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2 12:24




"봄 냄새 난다, 지난 겨울은 너무 추웠어", "아니... 난 니가 있어서 별로".

"닌 니가 있어도 바람이 너무 차던데...이 봄도 지난 겨울처럼 추우려나 보다".

별장으로 향하는 차에서 오영은 거짓말로 오수와의 이별을 준비합니다. 사실 오영에게 지난 겨울만큼 따뜻했던 겨울은 없었습니다.

겨울과 함께 찾아온 오빠를 봄과 함께 떠나 보내려는 오영입니다. 오빠로 왔다가 오빠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 오영이 사랑해 버린 남자 오수로 떠나는 남자. 그 남자를 떠나보내면 올 봄은 지난 겨울보다 더 추울 것 같습니다.  

영이는 이제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하려고 합니다. 20년 넘게 자기 곁을 지키며 엄마가 되고자 했던 왕비서를 보내고, 회사회장자리도 내놓으며, 모든 재산은 복지원에 기부한다는 유언장도 새로 작성했지요. 이명호 본부장에게는 문자로 파혼통보를 보냈죠. 오수에게는 78억을 줄 생각입니다. "너 돈 많잖아?",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듯한 희선의 오지랖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사정과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많은데 78억쯤은 줘도 되지 않느냐는 말에 기가 차더군요;; 오수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야 알지만.

 

진소라의 음성메시지를 받은 오영, 오수와 왕비서의 대화를 듣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버리죠.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친오빠가 죽었다는 말에도 슬퍼할 수조차 없는 영, 오수에 대한 사랑이 컸던 만큼 분노도 컸습니다. 더 괴로운 것은 그런 오수를 여전히 사랑하는 오영 자신입니다.  

오수가 들려준 만개의 풍경소리, 함께 음식을 만들고 눈밭을 뒹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보지않겠다며 살고 싶게 만든 오수에 대한 사랑이 오영을 힘들게 합니다.

세상에서 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단 한사람, 그 사람이 78억 때문에 영과 오빠와의 추억을 훔치고 속인 것이 부들부들 떨리고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주었던 따스한 손은 진심이었음을 알기에 더 힘이 드는 영입니다.

 

왕비서에게도 비슷한 감정인 영이죠. 20년 넘게 자기곁을 지켜준 사람, 법정대리인이지만 늘 엄마가 되고 싶어했던 사람, 눈을 멀게 방치하고 치료를 받을 수 없게 했지만, 혹독하게 점자를 가르치고 회사일을 보게 한 여자, 영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와 주는 사람,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아보이지 않으면 한 밤중에 조용히 이마를 짚어보고 한참을 한 숨만 쉬고 나가는 왕비서는 영이 죽도록 증오해 왔으면서도 의지해 온 사람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녀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는 영을 보는내내 착잡하더군요. 왕비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고르게 하고, 왕비서님만 좋다면 괜찮다는 영이었죠. 웨딩드레스는 오빠를 위해 입고 싶었지만, 왕비서를 위해 입어주는 영이었습니다. 사진을 그렇게나 많이 찍으면서도 왕비서와는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던 영은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왕비서에게 보여주죠. 사진도 함께 찍고 말이죠.  

해줄게 이것 밖에 없다는 영, 수술을 하고 눈이 보이게 되면 왕비서가 더는 필요하지 않을테니 갈 데를 알아보라는 말에 왕비서는 영의 손을 빼며 쓸쓸함을 거두지 못하지만, 전 영이 왕비서를 내보낸다기 보다는 수술 가망성이 없을 것을 대비한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오수의 정체와 왕비서의 악행, 서로 침묵하고 있었던 비밀을 알아버린 두 사람이 함께 지내기 또한 쉽지 않겠죠. 어쩌면 영이 할 수 있는 왕비서에 대한 복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녹화테입에 남겨둔 눈치료를 해주지 않은 왕비서의 비밀이기도 하죠. "끝이 아냐. 복수할 거야, 나한테는 오빠가 있어".

왕비서의 손을 잡아주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선물은 영의 진심이었습니다. 영이 곁에 있어준 고마움... 그리고 동시에 갈 곳을 알아보라는 말로 왕비서에게는 가장 잔인한 형벌을 동시에 내린 영이었습니다. 영이가 그녀의 삶의 이유였는데 그것을 빼앗아 버렸으니 말이죠. 

진즉에 왕비서를 영에게서 해방시켜  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필요로 하고, 그게 자신을 더 외롭고 힘들게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영입니다. 결국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는 영, 영의 문제는 홀로 일어설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성장시켜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비서에게서 자립하지 않으면 결혼을 해도 평생 왕비서의 도움을 구할 영일테니까요.

이는 앞이 보이는 문제와는 별개의 정신적 독립의 의미가 큽니다. 영이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의지했기에 서로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왕비서의 해방은 왕비서 역시도 영에게서 벗어나 그녀의 인생을 살라는 말(용서)임과 동시에, 영이 방식의 복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왕비서에게 고마움과 미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영이듯이 말이죠.

 

영이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과 이별하는 방식은 증오를 토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오수에게도 같았죠. 헉헉 거리며 영을 업고 별장을 오르는 오수, 그것은 오수의 행복이기도 했을테니까요. 자기를 속인 것에 대한 분풀이처럼 춥다고 장작을 패게 하고, 배고프다고 세시간이 넘게 산을 내려갔다 오게 하면서 그래도 힘듦을 내색하지 않은 그는, 영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게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을테니까요.  

오수도 오영도 서로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더는 오영을 속이지 않으려는 오수를 고문하듯이 별장에서의 추억을 자꾸 되묻죠.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면서도 말이죠.

 

별장의 추억, 아빠가 장작을 패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엄마를 위해 차를 준비한 일 따위는 없었다고 마지막 가족여행이 돼버린 그날을 말해주는 오영, 오수와 별장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던 것은 그녀의 외로움과 상처, 비극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지만, 오빠 오수가 아닌 오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밀의 방 녹화테입에도 없는 오영의 이야기였으니까 말이죠. 

여행을 간 별장은 마지막 가족여행이며 영이의 비극이 시작된 곳이었지요. 아빠는 장작을 패고, 오빠와 영이는 장작을 모으고, 엄마는 세사람을 보며 미소를 짓고, 비탈길에서 오빠랑 눈썰매도 타고, 어린 영이와 수가 상상했던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먹고 엄마와 다정하게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며 피곤에 지쳐 졸린 눈을 비벼대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 잠드는 오빠와 영, 영이 마음으로 그렸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밤새 엄마와 아빠는 싸웠고, 영과 수는 방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게 마지막 그들의 가족여행이었죠. 이별여행이 돼버린... 그 날 우는 영이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와 오빠는 21년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별장에서의 가족이야기는 오빠가 아닌 오수에게 털어놓은 그녀의 상처였습니다. "그날은 오늘처럼, 아니 요 며칠처럼 아주 끔찍한 날이었을 뿐이야". 

영이는 오수에 대해 물어보죠. 난 이렇게 사실을 말했는데, '너도 이제 너에 대해 털어놔봐', "나무 밑에 버려진 오수는 꿈이 뭐였어? 처음부터 사기꾼이었나? 나무밑에 버려졌을 때부터 죄없는 사람들마저 적으로 삼을 만큼 걔는 태생부터 그냥 쓰레기인거야? 사기꾼 오수 어릴때 꿈이 뭐였어?".

오수도 영이 자신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압니다. 오기전부터 영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오수였지요. "목수, 농부, 어부, 엔지니어... 사기꾼 겜블러가 아닌 모든 것... 처음부터는 아니고 널 만나고부터...".

"내가 내가 널 용서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중에 제일 용서할 수 없는 건, 엄마만큼 그리웠던 오빠의 죽음을 알고도 너에 대한 분노때문에 슬퍼할 수도 없다는 거야, 사기꾼인 널 사랑한 건, 앞 못보는 내 잘못이라고 치자.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니가 밉지만, 앞 못보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 잘 속았어... 그동안...". 

오빠 오수라고 왜 속였는지, 정말 78억을 빼내가려고 했었는지, 아무 변명도 이해도 구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면서 78억 대신 목숨을 내놓기로 했고, 처음으로 무철에게 무릎을 꿇고 수술받게 도와달라고 애원했다는 것도, 수술만 끝나면 빈손으로 나가려고 했다는 것도, 영이에게 추억을 찾아준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고, 행복해 하는 영이 너의 웃음이면 됐었다고, 얼마나 영이가 예쁘고 맑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고, 그것이 전부였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오수였습니다.  

오영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라고 거친 키스로 보여줬을 뿐입니다. "널 사랑하니까" 오수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습니다. 왜 입을 맞췄느냐고 오영이 물었었죠.

거세게 반항하던 영도 결국 오수의 입술을 받아들이죠. 영도 오수를 사랑하니까요. 오수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그런 그를 사랑하는 영이니까요.

 

"이젠 우리 진짜 끝난 거지?...".

이젠 더 이상 오빠 동생일 수 없는 두 사람,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영이 수술을 받을 때까지 오빠로서 최선을 다해 오영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막으려고 했고,  자신의 정체를 떠난 후에 알기를 바랐는데 사랑도 막지 못했고, 오빠노릇도 못하게 된 오수입니다. 

 

"이제 우리 진짜 끝난 거지?...". 

21년만에 처음으로 웃게 해 준 오빠, 살고 싶게 만든 오빠, 그리고 가슴이 뛰고 설레는 사랑을 알게 한 남자와 그곳에서 이별합니다. 그녀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역시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비극이 시작된 별장에서.... 그녀에게 그렇게 아프고 추운 겨울이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오영에게도 봄의 희망이 보일 듯해서 전 꿋꿋하게 해피엔딩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의 실패에도 조박사가 뭔가 희망적인 것을 찾았다는 말에 두 귀 쫑긋입니다^^

더불어 지난 글 오수의 목에 있는 상처가 해피엔딩의 복선이라는 생각 역시 여전히 가지고 있고요. 수술 후 눈을 뜬 영이 오수를 알아볼 결정적인 증거가 오수 목의 상처가 되리라는....

오영과 오수의 겨울이 이제 그만 끝났으면 좋겠군요. 늘 겨울이었던 영, 늘 마음이 시리고 추웠던 영에게 봄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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