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0 10:32




하반신이 마비된 이재신이 일어섰을 때, 비로소 이 드라마에서 이재신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이재신이라는 캐릭터가 한반도의 실상과 과제를 상징하는 구조적인 장치였다는 것을 말이죠.
휴전선으로 남과 북이 이념을 달리한 채 60년을 대치상태로 살아온 것은, 우리가 벌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주변 강대국에 의해 신탁통치라는 명목으로 갈린 것이 고착화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아냥을 받는 것이 또 우리입니다. 리강석이 화장실에서 들었던 조소는 세계인의 시각이자, 냉정한 현실입니다. 둘이 힘을 합치면 강해질텐데 지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는 바보들이라는 조소는, 그래서 더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WOC 세계장교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은 4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거두고, 약속대로 재하와 항아는 남과 북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혼식을 치뤘지요. 재하와 항아의 행복이 김봉구에 의해 짧은 시간 끝나버릴 것같은 불길한 예감과 함께, 은규태 비서실장이 선왕부부 암살에 정보를 주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듯 보이더군요. 이재하의 사람을 품는 포용력과 은규태의 진심을 믿기에 왕실이 흔들리지는 않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김봉구에 의해 누군가 희생될 것같아 불안하네요.

제가 외국에 나와 살기때문에 아주 가끔 동양인인 저에게 질문을 하는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있습니다. 처음 듣는 말이 중국인이냐?는 것입니다. 코리아라고 대답하면 게중 몇 분은 남한이냐, 북한이냐고 묻는 일이 있습니다. 그냥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면 될 걸, 무슨 큰 일이라도 되는양, 손사레까지 치면서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자랑스럽게(안심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말하게 됩니다. 외국에서도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냐고 묻는 것이 기분나빴다는 듯이 말이죠. 우습죠?
그러면서도 드라마를 보면서는 남과 북이 갈려있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분단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력이 커지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제자신을 돌아보면, 여러가지로 모순이죠.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 이 좋은 말도 잘 못 말하면 좌파빨갱이가 될 수도, 친북성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도 있는 것이 불편한 우리의 현실이죠. 어려서 국가이념처럼 배워왔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이제는 말하면 안되는 시대가 돼버렸다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더킹 투하츠는 대놓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담대함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한 발 비껴서 차선을 말하고 있죠. '평화'...
그런데 말이죠, 더킹 투하츠가 세련된 것은 평화를 말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지구촌의 평화는 인류의 바람이자 희망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한도 북한도 공생하는 길이라는 것을 누구도 아닌 우리들이 더 잘알고 있는 진실이죠.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지 않는 김봉구로 대변되는 세력에 휘둘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좌표없이 정책이 변화되기도 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나름의 자구책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지도자의 대북관계 혹은평화에 대한 방식에 대해, 어떤 정권은 좌파정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퍼주는 정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강경정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죠.

드라마가 드라마라는 장르로서 좋은 것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해소 장치들을 과감하게 던져주기 때문일 겁니다. 현실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을 드라마라는 가상의 허구를 통해서 말이지요. 환상이고 희망일 뿐일 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이재신 공주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은시경이 김봉구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사과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재신, 그 답답한 사람이 왕실이 수모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대신 수모를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한 밤중에 모멸감때문에 비통해 하고, 질주하고, 오열하는 은시경의 모습을 본 재신은 다시 일어나기를 결심합니다.
곁에 두고 떼쓰고 시비걸고 장난치고 싶었던 것이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재신은, 자기를 포기하지 말아달라며 고백을 하지요. "좋아해요. 은시경씨한테 어울리는 여자가 돼 보일게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서 버벅거리는 은시경, 이 답답이가 너무 좋네요. 답답하고 서투르고 꽉 막혀서 오히려 로맨틱한 남자입니다.
조정석과 이윤지의 연기가 시청자에게 재하와 항아 이상의 달달함을 주는 이유는, 또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이기 때문이지요. 재하와 항아는 남과 북이라는 이념적 갈등 속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면, 이재신과 은시경은 선왕부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역적(?)의 아들과의 사랑이라는 신파가 가미된 관계입니다. 특히 원칙과 소신을 목숨처럼 여기는 답답이 은시경의 1+1=2 공식밖에 모르는 우직함이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죠. 은시경이란 캐릭터를 자로 잰 듯 완벽빙의해서 보여주는 조정석의 연기는 볼수록 탐나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중이죠ㅎ.
제주평화포럼에 직접 참가한 이재신, 청중을 향한 그녀의 연설은 감동자체였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뭔가가 전해졌던 것은 그녀의 모습이 한반도를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강대국들에 의해 두 동강이 나버린 한반도, 김봉구에 의해 하반신이 마비된 이재신의 모습이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언제 전쟁이 터질 줄 모르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자라는 사람은 시도때도 없는 불안의식에서 전투의식을 갖게 돼요. 평화협정은 그래서 꼭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언제까지 전투적으로 불안하게 키울 수는 없습니다. 평화라는 것은 존 마이어씨 말대로 어느 수준에 됐을 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가는 거죠.
저는 지금 10분 정도밖에 못서있는 몸이지만 익숙해지면 설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없는 나라에서 살기 위해 WOC단일팀, 남북결혼 등으로 평화를 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러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계 각국 여러분의 격려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노력하겠습니다".
 이재신은 현재 걷기는 커녕 혼자 서있기도 힘든 상태입니다. 그런 재신이 재활치료를 받을 결심을 하고, 세계인들을 향해 고개 숙이며 부탁합니다. 지켜봐달라고 말이지요. 그녀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말입니다. 같은 말이었습니다. 이재하가 우리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간섭하지 말고 꺼지라고 거칠게 일갈했다면, 이재신은 정중하게 부탁했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보여줘가면서 말이지요. 전쟁에 대한 공포없이 아이들이 평화롭게 사는 나라, 그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이 합심해서 모색하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이지요. 비록 약하고 힘없는 나라지만,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와 노력을 꺾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이재신이라는 캐릭터의 하반신 마비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보여준 것이었고, 휠체어에서 일어나려는 의지는 대외적 간섭과 의존에서의 자립을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에서 이재신이라는 캐릭터가 중요한 이유는,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강한 메시지 '대한민국의 자립'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재신이 두발을 딛고 스스로 일어서게 되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통일보다 중요한 과제가 자립이기에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ViewOn)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