이라는 욕은 다 들어도 쌀 정도로 나쁜 짓을 하고는 있지만, 박정도라는 인물의 감정증폭이 하도 어수선해서, 싸이코처럼 보인다는 점이 문제지요.
드라마는 캐릭터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김태우의 야비하고 비열함은 심각했다가, 가벼웠다가, 코믹했다가 온도차가 심하게 느껴져서, 김영주에게 이혼해 달라는 것이 장난스러워 보일 정도에요. 계산적이고 치밀하게 오채린(유인영)에게 꼬리를 살랑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부와 성공에 대한 야망도 가벼워 보이고 말이지요. 김태우가 박정도라는 캐릭터를 너무 가볍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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