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4 14:27




드디어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최고의 폭탄이 터졌습니다. 태섭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민재와 병태가 어떻게 끌어안고 갈지, 김수현 작가가 동성애를 어떻게 가족극에서 해법을 찾아갈지 궁금했었는데, 상투적이고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작위적인 이해가 아니라, 오로지 자식이라는 이유, 그리고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로 보호막을 쳐주고 품더군요. 김수현 작가다웠고, 무엇보다 노작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태섭을 수백번씩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고뇌해 보고, 또한 관찰자적인 시선에서의 냉정함도 병행하려고 고심했던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대조적인 두 집안, 한 집은 자식으로 품었고, 한 집은 자식이라고 인정하지 않겠다며 "고아로 살아라" 라고 내쳐 버리는 모습을 그리면서, 현실에서의 극과 극의 모습에 많이 고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자식을 고아로 살라며 내치는 경수 엄마(김영란)의 모습이 어쩌면 현실적으로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드라마상에서는 경수엄마가 자신들의 체면만 생각하는 모습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경수엄마와 같은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주의 풍경만큼 영상미와 연출에서의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태섭(송창의) 의 커밍아웃에 민재(김해숙)가 세상이 무너지는 듯 놀라는 감정을 필름을 잠깐 뚝 끊어버리는 듯한 연출이 돋보였던 것 같습니다. 가슴이 무너진 느낌, 몸의 모든 세포와 감각, 정신이 순간 정지돼 버린 듯한 큰 충격을 한 컷으로 담아 보여주었던 것 같았어요. 비록 자기 속으로 낳지 않았지만, 친자식 보다 더 신경쓰이던 자식, 그것도 한 집안의 장손 입에서 "저 동성애자에요"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그 믿기지 않는 말을 듣는 부모의 심정이 뚝 끊겨버린 필름처럼 그랬을 겁니다.
태섭의 커밍아웃에 민재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없는 충격에 휩싸입니다. 태섭은 민재에게 더 이상은 거짓말로 못살겠다고, 경수를 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동생 초롱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며, 차라리 죽도록 매를 맞고 쫓겨나고 싶다고 고백하지요. 아버지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죽어달라면 죽어드리겠다"고 말씀드려 달라는 태섭 앞에 민재는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생모가 아니라서, 자신이 외롭게 만들어서 그랬느냐는 민재에게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밝힐 수가 없어서 외로웠다고 말하지요. 죽도록 외로웠다고, 수없이 죽고 싶었다는 태섭의 고백에 민재의 가슴은 찢어집니다.
"미안해, 혼자서 힘들었겠다" 민재는 태섭이의 성정체성을 그동안 몰랐던 것에 미안하고, 혼자서 태섭이가 겪었으 고통에 아파합니다. 민재에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태섭, 이들은 이렇게 받아 들이고 싶지않는 사실을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해 하며 받아 들이고자 합니다.
커밍아웃한 태섭에게 며칠이라도 혼자있게 하려고 민재는 태섭을 호텔로 보냅니다. 태섭과 함께 집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기는 태섭에게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민재(김해숙)의 사려깊은 마음 씀씀이때문에도 감동했지만, 김해숙의 뛰어난 연기력만으로도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서 나올 수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배우 김해숙의 눈물과 표정을 통해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병태 역의 김영철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고요. 이번 회 김해숙과 김영철, 그리고 송창의의 뛰어난 내면연기는 이 드라마가 풀어가고자 하는 동성애에 대한 주제를 내면연기 자체로 보여주었던 것같습니다. 
태섭을 보내고 민재는 병태(김영철)에게 사실을 밝힙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요. 김수현이 풀어가는 동성애는 이해도, 사랑도, 편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김수현의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은 민재가 병태에게 한 말에 모두 응축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셀 수 없이 죽고 싶었대. 그거면 됐어" 자식이 부모앞에서 셀 수 없이 죽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왔다고 고백하는데, 이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었어요. 민재와 병태는 부모였어요. 혹시라도 태섭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태섭의 말대로 목숨을 끊어버렸다면,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 그것으로 족하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청천벽력에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민재는 어떻게 말로 위로할 수도 없습니다. 
병태를 끌어안고 "엄동설한 삭풍 속에 우리 애기 빨개벗겨 세워놓지 말자. 바람막이 쳐주고 옷 든든히 입히고, 우리가 난로가 되자, 여보"라며 부둥켜 안고 우는 민재의 대사는 감동만을 위한 대사도,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시선에서는 못났다고 손가락질을 받을지 모르지만, 내 자식이었습니다. 남일이라고 관심없었던 다른 세상의 일들이 내집일로 들어왔을 뿐이었어요. 받아들이기 힘들고 아프지만요. 
불란지 펜션의 이 가정의 구성원들은 사실 현실에서 보기 드문 인물들일 수도 있어요.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말을 들은 아버지가 처음 뱉은 말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갈려고.."였어요. 경수 집에서 나온 반응과는 너무 대조적이었지요. 경수 집에서는 가문의 체통과 사회적 위신을 먼저 걱정했지만, 불란지 팬션 민재와 평범한 남자 병태는 태섭을 먼저 걱정합니다. 따가운 세상의 눈초리 속에서 살아야 하는, 아니 거짓말로 위장하고 살아가야 하는 자식의 고통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당사자만큼이나 괴로운 일이 있을까 싶어요.
병태와 민재의 대화를 들으면서 김수현 작가가 동성애에 대한 것을 어떻게 풀어가려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식이었습니다. 하늘이 두 조각이 나도 변하지 않는 것, 그들의 자식이라는 것이고, 가족이라는 것이었어요. 사회적 편견은 어쩌면 지구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바뀌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음양의 이치처럼 남녀가 짝을 이루는 이치는 가장 보편적인 사회모습일 테니까요. 음양의 이치에 맞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제 3의 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죄인취급을 받든, 스스로 죄인취급을 하고 살든, 대다수의 이성애자들이 이런 소수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 누구에게 잘못이 있을까요? 그들을 낳은 부모? 제 3의 성으로 태어난 그들? 결론은 그 누구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입장도 비난하는 입장도 아니었어요. 극중 병태의 입장이었어요. 내집일이 아니고, 내집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즉 무관심의 입장이었어요. 단지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스타들의 커밍아웃을 가십거리정도로 여겨왔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특히 이번회 민재와 병태의 대화를 들으면서 내집의 문제로 들어온 듯해서, 온몸에 열이 나듯 아파왔습니다. 그리고 병태가 태섭이 있는 호텔로 찾아가 아들 태섭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정말 엉엉 울고 말았어요. 민재와 마찬가지로 미안하다는 병태, 민재가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와는 또 달랐어요. 민재는 태섭에게는 새엄마이니 태섭의 고통을 몰랐던 것에 미안했을 텐데, 생물학적인 아버지 병태는 민재와는 또 다른 감정이 있었을 거예요. "너를 그렇게 낳아서 미안하다"라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그렇게 낳아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도 아닌데, 아버지로서 생물학적으로 기형의 유전인자를 준 것에 병태는 죄의식을 느꼈을 것 같았어요. 무릎을 꿇고 마는 태섭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데, 정말 가엾기도 하고 가슴이 아파오더라고요.
드라마를 떠나서 동성애자들이 아마 같은 고통이었을 것 같습니다. 네 엄마가 괴롭히지 말라더라면서, 그래도 한 번은 해야겠다며 "너... 바꿀 수가 없는 거니? 그거 안되는 거야?" 라고 묻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저며 오더군요. 병태의 마지막 질문과 부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서해 달라며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라며 눈물만 흘리는 태섭에게, 그저 알았다는 말로 태섭을 일으켜 세워주는 장면은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이었어요. 자식의 고통을 품으려는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제3의 성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아들을 인정하겠다는 무언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달라질 것 없다며 "너한테는 잘나고 훌륭한 엄마가 있어" 라며, 태섭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아버지였습니다. 병태가 "네 엄마가 많이 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는 대성통곡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플 정도네요. 
드라마를 보면서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도 생각해 보고, 자식인 동성애자 태섭의 입장이 되어서도 많이 생각해 봤어요. 정말 답이 없어 보여 미칠 것 같더군요. 답답하고 믿기 싫고, 그러면서도 어디서든 답을 찾아야 할 듯 싶더라고요. 내 자식이라면..... 저도 많이 울것 같습니다. 민재처럼요. 어쩌면 경수 엄마처럼 세상 눈이 창피하다고, 자식 하나 없는 셈치겠다고 할 것도 같습니다. 태섭이라면..... 저도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고 밖에는 할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경수처럼 자식없는 셈치라고 집과 인연을 끊어 버리려고 할 듯도 싶습니다.
그럼에도 김수현 작가가 던져 준 따뜻한 시선이 더욱 끌립니다. "엄동설한 삭풍 속에 우리 애기 벗겨 세워놓지 말자"라는 민재의 대사를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내려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동성애를 뛰어난 내면연기로 보여준 송창의와 자식의 고통을 더 아파하는 김해숙과 김영철의 명연기는 이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마저 가슴에 와닿게 합니다. 가족이 아니면, 부모가 아니면,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 죄 아닌 죄를 누가 품어 줄 수 있을까요. 가족이라는 울타리, 이보다 크고 따뜻한 곳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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