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8 15:30




짙은 허무주의와 인간에 대한 냉소가 돋보이는 심건욱의 치밀한 복수극은 그가 한 밤중에 모는 오토바이처럼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우울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심건욱의 죽음이 예감되는 드라마속 복선장치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소품에 대한 것은 뒤에서 언급하기로 하고요, 나쁜남자 8회는 격정적인 감정들보다는 새로운 관계 조성을 위한 밑밥들을 깔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빗속에서 도로에 뛰어드는 태라와 붙잡는 심건욱의 팽팽한 감정대립과 문재인을 향하는 홍태성의 감정이 서서히 구축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졌지요. 

길거리에서 건욱과 재인이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 홍태성은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신여사에 대한 반항으로 유리가면을 깨버리기는 했지만, 문재인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타인의 감정따위는 무관하게 살아왔지만 자신도 모르게 문재인이 신경쓰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재인이 신경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에서 열차여행때부터 였을 거예요. 홍태성이라는 이름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건욱과 다정하게 장난치는 모습은 자신이 알던 여자들과 달랐지요. 죽은 최선영처럼 말이지요. 해신그룹의 숨겨진 황태자 홍태성이라는 이름이 가진 돈냄새를 전혀 관심있어 하지 않는 여자들같아 보였지요.
유리가면을 깨버린 홍태성에게 냉랭하게 구는 재인은 홍태성의 눈에 도도한 매력으로 비춰집니다. "홍태성씨는 좋겠어요. 참고 살지 않아서. 소리치고 싶으면 소리치고... 난 아니에요. 눈치도 살펴야 하고 끝까지 붙어있어야 되거든요" 라며 매섭게 쏘아주고는 버스를 타버리는 재인에게서 홍태성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망나니처럼 겉돌았던 어린 시절, 홍태성은 지독한 외로움과 멸시를 받으며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살았을 거예요. 곁을 주지 않는 새어머니 신여사는 태성이 해신그룹 홍회장의 아들이라는 그 이상 이하의 대우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해신그룹에 부속물처럼 딸려있는 구성원이었을 뿐이었겠지요.

철이 들고 시작된 홍태성의 비명은 반항이라는 모습으로 소위 겉돌기 시작했고, 비명을 지를 때마다 되돌아 오는 것은 냉대와 조소뿐이었어요. 태성의 앞에서 재인의 뺨을 때리는 신여사가 "네까짓게 내 아들 따귀를 날리려고 해? 네가 감히 내 아들들을 무시해? 네 따위가 뭔데?"라고 했을 때, 순간 홍태성을 울컥하게 만들었지만, 착각하지 말라며 "난 단지 저 애한테 알리고 싶었을 뿐이야. 함부로 해신그룹과 날 무시하지 말라고" 라는 싸늘한 대답만이 돌아오지요. 어려서부터 지긋하게 들어왔던 같은 말이었어요. 홍태성에 대한 신여사의 냉소의 대상이 재인이었을 뿐, 그 말은 태성이 항상 듣고 자랐던 말일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여사에게 태성은 해신그룹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수치일 뿐입니다.
재인에게 더 이상 신여사는 존경하고 싶었던 갤러리 관장님이 아니에요. 신여사의 겉으로 내세우는 고매함 속에 감춰진 추악한 이중성은 배부른 돼지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 돼지 발길에 채이는 태성의 모습을 재인은 우연히 목도하게 되지요. 레스토랑에서 듣게 된 신여사와 태성의 대화를 통해 재인은 태성의 상처를 보게 됩니다. 재인 앞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이 아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말이지요. 이름뿐인 황태자, 찬밥일 뿐인 홍태성의 상처는 재인에게는 태성에 대한 모성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번회 문재인을 보면서 특이한 모습을 봤는데요, 재인이 재벌가의 여자들에 걸맞는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서점에서 외국어 책들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심건욱의 심리 못지않게 재인의 심리도 의혹투성으로 비춰지더라고요. 재인이 홍태성을 대하는 태도가 순수와 의도적인 접근이라는 그 두가지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듯 해서 말이지요. 아직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물음표로 남겨둬야 할 듯 싶네요. 재인과 태성의 관계를 좀더 지켜봐야할 듯 해서 말이지요. 더구나 건욱에 대한 감정도 여전히 의문점이고요. 재인을 바라보는 건욱의 표정에서는 재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읽히는데 문재인에게서는 읽혀지지가 않았거든요. 제가 실패한 것인지 문재인의 감정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문재인과 홍태성의 관계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한편에서는 건욱과 태라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지요. 모네와의 식사자리에 동석한 태라는 건욱의 강렬한 눈빛에 또 다시 무너지고 맙니다. "이유가 뭐든 난 당신에게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애당초 당신은 나한테는 관심밖이니까요". 건욱은 태라의 말 뜻에 숨어있는 태라의 무너지는 감정을 다 읽어 버립니다. 건욱이 대사 한 마디없는 스턴트맨을 하면서도 배우들보다 더 열심히 대사를 읽었던 것은 대사 속 행간에 담긴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건욱은 태라의 말 속에 담긴 태라의 심리를 읽어냅니다. 무너지고 있는 홍태라의 감정을 말이지요.
태라역의 오연수와 심건욱의 김남길을 보면서, 허점투성이에 스토리의 개연성조차 실종되고 있는 듯한 나쁜남자를 그나마 보고싶게 만드는 드라마가 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맹이없는 스토리는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스토리는 남지않고 두 사람의 강렬한 표정만이 남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네요.;;
글 서두에 심건욱의 죽음이 예견되는 장치에 대한 말을 했는데요, 그 중요한 소품이 심건욱이 들고 다니는 라이터에요. 일본 약팔이 양아치와 다리위에서 싸울 때 심건욱의 콧등이 깨지면서 핏방울이 라이터에 떨어졌었지요. 그 전에 심건욱이 일본의 외딴 정루장에서 라이터를 떨어뜨린 장면도 있었고요. 라이터를 떨어뜨린 순간, 서울에서는 최선영의 의문의 자살을 수사하고 있는 곽반장이 또 다른 입양되었다가 파양된 또다른 홍태성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과 오버랩되었었고요.
심건욱의 라이터에 떨어진 핏방울은 최선영이 죽을 당시 들고 있던 종이학에 떨어졌던 핏방울과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이학의 핏방울이 최선영의 죽음을 보여주었듯이, 라이터의 피도 심건욱의 죽음을 암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심건욱의 죽음을 암시하는 또 하나의 복선이 심건욱이 죽은 벙어리 부모의 묘를 찾아가 했던 방백이었어요.
"그들이 기억조차 못하는 그 어느 한 때, 어느 한 순간, 지독하게 비정했던 선택이 그들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했는지 반드시 알게 해 줄 것이다.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뺏을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악마이길 선택한다. 신이 그들의 편이라면 악마는 나의 편이다, 나는 아무도 두렵지 않다" 
스스로 악마가 되겠다는 독백에서 심건욱이 결코 이 복수극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끝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두렵지 않다는 독백처럼 들렸어요. 심건욱의 죽음은 홍태성의 방에서 최선영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했던 방백에서도 감지가 되었는데요, "누나, 미안해" 하면서 멈추지 않겠다는 말을 했었어요. "모든 것이 끝난 다음에 나, 그때 벌 받을게" 라면서요. 그 장면에서는 심건욱의 죽음이 자살로 연결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모네와 함께 본 아프리카의 사진을 보며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 위에 마시아족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걸 보면 화를 낸다는 것, 기쁘고 슬프다는 것, 좋고 실은 감정들이 다 허무해진다"는 건욱의 말이 건욱이 진행하고 있는 복수이 허무함을 상징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심건욱이 맞추고 복수를 위한 퍼즐조각, 마지막 한 조각이 허무라는 이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건욱은 이 처절하리 만큼 위험한 복수극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아요. 심건욱의 복수의 끝이 누구의 파멸로 이어질지, 건욱이 삼켜 버리고 싶은 해신그룹인지, 심건욱 자신인지 건욱의 복수가 끝나는 날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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