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0 07:26




남자의 자격 서른여섯번째 미션, '청춘에게 고함' 일곱남자의 강연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지난 주 깊은 울림을 주었던 김국진의 롤러코스터 강연에 이어 이번 주도 멤버들의 강연은 감동적이었어요. 이번주 남자의 자격 '청춘에게 고함'의 하이라이트는 이경규의 버럭강의였습니다. 비덩 이정진의 뒤를 이어 나온 이경규는 첫마디부터 "왔다갔다 하지마"라며, 자리를 뜨는 학생들에게 버럭 화를 내는 것으로 웃음을 주며 강연장 분위기를 시종일관 웃게 만들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이경규의 강연주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화'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화를 내지 말라", "끝까지 꾹 참자" 한마디로 인(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경규하면 버럭, 즉 화내는 사람인데 그런 그가 참을 인을 말하며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강연을 시종일과 버럭버럭 화를 내가며, 화를 참는 듯이 강연을 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도 이경규가 전하는 메시지는 강하고 진정성이 있었어요.
언제부터인가 이경규는 많이 변했습니다. 방송중에 후배들이 머리 꼭대기에 놀고 있는 듯 이경규를 소재로 웃음을 줄 때도 예전의 방송계의 파쇼(나쁜 의미는 아니고요)같았던 권위는 많이 버린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이빨빠진 늙은 호랑이도 아니고 여전히 후배들에게 버럭하고 오금이 저리게 하지만, 조금은 둥글둥글해졌다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그런 모습이 삶의 연륜같기도 하고, 편해보이기도 하지만, 예전의 경규옹의 강한 카리스마를 은근히 그리워하게도 합니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듯한 이경규의 매력은 보다 유연하고 세련되게, 그리고 삶의 연륜이 느껴지듯 조금은 둥글게 화내는 모습같아요.
이경규 본인은 화를 내지 말자고 방송을 하며 화를 참았다고 하지만, 사실 이경규는 화를 참은 적이 별로 없어요. 방송중에도 기분내키는 대로 버럭버럭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가끔은 '저 모습이 진심이 아닌가? 방송사고는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경규가 가진 캐릭터를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지요.
그런데 시청자들은 그런 이경규의 모습이 놀랍거나 겁나지 않아요. 오히려 재미있어하고 오히려 이경규가 화를 내는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즐기려 하고 있지요. 세월이 유수라고 어느새 이경규에에 '경규옹'이라는 애칭까지 달게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경규가 경규옹이라는 애칭을 얻으면서 한가지 더 얻은 게 있어요. 과거 버럭 이경규, 화 잘내는 이경규의 모습이 그대로 있는 듯한데도 시청자들은 그런 경규옹을 귀엽게 보고 있다는 겁니다. 저보다 연배가 위인데도 제게도 요즘의 이경규는 참 귀여운 아저씨로 다가옵니다.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듯한 이경규가 화를 내지 않고 즐기고 있는 듯한 이유, 그것은 이경규 스스로가 다스리고 있는 화 다스리는 방법이었어요. 지난 지리산 등반때도 이경규는 계속 힘들어서 투덜대고 올라갔지만, 이경규가 끝까지 해낼 것이라는 것을 시청자들을 알고 있었어요. 이경규는 입은 화내고 투덜댔지만 표정은 전혀 아니었거든요. 그것이 이경규가 이번 남자의 자격에서 강연한 내용처럼 끝까지 참자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경규는 천상 개그맨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억지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이경규는 시청자가 아닌 자기 스스로를 감동시키고자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감동시키지 않고는 다른 사람 역시 감동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자기와의 싸움을 이경규는 있는 그대로 여과없이 욕을 해가며, 숨을 헉헉 거리며 투덜대가며, 심지어는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말을 해가면서도 스스로와 싸워갑니다. 지리산 등반, 탈진상태에까지 이르게 한 하프 마라톤이 그 예일 거예요.
이경규는 방송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경규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속된 말로 날로 먹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망가질 때는 망가지고 체력이 필요할 때는 입에서 단내가 나더라도 몸을 던집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경규의 버럭질이 작렬하고,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 빵빵 터지지요. 이경규가 젊은 개그맨이었더라면 힘들다고 푸념하면 아마 욕으로 난도질을 당했을텐데, 이경규가 힘들다고 방송에서 푸념을 하면 할 수록 응원을 실어줍니다. 국민약골 이윤석이나 국민할매 김태원도 이런 부분에서는 같은 응원을 받고 있고요.
방송에 대한 욕심,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한 계산적인 욕심을 염두했다면 아마 감동을 일부러라도 보여주기 위해 가슴에 남는 멘트들을 수없이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경규는 그런 멘트 대신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식으로 솔직한 감정을 실어 던져버리지요. 물론 이 속에 개그코드도 있지만 이경규의 본심도 있어 보여요. 그래서 이경규의 푸념이 저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준비한 대로 설정한 대로만은 나오지 않거든요. 이경규는 그런 점에서 너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자기 감정을 던지지요. 그리고는 또 해냅니다.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도 말이지요.
그리고 이경규는 그 이유를 이번 강연 청춘들에게 고함에서 들려줍니다. "함부로 인생의 짐을 버리지 마라" 30분의 강연은 30년의 방송인생, 아니 청춘에서 시작해서 불혹의 나이를 거쳐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가르침이었어요. 지리산 등반에서 그가 느낀 것을 웃음 속에서 버무려 던져주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팍"하고 뭔가가 꽂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마라톤, 4시간 50분 뛰었습니다. 사람들은 감동적이었다 호평일색이었어요. 내가 좋아서 뛴 것 같습니까? 물에 떠내려 간거예요. 제가 참은 거예요. 마라톤 끝나고 지리산을 20Kg 배낭을 매고 18시간을 기어 올라갔어요. 올라 갈 수록 화가 났어요" 그리고는 청중들께 묻습니다. 자신이 왜 화났을 것 같냐고요. 이어 빵 터지는 이경규 스스로의 대답 "다시 내려와야 하잖아요"
그래도 참고 올라갑니다.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그 때 함께 한 김성민이 정말 쉴새없이 지치지도 않고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경규는 큰 웃음을 줍니다. "김성민이 하도 떠들어서 산 낭떠러지에서 밀어 버리고 싶었어요" 김성민도 인간인지 3분의 2 정도 가니까 말을 멈추더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ㅎㅎㅎ
이경규가 지리산 등반에서 얻은 교훈은 시청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었어요. "함부로 인생의 짐을 버리지 마라" 버리고 싶었던 20Kg의 배낭 속에는 꿀맛같은 먹을 것이 있었고, 행복을 주었노라고요. 이경규는 여전히 짐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우스개처럼 딸 공부도 시켜야 하고 아내도 먹여살려야 하고 부모님도 공양해야 하고 영화사 식구들도 먹여살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 말속에 이경규의 인생철학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식이면서 아버지이고 가장이고, 그의 영화사 식구들에게는 사장님이겠지요. 그가 젊은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에 대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힘들다고 버겁다고 지금 주저 앉아 버리면 산정상에서 맛볼 수 있는 꿀맛같은 행복은 작아진다는 것이지요.

유명한 명언 중에 이런 글귀가 떠올랐어요.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콤하다"
이경규라는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도 방송가에서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지요. 영화에 대한 열정이 한 때 이경규를 힘들게 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쫄딱 망한 복수혈전은 방송가에서나 영화계에서 두고두고 이경규에 대한 실패담으로 회자되기는 하지만, 이경규는 그 씁쓸한 기억도 후배들이 드러내서 개그소재로 삼는 것을 크게 불쾌해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실패마저도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이경규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경규씨 속은 소태씹는 심정이었겠지요. 아무리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고 산 겅험이라고 하지만, 휘청일정도의 실패는 쓰디 쓴 기억임에는 부인할 수 없을 테니까요 . 그 이후로도 영화에 손을 댔지만 좋은 성과는 없었지요. 그런데도 이경규는 예전에 한 토크쇼에서 절대로 영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주변에서 극구 말리는 데도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모하다는 말도 하지만, 저는 그 성패를 떠나 아직도 그에게는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는 청춘의 열정이 살아 있는 듯해서 보기 좋을 때도 많습니다. 물론 성공으로 그 열정을 보답받았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연말에 정말 영화가 개봉되는지 모르겠지만, 이경규의 강연을 들으며 그 열정이 보답받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해보네요.
이경규가 들려 준 버럭 웃음 속의 강연은 인생을 많이 살아 온,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해 온 인생선배로서의 충고였기에 더 진실되게 와 닿습니다. 살아 오면서 지리산 등반때 뿐만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주어진 인생에 책임을 다하려 했고,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지 않았기에 그는 정상에서의 행복을 느꼈을 것입니다. 
오십줄의 인생, 길었다고 하면 길었고, 또 짧았다고 하면 짧을 수도 있겠지만, 이경규는 지난 세월을 반추하듯 젊은이들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힘들고 화가 나고 참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5년 전, 10년 전을 돌이켜 보면 다 추억이 되어있듯이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라는 말로 지금의 어렵고 힘든 일이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는 추억처럼 가벼워질 거라는 인생선배로서의 다독임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경규는 이외수님의 "그대여 결코 서두르지 마라. 대어(大魚)를 낚으려는 조사(釣師)일수록 기다림에 친숙하고,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일 수록 서둘러 신발끈을 매지 않는다" 를 글귀를 인용했는데 그 말에 하나 더 첨가하고 싶어지더군요. 다들 알고 계실듯하지만 아주 오랜 만에 푸시킨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남자의 자격 일곱남자들은 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모두들 훌륭한 강연으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윤석의 '20대를 괴롭혀라', 김국진의 '롤러코스터', 김태원의 '설레임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다, 무엇이든 감동하라', 김성민의 '누구를 위하여 살 것인가', 이정진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찾아라', 이경규의 '참을 인(忍)', 그리고 마지막 윤형빈의 '나를 팝니다' 까지 청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에게 고하는 명강연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입구에서 보면 길어 보이지만 출구에서 보면 짧은 터널같다는 말이 있지요. 일곱남자들의 강연을 종합해 보니 그 기나긴 터널을, 롤러코스터를 즐기듯 자신있고 당당하게 청춘을 누려 보라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힘들어 죽겠는데 청춘을 어떻게 즐기느냐고 반문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 청춘의 시기를 한참이나 지나버린 후에 생각해보니 저 억시 후회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힘들어서 자꾸 피하고 돌아가려 했던 일들 같습니다. 힘들어서, 아니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일들이 더 많은 것 같거든요. 공부도 죽을 힘으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노는 것도 죽어라 놀아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조금은 편하게 대충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지금 단 1년이라도 청춘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1년을 10년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경규가 들려준 말 중에 "함부로 인생의 짐을 버리지 마라"는 말이 많이 와닿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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