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한섬'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3.18 '추노' 대길과 송태하의 죽음암시, 누가 죽나? (31)
  2. 2010.03.18 '추노' 좌의정 이경식 손아귀에 놀아난 혁명 (16)
  3. 2010.03.12 '추노' 무거운 사랑에 가벼워진 혁명 (27)
  4. 2010.02.16 '추노' 언년이가 혁명에 방해된다는 이상한 논리 (43)
  5. 2010.02.11 '추노' 위험수위 넘나드는 귀여운 작업남 왕손이 (31)
2010.03.18 12:52




추노 21화에서 유의깊게 봤던 것은 송태하가 길게 소현세자와 청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정리하던 부분과 대길이 최장군에게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작별하는 장면이었어요. 특히 대길이가 최장군을 향해 손까지 흔들며 대길이 답지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섬뜩했는데요, 이에 못지않게 송태하가 남겨 둔 기록을 원손 석견에게 읽어주는 언년의 모습이 송태하의 죽음을 복선으로 깔아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모를 두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는 냄새가 짙게 깔려있다는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송태하와 이대길 두 사람이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둘 중 한 사람은 살리지 않을까 기대도 가지고 있는데, 아마 누구를 죽이고 살릴까 이 부분에서 작가가 머리털 빠지도록 고민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바람은 여러 번 글에서 밝혔듯이 대길이가 조선의 희망으로 살아 남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바람입니다만.
예고편에서 황철웅과 대치하는 모습도 잠깐 나왔지만, 다음 회에서 둘 중 누군가가 허무하게 죽어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제작진을 향해 폭탄테러와도 같은 원성이 쏟아질 테니까요. 그런데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죽을 것이라는 암시는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도 하나씩 복선으로 깔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의 죽음 암시
언년이는 늘 궁금합니다. 자신이 송태하의 무엇을 믿고 기다리고 따라야 하는지를요. 언년이 소현세자를 따라 청에 갔을때 무엇을 배웠고 느꼈는지를 물었지만, 송태하가 대답을 해주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어요. 아마 그 긴 대답을 장문의 글로 남겨두고자 했나 봅니다.
저는 이번회 송태하가 소현세자와의 회고록을 쓰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원손 석견을 위한 송태하의 마지막 유고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송태하는 현재 미래의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한양으로 가서 현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원손 석견에 대한 신분안전을 부탁해서 원손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송태하 자신의 안위는 보장받지 못할 것입니다. 봉림대군이 송태하의 안위까지 책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송태하는 역모죄로 수배중인 인물이고, 도망관노이며 사형장에서 도주했다는 죄목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많은 죄인입니다. 그 중 역모에 가담했다는 것은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뺄 수 없는 죄목에 해당됩니다. 봉림대군이 세자의 자리에 있다고 한들 송태하와 이번회 곽한섬이 만났던 반정무리의 수괴로 밝혀진 이재준 대감과의 관련인물들을 사면해 줄만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관노로 다시 잡아 봉역을 치루게 하고, 그 목숨을 부지시켜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석견을 왕위에 옹립하고자 했던 이재준 세력은 엄밀히 역모세력입니다. 구족을 멸할 수 있는 역적이지요. 이재준에게 병력을 요구하며 찾아왔던 곽한섬에게 "성즉군왕, 패즉역적(이기면 왕이요, 지면 역적)"이라 했듯이 역적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중심에 송태하가 있는 것이고요. 원손을 복위시키겠다는 반정기도가 들통난 마당에 원손의 사면은 불가능 할 것이고, 역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원손은 강화도에 유배되는 벌에 처해지겠지요.
원손은 강화도에 다시 유배시킨다고 해도, 역모와 관련된 송태하를 사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이재준을 비롯한 혁명동지들이 제거된 마당에 거병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송태하에게 남은 것은 잡히면 죽음, 아니면 평생 도망다녀야 함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송태하가 작성한 소현세자 회고록은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서 원손에게 남기는 소현세자의 유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태하가 지금 하고자 하는 마지막 일은 혁명도, 언년이도 아닌 소현세자의 마지막 혈육인 원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에요. 송태하의 소현세자에 대한 마지막 충절이고, 송태하가 지키고자 하는 의리인 것이지요. 목숨처럼 여겼던 사대부의 의리일 수도 있겠고요. 송태하에게 사랑과 의리를 택하라면 잔인한 선택이겠지만, 아마 송태하는 의리를 택할 것입니다. 정치라는 생리를 아는 송태하가 비록 원손의 목숨을 보장받았다고 할지라도 반정을 꾀한 자신이 무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작가가 송태하를 죽이든 살리든 작가의 펜에 달렸겠지만요.

대길의 죽음 암시
다음으로 대길이와 최장군의 작별장면에서 풍겼던 불길함도 대길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도 보여졌어요. 대길이의 환영을 위한 짝귀 산채에서의 떠들썩한 잔치도 대길에게는 가시방석입니다.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언년이때문이지요.
10년을 그토록 찾아헤매다 겨우 만났는데, 이미 남의 부인이 돼 버린 언년을 눈앞에 두고도 만져볼 수도 없는 대길입니다. 마음을 접어 보려하지만, 의지와 다르게 눈이 먼저 언년이를 행해 가버리는 대길이지요. 설화의 질투어린 눈길도, 설화가 따라주는 술도, 은실이가 가져 온 닭다리도 대길의 입에는 고무같이 질기고 쓰기만 합니다. 
안 보면 언년이의 얼굴을 지울 수 있을까 자리를 피해보지만, 하늘에 떠있는 무심한 달 속에도 언년이 얼굴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대길의 마음을 읽은 최장군이 와서 묻지요. 혼자서 뭐하냐고요. 달구경한다며 실없는 대답을 하지만, 대길이의 만갈래로 찢어지는 마음을 최장군은 다 읽지요. 그냥 다 잊고 이천으로 가서 우리끼리 재미나게 살자고 말하지만, 대길이에게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최장군도 모르지 않습니다.  
"예전엔 말이야,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눈 앞에 어른 거리는데 만져보지도 못하고... 세상 참 지랄맞게 사는 것 같아"  
그리고 대길이 갑자기 최장군! 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지요.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면서요. 왕손이 놈이랑 몸조리 잘하라며 "금방 갔다 올게" 라며 뜬금없이 웃으면 인사를 했어요. 귀엽게 손까지 흔들면서 말이지요. 송태하와 동행하기로 한 것이지요. 송태하의 안전이 언년이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 때 대길은 송태하의 동행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길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추노질 몇년에 용모파기가 조선팔도에 쫙 깔린 마당에, 그것도 원손을 빼돌린 역모의 죄를 쓰고 있는 송태하와 동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언년이의 행복을 바라는 대길이기에 위험에 처한 송태하를 보호하는 것 역시 언년을 위한 대길의 사랑이었어요. 바보같지만 그게 대길이거든요. 
 
송태하의 길을 막아서고 대길이 묻지요. "이번에 마실 나가면 니놈이랑 원손, 그리고 니놈 부인 다 잘 살 수 있는 거냐?" 고요. 평생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이냐고요. 쫓기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송태하의 대답에 한양까지 동행하겠다고 하지요. 도움이 필요없다는 말에 황철웅을 앗쌀하게 만져주겠다는말로 둘러대기도 하지만, 왕손이랑 최장군이 살아 있는데 굳이 황철웅을 찾아 복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송태하도 알지요. 진짜 이유가 뭐냐는 말에 "니네 년놈들 꼴보기 싫어서 눈에 안보이는 것에다 치워버릴라고 그런다" 라고 길을 따라 나섰지요. 송태하도 대길이 말에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피식 웃어보이기도 했어요. 이런 게 남자들 세계에서 싹트는 우정이겠지요. 
그럼 제작진은 누구를 죽이려고 하고 있을까요? 둘 다 죽이기에는 너무 허망해서 한 사람이라도 꼭 살려두었으면 싶은데 고민이 많겠지요. 저는 송태하가 소현세자의 유고집을 쓰는 장면을 보고 송태하가 죽게 될 것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언년이와 헤어지면서도 이번이 두번째라며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했었지요.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말이 오히려 불안스럽게 들렸고, 안아주는 송태하 뒤에서 하염없이 언년이 눈물을 흘렸는데 왠지 두 사람의 불행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송태하의 죽음을 암시한 것은 짝귀에게 언년이 원손의 이름을 태원이라고 하는 데서도 감지가 되었어요. 짝귀가 간 다음 송태하가 '다음에 아이가 생기면 태원이라고 이름을 지읍시다"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태원이라는 이름은 송태하가 살아 생전에 불러볼 수 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에게 혹시 태기가 있다면, 훗날 언년이 아이를 낳아 태원이라는 이름을 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조금 드라마틱하게 "태원아, 이눔의 자식, 글 공부 안하고 어딜 싸질러 돌아다니는 게야?" 라며 대길이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연상되더군요. 또 다른 장면으로는 대길이가 태원이라는 사내아이에게 길바닥 무술을 연마시키면서 혼내는 장면도 상상해 봤고 말이지요.  
송태하와의 의리는 언년이에게 태원이라는 아이로 이어지고, 대길이의 양반상놈 구분없는 세상은 비록 작은 세상이지만, 언년과의 해피엔딩으로 또다른 조선의 희망으로 남게 되고, 뭐 이런 결말을 혼자 상상해 봤습니다. 여전히 저는 대길이가 희망으로 살아남길 바라거든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죽어갔던 인물도 있었고, 권력에 이용당해 허무하게 죽어버린 인생도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죽어야 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죽어버린 인물들도 있었겠지요. 곧 죽어도 변절이 아니라며 방법적으로 다른 길을 찾으려 했다는 변명의 역사까지....
맞아요. 곽한섬이 말했듯이 한 번 진 꽃이 다시 피는 일 없고, 조선비가 했던 말처럼 수많은 실개천이 있다한들 다 바다로 흘러들지요. 죽음으로 대의를 지켰던 이도 있었고, 구차한 삶으로도 지키고자 하는 게 있었겠지요. 우리네 삶이 다양하듯이 삶의 이유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지요. 
이름없는 공중의 새도 다 살아있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군요. 대길이가 감옥에서 송태하에게 말했듯이 반드시 살아있어야 할 이유, 그 하나는 남겨주었으면 싶습니다. 조선의 희망으로, 아니 21세기 우리에게 제작진이 무엇을 남길지 모르겠지만, 좌절 속에서도 이름없는 풀포기 작은 희망 하나라도 남겨주었으면 싶습니다. 월악산 산채의 흥겨운 잔치가 닥쳐올 불안을 암시하는 것같아 조마조마한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의 소박한 웃음이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이들의 곤궁한 삶이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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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 09:21




추노 21회를 보며 이 드라마가 벌여놓은 것이 너무 많아 정리하기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합니다. 이번 회 보여 준 내용은 언년과 대길, 송태하 그리고 설화의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애절한 사랑과 송태하의 하나남은 부하 곽한섬의 죽음을 큰 축으로 다뤘습니다. 특별한 대사없이 주구장창 열심히 달리는 황철웅도 간간히 존재감을 드러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무엇보다 이번회 주목을 해야 할 인물이 좌의정이었어요. 베일에 싸여있던 좌의정의 음모를 직접적인 설명으로 보여주었지요. 좌의정과 그 수하 박종수의 대화를 통해 좌의정이 꿍꿍이를 드러낸 것이지요. 노비당도 결국 좌의정의 탐욕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는 살인도구일 뿐이라는 것도 여실히 밝혀졌지요. 저는 좌의정이 노비당 그분의 배후 인물이 아니기를 여러 의미에서 바랐지만, 희망과 권력의 갭이 너무 컸네요. 노비당 그분이 자발적인 각성에 의해 움직이는 가장 낮은 자들의 분노였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드러난 좌의정의 속셈은 권력도, 왕권에 대한 도전도 아닌 부의 탐욕이었습니다. 청과의 전쟁을 유도해 그동안 모아 온 물소뿔을 매수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자 함이었지요. 좌의정의 말을 빌어 보겠습니다.
"원손을 보위에 올리려 역모가 일어난 터, 원손은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시지... 이로써 조정은 우리 목소리만 낭자하게 될 것이야. 그 후로는 마지막 한 가지만 남게 되시지. 대대적인 호적정리로 노비들을 모아 북방으로 올려 보내셔야지. 본격적으로 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그때 물소뿔을 푼다"
좌의정의 음모는 인조의 어심을 읽어 청을 징치코자 함도, 원손의 복위를 통한 반정을 저지하려 함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탐욕을 위해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에요. 띠웅~ 그동안 추노에 담겨진 메세지를 찾고자 나름대로 드라마를 연구하다시피 분석해 왔던 저는 헛수고 했나 싶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좌의정을 보며 드라마 추노에 흘렀던 민초들의 항거, 혹은 좌절된 희망에 대한 길바닥 사극의 기획의도 자체가 실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심한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결국 우리 모두는 좌의정 이경식의 손아귀에 놀아난 꼴 밖에는 안됐으니까요.
추노가 시작된 발단부터 집어보기로 하지요. 물론 대길이 언년이를 찾는 것은 언년에 대한 대길의 지독한 사랑, 그 개인적인 의미였으니 일단 제껴두기로 하지요. 언년이가 송태하와 엮이면서 대길이도 원손이라는 정치적인 상황에 휩쓸리기는 했지만요.
우선 혁명을 담당했던 한 축 송태하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게 순서겠군요.
송태하가 마방관노로 떨어지게 된 것은 황철웅의 간계에 의한 것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죽고 없어진 임영호를 제거하기 위한 좌의정의 술책이었지요. 송태하의 목숨을 담보로 임영호의 정계은퇴라는 목적을 좌의정은 성공했고, 고속승진을 거듭한 끝에 현재 좌의정이라는 자리를 꿰찼지요.
좌의정의 다음 단계는 원손의 제거였어요. 어린 원손을 빌미로 반정의 씨앗을 제거한다는 것은 애초에 없었고, 소현세자의 세력을 제거한다는 의미가 큰 것이었지요. 즉 조정에 반청세력들만 남기겠다는 뜻이었어요. 좌의정이 계획하고 있는 일은 청과의 전쟁이었으니 말이지요. 원손을 따르는 세력, 엄밀히 말하자면 소현세자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좌의정은 제주도의 참상을 그린 그림을 유포했지요. 소현세자의 잔당들을 색출하기 위한 좌의정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동굴에 불을 지피고 여우를 잡 듯 말이에요. 어린 석견이 상주가 된 모습을 본 유생과 선비들은 비분강개하여, 원손을 왕위에 올리고 썩은 정치를 혁파하겠다는 혁명의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송태하의 도주가 있었고, 좌의정은 조선 최고의 추노꾼 대길에게 송태하를 추쇄하는 일을 맡겼지요. 한편으로는 사위 황철웅에게도 송태하와 원손을 처리하라는 명을 내렸고요. 유생들의 수장이었던 조선비를 회유해 변절케하고, 남은 세력과 수원의 이재준 대감까지 명단을 입수하고, 이번 회 이재준 대감을 제거하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곽한섬이 비명에 가버렸네요. 곽한섬의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저승에서는 이뤄주는 CG로 궁녀 장필순과 함께 고이 하늘나라로 모셔 주었습니다. 곽한섬과 장필순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충직한 곽한섬에 대한 예우였는지 생뚱맞게 환시를 통해 가는 길 고이 모셔 주어서 감동적이었다고 해야하는지, 판타지스러웠다고 해야 하는지 잘모르겠습니다만. 
좌의정은 전쟁을 통해 조선의 영토를 확장시키겠다 혹은 임금에게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 준 청에 분노함도 아닌, 자신의 배를 채울 꿍꿍이만 했었던 것 뿐이었어요. 악의 축 중심인물의 꿍꿍이가 자신의 곳간에 있었다니, 그리고 우리는 좌의정 곳간때문에 조선팔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나 싶습니다. 추노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임금의 옥좌도 당파싸움도 세자자리도 아닌 좌의정 곳간이었습니다. 좌의정을 보니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전쟁이나 이라크 침공 등 전쟁을 통해 무기판매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나라가 생각나더군요. 
결국은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좌의정의 탐욕에서 비롯된 쫓고 쫓기는 얘기에 희망이니 혁명이니 세 세상이니 하는 꿈을 주인공들과 함께 꾸었나 싶어 허망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재벌들을 위해 개미처럼 일하지만, 고용불안으로 늘 생계의 위험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결국 배부르는 것은 거대 재벌이고, 서민들의 생활은 팍팍하기만 한... 
좌의정의 손아귀에 놀아난 송태하의 혁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작이 좌의정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에요. 좌의정이 짜 준 판에 송태하가 들어가 일단 원손을 구하고 보자며 칼춤부터 췄으니, 송태하가 혁명관을 세우기도 힘들었고, 송태하와 부하들이 준비한 거사 역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변절한 조선비가 오히려 영리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大를 희생하고 小를 건졌는지, 小를 희생하고 大를 건졌는지 그것은 역사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추노의 한 축을 움직였던 송태하의 혁명의 시작이 좌의정 이경식의 탐욕에서 비롯되었고, 그 끝 역시 좌의정에 의해 좌절된다는 것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네요. 노비를 해방시켜 북방으로 올려 보낸다는 좌의정의 계획은 무모한 무리수로 까지 보입니다. 판을 이 정도로 짤 정도의 권력이라면 군권을 장악해서 북진을 추진할 수도 있을텐데, 노비들을 신분해방시켜 북벌의 도구로 쓰겠다는 것은 늙은이 망발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소뿔을 팔기 위해 노비들의 호적정리까지 단행하겠다니 좌의정이 어찌보면 신분해방의 선봉장으로 봐야 하는지, 사리사욕에 눈 먼 저승길 가까운 노인네의 탐욕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추노 속 송태하를 축으로 한 희망은 좌의정의 농간에 놀아나 앞뒤 분간없이 일을 진행하다 이재준 대감과 곽한섬의 죽음과 함께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좌절되었고, 남은 희망은 대길이의 사랑에 걸어볼까 합니다. 양반 상놈 없는 세상을 꿈꿌던 대길은 그나마 좌의정의 탐욕과는 관계없이 희망을 노래했던 파랑새였으니 말입니다. 언년이에 대한 사랑 하나로 새 세상을 꿈꿨던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었으니까요.
파랑새들의 터전 월악산 산채, 그곳이 제가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추노의 희망입니다. 삶의 가장 저변에 있는 밑바닥 인생들의 평화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쥐도 구멍을 내 주고 쫓는다고 하지요. 조선의 인구 절반이 도망노비로 전락해 가는 암울한 시대, 삶의 팍팍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해 도망가야 했던 그들이 숨어들 곳 하나는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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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07:43




애초부터 길바닥 사극 추노에 혁명이라는 거창한 구호는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 조선의 피폐한 역사 속에 도망노비가 속출하고, 그 노비를 쫓는 인간사냥꾼 추노꾼이라는 재미있는 소재가 드라마 줄기였고, 부수적인 양념으로 소현세자와 그 아들 원손 석견을 끼어넣어 혁명이라는 곁가지를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줄기는 대길이와 언년이의 쫓고 쫓기는 안타까운 사랑이겠지요.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 그 사연 하나만으로도 추노라는 소재는 성공적인 사극멜로드라마지요. 그러나 혁명을 얘기하기에는 의미가 퇴색해 버렸습니다. 혁명보다는 사랑에 그 무게중심이 쏠렸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혁명과 사랑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두었다하여 드라마가 수작이다 혹은 졸작이라고 평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드마라 추노는 사랑에 무게중심이 쏠려도 긴장감과 추노 특유의 코믹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으니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추노에서 그리고자 했던 혁명이라는 부분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에요.

드라마 추노에서 말하고자 하는 혁명은 실패입니다. 원손 석견을 왕위에 세우고자 하는 것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고, 혁명의 중심인물로 세운 송태하를 영웅적인 인물로 그리지 못했다는 점이 두번째 실패 요인입니다. 
우선 원손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혁명이 실패한 첫째 이유라고 했는데요, 원손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것은 정통성이라는 명분싸움에서는 합당한 혁명의 논리가 되겠지만, 드라마 추노에서는 그 외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린아기가 세자가 되고 다음 보위에 내정된 것은 조선 왕조사에서 수없이 있었던 일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는 일입니다. 원손 석견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의 아들이라는 점이겠지요. 소현세자가 청의 볼모로 잡혀가서 8년만에 조선에 돌아와 두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에, 그리고 독살이라 의심되는 부분때문에 석견을 왕위에 옹립한다는 것은 타도의 대상이 그 의문의 중심에 있는 패륜적인 왕 인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선비와 송태하의 혁명론에 대한 탁상공론으로 그친 혁명만이 있었을 뿐 그들이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조선비와 송태하를 대변하는 사대부들의 한계만을 노출시킨 채 방법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그들의 혁명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반정을 위한 거사는 황철웅이라는 희대의 슈퍼맨으로부터 봉쇄당했고, 임영호나 20회 말미에 예고로 보여준 곽한섬이 만난 이재준 대감 역시 임영호의 역할정도 밖에는 그려주지 못할 것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송태하가 스승이라 따르는 임영호는 이름만 드높았을 뿐 어떤 사고를 가진 인물인지 드라마에서 드러내 준 것이 없기에 그를 따르는 유생들과 송태하와 부하들은 임영호 팬클럽 회원쯤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드라마 추노의 혁명관의 실패는 임영호라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기에 오는 혼란일 것입니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이재준 대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그럼 임영호가 준비했다는 시대적인 소임을 누구를 통해서 보여줬어야 했느냐? 바로 송태하였어요. 그런데 송태하는 드라마 20회가 진행되는 동안 구체적으로 세상에 대한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한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원손을 지키고 소현세자의 유지를 받드는 충절심있는 한때의 장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이제는 신분에 대한 각성까지 해야 하니 숙제가 많은 인물이지요.
가장 영웅적으로 그려졌어야 할 송태하가 가장 답답한 캐릭터로 나오고 있으니, 도망노비나 쫓는 추노꾼 이대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요. 언년이에게 약속한 앙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사 하나로도 이대길은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 돼버렸고, 정작 새로운 세상을 세우겠다, 역사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았던 송태하는 원손과 언년이를 데리고 조선팔도를 도망치는 신세만 되고 말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저는 송태하에 대한 기대는 많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을 이루기에는 그의 힘이 너무 미약했고, 그가 세우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드라마에서 계속 미적거리며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끝까지 송태하가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은 완성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린 송태하의 상황때문이겠지요. 부하장수들을 다 잃었고, 조선비는 변절해서 동지들 이름을 팔아버렸고, 송태하 혼자서 칼을 들고 궁궐로 쳐들어 갈 수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지금 잠시 몸을 의탁한 월악산 산채의 녹림거사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일테고요. 저라도 안싸우지요. 이유없이 죽을 자리를 찾아 가겠냐고요. 차라리 숨어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백번 나아보이니까요.
송태하는 드라마에서 가늘고 길게 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혁명을 꿈꿀 때 부터 그는 굵고 짧게 사는 운명을 택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대길이나 천지호, 짝귀같은 인물은 늘 칼부림이 난무한 저잣거리에서 살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가늘고 길게 살자가 인생 모토인 것도 같습니다.
20회에서 호기심 많은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지요. 대길이랑은 왜 같이 다니게 된 거냐? 여기에 얼마나 머무실 요량이냐? 청에서 무엇을 배우셨는냐? 승하하신 저하는 어떤 생각을 하셨느냐? 등등... 언년이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차게 물어봤지만 송태하는 이번회에도 답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멋드러지게 칼을 꺼내 뭔가 결심한 듯 폼만 잡다 말았어요. 이러니 시청자가 한 번 예상해보라는 질문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제작진이 송태하의 갈 길을 송태하의 입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 근 10여회를 뜸을 들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제가 송태하라면, 아니 작가라면 어떤 방향으로 송태하의 앞길을 그릴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저는 송태하의 생각이 그 테두리가 작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처음 원손을 왕위에 세우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큰 테두리의 혁명이 아니라, 그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송태하 나름의 각성이고 혁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 중심에는 원손과 부인 언년이가 있겠지만요.
송태하가 중요한 단서를 흘렸는데요, 대길이에게 혼자 떠날 것이라며 부인과 원손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지요. 대길이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느냐는 말에 "난 한번도 우리 백성을 죽인 일이 없다" 라며 조선 최고의 무사, 애민정신이 투철한 장군의 모습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평생 도망칠 수도 숨어살 수도 없으니 끝을 봐야겠다며 월악산 산채를 나가겠다는 말을 대길이에게도 언년이에게도 했어요. 송태하가 가는 곳은 아마 현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타협점을 찾거나 수원에서 거사를 위해 만나기로 한 다른 동지를 만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송태하의 말이 크게 달라진 곳이 두군데가 있었어요. 하나는 대길이 앞에서 내 부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감옥에서나 그 이전에는 항상 "내 부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그냥 부인이라는 호칭을 썼다는 점이에요. 대길이와 언년이와의 관계를 알게 된 연유이기도 하겠고, 대길이에 대한 감정적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거리감도 느껴지더군요. 자신이 지금 하려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을 때를 대비한 말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내 부인이라는 말로 언년이는 자신의 여인이라고 굳이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대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같기도 하고요. 물론 억지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두번째는 원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송태하가 주장해 왔던 것은 처음에는 원손의 왕위 옹립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원손의 복귀, 그리고 원손의 사면이라는 식으로 송태하의 입장이 계속 바뀌고 있었지요. 동굴에서 언년이에게는 원손을 왕위에 올릴 것이라고 했고, 조선비와의 대립에서는 왕위가 아닌 복권을, 그리고 대길과 함께 교수대에서 처형될 위기에 처한 이후에 용골대와 만나서는 봉림대군에게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겠다는 의중을 폈습니다. 그런데 이번회에서 송태하는 언년에게 "마마님이 숨어사는 왕족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씩씩하고 굳건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다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송태하의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송태하는 더이상 원손을 내세운 혁명이라는 기치를 걸지 않겠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니까요. 이는 송태하가 언년이 노비였음을 알고 난 이후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각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태하는 왕을 새로 세우겠다는 혁명가에서 백성을 지키는 혁명가로 거듭나고, 그 현장에서 죽고자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송태하가 언년이에게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했던 말이 있었어요. 백성의 고충을 깨닫고자 했으나, 반상의 경계가 없고 노비가 없는 세상은 그려보지 않았으며, 노비가 되어서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옳은 생각을 세울 때까지 기다려 주겠느냐고 말이지요. 
송태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은 듯 보입니다. 원손을 왕위에 세운다느니 썩은 정치를 갈아엎겠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이 노비로 떨어져 살아본 그 민초들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월악산에 모여든 막바지 인생들, 그 민초들 역시 자신이 보듬고 가야 할 백성이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의 범주에 넣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송태하가 마지막에 칼을 빼든 장면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 칼을 사람 그림자 없는 월악산 속 요새까지 숨어들어야 했던 바닥인생들을 지켜주기 위해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림대군을 만나기 위해서든지 곽한섬이나 다른 누구를 만나러 산채를 나가든, 황철웅으로 부터 월악산이 공격을 받게 되면, 송태하는 아마 미친 듯이 칼춤을 출 것입니다. 원손도, 언년이도 아닌 자신이 한번도 백성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월악산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송태하의 혁명관이 완성되는 것이 바로 월악산 산채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송태하를 중심으로 한 혁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드마마의 무게 중심도 언년이와 대길이, 그리고 송태하, 설화의 사랑으로 초이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애초에 추노에 혁명이 곁가지로 끼어들어간 셈이니 뭐라고 할 수 는 없겠지만, 왠지 그 사랑이 더 무겁게만 느껴지네요. 남의 여자가 된 언년이를 여전히 놓지 못하는 대길이, 10년을 자신을 찾기 위해 개차반 추노꾼이 되어 팔도를 뒤지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언년이 고민도 커지겠지요. 두 사람의 모든 사연을 알게 된 송태하, 그리고 대길에게 용감무쌍하게 들이대는 설화까지 사랑은 점점 무거워지고, 그 사랑의 무게에 짓눌린 탓인지 혁명의 이야기는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재미없어진 것도 아니고, 월악산 산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울고 웃게 하니, 그렇게 숨어서라도 오손도손 평화롭게 살았으면 싶어요. 힘들겠지만요. 허풍쟁이 월악산 짝귀와 급코믹해진 최장군때문에라도, 추노는 끝까지 놓치고 싶지않은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세상을 뒤집는 것도 혁명이지만 자기로부터의 혁명도 혁명이랄 수 있겠지요. 대길이의 혁명의 시작과 끝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에 있지만, 송태하의 혁명의 시작과 끝은 백성에 있을 것 같습니다. 노비라는 밑바닥 삶을 경험한 그가 가장 밑바닥 민초들을 위해 칼을 든다는 각성이야말로 송태하다운 혁명의 완성이 아닐까요? 혁명에 대한 그림이 큰지 작은지, 성공이냐 좌절이냐 하는 것들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를 위해 칼을 들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작은 혁명에 대한 모습이라도 드라마 추노에서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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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 07:09




추노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원손 석견을 구한 송태하가 조선비가 마련한 서원으로 옮기면서 혁명으로 화제가 옮겨지기 시작한 거지요. 송태하와 언년의 감정선은 혼례라는 방법으로 연결지으면서 대길과는 비극적인 운명이 예고되기도 했지요. 언년을 잃은 대길과 언년을 얻은 송태하의 극중 대립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요.
언년이 송태하와 혼례를 올린 것은 개인적인 견해로는 성급한 전개였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물 건너 간 이야기니 접어두기로 하고요, 저는 송태하와 조선비의 혁명에 대한 발언에 대해 추노가 길을 헤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송태하가 석견을 구하려 했던 이유와 조선비가 혁명의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엇박자가 났는데, 왜 언년이를 걸고 넘어지냐는 것이었어요. 
또한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이 자칫하면 언급되지도 못하면서 사랑이냐? 혁명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유약한 장군의 모습만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조선비와의 대화에서 송태하가 동굴에서 혜원에게 말했던 부분과 달라지면서, 송태하가 원손을 구하려고 했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도 다시 짚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한섬이 궁녀와 함께 석견을 데리고 피신했을 때 한섬을 뒤쫓던 송태하가 팔에 화살을 맞아 잠시 동굴에서 언년의 신통방통한 치료를 받았을 때의 일을 상기하면 이해가 가지 않은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 송태하는 언년이에게 만날 분이 승하하신 세자 저하의 아드님이시고, 언년이 그 분을 구하면 나중에 왕이 되시냐고 묻자 그래야 한다고 대답했지요. 임금을 바꾸겠다면서 말이지요. 임금이 바뀌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빠지지 않을 거라면서요. 저는 그 장면에서 송태하가 품고 있는 생각이 임금을 바꾸는 일종의 반정을 꿈꾸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비를 만나서 하는 대사는 조금 달라져 있었어요. 조선비는 현 세자인 봉림을 부인하고, 원손마마를 세자로 옹립할 것이며, 조선을 세자(원손)에게 돌려드릴 것이라는 혁명의 기치를 내세웠지요. 그리고 스승 임영호가 죽었으니 자신과 송태하가 선봉에 서야한다고 송태하를 혁명군의 수장으로 추대했습니다. 조선비는 상소로 원손의 복권이 해결될 것이 아니기에 거병의 필요성을 주장했지요.
송태하가 이에 "반정에 뜻을 두고 있느냐" 며, "먼저 봉림대군과 접촉을 해야 하지 않느냐" 고 반문하면서 앞으로 조선비와 대립할 가능성이 암시되었지요. 송태하와 조선비는 혁명에 있어 방법적인 차이를 보인 것이지요. 송태하는 상소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원손을 복권시켜 세자로 옹립시킨 연후에 왕위를 물려받든, 왕으로 내세우든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반면, 조선비는 그 절차가 불가능할 것이니 아예 거병을 통한 무력반정을 하자는 입장이지요.
여기서 두 사람의 방법을 옳다 그르다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송태하의 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현재 봉림대군은 사서에 소현세자의 급서이후 두 번 세자책봉을 거절한 것으로 나와있지만, 기정사실화된 차기 왕위 후계자입니다. 봉림대군에게 야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겠지요. 현재 봉림대군을 따르는 세력은 반청세력들, 즉 서인들입니다. 그런데 소현세자는 청을 배우자는 입장의 친청세력이었어요. 이 때문에 삼전도의 치욕 이후 정신병적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인조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었고,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당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조선의 정세에서 송태하가 봉림대군을 언급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알려져 있다시피 봉림대군과 소현세자의 청에 대한 입장과 시대관이 극명하게 달랐었지요. 소현세자를 따랐던 송태하였으니 봉림대군과는 정치적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었고, 더구나 봉림대군에게 "큰 아들이 아니니 조카 석견에게 세자자리를 물려주시지요" 라고 점잖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조선비가 "혈족을 죽이고 돌아보지도 않은 왕가에서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일 거라는 말이 오히려 타당하지요.
따라서 현재 석견을 세자로 옹립하는 방법은 쿠데타라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거병이라는 방법의 무력충돌을 통해서 말이지요. 조선비가 판단하는 정세는 이렇듯 사안이 경각에 달린 긴박한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언년이와 사랑에 빠진 송태하가 못마땅한 것도 사실일 겁니다. 사랑에 빠진 송태하가 혁명군을 이끌 수장이 되는데 있어 언년이가 걸림돌이 될 거라는 우려였겠지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언년이 때문에라는 언년이 민폐리스트에 또 하나 리스트를 추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조선비의 차디찬 말 "혁명에 낭만따위는 필요없어" 라는 말은 언년이 조선비로부터 경계를 받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었죠. 언년이에게 왜 또다시 혁명의 걸림돌이라는 짐을 지우려는 것에 당혹스러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년이에 대한 경계가 아니라 조선비와 송태하의 혁명에 대한 입장 정리라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언년이를 갈등구조로 세울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혁명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젼이 대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비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혁명보다는 정치적인 야욕에서의 혁명에 대한 의지가 큰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태하는 정치적인 야심에 있어서는 조선비보다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서 혁명의 당위성 내지는 필요성에 대한 구체적인 비젼은 제시되지 않았어요.
지난 글 <혁명가 이대길이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이유>에서도 밝혔듯이 송태하와 조선비는 혁명의 한계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기득권 세력들입니다. 우선 조선비가 원손 석견을 왕으로 옹립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죽은 인조의 적장자 소현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봉림을 제치고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당시의 서인과 남인의 권력 싸움의 연장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조선비는 억눌린 정치권력의 대변자쯤으로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송태하의 대의는 무엇인지 애매모호 합니다. 다만 억눌린 자들의 울분과 소현세자에 대한 충절과 의리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아직 송태하의 대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석견을 구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청사진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하다못해 소현세자가 청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동조하는 것도, 조선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떤 대의명분도 보여주지 않았지요. 다만 소현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상복문제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관노신분으로 떨어지고, 소현세자의 아들 석견을 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제시된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모름지기 어느 인물을 군주로 모시고자 했다면 주군이 되는 인물의 정치관에 함께 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떼고 기저귀를 뗐을 어린 석견에게 대의란 있을 수 없지요, 이제 겨우 말문이 트였을 뿐인데 말이지요. 그럼 소현세자의 뜻을 잇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송태하가 뜻을 둔 대의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 혁명관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요. 
단순히 신분회복과 소현세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원손을 세자로 추대하려는 것은 정치적인 파벌싸움일 뿐이지 대의 혹은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에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길은 양반 상놈 구분없는 평등세상을 꿈꾸고, 업복은 종놈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데, 송태하는 4살배기 원손 석견을 세자로 봉하고 후일 왕으로 세우려는 다분히 소현세자에 대한 충절심밖에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물들 중 가장 정치적인 인물이 송태하라고 할 수 있어요. 노비임에도 노비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송태하의 태생적인 한계는 있지만, 송태하는 썩어빠진 정치를 바로잡고, 시대의 흐름을 읽는 정치적인 의식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조선비와 갈등을 해야 하는 부분은 방법론이 되었든 정치관, 혹은 혁명관이 되었든 보다 거시적인 구도에서의 대립으로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조선비라는 또 다른 기득권 정치세력의 야심과 부딪치면서, 송태하가 진심으로 꿈꿔야 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자각이 있으면 더 좋을 일이지요. 그런데 이 중요한 대립에 언년이를 끼워넣는 것은 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송태하와 조선비의 갈등구조를 각자가 지향하는 세상에 대한 혁명론이 아닌 사랑타령으로 또 다시 언년이를 애물단지로 만들어 버린다면, 드라마 추노는 시대극이 아닌 멜로사극으로 남을 공산이 큽니다. 언년이의 민폐리스트가 하나 더 추가될 일만이 남았고요.
길바닥 사극 추노가 완성도 높은 사극으로 남기 바라는 이유, 그것은 21C 우리가 추노를 통해 비록 좌절된 혁명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세상을 향해 치열하게 싸웠던 시대, 그 역사의 한 부분을 보고 있으며, 그 시대를 이끌었던 주인공들의 꿈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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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1 08:57




추노가 11회를 분기점으로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 들었습니다. 모든 인물들의 쫓고 쫓기는 관계가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적인 연결선상에 놓여 있게 된 거지요. 목적지도 목표도 없었던 혜원까지도 정치적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보다 입체적으로 드라마의 얼개가 짜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극의 흐름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면서 이번 회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쉬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봤어요. 특히 왕손이와 최장군의 여염집 아낙 홀리는 내용은 무거운 주제 속에서 웃음을 주었네요.
귀염둥이 왕손이의 카사노바 뺨치는 작업 못지않게, 한양구경 처음 나온 듯한 최장군의 촌뜨기 모습도 코믹했어요. 자칫 외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던 왕손이의 제비질은 유머와 해학으로 맛깔나게 그려서 이번회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같습니다.
큰주모와 작은 주모가 그렇게 꼬리를 살랑살랑 쳐도 넘어가지 않던 최장군의 목석같은 마음도 들썩이게 만들어 버린 왕손이의 여자꼬시기 실력은 조선팔도 최고이지 싶어요. 아마 왕손이가 마음만 먹으면 봉이 김선달처럼 대동강물도 팔아 넘길 것 같습니다. 도끼질마다 다 성공하는 왕손이의 매력은 왕손이에게 넘어간 여인들만 알겠지만, 실력 한 번 볼까요?
왕손이가 노리는 집은 대낮에 사람들 왕래가 빈번한데도 대문이 꼭 닫혀있는 집이랍니다. 그런 집에서는 문도 계집종이 열어주고요. 집에 남정네가 없으니 문을 걸었다는 거지요. 이런 방면으로는 촌뜨기인 최장군을 데리고 한 집을 두드리니 정말로 계집종이 문을 열어 줍니다. 지나는 길손인데 밥 한 술 얻어먹겠다며 대신 밥값으로 장작을 패주겠다고 하지요. 허락도 안떨어진 집에 무작정 들어간 왕손이는 안방인 듯한 곳을 향해 1차 작업멘트를 날리지요. "백호가 음신의 궁에 있으니... 어허... 참..." 무슨 뜻인지는 최장군도 왕손이도 모른다지요. 무슨 뜻인지 몰라도 암튼 '좋지않은 사기가 집안에 있다'라는 식의 뉘앙스를 흘리는 게지요. 이 집 안방마님은 가슴이 철렁해서 당장이라도 버선발로 뛰쳐 나와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겠지요. 
최장군 웃통을 벗고 복근 열심히 보여주는데, 엄동설한에 이게 무슨 짓이냐 싶은 최장군이에요. 꼭 옷을 벗고 장작을 패야 하느냐고요. 장작패는 남정네의 멋진 근육에 홀딱 반한 계집종은 벌써부터 최장군에게 눈길 고정이에요. 안방의 고고하신 마님이 왕손이를 보기를 청하지요. 왕손이 "얏호! 걸렸구나!"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손님께서 천기를 읽으시나요?" 라며 안방마님이 운을 떼니 왕손이 앞가림이나 하는 수준이라며 "천기와 지기를 살펴보니 바깥 양반이...." 하며 말꼬리를 흘리고는 혀를 차주지요. 일단 겁을 주는 것이겠지요.  

놀란 척하는 안방마님이 굿을 해야 합니까 부적을 써야 합니까 물으니 미신은 믿을 게 못된다며 손금을 봐주겠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손금봐주겠다는 것이 남자들 여자 꼬시는 수법인가 봅니다. 문 밖으로 고운 손을 내미는 안방마님이십니다. 이제 반은 넘어 온 거나 마찬가지에요. 왕손이 손을 덥썩 잡고 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선수는 다르네요. 방문을 닫아 버리고는 손금만으로는 정확히 읽을 수가 없다고 뻥을 치지요. 족상을 봐야겠다면서요.
양반집 아녀자는 외간 남자에게 절대로 발을 보여줘서는 안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선수 중의 선수인 왕손이는 이런 것도 다 알고 있었나 봅니다. 아녀자가 어찌 발을 보여줄 수가 있겠느냐고 하니 할 수 없다며 "편안한 밤 되세요~" 하고는 쌩 가버리는 척하지요.
다급한 안방마님 "손님, 잠시만~" 하고 부릅니다. 게임 끝난거지요. 안방으로 들어간 왕손이 족상을 보겠다며 안방 마님을 홀라당 뒤집어 버리네요. 아랫배에 혈이 잔뜩 뭉쳐있다며 "배꼽밑에 부적 한 장 붙이시지요" 라고 느끼 야시시하게 다가섭니다. "부적은 미신이라고 안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는 안방마님의 질문에 왕손이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했는데, "상반신은 의술로 풀고, 하반신은 부적으로 달래주는 법" 이라네요. ㅎㅎㅎ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요.
양반마님 갑자기 계집종 쫑쫑이를 부르니 왕손이 식겁합니다. 이거 잘못하면 경을 치게 생겼거든요. 절개 곧은 마님이었다면 은장도에 비명횡사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왠걸 안방마님 왈, "다른 손님 밥상은 따로 차려드려라"라고 하시네요... 뒷얘기는 뭐 알아서..ㅎㅎㅎㅎ
아무튼 왕손이 위험수위 넘나들며 여자 꼬시는 수법을 보며 한참 웃었어요.
사실 위험수위를 넘을 수도 있는 장면이었음에도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져서 인지 웃으며는 봤지만, 왕손이 여염집 담을 쉽게 넘을 수 있었던 것도 드라마 추노 속에 흐르는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보여준 것이에요. 두 번의 전쟁(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은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예요. 몰락한 양반가도 많았고 백성의 절반이 노비로 전락했던 시기였으니까요.
왕손이처럼 여염집 아낙과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던 일들도 한 집 걸러 두 집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겠지만, 드문 일도 아니었지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며느리와 손자까지 죽이는 왕실에서 양반집 아낙에 이르기까지 절개와 법도가 무너지고 있었던 혼탁한 시대인 것이지요.   
극중에서는 귀염둥이 깨방정 왕손이가 여자 밝히는 작업쯤으로 유머와 해학으로 버무렸지만, 드라마 속에 흐르는 정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에요. 지체 높은 집 담장이 이렇게 낮아져 버린 조선사회의 부패상을 왕손이가 꼬시는 여인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양반집 담장이 이렇게 낮아졌는데 궁궐 담장인들 낮아지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낮아졌겠지요. 정신병적인 수준의 패도정치를 하고 있는 인조를 쥐락펴락 할 수 있었던 좌의정같은 인물이 많았던 시대였고, 충신과 간신의 구분이 없던 시대였지요. 제각각의 명분을 내세운 밥그릇싸움에 골몰하고 있었던 시대였으니까요. 
고래싸움에 새우등처럼 터져나간 이름없는 민초들의 죽음이 지천에 널렸던 그런 시대를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질서하고 혼란한 시대에 혁명이라는 이름의 꽃들이 피어나는 것이지요. 이대길, 송태하, 업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하고 꺾일지라도 그들이 피우는 꽃이 아름다운 이유, 그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꿨다는 이유때문일 것입니다.
그나저나 대길패의 귀염둥이 왕손이를 연기하는 김지석은 귀티가 흐르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철철 넘치는 대길패의 마스코트 같아요. 익살스럽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과 진지한 표정을 넘나들면서 웃음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대길이나 최장군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서려있는 있는데 반해, '인생 별거 있어, 즐기고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라고 말하는 듯한 왕손이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인 일에 연루될 수 밖에 없는 대길패거리의 불안함때문인지 세상 걱정 없는 듯한 왕손이가 그나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말이에요.
여자 홀리기 선수 왕손이는 여자를 가장 많이 알지만, 정작 한 여자도 사랑하지 못한 것 같아요. 왕손이에게도 진짜 사랑이 올까 싶네요. 얼른 철들어서 토끼같은 자식들이랑 여우같은 마누라랑, 밭갈고 쟁기질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왕손이에게 그런 세상이 올지 드라마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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