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희'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3.08.27 '굿 닥터' 수상한 아군 곽도원, 그의 속내가 궁금하다 (8)
  2. 2013.08.13 '굿 닥터' 주원-주상욱 두 루키, 서로에게 의사란 무어냐고 묻다 (3)
  3. 2013.08.06 '굿 닥터' 주원 신드롬 시작되나?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11)
  4. 2012.09.10 '넝쿨째굴러온당신' 윤여정의 명품연기, 휴전은 있어도 종전은 없다 (4)
  5. 2012.08.20 '넝쿨째굴러온당신' 장용, 눈물로 부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12)
2013.08.27 13:05




강현태(곽도원)와 그가 회장님이라 부르는 김창완의 꿍꿍이는 무엇일까? 김창완은 성원대학 병원을 막말로 삼키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이상하게도 이 두 사람에게, 특히 강현태에게는 믿음이 생겨나는 중입니다. 소아외과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왠지 지키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랄까. 

한 밤중에 야구연습장을 찾아 훈련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스치는 씁쓸한 표정에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 스쳐갔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지키지 못했던 누군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박시온의 임시채용에서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강현태가 이번에도 시온을 구했습니다. 시온의 레지던트 임시채용에서도 최우석 원장(천호진)과 이사장 이여원(나영희)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인물이 강현태였는데, 우일규의 격리실 출입내역을 뽑아 박시온 병원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결정적 도움을 주었습니다.

김창완에게는 박시온을 흥미로운 루키로 병원에 남겨둘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보고를 하기도 했었죠. 강현태와 김창완이 연결고리가 되는 과거가 가장 궁금한 대목인데 야구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짐작만 하고 있지만, 강현태는 한때 골든글러브를 받았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야구선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사무실 협탁에 놓여있는 골든글러브와 야구공, 그리고 벽면 장식장을 차지한 야구관련 피규어들과 그의 옷걸이에 걸린 유니폼은 그의 과거를 말해주고 있죠. 혹은 그와 관련된 가족 누군가의 과거를... 

김창완 역시도 야구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강현태와 만난 장소도 한밤중 연습중이던 야구장이었죠. "건강한 애들만 보면 기분이 좋아져", 김창완의 첫 대사를 통해 그가 흔히 드라마에서 말해지는 악의 축의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도 그때문이었을 겁니다. 건강한 아이들이라는 말 속에서 소아외과가 그에게 특별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왜 그가 병원경영에 투입되었을까... 김창완의 지시에 따른 성원대학병원 구조조정을 위한 투입이었지만, 그의 의뭉스러운 행보는 재단쪽 이전무와 고충만(조희봉)과장의 사리사욕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병원 이사장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전무와 고과장을 정리하려는 것이 더 목적으로 보입니다.

은지와 성호를 동시에 수술하는 김도한의 수술과정을 지켜 본 이후, 강현태는 감동받았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죠. 그리고 전략을 수정해 같은 배를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보고를 했었습니다. 야구연습장에서 나와 누군가가 건넨 김도한 관련 서류들을 보며 김창완에게 전화보고를 할 때도, 강현태는 원장 최우석과 김도한을 잔류시키겠다는 말을 했죠.

"구단주만 바뀌면 리빌딩하는데 아무 문제없습니다. 매니저와 클린업 히터(cleanup hitter 4번 타자)는 완벽합니다. 둘 다 잔류시킬 겁니다.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루키가 한 명 있습니다". 여기서 구단주는 이여원(나영희)를, 매니저는 최우석 원장, 클린업 히터 즉 4번 타자는 김도한을, 루키는 박시온을 가리키는 그의 암호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구단주 리빌딩이라는 말이 최대 관건입니다. 현재의 성원대학 이사장 이여원(나영희)을 내리고 새로운 누군가로 교체할 예정이라는 의미이지만, 강현태와 김창완은 허수아비 이전무를 우선 이사장에 앉혔다가 최종적으로는 그의 보스 김창완이 성원대학 병원을 차지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겠죠.

 

그런데 강현태나 김창완은 영리목적만으로 성원대학 병원을 인수하려는 것같지는 않아보여 이들을 경계하고 싶은 마음은 없네요. 오히려 가장 강력한 차기 후보 유채경(김민서)이 이사장이 되는 것이 더 우려스럽습니다. 소아외과에 남으려는 김도한의 자긍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채경, 그녀의 바람대로 김도한이 소아외과가 아닌 다는 과로 옮긴다면, 적자를 이유로 소아외과를 지방으로 이전하거나 없앨 수도 있을 유채경이기에 말이죠. 김도한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두 사람의 거리는 멀어지기만 할 뿐이지만 말입니다.

 

박시온이 은옥의 병실문을 열어두지 않았다는 증거물을 최우석 원장에게 건네는 강현태, 당황스러워 하는 최우석(천호진) 원장에게게 말하죠. "잘못된 일은 바로 잡아야죠. 저 그렇게 편향적인 사람 아닙니다", 이어진 말에는 강현태의 진심이 느껴지더군요.  

"전 소아외과, 박시온 모두 우리 병원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원대학 병원 적자 파트인 소아외과를 정리하고 싶어하는 이전무나 고과장, 김재준 과장과 같은 생각을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말이었죠. 

우일규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간 것은, 고과장과 이전무에 대한 관리가 아직은 더 필요하기에 우일규의 약점을 이용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의뭉스러운 그의 말과 행동에 관심집중하게 만드는 곽도원은 굿 닥터에서 요즘 저의 최대 관심인물입니다. "왜 쓸데없이 병실문 열어놨어요!", 발뺌하는 우일규에게 던지는 미소에 소름 쫙 돋았네요. "이 좋은 아침에 나랑 장난치고 싶어요?". 

우일규 하는 짓이 얼마나 미웠으면 제작진도 우일규의 존재를 해독불가 주민번호로 주었더군요ㅎ. 성적표에 찍혀있는 주민등록번호가 8404132-1046390, 도대체 몇일에 태어났다는 건지??

 

은옥이를 강제로 진정시키려는 안전요원을 치고, 은옥의 병실 문을 열어뒀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쫓겨나는 시온, 김도한에게 그동안 호의적이었는데, 이번 충고는 솔직히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동생을 잃었던 아픔을 이해는 하지만, 도대체 그에게 환자와 의사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 지더군요. 시온에게 자신의 실수를 감정이입해 윽박지르는 것으로 보여서 말이죠. 김도한은 차윤서는 물론 병원 누구에게도 인사도 하지 말고 떠나라며 말하죠.  

"앞으로 어딜가든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일 하지마. 혼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절대 하지 말고, 너에게 걸맞는 인생을 살아.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야", 시온이 최우석 원장의 병원자리까지 위태롭게 한 것에 대한 때문이겠지만, 시온이 사람들에게 무슨 피해를 줬는지 저는 잘 이해가 안가더군요. 시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김도한 자신이 불편하기 때문인듯 보이던데 말이죠. 도한이 생각하는 시온에게 걸맞는 인생이 뭔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이어지는 세 사람의 마음 속 방백은 시온을 위한 말같지만, 나약한 김도한의 모습만 확인하게 했습니다. '박시온, 세상과 부딪치지마.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숨을 수 있으면 숨어. 부탁이다'. 동생을 잃은 슬픔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김도한으로 보이네요.

시온은 전혀 다른 방백으로 마음을 다잡죠. 사실 상처가 가장 큰 시온인데도 시온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형아, 미안해. 다음부터는 더 잘할게. 꼭 의사될게 형아'.

 

태백행 기차를 타기전 시온은 수상한 아군 강현태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돌아왔고. 은옥을 데려 가려는 삐리리 같은 고모를 막아섰습니다. "안됩니다. 은옥이 데려가면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귀요미 간호사 조정미(고창석)에게 혼이 덜났는지 진짜 감금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고모는 정신 못차렸더군요. 

시온의 복귀로 도한의 시온에 대한 마음은 더 차가워져 가기만 하고, 강현태의 제의에 김도한이 최우석 원장과 이여원의 반대편에 서게 될지도 모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도한에게 말했던 강현태의 제안이 왠지 시온에게 해당되는 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주인공이 루키 시온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서 말이죠. "저는 최고의 소아외과 명의가,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수술을 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제가 꼭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부원장으로서 소아외과를 물심양면 지원하겠다는, 도한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위한 제안이기는 했지만, 강현태의 말은 그냥 단순히 회유용은 아닌듯 보이더군요. 최고의 환경은 소아외과에 대한 투자를 의미하는데, 그게 혼자만의 독단적인 생각은 아니겠죠. 그의 뒤에 있는 회장 김창완의 뜻이기도 할테니 말이죠. 무엇때문에 그들은 성원대학 재단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소아외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성원대학 병원을 손에 넣으려는 목적은 아닌 듯한 회장과 강현태의 사연이 궁금하군요. 야구는 그들에게 어떤 연결고리인지도 궁금하고 말이죠.  

이윤이 되지 않고 적자가 나는 소아외과라고 하지만, 병원의 이윤때문에 어린 생명에게 살아볼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잔인한 일입니다. 자폐를 가진 박시온에게 세상과 부딪치지 말라고, 숨어있으라는 김도한의 마음속 말처럼 말이죠.

속을 알 수 없어 무서운 강현태와 김창완, 소아외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성원대학의 골치거리로 부각시켜 그들의 계획을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실망이 클 듯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그들의 꿍꿍이를 나쁜 의도로만 보고 싶지 않군요. 그들에게 환아가 이윤의 개념이 아니기를, 그들의 루키 박시온이 이윤보다 더 큰 의미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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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14:28




'영혼이 없는  의사', '환자를 살리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수술방의 로봇', 차윤서(문채원)와 김도한(주상욱)의 눈에 비친 박시온(주원)이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확신이나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두 사람의 말이 와닿지 않는다. 환자를 살려야 겠다는 마음보다 무엇이 더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김도한과 차윤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박시온과 비교하면 기성세대의 느낌이다. 그들은 병원 이미지, 각 과와의 마찰, 수술 실패의 부담, 인간관계 등을 복잡하게 계산하고, 그에 맞는 판단과 선택을 하는 것이 의사라고 말한다. 

성공확률과 의사로서의 확신에 근거해서 치료를 결정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성공률이 낮은데도 수술을 강행했을때,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와 환자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할 수도 있는 육체적 고통, 그런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뭔가 불편하다. 의사와 환자의 기본적 관계에 다른 이해관계들이 더 우선시 되어 있다. 주객전도이다. 이 계산을 못하는 박시온이 그들에게는 사회성 결여, 혹은 뭘 몰라 날뛰는 똥오줌 못가리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김도한과 차윤서의 눈에계산을 못하는 박시온은 미성숙 의사로만 보일 뿐이다.

 

극중 강현태(곽도원)가 누군가에게 흥미로운 루키가 한명있다는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루키는 신인선수를 말하는데, 야구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를 꿈꿨던 한 고등학교 선생이 학생들에 의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꿈을 이루게 한...

강현태는 김도한의 자료를 보면서 왜 루키라고 말했을까... 강현태가 말한 루키는 박시온으로 짐작된다. 내게는 루키는 한 명이 아니라 두명같아 보였지만 말이다. 박시온과 김도한을 보니 영화 루키와 비슷하다.  

김도한... 실력이 뛰어난 의사이지만 그는 병원시스템에, 병원내 권력암투에 몸을 사리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태가 추진하고 있는 모종의 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루키가 김도한이다. 영화 루키에서의 주인공처럼 부상을 입고 메이저리그 꿈을 접은 것과 비슷하다. 타과 과장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소아외과의 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도 그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의사로서의 신념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이고 조직이고 룰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 룰을 전혀 모르는 신입 선수가 밑으로 들어왔다. 환자를 살려야 하는 것이 의사아니냐고 묻는 순수의 루키... 박시온을 통해 김도한은 진짜 메이저 리그의 주전선수(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속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다른 루키가 있다. 국시에서도 합격이 유보된 박시온이다. 그가 메스를 잡을 수 있을까, 김도한은 박시온을 언젠가는 어시스턴트로 지명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집도의로 믿고 수술을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결말부분에 이르러서의 일이겠지만 말이다.

박시온을 통해 그들은 변해간다. "아기 손 보셨습니까? 그건 살고 싶다는 표시입니다. 너무너무 살고 싶다는 표시입니다. 아기는 말은 못하지만, 너무 어리고 아프고 무서워서 말은 못하지만 살고 싶어합니다. 엄마 보고 싶어 합니다".

박시온의 말에 차윤서는 NICU(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생명줄에 의지해 숨쉬고 있는 어린 생명의 마음을 듣게 된다. 아마 박시온이 들었던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그 작은 손이 꼼지락거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생명줄을 놓지 않은 아이의 숨소리는, '살고 싶다'는 말못하는 어린 생명의 호소였다. 

 

김도한은 간담췌외과로 찾아가 미숙아의 차트를 직접 확인한다. 그리고 보았다. 아무런 처치없이 그저 생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방치'라는 그들의 태만을...

간담췌외과에서 내린 판정은 '미숙아가 살 가망성은 없다'였다. 생명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 영양공급으로 최대한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 물론 잘못된 처방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타과로 트랜스퍼하지 않으려는 전문의의 오만과 이기심은 질타받아 마땅하다. 약으로 안되면 수술로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어야 하지만, 타과로의 트랜스퍼는 곧 자신들의 실력에 스크래치를 입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은, 이해는 되면서도 용납은 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으로만 보일 뿐이다. 심하게 말하면 장삿속이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기본을 망각하고 있다.

타과가 되었든 다른 병원이 되었든, 환자의 생명이 먼저여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박시온은 그래서 옳았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목적인 의사,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이보다 더 무엇이 더 우선이어야 한단 말인가...  

박시온이 간담췌외과 과장의 동의없이 임의로 소아외과로 미숙아를 트랜스퍼한 일은 김도한에게도 의사의 소명을 되새기게 한다. 피상적으로는 자존심의 상처라고 비춰졌지만, 김도한에게도 환자는 반드시, 꼭 살리고 싶은 사람이다. 

20%의 가능성에도 메스를 든 것이 자존심때문은 아니었으리라,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구나 아니다. 어린 미숙아를 살리고 싶어하는 박시온과 같은 마음이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김도한은 미숙아를 수술하겠다고 선언했다. 20%의 수술 성공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의 희망이 있다. 100%의 절망이 아닌...

미숙아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아니 유일한 방법이기에, 의사로서 그는 과감히 메스를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타과의 환자를 임의로 트랜스퍼한 책임과 수술이 잘못되었을 경우 도의적인 책임까지 지겠다는 김도한에게서 그의 본모습이 나온다. 의대에 진학하고, 굳이 출세와 앞길 탄탄하게 보장된 과들을 마다하고 소위 돈안되는(책임만 막중한) 소아외과를 지원, 그곳에 남기를 고집하는 김도한의 비밀과도 연관이 있을터... 

미숙아 신생아를 수술하겠다고 결정한 김도한에게 고맙다는 박시온에게 말한다. "넌 환자와 가족들에게 못할 짓 했어. 아무 대안없는 희망을 줬고, 그 희망이 더 큰 절망을 만들었어. 의사는 종교인이 아니야, 절대 막연한 희망과 가능성을 줘서는 안돼! 그런 이유때문에 넌 최악의 의사라는 내 생각에 난 변함이 없어. 그래서 널 내 손으로 내보내지 않을 거야. 레지던트, 펠로우 다 거쳐서 진짜 의사가 되라. 그리고 그 때 네가 책임져야 될 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하고 있는지 직접 깨달아라. 만약 그 때 깨닫는다면 당장 옷벗어, 미련두지 말고...". 

김도한의 말은 드라마지만 잔인했고, 환자나 가족들이 들으면 거품물을 대사다. 살고 싶은 욕구,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단 1%의 희망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환자나 가족들의 마음에 모래를 끼얹는 말이다.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포기의 반대말일 것이다. 꿈은 꿈꾸는 자에게만 이뤄진다고 한다. 애초에 희망을 품지 않은 사람에게 꿈이란 없다.

 

대안없는 희망이 정말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게 절망만을 안겨주는 것일까... 1%의 희망이 있는 상황과 100%의 절망만이 있는 상황, 어느쪽이 환자나 환자가족을 덜 힘들게 할까...  물론 수술만이 능사는 아니다. 수술 성공가능성, 경제적 비용, 환자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할 수도 있는 육체적 고통 등 제반문제들을 고려한 판단이어야 한다는 김도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희망과 가능성을 줘서는 안된다는 부분은 동의하기 힘들다.    

요즘 우리 병원 시스템을 보자. 응급환자가 와서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데도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혹은 병원비를 먼저 계산하지 않으면 치료를 거부하는 병원이 한 둘이 아니다.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롭고 싶은 의사들, 혹은 병원 운영을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수술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보호자의 동의가 있었기에 책임은 없다는 것을 명시하고, 확약을 받은 후에라야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지켜진다.

박시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보다는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따지는 의료계의 문제를 박시온의 순수한 마음을 통해 일갈한다.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환자를 살리고 싶어 의사가 되려했던 초심, 왜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가를 돌아봐야 한다고 이 드라마는 꼬집어 말한다.  

하긴 요즘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유가 의사를 지원하는 큰 이유와 동기가 된 시대이긴 하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응급, 촌각을 다투는 외과 영역으로 축소시켰으리라. 그리고 다시 소아외과로 더 축소해 의사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린 생명이 그들에게 달려있기에 더 절박하고 간절해진다. 메스 하나에, 선택한 약품 하나에 아이들의 꿈이, 생사가 오간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기도 한다.

 

여기 20%의 희망에 메스를 든 의사가 있다. 그에게 메스를 들게 한 것은 고충만(조희봉)이 우일규를 이용해 "고칠 자신이 없어서 환자를 되돌려 보냈다더라"며, 김도한의 자존심을 긁어놓은 것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박시온의 영향이 크다. '의사가 잘고치면 아이들은 금방 일어납니다'.

 

또한 그의 스승 최우석의 '의사니까'라는 말은 그의 나침반이 된다.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길을 제시해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의사니까... 의사로서의 멘탈, 차윤서에게 박시온의 문제라고 지적했던 부분, 어쩌면 의사정신, 의사로서의 멘탈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김도한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성보다는 불가능에, 성공률보다는 실패율에, 절망부터 염두하고 확실한 판단과 확신을 더 우선했던...

 

김도한은 직간접적으로 박시온이 벌인 일로 인해 높은 절망보다는 낮은 희망을 택했다. 희망은 약속이 아니다. 결과 또한 아니다. 가능성이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가능성은 절망적이라는 말보다 더 기대고 싶은 말이 된다. 의사가 보여주는 20%의 희망은 가족과 환자들에게는 80%의 희망과 맞먹는 말이 되기도 한다.

막연한 희망과 가능성을 줘서는 안된다고 했던 김도한, 미숙아 신생아가 위험하다는 말에 상벌위원회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다. 꺼져가는 촛불과도 같은 아이의 상태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아기를 살려야 한다, 아니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가 아니라 2%로였대도 김도한은 메스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박시온과 다르지 않다. 누구보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김도한이다.  

 

김도한은 유능한 의사는 물론 굿 닥터가 되어간다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커져간다. 희망은 의지로, 의지는 열정으로, 열정은 어린 생명에게 꿈을 주는 일로 귀결된다. 보람이다. 기쁨이다. 박시온이 소아외과 의사가 되려는 이유, "어른이 되게 해주고 싶습니다"는 박시온의 의사정신이다. 김도한이 아직 보지 못한...   

신의 손이 아닌 이상 어떤 케이스는 실패할 수도 있다. 희망이 절망이 될 수도 있으며, 부질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아서는 안된다. 절망은 포기의 또다른 이름이다. '막연한 희망과 가능성을 줘서는 안돼!', 그랬던 김도한은 자신도 모르게 변해 간다. '희망과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안돼, 난, 우린, 의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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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6 08:42




첫방송부터 한시도 눈을 떼기 힘든 몰입도와 긴장감은 물론, 따스함이 온 몸 세포 구석구석을 채워준 굿 닥터 박시온(주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박시온을 있게 한 최우석(천호진)과의 만남은, 의술이 아닌 인술에 치유를 받은 느낌입니다. 사실 요즘 보고 있던 드라마 대부분이 복수를 다룬 내용들이어서 가뜩이나 사회도 불안한데, 마음마저도 다운되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 참에 굿 닥터에서 만난 서번트 신드롬을 겪고 있는 박시온, 그 어린아이같은 순수는 아침에 따스한 햇살이 들어 온 것처럼 제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박시온이라는 인물처럼 캐릭터 자체가 힐링이 되고, 뭉클하고 따뜻한 감동을 만난 건 오랜만입니다. 드라마속 박시온이라는 인물에 무한 감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주인공 박시온(주원)은 서번트 증후군(자폐)을 가졌던(가진) 천재입니다. 17살에 정상인으로 재판정이 났지만, 그는 여전히 서번트 신드롬(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특정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나타내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정상인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행동들로 사회성과 의사소통 능력이 다소 부족한 상태죠. 어눌한 말투, 주눅든 표정, 구부정한 어깨와 불안해 보이는 걸음걸이, 그의 외관적인 모습에 일반인이 가진 편견은 그를 통칭 '자폐'라 칭해버립니다.

박시온에게 있는 서번트 신드롬을 일찍 알아본 최우석(천호진)은 박시온의 후견인이 되어 시온이 의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움을 준 스승입니다. 태백의 한 탄광촌 보건소에서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하다가 시온이 어려운 의료서적들을 읽어내고 암기해 버리는 능력을 보게 되었죠. 

그런데 최우석이 본 것은 박시온의 천재성만은 아니었습니다. 시온에게 있는 '사랑',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시온의 마음을 더 읽었습니다. 죽은 토끼를 들고 온 어린 소년의 얼굴에 토끼를 살리고 싶어한 간절한 눈망울, 연약한 생명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싶지 않은 어린 소년의 꿈을 봤습니다.

박시온이라는 캐릭터 못지 않게 제 마음을 홀라당 통째로 힐링시켜준 최우석, 성원대학병원 인사위원회가 끝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박시온에게 왜 그렇게 늦었냐고 답답해 잠깐 버럭 화를 냈다가, 손톱을 부딪치며 어쩔줄 몰라 하며 불안해 하는 시온의 손을 잡으며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의사, "시간 잘 지키는 놈이 왜 이제와...", 그 부드러운 말에 시온은 금세 안정을 찾죠.  

시온이 자란 환경은 불우했습니다. 아들의 자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술주정뱅이 폭력아버지, 시온을 어떻게든 치료하려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온을 안고 대신 맞아야 했던 어머니, 시온의 유일한 친구이자 늘 시온편이었던 형과 토끼가 시온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시온의 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토끼가 죽어야 했고, 형은 동생과 놀아주지 않는 동네아이들의 위험한 내기에 폐광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떻게 시온의 곁을 떠나게 되었는지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후 시온은 보육원에서 생활해야 했지요. 시온에게 아버지와 형, 가족이 돼 준 분은 최우석이었습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지원해 온 스승입니다. 

시온은 지방대 의대에 입학하고 성적도 특출나게 우수했지만, 서번트 증후군 병력이 문제가 되어 국가고시에서 최종 불합격 판정을 받습니다. 단 전문의가 의료인으로서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불합격 판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조건부 불합격 판정이었죠. 최우석은 박시온의 불합격 취소를 위해 그가 병원장으로 있는 성원대학 병원에 박시온을 레지던트로 스카웃했지만, 시온의 서번트 증후군은 성원대학 인사위원회에서도 문제가 되어 통과하지 못하고 불합격을 받게 되었죠.

 

인사위원회에 나오지 못했던 시온, 그 이유는 TV를 통해 나오게 되었죠. 기차에서 달걀을 건네 주었던 현우, 캐릭터들이 눈 앞에서 튀어나오는 3D 애니메이션에 아이처럼 신기하게 보고 있던 시온은 현우가 대형전광판 유리파편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을 보게 되었고, 현장에서 긴급 응급처치로 현우를 살리게 됩니다.

현우가 고비를 넘기자 시온이 현우에게 한 말이 눈물 범벅되게 만들더군요. "이제 괜찮을 거야, 현우야, 걱정하지마". 

청량리역에서 사고를 당한 현우를 구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방송국에서 시온을 인터뷰하러 나오자 긴급인사위원회가 다시 열리게 됩니다. 최우석은 자신의 병원장직을 걸고 6개월만 시온에게 기회를 달라고 제안하고, 인사위원회는 시온의 6개월 조건부 레지던트를 수락하죠.

각각의 다른 계산들로 머리를 굴리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성원재단 내부의 암투가 암시되기도 했습니다. 이사장 나영희가 병원 경영 마인드가 똑바로 된 사람같아서 일단은 안심되더군요. 의뭉스러워 보이는 부원장 강현태(곽도원)는 일단은 물음표였지만... 

최우석은 성원대학 인사위원회에서 박시온을 레지던트로 추천하며 말하죠. "자폐증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치료가능한 예도 많습니다.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모든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캐나다를 흔히 노인, 장애인, 어린이의 천국이라 합니다. 그만큼 사회 약자에 대한 복지가 잘돼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전 정책적인 복지행정보다는 사람들을 통해 그 천국이라는 의미를 더 실감합니다. 노인. 장애인, 어린이를 우선으로 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마인드입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핀잔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 나가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면 노인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손이 먼저 나가 짐을 들어주려고 하려는 등의...

그럴때 우리 애들은 저를 말없이 툭툭 친답니다. 도움이 필요하느냐고, 도와줄까요 라고 먼저 물어봐야 실례가 되지 않는 행동이라면서... 선의의 도움이라고 할지라도 당사자가 동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먼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이 먼저 나가는 행동을 고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동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는 것은 큰 깨달음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그런 마인드는 철저한 듯 하더군요. 불편한 사람을 보는 내 마음의 불편보다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동정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상대의 불편을 먼저 헤아리는 것, 그게 여기서 배운 도움의 마음이었습니다.

 

박시온에게서 그런 비슷한 마음을 봅니다. 시온이 청량리 역에서 사고를 당한 현우를 응급처치로 살리고 처음으로 했던 말, "이제 괜찮을 거야, 현우야, 걱정하지마", 시온은 자신의 응급처치가 잘 됐음에 안심하지 않았지요. 현우가 살았다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앰뷸런스에서 다시 위기상황을 맞은 현우, 응급수술에 들어갔지만, 시온의 머릿속에서는 현우의 심장초음파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수술실에서 그것을 말하려다 제지당하고 쫓겨났지만, 수술실밖에서 시온은 상상으로 현우를 수술합니다. 

도한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와 현우 엄마에게 수술시 어떤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고비를 잘 넘기고 현우 수술에 성공했다는 말을 했을때, 박시온이 돌아보며 했던 말, 전 그 반전에 그만 또 울음을 터뜨렸네요. 뭐랄까, 가슴이 꽉 차는 따스함에 가슴이 복받쳐오르더라고요.

"고마워, 현우야", 수술을 잘 해 준 김도한이 아니라 살아준 현우가 고마운 시온, 이렇게 아름다운 천사가 또 있을까요 

두 천재의 만남, 수술실에서는 김도한(주상욱)이 수술을 하고, 밖에서는 시온이 상상으로 수술을 하는 장면이 교차되었죠. 노력형 천재와 서번트 신드롬 천재의 만남. 두 사람이 가진 능력보다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 절실하게 만나는 것 같아서 좋더군요.

김도한이라는 캐릭터가 천재 시온의 능력에 어떻게 변화될지는 모르겠지만, 전 김도한의 캐릭터도 호감입니다. 의학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경쟁심이 앞선 의사보다는 환자의 생명을 먼저 보는 의사라는 점은 비슷한 것 같아서 말이죠. 김도한이 몇시간을 만지작 거려도 맞추지 못한 큐빅스를 잠깐 사이에 맞춰버린 시온, 최우석에게 박시온의 레지던트 허용에 처음으로 스승의 의견에 반박하고 싶다는 김도한도 시온의 비상한 능력에 놀라지요. 아마도 결말에 이르러 시온을 의사로 인정해 줄 가장 든든한 동료가 김도한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인사위원회에서의 시온의 말은 천사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아외과 의사가 되려는 이유가 뭐예요?".

"토끼와 형아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로 간 그들 둘 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하늘나라 갔습니다. 어른이 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돼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사랑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돈 벌어서 보육원 아이들에게 3D TV 사주고 싶습니다".

 

시온 앞에 펼쳐질 역경과 편견들, 박시온이 의사가 되는 길은 편견의 벽때문에 더 험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그가 그 편견들 속에서 어떻게 성장해 갈지 궁금해 지는군요.

박시온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요? 의사의 자격이 의술이 다가 아님을 시온이 굿닥터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들로 만나게 될 듯합니다.

 

첫방송만으로도 대박예감이 드는 굿 닥터, 박시온이라는 캐릭터에 첫방부터 빙의된 듯한 주원, 마땅히 마음을 주지 못한 월화드라마에 주원 신드롬이 시작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주원의 연기는 매 작품에서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 그를 볼때마다 캐릭터는 물론 주원의 연기를 보는 것을 흐뭇하게 합니다.  

서번트 신드롬을 겪고 있는 박시온이라는 캐릭터는 육체는 성장했지만, 정신은 어린 아이의 어느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정체는 아닙니다. 정상인들보다는 더디게, 너무 더디게 성장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버려진 버스에서 생일에 초코파이 케익과 장난감 의료도구를 선물해 준 형, 시온은 우리처럼 그리움이나 사랑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형이 해줬던 것처럼 자신의 생일에 혼자 초코파이 케익을 먹는 것으로 형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대체됩니다.

술에 취해 옷을 훌러덩 벗고 시온 침대에서 잠든 예쁜 여자 차윤서(문채원), 잠든 그녀를 본 낯선 설렘도 더디게 자랍니다.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팬티만 입고 여자 앞에서 양치를 하는 모습으로 차윤서를 경악하게 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박시온은 너무나 귀엽습니다. 애기같습니다. 서번트 증후군이 아직 완치되지 않은 박시온에게서 나오는 아이같은 모습, 음식도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배고픔도 인체의 반응으로 설명하는 그는 얼마나 웃기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운지요.

최우석이 배고프지 않느냐고 갈비찜 먹으려 한다는 말에, "갈비찜? 혹시 밤이랑 색색깔 고명이 어우러진 명품 1등한우로 만든 갈비찜 말씀하십니까?". 그런데 배 안고프다며?

"저는 괜찮은데 장운동 증가로 인해 조건반사가 심해진 것 같습니다". 배고프다는 말을 이렇게 박학다식하게 설명하는 박시온때문에 웃음 빵~ 

어린 현우가 살아난 것에 고마워 하고, 어른이 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버린 형과 토끼때문에 소아외과 의사가 되고 싶은 시온을 보며 왜 제목에 '굿'이라는 다소 평범한 단어를 넣었는지 알겠더군요. 엑설런트나 지니어스, 그레이트가 아닌...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세계에 살고 있는 박시원을 통해,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르쳐줄 차윤서(문채원)을 통해, 많이 웃고 눈물도 많이 흘리게 될 듯합니다. 박시온이 닥터, 더 나아가 굿 닥터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에서 제가(우리가) 흘리게 될 눈물은 기쁨이나 슬픔의 눈물이 아닌, 정화의 눈물이 될 듯 합니다.

굿 닥터 박시온이라는 캐릭터와만남 자체가 시청자에게는 힐링이 될 듯합니다.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말이죠.

 

박시온이라는 인물에게서 보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순수함, 어린 생명의 소생에 너무나 덤덤하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시온을 보며, 시청자로 하여금 눈물나게 해버리는 주원의 밀도깊은 연기, 언제부터인가 주원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 '시청률의 사나이'의 기분좋은 귀환, 한층 깊어진 연기변신입니다.   

각시탈 강토에서 박시온이라는 캐릭터로 돌아온 주원, 연기변신은 물론 섬세한 캐릭터 분석은 드라마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몰입하게 했습니다. 타인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초점이 명확하지 않는 눈빛, 불안하게 흔들리는 고개, 걸음걸이까지 박시온이라는 캐릭터 해석에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박시온이라는 캐릭터에 첫회부터 애정 몰빵하게 만드는 주원, 시청률의 사나이 주원 신드롬으로 이어질 거라는 좋은 예감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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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0 08:20




마무리를 위한 마무리여서 마지막회는 다소 산만하기도 했지만, 모든 인물들에게 해피엔딩을 선물했습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국민드라마로 사랑받은 이유는 막장소재가 없었다는 것도 한 몫했습니다. 

조카를 유기한 작은어머니로 출생의 비밀을 안고 시작은 했지만, 고부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시월드 입성으로 형식을 탈피해 새로운 가족 이야기로 전개했지요.

무엇보다 장용, 강부자, 윤여정 등 중견연기자들은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힘을 보여줬습니다. 적재적소에 배치한 개성강한 배우들의 감칠맛나는 연기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각 캐릭터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 박지은 작가는 국민드라마로 만든 숨은 공신입니다. 

 

작은 아들 방정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는데, 드라마 등장인물이 많다보니 작가가 잊은 것은 아닌가 싶더군요. 마지막회 옥에 티라면, 이숙의 결혼식장을 홀로 장례식장으로 만든 푼수 이모 엄순애(양희경)의 분량이 과도하게 많이 나와 조금 그렇더군요. 가족들 중에 조금 모자란 가족도 있고, 분위기 파악못하고 초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이숙의 결혼식장에서 하객의 이목을 집중시킨 흐느낌은 난감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맥주 두 병에 정신줄을 놓은 방귀남과 천재용의 흐느적 거림은, 두 번 보니 오버스러운 연기티가 팍팍났고요.

 

넝쿨당의 유쾌함은 결혼식을 올린 커플은 예측한대로 천재용-방이숙이었지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커플이자, 드라마를 보는 크나큰 재미이기도 했습니다. 곰팅이와 점장님의 감칠맛 나는 사랑때문에 울고 웃었던 일들이 많았네요. 

 

특히 이희준의 재발견은 드라마가 건진 수확입니다. 애드리브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천재용이라는 캐릭터를 매력덩어리로 만든 이희준, 곰팅이 조윤희와의 애간장 녹이는 사랑은, 재벌아들과 소시민의 딸이라는 흔하디 흔한 드라마의 공식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신선했지요. 재벌 아들을 안좋은 조건으로 만든 박지은 작가의 비틀기는 현실감을 떠나 통쾌하기도 했네요. 이희준-조윤희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베스트 완소커플이었습니다. 이 귀여운 커플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 슬프네요ㅜㅜ.

 

천방커플의 결혼식에 재등장한 천회장(이재용)이 반갑더군요. 양가 아버지가 나와 축사 한마디를 하라는데, 천회장다운 덕담을 건네 결혼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들아, 달리 할말은 없고 장가가서 부디 인간이 되거라. 미모가 출중한 내 며느리 이숙아, 재용이가 말 안들으면 즉각즉각 얘기해라. 내 반 죽이뿌께. 대신 반품은 안돼". 반품불가, A/S만은 확실하게 책임지겠다는 천회장때문에 빵터졌네요.

극중 방장수 역으로 드라마의 기둥역할을 해준 장용은 마지막회에서도 아버지의 진한 부성애를 느끼게 하는 편지로 뭉클하게 했습니다. 귀남의 실종으로 이숙이 커가는 그 귀한 순간들을 놓치고 살았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는 방장수, 할머니 전막례와 엄청애도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무뚝뚝하고 애정표현할 줄 모르는 방장수가 이숙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가슴 찡했습니다. 그 연세의 아버지들이 결혼하는 딸에게, 그리고 사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분이 드물지 싶어서 말입니다. 이심전심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려니 하는 것이 대부분이잖아요.

지환은 윤희네 가정으로 입양되어 성도 방씨로 바꾸고, 귀남과 윤희(임신중)의 첫째 아이가 되었지요. 지환의 입양이 개인적으로는 윤희네보다는 방장수와 엄청애를 위한 선물(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따지고 보면 30년만에 찾은 방귀남은 다 큰 성인을 입양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섯살에 헤어진 아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지켜보지 못했던 방장수 부부에게 귀남은, 아들이지만 윤희처럼 타인이었을 겁니다. 핏줄이라는 것 외에는 방귀남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던 그들이었을 테니까요.

방귀남과 방장수 부부가 아무런 갈등을 겪지 않을 수는 없었겠죠. 며느리 윤희를 사이에 두고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생활습관, 사고방식 등에서 오는 갈등은 윤희가 장수빌라 가족과 섞여살면서 겪는 것과 같았을 겁니다. 다만 피로 맺어진 가족이기에 윤희와 겪는 감정대립과는 달리 넘어가고 풀어가는 과정이 훨씬 수월하겠죠.

 

3대가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모습은 메시지와 감동이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장면만으로 그쳐버려 그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더군요. 방장수가 귀남에게 지환이를 우리집에 잘 데려왔다는 말을 한마디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지환이를 입양하겠다는 결심을 밝혔을 때, 엄청애와 자리에 누워 나눈 대화로 방장수에게 지환이 어떤 존재가 될 것임이 나오기는 했지만, 한 번 더 짚어줬더라면 드라마의 주제가 더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아들 귀남이를 키우지 못해 놓쳤던 것들을 지환에게 다 해주고 싶다고 했던 방장수였지요. 낚시도 함께 가고, 운동회도 따라가고... 크면서 사춘기도 겪고, 입시지옥도 겪고, 군대도 가고, 가정을 일구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귀남이 대신 지환을 통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그래서 감사한 아이라는 말을 해줬으면 싶더라고요. 잃어버린 귀남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방장수와 엄청애에게 준 선물과도 같은 아이가 지환이었으니까요. 귀남이를 대신 키워준 양부모에 대한 감사를 같은 방법으로 갚고 싶은 방장수의 마음이 비춰졌더라면, 장용의 묵직한 연기와 함께 드라마 주제의식을 한 번 더 상기할 수도 있었을 듯 하고 말이죠. 작가가 드라마 과정에서 다 넣었던 주제였지만, 마지막회에서 한번더 정리를 해줬으면 좋았겠다 싶었네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하지요. 지환의 유치원 운동회에서 느껴졌던 것입니다. 3인4각 경기에서 지환과 윤희, 엄청애가 역전승(?)을 하고는, 기쁜나머지 엄청애를 팽개쳐 버리고 셋이서 환호하는 모습을 방장수와 엄청애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올려다 봤지요.

그 마무리가 개인적으로는 좋았습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큰 줄기인 고부전쟁의 결말을 그 한 장면으로 보여주었거든요. 전쟁이라고도 표현되는 고부갈등의 결말을 '휴전은 있지만 종전은 없다'로, 가장 현실적으로 결론낸 것이죠.

살면서 좋은 일로 웃다가도, 오해로 갈등을 빚고 싸우기도 하는 것이 인간관계잖아요. 가족들도 마찬가지지요. 엄청애(윤여정)가 윤희를 째려본 것은, 고부갈등이라는 것이 드라마의 해피엔딩처럼 '모든 갈등도 이제 끝!'하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함이었습니다. 부딪히기를 반복하고 화해하고 이해하면서, 갈등의 정도가 작아지겠지만요. 마지막 엔딩까지도 시어머니라는 캐릭터를 살린 윤여정의 명품연기였습니다.

 

그리고 방장수와 엄청애의 표정에 나타난 감정도 의미있었습니다. 관록있는 윤여정과 장용의 연기는 참 많은 감정들을 읽게 합니다. 방장수와 엄청애의 감정은 이런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 자식만 눈에 보이고, 늙은 애미 애비는 눈에 안보이냐? 고얀 것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이렇게 되물림되면서 자식사랑으로 이어지는 것, 그리고 그 자식은 또 그 자식에게 사랑을 되물림하고... 이런 것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의 사랑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죠. 부모만큼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가르치지 않아도 부모가 되는 순간 배우는 것이라고 말이죠.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참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3인4각 경기처럼 모르는 남남이 가족이 되어 살면서, 때로는 삐그덕거리기도 하고, 한마음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그렇게 울고 웃고 화내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는 것이 가족들이라고 말합니다. 

긴 시간 봐왔던 드라마의 마지막회, 두 가지가 아쉬웠습니다. 평범한 소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으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가 끝났다는 것이 많~이 아쉽고, 임팩트없었던 마지막 마무리는 쬐끔 아쉬웠습니다. 지난회 윤희의 나레이션이 너무 일찍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마지막회 마무리멘트로 넣었으면 나았을 듯 싶어 다시 옮겨봅니다.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는 무슨 일이든 예측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결혼은 좋지만 시댁은 싫다던 나는, 이제 그들과 함께 섞여 사는 일상이 자연스럽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살아봐야 아는 것, 내가 직접 겪기 전엔 장담하면 안되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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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08:03




연기자 장용을 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입니다. 거의 20년 다 돼가는데도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장용이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낭만에 대하여'는 삽시간에 말 그대로 들불처럼 번져, 최백호의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던, 드라마의 힘을 실감하게 했던 노래였죠. 
'낭만에 대하여'는, 처음 발표가 되었을 때만 해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최백호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버렸다가 돌아온 이후라, 당시 최백호는 대중들에게 잊혀지고 있던 가수였었기도 했고요. 
수더분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장용이 남자의 낭만을 노래하는 모습은 안방극장을 사로잡았고, 남자들 애창곡 1순위가 되기도 해 화제가 되었던 일들이 기억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장용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김수현 작가가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는 대목에 반해 드라마 삽입곡으로 쓰게 됐다고 밝혔던 것으로 기억나는데요, 장용은 전국을 낭만에 대하여 열풍을 일으키게 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외모가 빼어난 미남도 아니고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친근한 이미지의 장용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기가 쉬웠겠지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투영시킨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드라마 속 연기자를 자기모습, 혹은 누군가(아버지)의 모습으로 대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런데 장용이라는 배우는 이게 되는 배우입니다. 소탈한 외모, 연기한다는 냄새가 나지 않는 자연스러움은,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게 만들정도니 말입니다.

귀남의 실종사건 전말을 알아가는 장수빌라 가족들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엄청애까지 알게 돼 동생 보애(유지인)네로 가버렸지요. 시어머니 전막례나 남편 방장수가 미워서라기 보다는, 지나온 30년의 세월이 억울하고 서럽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부주의때문으로 알고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눈뜬 장님 3년으로도 다 채울 수 없었던, 평생 아들버린 애미라는, 주홍글씨를 낙인찍고 살아야 했던 세월에 대한 설움이었지요.
'서방잃고는 살아도, 자식잃고는 못산다'는 말이 있지요. 자식이 귀남이 하나였다면 엄청애는 목을 열두번도 매었을 겁니다. 전막례의 혹독한 시집살이는 드라마에서 과거로 생략되어 버렸지만, 이숙이 생일날 미역국을 끓였다고, 새끼버린 애미라는 막말을 쏟아냈던 장면 하나로도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았지요. 일숙이, 이숙이, 그리고 말숙이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던 엄청애였습니다. 귀남이를 잃고 30년동안 말입니다.

시어머니의 호된 시집살이는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살을 맞대고 살아온 남편 방장수에 대한 원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던 엄청애였지요. 문득문득 남편이 따뜻한 눈길 한 번만 보내줘도,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말 한 마디만 건넸더라도, 이렇게 억울하고 서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말숙이를 가졌을 때 그렇게 먹고 싶어했던 딸기를 30년이 다 돼서 사들고 온 방장수, 옆구리 찔러서 절받는 것도 아니고, 엄청애의 설움이 쉽사리 풀어질 일은 아니었지요. 딸기밭을 통째로 사준다고 해도 그 많은 응어리들이 가시기 힘들겠지요. 서운함을 세월이 지워주지는 못하더라고요. 사는 게 허무하고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엄청애의 넋두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것을 보니, 저도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그 심정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껴지니 말입니다.
엄청애와 방장수의 화해는 보이스 피싱때문에 이뤄졌지만, 중요한 것은 엄청애의 존재가 장수빌라 가족들에게는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는 것이겠지요. 미안하다는 말도 차마 하지 못했던 시어머니 전막례(강부자)가 한 걸음에 달려와 무사한 엄청애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지요. "미안하다 소리도 못했는데 니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내가 너한테 잘못한게 많다. 저 세상에서 날 만나거든 갚아줘라, 내가 다 당할게...".
은행에 막 송금을 하려던 방장수는 다행히 윤희의 현명한 대처로 송금 직전에 보이스 피싱인 것을 알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지요. 은행을 향해 달려가는 방장수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청애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남자들에게 그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계좌번호를 적는 장용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엄청애를 걱정하는 방장수의 마음을 다 전하고도 남습니다.
"형수님 무사하시답니다"라는 방정배의 말에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린 방장수, 얼마나 놀랐었는지 방장수(장용)의 표정만봐도 그 절박하고 애타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지요. 사람 목숨가지고 장난하는 이런 삐리리 같은 놈들, 귀신은 안잡아가고 뭐하나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를 함께 보던 우리남편도 그런 사기에 당한적이 있었노라고 처음으로 고백하더군요(헐~ 찌릿 제 눈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행히 제 남편의 경우는 바로 지급정지를 취해 돈은 찾았다네요. 일종의 문자 피싱이었는데요, 남편 친구의 핸드폰 번호가 떠서 의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친구가 골프를 치는 중이라 은행을 가지 못하는데, 급한 일이니 대신 돈을 좀 넣어달라는 문자를 보냈더랍니다. 아무 의심없이 폰뱅킹으로 이체를 해주고는, 액수가 크다보니 바로 친구에게 "지금 처리했다"라는 문자를 넣었다네요.
다행히 이 문자는 친구의 진짜 휴대폰으로 전송되었고, 친구가 전화를 했더랍니다. 뭘 처리했다는 거냐고 말이죠. 아차! 싶었던 남편은 바로 은행으로 전화를 했고, 은행 측에서는 일단 계좌지급정지 조치를 취해 주더랍니다. 간발의 차로 막았던 것이죠. 돈은 일주일 후쯤에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다는데, 그냥 돌려주는 것은 아니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범죄신고 접수증'을 발급받아 은행에 제출하면, 범죄에 이용되었던 계좌 주인이 은행에 와서 돈을 인출해서 주는 형식으로 처리를 했다네요. 계좌주인은 통장을 빌려주는 댓가로 돈을 준다고 해서 빌려줬다고 하더랍니다. 이런 종류의 문자피싱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다시 드라마로 돌아와, 시청자를 말없이 울게 했던 장용의 눈물을 감동으로 이끈 한마디는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무사해서 고맙고, 그 오랜 시간을 잘 참아준 것에 고맙고, 방장수의 아내여서 고맙고, 전막례의 며느리여서 고맙고,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모든 말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엄청애를 부둥켜 안은 방장수가 "고마워, 고마워 여보"하는데, 그 순간 방장수를 위해 대신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생각나더군요. 전 이상하게 이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故하수영님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외삼촌 중에 한 분이 사람들이 모이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합니다. 어머니 생신에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한 자리에서 삼촌이 노래 한곡을 누님께 바친다며 불렀지요. 매형이 부르고 싶은 노래일텐데 점잖은 샌님이라 쑥스러워 못 부를 것이라고 대신 부르겠다며, 아버지 손을 엄마 손에 포개주시면서 부른 노래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였습니다. 노래를 듣는데 울컥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아버지는 겸연쩍어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공에 눈길을 고정하고 계시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오래된 노래이기는 하지만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엄청애, 정말 고생많았습니다. 어른 모시면서 대가족을 수발해 온 엄청애, 귀남이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돌덩이를 안고 살아왔지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처럼 열심히 살아왔고요.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귀여움과 사랑을 받다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어머니가 되면서, 손은 거칠어가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늘어가고, 이런게 여자의 인생이겠죠. 남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우체국에서 일하는 엄청애를 보고 한 눈에 반한 방장수, 청애를 보기 위해 매일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을 들락거리고, 자전거 한가득 빵을 구워 나르기도 했었지요. 방장수와 엄청애에게도 그런 낭만이 있었습니다. 청애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 밤새 단팥빵을 구웠지만, 빵굽는 것보다 편지쓰는 것이 더 힘들었던 방장수였지요. 구겨진 편지지가 빵보다 더 수북히 쌓여갔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청애씨', 한마디를 쓰기 위해 편지지 한통을 다 썼던 시절이 말입니다. 우체국의 아름다운 청애씨가 장수단팥빵 방장수의 아내가 되었고, 일숙의 엄마가 되었고, 귀남의 엄마가 되었고, 이숙과 말숙의 엄마가 되는 동안, 손은 거칠어 갔고,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갔지요.
그런 아내에게 가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해 미안한 방장수입니다. 함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하루도 밀가루 반죽을 손에 묻히지 않았던 날이 없었던 방장수처럼, 하루도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엄청애입니다. 엄청애 외에는 평생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방장수였지만, 귀남이를 잃어버리고는 아내에게서도 따뜻한 눈길을 거둬버렸던 방장수였습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귀남이가 생각날 때마다, 엄청애가 밉고 원망스러웠던 방장수였습니다.
아무 일 없이 무사해서 고맙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아들잃어버린 죄인이라는 낙인을 감수하면서, 그 모진 세월을 참고 살아준 아내가 너무 고맙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인지, 30년을 못해줬던 말들이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아내 엄청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 노래에 들어있는 듯 싶습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 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시린 손 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 접어 다져온 이 행복
여민 옷 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미운 투정 고운 투정 말없이 웃어넘기고, 거울처럼 마주보며 살아온 꿈같은 세월.
가는 세월에 고운 얼굴은 잔주름이 하나 둘 늘어도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엄청애를 데리고 있다는 보이스 피싱에 당해 은행을 향해 달려가는 장용은 동공에 초점을 잃은 모습이었습니다. 발은 허둥댔고, 눈은 초점을 잃은 채 마치 허공을 걷는 듯한 모습이었죠. 명품연기라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지요. 걸음걸이나 눈빛, 표정만으로도 '저 사람 뭔일을 당했나 보다'라고 느끼게 하는 것.
삶의 연륜을 고스란히 표정으로 간직하고 있는 장용의 연기는 깊은 주름들마저 대사가 되고, 인생을 느끼게 하고, 감정으로 살아납니다. 호방하면서도 사람 마음을 금세 무장해제시키는 넉넉한 장용의 웃음은, 목욕탕집 남자들에서는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였다면,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는 아버지의 웃음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장용의 넉넉한 웃음처럼, 장용의 명품연기는 눈물도 명품임을 보여줍니다.
구구절절한 대사없이도, 장용은 표정만으로도 감정의 간극들을 꽉꽉 채워넣습니다. 엄청애(윤여정)를 안고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 라는 대사 한마디만을 하는데도,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눈물로 부르는 모습이 오버랩되어, 함께 눈물 흘리게 만듭니다. 짧든 대사, 굵은 눈물 한 줄기에도 명대사, 명곡을 느끼게 하는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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