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1 09:09




이각의 전생이 경종일 가능성은 드라마에 나온 여러가지 복선들로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감과 간장게장, 첫 세자빈 단의왕후가 요절했다는 것에서도 모티브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컸지요. 혼인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이각에게 후사가 없다는 것도 일치하는 사항이고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숙종은 오래도록 왕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손이 귀한 왕실에서 왕자 생산만큼 중요한 일을 없었고, 뒤늦게 장희빈에게서 얻은 왕자 윤은 숙종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선물이었죠. 어린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기 위해 청나라에 사신을 파견, 윤(훗날 경종)을 세자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서인과 남인의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죠. 서인은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를 필두로 한 인현왕후 측 인사들이었고, 경종의 생모 장옥정은 남인이었습니다. 숙종은 남인과 서인의 견제와 조율에 능했던 인물입니다. 그 과정에 숙종의 여인들이 이용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죠.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은 용태무의 전생, 누구일까?
숙종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었으니, 정통성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현종의 장자로 왕위계승의 정통성은 인정받았으나 현종-효종으로 거슬러 보면 장자승계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반정으로 옥좌에 앉은 인조가 있죠. 인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장자 소현세자입니다. 인조의 미움을 사서 독살당했다는 설이 유력한 비운의 세자입니다.
소현세자는 죽음 이후에도 그 집안에 끊임없이 비극이 계속됩니다. 세자빈 강씨 역시 역모의 죄를 뒤집어 쓰고 사사당했고, 소현세자의 세 아들은 제주도에 유배를 당합니다. 추노에서 원손으로 나왔던 이가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석견입니다. 제주도로 귀양가서 석철 석린 두 형은 후사없이 어린 나이에 죽고, 석견 혼자 살아남았죠. 석견 역시 22세의 나이에 요절했지만(후에 경안군으로 복위되었습니다), 두 아들 임창군과 임성군을 남깁니다. 임창군은 밀풍군과 밀남군을 남기고, 밀남군은 후사가 없었던 임성군의 양자가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밀풍군(?~1729)과 밀남군(1689~1680)의 생몰연대가 경종(1688~1724)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항렬로도 먼 형제관계이고 말이죠. 용태용과 용태무의 관계처럼 말이죠. 밀풍군은 역모에 연루되어 자결하는데, 그게 영조 즉위 초에 있었던 이인좌의 난입니다. 이인좌가 영조의 정통성을 문제삼아 소현세자의 직계후손인 밀풍군을 왕위에 옹립하려 한 것이 발각된 것이죠. 소현세자 가계의 끊임없는 비운이죠.
밀풍군의 아들 관석이 경종의 양자가 될 뻔하기도 했지만, 갑작스런 연잉군의 세제책봉으로 성사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경종에게 후사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요, 당시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세제로 삼아 대리청정을 주장했고, 경종의 두번째 후인 선의왕후는 소현세자의 혈육인 밀풍군의 아들 관석을 양자로 삼자는 주청을 올렸지만, 경종은 연잉군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정유독대로 연잉군을 노골적으로 왕위에 올리려 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목호룡은 경종독살 음모에 가담했다가서 배신을 했던 인물로 삼급수 살해방법을 세웠다고 고변했죠. 삼급수라함은 칼로 죽이는 것, 독으로 죽이는 것, 그리고 폐위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경종의 수라에 독을 넣었다는 수라상궁도 있었지만, 경종은 이상하게 이 사건을 확대하지 않고 덮어버리고 맙니다. 여기에 연잉군과 인원왕후가 관계되어 있다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목호룡의 고변을 통해 드러난 경종시해설의 배후에 연잉군이 있었음을 알면서도 경종이 추궁하지 않음으로서 연잉군을 살렸던 것이죠.
밀풍군은 다시 영조대에 역모로 연루되어 자결하는데요, 영조 즉위 6년 이인좌가 난을 일으켜 밀풍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것때문이었죠. 이렇듯 소현세자의 혈육은 훗날 숙종-영조대에 이르러서도 역모와 관련 희생되는 등, 피의 역사가 계속된 비운의 가계입니다.
위의 내용들은 용태무의 전생이 나오지 않아 궁금해서 찾아본 것입니다. 그리고 드라마가 숙종 재위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 당시 왕족이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다보니 흥미로운 사건 두 가지가 있더군요. 물론 드라마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며, 시기적으로도 차이가 나고, 단지 모티브만 가져왔을 것을 전제하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숙종시기에 있었던 왕족과 관련된 역모사건이 유명한 삼복의 변입니다. 인평대군의 세 아들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이 임성군(소현세자의 손자, 경안군의 둘째아들)을 왕위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했다고,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의 아버지 김우명이 고변한 일입니다. 이 일은 경신환국으로 이어졌고, 서인들이 정권을 잡게 되죠. 그런데 경신대척출 사건 이전에 흥미로운 사건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 사건은 경종의 출생이전에 일어난 일이기에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으나, 재미있는 것이 왕족과 궁녀 사이에 벌어진 스캔들이라는 것입니다. 복창군과 복평군이 궁녀(김상업, 귀례라는 두 궁녀)를 희롱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추문사건입니다. 유명한 홍수의 변이지요. 증거는 없었고, 아이를 찾지도 못해 요즘말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여기에 개입된 인물이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였죠. 친정아버지를 무고했다며 대전 앞에서 대성통곡했다는 일화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궁녀와 왕족의 스캔들, 세자빈과 왕족의 스캔들, 현대에서 홍세나와 용태무의 관계를 보면 비슷한 면이 없지 않지요. 스캔들에 연루된 복창군, 복평군은 항렬로 따지면 이각과 형제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맞지는 않지만, 직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의 용태용과 용태무와도 비슷한 점이 있지요. 이런 정황들을 보면 용태무의 전생은 간장게장을 먹였다는 점에서는 연잉군(훗날 영조)과 홍수의 변과 삼복의 변으로 왕실스캔들과 역모죄에 연루된 인물들이 짬뽕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드라마가 얼마남지 않았기에 용태무의 전생은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세자빈 시해사건을 덮으려는 세력의 중심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세자빈 홍화용의 모티브는 혜경궁 홍씨?

문제는 수상한 행동을 취한 세자빈의 아버지 길용우가 어떤 인물인가인데, 몇가지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극구라는 권력을 이용해 부정축재를 한 것이 내사를 받자 딸 세자빈과 공모해서 세자를 시해하려 했을 수도 있고, 세자가 아닌 다른 인물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세자를 시해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서인, 남인, 노론, 소론이라는 치열한 당파싸움을 보면 딸의 안위보다는 당파의 이익을 우선했다는 것이 충분히 가능성이 커보이고 말이죠. 이를 알게 된 부용이 늦은밤 궁에 입궐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 과정에서 희생당했고 말이죠. 세자빈의 아버지는 역모가 발각될까 세자빈 의문사를 서둘러 덮으려고 했던 것이지요.
세자빈의 아버지를 보면, 과거 부용이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는 말에도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화용이를 처녀단자에 올리라는 말을 했던 인물이었지요. 딸자식의 앞날보다는 집안의 영화와 권력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던 게지요.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박하, 왕세자 이각은 어머니 장희빈의 죽음을 봐야 했던 경종일 수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일 수도, 그리고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일 수도 있습니다. 세자라는 말에 유독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지요. 왕세자 이각에게는 그래서 같은 슬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도세자가 경종의 처소에 거했고, 경종의 나인들의 수발을 받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요. 영조는 경종을 독살했다는 누명을(?) 풀고자 했지만, 사도세자는 오히려 심증을 굳히고 소론편에 서게 된 것이 영조와 사도세자가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지요. 경종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했던 사도세자, 남편 사도세자를 버렸던 혜경궁 홍씨, 극중 세자가 곶감에 의한 독살을 조사하는 것과 악랄했다는 세자빈 홍씨를 보면, 왕실의 비극을 비틀었음도 느껴집니다.
이각을 보면 시대적으로는 경종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곶감에 의한 독살을 조사하는 것을 보면 비운의 인물 사도세자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혜경궁 홍씨와 극중 홍화용과도 왠지 매치가 되는 것도 같고 말이죠. 물론 바람난 것은 허구일 뿐이며, 세자시해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남편 사도세자를 버렸다는 것이 공통적이라는 의미이니 오해는 마시고요.
특히 화용의 아버지이자 이각의 장인 길용우는,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자 노론의 영수였던 홍봉한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답니다. 화용이 세자시해에 가담했다고 하면, 이 인물의 모티브는 혜경궁 홍씨일 가능성도 크지요. 물론 작가가 허구를 통해 이각과 홍화용이라는 다른 인물을 모티브로 하나의 드라마 속에서 만나게 했고 말이죠. 남편 사도세자 대신 노론과 친정집안을 택한 혜경궁 홍씨가 화용과 오버랩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각과 박하의 사랑을 이루게 함으로써 비운의 왕세자들 소현세자-이각(경종이라 추측)-사도세자에게 전하는 작가가 전하는 위로는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예상되는 결말도 함께 정리했는데, 글이 길어 나눠올립니다.

이어지는 글: 2012/05/21 '옥탑방 왕세자' 해피엔딩을 위한 복선, 용태용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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