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13 14:28




'영혼이 없는  의사', '환자를 살리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수술방의 로봇', 차윤서(문채원)와 김도한(주상욱)의 눈에 비친 박시온(주원)이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확신이나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두 사람의 말이 와닿지 않는다. 환자를 살려야 겠다는 마음보다 무엇이 더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김도한과 차윤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박시온과 비교하면 기성세대의 느낌이다. 그들은 병원 이미지, 각 과와의 마찰, 수술 실패의 부담, 인간관계 등을 복잡하게 계산하고, 그에 맞는 판단과 선택을 하는 것이 의사라고 말한다. 

성공확률과 의사로서의 확신에 근거해서 치료를 결정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성공률이 낮은데도 수술을 강행했을때,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와 환자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할 수도 있는 육체적 고통, 그런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뭔가 불편하다. 의사와 환자의 기본적 관계에 다른 이해관계들이 더 우선시 되어 있다. 주객전도이다. 이 계산을 못하는 박시온이 그들에게는 사회성 결여, 혹은 뭘 몰라 날뛰는 똥오줌 못가리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김도한과 차윤서의 눈에계산을 못하는 박시온은 미성숙 의사로만 보일 뿐이다.

 

극중 강현태(곽도원)가 누군가에게 흥미로운 루키가 한명있다는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루키는 신인선수를 말하는데, 야구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를 꿈꿨던 한 고등학교 선생이 학생들에 의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꿈을 이루게 한...

강현태는 김도한의 자료를 보면서 왜 루키라고 말했을까... 강현태가 말한 루키는 박시온으로 짐작된다. 내게는 루키는 한 명이 아니라 두명같아 보였지만 말이다. 박시온과 김도한을 보니 영화 루키와 비슷하다.  

김도한... 실력이 뛰어난 의사이지만 그는 병원시스템에, 병원내 권력암투에 몸을 사리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태가 추진하고 있는 모종의 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루키가 김도한이다. 영화 루키에서의 주인공처럼 부상을 입고 메이저리그 꿈을 접은 것과 비슷하다. 타과 과장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소아외과의 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도 그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의사로서의 신념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이고 조직이고 룰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 룰을 전혀 모르는 신입 선수가 밑으로 들어왔다. 환자를 살려야 하는 것이 의사아니냐고 묻는 순수의 루키... 박시온을 통해 김도한은 진짜 메이저 리그의 주전선수(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속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다른 루키가 있다. 국시에서도 합격이 유보된 박시온이다. 그가 메스를 잡을 수 있을까, 김도한은 박시온을 언젠가는 어시스턴트로 지명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집도의로 믿고 수술을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결말부분에 이르러서의 일이겠지만 말이다.

박시온을 통해 그들은 변해간다. "아기 손 보셨습니까? 그건 살고 싶다는 표시입니다. 너무너무 살고 싶다는 표시입니다. 아기는 말은 못하지만, 너무 어리고 아프고 무서워서 말은 못하지만 살고 싶어합니다. 엄마 보고 싶어 합니다".

박시온의 말에 차윤서는 NICU(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생명줄에 의지해 숨쉬고 있는 어린 생명의 마음을 듣게 된다. 아마 박시온이 들었던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그 작은 손이 꼼지락거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생명줄을 놓지 않은 아이의 숨소리는, '살고 싶다'는 말못하는 어린 생명의 호소였다. 

 

김도한은 간담췌외과로 찾아가 미숙아의 차트를 직접 확인한다. 그리고 보았다. 아무런 처치없이 그저 생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방치'라는 그들의 태만을...

간담췌외과에서 내린 판정은 '미숙아가 살 가망성은 없다'였다. 생명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 영양공급으로 최대한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 물론 잘못된 처방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타과로 트랜스퍼하지 않으려는 전문의의 오만과 이기심은 질타받아 마땅하다. 약으로 안되면 수술로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어야 하지만, 타과로의 트랜스퍼는 곧 자신들의 실력에 스크래치를 입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은, 이해는 되면서도 용납은 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으로만 보일 뿐이다. 심하게 말하면 장삿속이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기본을 망각하고 있다.

타과가 되었든 다른 병원이 되었든, 환자의 생명이 먼저여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박시온은 그래서 옳았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목적인 의사,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이보다 더 무엇이 더 우선이어야 한단 말인가...  

박시온이 간담췌외과 과장의 동의없이 임의로 소아외과로 미숙아를 트랜스퍼한 일은 김도한에게도 의사의 소명을 되새기게 한다. 피상적으로는 자존심의 상처라고 비춰졌지만, 김도한에게도 환자는 반드시, 꼭 살리고 싶은 사람이다. 

20%의 가능성에도 메스를 든 것이 자존심때문은 아니었으리라,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구나 아니다. 어린 미숙아를 살리고 싶어하는 박시온과 같은 마음이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김도한은 미숙아를 수술하겠다고 선언했다. 20%의 수술 성공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의 희망이 있다. 100%의 절망이 아닌...

미숙아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아니 유일한 방법이기에, 의사로서 그는 과감히 메스를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타과의 환자를 임의로 트랜스퍼한 책임과 수술이 잘못되었을 경우 도의적인 책임까지 지겠다는 김도한에게서 그의 본모습이 나온다. 의대에 진학하고, 굳이 출세와 앞길 탄탄하게 보장된 과들을 마다하고 소위 돈안되는(책임만 막중한) 소아외과를 지원, 그곳에 남기를 고집하는 김도한의 비밀과도 연관이 있을터... 

미숙아 신생아를 수술하겠다고 결정한 김도한에게 고맙다는 박시온에게 말한다. "넌 환자와 가족들에게 못할 짓 했어. 아무 대안없는 희망을 줬고, 그 희망이 더 큰 절망을 만들었어. 의사는 종교인이 아니야, 절대 막연한 희망과 가능성을 줘서는 안돼! 그런 이유때문에 넌 최악의 의사라는 내 생각에 난 변함이 없어. 그래서 널 내 손으로 내보내지 않을 거야. 레지던트, 펠로우 다 거쳐서 진짜 의사가 되라. 그리고 그 때 네가 책임져야 될 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하고 있는지 직접 깨달아라. 만약 그 때 깨닫는다면 당장 옷벗어, 미련두지 말고...". 

김도한의 말은 드라마지만 잔인했고, 환자나 가족들이 들으면 거품물을 대사다. 살고 싶은 욕구,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단 1%의 희망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환자나 가족들의 마음에 모래를 끼얹는 말이다.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포기의 반대말일 것이다. 꿈은 꿈꾸는 자에게만 이뤄진다고 한다. 애초에 희망을 품지 않은 사람에게 꿈이란 없다.

 

대안없는 희망이 정말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게 절망만을 안겨주는 것일까... 1%의 희망이 있는 상황과 100%의 절망만이 있는 상황, 어느쪽이 환자나 환자가족을 덜 힘들게 할까...  물론 수술만이 능사는 아니다. 수술 성공가능성, 경제적 비용, 환자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할 수도 있는 육체적 고통 등 제반문제들을 고려한 판단이어야 한다는 김도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희망과 가능성을 줘서는 안된다는 부분은 동의하기 힘들다.    

요즘 우리 병원 시스템을 보자. 응급환자가 와서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데도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혹은 병원비를 먼저 계산하지 않으면 치료를 거부하는 병원이 한 둘이 아니다.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롭고 싶은 의사들, 혹은 병원 운영을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수술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보호자의 동의가 있었기에 책임은 없다는 것을 명시하고, 확약을 받은 후에라야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지켜진다.

박시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보다는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따지는 의료계의 문제를 박시온의 순수한 마음을 통해 일갈한다.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환자를 살리고 싶어 의사가 되려했던 초심, 왜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가를 돌아봐야 한다고 이 드라마는 꼬집어 말한다.  

하긴 요즘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유가 의사를 지원하는 큰 이유와 동기가 된 시대이긴 하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응급, 촌각을 다투는 외과 영역으로 축소시켰으리라. 그리고 다시 소아외과로 더 축소해 의사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린 생명이 그들에게 달려있기에 더 절박하고 간절해진다. 메스 하나에, 선택한 약품 하나에 아이들의 꿈이, 생사가 오간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기도 한다.

 

여기 20%의 희망에 메스를 든 의사가 있다. 그에게 메스를 들게 한 것은 고충만(조희봉)이 우일규를 이용해 "고칠 자신이 없어서 환자를 되돌려 보냈다더라"며, 김도한의 자존심을 긁어놓은 것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박시온의 영향이 크다. '의사가 잘고치면 아이들은 금방 일어납니다'.

 

또한 그의 스승 최우석의 '의사니까'라는 말은 그의 나침반이 된다.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길을 제시해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의사니까... 의사로서의 멘탈, 차윤서에게 박시온의 문제라고 지적했던 부분, 어쩌면 의사정신, 의사로서의 멘탈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김도한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성보다는 불가능에, 성공률보다는 실패율에, 절망부터 염두하고 확실한 판단과 확신을 더 우선했던...

 

김도한은 직간접적으로 박시온이 벌인 일로 인해 높은 절망보다는 낮은 희망을 택했다. 희망은 약속이 아니다. 결과 또한 아니다. 가능성이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가능성은 절망적이라는 말보다 더 기대고 싶은 말이 된다. 의사가 보여주는 20%의 희망은 가족과 환자들에게는 80%의 희망과 맞먹는 말이 되기도 한다.

막연한 희망과 가능성을 줘서는 안된다고 했던 김도한, 미숙아 신생아가 위험하다는 말에 상벌위원회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다. 꺼져가는 촛불과도 같은 아이의 상태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아기를 살려야 한다, 아니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가 아니라 2%로였대도 김도한은 메스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박시온과 다르지 않다. 누구보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김도한이다.  

 

김도한은 유능한 의사는 물론 굿 닥터가 되어간다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커져간다. 희망은 의지로, 의지는 열정으로, 열정은 어린 생명에게 꿈을 주는 일로 귀결된다. 보람이다. 기쁨이다. 박시온이 소아외과 의사가 되려는 이유, "어른이 되게 해주고 싶습니다"는 박시온의 의사정신이다. 김도한이 아직 보지 못한...   

신의 손이 아닌 이상 어떤 케이스는 실패할 수도 있다. 희망이 절망이 될 수도 있으며, 부질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아서는 안된다. 절망은 포기의 또다른 이름이다. '막연한 희망과 가능성을 줘서는 안돼!', 그랬던 김도한은 자신도 모르게 변해 간다. '희망과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안돼, 난, 우린, 의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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