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6 10:10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는 이래 저래 머리 아픈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과거의 못 이룬 지독한 사랑을 너덜더널한 수레에 끌고 와서 현재라는 시점에다 사각관계, 음모, 오해, 죽음 등의 코드를 적절히 섞어 놓은 작품이다. 제목과는 달리 무겁고 우울한 드라마이다. 이게 이경희 작가의 스타일이지만 전작들보다 훨씬 독해졌다. 드라마는 30년전의 한준수와 차춘희의 사랑, 8년전의 차강진과 한지완의 사랑을 미련과 집착의 코드를 이용해 어느 한 귀퉁에서 화해와 사랑으로 완성, 혹은 미완성을 시도하는 지독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매개체가 되는 극중 주요 아이템은 차강진의 펜던트가 의미하는 시계, 즉 멈춰버린 시간에 있다.
비극의 시작, 펜던트
한지완이 차강진과 산청을 떠나게 만든 것은 강진의 펜던트 때문이었다. 오빠 지용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산청을 떠나야 했던 지완은, 8년 만에 강진을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 하지만,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8년 동안 겪었던 죄책감보다 더 지독한 열병을 앓게 된다. 지완의 상처를 알게 된 강진은 지완을 보내는 방법으로 나쁜 남자가 되는 방법을 택했다. 지완이 보는 앞에서 이우정에게 키스를 하는 방법으로...
지완은 오빠 지용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용서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혹사시키는 삶을 택했다. 그래서 지완이 지용의 사진을 보며 울며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가슴이 아프다. "8년간 미안해 했으면 됐잖아, 그만큼 미안해 했으면 됐잖아, 오빠, 이젠 그만 좀 봐줘"  지완도 스스로 용서를 받고 싶어한다. 펜던트의 멈춘 시계처럼 8년전에 멈춰 버린 그녀의 인생이 이제는 다시 움직여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지완과 강진의 시계는 엇갈리고 만다. 지완이 8년의 상처보다 더 아프고 힘겹게 움직이려 하지만, 이제는 강진이 과거의 한 지점에서 멈추고자 한다.  
지완이 아무말없이 떠나버린 이유가 자신의 펜던트를 찾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던 지용의 죽음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강진은 지완을 보내기로 한다. 자책감의 멍에를 함께 안고 가겠다는, 자신을 보며 지완이 느낄 죄책감과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뜻이리라. 작가는 여전히 지완이 용서받지 못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강진에게는 자책감이라는 굴레를 씌운다. 왜? 그들의 사랑이 더 지독하게 가슴 아파야 하니까.  
강진, 지완의 엇갈린 시계바늘
한지완의 시계는 다시 움직이려 하는데 이제는 강진의 시계가 과거 지점으로 가서 멈춰 버렸다. 지완의 오빠를 만난 시점, "우리 지완이 매일매일 행복하게 해주고, 웃게 해줄 자신있어?" 라고 물었던 지점으로 거꾸로 돌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자신을 볼 때마다 오빠 지용을 죽인 죄책감을 떠올려야 하는 지완을 강진은 웃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죄책감을 털어내지 못하고 꾸역꾸역 억지로 음식을 밀어 넣는 지완을 보기가 너무 아파서 차라리 강진 자신이 아프고 싶어한다. 지완을 밀어내는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가 점점 더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렇듯 극단적으로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고야 마는 파괴력을 가진 설정들때문이다. 단순하게 머리를 비우면 가볍게 앓고 넘길 수도 있을 사춘기적인 감상코드들인데도, 감칠맛 나는 대사와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는 단순히 머리를 비울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치명적으로 사랑에 중독된 사람처럼 한예슬과 고수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만들어 버린다. 

춘희와 지완의 멈춰버린 시간
그런데 극중 한지완과 차강진 보다 더 치명적 파괴력으로 시선을 끄는 것이 차춘희와 한준수의 사랑이다. 차춘희는 사춘기적 감상주의에서 나오는 집착과 병적인 사랑의 극단적인 예로, 30년전 한준수와 산청을 떠나기로 약속했던 진주 기차역 그 시점에서 정신적 성장 역시 강진의 펜던트처럼 멈춰버린 인물이다. 차춘희는 30년전 당시 한준수에게 버림받고 마음 속에 부득부득 이를 갈며 결심했으리라. "철저히 망가져서 한준수 네가 고통받게 해주겠어" 그리고 그녀는 철저하게 망가졌고, 그런 모습으로 20년만에 산청에 산호다방 차마담으로 나타났다. 바닥까지 추락해 폐인이 되어 가는 자신을 첫사랑 한준수에게 보여주는 차춘희식 복수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춘희의 시계도 멈춰있다.
차춘희의 인생은 그녀의 두 아들 이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차강진. 차부산이라는 이름은 공교롭게도 둘 다 도시 지명의 이름이다. 차춘희가 아무렇게나 뒹굴며 살아왔다는 밑바닥 삶을 보여주듯이. 차강진은 강진이라는 곳에서 어느 한 남자랑 이러쿵 저러쿵해서 생긴 아이이고, 차부산은 아마 부산 어느 곳에서 생긴 아들이리라. 혹은 강진 출신의 남자, 부산 출신의 남자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녀가 부여잡고 살고 있는 한준수(천호진)이라는 이름은 순수한 사랑을 대변하듯 고고하기까지 하다. 한준수와 대조적으로 차춘희의 사랑은 그녀의 촌스러운 화장과 옷차림만큼 싸보인다. 차춘희식 복수는 그녀가 팔았던 웃음과 몸만큼이나 싸보이고, 성장통을 앓는 소녀적 감상처럼 미성숙한 사랑이다. 이는 30년전에 차춘희의 시계가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남자를 빼앗기고, 그 남자에게서 마저 버림 받았다는 상처의 시간에서 일보전진 일보후퇴도 하지 않은 소아기적 굴절된 자아가 차춘희에게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같은 아니 어린아이 같은 투정과 두 아들에게 보여준 모성은 심히 과장되고 비현실적이다.

뻔한 스토리에도 빛나는 배우들
그럼에도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차춘희라는 싸구려 인생은 여배우 조민수에게서 새롭게 태어난다. 조민수는 춘희를 통해 그녀의 아들 차강진처럼 그녀를 보듬어 주고 싶고,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소녀의 소아병적 집착증이 공감을 얻는 것은 빨주노초파남보의 화려한 스타킹색깔 만큼이나 차춘희의 감정이 색색깔로 드러나 이해와 동정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솔직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는 전혀 새롭지 못한 소재들을 감성코드들로 적당히 버무려 놓은 뻔한 구도에 뻔한 결말이 보이는 드라마다. 박태준과 이우정의 모호한 사랑은 이우정이 손목을 그을만큼 공감받을 만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박태준이 차강진을 이기고자 벌이는 술수들은 치졸하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전혀 신선하지 않은 여느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렇고 그런 모함과 질투코드를 이곳저곳에 뿌려놓고 있다. 이경희 작가의 전작들에서 만났던 자극적이고 암울했던 감정이 크리스마스에서 구태의연하게 재탕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시청자들을 끄는 힘은 드라마 소재보다는 열연하는 배우들의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연기력때문이라는 게 1회부터 8회까지 시청하면서 느낀 것이다. 특히 무게감 있는 한준수 역 천호진의 절제된 연기와 속곳까지 드러내는 듯한 바닥인생을 보여주는 조민수의 연기는 극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중심축이 되고 있다. 거기에 설레임과 연민의 두가지 색깔을 가진 고수의 투명한 눈빛은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한준수의 뇌종양으로 죽음을 암시하면서 한준수와 차춘희의 과거에 붙들린 사랑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이끌어낼 지는 모르겠지만, 차강진이 한준수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의문들이 제기되면서 시청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그리고 불안감이 더 커지려고 한다. 강진의 생부에 대해 춘희가 함구하고 있지만, 한준수의 죽음과 관련해서 충격적인 반전이 나올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비극적 결말과 암울함을 즐기는 작가의 성격상 펜던트의 주인이 한준수였다라는 식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강진이 한준수와 차춘희 사이의 아들이라면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이복남매의 사랑이라는 막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작가가 또 다시 이복남매의 막장코드를 선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제발 그런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소재로 시청자들 가슴에 못을 박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머리에 총 맞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