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겨울 해피엔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4.04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의미있는 해피엔딩 설명한 두 장의 그림 (11)
  2. 2013.03.21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의 눈, 색과 빛으로 보여 준 결말암시 (11)
2013.04.04 10:34




"사기꾼 오수의 어릴 적 꿈이 뭐였어?", 오수가 가짜라는 것을 안 후 별장에서 오영이 물었었죠. "목수, 농부, 어부, 엔지니어... 사기꾼이, 겜블러가 아닌 모든 것"이라고 오수는 대답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수는 진짜 꿈을 말하지 않았죠. 오수의 꿈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엔딩에서 오수가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줬습니다. 김규태 감독의 영상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참 섬세하더군요. 김감독은 오영의 시력회복에 대해서도 뿌옇게 처리한 벚꽃으로 오영의 시력의 정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오영이 100% 시력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뿌옇게 처리한 화면이었죠.  

화사한 벚꽃엔딩으로 긴 겨울을 끝낸 오영과 오수, 그들의 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겨울에 불었던 바람은 닫힌 마음을 연 사랑의 바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왕비서는 오영의 곁으로 돌아왔고, 영의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도박장에서 오수는 게임에서 이겨 김사장의 빚을 갚았고,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김사장의 협박으로 진성이 오수를 칼로 찔렀지만, 두 번째 찌르려다 칼을 놓아버리고 목놓아 우는 진성,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아 오수는 살았고, 모두가 해피엔딩이었습니다. 게임을 끝내고 나온 오수가, 병원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진성의 칼을 맞은 연출은 참 생뚱맞았지만;;  

 

조무철의 죽음이 아쉽고, 그가 뒷골목 동생들을 어떻게 지키다 갔는지, 오수와 진성이 아는지 모르는지 그 점이 아쉽기는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조무철만이 자기를 이해해주고 떠난듯 해서 말이죠ㅠㅠ. 김태우의 강한 여운이 남는 연기, 정말 좋았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김사장 똘마니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했던 것은, 작가의 조무철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마지막 애도 내지는 애정의 표시라고 보고 싶더군요.

김사장 똘마니의 팔을 망가뜨려 그 바닥에서 살지못할 거라면서, "얘야, 집에 가!"라고 나즈막히 내뱉는 조무철, 그의 후회가 들어있는 말이었습니다. 집에 가라는 말, 이보다 강한 메시지가 있을까 싶습니다. 밑바닥 주먹인생, 그들에게 집에 가라는 말은 사람답게 살라는 말보다 강한 여운을 남기더군요.  

 

왕비서(배종옥)와 오영의 화해, 조무철만큼이나 애정을 가지고 봐왔던 캐릭터였기에 그녀가 오영에게 하는 드라마 속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궁금했었습니다. "영이야, 분명히 말해둘게 있어, 너는 혼자 살 수 없어.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린 누구도 혼사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내가 네가 있어서 지금까지 산 것처럼... 수술 후 네가 눈을 다시 못떠도 눈이 안보이더라도, 눈이 안보이는 것 때문에 더는 마음 아프지 않길 바란다".

영이를 안고 "그래도 미안해, 많이 미안해" 사과하는 왕비서, 그녀는 여전히 영이의 엄마였습니다. 영이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언제나 자식을 위해 달려와주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어갈 수 있는, 무엇보다 영이를 너무도 사랑하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영의 눈을 망가뜨려 20년 넘게 암흑속에서 살게 한 죄가 씻어지지는 않겠지만, 왕비서가 영에게 꼭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진심으로 사과하더군요.  

 

엔딩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성(김범)과 희선(정은지)의 수에 대한 대화가 좀 찜찜했을 듯해서 말이죠. "내일 수한테 가는 날인 거 알지? 이번에 수한테 갈때 무슨 꽃 가져갈까? 지난 번에 안개꽃 가져 갔었는데...", 수 이야기가 나오자 진성의 표정이 우울해서 마치 오수가 죽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죠. "영이 닮은 렘즈이어".

짧게 대답하는 진성의 표정과 꽃이야기가 오수를 추억하러 가는 것마냥 들렸지만, 바로 이전에 자전거를 타고 오영을 스쳐지나가는 장면으로 오수가 살아있음을 미리 보여 주었지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귀에 익숙한 소리에 오영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 사람이 오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죠.  

오수가 일하는(주인인가?) 레스토랑에서 차를 마시며 렘즈이어를 만지는 오영, 그 렘즈이어는 희선과 진성이 가져다 준 것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오수가 그리다만 나무에 꽃이 피어있는 그림이 완성되어 걸려있었죠. 고로 희선과 진성의 대화는 오수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진성의 표정에 보였던 무거움은 오수를 칼로 찌른 것에 대한 미안함을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이죠.  

 

자살기도를 하고 오영은 오수가 남긴 비디오 테입을 봤지요. "사람이 사람한테 해줄게 참없다는게 마음이 아프다"는 오수의 울먹이는 목소리, 오영은 오수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확인합니다.

"널 만나 처음으로 세상이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내 인생도 처음으로 서운하지 않았어, 너 때문에... 만약 이게 끝이 아니면 언젠가 한 번은 꼭 보자. 그 땐 너한테 말하지 못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 니 첫인상부터 널 사랑한게 언제부터였는지, 니가 얼마나 이뻤는지, 그리고 말로 다하지 못하 내 죄책감도... 그리고 니 진짜 오빠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또...", 영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 오수, 눈물이 앞을 가려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수였지요.

오수의 말을 들으며 눈물흘리며 미소짓는 오영, 그녀는 행복합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그 사랑에는 사기도 돈도 없었다는 오수의 진심을 확인했기에 다친 상처가 다 치유되는 오영입니다. 

 

온실에서 돌아온 오영은 오수에게 진심을 고백하죠. 듣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오수를 꼭 다시 만나겠다는 그녀의 마음이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오수를 다시 못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오영, 그녀의 진심을 고백했죠. 지금이 아니면 혹이라도 영영 말하지 못하게 될까봐...

"나는 지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니가 가고 나는 너를 볼 수가 없는데 니가 보고 싶은게 참 힘이 들더라. 나 역시 너처럼 너를 보낼때 끝이 아니었나봐. 끝내려는 그 순간에도 니가 달려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한테 있었던 것 같아. 손목을 그을때도 두려움보다는 니가 내 방문을 열지는 않을까 기대했어, 마치 단 한번도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사랑해, 많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을 훌쩍 넘기고 봄을 맞이했습니다. 오영 앞에 나타나지 않는 오수, 왜였을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도 오수는 종적을 감추고 있었지요.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 오수가 일하는 레스토랑과 두 장의 그림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수는 오영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고 싶었던 듯 합니다. 오영의 자살기도 후 감자수프를 끓여주며 오수가 말했죠. 진짜 요리사가 될까보다고요. 셰프가 꿈이었던 죽은 오수, 오수는 오영의 진짜 오빠 오수의 꿈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오수 자신의 꿈도 찾아가기 시작했죠.

첫회 희선이 여자팬티를 식탁에 던지던 날, 희선이 오수의 집 거실 한 귀퉁이에 놓인 미완성된 그림과 물감들을 힐끗보며 오수에게 말했죠. "너 그림 안그려? 그리라는 그림은 안그리고 맨날 기집애들이랑 잠이나 자고". 

"사기꾼 오수의 어릴적 꿈이 뭐였어?", 오수의 꿈은 화가였습니다. 오수의 그림 주제는 자기자신, 나무였습니다. 어릴 적 나무밑에 버려져서, 보육원 주위에 나무가 많아서 나무 수자가 이름이 된 오수, 그러나 오수의 나무는 나뭇잎도 꽃도 없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나무가지만이 날카롭게 가지를 뻗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쓰레기같다는 오수의 인생처럼 말이죠. 오수의 심리가 그대로 투영되었던 삭막한 나무였죠.

그런데 그 그림이 레스토랑에 완성되어 걸려있더군요. 꽃이 만발한 나무로 말이죠. 레스토랑 한켠에 세워진 나무 그림 역시 무성한 잎들과 초록의 잔디가 깔린 그림이었죠. 오수가 버려졌던 겨울의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에 봄이 온 그림이었습니다. 오의 꿈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된 오수의 변화에 대한 연출이었죠. 

 

오수는 오영에게 사기꾼이 아닌 오수로 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오영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말이죠. 요리를 배우고,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그리고 오영을 지켜봐왔습니다. 오영이 가는 복지관 가는 길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이유는 오영을 보기 위해서였겠지요.

 

"많이 기다렸는데, 언제 나한테 말걸어주나...".

"용기가 안났어, 혹이라도 네가 날 보게 되면 내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차가운 겨울, 잎 하나 없는 나무밑에 버려진 오수에게 꽃이 만발하고 잎이 무성한 봄이 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차가운 겨울에 혼자 남겨진 오영에게 벚꽃처럼 화사한 봄이 왔습니다. 레스토랑에 놓인 오수의 그림과 오영이 보게 된 찬란한 벚꽃은 오수와 오영의 지독한 겨울이 끝났음을 영상으로 보여준 미학이었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쓰레기같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 남자와, 살고 싶은 이유가 없어서 죽고 싶은 여자가 만났다', 삶의 이유가,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 마음이 겨울이었던 두 사람의 긴 겨울은 이렇게 봄꽃 화사한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오영과 왕비서의 대화가 전 마지막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더군요.

"우린 누구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서툰 방식으로라도 날 사랑하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렇게 외롭진 않았을텐데".

 

첫회 오수의 나레이션을 통해 노희경 작가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전달했지요. "사람들은 모두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럼 나도 이 더러운 시궁창같은 삶에서 의미를 한 번 찾아봐? 세상에 태어나 믿을 거라고는 나밖에 없다고 평생을 살아온 내게도 찬란히 눈부신 햇살이라도 비추나? 그러면 내 인생이 뭐가 바뀌나? 그럼 어디 한 번 해볼까?".

오영을 만나 삶의 이유를 찾았던 오수는 요리를 배우고 그림을 다시 시작했고, 죽고 싶어했던 영은 살고 싶은 의지로 수술을 받고 복지관 봉사활동에 열심입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이유를 찾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 오수와 오영입니다.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오수, 아무도 믿지못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오영, 서로를 사랑하면서 변화된 것은, 그들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수가 말했죠. 세상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이 오영이라고, 영이 니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두 사람의 재회도 예뻤지만, 자신을 사랑하게 된 오수와 오영의 변화가 더 크게 와닿더군요. 오수가 셰프가 되고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것, 그리고 오영이 복지관 일에 열심인 모습이 제게는 가장 의미있는 해피엔딩으로 보이더군요.

두 사람이 우연히 벚꽃아래에서 재회하는 아름다운 영상만으로 끝내도 해피엔딩이었겠지만,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진정한 해피엔딩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오수와 오영의 변화였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이 엔딩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그들이 찾은 삶의 이유와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에요. 오영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재회하는 것만 보여줬다면, 오수는 돈많은 여자를 만난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속된 말로 땡잡은 거죠. 그러나 오수를 1년을 기다리며 오영 앞에 사기꾼, 도박꾼이 아닌, 오수로 만날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오영도 큰 변화가 있었지요. 아무도 믿지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오영이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돈많은 시각장애인 상속자가 아닌...

 

내 마음이 겨울이면 주변도 다 겨울이고, 세상은 외롭고 고독한 곳일 뿐이죠. 삭막한 나무가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하게 변했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상이 벚꽃으로 화사해졌듯이, 오수와 오영은 자신들 스스로를 춥게 만들었던 겨울을 끝내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이었던 마음이 봄이 된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다 저마다의 삶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지만, 삶은 삶 자체로 이유이고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을 빗대어 쓰레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오수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영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야말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진짜 해피엔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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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1 13:46




"애미야, 난중에 혹이라도... 나 아프거든, 며칠 더 살리겠다고 목에 구멍 뚫고 호스 넣지말어",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향하는 저를 불러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니들 마음 다 알거니까... 환자도 고생, 니들도 고생... 그러니 그러지 말어"라고 덧붙이셨죠.

하는데 까지는 다 하는게 자식된 도리라고, 그것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시 환자가족이었던 저희 시댁 형제는 아버님의 목에 호스를 넣지 말자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식된 도리로 최선이라고 생각했었기에... 그게 산 사람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또 한가닥 기대를 가지며, 하루라도 더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오영(송혜교)이 조선(정경순)에게 하는 말을 듣다보니 어머니의 당부말씀이 떠오르면서 착잡하고, 그러다가 눈물이 솟구치더군요. 오영의 마음이 그냥 예뻤습니다. 수술 성공확률 10%에 수술 후 항암치료를 최소 6회에서 20회까지 할 거고, 항암치료중에 재재발이 된 경우가 완치보다 많다며, 수술을 권할 수 없다는 조선에게 오영이 말하죠. "(수술성공확률 10%) 그거면 돼요. 오빠가 원해서 하는 거예요. 나도 살고 싶지만 가끔은 환자보다 주변이 더 안쓰러울 때가 있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나한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어요". 

오영의 경우와 시아버지의 경우는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오영의 말이 슬프면서도 예쁘고, 프면서도 따뜻하고... 그랬습니다. "수술에 대한 기대감, 없어요. 할게요". 수술후 완치된다는 보장도 희박한데도, 살려달라는 말대신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오영입니다. 끔찍했던 병원에서의 생활, 수술대 위에 누워 머리를 다시 열어야 하는데도 오영은 모든 것을 감수하려고 합니다. 오빠 오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살리려는 주변사람들의 마음에 회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렇게 예쁜 오영이기에 보내기가 싫군요. 기적이라도 좋으니 일어났으면 싶고요ㅠㅠ.

 

오영이 오수가 친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1년전 희미하게 보았던 남자의 목에 난 상처, 그리고 간밤에 입맞춤을 하던 오빠에게서 보였던 상처, 진소라의 휴대폰 음성메시지까지... 오영이 오수의 정체를 이제서야 안 것인지, 이미 알면서도 오빠가 너무 좋아서 모른척하려고 애써왔는지, 전 아직 모르겠더군요. 영민하고 눈치빠른 오영이라면 짐작하고도 남았을텐데 싶어서 말이죠. 오수를 오빠로 믿고 있었는지, 믿고 싶었는지 여전히 제겐 궁금점입니다. 

오수가 키스를 한 후 오영은 자신의 이상한 감정에 두려워합니다. 사랑이라는 것, 심장이 두근거리고 화끈거리고 왠지 모르게 자기의 이상한 감정이 무섭고,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영화에서나 혹은 책에서만 본 주인공들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에게도 나타납니다. 사람에게 처음 느꼈던 감정이기에 오영은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희선아, 동생이 오빠를 좋아해도 되니?  오빠랑 있으면 이상하게 자꾸 가슴이 뛰고 설레...". 

오영의 생각에는 오빠를 찾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단 한사람 오빠, 엄마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오빠가 떠날 때까지, 오영이 죽을 때까지 함께 있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오빠를 남자로 좋아한다는 것은 오영의 계획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오빠가 원하니까 수술을 받고, 남겨질 오빠를 위해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가자는 것, 오빠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 그게 오영이 해줄 수 있는 것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오빠의 손이 닿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온몸이 긴장되면서 가슴을 콩콩거리고, 간접적으로만 알았던 것들을 경험하죠. 오영에게는, 네, 아마 두렵고 무섭고 겁났을 거예요. 더군다나 그래서는 안되는 것쯤은 알고 있는 오빠한테서 느끼는 감정이었으니 말이죠. "이건 아닌 것 같아". 

 

거리를 두려는 오영이 오수는 이상합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결국 오영이 말하고 말았죠. "어젯밤에 오빠 니가 나한테 입맞춘 거 알아. 왜 그랬어?", "널 사랑하니까", 난 동생이라는 말에도 오수는 상관없다고만 할 뿐입니다.

오영의 비밀의 방에서 진짜 오빠 사진을 커튼에 매달아두고, 몇번이고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리느라 녹화를 정지하면서 자기가 오빠가 아니라고 녹화를 했던 오수였습니다. 그러나 오영에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지요. 영이가 받을 상처와 배신감, 아니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다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놓아버릴까 두려운 오수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왕비서, 오수는 왕비서를 참아줄 수가 없습니다. "환자가 뇌종양때문에 눈이 먼 건 절대 아닙니다. 조기발견해서 제때 치료했다면, 집에서 갇혀지내는 신세는 안됐을 겁니다", 뇌종양으로 눈이 멀 정도면 환자의 눈이 그렇게 깨끗하고 예쁘지는 않다는 구박사의 말에 오수는 피가 거꾸로 솟지요.

오영의 눈이 먼 것은 왕비서, 그 여자의 오영에 대한 잘못된 집착과 병적인 사랑때문이었음에 오수는 분노하죠. "확...x",  살기가 실린 손을 겨우 멈춘 오수였습니다. 조인성의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깜놀했답니다.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네요.

화를 참느라 부르르 떠는 오수, 오영의 눈만 생각하면 왕비서를 그 자리에서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 오수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왕비서와 맞서는 오수였지요. "조용히 해! 내가 지금 당신을 젖먹던 힘을 다해서 참아주고 있으니까. 영이 눈이 저렇게 된 건 RP(망막색소변성증)때문이야, 뇌종양이 아니라... 만약 영이의 수술이 잘못되면, 영이가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영이를 위하는 척하는 그 가증스런 눈빛 내 앞에서 다시는 하지마".  

오수의 분노는 왕비서와 짜고(?) 오진을 했던 안과의사에게서 터져버렸죠. 오영의 수술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했던 조박사팀, 구박사가 뇌종양도 눈도 수술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오수에게 전화로 알려줬지요. 한가닥 희망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는 듯한 오수입니다. 쓰레기같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영, 그 아이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보게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던 오수였습니다.

자기 얼굴도 모르는 영에게 자신이 얼마나 예쁘고 멋진지 꼭 보게 하고 싶었던 오수, 절망이 눈물이 되어 흐를 뿐입니다. 오영의 눈을 그렇게 만든 인간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은 오수, 그 마음이 어떠한 건지, 오수의 분노의 눈빛으로 다 읽혀졌죠. 무너져 내리는 슬픔과 절망까지 말이죠. 

대로 한복판, 넓은 길에 오수를 위해서인듯 달랑 두대밖에 없는 자동차, 여튼, 차에서 곽호석을 끌어내려 사정없이 미친듯이 묵사발을 내버린 오수였습니다. 무슨 일로 맞는지 영문을 모르는 의사,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고 생갹하쇼! 그 어린 아이에게 빛을 보지 못하게 하다니, 햇살이 무슨 색깔이냐고 묻게 하다니,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볼 수도 없게 하다니, 한 아이의 인생을 암흑속으로 던져놓다니, 당신은 의사자격도 없고 맞아도 싸!  

 

임맞춤 후 오영은 함께 잠을 자지 않겠다며, 방문을 걸어잠그는 등 오수를 피하는 듯 보입니다. "오빠 니가 자꾸 남자로 느껴져. 오빠 니가 입맞춘게 자꾸 생각나", 오빠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때문에 더 무섭다며 오영은 오수를 밀어내지요.

그냥 곁에만 있겠다고, 침대 밑에서 자겠다는 오수, 오영과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무철에게 죽어야 하는 날짜같은 것은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오영이 살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 오수에게는 힘들 뿐이죠. 그리고 더이상 오빠 행세를 할 수 없는 오수가 그 집에서 나갈 날이 머지않았음이... 

오수와 오영의 대화를 들어버린 왕비서(배종옥), 오영의 비밀의 방 비밀을 알게 된 왕비서는 이판사판 오수와 진실 주고받기 싸움을 하는데, 이번회는 싸이코같아서 그게 본모습인가 소스라치게 놀랐네요. 오영의 녹화테입을 밤을 세워 본 왕비서, 그날 아침식탁에서 오영에게 무뚝뚝하게 한 마디를 하더군요. 너랑 나랑 똑같다는 식으로 말이죠. "영이야, 난 내가 널 잘 키운 거 같은데 어때? 나만큼 강하고 독하고 모질고 때론 잔인하게...그치?".

 

사랑을 다 쏟아부었는데도 오영에게 왕비서는 비서, 눈대신 필요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필요하기에 입을 꾹 닫고 20년이 넘게 왕비서를 참아온 오영, 왕비서에게는 독하고 잔인한 오영이었겠죠. 그녀의 오기와도 같은 영에 대한 집착과 사랑(?)을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든데, 왕비서라는 인물은 노희경 작가가 꼭 풀어줘야 할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오영에게 입을 맞췄다는 말에 오수의 뺨을 때리는 왕비서, "니까짓게 어디서 감히 걔한테 입을 맞춰!!", 영의 말도 들었던 왕비서였으니 오영도 오수를 남자로 느끼고 좋아하는 감정에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은 알았을텐데, 왜 영의 감정은 무시를 하는 것인지, 사기꾼에게는 마음을 주고 헌신해 온 자신에게는 마음 한자락도 내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난 건지, 왕비서와 오수 두 사람의 싸움은 오영을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육탄전을 보는듯 격렬하더군요.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영이가 수술을 받을 수 없대. 눈도 고칠 수없대. 당신이 영이를 사랑한다는 말 난 믿지 않아. 당신은 그냥 쓰레기같은 당신 존재의 이유를 영이한테서 찾으려고 하는 것 뿐이야!". 

"그러는 넌? 너 역시 니 쓰레기 같은 인생을 걔한테 보상받으려는 것 아냐? 영이 눈? 그래 내가 그렇게 했다!(띠융~ 왜 그렇게 했는지, 전 노희경 작가가 이 부분을 어떻게 말할지가 가장 궁금하군요).

영이도 그걸 알고 있지. 근데 왜 모르는 척 했을까? 걔는 내가 필요하니까! 네가 영이한테 준 상처에 비하면 난 아무 것도 아니지, 영이가 네가 오빠가 아니라는 걸 알 때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봤니?

온실 속 비밀의 방에 들어가 영이의 추억을 훔쳐서 영이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하던 오빠행세를 하던 널 용서할 수 있을까? 78억 빚때문에 영이를 사랑하는 동생인 척하는 널 영이가 용서할 것 같아!!(또다시 띠융~눈을 방치한게 거짓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구! 헐! 전 왕비서에 대한 심적 데미지가 큽니다, 오수의 말대로 미친 건지)" 

 

진소라(서효림)의 전화를 받고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영, 왕비서의 방으로 내려왔다 이 모든 광경을 듣게 됐죠. 희미하게 다시 보이는 오수의 목상처, 그리고 1년전 "당신 오빠가 당신을 사랑한대"라며 오빠의 편지를 읽어주었던 그 남자였습니다. 오빠라고 온 오수가...

진짜 오빠는 죽었고, 오빠였던 사람은 가짜 사기꾼이고, 믿기 힘든, 아니 너무나 슬프게만 들리는 두 오수에 대한 두 가지의 진실 앞에 눈물만 흘리고 서있는 오영, 그녀의 휑한 표정, 핏기 가셔버린 얼굴, 그토록 맑고 예쁘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가슴을 후립니다. 차가운 겨울 오영에게 다가왔던 오빠라는 따스한 바람이 한순간에 너무 차갑고 시리고 아픈 바람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 가여운 아이를 어떡하면 좋을까요? 

 

****전 역시나 이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너무나 간절히 바라고 있나 봅니다. 눈이 부시게 투명하고 맑은 오영에게 행복한 빛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의사는 뇌종양도, 눈도 가망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사망선고와도 다름없는 이 말이 어떤 기적같은 일로 뒤집히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그 희망적인 복선을 찾아보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번 12회 마지막 엔딩에서 제 마음에 환한 빛이 들어오더군요. 오영의 눈에 비치는 빛의 색깔이기는 했지만, 전 해피엔딩 복선을 영상적으로 보여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오영의 눈의 상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의 상태는 아니지요. 오수의 목상처를 어두운 관을 통해 어렴풋 보이는 듯한 장면도 몇번에 걸쳐서 나왔고요. 그리고 오수와 왕비서의 이야기에 큰 쇼크상태에 빠지는 오영이 현기증을 잠깐 느끼는 듯 눈을 감았다 뜨는데, 어머나! 마치 해를 바라볼 때의 느낌처럼 흰색과 노란색이 전체 화면에 가득하더군요. 빛과 희망을 상징하는 흰색과 노란색!

그 전에는 오영의 눈상태를 까만 색감을 위주로 보여주었지요(오영의 눈상태와 상처받고 마음을 닫아버린 감정을 말하듯이). 오빠는 죽었고 오수는 가짜고, 깊은 절망과 배신감, 슬픔에 싸여 온통 세상이 멍해져 버린 오영, 그런데 그 절망 속에도 이 아이에게 조금은 따사로운 빛을 주고 싶어하듯, 조금의 행복을 주고 싶어하듯이 오영이 감지하는 빛을 환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흑백의 교차로 보여주는 감각적인 연출, 두 색감의 대비는 그녀의 마음을 말하기도 하고, 그녀의 눈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오영 눈에 비치는 빛의 변화가 엔딩을 암시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봤습니다. 오영의 눈은 그녀의 닫힌 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오수로 인해 마음을 열었던 것처럼 환한 색으로 변하더군요.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색감의 변화가 의미심장하게 보이네요. 오영의 행복을 말하는, 혹은 시력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빛은 아닐까...요?

 

오수는 78억의 빚때문에 오영에게 왔지만, 오영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오영도 마찬가지지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오빠, 21년간을 찾아오지 않았던 야속한 오빠, 처음 만나고도 왜 눈이 멀었느냐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던 오빠를, 언제부터인가 의지하고, 믿고, 오빠와 함께 있는 것이 편해졌습니다. 오빠를 남자로 좋아하게 될 거라는 것은 오영의 생각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다른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입맞추고 싶고, 두근거리고 설레이고...사랑은 두 사람의 계획과 생각에는 없었던 감정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불어왔을 뿐입니다. "널 사랑하니까!", 오영이 오수의 마음이 거짓이 아님을,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은 진심임을, 그게 그 남자의 전부임을 알았으면 좋겠군요.  

앞이 보이지 않기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살았던 영, 그녀에게 돈이 없으면 아무도 곁에 있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도 영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수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영이의 돈이 목적이었죠.

그런데 오수는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오빠니까 라고만 생각했던 영, 영이가 매일매일 오수에게서 받은 것은 풍경소리였습니다. 너의 곁에 내가 있다는 소리였지요. 마음을 준다는 것, 오수에게는 열아홉 이후 처음이었죠.  바람이 불어야 제소리를 낼 수 있는 풍경, 그 바람은 오수의 진심이었음을, 그 소리는 깨끗한 사랑이었음을 오영이 알게 되기를.... 21년을 어둠과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오영, 오영의 눈에 보이는 빛이 까만 색에서 환한 빛의 색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오영의 눈과 마음이 환한 빛으로 가득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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