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4 07:05




오랜만에 개인적인 일상이야기를 씁니다. 지난 주는 산더미같이 배추와 무를 쌓아두고 일년 큰 농사를 지었습니다. 김장을 했답니다. 원래는 그 전 주에 김장을 하려고 했는데 배추 주문이 밀려서 늦춰지는 바람에 김장이 좀 늦어졌어요. 올해는 김장을 좀 많이 했답니다. 여기서는 배추를 박스 단위로 구입을 해서 몇포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강 50포기정도를 한 것같아요. 저희집 김장은 배추김치, 동치미, 석박지, 알타리 김치 네가지를 했습니다. 작년에는 갓김치도 담고 백김치도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귀찮아져서 하나씩 줄이게 되네요.ㅎ 엄살좀 부리자면, 왜 일 많이 하면 어머니들 허리가 끊어져내린다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저는 허리가 터져 나가려고 하더라고요.

배추는 평소에는 30포기 정도를 했는데 올해 조금 많이 해야 했어요.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과 딸이 각각 따로 살다보니 살림이 늘어난 때문이기도 하고, 딸아이 친구들에게 나눠 주려고 마음먹고 넉넉하게 했습니다. 딸아이 친구들이 한국음식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특히 김치와 불고기에 환장(?)을 한답니다. 대학의 낭만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딸아이 학교생활을 지들끼리는 교도소라고 표현하더군요. 정말 제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빡세게 시키는 곳이 캐나다 대학인 것 같더군요. 딸아이는 프로젝트가 많아, 거의 새벽에 들어오거나, 어떤 때는 학교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는 일이 많은데, 가끔 금요일이면 친구들과 음식 한두가지를 해가지고 모여서 파티를 하며 자기들끼리의 낭만같은 것을 누리기도 한답니다. 뭘 보내주나 고민하다 김치와 불고기를 들려 보냈는데, 이후로는 그것만 가져오라고 한다네요.
딸아이가 함께 잘 노는 그룹은 서양아이들도 있고 중국아이들도 있는데, 특히 중국아이들이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얘네들이 김치를 먹는 것을 보면 우리와는 좀 다르더라고요. 우리는 김치를 밥반찬으로 먹는데 얘네들은 샐러드식으로 먹는답니다. 밥이나 요리랑 먹는 것이 아니라 김치만 메인요리로 먹는 거예요. 속쓰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여튼 허리가 터져나가게 한 김장은 한국김치를 선전할 작은 외교관의 임무를 띠고, 지금 김치냉장고에서 잘 숙성되고 있는 중이랍니다.
김장한 날 12월10일은 공교롭게 아들 생일이었어요. 김장 전날 배추 물빼고 야채 다듬고, 바빠서 물한모금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부산스럽게 왔다갔다 했지요. 아들 생일까지 겹쳐서 선물을 사러 쇼핑몰까지 나갔다 오느라 진이 다 빠져, 다음날 김장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일거리가 많으니 오히려 엄살을 부리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엄살피워도 누가 알아줄 사람도 없고ㅎ;;
김장을 다하고 아이고 데이고 끙끙거리며 쉬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시험기간이라 아들은 집에 오지 못한다기에 생일선물만 아들집에 던져두고 왔었어요. 니트 셔츠와 후드 티셔츠, 벨트를 선물로 주고 왔는데, 아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옷투정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랍니다. 엄마가 사주는대로 군말없이(?) 입는 편이라, 옷을 고르는데 크게 까탈스럽지는 않아요. 
그런데 옷 하나가 마음에 안든다고 리턴하라고 전화를 했더라고요. 사이즈를 잘못 봤나 싶어서, 사이즈에 문제가 있냐고 물었더니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는 겁니다. 디자인? 아니 엄마의 안목을 지금 무시하시는 거임? 아들은 그런 디자인이 아니라 무늬가 마음에 안든다더군요. 무늬? 아무 무늬없는 단색 후드티가 무슨 무늬가 있었어?
아들이 문제를 삼은 것은 가슴팍에 일장기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본 기억이 없어서 사진 찍어서 보내보라고 했더니 정말 있더라고요;;. 아들집까지는 차로 40분이 걸리는데 귀찮아서 그냥 입으면 안될까 했지요. 옷을 가지고 와서 다시 오려면 한시간 반, 다시 쇼핑몰까지 리턴하러 다녀오면 왕복 두 시간, 대략 세시간 반정도의 시간을 옷 하나 때문에 허비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짜증나게 귀찮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누가 그런 걸 신경쓰겠냐고, 그거 알아주는 비싼 메이커인데 그냥 입으면 안되겠냐고 했지요. 엄마가 좀 유치하죠. 그래도 아들은 자기가 싫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일장기를 달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헉, 맞다... 순간 우리 아들이 얼마나 개념아들로 보이던지요. 비싼 메이커라고 설명해가면서 귀찮음을 모면하려고 했던 제가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이 아들이 지난 1박2일 관련글에서 스타크래프트 실력에 관해서는 캐나다 숨은 고수라고 언급했던 게임광 아들이랍니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나서 공부한다고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몇년간 빠져있던 게임을 진짜로 딱 끊어버리는 것을 보고는, 저희집 식구들이 믿기지가 않아 놀랐습니다. 지난 달에 남편이 왔다갔는데, 그런 아들을 보고 믿음이 갔는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14시간의 비행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노라고, 아들 생각하니 마음이 흡족해서 기분좋았노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미역국도 못끓여 먹이고 마음이 헛헛했는데, 일장기를 달고 다닐 수는 없다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아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감정이 꽉 차오르더라고요. 이런 얘기 블로그에 올려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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