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작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1.12.13 '천일의 약속' 죽음 준비하는 수애, 생모를 만나려 한 이유 (6)
  2. 2011.11.30 '천일의 약속' 수애, 너무나 잔인해서 슬펐던 절규 (12)
  3. 2011.10.19 '천일의 약속' 수중키스에 침몰한 사랑, 늦기 전에 끄집어내야 (4)
  4. 2010.07.19 '인생은 아름다워' 김해숙, 엄마라는 이름으로 만들어가는 기적 (9)
  5. 2010.07.18 '인생은 아름다워' 공처가 이수일의 이유있는 반항 (16)
2011.12.13 11:47




어느날 문득 서연이 고모에게 물었죠.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어떤 마음이면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던 서연, 서연에게 24년이란 시간은 문권과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고 증오하다가 상관없는 사람으로 정리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서연은 하나 둘 정리를 하지요. 잊어버리고 망가지기 전에 자신의 기억을 남겨두고자 합니다. 동생 문권과 꼭 닮은 보조개를 드러내고 웃으며 사진을 찍고, 지형과도 사진을 찍어봅니다. 설마 문권이도, 지형도, 잊어버리지 않을까? 기억에서 지워져 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어 액자에 넣고, 매일매일 시 암송을 하듯이 기억하려고 합니다.
향기에게서 온 문자에 마음 상한 서연, "둘이 나 죽을 때 기다리니?", 서연이 한 번씩 비이성적인 말을 뱉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 이번회도 서연이 지형에게 몰아부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것은 이해하고, 그것이 병증의 하나라는 것도 알겠는데, 모든 것을 감내하고 받아주는 지형을 보며, 그 사랑이 얼마나 힘든 무게였는지,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것인지를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네요. 그래서 지형이 안됐고, 불쌍한 마음까지 들어서, 두 사람이 결혼 전이라면 극구 말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더이다.ㅠㅠ
향기에게 대신 문자를 보내는 서연, 여전히 지형을 잊지 못하는 향기에 대한 미움이나 지형에 대한 의심이라기 보다는, 서연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서연의 행동은 미웠지만, 가슴 한켠이 짠해져 옵니다. 답장을 하지 않겠다는 지형의 야멸찬 마음을 뭐라하지도 못하고, 향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형의 답장으로 대신 전하는 서연이었지요. 잠깐 햇님이 얼굴을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해바라기 사랑이라는 것을 서연도 아니까요.
눈내리는 새벽 3시, 서연은 마음정리를 하지요.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초연한 서연의 감정도 보였고, 조금씩 빠져 나가버리는 기억의 편린들을 서연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잡을 수 없다는 허무함도 읽혀졌습니다. 금방 녹아버려 사라져 버리는 손으로 받은 눈처럼 말이지요. 서연이 읊은 헤르만 헤세의 '방랑'은 죽음을 준비하는 서연의 마음정리이자, 서연이 지형에게 남기는 약속과도 같았습니다.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오고,
밤이 오면 우리는 창백한 들판 위에
차가운 달이 남몰래 웃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잡고 쉬게 되겠지.

슬퍼하지 마라. 곧 때가 오고,
때가 오면 쉴테니,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두 개
환한 길가에 서 있을지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오고가겠지.
서연은 운도 지지리 없다고, 반항하고 몸부림치며 거부하고 싶었던, 신이 내린 형벌과도 같은 알츠하이머와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전해 주었지요.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가 젊은 시절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 죽음을 마주하며, 신과의 대화에서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방랑'이라는 시를 저도 좋아하는데, 서연이 마음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서연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특히 생모와의 만남은 서연이 생모에게 남기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서연에게 지어진 오랜 상처와의 이별, 그리고 생모에 대한 이서연 방식의 화해이기도 했고요.

"왜 그랬어요?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이면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언젠가는 만났다는 사실도, 얼굴도 잊어버리겠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을 낳아준 엄마(김부선)를 보고 싶은 서연,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왜 버렸느냐고... 차마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하는 서연, 버림받았다는 것을 입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서연입니다. 한 해 두 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은 엄마였지만,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가슴 한구석에 숨겨두었던 기다림이라는 희망마저 버리지는 못했던 서연이었기에, 버렸느냐는 말을 차마 뱉지도 못하는 서연이었지요. 버림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서연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이지요. 
죽일 수 없어서 버렸다는 엄마의 말이 서연에게 이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연의 생모는 두 아이를 데리고 먹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고모에게 버렸다고 하지요. 물컵조차 들지 못하고 바르르 떨리는 손, 서연 앞에 나타난 생모는 죄인이었습니다. 자식을 버린 비정한 엄마이기에 자식의 얼굴도 바로보지 못하는 사람.
차마 한 손으로 컵을 들지도 못하고 두손으로 겨우 마른 입을 축이는 엄마를 담담히 바라보는 서연,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엄마를 확인합니다. 서연이 또 묻지요.

"왜 며칠이나 지나서야 연락했어요?"
어린 시절 동생에게 엄마 곧 올 거라고, 쌀이랑 불고기 가지고 올 거라고 물이라도 먹이려고 했었지요. 동생이 죽을까봐... 그때의 공포는 서연에게 지금까지의 트라우마였습니다. 엄마라는 사람은 우리가 죽기를 바란 것일까? 다른 남자랑 바람나서,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그렇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뒀던 걸까?
"그 인간이 공중전화로 한다그랬는데 알고보니 안했더라고...". 엄마가 서연이와 문권이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에 오랜 증오심을 푸는 서연이었습니다. "설마 너희 둘 고모가 밥은 먹여주겠지", 고모에게 맡아달라는 말도 못하고 남자를 시켜 알리려고 했었던 서연의 생모는, 나중에서야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모에게 급히 연락을 했던 것이고, 그날 고모와 고모부가 그렇게 다급하게 뛰어가 다 죽어가던 남매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우리 생각 한 번씩 했나요?"
왜 생각을 안했겠어요. 서연은 고개를 떨군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어머니의 죄책감을 읽었기에, 덤덤하게 문권이는 회사에 취직했고, 자신은 결혼해서 그만뒀다고 말해주지요. 어머니는 차마 물어보지도 못할 것임을 알기에 말이지요.

"우리가 닮았어요?"
물어보지도 않아도 알아봤습니다. 고모를 따라 커피숍을 들어서는 순간, 주름살 깊게 패인 자신과 똑같이 생긴 중년의 여인, 자신의 젊은 시절과 똑같이 생긴 딸, 유전자란 그렇게 소름끼치게 모녀간임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요.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어머니,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어머니를 두고 서연은 나가버리지요.
"여인을 나는 곧 잊겠지만, 그쪽은 죽는 날까지 날 잊지 못할 것이다". 확인하고 싶은 것도 들었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도 다 한 서연이었습니다. 이서연 방식의 복수였고, 이서연 방식의 그리웠다는 표현이었고, 이서연 방식의 화해였고, 이서연 방식의 이별이었습니다. 원망하지 않았고, 서연에게 새겨진 깊은 상흔이 자식을 버린 엄마에게도 깊게 패여있음을 보았고, 문권과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위로했고, 자식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도 표현하지 못한 어머니에게 얼굴을 보여 준 것으로 서연은 화해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오랜 그리움과 원망과도 이별을 하지요.
6년 동안의 엄마였던 여인은 24년동안의 엄마였던 고모에게 자리를 내주고, 초라하게 서서 서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골목에 서서 멍하니 서로를 응시하던 장면은 대사보다 많은 것을 전달했던 장면이었지요.
'잘 살아라, 미안하다'는 서연 엄마의 말도, 엄마라고 한 번 불러주지 못한 미안함, 잘 살지 왜 그것밖에 안되었느냐는 책망, 잊어버리겠지만 죽기전에 엄마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봐서 다행이라고, 망가지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식을 버려야 했던 슬픈엄마를 가여워하는 마음까지 말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그렇게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서연은 고모에게 기대 울지요. 24년 동안의 엄마, 서연에게 고모는 오랜 시간 엄마였고, 앞으로도 엄마인 고모엄마, 잊어버릴까 두려운 진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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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09:13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감상평의 특징을 든다면, 대부분 그녀의 이름을 거론하게 한다는 점일 겁니다. 소재의 파격, 특유의 어법 등을 들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 진하게 묻어나오는 그녀의 생각이 사회를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화두가 되기 때문인 듯 합니다. 동성애라는 화두 역시 그러했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주인공의 사랑을 빌어 던진 낙태에 대한 화두는, 신파를 넘어 생명의 문제까지 자극할 만큼 신랄합니다.
천일의 약속을 단순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륜마저도 미화한 통속멜로극이라 하기에는 그 사랑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통속과 진부, 신파를 거부하는 힘을 가집니다. 알츠하이머로 죽어가는 여인,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겠느냐?고 묻는 작가의 질문은 잔인하기 까지 합니다.
신혼집을 찾아온 시어머니 강수정, 훌륭한 어머니상의 모범답안 같은 강수정(김해숙)은 이번회도 심금을 울렸지요. "넌 어떤 불행보다 더 큰 불행과 어떤 여자도 쉽게 얻을 수 없는 행복을 동시에 가졌다는 것 잊어버리지 마라. 에미로서 내 자식 아깝고 안타까운 것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사람으로서 너랑 같은 여자로서 나는 내 자식이 싫지가 않다. 너한테 주어진 시간들을 잘 관리하면서 웃을 수 있을 때 많이 웃고, 즐거울 수 있을 때 다 즐거워하고....너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내 아들 행복하게 해주기 바란다". 
지형의 곁에 하루라도 더 오래있어 주는 것이 서연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서연 역시 기억이 다 사라져 갈 때까지 지형만은 기억하며 사는 것이 행복일 겁니다. 세상의 무엇보다 서연이 중요하다는 지형,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서연이지만, 서연에게 내일이란 어느 날 뚝 끊겨버린 필름처럼 없어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연은 오늘만 죽도록 사랑하고 싶어하는 여자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서연은 누구보다 삶에 대한 집착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서연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가면서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드라마라는 것을 감안하고 더욱이나 김수현 작가의 생명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결코 가볍게 그리지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의 당혹감이란, 극중 강수정의 대사처럼 "이를 어쩌나"라는 말밖에 안나오게 하더군요. 임신 8주진단을 받은 서연, 결국에는 서연이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피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지형이 서연을 볼 수있을 시간, 그리고 서연의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에 가슴에 바위덩어리가 얹힌 느낌입니다.
신혼여행을 떠난 비행기 안에서부터 서연의 행동이 이상스러웠지요. 머리만 기댔다 하면 잠이 들고 피곤을 호소하는 서연, 급기야 헛구역질까지 힘들어 했지요. 약부작용이라고 생각했던 서연은 약국에서 사온 임신테스트기로 임신했음을 확인합니다.
서울로 올라 온 서연과 지형은 산부인과 진료를 받고 임신임을 확인하고, 담당의사와 면담하지만 약물부작용으로 기형아 출산에 대한 우려와 함께, 아이를 낳으려면 약을 중단해야 한다고 합니다. 서연의 임신에 기뻐하고, 당연히 낳아야 한다고 했던 지형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지형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하지요.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을때 서연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지형이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크다고 거부했지만, 서연은 아이의 심장박동소리를 듣고는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면서, 지형과 서연의 갈등은 서로의 생각을 너무나 잘알기에 더욱 힘들게 하지요.
지형을 위해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지만, 자기를 위해서 낳겠다는 서연의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프게 들려오던지요. 아이 보고 눈 마주치고 웃고 싶다는 서연, 서연의 선택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서연이 했던 말처럼, 아이를 베란다에서 던져 버릴 수도 있고, 목욕을 시키다가 물에 빠뜨려 죽일 수도 있는 끔찍한 비극이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말입니다. 서연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대소변도 못가리는 엄마인 게 아이한테 할 짓이냐"고 했을 때는, 도대체 작가가 왜 이런 힘든 설정까지 넣어서 시청자를 괴롭히는지 야속하기까지 했네요.
세상천지에 서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지형,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도 어떻게 살아있는 아이를 지울 수 있느냐며, 잔인한 사람보다는 바보엄마이고 싶다는 서연, 나오는 것은 한숨이고 꺼지는 것은 땅이라더니, 지금 제 심정이 딱 그렇습니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서연의 생명이 줄어들 것이고, 치매증상도 더 심해질 것인데, 그렇다고 살아있는 생명을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저는 제 신앙적인 이유만으로도 낙태반대 입장이기에 서연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고민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말 그대로 기형아 출산에 대한 불안, 혹이라도, 만에 하나 그렇다면 혼자 남아 아이를 키워야 하는 지형의 인생은 또 얼마나 참담하고 힘들 것인지....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지끈 아파오기까지 합니다. 저 사실 너무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까지 먹었다네요.

미국에서 뇌종양에 걸린 임산부가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더군요.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스테이시 크림이라는 여자는 지난 3월에 임신을 하고, 7월에 두경부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크림은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결국 의식을 잃어 심장박동이 멈춘 상황에서 제왕절개로 딸아이를 출산했고, 겨우 의식을 회복하고 아이를 한 번 안아보고는 3일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아기를 안아볼 수있도록 오래살고 싶다며, 혹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를 부탁한다는 문자를 오빠에게 남겼다고 하는데, 그 기사를 읽는 순간 극중 이서연이 생각나더군요.

모성이라는 것,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존재가 부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연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아니면 포기를 해야 옳은 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낳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신앙때문만은 아니에요. 생명만큼 존귀한 것도 없다는 당연한 말때문만도 아니에요. 서연과 지형을 위해서 입니다. 서연이 떠나고 난후 지형이 서연이 분신으로 남긴 아이를 끝까지 돌보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신파적인 이유때문도 아니에요.
"심장이 뛰고 있었단 말이야, 이 벽창호야" 라는 서연의 절규때문이에요. 서연이라고 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지 않겠어요.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연의 트라우마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요. 서연은 생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강한 여자지요. 그런데 서연도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그런 엄마와 다를 바가 없다고 깨닫습니다.
'서연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 모성애다' vs '모성애가 있다면 아이가 자라면서 받을 힘겨움을 생각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헌데 잘 생각해보자고요. 없는 아이에 대한 모성애가 과연 있는 것이며, 아이를 죽이는 것을 모성애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 여기서 서연의 모성애는 인류 여성의 보편적인 모성애와는 별개에요. 만약 아이를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지형에게 짐을 떠안기고 싶지않은 미안함때문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아이에 대한 모성애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기형아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은 두려움이고, 그 아이가 받을 고통에 대한 걱정이며, 생명을 지웠다는 엄밀히 말하자면 죄책감입니다.
모성애는 서연이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에라야 모성애며,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단까지 감행하게 하는 힘이 모성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김수현 작가가 설마 그렇게 잔인하게 지형과 서연에게 슬픔을 안겨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임신 8주라는 시기, 사실 이 시기는 좀 애매하고 불안한 요소가 많지만, 임신초기에 약물복용이 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그에 대한 학술자료들을 찾아봤습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5주 이내에 모르고 복용한 약은 기형아 출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더군요. 태아의 기관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5주이후이며, 장기가 형성되는 임신 12주 즉,3-4개월까지는 약물복용이 태아의 기형유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이때는 약물 복용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서연의 경우는 애매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서연이 약을 먹기 시작한 지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망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으면서 읽은 놀라운 사실은 임신초기에 모르고 먹은 감기약 등으로 인해 유산을 쉽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불법 인공임신중절예방 종합대책’ 자료에 의하면, 연간 34만 건의 임신중절 중 12.6%가 약물복용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 걱정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유명한 산부인과에서 임산부 200여명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임신 중 약물을 복용한 경우 임산부 약 50%가 주위에서 중절을 권유했고, 임산부 43%가 기형아를 낳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약을 복용한 초기 임산부 12.6%가 중절을 한다는 통계자료는 충격적이더군요. 물론 건강하고 이상없는 아이를 어느 엄마인들 바라지 않겠습니까만, 기형인지 아닌지 판단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또 임산부의 두려움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저 역시 두 아이를 낳으면서 손발가락 10개씩 다 있나를 걱정했으니까요.

지형을 위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서연이 아이 심장박동소리를 듣고는 마음을 그리 쉽게 바꿀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어요. 저 역시 여자이고,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엄마이기에, 초음파로 아이의 심장박동수를 들었던 그 순간, 내 안에 생명체가 살아있다는 경외감과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경험했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사랑의 열매라느니 하는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어요. 신비롭고 신기한 생각이 더 먼저 들었거든요. 서연이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도 그랬겠지 싶습니다.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원했던, 생명이 살아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제 경우는 뭐랄까, 심장이 두근거리며 쿵하고 울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던데, 임신을 경험했던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천일의 약속 14회를 보면서 저는 엉뚱한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서연과 지형이 서연의 목숨과 아이를 두고 갈등하는 장면도 아니었고, 뜬금없게도 신혼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보고서였습니다. 저 사진들이, 어느 순간 지형만이 그리워할 서연의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 쓸쓸한 슬픔에 눈물이 나오는 겁니다.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슬픈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다고 말해달라는 서연과 오버랩이 되더군요. 서연은 지형에게 자신을 잊으라는 말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늘 기억해 달라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해도 기억해 달라고 하지요. 그리고 아이까지 덜컥 낳아서 지형에게 맡기고 가려합니다. 이기적일 수도 있어요. 혹자는 평생 지형의 발목을 잡고, 죽어서까지 지형의 발목을 잡을 물귀신같은 여자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사랑한다면 놔줘야 했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서연도 때때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이 남자한테 뭐하는 짓이야"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서연이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 태어날 권리를 주는 모습때문이었어요. 그것도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가면서 말입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는 지형의 사랑,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면서 까지 아이를 지키는 사랑, 결코 쉬운 선택도, 감당하기 쉬운 사랑도 아니지요. 그래서 비현실적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울리는 여운은 드라마를 넘어 인간의 존엄에 대한 질문까지 던지게 합니다. 가족들도 힘겨워 하는 치매, 고통이 더 심해질 것을 알면서도, 수명이 단축될 것임을 알면서도 약복용을 중단하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모성애는,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다를 떠나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리고 작가는 강수정의 입을 통해 그 울림의 정체에 대해 말합니다. "사랑이야"라고요.....남녀간의 사랑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인간에 대한, 그리고 생명에 대한 사랑말입니다.

* 다음 Life On Award 2011 커뮤니티 '티스토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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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9 13:09




1회에 이어 2회에서도 강도높은 키스신장면이 나와서 많이 놀랐습니다. 참 아름다울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도, 선정성이 느껴져서 보기가 조금은 불편하더군요. 수중에서의 키스신이 선정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카메라의 각도때문이었습니다. 수애의 엉덩이 라인과 전체 실루엣을 그렇게 근접촬영을 해야 했는지 싶더군요. 아래에서 찍으므로써 노골적으로 수애의 몸라인을 잡는데 신경을 많이도 썼더군요.
선정적이었든 노골적이었든 아름다웠든 뭐가 되었든 다 좋은데, 문제는 제가 아직 두 사람의 사랑에 감정몰입이 되지 않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육체적 탐닉 내지는 육체적 욕정과 사랑이 먼저 느껴진다는 겁니다. 사실 영화에서는 그보다 더 야한(?)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다반사니, 그런 선정적인 장면을 처음봤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김수현작가가 카메라 김독을 따라다니며, 이러저러한 부위를 클로즈업해서 찍으라는 말은 물론 하지 않았겠지요. 사랑하는 남녀, 그것도 은밀하게 불꽃사랑을  나누는 청춘남녀가 호텔이 되었든, 수영장이 되었든, 갈대밭이 되었든 뭐가 문제겠습니까? 그렇게 사랑하는데 말이죠. 문제는 시청자에게(저에게)는 아직 그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감정선을 따라가는데 있어 주인공들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 인과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작가의 머리속에서야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이고, 또한 사랑하게 된 계기와 그 추억들이 겹겹이 쌓여, 어떠한 상황에서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겠지요. 하지만 시청자는 아무런 감정이입도, 심지어 두 사람이 무엇에 끌려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의 강도높은 배드신이나 키스신은 호사가들의 안주감이 될 수 밖에요. 왜 김수현 작가가 이런 모험적인 전개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자가 정말 따라가기가 숨이 차네요. 일정부분 스토리를 알고 있음에도 따라가기 힘든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순서를 바꿔 이서연(수애)과 박지형(김래원)이 어떻게 만나, 어떤 식으로 사랑을 느끼고(상대방의 어떤 점에 끌려),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들을 설명했더라면, 어쩌면 그장면은 가슴아프고 절절하게, 그리고 더없이 아름답게 사랑하는 장면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유난히 끌려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혹이나 김수현 작가가 이번에 보여줄 사랑이 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 촬영각도든, 배드신의 횟수든 얼마든지 격정적이고, 리얼하게 보여주더라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육체적 사랑을 보여주는데, 벗는 것만큼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왜 그렇게 서로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육체적 사랑을 나누던 것부터 기억해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주인공들처럼 그렇게 각별하고 애절하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다 헤어진 경험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헤어지면 그런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는 걸까요? 
천년의 약속에서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끌림의 감정을, 배드신이나 수중키스신보다 공들여 보여줘야 했어요. 멜로물의 도식적인 순서이기는 하지만, 시청자도 함께 느껴야 하잖아요. 문제는 이 부분이 나오지 않아서, 두 사람의 사랑을 아직은 응원하고, 바라봐주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착한 향기만 불쌍하고, 약혼자 두고 바람핀 박지형만 나쁜놈이고, 결혼할 여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만난 이서연은 남의 남자 꼬신 여자로만 보이고 있지요.  


제가 특별히 이서연(수애)과 박지형(김래원)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친구의 오빠가 극중 수애가 앓는 경도인지장애, 혹은 알츠하이머로 세상을 달리한 일이 있습니다. 병명이 뭐냐고 물으니 당시에는 알츠하이머다라고 단정해서 말하지는 않더군요. 그저 뇌세포가 경직되어가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라는 말만 했었어요. 그 오빠는 모 항공사 신입사원이었고,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신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해요. 말도 어눌해지고, 보행감각에도 이상이 생기고, 기억력이 저하되면서,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고요. 치매와도 비슷하지요. 심지어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까지 이르렀습니다. 친구의 집에서는 안해 본 것이 없었어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기도 하고, 좋다는 약은 다 구하고, 미국에 가서 치료도 받아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오빠는 나중에는 걸음 걸이도 힘들어서 거의 의자에 앉아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사람만, 아니 천정만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늘어갔지요. 얼굴에 표정도 없어졌습니다. 얼굴근육까지 마비가 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발병이 되고 오빠가 산 시간은 몇년밖에 안된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친한 친구여서 어려서부터 봐왔던 오빠였는데....혹이라도 제가 아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누군지 알 것같아 더 많은 예들이 있지만, 삼가하겠습니다. 고인에게 누가 되는 일이 될 듯해서요.
그런데 오빠가 심지어 어머니도 못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한 사람만은 알아봤다고 합니다. 올캐언니(부인)였습니다. 언니를 보면 일그러진 표정으로도 웃었다고 해요. 새언니는 오빠가 생을 버릴때까지 단 한시도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젊은 나이인데, 한창나이인데 신혼 1년만에 닥쳐온 불행에도 늘 밝고 씩씩했어요. 오빠가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왜 그러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걱정하니까 웃는다고...벌써 10년이 넘은 일이지만, 오빠와 새언니와의 그 짧은 시간의 사랑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친구랑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던 일이 생각납니다.
처음 이 드라마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접했을 때, 맨처음 떠올린 사람이 그 오빠와 새언니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사랑일지 모르겠지만, 새언니나 오빠의 마음을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랑의 색깔이 뭔지 알 수가 없었죠. 제 친구마저도요.
시간이 지나자 먼저 힘들어 한 것은 친구의 친정부모님이셨어요. 새언니에게 할만큼 했다고, 한창나이인데 네 갈길 가라고, 도저히 미안하고 안됐어서 못보겠다고 나가서 살라고 했지만, 새언니는 끝까지 오빠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사랑도 있었구나 싶습니다. 단지 책임감때문에, 남편이 가여워서, 남들 눈과 입이 무서워서 스물 대여섯밖에 안되었던 새언니가 오빠곁을 지키지는 않았겠지요.
그래서 더더욱이나 이번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요. 김수현작가가 서연과 박지형을 통해 말하는 사랑을 통해, 그 때는 다 알지 못했던 오빠와 새언니의 사랑을 이해하고, 느끼고,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게 했을까가 먼저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쉽네요. 그러나 조금 더 기다려 보렵니다. 김수현 작가가 분명 답을 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다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사랑도 알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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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4:39




경수엄마가 불란지 팬션으로 들이닥치면서 일어난 불똥은 태섭과 경수에게로 튀어 버렸습니다. 이번회 태섭이 경수에게 토해내는 것을 보고,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질투와 시작부터 내가 처음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면서, 그들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이렇게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독점욕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인생은 아름다워 31회에서는 태섭과 경수의 문제가 비중있게 다뤄졌는데요,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던 장면은 동성애자 아들을 둔 두 엄마 민재와 경수엄마의 자식에 대한 같으면서도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어느 한편이 옳다 그르다라고 할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극중 민재처럼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었네요. 술을 못해서 물만 한 잔 들이켰지만요.

경수엄마는 불란지 팬션의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그 문제를 넘겼느냐고, 그리고 결혼한다는 경수까지 받아들인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하나만 생각했어요. 태섭이가 이미 혼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어 왔는데 우리까지 괴롭히지 말자" 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고 충격도 컸다는 민재의 말에 경수엄마는 "우리는 평범한 집안이 아니라"며 집안 자랑인지, 위세를 떠는 것인지 집안 족보를 들먹이지요. 이런 사람들 정말 꼴불견인데 암튼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세있는 집안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치고 인품 높은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말이에요. 
결국 경수 집안 식구들이 경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시선과 체면때문입니다. 차기 대학총장 자리 후보에 오른 경수아버지가 자식이 게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따가운 시선과 비아냥에서 자유스러울 수는 없을테니까요. 한 번 뒤집어 생각하면, 그 정도의 집안에서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식의 행복보다는 사회적 체면과 성공을 중요시하는 부류들일 거예요. 그런 점에서는 경수엄마의 심정도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고 말이지요. 
경수엄마에게 "우리는 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에 간섭할 생각이 없습니다. 둘이 같이 있으면 둘 다 편안해 하고 서로 많이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민재에게, 비록 "절대로 우리 아이 포기하지 못한다"고, "우리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를 갈며 자리를 뜨지만, 속으로는 민재의 말에 조금은 흔들렸을 것 같기도 했어요. 부모는 같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수가 있거든요.  
밖으로 나온 경수엄마는 태섭에게 한 번 더 다짐을 받고자 합니다. "우리 경수는 너하고 달라. 제 아이 위하면서, 처가집에도 그렇게 잘할 수 없었어. 정말 그림같이 살던 녀석이야". 태섭이 때문에 누구보다 효자인 경수가 흔들렸다고 태섭을 다그치는 광경을 보고 "일곱살짜리 애들이에요? 누가 누구 때문이 어디 있어요?" 라며 쏘아붙이는 민재입니다. 경수가 전 부인과 재결합하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태섭이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수엄마는 태섭에게 그만 만나라며 약속을 해달라고 합니다. 태섭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못을 박고는 뒤돌아서 집안으로 걸음을 옮기지요. 
그런 태섭을 기다리며 손을 꼭 잡고 들어가는 민재, 그 장면을 보니 울컥해 지더라고요. 경수엄마가 찾아왔다는 말에 태섭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민재였지요. 태섭이가 두 번 아플까봐서요. 경수집에서 경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민재는 경수엄마가 어떤 말들을 뱉을 지를 알고 있었을 거에요. 우리 자식 발가벗겨서 찬바람 맞게 하지 말자라며 병태와 부둥켜 안고 울던 민재였어요. 발가벗겨서 내보내지 않으려고, 그렇게 태섭에 힘이 돼주고 안아주고 방패가 돼주는 민재입니다.  
엄마가 태섭의 집을 찾아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경수는 태섭이를 만나기 위해 오고, 태섭 역시 태섭의 원룸으로 돌아가 경수와 만나는데요, 태섭이 재벌아들과 사랑에 빠진 서민집안 아가씨가 된 기분이라며 기분이 더럽다고 불쾌해 하지요. 그리고 태섭의 감정이 폭발했는데,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는 태섭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와닿았어요. "넌 왜 그렇게 잘하고 살았니? 와이프랑 처가에도 잘하고, 그림같이 살았다더라". 그러면서 원하면 지금이라도 그림같이 살라며, 언제까지 떨어져 나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결국은 있는대로 감정을 폭발해 버리는 태섭입니다.
감정을 터뜨리는 태섭을 보니 경수엄마에게 받은 모욕감도 컸지만, 첫사랑이었고 싶은 감정, 전부인에 대한 질투심까지 느껴지더군요. 과거까지 질투하는 태섭역할을 하는 송창의가 곱상한 얼굴로 화를 내는 모습도 매력적이더군요. 동성애라는 까다로울 수 있는 감정선을 무리하지 않게 보여주고 있는 송창의와 이상우, 연기가 끈적이지 않고 담백해서 제가 요즘 관심을 많이 가지고 지켜보는 연기자들입니다ㅎ.
경수가 다음날 공항에 경수 엄마를 배웅하면서, 경수 엄마에게 못을 박아 버렸지요. 부모의 아킬레스건, 자식이 부모 앞에서 죽겠다는 말처럼 억장이 무너지는 말도 없을 겁니다. 경수엄마가 차안에서 경수를 치며 우는 장면을 보면서, 경수엄마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경수가 '없는 자식치라'고 했지만, 설마 죽겠다는 말을 할 것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협박도 해보고, 멸시도 해보고, 괴물이라고 욕도 했던 경수엄마였지요. 하지만 막상 자식의 입에서 죽겠다는 말이 나오자, 경수엄마도 오열을 터트리고 말더라고요. 제가 경수엄마 입장이 되어 보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섭에 비해 일찍 커밍아웃한 경수로 인해 경수엄마는 수없이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분노하고 절망하고, 그러면서도 며느리랑 손녀딸과 알콩달콩 살던 때를 생각하면 미련과 희망을 버리지 못했을 거고요. 드라마에서 너무 표독스럽게 나와서 정은 잘 주지 못했지만, 경수엄마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아요. 자식이 손가락질과 비아냥을 받으며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테니까요.
집안의 체면도 물론 중요한 문제였지만, 경수엄마 역시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였고, 경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졌었어요. 자식이 손가락질 받으며 사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픈... 앞으로 태섭이가 겪어야 할 북풍한설 모진바람을 대신 맞아 주지 못해 더 마음이 아픈 민재와 병태처럼요. 누구 하나 자식 귀하지 않은 부모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민재의 생각에 동의해요.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라고 말할 권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민재에게도, 병태에게도 표현은 하지 않지만 경수엄마처럼 미련과 희망이 가슴 밑바닥에는 앙금처럼 한덩어리 정도는 남아있을 거에요. 
무거운 마음으로 원룸으로 돌아가는 태섭을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민재와 병태부부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미더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사람 모두 다음날까지 뒤숭숭한 마음에 잠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서로 "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앞으로도 이 부부에게 태섭 때문에 몇번이나 속이 뒤집어질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때마다 태섭이 받아야 할 상처들로 민재부부가 걱정을 하는 것이 느껴져서요. 차라리 해 줄 수만 있다면 태섭이가 받을 서러움, 멸시를 대신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속으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내가 대신 태섭이에게 던져지는 돌을 다 맞을 수만 있다면...' 그런 마음이 지금도 왜 없겠어요. 속마음을 뱉지도 못하고, "운전 조심해야 하는데..." 라는 병태, 말은 그렇게 했는데, 저는 "태섭이 마음 다치지 않았으면..."라는 말처럼 들리더라고요.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는 민재가 주방에 나와 소주로 속을 달래는데,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의 심정이 절절하게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동성애자를 둔 두 엄마의 눈물을 보며, 비록 자식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시선은 너무나 대조적이고 다르지만, 이번회를 보면서 조금은 화해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는데요, "태섭의 부모는 자식 이상 중요한 것은 없는 사람들이에요" 라는 경수의 말때문이었어요. 아들의 행복만을 바라는 민재의 마음, 그리고 자신에게 모욕을 받고 돌아서는 아들의 손을 꼭 쥐고 들어가는 민재는 경수엄마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줄 것 같았어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수엄마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엄마라는 이름으로 만들어가는 기적처럼요. '어머니'라는 가장 위대한 이름, 동성애자를 자식으로 둔 엄마 역할을 맡은 김해숙이 보여주는 깊이있는 연기를,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만났다는 것은 정말 큰 선물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다 이해하고 인정할 수 없겠지만, 삽십 넘은 자식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경수엄마 역시 언젠가는 받아들일 것 같은 희망도 느꼈어요. 꼭 받아 주었으면 싶고요. 행복한 자식을 보면 부모도 행복하잖아요. 자식의 행복을 담보로 얻은 체면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잔인한 것인지, 그 모순되는 행복관에 대해서 경수엄마도 깨닫게 되는 날이 왔으면 싶어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다뤄지는 태섭과 경수의 문제는 동성애라는 시선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데서, 이 드라마의 정직성과 날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경수엄마가 경수의 희생을 담보로 얻고 싶은 외면적인 행복은, 자식에게는 빈껍데기 허울의 가식적인 삶을 살게 할 뿐이에요. 결국 그 가족 누구도 진심으로 행복하지는 않은 보기좋은 그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라는 문제에 앞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누구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희생하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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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8 14:42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커플들을 보면, 태섭과 경수커플을 제외하고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부관계 혹은 연인관계에서 하나같이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일 겁니다. 김수현 작가 작품이 여성들의 목소리나 위상을 높게 표현하는 것이 많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극중 가장 합리적인고 모범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민재와 병태 커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여자에게 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팔십 넘어 바람만 피우다 돌아 온 할아버지도 고집불통에다 독불장군처럼 자기 밖에 모르는듯 보이지만, 과거 행실때문에 할머니에게 이빨빠진 호랑이에 불과하고요.
특히 여자에게 잡혀있는 커플이 지혜와 수일커플인데요, 커플이 예감되는 호섭(이상윤)과 부연주(남상미), 양초롱(남규리)과 정동건, 양병준(김상중)과 조아라(장미희) 커플도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호섭이나 동건을 보며 상대방을 공주님 떠받들 듯 벌써부터 기 하나 펴지 못하는 모습이고, 술 취한 조아라 뒷치닥거리를 하는 병준의 모습도 과히 목에 힘을 주는 모습은 아닌 듯 싶고요. 하긴 연애할 때나 그렇게 콧대 높여보지 언제 부려보나 싶어서 귀엽기도 해요. 수자부부의 경우는 수자 남편이 손찌검으로 수자를 잡는 편이라(이제는 안 그러겠다고는 했지만) 예외입니다.
엄밀하게 보면 민재와 병태커플도 병태가 민재의 의견을 99% 떠받들어 주는 관계이지만, 이들부부는 민재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기 보다는 서로 믿어주는 관계라고 보여집니다. 합리적이고 현명한 민재이기에 병태와 어떤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일은 별로 없지요. 30년을 함께 살아 오면서 다듬어지고 양보하고 이해하다보니 '당신 뜻이 내뜻이고 내뜻이 당신 뜻'이 된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저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상당히 보기 불편한 관계가 지혜(우희진)와 수일(이민우) 부부입니다. 이번에 수일이 여직원과 영화를 보다 들통난 일을 외도로까지 확대시켜 흥분하는 지혜를 보며, 사실 여자로서 심적으로는 그 배신감을 이해는 하지만, 행동은 어른스럽지 못했고, 더구나 처가살이를 하는 남편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을 보고 언짢아지더군요.
전형적인 공처가면서 딸 지나가 있고, 지혜가 둘째를 임신한 상태인데, 지혜를 속이고 여직원과 영화를 보러 간 것을 물론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요.  그런데 지혜에게 그 광경을 들킨 후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마치 대역죄라도 지은 죄인처럼 자라목처럼 움추러드는 수일을 보니, "남자 망신 혼자 다 시키고 있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입도 뻥긋 못하고 처가 식구들 앞에서 좌불안석하고 앉아있는 수일을 보니, 남의 집 머슴살이는 해도 처가살이는 하지 말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아들이었다면 왜 그렇게 바보같이 부인한테 잡혀 사느냐고 호통을 치고 싶어지더군요. 
수일과 지혜의 부부는 젊은 부부는 오늘을 사는 젊은 부부들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공처가 수일의 모습이 극중에서 한심하고 우습게도 보였지만,  여직원과 영화관 갔다는 이유로 결혼의 순결이 깨졌느니 하면서 그만 살자는 말을 하는 지혜를 보고는 참 무책임하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물론 지혜가 진짜 이혼할 생각은 없었고, 수일에 대한 배신감으로 일벌백계의 심정으로 그런 말을 뱉은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요. 
지혜는 무결점주의자에 결벽적인 성격의 병준과 많이 닮았지만, 병준은 집안정리나 위생에 대해서 결벽적일 뿐, 사람에 대해서는 다행히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지혜는 병적으로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극중 지혜를 보면 똑 부러지게 야무지고, 사리분별력있고, 매사가 자로 잰듯 빈틈 없는 여자에요. 좋게 보자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도, 싫고 내가 피해받는 것도 싫은 매사에 빈틈없는 여자같지만, 나쁘게는 몹시 피곤한 여자에요. 모든 일이 자기 생각과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극히 이기적인 여자에요. 처음 임신을 했을 때도 지나의 교육비와 몸 망가지는 것, 경제적 자립, 육아 등의 문제로 아이를 지우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던 인물이에요. 
이번 수일의 영화관 사건으로 칼자루를 쥐었던 지혜가 오히려 당하게 생겼는데요, 저는 역공을 하고 나오는 수일을 응원하고 싶어지더군요. 강하게 밀어부치는 수일때문에 불리해져 버린 지혜의 상황이 고소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시대착오적이고 구세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젊은 시절에는 여권신장, 여성운동에도 뜨겁게 관심을 가졌는데, 지혜의 문제는 여성의 가정에서의 위상이라는 문제라기 보다는 지혜 성격을 좀 뜯어 고쳤으면 싶더라고요.
지혜를 보면 자기가 최고라는 공주병이 있어 보여요. 그런데 그 공주병이라는 것을 찬찬히 살펴보면, 컴플렉스에 기인한 자기최면식의 공주병이라는 것이 문제에요. 엄마의 재혼으로 지혜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라는 생각이 강했던 여자에요. 불란지 팬션에서 가장 불완전한 존재였지요. 엄마 민재는 새아버지 병태와의 결혼으로 아내라는 떳떳한 자격을 받았지만, 지혜는 민재에게 딸려온 혹이라는 컴플렉스 속에서 자랐지요. 다행히 제주 넓은 바다와도 같은 새아버지 병태가 진심으로 딸로서 품었기에, 지혜가 그만큼 비뚤어지지 않고 자랐을 겁니다. 태섭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봐 온 민재가 있었기에, 태섭이 지금의 반듯함을 잃지 않았듯이 말이지요.
수일에게 "우리의 결혼이 흠없이 순결한 것이라고 믿었다"는 말을 하는 지혜를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지혜의 결벽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은 엄마의 재혼으로 딸려 온 '혹 컴플렉스'(사실 이런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이 혹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자기에게 흠이나 결점을 보이지 말자라는 강박관념을 키웠고, 지혜를 둘러싼 모든 것은 티끌하나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키워왔다고 생각해요. 지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모두 자신의 말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니다. 자신이 정해 둔 규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합니다. 지나에게 저녁마다 엄마 아빠 순번 정해서 동화책을 읽어주고, 일요일이면 온가족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올레길을 가야하고 말이지요. 어길시에는 반항으로 간주되고 심지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트집까지 잡습니다. 그런데 전 진짜 이런 젊은 여자 무서워요.
그래서 이번 회 수일이 반항하는 것을 보고는 꽁생원같고 못난 남자의 표본이라 수일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지만, 수일을 응원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좀 더 거세게 반항하라고 말이지요. 지혜에게는 사람 위에 사람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사람있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 같고, 더 많이 다듬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말로는 사실 수일이 지혜를 당할 수는 없어요. 많은 경우 여자들과 말싸움해서 이기는 남자들 못봤어요. 그래서 더 지혜가 기고만장하는 것 같기도 해요. 
지혜에게 민재나 병태와 같은 어른이 곁에 있어서 훈수를 두고, 보듬어 주고, 때로는 꾸짖어 주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저는 지혜를 보면서 지혜가 친정살이를 하는 것이 지혜에게는 참 행운이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혹이라도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면, 지혜같은 성격의 며느리를 시부모입장에서는 고운 눈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지요.

김수현 작가가 젊은 지혜와 수일 부부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요, 저는 무너지고 있는 젊은 가장들의 권위를 살리고자 하는 작가의 숨은 의도를 읽습니다. 요즘 여자들 학력 높아지고 경제적 활동으로 남자들 못지않은 파워를 가진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똑똑한 젊은 세대들에게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부부존중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지혜를 보면 자신은 존중받아야 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병적으로 확인받고 싶어하면서도, 남편 수일에 대해서는 마치 아들 대하는 태도에요. 물론 수일이 무게가 없어서 우습게도 보이지만, 이 부부의 모습이 좋아보이지는 않아요. 수일을 보면 도살장에 끌려 온 소처럼 보이니 말이지요.
수일과 지혜 부부의 문제는 좋은 부부관계를 위해서 고쳐야 하기도 하지만, 또 하나 심각한 것은 어린 지나에게 미치는 영향일 겁니다. 어린 지나의 눈에 비친 아빠의 모습은 늘 엄마 앞에서 쩔쩔매고 눈치보는 모습이에요. 지혜처럼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어린 딸의 눈에 비친 아빠가 엄마 앞에서 기죽은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도 문제이고, 썩 좋은 태도같지는 않아요. 어린 아이들 가정환경이라는 것, 굉장히 크게 작용해요. 극중 지나의 똑똑스런 모습을 보면 나중에 커서 지혜 판박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물론 부부가 서로 존중해주고 평등한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인간관계가 안에서도 밖에서도 생각과 문화가 다를 때 충돌이 일고, 때로는 싸워가며, 때로는 이해를 시키면서 합일점을 찾아가고, 매일 조금씩 다듬어지는 게 우리 인생사이고 부부의 모습일 것입니다. 지혜를 보며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번 수일의 반항(?)으로 지혜의 안하무인 성격을 고치는 계기가 되면서, 동시에 수일도 조금 어른스러워졌으면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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