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7 11:37




개인적으로 덮어놓고 작가만 보고도 믿고 선택하는 드라마 중 하나가 소현경 작가의 작품입니다. 찬란한 유산, 검사 프린세스, 49일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가족, 사랑,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과장적인 막장설정을 넣지않는다는 점이 특히 소작가를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49일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삶의 본질과 인간의 비뚫어진 욕망,  그리고 순수한 사랑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내 딸 서영이' 첫회를 보고는, '어, 이건 딸 서영이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영이 보다는 서영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떨리는 눈과 초라하고 남루한 등이 시선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첫회부터 서영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우울한 전조를 드리우면서 출발은 했지만, 그 죽음을 보면서도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마주한 죽음이라 채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천호진의 주춤거리는 구두를 보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절벽에서 자살을 택하려는 천호진, 자식들에게 못난 아버지의 모습만 보여주고, 아내도 자기때문에 잃었다는 자책감은 그를 절벽 벼랑끝에 서게 했지요.  

자살을 하려는 그를 붙든 것은 삶이 버거웠던 듯 어깨를 주무르며 서글프게 바라보는 아내의 환영이었습니다. 아내의 환영은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동안 삶이 무거웠다고, 자식들의 키우기가 쉽지 않았었다고, 그래서 이젠 고단한 몸을 쉬어야 겠다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저으며, 아내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부모니까요. 아버지마저 없으면 두 아이가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누가있겠냐고,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젓는 아내. 오열하는 천호진은 망자에 대한 슬픔 그 이상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걸머 진 무게가 엄마라는 이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이 없듯이, 자식도 선택해서 낳는 것은 아니겠지요. 못나도 잘나도 내새끼인걸요, 부모처럼 말입니다. 

 

아버지는 절망합니다. 죽음도 선택할 수 없게 하는 본능적인 사랑, 자식들을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아내의 환영은 환영이 아니라 이삼재(천호진)이 죽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가방을 싸가지고 서울 서영의 옥탑방으로 올라온 아버지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서영이처럼 말이죠. "엄마를 죽인 것은 아버지"라고 모진 말을 뱉고 올라왔으면서도, 가방을 들고 서있는 초라한 아버지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서영이었지요. 서영을 멈칫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 미워하지마, 너한테 생명을 주신분이잖아", 어머니의 환영을 통해 자살하려는 이삼재(천호진)를 주저앉게 한 것처럼,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어 작가는 서영의 마음을 대신합니다. 서영이 아버지와 결국은 화해할 것이라는 복선을 일찌감치 깔아준 셈입니다. 

서영과 상우의 등록금을 도박으로 탕진한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는 서영을 보고 웃습니다.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고, 엄마가 해왔던 자리를 아버지가 대신하는 모습은 가슴 찡하게 아파옵니다.

작가는 아버지라는 작고 초라해진 존재를 어머니와 치환해서 보여줍니다. 극중 이삼재의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작가의 의도는 쉽게 읽혀집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묘사하기는 사실 쉽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아예없었던 것처럼 자식들의 앞날에 저당잡히고 사는 헌신적인 삶, 사극에서는 삯바느질에 떡장사, 허드렛일 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현대물에서는 식당주방일에 도우미, 빌딩청소원 등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본질적인 모습은 같지요. 자식을 위해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는 것이 어머니다 라는...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도 같다고 봅니다. 자신만 바라보는 처자식때문에 기분내키는 대로 직장을 때려칠 수도 없고, 자식 앞날에 걸림돌이 될까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의 아버지들 마음일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명예라도 있든가, 명예가 없으면 돈이라도 많든가, 그러나 대개의 아버지들은 둘 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극중 이삼재를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아내의 심장병까지 몰랐던 무심한 아버지로 그린 것은 아버지, 이 시대 아버지들의 마음 속 깊은 죄의식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식들도 부모에게는 늘 죄의식과 채무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어버이 은혜 노래를 들으면, 괜스레 울적해지고 부모님께 못했던 일들이 떠올라 마음에 눈물이 맺히듯이 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식들이 더 번듯하게 살 수 있는데 못난 부모를 만나게 한 것이 미안하고, 더 많을 것을 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줄 수 있는게 없어서 마음이 미어지고, 좋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고생안하고 호강하며 살았을텐데 싶고.... 그럼에도 내 딸 내 아들로 태어난 것이 고맙고... 그런 것이 부모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호진의 연기를 보면 그런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혀져서 코끝이 찡해집니다. 고시원으로 들어간 서영이에게 김치랑 밑반찬을 가져다 주고, 딸에게는 환하게 웃지만 뒤돌아 계단을 내려오면서는 천근 만근처럼 푹 떨어지는 고개, 자식들은 모르는 부모의 마음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식당에서 불판을 닦는 일을 하면서 새 삶을 하려는 아버지 이삼재, 이삼재는 새 삶을 살려는 것이 아니었어요. 자식들을 위해 살려는 것이었지요. 아내 은숙처럼 말이지요. 서영의 고시원 방값을 내주고, 등록금을 마련해서 공부마치게 하고, 그리고 지들끼리 잘 살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아버지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종이라고 하지요.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갚아도 갚아도 다 갚지못하는 부채가 자식에게 많이 해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을 흔히 부모의 사랑이라고도 말하지만, 부모가 되면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부채의식 비슷한 것이 생기게 되는 것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부채의식 같은 것도 느껴지더라고요;;

반평생을 훌쩍 넘겨버린 흔적인 희끗한 머리를 이고도 굴레처럼 조여오는 부채에 이삼재(천호진)는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 가슴에 멍들게 한 능력없는 못난 아버지라는 죄때문에 말입니다.

천호진에게 시선이 오래 머문 이유가 이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삶의 무게에 쫓기는 불안과 절망, 그리고 더 깊이 배여나오는 초라함은, 어느날 문득 아버지의 긴 한숨과 함께 보게 되는 우리 아버지들의 처진 어깨와도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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