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08 07:29




선덕여왕 57회는 크게 백제와의 전투, 그리고 여왕 덕만이 비담에게 사랑을 고백했다는 것이 큰 줄거리에요. 덕만이 비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실 좀 당황스럽고 엉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거 회상신도 너무 많이 나왔고, 물론 극중 필요한 장면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여왕 덕만이 "네가 있어야 겠다"며 비담에게 살포시 안기는 장면은 다소 뜬금없더군요. 갑자기 선덕여왕 종영을 두고 멜로사극으로 전환을 했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여왕 덕만이 왕이라는 자리를 떠나 그녀도 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고, 그녀 또한 한 남자를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적인 고백같아 가슴은 찡하더군요. 예전 비담이 여왕 덕만에게 고백했을 때처럼요. 비담의 사랑 고백은 "난, 군주의 길이란 홀로 가는 외로운 길이야. 그러니 너의 연모를 받아줄 수 없어. 내 사랑은 오직 신국뿐이야" 라며 야멸차게 거절당해 버렸지만 말이지요.
그랬던 여왕 덕만이 갑자기 왜? 뜬금없이? 그것도 서라벌이 함락 당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뒷북을 치고 나오는지 참으로 엉뚱한 여왕이시네요. 받아줄 거면 진즉에 받아줄 것이지 비담에게 상처는 다 주고 분노 비담으로 변하게 하고는, 이제와서 고운 눈물까지 흘려가며, 좋다고 매달리는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더구나 과거 한때 연모했던 유신은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 싸우고 있는데, 폐하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다며 피신하라는 비담의 말에 뭐 그리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정리가 되지 않아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생각을 해봤어요. 제작진이 덕만과 비담의 감정신을 넣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비담의 난을 더 극적으로 설정하기 위해서? 그것은 아닐 거에요. 극적인 요소야 이미 너무 넘쳐나거든요. 그렇다면 독수공방 외로운 여왕 덕만을 위한 배려일까? 그것도 아닐 거에요. 희대의 요부 미실에게도 딱 한번 설원공이 미실의 발을 닦아주는 장면만으로 야리꾸리한 애정신은 할애하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이유는 한가지겠지요. 선덕여왕 드라마가 건 모토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라는 대의를 위해 여왕 덕만이 끝까지 사람을 품으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라는 답이 나오지요. 여기에는 여왕 덕만의 여인으로서의 감정뿐만 아니라 여왕으로서의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왕 덕만의 여인으로서 감정과 왕으로서의 계산적인 감정, 두가지 측면에서 여왕 덕만의 고백을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나도 사랑하고 싶은 여자거든요"
백제와의 전선에서는 신라군이 파죽지세로 패전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급기야 비담은 덕만에게 파천(피난)을 권합니다. 신료들 사이에서는 파천을 두고 찬반양론으로 의견이 분분하지요. 고민에 빠진 덕만은 결코 서라벌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대신 춘추에게 이궁하라고 하며 만일 서라벌이 공격받으면 춘추에게 군을 지휘하라는 명을 내렸지요. 그런데 이궁하지 않겠다는 덕만의 명을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비담이에요.
비담은 덕만에게 자신의 어머니 미실을 죽음으로 몰아 넣으면서 까지 오직 덕만을 지키고자 했는데 왜 진심을 몰라주느냐고 눈물을 보이고는 나가버리지요. 
비담이 나가고 덕만은 비담과의 추억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비담에게 가서 왜 연모를 받아줄 수 없는지 말합니다. 왕이 된 순간 여자가 아니었고, 이름을 잃었다고요. 오직 자신은 폐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고요. 비담이 이름을 불러 주겠다는데 이름을 부르는 순간 반역이 된다고 일축해 버리지요. 비담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비담이 또 다른 미실이 되지 않을까 항상 의심하고 가늠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지요. 자신도 비담을 믿고 싶고 기대고 싶다고요.  

비담은 미실의 사당을 찾고 그런 비담을 뒤쫒아 온 덕만은 드디어 비담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덕만은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누르려 했다네요. 모두가 그런 사랑따위 감정은 왕의 것이 아니라 했다면서요. 그런데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거든요? 국혼하라고 주위에서 많이들 말했지만, 결혼 안하겠다고 버틴 것은 덕만이었거든요. 물론 정략에 의한 혼인을 거부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누구도 독수공방하라고 시킨 사람없었는데....참..
여하튼 덕만이 "오직 자신을 여인으로 바라보고 좋아해 주는 네가 좋다"며 고백하자 비담이 살포시 안아주었어요. 덕만도 비담을 뿌리치지 않고 비담을 안았어요.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두 사람 감정을 확인한 장소가 미실의 사당이었는데, 원수지간이었던 미실과 황실의 오랜 반목을 끝내고 화해했다고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그것도 좀 아리송하네요. 그런데 두 사람 합방은 치뤘을까요? 거의 합방할 기세였는데 말이에요. ㅎ

 
쓸모있는 인재, 비담을 버리기에는 아깝다. 이용할 만큼 이용하자.
다음은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덕만의 술책이라는 측면에서 분석을 해 보겠습니다.
비담은 미실파의 잔존세력을 끌어안은 신라 제 2의 실세입니다. 비록 미실의 죽음과 함께 미실파가 과거의 영화에 비하면 오합지졸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설원공과 세종 휘하에 있던 세력, 세종, 하종, 미생공, 보종 그리고 대귀족들의 기반을 가지고 있지요. 이런 대귀족들의 기반을 덕만이 품지 못하면 덕만은 늘 제 2의 미실을 경계해야 겠지요. 그런데 미실이 남겨준 세력의 수장이 바로 비담이라는 인물이에요. 더구나 사량부령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그 세는 더 커졌을 것이고요. 그러니 덕만은 비담을 함부로 내칠 수 없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덕만이 비담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염종과 결탁하여 얻은 비담의 정보력일 것입니다. 유신을 진정 자기 사람으로 얻는 과정에서 비담을 질투비담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비담 개인과 비담이 가진 세력은 정치적으로 별개의 문제이지요. 비담을 품지 못하면 비담의 지지기반을 결코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 수 없음을 덕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들은 제 2의 미실이 될 제 1순위 후보들이거든요. 
물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독하고 힘든 처지를 호소한 것은 거짓 연기는 아니었을 거에요. 여인이고 싶은 감정도 물론 있었겠지요. 덕만도 사람인데 그런 감정이 없다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겠지요. 하지만 여인이기에 앞서 덕만은 자신의 이름이 '폐하'임을 결코 망각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삼한일통의 대업과 부강한 신국에 대한 희망 역시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할 것이고요.
결국 신국을 위해 취할 가장 현명한 선택은 비담을 품는 것이었겠지요. 보종의 말처럼 일전쌍조, 즉 화살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듯이 생전에는 결코 자신의 뒷통수를 칠수 없도록 남정네 비담을 사랑으로 잡고, 비담의 정치적 기반마저 가지겠다는... 왕의 자리란 이렇게 복잡하고 계산적인 자리 아닐까요? 이런 계산을 한 덕만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영리한 인물이겠고요.

엉뚱하고 뜬금없었던 덕만과 비담의 감정신은 비담의 난을 조금 더 지연시키려는 제작진의 의도 같아 보이기도 해요. 적어도 선덕여왕 치세에는 비담이 난을 일으켜서는 안되거든요. 또한 비담이 상대등의 지위까지 오른 인물이었다는 것은 선덕여왕 치세 기간에는 속마음이야 어떻든 여왕에 충성했던 고위 신하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이런 생뚱맞은 감정신으로 덕만이 당분간은 비담을 품는 것으로 가닥을 잡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백제의 침공으로 신국이 누란지경에 빠져있는데, 신국을 그렇게 사랑하는 덕만이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할 때, 갑자기 감정놀음을 하고 있으니 그게 너무 엉뚱해 보이네요. 비담에게 신국보다도 덕만이 소중하고, 덕만도 그런 비담의 진심을 보고 한 순간이라도 여자로 돌아가게 한 것임을 모르지는 않지만요.  
비담은 다시 미실의 사당으로 가서 아낌없이 빼앗으라던 미실의 말대로 하지 않겠다며, 야욕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죽은 미실에게 고백합니다. 왕으로의 길도, 천년의 이름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 앞에 너무 하찮은 것이라면서요. 결국 설원공이 그러했듯 2인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은데, 드라마의 방향상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비담의 난이 역사적으로 선덕여왕의 죽음 몇 일 앞서 있었던 것과 연관지어 본다면, 적어도 선덕여왕 치세에서는 반란을 기도하지는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될 수 있으니까요. 예고편에서 비담을 척살하라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아마 이것은 백제와의 전쟁을 치루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내려진 명일 것입니다. 덕만이 죽을 날을 받아 두고, 다음 후계자를 지목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이라 한다면, 비담의 난을 아주 엉터리로 그리지는 않을 듯 싶네요. 이 과정에서 춘추와 비담이 대립하는 것으로 흐름이 이어지면 더 자연스럽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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