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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4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조인성 눈물, 그 겨울 바람을 말하다 (9)
2013.03.14 12:11




오수가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왕비서와 장변호사가 오수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게 되는 듯한데, 전 개인적으로 장변호사나 왕비서가 오수에게 아직은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싶습니다. 오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오수이기에 좀 더 오수를 지켜봤으면 싶네요. 

앞으로 오수의 거취문제나 정체가 오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쯤해서 오수의 정체를 오영이 알았으면 싶군요. 오수에게 끌리는 감정이 단순한 오빠에 대한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가는 오영의 심리변화도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말이죠. 송혜교의 연기가 좋아서 여자가 되어가는 감정연기도 보고 싶어지는군요.

 

이젠 오수에게도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는 것이 상관없어졌지요. 오수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살 수 있는 78억이 아니라, 오영을 살리는 것이 되었으니까요. 사랑하니까, 많이... 

"왜 약을 안먹였냐"고 이유를 물어보는 오영에게 오수가 말하죠.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하거나...". 희주의 죽음 이후 오수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에게 여자란 하룻밤 욕정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진소라의 사랑도 집착일 뿐이라고, 선을 긋습니다.

"사랑은 의리가 아니야. 니가 나한테 하는 것은 집착. 사랑은 아주 간단해, 상대가 끝났다고 하면 끝나는 것, 싫다는 사람에게 같이 사랑하자고 하는 건 집착. 사랑은 거래가 아니어서 배신이 없어.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거니까 생색도 안통하고, 자랑도 안통해. 우긴다고 집착이 사랑이 되지는 않아".

노희경 작가 특유의 문체가 살아있는 대사였습니다. 간단명료하고 냉정할 정도로 솔직한,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듭니다. 상대가 끝났다고 하면 끝나는 것! 상대는 끝냈는데 인간인지라 무자르듯 끊을 수 없는 감정이기에 집착으로 변하고, 상대도 본인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진소라가 영이가 목숨을 걸만큼 좋냐고 묻자 오수가 말하죠. "모든 인간은 딱 한 번 죽는다는 말을 기억하려고 해. 그렇다면 지금이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잠시 이 대사에서 혼란이 왔지만(조인성의 대사 끊는 지점이 모호해서 이해하는데 애먹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딱 한 번/죽는다는 말을 기억하려고 해"로 대사를 쳤는데, 그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전 "모든 인간은 딱 한 번 죽는다는 말을/기억하려고 해"로 풀었습니다. 그렇죠, 인간에게 죽음은 딱 한 번 뿐이죠.

 

희주의 죽음 이후 사랑따윈 없다고 생각했던 오수의 삭막한 겨울에 분 바람,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닫힌 마음을 사랑으로 연 오수입니다. 그 바람은 시궁창같은 곳에 쳐박혀도, 무철의 칼에 찔려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버둥쳤던 오수를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는 이유같은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오수,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던 오수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물론 죽고 싶을 때는 많았던 오수였지요. 그런데 진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처음입니다. 죽어도 좋겠다면 지금, 오영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어느새 가슴 한가득 꽃으로 피어나 버린 그녀를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도 좋겠다는 오수입니다. 

그런 오수이기에 무철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하지요. 무철의 누나에게 오영을 수술하게 도와달라고 말이죠. "살려주라, 형. 내일도 올게. 모레도 또 올게. 내가 형 손에 죽으면 되잖아. 영이는 살리자, 죄없는 애는 살리자. 희주처럼은 만들지 말자", 무철에게 발로 채이고 주먹으로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오수는 영이만은 살리자고 눈물로 애원합니다.

돌아서서 가는 무철의 작은 흔들림은 그의 마음이 움직였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희주를 짝사랑했던 무철의 사랑도 지금의 오수처럼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었던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오수의 겨울에 분 바람이 목숨을 내놓아도 좋을 사랑이었다면, 오영의 겨울에 분 바람은 살고 싶다는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오영의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그래서 그 삶에 대한 의지가,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절박해서, 오히려 죽고 싶어하는 오영의 진심을 말이죠.

안괜찮아도 된다며, 팬션에서 영이 했던 말로 위로받았던 오수가 영을 위로하지요. "안괜찮아도 되니까 울래?". 영이 그랬던 것처럼 오수가 영을 위로해 주지요. 영은 괜찮지 않았습니다. 뇌종양이 재발되었다고 막상 의사가 말했다고 하니까 무섭고 두렵고 슬픈 영이었지요. 영의 눈물은 살고 싶은 영의 마음이 흘러내렸던 거였지요. 

오영을 살리기 위해, 살고 싶다는 말을 뱉을 때까지 오수는 오영에게 차갑게 대합니다. "참 재수없다, 너! 내가 너보다 나은게 딱 하나있어. 난 그 어떤 순간에도 살고 싶어한다는 거야".

"넌 살고 싶으면 살아지지만, 난 살고 싶어해도 살 수 없어. 여섯살때부터 준비한 거야. 언젠가 때가 오면 지금처럼 웃으면서 가야지. 구차하게 연연해 말아야지. 너랑 있는 이 순간도 너무 좋고 따뜻해도 연연해 말아야지. 그러니까 날 흔들지마. 기대하게 하지마!".

뇌종양이 재발되었다는 말에- 물론 오영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오영은 담당의사를 찾아가 물어보죠.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는 거냐고 말이죠. 그의 가족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 해도 수술을 받게 할 거라고 말했던 의사는 오영의 물음에 답하기를 주저합니다. 수술이 성공해도 또다시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산다는 확신을 해주지 못하지요.

 

한가닥 희망을 찾고 싶었던 오영은 삶의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려 합니다.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오영, 그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은, 살고 싶다는 생각을 여섯살 이후 처음 들게 한 오수에게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왕비서에게 결혼하겠다며 우는 영, 수술을 받지 않으려는 영에게 처음으로 손찌검을 한 왕비서, 두 사람이 21년간을 지내온 세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왕비서에게 영은 삶의 이유였고,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영이 필요로 하는 사람, 그녀를 영이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그녀에게는 사형선고와도 다름없는 순간일 겁니다. 아직 왕비서가 영의 눈을 제때 치료하지 않은 이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줌마"하며 영이 고사리같은 손을 내밀었던 그날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영이가 크면 언젠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가 올것이고, 영의 아버지 회장님이 죽으면 왕비서는 영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어질테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영에게는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왕비서는 그런 영을 보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명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을 보란듯이 키우고 싶었습니다. 첩살이한다고 형제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PL그룹의 내연녀라는 딱지는 그녀를 영의 집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했습니다. 영이 정상인처럼 회사일을 보고 PL그룹을 이끌어 나가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었고, 영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었고, 그녀가 사는 이유였습니다. 

첩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모욕도 감수했던 왕비서였지만, 죽은 회장은 왕비서를 끝내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랑도 하지 않았죠. 생각해보면 왕비서도 불쌍한 여자입니다. 영을 수술시키기 위해,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영을 빰을 때리기 까지 한 왕비서, 영이가 살아야 자신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에게 올인한 그녀의 인생, 영이가 없으면 그녀의 삶은 죽음과도 같은 사막이 될 거라는 걸 왕비서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영이 없이는 못산다고 한박사와 전화통화를 하던 왕비서의 마음은 거짓이 아닌 듯 보이더군요. 왕비서의 영에 대한 사랑은 거짓이 아니지만, 영에게 필요한 사람이 자신뿐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아직 왕비서는 알지못하고 있을 뿐이죠.

영이도 왕비서의 그 마음을 알고 있었지요. 알면서도, 왕비서가 없으면 영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왕비서를 숨막혀 하면서도 서로를 이용하고 의지합니다. 전 이 두사람의 관계에 이상하게도 연민을 느낍니다. 으르렁대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습으로 보여서 말이에요. 

 

왕비서의 손찌검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던 영, 오수의 차가움에 무너지고 말지요. 영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오랜 바람을 말입니다. 여섯살때 뇌종양을 앓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영은 어린 나이에 받고 싶었던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반항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타난 오빠, 영의 언 마음을 녹여주고, 보이지 않는 영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 오빠가 차갑게 영의 손을 뿌리칩니다. 그리고 영이 죽기보다 듣기 싫은 말, 영에게 가장 두려운 말을 뱉지요. "나 이제 떠날려고".

"왜 왔어? 처음부터 이럴려고 왔어?".  

혼자 남겨지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영에게 오수가 말하죠.
내가 너에게 원하는 건, "살고 싶다는 말, 살아야 겠다는 의지".

 

어떻게든 영을 수술시키고 싶은 오수는 영이 수술을 받지않으면 떠나겠다고 이를 악물고 영에게 차갑게 대하지요. 영의 비밀의 방에서 알아버린 혼자 남겨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늘 외로웠던 아이 영을 알고 있기에 말이지요. 그런 오수의 가슴에 오영의 말이 심장을 할큅니다.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 난 살 수도 없는데, 니가 보고 싶지 않냐고? 보고 싶어, 니가 오고부터 매일 네가 그리워. 그럼 뭐해? 난 볼 수도 없는데...나도 무서워 죽는게.... 왜 날 이렇게 약하게 만들어 넌! 왜 자꾸 날 살고 싶게 만들어, 넌!!".

 

오영의 차가운 겨울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속에 자라고 있는 뇌종양을 살 수 없을 거라 말합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떠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런데도...그런데도 오빠가 떠나는 것이 더 두려운 오영입니다. 살고 싶다고 말하면 그가, 오빠가 떠나지 않을까요? 진짜 살고 싶습니다. 간절하게...

사랑을 버린 남자에게 사랑의 바람이, 죽고 싶은 여자에게 살고 싶은 마음이 불고 있습니다. 노희경 작가가 그들의 겨울을 어떤 바람으로 따뜻하게 녹일지 궁금해지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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