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8 06:48




최근 대전의 여고생과 대구 중학생이 자살한 슬픈 사건으로 인터넷 기사를 보는 것이 우울하고,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만 답답합니다. 사회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그 상처를 쉽게 내보이지 못하기에 이런 불행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을 겁니다. 도대체 우리 아이들이 왜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단순히 어른들의 탓으로, 수수방관한 무관심한 학교문제로 돌리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학생들 스스로가 학교폭력과 왕따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들 또한 많겠지요.
대구중학생의 어머니가 가해학생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같은 신앙인으로서 함께 울며 기도했습니다. 용서, 쉽지 않겠지요.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또한 같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에서도 가해학생들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반대한다는 말이 더 가슴 아프게 들립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안을 마련해 가야할 지, 그저 가슴 아픈 일로 애도하고 욕하고 흥분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학교폭력과 왕따문제는 학생, 부모, 학교, 그리고 사회전체가 나서야 할 문제입니다. 교육관련 글을 쓰시는 분들이 이미 많이 언급해 주시기도 했기에, 어른들의 무관심과 학교당국의 안일함에 대한 이야기는 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얼마전에 딸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이런 캠페인은 어떨까 작은 제안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딸아이는 워터루 대학교 건축학과에 재학중인 1학년생이에요. 지금은 짧은 겨울방학(캐나다는 겨울방학의 개념이 없기에 크리스마스 방학이라고 합니다)중인데, 방학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학교에 꼭 와달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딸아이가 있는 곳은 캠브리지라는 작은 도시이고, 고등학교는 미시사가라는 곳에서 다녔었습니다. 워터루 대학교 건축학과는, 워터루 본교 캠퍼스에서 건축학과만 따로 분리되어 캠브리지라는 작은 소도시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온 탓에 학교를 방문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고등학교 친구들도 만날겸 선생님도 자꾸 오라고 하니,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학교도 시간을 내서 들를 수 있었지요. 딸아이는 고등학교 12학년때 정치학 과목을 들었는데, 꼭 오라고 했던 선생님이 정치학 선생님이셨다고 하더군요. 학교에 가서 딸아이는 자기도 몰랐던 것을 보고는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학교에서 큰 선물을 받았어요. 교장선생님이 100불짜리 상품권을 주셨어요". 디자인을 한 답례라고 했는데, 무슨 영문인지 몰라 딸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어찌된 정황인지 물으니, 고등학교 12학년(한국의 고3)때 정치학 수업중에 학교 왕따문제에 대한 토론을 했었던 모양이더군요. 딸아이가 다니던 학교 내에서는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왕따방지위원회 (Bullying Prevention Committee)를 만들어 운영했었는데, 정치학선생님이 자문위원의 역할을 맡아 수업중에 잠깐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고 합니다.
캐나다라고 왕따문제나 폭력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느끼기에는 한국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닌 듯하지만, 어떤 학교에서는 교내에서 총기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흉기에 찔렸다는 뉴스도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캐나다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서특필하고, 사건이 벌어지면 며칠동안 뉴스에서 집중토론을 하고 보도를 계속해서 내보냅니다. 그래서 총기사건이나 흉기사건이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들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왼쪽 첫번째 아이가 우리 딸이에요.

왕따는 영어로 Bullying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수업중에 왕따문제에 대한 대처방안들을 토론했고, 캠페인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디어가 나온 모양입니다. 토론중에 교복이나 작은 소품들에 표어를 넣는 것은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수업중에 딸아이가 디자인을 그려서 선생님께 보여줬는데, 선생님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딸이 디자인한 문구를 좋아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일은 딸아이도 잊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정치학 선생님은 그 디자인을 학교교복과 학용품디자인으로 사용하자는 건의를 했고, 학교에서도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교복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딸아이가 학교를 찾아가니, 딸아이가 만든 문구와 디자인이 새겨진 새교복과 연필을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사진이 딸아이가 만든 표어와 교복입니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는데, 후배 학생들은 캠페인에 동참해 자신의 이름과 표어가 적힌 카드를 붙여 거대한 칼과 방패 모양도 만들어 학교 현관 벽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iStand against bullying - Have the courage."
난 왕따를 반대한다 - 용기를 가져라

처음 옷을 보고는 그것이 교복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특별한 날에 입는 옷인가보다 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앞으로 새로 바뀐 교복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요. 교장선생님이 100불을 주시면서 디자인 저작권료로 더 많이 받을 권리가 있다고 농담도 하셨다는데, 딸아이가 기특해서 자랑스럽기도 하고, 학교교복에 딸의 디자인이 새겨진다는 것에 온가족이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캐나다 학교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더군요. 무엇보다 놀란 것은 교복에 이런 과감한 캠페인을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교복뿐만이 아니라 학교와 관련된 많은 학교물품에 이 문구가 새겨졌다고 합니다. 왕따문제에 대해 학교와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함께 논의하고, 함께 고민하는 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딸아이가 만든 디자인과 표어가 교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저희집 개인적으로는 영예로운 일이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노력을 학생과 학교가 함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