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온'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1.12.15 '뿌리깊은 나무' 고개숙인 세종, 그 리더십에 열광하는 이유 (13)
  2. 2011.12.02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냉소,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반전 (21)
  3.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7,8회' 베일에 싸인 정기준, 누구일까 (3)
  4.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8회' 송중기에게 주눅든 한석규, 소름돋는 치밀연기 (2)
  5.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6회' 강채윤이 감춘 군나미욕, 글자에 숨겨진 비밀은? (3)
2011.12.15 10:38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소집한 세종은 세가지 사안으로 대신들과 학사들을 놀라게 했지요. 황망스럽게도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정수리가 보여서는 안되는 군왕이 대신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대신들 모르게 은밀히 글자를 창제하고 있었노라 고백하며, 죽은 집현전 학사들과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이 비밀조직 천지계원이라고 밝히며, 비밀리에 추진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사죄하는 세종이었지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함께 고개를 숙였네요. 그리고 얼마나 영리한 사죄였는지 무릎을 쳤습니다. 세종은 은밀히 글자를 창제했다는 것을 과오로 인정했을뿐, 영리하게도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사죄는 하지 않습니다. 감히 임금이 고개를 숙이니 대신들이 몸둘 바를 모르고 당황하지요. 세종의 영리한 기선제압 책략이었죠.
참, 책략이라는 말이 나와서 덧붙이는데, 까칠귀여운 조말생 대감이 이번 회도 깨알웃음을 주었지요. 정인지도 은근 귀여운 매력이 있는데, 두분의 선문답같은 대화에 빵터졌네요.
세종은 밀본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지요. 밀본지서의 내용이 아니라 밀본에 가입한 밀본원들이 신분노출에 위기를 느끼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밀본원으로 결속되고 있지만, 실상 내부에서는 와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는 집현전과 글자반포를 두고 거래가 성사되었지만, 공식 합의를 하기로 한 바로 그날, 갑자기 이신적이 돌변해서 반대를 했던 것에서도 유추가 되었던 것이었지요.
"밀본은 분열된 것이요", 깨소금 맛이라는 듯 웃는 세종의 표정이 살짝 귀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균열의 가능성을 가지고 책략을 만들자며 조말생을 쳐다보는 세종, 그런데 조말생이 놀란 토끼눈을 뜨고 물어보지요. 어떻게 만들거냐고 말이지요. "엥! 아니 여태 뭘 들었소. 그렇게 하자니까." 무휼에게도 못 알아들었느냐고 재차 확인하는 세종, 무휼은 알아들었다고 하는데 진짜 알아들었는지, 요즘 무휼의 넉살이 늘어가서 말이지요. "그러면 그런 식으로 하자"며 자리를 뜨는 세종이었지요. 세종 한석규가 그 장면을 찍고 나가면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하며 웃었답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지 감을 잡지 못한 조말생 대감, 정인지를 붙들고 알아들었냐고 넌지시 물어보지요. "예, 대충...". 전하께서는 원래 저러시는가?". "예, 가끔...". 정인지도 알아들은 눈치는 아니더구만, 대충이라고 얼버무리는데, 세혼자 왕따인 것같아 답답한 조말생 띠융~, 그저 눈만 껌뻑이지 못하고 멍해져 버리지요.
세종이 어찌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시겠습니까? 저들을 이간질시켜서 지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꼴좀보자는 말을 말이지요ㅎ.
그런데 나중에 최만리를 만나 심종수에 대해 예의주시하라고 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뜻을 알기는 했나 보더라고요. 고지식하고 찜찜한 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직설적으로 묻는 성격의 최만리 대감이, 심종수에게 "너 밀본이냐?"라고 묻는데, 그 뒷말에 '최만리 대감 짱이야!' 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려줬답니다. "너 밀본이라면 내 집현적 학사들을 죽인 죄를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야!" 한마디로 네 놈이 밀본이면 네 손에 죽을 줄 알라는 경고였으니 말이죠.
최만리는 비록 글자창제에 반대를 하는 입장이지만, 누구보다 집현전을 아끼고 그의 철학과 학문에 충실한 인물이기에 미워할 수 없는 적(?)입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글자창제에 가담한 인물로 밝혀져 그들의 몸에 문신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자 의금부에서 추포령이 내렸을 때도, 진관사에 가서 몸을 숨기고 있으라고 보호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세종으로 돌아가서, 여튼 대신들과 학사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 세종은, 정치적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광평대군은 밀본이 살해한 것이 아니오. 과인의 과오에서 비롯된 일이니, 밀본에 대해서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밀본은 나와는 다른 정치관을 가진 붕당으로 인정할 것이오". 와우 역시 큰 인물 큰 그릇 세종, 멋진 분!!! 
들었나? 정치관이 다른 붕당이라잖소. 다른 정치관 다른 의견을 가졌다 하면, 죄다 빨간색으로 몰아가고, 좌측정렬시키는 편협한 분들 말이외다. 눈 좀 크게 뜨고 귀 좀 열고 좀 보고 들이시오, 제발!!!! 목구멍에서 아주 이런 말들이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네요. 
조말생 대감이 가만있을 분이 아니죠. 강상의 도를 어긴 대역죄인들을 처벌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지요. 세종 조대감의 말을 조용히 묵살해 주시면서 세번째로 넘어가지요.
"제안". 요지는 밀본은 밀본이라고 떳떳히 밝히고, 조정 앞마당에 나와서 토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얼굴도 뵈주지 않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세종의 제안은 제안이라기 보다는 협박같아 보이기도 했더라지요.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손에 몇몇 밀본원들의 명단이 적힌 투서도 있다고 겁을 주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이신적의 눈이 팽글팽글 돌면서 어찌나 겁을 내고 있던지, 그 자리에서 경기일으켜 쓰러질까 겁났답니다. 안석환, 참 연기 잘하는 분이에요^^. 
세종의 큰 포용력은 다음 말에서 또 확인이 되었지요. "왕이 오죽 부실하면 과인의 뜻과 다르다 하여, 강상죄로 몰겠소?" 임금의 뜻과 다르면 무조건 대역죄를 씌우는 것에 대한 일침이었고, 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나를 찌질이 임금으로 만들지 말라고 영리한 수로 밀본을 품어버리니, 대신들조차 할말없게 만들어 버리는 세종입니다. 정책에 반대하면 무조건 급진주의니, 좌파니 하며 몰아가는 우리 정치판에서 꼭 들어야 할 말입니다. 세종의 포용은 그들을 자기시력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의 의견으로, 정치적 입장으로 존중하겠다는 겁니다. 반대없는 정치가 민주정치는 아니지요. 무조건 좋은 것이니 알려고 하지말고 따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반민주적 사고방식아니겠습니까?

조말생 대감처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토끼눈 뜰가 우려된 세종, 회의를 소집한 이유에 대해 다시한번 밑줄 쫙 정리하고 넘어가지요. "과인은 글자를 반드시 반포할 것이고, 고맙게 대신들이 수행해 준다면 이레 뒤에 광화문 앞에서 백성들과 함께 반포할 것이오". 글자를 반포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하자 대신들 땅이 꺼지게 한숨입니다.
그리고 밀본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 주지요. 밀본이 붕당을 만들어 반대를 하고자 한다면, 반포전날까지 조정 뒷마당도 옆마당도 아니고, 꼭 앞마당으로 나오시오. 만일 나오지 않고 쥐새끼들처럼 숨어있다가 반포당일 반포를 못하게 해코지를 하거나, 과인에게 밀본원임을 들킨다면, 그 이후에 생기는 모든 일은 니네들 책임이다! 이상.

밀본의 움직임이 바빠졌지요. 분열과 와해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심종수와 이신적이 각각 다른 마음으로 해례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그 칼끝이 정기준을 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궁녀들이 해례를 빼돌려 유포하고 있다고 뒤늦게 눈치챈 정기준이 나인들의 행방과 조지소, 인쇄소 등을 뒤지고 결국 꼬리가 잡히고 말았지요. 초탁을 공격한 윤평을 피해 끝수의 수레를 타고 나인들의 은신처로 왔으니, 나 잡아가쇼가 돼버렸지요.
그런데 나인들과 해례를 찾는 이신적, 심종수, 정기준이 각기 다른 꿍꿍이라 정신을 못차릴 정도입니다. 정기준파, 이신적파, 심종수파로 나뉘어 나인생포 쟁탈전을 벌이고 있고, 여기에 태평관의 청위까지 가세에 일이 삼파전 사파전이 되고 있는 양상이지요.
밀본이 와해될 것은 이미 시작부터 감지되었던 일입니다. 삼봉의 대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기득권싸움으로 변질되어 갔고, 글자를 막겠다는 이유로 자행된 방법들은 이미 성리학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으니 말입니다. 세종의 백성을 향한 명분 앞에 정기준과 밀본의 대의가 명분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죠.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명분과 대의, 이상의 크기가 달랐기 때문이었죠. 정기준의 여전히 큰 바다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글자를 막으려 하는 정기준의 성리학적 대의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도에게 성리학 위에 글자를 두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글자를 막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도와 화해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불씨의 일대기를 펴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견고한 자기만의 틀속에 갇혀버렸지요. 백성들이 쉽고 익숙한 것부터 글자를 익힌 다음의 것을 보지 못한 우를 범하고 만것이에요. 글자를 익힌 백성이 삼강오륜을 배우는 것은 더 쉬울 일이며, 성리학적 질서를 깨닫는 길도 가깝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글을 익힌 사대부조차도 5만자나 되는 한자를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음과 훈을 쉬운 글자로 표기해 둔다면 한자를 익히는 사대부들에게도 좋을 일이요, 까막눈 백성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인데도, 정기준은 불씨일대기를 찍었다는 이유로 글자가 끼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미 역병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글자지만, 해례가 중요한 것은 글자의 창제원리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메모리 저장탱크 소이의 머리에는 발음원리와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가 들어있지요. 스물여덟 글자의 창제원리와 소리내는 방법, 초성 중성 종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글자가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발음하는 지에 대한 것들이 들어있기에 중요합니다. 나인들도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은 알지만, 종합적인 정리자료는 소이의 머리속에 들어있기에 나인들 중에서도 소이는 중요한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알게 된 채윤까지 꼬리잡기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예고편을 보니 개파이가 채윤과 한판 뜰것으로 보이더군요. 그동안 설왕설래 의견이 분분했던 무술서열이 곧 정리가 될 듯도 한데, 우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급 우울입니다. 목숨이 위험한 소이, 개파이와 강채윤이 누가 우세할지 모르지만, 채윤이 밀릴 것같아 강채윤도 걱정, 이쯤되니 누군가 하나 죽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그림자가 엄습해 와서 말입니다.ㅜㅜ 죽이면 작가들 미워할거얌!!
뭉클했던 것은 세종이 강채윤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글자가 쓰이기 위해서는 반포와 유포 두가지 방책이 필요하다고 한 대목에서 입이 벌어지게 하더군요. "반포는 내가 맡을 것이나 유포는 소이가 맡아야 할 것이다. 위험한 일이니 네가 지켜줘야 한다". 유포와 반포가 완수되면 소이를 데리고 떠나라며, 그 때까지는 소이를 내 사람으로 남겨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세종과 소이는 설사 이 일을 하는 중에 누구 하나 죽더라도 남은 사람들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라고, 비장한 약속을 했지요. 소이가 "그 일을 하다가 위험에 처하거나 죽는다 하더라도 자기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걸리네요.

대신들 앞에서 고개숙이는 임금, 자신의 독단에 대해서 만큼은 진정으로 사과하고 할 줄 아는 임금 세종은 잘못을 권위로 누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학사들을 죽인 것에 본인의 과오때문이었다며, 정치적 보복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밀본 역시 그가 품어야 할 백성의 한 조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정치관이 다르다하여, 역적으로 몰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고개숙여할 부분에서는 과오를 인정하고, 품어야 할 백성은 자식을 잃은 슬픔마저 누르고 품습니다. 설령 죽음이 그 일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백성을 위한 글자반포를 멈추지 않겠다는 세종이지요. 세종의 정치철학이 민본과 애민임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결정체인 한글의 창제와 반포과정을 통해 부상하고 있는 것은 세종의 백성에게로 가는 리더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라경영과 정치를 회사경영쯤으로 생각하는 분들과는 다른 리더십입니다. 독단과 독주가 아니라 반대의견에는 귀를 열고, 끊임없는 자기검증을 통해 실효성과 필요성을 확인하고 묻는 자세는 정치지도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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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2 08:16




40여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세종과 정기준, 두 사람의 만남이 이리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당혹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세종이 마지막으로 설득하고 품어야 할 사람이 정기준임을 알기에, 조금 더 아껴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은 세종도, 강채윤도 알게 되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겠지요. 소위 사대부의 보이지 않는 실세 밀본 본원이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조직을 이끌어 왔다는 것은 까무라칠 일이지요. 무엇보다 세종이 정기준을 어떻게 설득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즈음해서,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했던 역사적 의미를 보여 준 최만리와의 대화는 곱씹어야 할 명대사였습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설득하고 그의 사람으로 만들 논리가 최만리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방지를 만난 강채윤, 제자이기에 앞서 그와 너무나 닮은 꼴인 강채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이방지는 강채윤이 밀본과 뜻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요.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주군의 여자를 연모하고 있는 모습이 지난날의 자신과 같음에 마음이 천근만근이지요.
이방지가 무휼에게 채윤과 소이의 앞날을 약속받는 장면이 가슴 찡했고, 주상이 하지 않는다면 무사로서 목숨을 빚진 자로서 약속한다는 무휼의 말은 금강석보다 강해 보였던 명장면이었죠. 칼을 든 무사들의 진정한 약속, 칼을 두고 맹세하는 모습이었기에 더욱이나 인상적이었더 장면이습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든 것이 중화를 거스르고 조선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사대부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투신자살한 유생 박세명, 그가 남긴 격문이 도성 곳곳에 나붙어 조정대신들의 글자반포에 대한 반대와 세종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지기만 합니다.  
세종과의 독대를 청한 최만리, 세종이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는, 군주이기에 앞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역사학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더이다.

최만리는 자신을 밀본이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려도 좋다며, 밀본이 노비 서용의 과거급제 사건을 통해 모두가 글자를 아는 세상이 가져올 혼란을 말했다고 하지요.
"진정 그것이 혼란이기만 한 것이냐? 백성들이 글자를 안다면 배우고자 할 것이고, 잘 살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삶의 즐거움을 찾아 살아서 꿈틀거릴 것이다".
그 꿈틀이 신분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최만리의 반박에 대한 세종의 일갈은 통쾌하기 까지 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무너진다. 영원한 것이 어디있더냐. 전조 고려 전조를 보아라. 정체되어 썩다 사대부들에 의해 귀족들은 멸했다". 
최만리는 지지않고 지금은 고려와는 달리 시험으로 본다고 전조와의 차별성을 말하지만, 세종은 그 어폐를 꼬집습니다. "그 시험은 무엇으로 보느냐? 너희들만 아는 너희들의 글자 한자로 시험을 본다. 정작 한자를 아는 너희들만 관료가 되는 것 아니냐? 이대로라면 100년 뒤에는 서얼들의 과거가 금지될 것이고, 200년이 지나면 양반들만 시험을 보게 될 것이고, 300년이 지나면 양반을 사고팔고 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조선은 그렇게 경직될 것이고, 그 폐해 또한 날로 심해질 것이다. 역서를 보아라. 어느 나라의 역사든 다 그렇지 않느냐. 하여 그 폐해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희망으로서 글자를 만든 것이다".
최만리는 더 거세게 반발합니다. "하오면 양반을 없앨 수 있습니까? 노비를 없앨 수 있습니까? 사농공상의 지위를 없앨 수 있습니까?".
"못한다. 못한다. 못한다".
"헌데 글자라는 희망만 백성들에게 내리면 그 희망으로 고신당하는 백성들은 어찌 합니까?".
"그것 또한 역서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길을 모색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찾고 찾는 중에 싸우고 타협하여 이뤄가야만 조선은 천세만세를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전조 고려처럼 썩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만리와의 대화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임금이 신분질서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40 여년 밖에 되지 않은 갓 시작된 조선의 임금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드라마속 세종이 조선의 앞날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점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더군요. 이후 서얼금고법으로 서얼이 과거시험을 영구히 보지 못하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임진왜란후 세종의 말 그대로 조선사회 신분질서의 혼란으로 양반을 사고파는 일들이 성행했으니 말입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성리학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성리학으로 세워진 나라가 성리학의 이념논쟁, 일례를 들어 예송논쟁으로 시작된 당쟁이 조선을 정체되게 했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멸망하게 되었으니, 실로 세종의 혜안은 600년 뒤를 내다봤던 아니겠습니까. 세종의 글자가 한글로 통일되면서 보편화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망한 이후였으니, 개탄스럽기 까지 합니다.
한글이 조선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백성들의 의식은 세종의 말대로 꿈틀대며 일어났고, 신분사회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기에 이르렀으며, 공자왈 맹자왈 서책이나 끼고 한량짓하던 양반들은 도태되어 몰락하게 되었으며, 잡학이라 천시하던 잡문에 능한 중인, 양인들이 부를 축적해 갓떨어진 양반들을 조롱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나왔으니 말입니다.
세종은 성리학, 한자의 한계를 이리도 멀리 내다봤던 것입니다. 왜냐? 성리학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며, 기득권자들은 그 기득권으로 인해 망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집중되고 정체되어 있으면, 필히 그 권력에 맞서는 새로운 권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천년만년 갈 것같았던 고려가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신흥권력에 의해 망하는 것을 보았던 세종, 권력이란, 지배층이란, 영원히 보장된 금줄이 아니라는 것을 세종은 역사를 통해 알았던 것이지요.
세종이 백성에게 눈을 돌린 것은 드라마속에서는 똘복이의 모습을 통해서였지만,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 백성이 주인공이 될 세상을 똘복이를 통해서 봤습니다. 백성은 분노하지 않는자가 아니라, 다만 분노를 감추고 있다는 것뿐임을, 그리고 분노할 이유 앞에서는 누구보다 무섭게 분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기준을 만나기로 결심한 세종, 그러나 행방이 묘연해진 이방지로 인해 정기준과의 만남은 불발되었지요. 마음이 심란한 세종은 무휼과 소이만을 데리고 정륜암에 오르고, 고기를 싸서 따라온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밝히면서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대치상황으로 뿌리깊은 나무 18회가 끝났습니다.
고기를 써는 개파이의 꽃반지를 보고 그가 탈바가지를 썼던 고수였음을 알아챈 무휼이 칼을 빼들고, 무휼과 개파이를 보던 세종이 가리온의 눈빛에 놀라 멍해져 있는데, 정기준이 뒷짐을 지고 그의 정체를 밝혔지요. 귀싸대기를 열두번도 때려주고 싶은 싸갈통 머리없는 모습으로 세종앞에 선 정기준에게, "네가 정기준이냐?"며 냉소로 마주하는 장면은 돈주고도 못볼 명장면이었습니다.
정기준, 그가 누구입니까? 성리학, 유학의 질서를 목숨보다 숭배하는 자 아닙니까? 그런데 삼강오륜이 기본인 자가 임금 앞에서 뒷짐을 지고 이름자까지 뱉는 모습은 이미 그의 사상적 오류를 고백하는 장면이나 다름없었지요. 세종을 시해하고 반역을 결심했다기로 서니, 그는 그가 신봉하는 성리학에서 단정하는 패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안 세종, 아니 한석규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냉소에 전율이 일더군요. 경악의 눈빛도 아닌 썩소를 날리다니, 반전 중의 반전장면이었으며 한석규가 해석하는 세종은 명물 중의 명물임을 느끼게 했지요.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비웃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을 향한 욕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실망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삼봉의 조선을 훔친 이방원의 조선,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어린 세종에게 자괴감을 안겨주었던 오랜 트라우마의 근원 정기준은 그렇게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고작 보여주는 것이 집현전 학사들을 죽이는 폭력이었고, 노비의 장원급제와 유생의 죽음으로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동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비웃었던 이방원의 모습과 빼다박은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정륜암에서 벌어지게 될 고수들의 대결과 함께 뭔지 모를 불안한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지만, 세종과 정기준이 벌일 논쟁의 승패는 세종의 냉소에서 이미 판가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정도전의 건국이념에 발이 묶여 한치의 발전도 없는 모습으로, 오히려 퇴보하고 정체된 모습의 정기준이었기에, 세종은 정기준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어린 유생시절의 패기와 의협심, 냉철한 지성은 사라지고, 왕권을 견제하는 재상총재제를 구현하겠다는 빌미는 있었지만, 정작 사대부 선비정신을 버린 것은 정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냉소 속에 읽혀졌던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 비웃음, 욕, 실망감은 그때문이었겠지요. 웃음 하나에도 내면을 모두 담아내다니, 한석규 무서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력입니다.

***'뿌리깊은 나무' 이전 리뷰글들 대부분이 또다시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ㅠㅠ.
글만 복구해서 다시 올려놓겠습니다. 워낙 애착이 있는 작품이고, 심혈을 기울여 쓴 글들이라 제 블로그에도 꼭 남겨두려고요.
 
* 다음 Life On Award 2011 커뮤니티 '티스토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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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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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함구령까지 내렸다는 정기준의 정체에 대해 많은 궁금증과 추측들이 오가고 있는데요, 그중 가장 설득력있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 백정 가리온(윤제문)일 듯합니다. 가리온의 호위무사같기도 하고, 가리온이 그의 호위무사같기도 한 의문의 사나이 개파이(김성현) 역시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는 강력한 후보 중의 한사람이죠.
그런데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존재감과 무게감이 백정의 역할에 그치기에는 화면장악력이 너무 크죠. 곤구망기를 저자에 퍼뜨리고 다니며, 그 얄팍한(?) 학식을 자랑하고 다녔던 한가놈(조희봉)도 용의선상에 올려 놓았지만, 그냥 글좀 읽는 허풍쟁이 양반캐릭터가 더 맞을 듯하고요.
이미 많은 분들이 세종과 가리온의 독대장면에서 가리온의 범상치 않은 대사를 통해, 그가 큰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짐작했을 겁니다. 허담의 사인이 건익사공이라고 밝혔던 가리온이 이런 말을 했었지요. "이샤영 대감을 따라 다닐 때 북방오랑캐한테 들었습니다". 세종이 이세영을 도와 무언록을 편찬한 것을 칭찬하자, 가리온이 의미심장한 대사를 했지요. "어릴 적 소인의 아비가 도적들한테 화살 수십발을 맞고 죽었습니다. 젊은 혈기에 큰일을 내려는데 이세영대감이 절 달래서 중국으로 데려갔습니다. 은혜는 소인이 입었습니다".
워낙 천한 백정의 역할을 윤제문이 잘 소화를 하고 있기때문에 그를 정기준이라고 의심할 수 없게 하지만, 이 대사를 들은 우리 눈치빠른 시청자들은 곧바로 그 은유적인 말뜻을 파악하기 바빴지요.
정도광과 정기준을 추적해 오던 조말생에 의해 정도광이 반촌에 들어갔음이 발각되었던 날, 악연인지 인연인지 이날 똘복이가 반촌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나오다, 정도전의 밀지와 똘복이 아버지 유서가 뒤바뀐 일이 있었지요. 도망치던 정도광은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죽음을 당했고, 목숨을 구한 윤집사가 아들 윤평과 정기준에게 정도광의 죽음을 알렸죠. 복주머니 주인을 반드시 찾으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지요.
화살 수십발을 맞고 죽었다는 말은 정도광의 죽음과 일치하고, 도적이라는 표현은 정기준이 과거 세종에게 했던 말과 일치했지요. "네 아비(이방원)는 삼봉의 조선을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 라고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정기준의 정체를 노출시킬 제작진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가리온(윤제문)이 조선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이라는 사실입니다. 감히 사대부가 칼을 쥐고 짐승을 도축하는 일은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더구나 밀본의 본원께서 말입니다. 또한 시체검안에서는 조선최고라는 말처럼, 사대부가 죽은 시신에 손을 댄다는 것은, 그들이 목숨처럼 받드는 공맹의 도에 심히 어긋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리온은 용의선상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빌미가 되기는 하죠.

그러나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또한 비록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기는 하지만, 천한 백정치고는 그가 상당히 학식이 있고, 배운 티가 난다는 것이 그를 강하게 의심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화살꽂이가 되고, 일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한 정기준에게는 이방원은 죽이고 싶은 원수였을 겁니다. 하지만 글을 내세운 분들은 원수를 갚겠다고, 똘복이처럼 직접 칼을 들이대지는 않지요. 권력을 가진 자에게서는 권력을, 부를 가진 자에게서는 부를 빼앗아 더 잔인하게 복수를 하지요. 
왕을 단지 화려한 꽃일 뿐이며, 꽃이 부실하면 꺾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재상체제를 세우기 위해 밀본이라는 비밀조직까지 만들었던 정도전 일가의 소생이라면(아, 물론 드라마상 이야기입니다), 짐승을 도축하고 시신에 칼을 대는 일도 하며 와신상담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요. 더구나 어린 정기준의 어린 시절 성정을 보면, 독기가 폴폴 넘쳤던 인물같아 보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정기준의 아역배우의 연기미흡때문에 이런 인상을 남겼을 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죠.

그리고 어린 정기준의 얼굴과 윤제문의 얼굴형을 보니 상당히 닮은 구석도 있더군요. 넙대대하고 쌍커풀없는 모습은 싱크로율이 상당히 일치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말생이 세종 이도에게 보여준 암행록에 그려진 정기준의 용모파기를 보니, 싱크로율 거의 100% 일치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용모파기에 그려진 귀와 윤제문의 귀였습니다. 부처님 귀처럼 크게 늘어진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더군요. 별걸 다 가져다 붙인 것 같죠?ㅎㅎ

정기준의 몽타주는 하나의 단서일 뿐이지만, 저는 지난 회 세종의 독백을 들으며, 순간 또다른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강채윤이 이런 말을 했었지요.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종의 방백이 이어졌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20여년이 흐른후 밀본의 3대 본원임을 알리며 등장한 정기준, 정기준도 강채윤이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궁으로 들어온 그 강한 결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채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칼을 갈아온 정기준입니다. 멸문지화를 당한 정기준은, 정기준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유배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태종과 조말생이 끈질기게 그를 추적했었기에, 조선에서 발붙이고 살아남기는 어려웠고요. 역적인데 살려둘 리가 없죠.
그러나 알게 모르게 이방원의 칼의 정치를 혐오한 사대부나 조정대신들은 입밖으로 내서는 안되는 이름 정도전을 흠모하고 따랐으며, 정신적 지도자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무언록을 편찬했다는 이세영도 그쪽이었을 듯합니다. 그래서 정기준을 중국으로 데려가 살렸다고 보여지고요. 

또 하나의 가정은 가리온과 이방지(우현)의 관계입니다. 출상술을 통해 윤평이 강채윤과 마찬가지로 이방지의 제자였음이 드러났고, 윤평은 수하에게 이방지를 수소문하라는 명도 내렸지요. 그리고 더 의심스러운 점은 건익사공이나, 대침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가리온이 정학하게 알았다는 점입니다. 허담의 사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건익사공을 아는 자의 소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북방오랑캐에게 들었다는 것치고는 너무 허술한 대답이었죠. 시체가 검안소에 왔을 때 옷깃에 물이 묻어있었다는 말도 과장이 심했고요. 물 한바가지를 들이부었다면 모르겠지만, 거의 한방울로 비강을 막아 죽이던데, 옷깃을 적실 정도의 물을 흘렸다는 것도 이상하죠. 
그런데 가리온은 너무나 정확하게 그 사인을 집어 냅니다. 윤필학사의 주검을 보고도 한방에 머리 뒤에서 대침을 뽑아냈지요. 물론 시신의 상태를 보고 추측을 했을 수도 있지만, 너무 귀신같지요. 이는 살해의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집현전 학사를 죽인 윤평은 이방지로부터 배운 방법을 사용했고, 이방지와 가리온, 윤평이 서로 연결되는 인물이라면, 가리온은 윤평이 살해한 방법을 시신의 상태만으로도 유추해낼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죠.

또 하나 이방지는 조선제일검 무휼에게 유일하게 패배의 상처를 준 인물입니다. 이방지와 무휼은 왜 싸웠을까요? 이는 이방지가 무휼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하고, 확대해석하면 이방지는 이방원의 사람이 아닌, 정도전의 사람이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 가정이 맞다면 이방지-가리온-윤평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고요.
20여년전 이신적(안석환)에게 사람들 틈으로 숨어들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정기준, 그는 철저하게 신분을 감추고, 말투도 바꾸고, 가장 의심하기 힘든 사람으로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죠. 도담댁이 있는 반촌, 백정이라는 신분은 정기준을 감쪽같이 감출 수 있었고, 굳이 밤이슬을 맞아가며 숨어다닐 필요도 없을 것이고요.

정기준이 가리온이라면, 시청자들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정말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똘복이가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한 길을 걸어왔듯이, 세종 이도가 문이 통치하는 조선, 백성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한 길을 걸어왔듯이, 정기준은 백정이 되어서까지 재상중심의 조선을 꿈꿨던 정도전의 조선을 되찾겠다고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이 닮아있지 않나요?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길을 어쩌면 이 세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걸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약 가리온(윤제문)이 정기준이 맞다면 말이죠. 그리고 눈여겨 볼 재미있는 구도는 이 세사람이 큰 틀의 조선이라는 거예요. 똘복이-백성, 정기준-양반사대부, 이도-왕이라는 큰 틀말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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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4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장성수의 죽음과 함께 공개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밀본, 세종을 흔들고 있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입니다. 무휼에게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심하게 흔들리는 세종 이도였지요. 그리고 이도를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똘복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궁녀 소이가 자신을 잡아줬었지요. "전하의 탓이 아니옵니다"라며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 8회에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세 사람을 대조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이도를 향한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강채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소이,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른 조선, 이도가 꿈꾸는 조선을 세우기 위해 잠 못 드는 세종을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모습으로 그렸지요.
가히 미친 연기력이라 할 수 있을 한석규의 연기는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군요. 핏발을 세우지 않고 목소리의 강약만으로도 분노와 불안, 그 내면심리까지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배우 한석규는 걸음걸이마저 세종에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군요.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지만, 한석규는 용포 속 고뇌하는 고독한 군주 인간 세종 자체였습니다.

경회루에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는 글귀와 함께 실려온 장성수의 시신에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크게 동요합니다. 누구보다 세종 이도의 충격이 큽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오수를 청하고, 주위를 물리는 세종이었지요. 이방원의 망령과 싸우는 세종. "군왕이란 그런 것입니까?" 이방원은 세종을 또다시 비웃습니다. "권력의 독은 안으로 감추고, 오직 인내하고 참겠다고? 그게 사람의 길일 줄 아느냐? 내가 걸었던 길보다 훨씬 더 참혹할 거라고, 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다시 비웃는 듯하지요. "예, 참혹합니다. 허나 소자는 아버지와 다르옵니다. 의심하고 낚고 베고 죽이지 않겠습니다. 결코."

경연을 준비하라고 이르고는 경연장으로 간 세종은, 엉뚱한 주제로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회의안건은 "세법이요". 어안이 벙벙해진 대신들에게 세법 가부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13년 고을민의 반대로 부결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침착하게 응수하는 세종입니다. 세법혁파야말로 대신들과 유림의 기득권 문제가 걸린 사안이었기에, 광평대군마저도 세종의 저의를 의심하고 걱정하지요. 반발세력을 걸러내 밀본을 추리겠다는 숙청의 의도로 받아들이는 광평대군이었지요. 광평대군에게 "나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마라"라고 일축하는 장면에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상소문을 다시 읽는 세종. 무휼 역시 흔들리는 세종을 걱정합니다. "심기를 굳건히 하라"는 말에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는 세종.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인데. 그런데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할 때도, 대명(大明)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다, 국고가 낭비된다, 신분질서가 어지럽혀진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 자기네들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야."

한석규의 연기에 입을 쩍 벌리고 들으면서도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요. 세종이 세우고자 하는 조선은 자주 조선이었으며 실용의 조선이었고,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가 등용되는 조선이었으며 백성의 애환을 살피는 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을 세우겠다는 세종을 왜 반대하고, 밀본이라는 개떡같은 조직이 조선을 흔들려고 하는지 세종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장성수의 시신과 함께 보낸 밀본의 글귀를 읽은 세종이 혼잣말로 "염병"이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정말 염병할 사대주의자들이죠. 한석규가 염병이라고 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세심한 연기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지문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동요하고 흔들리고 자신 없는 세종. 그가 발길을 향한 곳은 집현전이었지요. 문(文)의 통치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조선과 다른 조선을 보이겠다고, 경연하고 쟁의하고 합일점을 찾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만든 집현전. 그곳에서 세종은 젊은 자신과 만나지요. 젊은 세종(송중기)의 환시와 싸우는 세종의 모습은 주눅이 들어 있었고, 자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의 모노심리극 같았던 젊은 이도와 중년 이도의 만남은 세종의 내면적인 갈등이 얼마나 극에 달해있는지와 함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세종을 보여준 장면이었지요. "네놈의 그 한심하고 잘난 결심이 이렇게 만든 거야. 네놈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이방원의 무덤에 가서 눈물 흘리며 사죄해라.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깜짝 등장한 송중기, 조소하고 조롱하는 연기를 소름 끼치게 잘하더군요. 송중기의 조소하는 눈빛에 공포와 죄책감에 질려 가늘게 떠는 한석규의 연기는 수천 개의 바늘로 몸을 찔러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왜 한석규인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기도 했고요.

젊은 이도와의 싸움은 자기 사람을 잃게 한 자책감으로 분노하고, 젊은 이도에게 책망받는 유약한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갈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세종의 내면을 말했던 것이지요. 후배와의 연기에서 자칫하면 한석규의 카리스마 혹은 압도감에 송중기가 묻힐 수도 있었을 장면이었지만, 한석규는 송중기를 이기려고 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파르르 떨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흔들리고 갈등하는 세종의 심리였고, 또한 강채윤과의 만남에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극기의 과정과 연결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저 카리스마 풀풀 넘치는 모습으로 송중기와 독대를 했다면, 가장 중요했던 장혁과의 장면에서 우직하게 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극적 절정감을 주지는 못했을 겁니다. 완벽하게 세종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나오기 힘든 심리싸움을 그린 명장면이었습니다.

소이의 뒤를 밟던 강채윤은 장성수가 남긴 서책을 일부러 흘리고는 소이의 행동을 지켜보지요. 놀랍게도 소이는 서책을 읽더니만 책을 갈기갈기 찢어 불살라 버리죠. 그리고는 반촌의 가리온을 찾아가 불면증 약재를 구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소이의 이상한 행동에 처소까지 따라 간 강채윤은 소이에게 산조인을 먹지 말라며 나직히 말하지요. 강채윤은 소이가 산조인을 왜 먹는지를 알았지요.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지요.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잘 수 없는, 아니 스스로 잠을 자면 안 되도록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사연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약으로 고통을 이기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채윤에게 "어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묻는 이는 뜻밖에도 이도였지요. "아무 죄 없는 아비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일 수 있는 이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혹여 잠이라도 들면 아비가 무서운 모습으로 이유라도 말해달라며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나타날까봐." 어찌 고쳤느냐는 세종의 물음에 강채윤은 아비를 죽게 한 사람에게 복수할 결심으로 고쳤다고 대답하지요. 복수를 결심해야 하니 몸은 더 지치고, 모든 인생을 그것에 걸어야 하는 마음은 참혹하다는 강채윤에게 이도는 또 묻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길을 가느냐고 말이지요.
"결심이 왜 결심이겠습니까? 결심 없는 소인은 더이상 소인이 아니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강채윤의 말을 되뇌는 세종은 흔들렸던 자신과 똘복이를 비교해 보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그 참혹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똘복이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겠다는 채윤에게 "넌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며 발걸음을 돌리지요. 강채윤이 가겠다는 길이 이도 자신을 죽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라는 말에 보좌하고 있던 무휼이 크게 놀라지만, 세종은 모든 갈등을 털어냈다는 듯이 그의 길을 향했습니다. 휘청였던 세종의 발걸음은 어느새 곧추 서 있었고, 허허롭게 웃음 짓던 세종의 얼굴은 단호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이방원의 칼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마방진으로 숨어버렸던 이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는지 회의가 들어서, 또다시 마방진으로 숨으려 했던 이도였습니다. 그리고 강채윤을 보며 아버지와는 다르리라 결심했던 그 결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이방원에게 목숨을 내놓고 구했던 첫 백성 똘복이. 이도를 처음으로 임금이게 했던 똘복이가 그를 일깨웁니다. 외롭고 더 참혹해진다 해도 이도이기에 가야 한다고, 임금이기에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똘복이 아버지 석삼이. 글을 몰라 아버지와 친구를 잃었던 소이.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보낸 서찰 한 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을 때, 이도는 나의 나라에서 글을 몰라 죽는 백성은 없게 할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전이 그리라는 대로, 글자 아닌 그림을 그리는 백성들. 그것이 누구를 위함인지도 모르는 백성들은 석삼이, 똘복이, 소이입니다.
세종은 똘복이를 첫 백성으로 얻고, 수많은 똘복이들을 만나려 했습니다. 한글은 똘복이를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똘복이 너는 나를 만나러 왔느냐, 나는 너(백성)를 만나러 가겠다', 이방원 없는 천하, 그날 그 굳은 결심 앞에 다시 선 세종 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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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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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이 남긴 사자전언으로 20년만에 재등장한 밀본, 곤구망기(ㅣ口亡己)를 통해 세종이 비밀리에 그의 비밀조직인 천지계원들과 하는 일이 한글창제임을 드러냈지요. 곤구망기에 대한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지만, 여전히 모든 사건의 핵심이 들어있는 한자가 풀리지 않아 전전긍긍했네요. 
풀리지 않은 의문은 윤필이 남긴 군나미욕(君那彌欲)이라는 글자인데요, 아무래도 내용 일부가 불에 타서 없어진 듯하지만, 군나미욕이라는 글자는 강채윤이 한글창제를 둘러싼 비밀에 접근하게 될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문을 품어야 할 대목은 왜 윤필이 집현전으로 들어가려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고자 함이었는지 입니다.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으로 집현전은 출입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집현전  학사들은 사가독서를 하라는 명이 떨어졌지요. 집현전으로 둘어가려던 윤필을 때마침 순찰을 돌던 강채윤에 의해 제지당하고, 1차 진입은 실패했지요. 윤필은 그날밤 다시 집현전으로 몰래 들어갔고, 윤필은 무엇인가를 찾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윤필은 서고가 아닌 허담이 죽은 책상을 뒤졌죠. 책상 아래에서 비밀문서통을 발견하고 펼쳐 읽고 있던 순간, 강채윤에 의해 발각되었고 말이죠. 그리고 문제의 타다남은 군나미욕이라는 글이 쓰인 비밀종이를 불에 태워버리려고 했지요.

불에 던져진 종이를 강채윤이 출상술을 이용해 건져냈고, 초탁의 구슬에 나가떨어진 윤필은 잠시 기절상태였습니다. 그때 부엉이 소리가 들리더니, 가면(윤평-이수혁)이 나타나 윤필을 납치해 유유히 빠져나가버렸죠. 윤평 역시 출상술을 썼고, 강채윤은 스승 이방지에게서 배운 출상술을 또 쓰는 놈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요.
강채윤은 불에서 건진 종이를 무휼에게 보고하지 않고 숨기고 있는데요,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곳곳에 미스터리를 풀 단서들을 남기고 역으로 풀어가는 방식에 능한 작가들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단서라고 볼 수 있지요.

군나미욕에 대해서는 허담의 죽음부터 거슬러 갈 필요가 있는데요, 허담과 고인설은 비바사론(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과 관계된 인물이지요. 허담이 죽은 날 비바사론도 함께 없어졌다고 나왔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 비바사론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담댁과 가면 윤평과의 대화에서도 비바사론에 대한 얘기는 없었고, 밀본의 핵심조직원으로 밝혀진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 역시도 비바사론에 대한 것은 언급을 하지 않았지요.
밀본에서도 천지의 조직원들을 다 파악한 것은 아니고, 핵심요원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요, 성삼문과 박팽년조차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고, 곤구망기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8명밖에 없다라고 한 세종의 말을 빌어보면, 그 조직이 철저히 비밀에 가려진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리 장성수(류승수) 역시도 천지계원이고, 성삼문과 박팽년보다는 핵심인사 같아 보이더군요. 윤필이 타살되었다는 성삼문의 말에도 "그런 소문을 왜 나만 모르고 있었느냐"며 시치미를 떼는 모습도 의뭉스럽게 보였고 말이지요.

그럼 윤필은 왜 허담이 죽은 현장을 가려했던 걸까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천지계는 2인1조로 운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한 조일 가능성이 크고, 허담과 윤필이 또 한조일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각자 비밀리에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서로 공유를 했고요. 따라서 허담이 강채윤으로 부터 건네받은 비바사론에 대해서는 세종과 정인지, 무휼말고도 허담과 윤필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요.
 
허담이 집현전 번을 섰던 날 살해를 당했다는 것은 집현전 내부에 첩자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심종수(한상진)의 정체를 통해 풀렸지만, 비바사론이 집현전 내부에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중요한 일을 공개적으로 기록할 수도 없었고, 같은 팀이었던 한림과 윤필은 자신들이 연구한 것을 비밀리에 집현전에 남겨두기로 했겠죠?(제 추측).

윤필과 허담은 같은 것을 정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글은 자음과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글자지요. 집현전 학사들은(한글프로젝트팀)은 각자 팀별로 우리 말 첫소리 중간소리, 끝소리를 각자 분담해서 정리를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산스크리트어로 된 범어 경전 비바사론입니다. 산스크리트어를 보면 우리 한글과 비슷한 모양이 많아 그 어원에 대한 논쟁도 뜨거운데, 이런 것은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닌 듯해서 패스합니다만, 여하튼 허담과 윤필은 같은 글자를 연구하던 팀이었던 듯합니다. 

군나미욕이라는 글자(임금군, 어찌나, 두루미, 하고자 할 욕)를 가지고 이뜻 저뜻 만들어 봤지만, 스토리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너무 골머리를 쓴 탓에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오더라고요. 
그런데 6회에서 곤구망기라는 사자전언을 밀본이라고 푸는 세종을 보며, 퍼뜩 찾아보고 싶은 자료가 있었어요. 세종이 곤구망기를 보고 '밀본'이라는 글자를 조합한 것은 이미 ㄱ, ㄴ, ㄷ, ㅏ, ㅗ, ㅣ 등의 28글자를 거의 만들었음을 의미하고, 그것을 소리내어 읽는 방법까지 일렀음을 말하지요. 훈민정음은 그 공표를 두고, 3년의 시간차를 두었지요. 1443년에 이미 완성되었는데, 1446년에야 공포를 했으니 말입니다. 이는 보완해야 할 문제도 있었지만, 그만큼 한글을 둘러싼 반발세력의 저항에 부딪쳤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대주의 유학파 최만리같은 학자가 대표적이지만, 중국의 견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그 비밀스런 기간을 픽션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니, 군나미욕의 궁금증이 풀렸네요. 군나미욕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술된 '예'였습니다. 윤필과 허담은 훈민정음 창제한 이유과 글자를 읽는 법을 정리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리작업 일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작업은 비밀점조직으로 구성되어 각각 팀별로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일부인데요,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은 분들은 직접 훈민정음 해례본 자료를 참고하시면 될 듯하고요, 여기서는 군나미욕에 관련된 것만 정리합니다. 해례본 사진자료에서도 'ㄱ'과 'ㅇ'에 관한 부분을 보면 군(君)자와 욕(欲)자의 첫소리라는 것이 쓰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ㄱ. 牙音이니 如君字初發聲.이요 竝書하면 與字初發聲하니라
ㄱ는 엄소리니 군(君)자의 처음 펴어 난 소리와 같으며
ㄴ.舌音이니 如那字初發聲하니라
ㄴ는 혀소리니 나(那)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ㅁ.脣音이니 如彌字初發聲하니라
ㅁ는 입술소리니 미(彌)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ㅇ.후음이니 如欲字初發聲하니라
ㅇ는 목소리니 욕(欲)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첫소리(자음) ㄱ. ㄴ. ㅁ. ㅇ을 소리내는 한자 예가 군나미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윤필과 허담은 ㄱ,ㄴ,ㅁ,ㅇ 에 대한 정리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세종의 치밀한 조직관리때문에 더 놀랐습니다. 또한 혀소리, 목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등등으로 세분화하여 얼마나 체계적으로 만들었는지, 새삼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창조물인가에 깊은 감사와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똥지게를 진 모습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올 줄 아는 세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극중에서는 똘복이가 지랄이라는 말을 하는 것에 놀라고, 궁녀들에게 저잣거리의 천한 말을 배우기도 하고, 욕도 하는 세종이지만, 진정으로 백성의 모든 소리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어쩌면 반쪽짜리 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우리 말 발음중 격음이나 경음은 비속어나 욕에 많이 들어가죠(이를테면 ㅇㅇ끼라든가, ㅇ발같은 말). 세종이 욕을 몰랐다면, 고매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그래서 백성들의 소리, 신음소리, 하다못해 개새끼 왕왕거리는 소리까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자음 한 두개, 혹은 모음 한 두개가 빠진 한글이 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세종이 태종의 처소를 나오며 방백하는 장면이 있었지요. "아버지는 제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십니다"라고요. 세종 자신조차도 몰랐을 듯합니다. 한글이 얼마나 엄청나고 위대한 업적인지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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