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7 10:00




이미숙, 정진영 두 중년배우의 내공은 무서웠습니다. 32년만에 재회한 김윤희와 서인하, 두 사람의 애틋한 첫사랑의 감정을 짧은 화면하나로 고스란히 기억하게 한, 아니 그 이상의 절절함을 표현해 낸 배우들의 힘이 대단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재회를 할지 궁금했습니다. 끊어져 버린 과거의 감정이 살아날까, 그 촉촉했던 사랑비의 여운을 두 사람이 이어갈 수 있을까, 한마디로 기우였습니다.
오히려 32년전보다 더 애틋하고 절절하게 다가와, 사랑이라는 두 얼굴의 이름이 더 진해져 버린 느낌입니다. 안타깝게 헤어져야 했던 두 사람, 나이와 함께 외모는 세월을 입었지만, 두근거림은 32년전과 같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한 사랑, 너무나 순수한 색깔을 지녔기에 빛조차 바래지지 않은 사랑이, 32년을 지나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같은 돌림노래처럼, 슬픔과 행복의 이름을 가지고 또 그렇게 말이지요. 사랑비와 함께....

준의 스튜디오를 찾아간 하나는 면박만 당하고 나왔지요. 재수탱이 서준은 하나의 얼굴을 무단도용한 것에 대한 사과의 말도 없이 도도하고 까칠할 뿐입니다. "길바닥에 자기 얼굴이 나뒹굴고 밟히는데 기분좋겠어요? 누가 보면 어쩌라고...", 일본에서 하나를 데리고 가던 태성을 떠올린 서준, 마음이 상합니다. "1초도 보기 싫다면서 왜 왔어?",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마음에도 없는 말이 툭 튀어 나옵니다. 눈물을 머금고 가버리는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서준이지요.
광고주를 찾아가 따지는 서준, 하나를 모델로 쓰고 싶다는 광고주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지요. 왜 그랬는지는 서준도 모릅니다. 하나의 얼굴이 여기저기에 상품처럼 걸리는 것이 싫은 서준입니다(아마 그랬을 거라고요).
다른 사진작가에게 광고를 주겠다는 말에 하나를 만나기 위해 수목원으로 가는 서준, 다른 놈이 하나를 카메라에 담는 것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순진해서 뭐든 믿고 넘어가는 쉬운 하나가 바람둥이한테 휘둘릴까 걱정하는 서준,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하나가 다른 사람의 렌즈에 담기는 것이 싫습니다. 하나를 본 순간 서준은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이 여자를 사랑하게 될 것라는, 아니 사랑에 빠졌다는 운명같은....
오래동안 짝사랑해 왔던 태성에게 정혼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하나, 충격으로 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하나 앞에 또 재수탱이가 나타났지요. "니가 내 운명인 것 아냐?", 밑도 끝도없이 던지는 서준입니다. "나 바보멍청이 맞으니까 왔는지나 말하라"는 하나가 또 눈물을 보입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해본 서준입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같습니다. 이 순진하고 바보같은 애가 자기때문에 울고 있는 것같아서 말이지요.
"너 내 모델 안할래?", 사실은 정말 서준이 하나를 모델로 하고 싶었을 겁니다. 광고주가 다른 사람한테 준다고 해서 뺏기면 자존심 상해 온거라고 부연설명을 했지만, 모델이 아닌 인물사진을 처음으로 찍었던 서준에게 하나는 이미 그 만이 담고 싶은 모델이었어요. 까칠한 자존심으로 고백은 못했지만 말이죠. 그래서 하면 두드러기가 날 것같은 미안하다는 말도 처음으로 했던 것이고 말이지요.

"3초 안에 대답해", 3초를 채우지 못하고 하나는 태성과 가버리지요. "너 또 나 버리고 저놈 선택하면 진짜 끝이야"라고, 딴에는 고백도 했는데 매몰차게 손을 빼버리고 마는 하나였지요. "모델할게요, 오늘은 이만 가세요. 연락드릴게요". 또 채였습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서준이 말이죠.
하나의 전화를 받지 않는 서준, 두 번이나 다른 남자를 따라가버린 하나때문이 아니었어요. 아버지처럼 첫사랑을 잊지못해 괴로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였어요. 어머니처럼 첫사랑을 놓지못해 술에 의지하고, 바라봐 주지않는 사람에게 추하게 매달리게 될까봐서 였어요. 나를 봐주지 않는 사람만, 바라보게 될까봐 두려운 서준이었어요. 아버지 어머니처럼 말이지요.

모델을 해주겠다고 스튜디오를 찾아온 하나가 또 서준을 흔듭니다. 순진하고 바보스럽게도 광고주에게 짤리지 않게 도와주겠다고 온 게 뻔합니다. 룰룰루 그 바보같은 여자는 처음부터 그랬으니까요. 핸드폰을 찾겠다고 생판 처음보는 남자와 다이아몬드 스노우를 보러 산을 함께 올라가 주고, 한기에 떠는 자신을 위해 온천을 찾아주고, 기다리랬다고 잠도 안자고 호텔에서 기다리던 그런 여자였습니다.
막말로 상처를 주고 눈물을 흘리게 했는데도, 그 바보같은 순진한 여자는 광고주에게 짤릴 판이라니, 모델이 돼주겠다고 합니다. 밀어내려고 스튜디오에서 쫓아냈는데도, 잡초를 뽑으며 서준을 기다리는 바보같은 여자입니다.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알기에, 애써 밀어내려고 하는데도 자꾸만 서준에게로 들어오는 정하나, 이제는 밀어내기를 그만할까 합니다. 이미 사랑에 온몸이 젖어버렸다는 것을 알아버린 서준입니다.

서준을 기다리는 동안 하나, 아니 윤아가 스튜디오 밖에서 모델포즈를 흉내내는 장면으로 귀여운 매력을 발산했는데요, 어찌나 귀엽던지요. 윤아의 깜찍발랄한 연기에 매회 놀라네요.
감정연기도 좋고, 표정연기도 좋아졌고 윤아에게 따라다녔던 발연기라는 수식어는 안녕입니다! 삐쩍마른 장작개비 윤아지만, 저는 몸매만 들이대는 몸연기보다는, 마른 몸매지만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려는 윤아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좋더군요. 하나라는 캐릭터와 연기에 몰입하고 노력하는 윤아가 좋아보여서 말이죠. 너무 말라 안쓰러운 마음은 있지만요.

드디어 서인하와 김윤희가 재회를 했는데요, 심장이 멎을 듯 긴장하면서도 벌렁벌렁 뛰게 만든 이 감정은 뭘까 싶네요. 노란우산을 쓰고 가는 중년의 단아한 윤희, 노란우산 속의 여자는 그녀였습니다. 32년을 내려놓지 못하고 가슴저리게 추억하고 있는 첫사랑 그녀 김윤희. 죽었다고 생각했던 윤희를 본 인하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정진영, 귀신에 홀린듯 절박하게 온통 김윤희(이미숙)에게만 시선을 모은채 빗속을 뛰는데, 그 표정 하나로 모든 감정을 보여주더군요. 시간도 세상도 모두 정지한 듯, 오직 김윤희와 서인하만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지요.
윤희 앞에 마주 선 서인하, 32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여전히 유효한 사랑, 여전히 뛰는 가슴,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이미숙과 정진영의 절제된 표정에 탄성이 나오더군요. 시간을 거슬러 고스란히 과거의 감정을 잇는 두 배우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사랑이었어요. 순간 두 사람이 과거 슬프게 헤어졌던 진짜 연인이 아니었을까 싶은 착각마저 일게 했으니 말이죠.
"맞습니까", 한 단어에 이렇게 많은 감정을 넣다니, 정진영에게 너무 놀란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정진영이 멜로연기를 하는 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중년의 사랑이 어떻게 그려질까 자못 궁금했는데, 이토록 흡입력 강하게 시청자의 감정을 휘두를 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두 가지 의미의 탄성이 절로 나오더군요. 서인하와 김윤희, 그들의 아련한 첫사랑을 충혈되어 가는 눈빛연기만으로도 고스란히 되살리는 두 배우의 놀라운 감정연기에 탄성이 나왔고, 그 이면에 슬픈 비처럼 내리는 가슴 저린 애틋함때문에 서글픈 탄성을 지르게 하더군요. 뭔지모를 안타까움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만드는 이미숙과 정진영의 연기, 역시 말이 필요없습니다.
서준과 정하나의 밝고 트렌디한 사랑에 비해 중후하고 무겁게만 그려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거움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하더군요. 쉰이 넘어도 퇴색하지 않은 감정, 사랑은 나이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사랑이 더 깊어졌다는 느낌마저 들어서 이 커플을 응원하고 싶은 혼란스러움도 동시에 느끼고 있네요.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줄곧 어느 사랑을 응원해야 할까 불안감이 엄습해왔는데,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온 느낌입니다. 서준과 하나의 사랑이 예쁘다면, 서인하와 김윤희의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서준과 하나의 사랑이 콩닥콩닥 설레인다면, 서인하와 김윤희의 사랑은 쿵쾅쿵쾅 저릿합니다. 포장마차 천막에서 비를 피하는 서준과 하나, 노란우산을 쓰고 나타난 첫사랑 윤희와 재회한 인하, 두 세대에 동시에 내린 사랑비는 어떤 이름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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