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8 12:32




오영(송혜교)은 오수(조인성)에게 말합니다. "너 그거 알아? 너한테서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 거... 비누향도 아니고, 화장품향도 아니고, 뭔지 모르지만 아주 좋은 냄새가 나...". 오영이 맡은 오수의 향기는 오영이 그립다는 사람의 냄새겠지요.

오래전에 잃어버린 가족이라는 둥지에서 나던 그 향기, 포근한 향기, 따뜻한 향기, 그리고 자꾸만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아늑한 향기... 잠든 오영의 손을 잡아주는 오수의 손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믿고 싶은 사람의 향기... 뭔지 알 수 없지만 가슴이 떨리는 향기.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가 가지고 있는 오감(五感-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육감이라는 제 6의 감각이 있습니다. 오영에게는 시각이 없습니다. 시력이 없는 대신 다른 감각들이 더 발달해 있죠. 특히 후각과 청각은 시각장애인에게 정안인보다 발달한 감각입니다. 그리고 오영은 육감이 발달한 아이입니다. 몹쓸병은 그녀의 시력을 앗아갔지만, 육감이라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감각이 그녀의 눈을 대신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자꾸만 오수를 곁에 붙들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이 단순히 그가 오빠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돈을 노리고 왔다고 해도, 그녀만이 감지하는 오수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색다른 감정입니다. 오수가 죽었다 깨나도 친오빠가 될 수 없듯이, 뭔가를 감추는 듯한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거짓과 진심이 뒤섞여 있는 그의 목소리는 자꾸만 그를 보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그의 마음을 읽고 싶고, 그의 진심을 보고 싶고, 그리고 믿고 싶어집니다. 

암흑 속 추운 새장에 찾아든 따스한 바람이 오빠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장변아저씨나 이명호 본부장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오수가 잡아주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 그렇게 오수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오영에게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남녀 사이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하는 오영은 그것이 오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닐 겁니다. 

 

잦아지는 두통과 현기증, 오영은 자기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이 오빠가 떠나기 전이었으면 싶은 오영입니다. 돈을 노리고 왔든, 그가 친오빠가 아니든, 사기꾼에 도박꾼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오영에게 남은 것은 돈이 아니라, 그녀가 사는 동안만큼만 누리고 싶은 행복이기에 말이죠. 진심으로 오영을 웃게 해주고, 그 옛날 철모르던 시절, 행복이 행복인줄도 모르고 웃던 여섯살의 그 행복한 시간을 기억하며 떠날 수 있다면...

21년만에 행복을 찾아준 오빠를 위해 오영은 뭔가를 해주고 싶어합니다. 오빠가 바라는 것, 돈이라면 그녀가 떠난 후에는 아무 쓸모도 없을 돈을 줄 것이고, 오빠가 바란다면 사랑없는 이명호 본부장과의 결혼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오수가 그녀의 곁에 있어준다면, 오빠 그가 몰고온 바람이 잠시 곁에 머물러 있는 동안만이라도...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오영은 오빠라고 찾아온 오수의 향기가 진짜였다고 믿고 싶습니다. 오영이 믿고 싶은 것은 그가 오빠라는 것이 아니에요. 오영을 마음으로 안아주는 사람을 말함이었죠.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오영의 마음을 속여온 주변사람들과는 다른, 오영의 돈이 아니라 오영의 외로움을 달래줄 그런 사람말이죠.

오영의 외로움은 오빠와 엄마가 떠난 그날부터, 그리고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면서 깊어만 갔습니다. 왕비서는 그런 오영을 치료해 주지도 않고 거짓말로 속였습니다. 무엇때문인지 오영은 알지 못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오영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음에도 왕비서는 그런 욕심을 내비치지도 않습니다.

영이만 무사하면, 영이만 안전하면, 영이만 자기 눈 앞에서 살아있으면, 그녀의 도움없이는 살 수 없는 영이로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왕비서는 영이의 어둠을 때로는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이가 외로울 수록, 영이가 기댈 사람이 없을 수록 왕비서의 목소리에 힘이 넘치고, 뭔가 할일이 있는 것처럼 생기마저 느껴집니다.

'그녀는 왜 내 어둠을 좋아하는 걸까?', 어려서부터 영이가 품어온 의심이었습니다. 엄마이고 싶어하는 그 여자가 보호자, 법정대리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영이의 상처를, 영이의 외로움을 그녀만이 독차지 하려는 일그러진 사랑때문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왕비서의 보호가 더해질 수록, 왕비서의 영이를 보는 애처로움이 깊어갈수록 영이의 외로움은 왕비서의 새장속에서 더 커져만 가고 있었음을 왕비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 새는 커갈수록 마음을 꽁꽁 닫아걸기만 했습니다. 영이가 커가는만큼 그 닫혀버린 마음의 문도 크고 높아만 갔죠. 영이는 왕비서에게 날개다친 새였습니다. 혼신을 다해 치료해주고 다시 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왕비서의 새장 속에서만 날아야 하는 영이었습니다. 두발달린 짐승은, 날개가진 새는 아무데고 갈 수 있다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영이었습니다.

그런 영에게 찾아온 사람이 오빠라고 21년만에 나타난 오수였습니다. 새장속 영을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주고, 영이의 추억을 찾아준 사람입니다. 비디오 테입속에만 살고 있는 영이의 추억...

세상에서 단 한나뿐인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해줘... 내가 오빠 널 믿어도 된다고...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오열하는 오영에게 힘겹게 오수는 말합니다. "난 믿어도 돼, 난 믿어도 돼 영이야..".

힘겹게 뱉는 "난 믿어도 된다"는 오수의 복잡한 심경, 갈등과 다짐이 교차하는 오수의 온몸에 들어간 힘은 오영을 대하는 그의 고뇌이기도 합니다. 잔인하게 엮어버린 인연, 그의 목숨이 걸린 사기행각에 오영의 눈물은 오수를 힘겹게 합니다. 죽이지도 죽을 수도 없는 오수, 오영이라는 여자에게 끌리는 감정, 그것은 늪과도 같았습니다.  

동생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오영의 공허한 눈빛이 끌어당기는 것, 그것은 오영의 향기였습니다. 

오영은 오수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정말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은 그녀의 초점없는 눈빛이었습니다. 언뜻언뜻 별처럼 빛나는 그 눈빛은 오수의 지난 날들을 씻어주는 정화수처럼 맑기만 합니다.

'대체 난 왜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 걸까? 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도 없으면서 앞 못보는 이 아이에게 이렇게 끝없는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살려고 하는 걸까?... 인생 별거 아니라고, 그냥 살아지면 사는게 인생이라고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어쩌면 모두 거짓말이었나... 살아서 지금같은 순간을 나도 모르게 한 번쯤은 미치게 기다리고 있었나?".

이명호와 첫키스를 했다고, 기대보다 별로였다고 모래처럼 메마른 말을 무덤하게 말하며 잠이드는 오영,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싶어진 오수, 처음입니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고 싶어진 것이... 떠난 희주에게도 그는 믿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준다는 것은 지켜준다는 것이겠죠. 갓난아이때 버려진 오수는 누군가를 믿는 것도,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오영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키스는 이런 거라고 해주고 싶어진 오수입니다. 오영이 동생이 아닌 여자로 느껴집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이명호 본부장에게 다른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된 오수는 술집에서 오영에게 한 이명호의 키스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미친놈", 오영의 입술 가까이에 가버린 오수, 이 여자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 두려운 오수입니다. 아니 이미 사랑을 시작해 버린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이 듭니다. 오영의 방 그림 뒤 금고를 털어서 그냥 여기서 끝내고 싶은 오수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여자의 맑은 호수가 더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 맑은 호수에서 더 이상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자기와 같은 외로움을 가진 그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왕비서에게 들켜버린 오수, 그는 어떤 변명을, 아니 왕비서와 어떤 거래를 하게 될지... 왕비서(배종옥)에게 오영의 눈을 방치한 약점을 말할 듯 싶은데, 오수 이 남자 오영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더 힘겹겠군요.

 

*******

키스를 하려다 퍼뜩 정신줄을 챙긴 오수를 생각하며 오늘 감상곡 가사 올려봅니다. 오수를 생각하며 전 요즘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답니다. (엠씨더맥스의 사랑이 사랑을 버리다...노래를 링크로 걸려고 했는데 울딸이 집에 없는 관계상 어떻게 거는지 몰라 그냥 가사만 ㅎㅎ 아마 아시는 분 많을 거에요. 한 멤버가 실망스러워서 에잇! 싶지만 노래는 명곡)

 

아닐 거라고 사랑 아닐 거라고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도망쳐 보고 나를 타일러 봐도

가슴은 이미 시작했나봐


사랑한 널 두고 미련한 널 두고

다른 사랑에 빠진 날 어쩌니

널 돌아선채로 걸음이 더 빨라져

그사람을 봐야 살 것 같아서


너무나 미안해서 미안하다 말 못해

감히 행복해서 행복하라 말 못해

너보다 더한 아픔 겪게 될테니

잠시만 날 보내줘


눈물이 나는 널 나만 바라본 널

지켜주겠다던 나였었는데

스쳐갈 바람은 잠시 흔들리다가

다시 돌아가길 기도했는데

 

사랑할 이유들이 내겐 너무 많아서

사랑할 방법이 내겐 너무 없어서

울고 웃다가 자꾸 뒤돌아 서는

내가 너무 싫어져

 

너무나 미안해서 미안하다 말 못해

감히 행복해서 행복하라 말 못해

너보다 더한 아픔 겪게 될테니

잠시만 날 보내줘

잠시만 행복할게

**********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계속적으로 한 사람의 눈동자에 머무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송혜교의 초점을 잃은 눈동자입니다. 시각장애인 연기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더군다나 그렇게 코앞으로 들이밀고 들어오는 카메라 앞에서는 연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을텐데 동요하지 않고 감정선을 유지하는 연기가 참 좋더군요. 상대배우와 눈빛을 교감하지 않는 연기는 독백 모노드라마보다 힘이 들 듯한데도, 차분함과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을 잘 이어주는 송혜교의 재발견이라고 할만큼 연기에 향기가 있더군요.

이번 6회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장면은 적절하게 삽입된 영화 '봄날은 간다'였습니다. 허진호 감독이 소리의 영화라고 까지 했던, 영상과 소리에 공을 들였던 영화의 선택이 탁월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오영이 봄날은 간다를 여러번 봤다는 말이 마음에 닿더군요.

소리로 장면들을 상상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 대나무 소리, 눈녹는 소리, 바람부는 소리 등등을 담은 영화속 은수(이영애)와 상우(유지태)는 오영이 이명호와 본 액션영화보다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쉬웠을 듯도 하고, 참 많은 감정들이 스치더군요. 남녀간의 미묘한 분위기를 궁금해 하는 오영의 궁금증도 솔직하게 표현해서 좋았고요.

 

그걸 보면서 전날밤 오영이 키스하려고 했던 오수의 행동을 알고도 모른척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안인보다 감각이 섬세한, 더군다나 불면증까지 있는 오영이 자기 얼굴에 가까이 다가오는 오수의 숨결을 느끼지 못했을까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도 오영은 눈을 뜨지 않았죠. 그 느낌이 오빠가 아닌 남자의 향기였다는 것도 오영은 느꼈을 듯 합니다. 그럼에도 오영이 눈을 뜨지 않았던 이유는 정말 잠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눈을 뜨면 오수가 자기 곁에서 떠나버릴 것 같아서는 아니었을까???....

오빠라고 믿고, 그냥 짧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고 싶은 오영의 바람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상에 단 한사람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는 사람, 믿고 싶어진 사람 오수가 조금더 곁에 머물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작은 바람이 깨질까 두려워 눈을 뜨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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