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6 08:15




미실과 진지왕 사이에서 사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던 생물학적인 탄생부터가 비담의 운명은 저주 받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선덕여왕 60회를 시청하고 지금까지 머리에 남는 장면은 다크비담으로 변해버리는 비담의 분노에 찬 슬픈 눈빛이었어요. 마치 이 모든 것을 제 탓이라고 하는 듯 쏘아보는 강렬한 눈빛에 한동안 멍해지고, 비담의 그 강렬한 눈빛을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보기 힘들어서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인간들의 삶을 담아 낸 역사라는 수레바퀴가 한 사람에 의해서도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구나, 믿음과 배신이 손바닥 뒤집듯이 간단하게, 종이 한장 차이밖에 되지 않는 가벼운 것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드라마 속이지만 독사같은 인간의 마음에 환멸감도 느끼게 하네요. 염종이 너무 미웠어요ㅠㅠ.
결국 비담은 자의든 타의든 그 누구의 품속에도 안기지 못한채 "정으로 움직이는 자에게 역사는 아무 자리를 남기지 않는다"는 춘추의 말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에 비운의 주인공으로 사라져 가려나 봅니다.
배 한척에 실려 온 서찰 한 통으로 쑥대밭이 돼 버린 황실과 조정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합니다. 굴아화현으로 직접 나간 춘추는 배를 제조한 선박기술자를 찾다가, 염종의 수하들에게 화살을 맞고 사태는 더욱 악화되기에 이릅니다. 황실의 후손이면서 대를 이을 후사가 없는 덕만의 다음 보위에 오를 제 1인자가 화살을 맞았으니 시해사건으로 번지게 되었지요. 춘추공의 시해음모 사건 배후로 미실 잔당 귀족들이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염종을 비롯한 미실파 귀족들은 대책마련에 부심합니다. 덕만도 사태가 이쯤되니 더이상 방치할 수 없어 칼을 빼들었고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된 미실파 귀족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요. 죽여주십사고 몸을 숙이거나, 죽기를 작정하고 정변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결국은 죽음을 각오 한 정변, 명분없는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습니다. 비담을 내세워서요. 오로지 진지제와 미실의 아들이라는 명분 하나로 비담을 내세운 반란을 계획하는데, 이것은 무슨 또 개 풀뜯어 먹는 소리인지... 비담을 우두머리로 세우려는 명분이라는 자체가 하도 한심스러워서 말이에요. 차라리 여왕이 치세해서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혹은 사병까지 빼앗기고 힘을 잃은 것에 비분강개한다 라는 명분이 더 설득력있어 보이는데, 여하튼 궁지에 몰리니 풀이라도 뜯어 먹고 싶나 봅니다. 간사한 염종은 이 상황을 정변으로 끌고 가려고 치밀한 음모를 꾸미고, 비담을 끌여들이기 위해 비담과 덕만의 신의를 이용합니다.
중간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인물이 사랑에 빠진 덕만과 비담이에요. 비담이 사태를 처리하려 하지만, 미실 잔당 귀족들을 장악하지 못해 권력에 누수가 생기고, 덕만에게는 비담파를 제거해야 한다는 중론이 들끓지요. 특히 춘추의 반발이 거셉니다.
비담을 찾아 간 춘추는 의도적으로 비담을 자극합니다. 춘추는 비담이 움직여야 비담의 배후세력. 즉 미실 잔당을 쳐낼 수 있음을 알고 있지요. 춘추가 비담을 찾아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서 어머니 천명공주를 죽인 대남보가 왜 안보이는지 아느냐고 능글스럽게 말하던 춘추가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어요. 춘추가 비담에게 말하였지요. "너 예전에는 정말 무서웠어. 왜? 너라는 놈을 가늠하기가 힘들어서...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자기 세력을 주체못해 쩔쩔매고, 연모에 눈이 멀어서 앞일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니가 다 보여. 그래서 무섭지 않아..." 그리고 비담을 뒤흔드는 말을 던집니다. "폐하가 정말로 너와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고요. 춘추를 만난 비담은 흔들리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덕만이 비담을 은밀히 불러 또다시 비담을 약하디 약한 남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덕만은 서찰사건이 처리될때 까지 비담에게 추화군(밀양)으로 떠나 있을 것을 명합니다. 서라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처리하면 불러 주겠다면서요. 그리고 비담의 손에 쌍가락지 하나를 빼서 비담에게 주었어요. 쌍가락지는 일종의 한쌍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예물이에요. 덕만의 한 짝이 비담이라는 어떤 신표보다 강한 사랑을 보여준 덕만의 정표였어요.
"날 믿느냐?"고 재차 묻는 덕만에게 비담은 춘추가 했던 말에 한 순간이라도 의심했던 상념을 떨궈내려듯 머리를 가로 저으며 믿는다고 대답하지요. 손을 빼내려는 덕만의 손을 다시 잡은 비담과 덕만은 한동안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를 응시하며 슬픈 웃음을 주고 받지요. 그리고 덕만이 다시 손을 빼자 비담에게 예전 문노가 자신의 손을 뿌리쳤던 기억이 오버랩됩니다. 썰물처럼 허전해져 버리던 그 기억, 버림받는 듯한 그 느낌, 내쳐지는 그 느낌을 기억해 내고 불안해 합니다.
"폐하가 정말로 너와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춘추의 말은 비담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비담을 불안과 의심에 떨게 합니다. 추화군으로 떠나기 전 비담은 이 모든 일을 꾸민 염종을 처리하고 떠나려고 하였지요. 처음 드라마 선덕여왕에 비담이라는 인물이 나왔을 때, 시청자를 한순간에 매료시킨 인상깊었던 멋진 비담으로 돌아왔는데, 눈빛이며 무술 장면은 한마디로 넋이 나갈 정도로 매력적이었어요.
염종의 수하들을 추풍낙엽처럼 인정사정없이 핏줄기 낭자하게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염종 목만 쳐버리면 되는 순간이었는데, 어디선가 독침이 날아들었지요. 독침을 피한 비담이 독침날린 자를 공격하고 두건을 벗기는데, 뭐할려고 두건은 벗겼는지, 그 심리를 이해 못하겠더라고요. 그냥 죽여버리지... 여하튼 벗긴 두건은 덕만의 처소를 호위하던 시위부 무사였고, 비담은 정신분열 일보직전까지 가버립니다.
염종의 간자였음을 눈치채지 못한 비담이 "누가 시켰느냐"고 묻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신국의 적을 척살하라. 여왕폐하 만세!" 하는데 무슨 대사가 그리 유치스럽던지요. 여왕폐하 만세는 또 뭐랍니까? 
아무튼 이 한마디에 비담은 무너져 버립니다. 비담에게 조여 오던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 배신감, 그렇게 비담의 하늘 비담의 푸른 꿈은 무너져 버렸고, 세상이 비담을 버렸듯이 비담도 세상을 버리려 합니다. 무너져 버린 하늘을 향한 비담의 비명의 외마디 비명은 "왜 나를.... 왜요? 왜요? 폐하, 절 믿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요?" 라고 내지르는 처절한 절망을 담은 절규처럼 들렸어요. 이렇게 세상은 비담을 버리고, 비담도 세상을 버리려 다크비담이 돼버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비담의 하늘이 무너져 내리둣 제 가슴도 무엇인가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폭풍간지남 비담으로 돌아온 김남길은 꺄악!! 너무 멋졌어요.
굴아화현에 당도한 배 한척에 실려 온 서찰 한통, 부처 이름을 뜻하는 자가 신국의 황제가 된다는 황당한 서찰 한 통때문에 비담이라는 이름은 반역의 의미가 돼버리고, 비담의 운명을 끝내 비극으로 치닫게 했네요. 황후가 되겠다는 꿈으로 태어난 비담은 출생부터가 반역의 상징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이름마저도 타의에 의해 반역이 돼 버렸어요. 문노가 지어 준 이름이겠지만, 문노가 이 사실을 알면 지하에서 지금이라도 뛰쳐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담의 삶은 자의적으로 살아 온 부분이 거의 없었네요. 출생부터 이름까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반란의 수장으로 내몰리게 된 지금의 상황까지, 비담에게 있어 자의에 의한 선택은 없어 보입니다. 오직 하나 비담이 선택한 것이 사랑, 덕만에 대한 연모 하나였는데 그것마저 허락할 수 없다합니다. 신국의 대업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설사 천의라 할지라도 비담에게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저주받은 역마살이 끼어 있었나 봅니다.  
비담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미실의 유언이 비담에게 저주가 돼 버릴 것을요. 미실이 죽어가면서 말했지요. "여리디 여린 인간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 꿈을 꾸는구나" 
누구보다 강하게 보였던 비담, 그러나 비담은 너무도 여리고 약한 남자였나 봅니다. 덕만이 순진한 어린아이같다고 했던 것처럼 너무 순수해서 , 아니 너무 여려서 불쌍한 비담입니다. 미실은 비담의 오늘을 내다봤는지도 모르겠어요. 덕만을 버리지 못하면 꿈을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요. 또한 덕만에 대한 연모, 그 여린 마음이 비담을 파멸하게 될 것도요. 미실은 스스로의 의지로 파멸을 택했지만, 비담은 파멸마저도 스스로 택하지 못했던 가혹한 운명을 가진 여린 인간이었나 봐요. 미실이 말했던 것처럼요.
덕만이 자꾸 심통을 호소하는 걸로 보아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데, 이승에서 사랑이 허락되지 않았던 덕만과 비담의 사랑이 저승에서는 허락되었으면 좋겠어요. 꿈도, 대의도, 음모도, 정치도 없는 그런 푸른 나라, 덕만이 준 쌍가락지 한짝에 담긴 그 마음이 허락되는 세상에서 말이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5 Comment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