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의 서 유동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4.23 '구가의 서' 이승기의 변신, 분장을 뛰어넘는 반인반수 연기 (3)
  2. 2013.04.17 '구가의 서' 안되는 게 없는 이승기, 빵터지게 만든 반전매력 (15)
2013.04.23 14:12




"잊지 말거라, 넌 내게 아들과 똑같아... 우리 태서와 청조를 지켜다오", 평생 모실 하나뿐인 주인이자 아버지와 같았던 박무솔(엄효섭)이 강치를 향해 파고들어오는 칼에 대신 찔려 죽음을 맞이하자, 최강치의 반인반수의 본성이 활화산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액막이 팔찌의 봉인도 막지못한 강치의 분노, 박무솔에 대한 강치의 애정과 존경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강치를 지켜준 박무솔, 그의 훌륭한 인품만큼 큰 아버지의 사랑을 죽음으로 보여주었지요. 그래서인지 드라마지만 박무솔을 잃은 슬픔이 크네요ㅠㅠ.

연한 초록빛의 눈으로 변한 최강치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고, 그 눈빛을 조관웅도 보게 되었죠. 강치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 강치의 운명이 첩첩산중이겠군요.   

불길한 기운이 백년객관을 감돌자 소정법사(김희원)는 강치의 존재가 드러날 위기에 처해질 것임을 예감합니다. 그의 친구이자 강치의 아버지인 구월령에게도 다가왔던 사람이 되는 치성의 마지막 시험관문처럼 말입니다.

 

구월령이 그랬듯이 강치 역시 겨우 열 하루를 남기고 20년의 공든탑이 무너지는 위기에 처해지죠. 해가 지기전에 백년객관을 나와 다음날까지 들어가지 말라는 소정법사의 아리송한 말을 무시하고 백년객관으로 들어가는 강치, 그날은 청조의 혼사를 앞두고 함진아비가 들어오는 날이었기에 착잡한 마음을 가눌길 없었던 강치도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려했었지요.

강치도 청조도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도 같은 박무솔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강치도 아니었고, 청조 역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말이죠. 서로의 가슴에 묻고 살 수 밖에 없는 이름 청조와 강치, 그러나 그들의 이별은 혼례로 끝나지 않습니다. 더 큰 비극이 두 사람을 슬픈 운명으로 던져버렸지요. 독사같은 놈 조관웅(이성재)의 음모로 말이죠.

윤서화의 집안을 역모로 몰아 멸문지화를 당하게 했던 조관웅, 박무솔에게도 역모의 누명을 씌워 백년객관을 한입에 꿀꺽하게 생겼습니다. 이놈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아직 다 나오지는 않았지만, 남도 일대의 상권을 잡고, 왜인들과 손잡고, 그 재력으로 뭔가를 할 꿍심이 있는 듯하더군요. 말 그대로 진짜 반역을 꿈꾸는 놈같으니 말입니다.

정명가도, 즉 명을 치러 가게 길을 내달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해 온 풍신수길의 의도를 파악한 이순신 장군, 모함으로 백의종군을 하면서도 오직 조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한 우국충정의 마음밖에 없었던 불멸의 영웅, 한산섬 수루에 홀로 앉아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을 장군을 상상하면 애국심이 불끈불끈합니다. 군자금의 용도를 묻는 박무솔에게 거북선의 단면도를 펼쳐 보이는데, 드라마인데도 거북선의 탄생을 보는 듯 감개무량함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성웅 이순신 장군과 박무솔의 만남은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지하 비밀방에 가득한 은자를 조선의 백성과 바다를 지키기 위한 군자금에 쓰라고 내어주는 박무솔, 그들에게 나라의 안위는 개인의 이익 위에 있었습니다. 드라마 캐릭터지만 무한 존경의 마음을 바치옵니다. 물론 우리의 이순신 장군님께는 평생 무한 존경의 마음이지만요.

 

강치와 이순신 장군의 실질적인 첫만남은 뜨헉하게 만들었지요. 저잣거리에서 봉출 일당이 빼앗은 고리대금을 상인들에게 나눠주는 강치를 흐뭇하게 봤던 이순신 장군에게 박무솔은 강치를 두고 아들이나 다름없는 아이라고 소개하지요. "뚝심도 있고, 책임감도 강하고, 무엇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아이라면서 말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좌수사의 휘하에 거둬 큰 재목으로 써달라"는 말에, 박무솔만을 모신다는 무한 존경심을 드러내서 시청자와 박무솔을 뻘쭘하게 만든 못말리는 강치였습니다. 

"싫습니다. 저는 아무데도 안갑니다. 나리(박무솔) 말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모시지 않을 겁니다. 태서를 도와 객관의 마름직을 이어받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은 관심없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괜한 눈독들이지 마십시오". 이런이런~~ 솔직해도 무식하게 솔직하고 충직스러운 놈을 봤나?ㅎㅎ 그런 강치라서 더 좋다!

 

강치를 눈여겨 본 인물이 또 있었지요. 담여울의 아버지 담평준(조성하)이었습니다. 담평준 역시 강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눈치더군요. 여울의 호위무사 곤에게(이 녀석도 여울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질투하는 모습이 귀엽더이다) 무슨 이상한 변화가 있으면 즉시 알리라는 것을 보면 말이죠.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청조 혼례를 앞두고 함이 들어오는 날, 백년객관에 큰 마가 끼어 반인반수의 슬픈 전설을 이을 다음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납폐가 탁자 위에서 떨어지면서 다가오는 불길한 예감, 들이닥친 포졸들, 그리고 조관웅이 음흉한 속셈을 드러냈지요.  

간밤에 보낸 자객을 잡은 것을 따지러 간 태서, 그래도 참판까지 지낸 분이라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했던 박무솔의 뒤통수를 이리 야비하게 치다니, 정말 끓는 기름에 튀겨 버리고 싶더군요(저의 생각을 잔인하게 만드는 이성재의 나쁜 놈 연기, 역시 굿입니다). 박무솔을 정여립의 대동계 일당으로 몰아 역모죄를 씌우는 조관웅이었죠. 이놈은 역모 전문가인가 봅니다.

 

역모씌우기 전문가 조관웅에게 한방 먹이는 최강치, 그 호기와 한 자 한 자 콕콕 찝어 바른말만 하는 강치의 말에 속이 후련하더군요.

"역모죄? 놀고들 계시네. 쌔빠지게 번돈으로 나라에 꼬박꼬박 세전 바쳐가며, 배고픈 사람들 까지 굽어살핀 우리 나리가 역모죄면, 당신들은 뭐요? 나라가 거둔 세전으로 꼬박꼬박 녹이나 받아 처먹어 가며, 하는 일도 없이 기왓집 방구석에 개폼잡고 들어앉아 개권세나 부리고, 선량한 상인들 상대로 심심하면 잡질이나 하는 당신들은 뭐요? 놀고 먹는 심심죄요?", 놀고 먹는 심심죄인들 요즘도 심심찮게 보는 위인들이죠. 아무튼 맑지 못한 윗물들은 예나 지금이나 쩝입니다. 강치야~ 시원하게 말 잘했다, 궁디톡톡. 

그나저나 박무솔을 역모죄로 엮어 백년객관을 차지하려는 조관웅의 악질적인 음모에 박무솔이 죽음을 당하고 말았으니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조관웅의 수상쩍은 행적을 눈치채고 있는 좌수사 이순신 장군과 담평준이었지만, 조관웅이 한 발 빨랐습니다.

누구보다 강치에게 따뜻했던 아버지와 같은 분을 잃은 강치의 슬픔과 분노는 20년의 봉인을 풀고 나올 정도로 큰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고, 회오리처럼 터져나온 강한 분노는 봉인된 반인반수의 야성을 표출할 정도였습니다. 

청조와 태서를 지켜달라는 박무솔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내어놓을 강치, 그 지킴이 사랑은 아마도 강치가 자신의 정체를 안 후의 혼란에도, 그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구가의 서'에 담긴 주제가 되겠지요

최강치도 어쩌면 수천년의 무한한 삶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천년의 영원한 삶대신 유한한 인간의 삶과 사랑을 선택한 아버지 구월령처럼, 강치 역시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인간의 삶을 택하겠지요.

"저한테 나리와 백년객관보다 더 큰 세상은 없습니다"라고 했던 최강치, 박무솔의 죽음과 함께 그의 세상을 잃어버렸습니다. 태서와 청조를 지키는 것, 박무솔 어른의 유언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에게 세상을 준 박무솔 어른에 대한 보은이겠지요. 강치에게서  가장 큰 세상을 앗아가 버린 조관웅, 그에게서 백년객관을 다시 찾아와 태서와 청조에게 돌려줘야 하는 강치입니다.

 

강치에게 희망적인 것은 담여울(수지)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윤서화는 구월령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신수라는 정체때문에 배신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담여울의 선택은 윤서화와는 다를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인간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던 구월령을 죽여버린 담평준의 마음에 남아있을 듯한 회한 또한, 담여울의 선택에 변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희망을 가져보게도 하고 말이죠.

 

좌수사 이순신 장군에게 아들과 다름없는 아이라고 소개를 해주고, 조관웅에게는 곤장 2백대를 강치 대신 맞겠다고 했던 박무솔이었습니다. 칼에 찔려 숨져가면서도 강치에게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는 그는 진짜 강치의 아버지였습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대신 내어주고 가면서도, 자식의 안전만을 걱정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사람이라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가난한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박무솔의 인성을 보고 자란 최강치, 박무솔은 강치에게 아버지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아버지이자 하늘을 잃어버린 최강치, 그의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강치의 분노는 백년객관이라는 세상을 넘어 조선이라는 더 큰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겠지요. 자신이 반인반수라는 정체성을 알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강치 역시도 구월령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숙명처럼 풀어야 할 악의 축 조관웅으로부터 지켜야 할 사람들, 그들이 곧 청조와 태서,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운명적인 사랑 담여울이자, 조선이 될 테니까요.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이승기의 연기는 사실 멜로나 액션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반인반수라는 판타지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할지가 내심 궁금했는데, 기대이상의 감정표현에 또 놀라게 되는 이승기 연기의 발전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장면을 찍기전에 이승기가 많은 고민을 했을 듯 하더군요. 박무솔의 죽음을 본 슬픔과 분노를 반인반수의 야성과 어떻게 혼합해서 보여줘야 할 것인지를 두고 말이죠. 

사람과 짐승, 두 존재의 정체성이 혼돈된 캐릭터의 감정을 표출하기란 사실 쉬울 것 같으면서도 생각처럼 쉬운 연기는 아니지요. 이런 경우 많은 부분, 분장의 효과를 보기도 합니다.

런데 제가 놀라웠던 것은 초록빛으로 변한 이승기의 눈동자때문은 아니었어요. 박무솔의 마지막을 지켜보며서 흐르는 굵은 눈물줄기, 그 슬픈 감정을 포효하는 분노보다 더 무섭고 섬뜩하게 표현한, 조관웅(이성재)에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사처리와 표정이었습니다.

"죽여버리겠어". 마치 짐승이 '크르릉'하며 성대를 울리는 소리처럼 들리게 표현하더군요. 짐승들의 감정표현, 사람으로 말하자면 화를 내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 처음부터 컹컹 짓거나 포효하거나 달려들지 않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크르렁 소리를 내서 상대를 노려 보는 것이 첫 반응입니다. 이 모습을 승기가 제대로 표현하더군요. 초록눈빛으로 변하지 않았더라도 짐승의 모습이 보였던 이승기의 반인반수 괴물연기, 분장을 뛰어넘은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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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7 14:02




왜 조관웅(이성재)은 동인(東人) 출신임에도 같은 동인 정여립의 대동계를 무참하게 학살하는데 앞장섰을까? '구가의 서'는 단순한 판타지 멜로드라마가 아니더군요. 드라마 초반에 잠깐 언급만 되었던 동인과 서인의 대립, 이순신 장군(유동근)의 등장으로 정치와 역사까지 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반인반수와 인간여인의 사랑에만 초점을 두고 보다가 4회들어 이 드라마가 단순히 무협 멜로 판타지물이 아니라는 것에 허를 찔린 기분입니다. 드라마를 보다 박무솔의 부인이 정여립을 언급하는 말을 듣고 잠시 의아했습니다.

 

정여립은 원래는 서인이었는데 후에 동인으로 돌아선 인물입니다. 조선 역사를 가장 잔혹한 비극의 한 페이지로 이끈 기축옥사의 시발점이 된 인물이죠.

동인 처단에 앞장 선 인물이 서인의 영수 정철이었고, 후에 정철은 선조에게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실각하기는 했습니다만, 정여립이 낙향해 조직한 대동계를 중심으로 역모를 꾀한다는 고변이 나오자 의금부로 호송되던중 정여립은 자결해 버리죠. 정여립의 의문스러운 자결로 역모의 진위를 확인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역사학계에서도 정여립의 역모를 두고 의견이 갈리기도 합니다. 누명을 썼다는 의견과, 그의 진취적이고 혁명적인 사고를 들어 역모를 꾀했다는 데 손을 드는 의견도 있고 말이죠. 

여튼 동인출신 조관웅이 같은 동인을 척결하는데 앞장 섰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위 사리사욕이 우선이었던 인물같아 보이더군요. 정여립과 대동계 처단에 앞장서며 정계의 주요관직에 오를 수 있었을 듯 싶기도 하고 말이죠. 전 병조참판을 지냈다는 것을 보아도, 당시 조선이 서인 세상이었다는 점을 비춰 동인 출신이었던 그가 높은 실세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악랄한 방법을 저질렀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친구인 윤기주(윤서화의 부친)을 역모로 몰아 가문을 몰살시켜 버린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죠.  

 

조관웅은 인두겁을 쓴 진짜 괴물인데, 그의 야심이 남도일대의 상권을 접수하기 위함만은 아니라는 데서 더 큰 위험이 감지됩니다. 나라의 존폐 위기를 가져올 그런 위험한 인물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이순신 장군역의 유동근의 등장으로 밑그림이 훨씬 더 크고 방대하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조관웅은 이 놈은 당파를 떠나 인두겁을 쓴 진짜 괴물이더군요. 딸이나 다름 없었던 친구의 여식을 취하려고 무서운 집착증에 윤서화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그것도 모자라 곧 저승길 갈 파파 할아버지가 손녀 나이인 어리디 어린 박청조에게 까지 눈길을 주다니, 음...퉤퉤 우라질 같은 나쁜 놈! 이 놈에게는 윤서화에 대한 이상한 집착병이 있나 봅니다(이런 놈은 진짜 잔혹하고 처참하게 죽어야 해!!!).  

아들 박태서와 최강치의 무례를 사과하러 온 박무솔에게 여식을 달라는 말을 하다니, 인두겁을 쓰고서 딸자식을 늙다리 영감한테 몸수발을 들라고 면전에서 말을 할 수 있는지, 아주 그 자리에서 도륙을 내버리고 싶더군요.

인간같지도 않은 짐승과 마주한 박무솔, 아들과 최강치의 무례는 자신의 잘못이라며 강치에게 곤장 200대를 때리겠다는 조관웅 앞에 무릎을 꿇고, 대신 그 곤장을 맞겠다는 인품에 정말 반했습니다. 주막에서 국밥을 드시며 잠깐의 등장에도 '존재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확인케 한 유동근(이 분이 이순신 장군 역이라는군요. 정말 잘 어울립니다^^)의 내공 깊은 연기에도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요. 

서서히 드러나는 조관웅(이성재)의 야심, 병조참판을 지냈던 이가 낙향해 상권을 접수하고 그가 부리는 이상한 놈들의 정체 또한 괴이하기 그지없습니다. 소정법사의 모습으로 박무솔 앞에 나타난 호위무사의 정체도 궁금하고, 최강치를 둘러싼 소정법사(김희원)와 박무솔(엄효섭)의 20년전 일을 알고 있었는지 그것도 궁금하고 말이죠.  

 

만나야 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이 강치와 담여울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소정법사가 그토록 염려하고 막아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간사이고, 그들의 운명인가 봅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듯이 소정법사가 담여울(수지)에게 한 예언이 의미심장했지요.

"만약 그 인연을 피하지 않는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인연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면요?", 저잣거리에서 마봉출 일당을 혼구녕을 내주고 뜯은 고리사채를 상인들에게 돌려주는 강치를 본 담여울, 그와의 인연이 피할 수 없는 인연임을 느끼기 시작했죠.  

어린 날 늑대에게서 구해주었던 소년, 그 귀에 익은 소리 "걱정마, 내가 옆에서 지켜줄 거니까", 세상에서 왕거미를 가장 무서워 한다던 그 남자아이가 최강치임을 알게 된 담여울, 어릴 때 맺었던 한 번의 인연이 필연이 되어 다시 나타난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최강치 그녀석에 대해 점점 궁금하고 알고 싶어지는 담여울입니다.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의 아픔을 보듬어 줄 줄 아는 남자, 그는 담여울이 바라던 연분, 진짜 강하고 따뜻한 남자였거든요. 이 남자가 연분이라면 피하고 싶지 않은 담여울입니다. 그가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죠.  

 

"둘 중 하나가 죽음에 이를 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생사여탈과 그 운명의 시종(始終)은 하늘의 권한입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럼 이만.. 총총", 소정법사의 예언에는 희망적인 복선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는다'가 아니라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는 것이죠.

피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갸웃하는 담여울, 그래도 그 말을 귀담아 들을 담여울 같지는 않아 보이더군요.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버리고 눈이 먼저 가버리고 가슴이 뛰는 것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랑인게지요.

넉살좋고 인물좋고 의협심 강하고, 책임감도 강한 남자 중의 남자 최강치에게 반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걸겁니다ㅎ. 물론 담여울(수지)도 남자가 반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넘 예뻐요. 아직 최강치는 담여울이 여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데 알게 되면 달라질걸!!  

강치가 왕거미를 무서워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담여울, 그러나 강치는 아직 담여울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지요. 기억이 없는 만남이라면 의미 또한 없을 것이라는 여울에게 기억해 내면 의미 또한 생기는 거냐고 물었던 강치였지요. 의미라는 것은 만날 인연이고 그 인연이 운명적인 연분이라는 것을 강치도 알아가겠지요.

 

최강치라는 인물이 이렇게 매력적이고 빵빵 터지다니, 드라마 전체에 깔려있는 암울하고 슬픈 기운에도 최강치의 반전매력은 허를 찌릅니다. 사고뭉치 물색없는 철부지라지만 심지가 곧고 의협심 강한 최강치, 구가의 서 4회에서는 그의 진한 슬픔을 엿봤던 회차였지요.

20년을 내색하지 않고 밝게만 자라온 듯한 최강치가 박무솔(엄효섭)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먼발치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서글프고 짠해보이더군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내가 저 가족의 한 부분이 된 것같은 그런 느낌을 받으니까요...". 

말꼬리에 흐르는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를 거둬준 박무솔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지요. 박무솔 가족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에는 최강치의 아픔이 들어 있었지요. 젊은 배우가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게 쉬운 게 아니죠. 진심으로 흐뭇해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아픔을 제 3자가 느끼게 하는 것 말입니다. 이승기의 감정선이 풍부하다는 것이 이런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달빛정원의 슬픈 전설, 유동근의 무게감있는 나레이션에 흐르는 비극의 기운에도 이승기와 수지의 조합은 트렌디한 현대극 못지 않게 달달하고 상큼합니다. 허당기와 진지한 멜로, 게다가 서정적이기까지 한 이승기의 다양한 매력이매회 선물처럼 쏟아나오네요.  

박무솔 부인의 명에 형처럼 함께 지내온 장정들에게 몰매를 맞았으면서도 백년객관에 문제가 일어나자 장난기 있었던 표정을 싹 지우는 최강치, 백년객관을 떠나라는 윤씨부인의 경고에도 객관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가 받은 온갖 수모와 모멸에도 자존심을 버리지요. 강치에엑 백년객관과 박무솔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집이고 가족이니까요.

 

박무솔 부인에게 어려서부터 한 번도 웃음을 지어준 적이 없는 연유를 묻는 강치, 되돌아오는 대답은 강치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천출 나부랭이가 누굴 넘보느냐는 말보다 더 답답하게 짓눌러옵니다. "나는 네가 불길하다. 원래 태생부터 넌 불길한 아이였다. 네가 우리 태서와 청조에게 해를 끼칠까봐 나는 네가 싫다. 거슬리고 불편해".  

목숨을 걸고서라도 태서와 청조를 꼭 지킬 거라고 맹세한다는 말에도 윤씨부인은 까칠하기만 합니다. "사람인지 뭔지도 모를 놈의 맹세 따위를 내가 어찌 믿겠느냐!..?". 강치도 자신에게서 나오는 괴력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기운을 본인도 감지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을테지요. 들짐승(늑대)도 제압하는 기를 말입니다.

다행히 강치에게서 나오는 기운은 액막이 팔찌의 효력때문인지 나쁜일이나 자신의 사욕을 위해서 쓰지는 않았지요.박무솔 아래서 보고, 배우고, 자란 강치가 사람의 좋은 소양들만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자신의 힘을 약자를 괴롭히는 일에 쓰는 인간들도 태반인데, 강치는 그 힘을 오직 약자들을 괴롭히는 왈짜들과 살기를 띤 자들, 그리고 백년객관에 해가 되는 사람들에게만 써오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강치의 정체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올곧은 심성과 은혜를 아는 사람의 심성을 가진 강치지만, 반인반수라는 정체는 인간들에게는 퇴치해야 할 괴물로 비춰질 뿐이겠죠. 강치의 아버지 구월령이 그러했듯이, 인간을 사랑한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어하는 심성이 숙명처럼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조관웅과 맞서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도 말이죠.  

 

혼례를 앞둔 첫사랑 박청조(이유비)를 보는 마음, 속이 천갈래 만갈래로 찌어지는 듯 아플텐데도 쓸쓸히 발길을 돌려가는 최강치, 그에게 사랑은 행복이자 아픔입니다. 허락되지 않은 사랑, 청조도 강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청조를 달라고 청하지도 못하는 속을 누가 알까요?

아마도 강치의 첫사랑은 아픔 이상의 비극으로 끝날 듯 하군요. 조관웅이 보낸 수하가 박무솔을 해치고, 그 누명을 최강치에게 씌울 것이 자명해 보이니 말입니다.

 

어머니 젖 한 번 물어보지 못하고, 태어나자 마자 강물에 버려져야 했던 최강치, 박무솔의 부인이 말한 태생부터 불길한 아이가 아니라, 최강치는 태생이 슬픔으로 가득찼던 아이였습니다.

박무솔의 사랑을 받으며 올곧게 자랐다고는 하지만, 그의 부인은 내내 차가웠고 눈총을 받아야 했던 강치였지요. 박무솔 어른의 은혜를 갚으며 백년객관을 지키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자라왔던 강치, 여수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강가에 버려진 아이라는 태생의 슬픔도, 어르신 가족의 단란한 속에서 잊을 수 있었던 강치였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산산히 부서지려 하고 있습니다. 백년객관을 향해 다가오는 조관웅의 무서운 음모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최강치라는 인물을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탕하면서도, 넉살좋고, 은근히 바보같은 허당기도 있고, 장난기도 많고, 의협심도 강하고, 성질은 욱하죠. 여수에서는 다 아는 자칭 순정파이기도 하고요. 

반인반수의 태생은 소정법사가 준 팔찌때문에 모습은 봉인되었지만, 반사적으로 나오는 그의 몸놀림에서는 야성이 읽혀집니다. 표창이 날아오자 반사적으로 담여울(수지를) 보호해 주저앉히고 '누구냐'고 소리치는 모습에서는 동물들처럼 코 주변의 인상을 찌푸리더군요. 반인반수라는 캐릭터를 염두한 표정연기가 아닌가 싶어서 그 세세함은 칭찬이 아깝지 않습니다. 

액션, 코믹, 멜로, 안되는 장르가 없는 이승기는 넉살좋게 보이려는 어색한 연기마저도 빵 터지게 잘하더군요. 담여울에게 까불다가 발로 사정없이 한대 뻥 차이고는 바로 꼬리를 내리기도 하고, 밧줄에 묶여 모냥빠지는 수모를 당하며 존심 좀 지켜달라고 사정하다가도, 백년객관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표정을 싹 바꾸고 정중하게 밧줄을 풀어달라고 분위기를 급반전시키기도 하고, 담여울에게 대나무로 뒤통수를 무방비 상태로 맞고 황당해 하기도 하는데, 두 사람은 티격태격이 귀엽기까지 합니다.  

객관을 비운 것을 추궁하는 박무솔 앞에서는 어눌한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도, 자기가 거짓말을 썩 잘했다는 듯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순진한 바보같은 모습까지, 웃음을 참지못하게 만드는 이승기였죠.

조관웅 일행이 불시에 들이닥쳐 소란이 일어난 시간, 강치와 객관을 지키는 장정들은 부인 윤씨부인때문에 객관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지요. 이런 저런 핑계와 거짓말로 객관을 지키는 형님과 윤씨부인을 곤경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말 그대로 발버둥을 쳐보기는 합니다.

박무솔이 강치를 아끼는 것은 그가 가진 신비스런 힘때문이 아니라,그런 강치의 소탈하고 착한 성품, 욱하기는 하지만 주먹을 아끼지 않는 의협심, 주변사람을 감싸는 따뜻한 심성때문에 진심으로 자식처럼 아꼈던 것이겠죠.

꼬치꼬치 조목조목 따지는 박무솔에게 대답이 궁해지자, 귀청이 떨어져 나가게 쩌렁쩌렁한 소리로 "죽을 죄를 졌습니다, 나으리!"라는데 그 허를 찌르는 연기에 빵터졌네요. 이를테면 박무솔에게 능청스럽게 '한번만 봐주세요'라고 귀여움을 떠는 능글맞은 여우같은 연기였죠.

 

구가의 서를 오래동안 준비해 온 이승기, 매장면에 모니터링을 꼼꼼히 하는 모습이 읽힐 정도입니다. 코믹연기는 자연스럽고, 멜로는 아련돋고, 액션연기까지 안되는게 없는 남자 이승기, 이 남자의 반전매력은 끝이 없군요.

그런데 아직 더 큰 게 남아있지요. 야수로 변할 최강치의 모습입니다. 다크 최강치, 그것도 반인반수의 짐승같은 모습으로 변신하게 될텐데, 실험적일 수도 있을 이승기의 괴물연기(?)도 기대됩니다.   

아버지와 같았던 박무솔을 죽인 원수 조관웅과 맞서며 최강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어려운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은 백년객관의 취객과 난동꾼들, 그리고 저잣거리의 왈짜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던 강치였을 뿐이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 집이고 가족인 그들을 지키는 것이 다였던 강치 앞에 부는 피바람, 그 피냄새에 강치의 야성이 어떻게 표출될지 기대되는 구가의 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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