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4 11:03





한국 공포추리스릴러 드라마의 새 장을 열어 화제가 되고 있는 '혼'을 시청했습니다. 제목부터 은근히 사람을 오싹하게 해서인지 마음을 굳게 먹고 시청을 해야했지요. 드라마를 보니 첫회분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공포의 정도, CG의 약간의 미숙함 등등 우리나라 공포물의 한계를 찾아내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이더군요. '혼'은 공포라는 장르를 취해 출발을 했지만 고도의 두뇌게임 추리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으니까요. 공포 혹은 납량특집 정도로 생각했다가 2,3회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4회 방송부터는 주인공들의 생각 속에 함께 들어가려고 노력하면서 봤습니다.
신류(이서진), 윤하나(임주은)의 어렸을 때 트라우마에 까지는 접근하기 힘들었습니다. 보다 솔직히 말하면 두사람의 아픔이 너무 큰 것이어서 저는 더더욱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느라 사실 머리가 피곤하기도 합니다. 뇌를 많이 써야하는 작업이었거든요. 이들의 생각을 쫓아가려니 범죄심리학도 함께 이해해야 했고, 또 정신분석 상담의사 이혜원(이진), 교활하고 영리한 변호사 백도식(김갑수), 빙의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윤하나의 머리 속도 따라 다녀야 했거든요. 

'혼' 4회는 연쇄살인범 서준희와 윤하나의 동생 두나의 죽음과 관련된 살인자들에 대한 살인을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연쇄살인범 서준희가 해 왔던 살인과 두나의 죽음과 관련된 살인 사건은 의미가 다른 살인입니다. 드라마 '혼'은 계속적으로 두가지의 서로 다른 살인을 통해 절대악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악마성은 변할 수 있는가, 악마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가.
드라마는 나아가 죄, 혹은 악마에 대해 어디까지 단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용서(교화의 기회)와 단죄는 합일점을 찾지 못해 표면적으로는 선과 악, 흑과 백의 대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착시현상이지요. 찢어죽일 놈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죽이고 싶도록 분노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또하나의 살인을 추가하는 복수의 살인극도 가볍게 잘했다고 용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거든요. 우리가 판결할 권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드라마는 언뜻언뜻 신의 영역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장면들과 신의 영역을 거부하겠다는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 빛나는 십자가나 끊어진 묵주는 그 두가지에 대한 암시이기도 합니다. 쉽사리 어느 한쪽의 입장을 취할 수 없는 우리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하지 않는 배려이지요. 

그런데 드라마 '혼'은 판결부분에서는 자유를 주면서도 살인의 종류에 대해, 정의의 실현에 대한 방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할 것을 요구합니다.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도 있다'. 이 두가지 문제를 '혼'은 살인이라는 코드를 통해 제기하고 있습니다.
연쇄살인범 서준희가 행해 온 살인과 윤하나를 통해 살인범을 죽인 살인은 서로 의미와 성격이 다른 살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과적으로 모두 '살인'이었다는 것이지요. 두가지 다른 성격의 살인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는 이미 자유를 주었지만 고민에서는 시청자들도 자유스럽지는 못합니다. 두 살인은 서준희의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였다면, 후자의 살인은 복수의 의미를 가진 살인으로 성격이 다릅니다.
연쇄살인범으로 붙잡힌 수의사 서준희를 보면 낮에는 소아과병원에서 봉사하는 착한 천사였다가 밤에는 인면수심의 묻지마 살인범이었습니다. 그는 낮과 밤, 흑과 백, 선과 악이라는 극과 극의 코드가 공존하는 인물입니다. 서준희의 변호를 맡아 승소한 백변호사는 법이 절대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용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법의 한계를 이용해 연쇄살인범에게 이중인격장애라는 판정으로 극형을 면하게 하지요.
결론은 악독한 살인범에게도 뉘우치고 반성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교화 논리의 승리였지만, 이 속에 숨어있는 법의 허점이자 장점 하나는 법은 기회라는 구멍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법이 준 수혜가 악독한 살인범을 교화를 통해 새 사람으로 만들지, 혹은 더욱 철저한 범죄자로 만들지는 결국의 치외법권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것이구요.

극 중 신류의 여동생과 어머니의 살인범이 변호사가 되어 있는 모습은 두 가지 경우를 한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법이 가진 구멍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통위반 하나도 한 적이 없는, 법적으로는 깨끗하게 교화되어 변호사까지 된 인물입니다. 그러나 신류와 마주친 그는 섬뜩하게 살인의 추억이 깃들인 미소를 짓지요. 문제는 그의 섬뜩한 미소를 재판할 수 있는 법은 없다는 것이지요. 닫힌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류가 그에게 날린 분노의 주먹 밖에는 그를 응징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류(이서진)의 주먹질이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복수이고 정의로운 주먹질이었다고 해도, 법의 눈에서 보자면 신류는 폭행죄로 구속 혹은 벌금형에 처해질 일입니다.
드라마 '혼' 4회에서는 빙의된 윤하나(임주은)가 쌍둥이 동생 두나의 살인범을 차례로 살해해 가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윤하나의 몸에 빙의로 윤두나가 들어오고, 그리고 자신을 죽인 범인들을 찾아가 최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는 무참히 죽여버리는 단순한 복수를 그린 내용입니다. 
그리고 연쇄살인범 서준희의 교화가능성을 두고 신류와 이혜원의 의견이 대립되는 것도 보여주었지요. 서준희를 변호한 백변호사(김갑수)는 17년전 신류의 여동생과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변호했던 인물이었구요. 그리고 법의 치마폭에 숨겨진 백변호사의 뱀처럼 교활한 모습도 앞으로 극의 전개를 위해 복선으로 몇 개를 깔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유의깊게 봐야할 인물, 즉 또 하나 숨은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범죄프로파일러 신류의 정체입니다. 이번회의 마지막 장면은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모든 공포장치를 통틀어 가장 섬뜩하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같이 강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서진의 표정이었습니다.
신류는 살해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빙의된 윤하나를 통해 연쇄살인범 서준희를 죽여버리도록 조종합니다. 신류는 윤하나의 빙의 역시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윤하나를 조종합니다. 윤하나가 신류에게 조종당할 수 있는 이유는 윤하나가 신뢰하는 유일한 인물이 신류이기 때문이지요. 윤하나가 자신만의 비밀의 방에 신류를 들어오게 하는 것은 윤하나가 신류를 믿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철저하게 영적으로 믿고 있는 윤하나를 통해 신류(이서진)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시키고자 합니다. 신류가 생각하는 법은 정의가 실현되는 법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것이구요. 그리고 신류는 서준희가 숟가락으로 목동맥을 끊어 버리는 것에 날선 미소를 지었지요. 이서진의 이 섬뜩하고 날선 웃음은 최고의 서스펜스를 보여준 명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드라마 '혼'을 보면서 많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데스노트의 '야가미 라이토'를 떠올렸습니다. 일본만화 데스노트는 오바츠구미가 글을 썼고, 오바타 다케시가 그림을 그렸는데 애니메이션과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만화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데스노트의 간략한 줄거리는 천재 고등학생 '라이토'가 어느 날 '류크'라는 사신계의 장난꾸러기(?)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죽을 사람들의 명부 즉, 데스노트를 줍게 됩니다. 데스토트에 적힌 사람들은 반드시 죽게 되구요. 부패한 일본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라이토는 데스노트의 위력을 알고는 그가 꿈꾸는 이상세계, 정의사회를 위해 데스노트를 이용합니다. 용서받지 못할 범죄자들이나 악독한 인간들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어 범죄자 숙청에 들어간 것이었지요. 일련의 의문에 쌓인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명탐정 'L'이라는 인물도 등장하면서 수사대가 설치되고 라이토는 과감하게도 자신을 잡으려는 수사대에 들어가 함께 수사를 하기도 합니다. 결국은 라이토의 정체가 드러나고 라이토는 사신 류크에게 살려달라고 부탁하지만 결국은 류크가 데스노트에 라이토의 이름을 써넣으면서 죽게 됩니다. 라이토는 자신의 이상세계를 세우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지만 '키라'신봉자들에게 추앙받는 인물이 된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중간중간 흥미로운 일들도 많은데 다 소개하지는 못하겠네요.

혼을 보니 범죄프로파일러 신류에게서 라이토가 겹쳐지더군요. 데스노트의 라이토처럼 신류(이서진)도 용서받지 못할 극악한 인물들은 교화되지 못하고 다시 사회에서 더욱 강한 범죄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신류는 그가 잡은 서준희라는 인물도 그런 류의 용서받지 못할 철저한 악인이고, 앞으로도 교화되지 않을 사람으로 봅니다. 그래서 빙의된 윤하나를 통해 서준희를 죽여버리지요. 서준희가 감옥을 나가면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므로 미리 악의 씨를 처단해 버린 것이지요. 신류가 바라는 정의는 악이라고 판단되는 인물의 완벽한 제거니까요. 결국 빙의된 윤하나는 신류의 데스노트가 된 것이구요. 혹시라도 윤하나가 범인으로 지목되는 경우 신류 그들이 이용했던 법의 구멍을 이용하겠지요. 윤하나가 청소년인데다 이중, 혹은 다중인격을 보이는 장애를 가졌다고 입증해 버리면서 윤하나를 보호할 것이구요. 
드라마 '혼'은 심해의 바다같습니다. 한번 빠지면 더욱 깊게 내려가 보고 싶은 욕구를 멈출 수가 없게 합니다. 저 깊은 바다속에는 어떤 보물이, 어떤 진실이 숨어있을까 알고 싶어지거든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동안에는 대사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됩니다. 공포추리물들(책, 드라마, 영화)의 특징은 화면이나 책구절 곳곳에 결정적인 증거물들을 흩어 놓거든요. 그래서 시청자들도 머리카락 한올의 증거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대사 한마디, 화면 한장면, 눈빛 하나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의미를 부여하며 보게 됩니다. 이런 추리물의 드라마나 책을 보다보면 항상 줄거리보다 앞서서 범인 혹은 결론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거든요. '혼'의 결말 혹은 키워드에 가까이 가도록 다음주에도 더 신경쓰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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