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2.13 '천일의 약속' 죽음 준비하는 수애, 생모를 만나려 한 이유 (6)
  2. 2011.11.22 '천일의 약속' 결혼 허락한 김해숙, 시청자 울게 만든 한마디 (27)
  3. 2011.11.16 '천일의 약속' 말문 트인 김래원, 마침내 사랑을 말하다 (10)
2011.12.13 11:47




어느날 문득 서연이 고모에게 물었죠.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어떤 마음이면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던 서연, 서연에게 24년이란 시간은 문권과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고 증오하다가 상관없는 사람으로 정리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서연은 하나 둘 정리를 하지요. 잊어버리고 망가지기 전에 자신의 기억을 남겨두고자 합니다. 동생 문권과 꼭 닮은 보조개를 드러내고 웃으며 사진을 찍고, 지형과도 사진을 찍어봅니다. 설마 문권이도, 지형도, 잊어버리지 않을까? 기억에서 지워져 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어 액자에 넣고, 매일매일 시 암송을 하듯이 기억하려고 합니다.
향기에게서 온 문자에 마음 상한 서연, "둘이 나 죽을 때 기다리니?", 서연이 한 번씩 비이성적인 말을 뱉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 이번회도 서연이 지형에게 몰아부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것은 이해하고, 그것이 병증의 하나라는 것도 알겠는데, 모든 것을 감내하고 받아주는 지형을 보며, 그 사랑이 얼마나 힘든 무게였는지,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것인지를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네요. 그래서 지형이 안됐고, 불쌍한 마음까지 들어서, 두 사람이 결혼 전이라면 극구 말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더이다.ㅠㅠ
향기에게 대신 문자를 보내는 서연, 여전히 지형을 잊지 못하는 향기에 대한 미움이나 지형에 대한 의심이라기 보다는, 서연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서연의 행동은 미웠지만, 가슴 한켠이 짠해져 옵니다. 답장을 하지 않겠다는 지형의 야멸찬 마음을 뭐라하지도 못하고, 향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형의 답장으로 대신 전하는 서연이었지요. 잠깐 햇님이 얼굴을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해바라기 사랑이라는 것을 서연도 아니까요.
눈내리는 새벽 3시, 서연은 마음정리를 하지요.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초연한 서연의 감정도 보였고, 조금씩 빠져 나가버리는 기억의 편린들을 서연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잡을 수 없다는 허무함도 읽혀졌습니다. 금방 녹아버려 사라져 버리는 손으로 받은 눈처럼 말이지요. 서연이 읊은 헤르만 헤세의 '방랑'은 죽음을 준비하는 서연의 마음정리이자, 서연이 지형에게 남기는 약속과도 같았습니다.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오고,
밤이 오면 우리는 창백한 들판 위에
차가운 달이 남몰래 웃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잡고 쉬게 되겠지.

슬퍼하지 마라. 곧 때가 오고,
때가 오면 쉴테니,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두 개
환한 길가에 서 있을지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오고가겠지.
서연은 운도 지지리 없다고, 반항하고 몸부림치며 거부하고 싶었던, 신이 내린 형벌과도 같은 알츠하이머와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전해 주었지요.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가 젊은 시절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 죽음을 마주하며, 신과의 대화에서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방랑'이라는 시를 저도 좋아하는데, 서연이 마음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서연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특히 생모와의 만남은 서연이 생모에게 남기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서연에게 지어진 오랜 상처와의 이별, 그리고 생모에 대한 이서연 방식의 화해이기도 했고요.

"왜 그랬어요?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이면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언젠가는 만났다는 사실도, 얼굴도 잊어버리겠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을 낳아준 엄마(김부선)를 보고 싶은 서연,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왜 버렸느냐고... 차마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하는 서연, 버림받았다는 것을 입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서연입니다. 한 해 두 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은 엄마였지만,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가슴 한구석에 숨겨두었던 기다림이라는 희망마저 버리지는 못했던 서연이었기에, 버렸느냐는 말을 차마 뱉지도 못하는 서연이었지요. 버림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서연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이지요. 
죽일 수 없어서 버렸다는 엄마의 말이 서연에게 이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연의 생모는 두 아이를 데리고 먹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고모에게 버렸다고 하지요. 물컵조차 들지 못하고 바르르 떨리는 손, 서연 앞에 나타난 생모는 죄인이었습니다. 자식을 버린 비정한 엄마이기에 자식의 얼굴도 바로보지 못하는 사람.
차마 한 손으로 컵을 들지도 못하고 두손으로 겨우 마른 입을 축이는 엄마를 담담히 바라보는 서연,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엄마를 확인합니다. 서연이 또 묻지요.

"왜 며칠이나 지나서야 연락했어요?"
어린 시절 동생에게 엄마 곧 올 거라고, 쌀이랑 불고기 가지고 올 거라고 물이라도 먹이려고 했었지요. 동생이 죽을까봐... 그때의 공포는 서연에게 지금까지의 트라우마였습니다. 엄마라는 사람은 우리가 죽기를 바란 것일까? 다른 남자랑 바람나서,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그렇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뒀던 걸까?
"그 인간이 공중전화로 한다그랬는데 알고보니 안했더라고...". 엄마가 서연이와 문권이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에 오랜 증오심을 푸는 서연이었습니다. "설마 너희 둘 고모가 밥은 먹여주겠지", 고모에게 맡아달라는 말도 못하고 남자를 시켜 알리려고 했었던 서연의 생모는, 나중에서야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모에게 급히 연락을 했던 것이고, 그날 고모와 고모부가 그렇게 다급하게 뛰어가 다 죽어가던 남매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우리 생각 한 번씩 했나요?"
왜 생각을 안했겠어요. 서연은 고개를 떨군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어머니의 죄책감을 읽었기에, 덤덤하게 문권이는 회사에 취직했고, 자신은 결혼해서 그만뒀다고 말해주지요. 어머니는 차마 물어보지도 못할 것임을 알기에 말이지요.

"우리가 닮았어요?"
물어보지도 않아도 알아봤습니다. 고모를 따라 커피숍을 들어서는 순간, 주름살 깊게 패인 자신과 똑같이 생긴 중년의 여인, 자신의 젊은 시절과 똑같이 생긴 딸, 유전자란 그렇게 소름끼치게 모녀간임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요.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어머니,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어머니를 두고 서연은 나가버리지요.
"여인을 나는 곧 잊겠지만, 그쪽은 죽는 날까지 날 잊지 못할 것이다". 확인하고 싶은 것도 들었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도 다 한 서연이었습니다. 이서연 방식의 복수였고, 이서연 방식의 그리웠다는 표현이었고, 이서연 방식의 화해였고, 이서연 방식의 이별이었습니다. 원망하지 않았고, 서연에게 새겨진 깊은 상흔이 자식을 버린 엄마에게도 깊게 패여있음을 보았고, 문권과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위로했고, 자식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도 표현하지 못한 어머니에게 얼굴을 보여 준 것으로 서연은 화해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오랜 그리움과 원망과도 이별을 하지요.
6년 동안의 엄마였던 여인은 24년동안의 엄마였던 고모에게 자리를 내주고, 초라하게 서서 서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골목에 서서 멍하니 서로를 응시하던 장면은 대사보다 많은 것을 전달했던 장면이었지요.
'잘 살아라, 미안하다'는 서연 엄마의 말도, 엄마라고 한 번 불러주지 못한 미안함, 잘 살지 왜 그것밖에 안되었느냐는 책망, 잊어버리겠지만 죽기전에 엄마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봐서 다행이라고, 망가지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식을 버려야 했던 슬픈엄마를 가여워하는 마음까지 말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그렇게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서연은 고모에게 기대 울지요. 24년 동안의 엄마, 서연에게 고모는 오랜 시간 엄마였고, 앞으로도 엄마인 고모엄마, 잊어버릴까 두려운 진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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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2 09:09




참 많이 울었습니다. 김수현작가의 개인적인 걱정도 보였고, 하고 싶은 말도 들었고, 그런데도 한없이 작은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울어야 했습니다.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건 책을 보건 통째로 모든 내용이 남지는 않지요. 절절하게 감동으로 전해지는 한마디, 혹은 한 구절이 그 드라마나 책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하는데, 천일의 약속 또한 그러합니다. 아무리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의 글이라고 해도 모든 대사들이 가슴을 울리거나 남지는 않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11회를 보면서 김수현 작가의 개인적인 걱정과 바람, 그리고 강수정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말을 보고 배웠는데요, 노작가에게 결례가 되는 생각일 지는 모르겠지만, 서연 고모부의 대사를 통해 잠시 김수현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 약한 모습과 바람까지도 본 듯해서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서연의 고모는 3년전에 암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번회 고모부가 아들 장재민(이상우)와 고모의 정기검진에 관한 대화를 나눴지요. "2년 남았어. 얼른 5년이 지났으면 좋겠어". 대부분 암은 발병후 5년 이내에 재발되지 않으면, 완치가 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기에 고모부의 말을 듣는 순간, 김수현작가의 바람을 고모부를 통해 말한 것은 아닌가 싶더군요. 2008년 유방암 수술을 받았던 김수현 작가, 조기발견이었고 간단한 수술이었기에 예후도 좋다고 김수현 작가가 직접 밝히면서, 김수현 작가의 유방암 수술소식이 큰뉴스가 되었던 것이 생각나서 말이지요. 수술 후 '엄마가 뿔났다'를 집필을 하고, 이후 '인생은 아름다워'에 이어 '천일의 사랑'까지 노작가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는데, 모쪼록 재발되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또 다른 작품도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출판사 직원들과의 회식자리를 뒤로하고 먼저 나온 서연, 옷속을 파고드는 추위가 몸을 움추리게 합니다. 시도때도없이 떠오르는 지형과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서연을 더 춥고 외롭고, 그리고 무섭게 만들지요. 운전중 서연은 길을 잃고 패닉상태에 빠지고 말지요.
처음 보는 듯한 도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은 서연은 빵빵거리는 크락션 소리에 차를 멈추고 전화기를 꺼내지요. 생각나는 것은 그 사람의 전화번호뿐, 머리를 쥐어박아도 그 사람의 번호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서연이었지요.
서연의 전화를 받은 지형은 급히 택시를 타고 서연을 찾아오고, 눈물로 범벅이 되어 멍해져 있는 서연을 보지요. 겨우 진정된 서연은 긴장감을 풀고 차에서 그대로 잠이들고, 그런 서연을 바라보는 지형의 가슴은 아파옵니다. 입을 벌리고 자는 모습까지 모든 것을 사랑하고픈 이 여자, 가슴을 꽁꽁 싸매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이 여자는 지형의 모든 것입니다. 행복이고, 기쁨이고, 아픔이고, 고통이고, 과거이고, 오늘이고, 내일입니다.
"부탁한다 서연아, 니 인생에 들어가게 해줘". 서연은 지형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요. "왜 꼭 거부해야해? 나 때문에 결혼도 깨버린 사람인데...각오도 벌써 끝낸 사람인데. 그냥 기대버리자"고, 마음 속에서는 지형과 함께 하고 싶어한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지형의 어머니에게 걱정하는 것처럼 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차마 약속을 깰 수 없다고 고백하지요.
"넌 내 엄마가 아니야. 넌 내 여자만 하면 돼", 지형의 확고한 말에 무너지는 서연입니다. "나도 내가 사라지기 전까지 죽을 힘을 다해 사랑하고 싶어". 오늘보다 내일을 더 사랑한다고 날마다 약속해달라며 지형을 꼭 끌어안는 서연, 이제는 이 사람을 놓지 않을 겁니다. 놓아달라고 해도 놓지 않을 겁니다. 도망갈 기회를 줬는데도 가지 않았던 것은 이 사람입니다. 그렇게 서연은 그 누군가를 향해 용서를 구하고, 밀어내려던 자기 자신을 설득합니다. "같이 있고 싶어. 같이 있어줘. 날 맡아줘. 날 지켜줘".
지형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 서연은 밝아졌지요. 다가올 미래따위는 걱정하지 않고 싶은 서연입니다. 알츠하이머 그 놈은 그 놈대로 서연은 서연대로 자기 방식대로 살다 가겠노라고, 가는 날까지 주어진 시간 내내 행복하게만 살겠노라고 말이지요. 사랑하는 시간도 모자라는 서연,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조금은 뻔뻔하게 욕심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다른 사람들 보다 덜 허락된 시간이니 그 정도는 봐달라는 듯 말입니다. 

차안에서 겁에 질려 당황해 하고, 길을 잃은 상태에서 오직 그 사람만 생각나는 자신을 쥐어박는 모습은,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는 이서연이라는 인물의 내면심리를 잘 표현한 장면이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서연이 그 순간 얼마나 공포심을 느꼈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오더군요.
마치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듯한 자동차들처럼, 서연의 뇌세포를 갉아먹는 알츠하이머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서연의 기억들을 삼켜버리고 있는 듯한 공포심과 놓을 수 없는 지형에 대한 감정, 의지하고 싶은 마음까지 잘 전달되었지요. 그래서 지형에게 자신을 맡아달라고, 지켜달라고 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수현 작가가 정통멜로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노작가의 인간심리를 꿰뚫어 보는 깊이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이 이 대사를 통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주길 바라는 인간적인 바람이, 지금 서연이의 상태에서 더 간절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요. 

지형에게 함께 있어달라고, 지켜달라고 우는 서연과 그런 서연의 흔들리지 않는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박지형의 모습이, 아름답다기 보다는 참 아프고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앞으로 두 사람이 견여야 할 난관들이 산더미같은데, 그 가시밭길이 너무 뻔히 보여서 말이지요. 부모의 반대, 향기네 집의 반응,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 심지어는 멍청한 선택이라는 비웃음까지 지형이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지형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것들이 아닐 거예요. 하루가 천금같은 시간, 서연의 죽음이 하루하루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서연이 지워져가는 기억과 함께 죽어간다는 사실일 겁니다. 
그 가시밭길을 가겠다는 아들의 사랑을 응원할 수 있는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없겠지요. 그런데 김수현 작가는 말합니다. 없을 것같은 세상이지만, 또 없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강수정이라는 인물은 드라마속에서 창조된 비현실적인 인물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입니다. 김수현 작가는 전작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동성애자 아들을 끌어안는 부모를 소개한 적이 있었지요. 그 시선이 얼마나 따뜻하고 뭉클했었는지,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이성애자들과는 다를 뿐이라고, 다른 구조를 가졌을 뿐이라고 말했었지요.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말은 성적소수자를 보는 사회의 시선 모두를 바꾸지는 못했겠지만, 그러나 조금은 달라지게 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연과 결혼을 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한 지형, 인력으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정은 아들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하지요. 엄마의 마음이 어떻든 상관없는 것이냐고 물어도, 지형의 대답은 죄송하다는 말뿐입니다. 거품물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대도 지형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는 강수정, 아들 지형이 그러하리라는 것은 이미 수정도 각오했던 일입니다. 아들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강수정이지요.
"어쩌겠니, 널 쇠사슬에 묶어 토굴에 가둬둘 수도 없고...".
강수정은 침착하고 담담하게 그동안 고민했던 것을 말했지만, 모든 어머니의 결론이었을 겁니다. 앞길 창창한 서른밖에 안된 여자가 치매라니....서연이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강수정은 인간적인 마음과 엄마의 마음 두 가지 속에서 싸우고 또 싸웠노라고 고백하지요. "그 아이가 내 딸이라면, 어느 집 아들이 지금 너처럼 내 자식 맡아준다고 나서면 얼마나 고마울까. 백번 천번 절할 일이지. 그런데 결국 결론은 남의 아들은 몰라도 내 아들은 안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참 싫었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강수정은 말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명치끝가 아려오는 것이, 그냥 먹먹해지면서도 고맙고, 드라마 속 캐릭터지만 존경스럽고 그러더군요. 결혼식은 2~3개월 후에 하겠다는 지형에게 하는 강수정의 말이 믿기지가 않더군요. 그동안 달라질 게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강수정은 결혼을 빨리하라고 하지요.
"그 아이의 하루는 건강한 사람 하루와 달라. 시간 낭비하지마". 쿵! 하고 뭔가가 가슴을 치며 올라오는데, 이게 정답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복잡한 감정들이 제 안에서 소용돌이를 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김수현 작가에게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조금은 밀고 당기고, 속된 말로 지지고 볶고 울고 싸우고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간단하게 강수정이 결론을 내려버리더군요. "그 아이의 하루는 건강한 사람 하루와 달라, 시간 낭비하지마"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강수정을 보면서 가슴이 복잡하게 엉켜버린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통속의 틀을 깨는 사랑의 깊이때문이었어요. 사실 강수정은 아들 지형의 사랑에 두손 두발 든게 아니었어요. 여전히 그녀는 아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이해는 하지만, 마음을 열고 응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바꾼 것은 이서연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그리고 꾾임없이 자신의 내부에서 싸우고 있는 이기심에 대한 양심고백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라도 더 서연이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생각에 이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작가는 강수정을 아들 지형이 아닌 서연의 짧은 삶을 두고 더 많은 고민을 하게 합니다. 그 진실된 사랑에 감동해 두손들었다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고 말이지요. 그래서 두 남녀의 사랑의 힘보다는 강수정이라는 인물이 서연을 배려하고 보듬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낭비하지마"에 생략된 강수정의 마음은 '짧은 시간밖에 허락되지 않은 이서연을 더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주라'는 것이었지요. 순간 가슴 속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면서, 끝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고 말았네요.
욕실에서 혼자 앉아 오열하는 강수정처럼, 자식을 둔 어머니라면 어머니로서, 또한 한 인간으로서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면서 그렇게 울었을 듯합니다. 강수정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다 이해시키고 그것이 정상이라고 말하면서도, 강수정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반문하게 합니다. 그리고 한없이 작은 제 모습을 발견하게도 합니다.
강수정을 보면서 내 아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도 그럴 수 있겠다, 아니 그러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던 것도 그 때문인 듯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김수현 작가의 힘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동성애자의 사랑에 대해 마음의 벽을 쉽게 허물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드라마를 보며 김해숙의 연기에 매번 감동을 하면서도, 강수정이라는 인물을 자꾸 제자신과 대입시켜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큰 소망을 품으면서 말입니다. 드라마 속 강수정이라는 인물은 작은 바람만으로는 따라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이지요. 그런데도 마음은 아닌데, 머리로는 정답이다를 외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김해숙이라는 배우의 명연기와 함께, 남녀간의 사랑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을 묻는 작가의 화두가 가슴을 움직이기 때문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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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6 11:01




서연이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강수정(김해숙), 복잡한 심경에 지형의 친구 알렉스를 찾아가지만, 지형의 완고한 의지만을 확인했을 뿐이지요. 서연이 마음에 들면서도 알츠하이머임을 알고는, 아들과의 결혼을 허락해 주지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하지요. 그러나 너무도 미안해 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서연도, 시청자도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안그러겠어요. 백이면 백 모두 강수정과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제 마음이 어머님 마음과 같습니다", 서연이 지형을 놓으려고 하는 마음 역시 누구나 같았을 거고요.
서연과 헤어지기 전 손 한번 잡아보면 안되겠냐고 손을 내미는 강수정,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리고 기운내라는 말을, 힘내라는 말을 그렇게 체온으로 전달해 주는 강수정이었지요. '그 사람을 제게 보내주십시오. 저에게 일년만 허락해 주십시오', 하마터면 그렇게 말할 뻔했다는 서연의 방백이 어찌나 가슴을 아프게 하던지요. 이렇게 따뜻한 어머니기에, 그렇게 훌륭한 어머니라면 눈물로 청하면 허락해 주실 것같아, 서연은 잠시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던 자신을 단도리합니다. 그 사람에게 못할 짓임을 알기에, 그 사람에게 얼마나 버거운 짐이 될 것임을 알기에, 하마터면 지형을 발목잡을 뻔했다고, 스스로를 다잡는 서연이었지요.
싱가폴에 다녀 온 오현아(이미숙)를 보러 향기네 집에 들른 강수정은, 지형에게 딴 여자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는 말에 당황하지만, 전부터 그런 마음이었나 보더라고 말을 얼버무리지요. 향기에게도 서연을 만났다는 말을 해주지 못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한밤중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형의 오피스텔로 달려온 강수정은 지형에게 눈물로 안된다고, 절대로 안된다고 말하지만, 지형을 설득시킬 수 없음을 직감합니다. 너무나 고지식하고 완고하고 반듯한 아이, 지형은 수정의 자랑거리였고, 자부심이었고, 목숨같은 아이였습니다. 돈이 부럽지 않았던 아이였지요. 향기가 심성이 곱고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병원 이사장의 딸이라고 해도, 친구 딸이라고 해도 지형과 향기를 맺어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형이 향기에게 잘해줬던 것이 향기가 부잣집딸이어서가 아니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강수정입니다. 그래서 지형이 서연을 사랑하는 것이 단순한 관심이나 연민이 아님 또한 잘 아는 강수정이지요. 
 진지하고 진중한 아들, 속 한번 썩히지 않았던 지형이 사랑을 택하겠다고, 그것도 알츠하이머로 죽어가는 서연을 택하겠다고 하니, 지형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을 더 잘 아는 강수정입니다. 그럼에도 강수정은 엄마로서 아들이 험한 길을 가겠다는 것을 말릴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을 때만 사랑은 사랑 아닌 것 알아. 평생 아픈 남편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세상엔 많아. 그런 것 보면서 난 늘 감탄하고 감동해. 그런데 내 아들이 이리 되니까 그럴 수 없어. 너한테 그아이가 그토록 소중한 것만큼 나도 네가 그래. 나 못해".
지형의 대답은 확고부동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래도 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다며 뜻을 굽히지 않는 지형을 보는 강수정은 억장이 무너지지요. 지형도 울고 수정도 울고, 서로 자신의 사랑을 이해해 달라고 우는 모습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던지요. 자식의 앞날이 험난 한 것을 못겠다는 엄마의 사랑을 이해해 달라고 하고, 자식은 감히 엄마보다 그 사람이 소중하다고, 그러니 그 사랑을 이해해 달라고 용서를 구하고....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강수정의 모성을 그런 것에 견주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강수정은 지형의 편이 돼주겠지만, 그것을 지형에게 졌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사랑에 대한 이해라고 보고 싶습니다. 아들을 떠나 한 남자로서 책임감있는 모습, 자신의 사랑에 책임을 지는 아름다운 사람 중 한사람이 자신의 아들 지형이라고, 그 사랑을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지형의 오피스텔을 다녀와서도 강수정은 지형을 설득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요. 절대로 안된다고 으름장을 놔보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지형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일 뿐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 강수정에게 지형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그냥 놔버리라고, 자신을 버리라고 말하는 지형이었지요. "엄마, 저 평생 죄책감 껴안고,  미치게 후회하면서,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살길 바라세요? 그게 사는 걸까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여기서 제가 아무 것도 못한채 손들면, 저 그 사람 죽는 날까지 못놔요. 꼭 필요할 때, 반드시 필요할 때 외면하고,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놔버려요...".
지형이 오피스텔에서도 강수정에게 그런 말을 했었지요. 어머니한테 자신의 병을 드러내면서 까지 자기를 거절한 여자라고, 지형이 싫어서가 아니라 지형을 위해서 놔준 거라고...
지형은 자신을 위해서 서연이 필요하다고 말하지요. 사랑하니까 같이 있고 싶고, 사랑하니까 그 사람을 돌봐야 하고, 사랑하니까 원한다고 말이지요. 동정이나 감상, 연민으로 자기의 사랑을 이해하지 말라면서 말이지요. 서연없이는 자신은 허수아비라며 우는 지형.
지형은 정말 허수아비가 되어가는 자신을 경험했습니다. 향기와의 결혼준비를 하면서 넋나간 사람처럼 아무 감정없이 웨딩화보를 찍고 있던 자신을 봐야했고, 하루종일 멍하니 서연이만 생각하는 자신을 봐야 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냥 그렇게 허수아비처럼 사는 것이 서연을 책임지지 못한 죄값이라고 생각했던 지형이었지요. 그런데 서연이 정말로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형은 그제서야 얼마나 서연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달았지요.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보든 안보든 사랑하는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이지요. 장재민도 같은 말을 했지요. "보거나 못보거나 넌 이미 그 자식 심장에 들어가 있어. 보거나 못보거나 같을 거야". 그런 재민에게 서연은 "오빠 바보"라며 "그건 안같아"라고 합니다. 정답입니다. 어떻게 보는 것과 안보는 것이 같겠어요. 같이 있으면서 보고 만지고 사랑하는 것과 생각만 같이 있는 것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어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살 날이 깨알처럼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겠지만, 서연과 지형에게는 허락된 시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죠. 그런 말은 단지 위안삼아 하는 말에 불과합니다.

그래요. 사랑이 쉬운 사람들에게는 그깟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똥오줌 수발 들어야 하는 치매환자를 결혼한 남편도 아니고,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지려 하는 것이 정상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지형이 어떤 감정에 있는지가 이해가 됩니다. 아이가 넘어져 무릎팍이 깨져 울고 있는데, 내 일 아니라고 그냥 지나치면 참 찝찝하고 찜찜하고 후회스럽겠지요. 하물며 모르는 아이가 다쳐도 그러할텐데, 사랑한 사람이 아픈데 나몰라라 할 수 있을 강심장이 얼마나 있을까요?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 물론 태산같고 버겁겠지요. 하지만 진실한 사랑은 이런 계산이 앞서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런 계산을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답답하게 혼자 끙끙대던 박지형의 말문이 드디어 터지는 것을 보고는,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김래원의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불만도 상당수 있어왔고, 그 사랑에게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시청자의 원성도 있었지만, 김래원은 10회가 다되도록 이거다 싶은 감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지요. 저는 김래원의 문제이기 보다는 김수현 작가가 의도적으로 박지형을 죽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0회가 다되도록 거의 핀트가 수애에게 맞춰져 있었고, 대사량도 엄청났지요. 이서연에게 진행되고 있는 알츠하이머와 병증에 대한 소개가 길다보니, 이서연의 분량이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천일의 약속 10회는 드라마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의 이야기 사랑이라는 주제로 넘어가는 교차점이었습니다. 전반부가 이서연의 병과 지지리도 복없는 과거와 가난, 그리고 태산을 찌르는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다면, 후반부는 그런 여자를 사랑하고 곁을 지키는 박지형이라는 남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겠지요. 또한 서연의 생모인 듯한 여인이 등장한 것도 주목해야 겠지요. 서연이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해가는지도 중요한 줄거리가 될 듯합니다.
전환점이 되는 10회에 와서는 지형이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집을 부리고, 울며 어머니에게 매달려 이해를 구하는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묵묵하게 지형의 고뇌를 김래원이 자신의 방식으로 전달을 해왔지만, 답답했던 것은 사실이죠. 격앙된 감정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절절하게 감정을 내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어두운 방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으로 지형의 감정을 표현해 왔지요. 물론 김수현 작가가 김래원에게 지나치게 인색한 점도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대사는 단답형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감정선이 연결되는 부분은 고작 서연의 말을 생각하는 장면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김래원이 박지형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해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박지형은 강수정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크면서 부모 속 한 번도 썩히지 않은 아이입니다. 부모 말에 순응하고, 지극히 모범적인 인물이죠. 아버지가 나가라고 하자 한 마디 대꾸도 안하고 묵묵히 가방을 싸서 나올 정도로, 부모나 어른들 앞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반항하는 인물도 아니었지요. 비록 사랑하는 서연이를 택하겠다고 결혼 이틀 전까지 미적거리다 결혼을 깬 우유부단한 나쁜놈이 되어야 했지만, 사랑에 눈이 멀어 성격마저 훼까닥 바뀔 수는 없는 인물이지요. 그런 모습이 지형의 캐릭터를 답답하게도 보이게 했지만, 몸에 배인 태도나 성격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지요. 

사랑을 말이나 감정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오히려 쉬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김래원은 박지형이라는 캐릭터의 성격만큼이나 그의 사랑도 감정을 폭발해 내는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았지요. 박지형의 사랑을 가장 잘 이해시킨 장면이 있었어요. 강수정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가장 절박하고 간절하게 감정을 담았던 장면을, 강수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손에 얼굴을 묻고 애절하게 바라보던 것을 꼽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병을 드러내면서 까지 저를 거절해요, 저를 위해서요. 그런데 전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서 그 사람을 원해요. 그 사람없이, 전 허수아비에요". 자기가 편하자고 그 여자를 원한다고, 그 여자 없이는 자기가 안된다고 허락을 구하며, 지형이 "어머니, 엄마..."라며, 어린아이처럼 강수정을 바라보던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신이 모든 사람에게 갈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마치 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기도하는 모습처럼, 어머니에게 사랑을 허락해 달라고 간절하고, 절박하게 간구하는 모습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왜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지, 얼마나 원하는 지를 '엄마'라는 말에 모든 것을 담아 전해주더군요. 
김해숙과 호흡을 맞추는 김래원의 연기는 진중해서 좋았습니다. 극중 박지형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과하지 않게 표현했고, 그래서 오히려 저는 더 믿음이 가더군요. 김래원은 박지형의 캐릭터에 멋을 내지 않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습니다. 소위 개멋부리는 것도 없습니다. 
드라마 속 박지형의 사랑은 기교가 없기 때문이에요. 박지형이라는 인물의 가볍지 않은 성격만큼이나, 그 사랑에 솔직하고 진지하고 진심인 것이 지형이 하는 사랑입니다. 물론 향기는 두고두고 지형에게는 미안한 사람으로 남겠지만, 지형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서연을 택한 이유도 그의 사랑이 진중해서 입니다. 계산이 아니라 심장이 움직이는 사랑, 이성이 아니라 가슴이 움직이는 사랑, 울렁이고 두근거리고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사랑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체온같은 사랑....심장이 멎어야만 끝나는 사랑, 체온이 식어야만 멈출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이 서연을 향한 지형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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