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당'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3.26 '추노' 마지막회 깜짝반전, 송태하의 죽음암시? (81)
  2. 2010.03.18 '추노' 대길과 송태하의 죽음암시, 누가 죽나? (31)
  3. 2010.03.12 '추노' 무거운 사랑에 가벼워진 혁명 (27)
  4. 2010.03.02 '추노' 노비당 그분의 배후, 또 있다? (22)
  5. 2010.02.27 '추노' 송태하의 잘려 나간 상투의 의미 (51)
2010.03.26 08:17




예상은 했지만 추노 마지막회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봐야 했네요. 드라마가 끝났다는 실감도 들지 않고 계속 눈에 대길이와 업복이의 모습이 어른거리는게 죽음이 아니라 죽음으로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강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길이 쏜 화살이 제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고, 초복이와 은실이 바라보던 떠오르는 태양이 제 가슴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궁궐로 총을 들고 간 업복이 때문에 울고 추노에서 가장 사랑 받았던 대길이의 죽음때문에 울고, 마지막에 최장군과 왕손이 농사짓는 깜짝 서비스에 결국은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던 추노였습니다. 한동안 추노의 긴 여운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추노의 주인공들과 함께 뛰고 쫓겼던 시간, 그리고 길게 여운으로 남겨 준 태양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대길의 모습은 오래도록 인상깊은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추노 최종회는 주인공들 각각과 이별하는 회차이니만큼 엔딩장면도 각각의 의미를 담아 보여주었지요. 가장 많이 울렸던 업복이 공형진의 죽음은 추노가 던지는 메시지와 함께 별도로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요.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우선 가장 떠나 보내기 힘들었던 대길이의 죽음부터 정리해야 겠네요. 대길을 뒤를 추격하는 관군들을 향해 송태하가 멋지게 활을 날려 방어해주고 함께 갈대밭을 뛰어가는 모습은 우정을 넘어서 시대를 함께 달리는 모습이었어요. 씨익~ 미소까지 주고 받는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짝귀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용인 조비산이에요.
"언제부터인가 둘이 같이 달리고 있는 것 아나?" 라고 송태하가 물었지요. 도망노비 송태하를 쫓았던 대길이 언년이가 함께 있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두 사람의 목적이 같아져 버린 것이지요. 언년이와 언년이 가슴에 안긴 원손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대길이와 송태하는 언년이를 사이에 두고 같은 운명을 가진 공동운명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대길이와 함께 하는 동안 송태하는 대길이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지요.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 무게보다 언년이라는 여인의 무게가 대길이라는 남자에게는 더 컸다는 것을요. 그런 의미에서 송태하가 대길이에게 "그대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도 다 운명이 아니던가" 라며 속내를 털어 놓는 장면은 송태하의 진중함이 와 닿았어요. 
"대길아, 언니랑 산적질이나 하며 한평생 희롱하다 가자. 세상도 잊고 언년이도 잊고 따라와"라는 짝귀에게 "내 갈길은 내 가야지..." 라며 발길을 돌리는 대길이었지요. 대길이가 발길을 향한 곳은 이제 조선을 떠나면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청나라 먼 곳으로 떠나는 언년이의 뒤였어요.
자석에 이끌린 듯 언년이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나 도련님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때문이었겠지요. 비록 송태하의 부인이 되었지만, 언년이도 10년을 품어 온 도련님에 대한 정리를 한 순간에 끊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처지가 언년이의 사랑 색깔이에요. 너무 슬퍼서 한처럼 가슴시린.... 그런데 드라마에서 언년이의 그런 세심한 감정표현이 부족한 것은 두고 두고 아쉬운 부분이네요.
모퉁이 갈대밭에서 나온 대길이를 보고 언년이 어떤 마음으로 웃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언년이도 마지막 조선을 떠나면서 도련님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요. 송태하는 마치 예상했다는 것처럼 웃는데 대길이 표정은 '에이 쪽팔려' 하는 표정이더라고요. 시선도 피해 버리고요. 아무튼 극 중간중간 웃겨주는 대길이 때문에 일희일비하며 미친 사람처럼 드라마를 보게 하니, 장혁의 귀여운 모습, 애처러운 모습, 남자다운 모습, 짐승처럼 포효하즌 모습, 그리고 길바닥 마초같은 모습때문에 추노를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대길이라는 캐릭터가 좋았노라고 고백을 못할 것 같아서 주책스럽지만 속마음을 써봤습니다. 본론으로 다시 들어가죠.
안성천으로 가는 중간에 송태하가 원손을 데리고 용골대 수하와 얘기를 나눈다며 잠시 자리를 피해 주었지요. 대길에게 언년이에게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라고 일부러 자리를 내주었는데, 대길이는 잘 살아야 된다며 이제는 도련님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너의 도령같은 것 아니라고 언년이에게 차갑게 말을 해버리지요. 나를 잊고 잘 살아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하는 대길이에요.
"난 말이다. 난 말이다" 그리고는 뒷말을 바로 잊지 못하고 울컥해지는 대길이 "네가 정말 그리워서 찾아 해맨게 아니야. 그저 도망노비 찾아 다닌 것 뿐이다"라고 말해 버립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라는 언년이의 말에 헛웃음 짓고는 대길은 배를 구할테니 그리 전하라며 자리를 뜨고 말지요. 이렇게 가슴 아픈 사랑 고백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요. "네가 정말 그리워서 해매고 다녔다" 는 말을 언년이 알아 들었는지 못알아 들었는지, 극중 언년이에게 묻고 싶을 정도에요. 아마 언년이도 알아 들었겠지요.
강나루에서 송태하 일행을 기다리던 대길은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 오지 않자 불길한 마음에 뛰어가지요. 언년이에게 주고 싶었던 꽃신을 남겨둔 채로요. 대길이가 달려간 곳에는 황철웅이 송태하와 언년이를 공격하고 있었고, 언년이도 송태하도 부상을 입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되었지요. 대길의 눈에 불꽃이 일고 대길은 미친듯이 황철웅과 결투를 하지요.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니 놈 부인이랑 니놈 아들 싹다 죽일 참이냐? 니놈은 그저 잘 살면 되는 거야. 살아서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그래야 다시는 우리같은 사람 나오지 않지" 라며 송태하에게 어서 떠나라고 말하는 대길, 눈물이 흘러서 차마 그 장면을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언년아... 꼭 살아라... 니가 살아야 나도 산다. 어여 가거라" 라며 대길이 황철웅을 향해 달려 들고 언년이는 송태하를 부축해 떠나지요. "또다시 도련님을 두고 이렇게 떠납니다.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도련님 죄송합니다". 전하지 못하는 언년의 방백이 이어졌지요. 결국은 엇갈릴 수 밖에 없었던 운명, 살아서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두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었나 봅니다. 
황철웅이 대길에게 묻지요.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요. 대길이 황철웅에게 "저 놈이 목숨 한 번 살려 줬거든, 그리고 이 지랄같은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하자 황철웅은 검을 내리고 맙니다. 송태하에게 가졌던 자존심의 상처는 송태하에게 병자호란때 목숨을 빚지고, 송태하가 세상을 바꾸려 할 때 황철웅은 배신의 칼을 들었던, 그래서 결코 송태하를 이기지 못했던 황철웅의 2인자의 패배의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황철웅이 마지막에 대길이를 막지 않았던 것은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기 때문이었어요. 끝까지 자존심에 자신이 이겼다고 하지만, 황철웅은 처참하게 부숴진 자신의 모습을 그제서야 알게 된 거에요. 그의 부인 이선영의 일그러진 모습은 황철웅 자신의 모습이었어요. 황철웅이 부인 이선영 무릎에 머리를 떨구고 울었던 것은 황철웅이 굴절되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각이었어요. 황철웅은 아마 송태하의 뜻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나레이션을 황철웅의 목소리로 했는데, 그는 살아 남아서 바꾸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송태하가 죽음으로 바꾸려 했다면 황철웅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역사 한 모퉁이 작은 돌멩이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봤습니다.
몰려오는 관군을 향해 뛰는 대길이 방백으로 했던 말은 잊혀지지 않을 대길의 명대사였어요.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 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나의 언년아...나의 사랑아...."
관군을 뚫고 피투성이가 된 대길은 설화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고 말지요. 이렇게 좋은 날, 노래나 불러 달라고 했던 말은 대길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설화의 구슬픈 타령을 들으며 대길이는 사랑하는 사람만 쫓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 다 바쳐 뜨겁게 사랑하다 가버렸네요. 봉분도 없이, 돌무덤에 설화가 지어 준 옷은 대길이 무덤의 비석이 되고, 천지호 언니 무덤도 새로 만들어 주지 못하고, 이천에 사 놓은 땅에서 옆에는 최장군, 길목에는 왕손이랑 오손도손 살기로 했는데, 언년이 데리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700냥 빚만 지고 떠났어요. 왕손이 최장군 집값은 다 지불하고 정작 대길이 자신의 집은 잔금도 못치루고.... 마지막까지 이렇게 멋지게 떠날 줄은 몰랐어요. 평생 언년이만 쫓다 사랑도 이루지 못하고 가버린 대길이,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 이 다음에 다시 환생하거든 꼭 이뤘으면 싶어요. 

감독의 깜짝반전, 송태하의 죽음
그런데 제가 글 제목으로 송태하가 죽었을 거라는 것이 감독이 연출한 깜짝반전일 것이라고 추측했는데요, 아마 드라마에서는 송태하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송태하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송태하가 관군과 황철웅을 상대하면서 꽤 깊숙이 찔리는 장면이 나왔어요. 황철웅이 이겼다며 송태하 뒤를 쫓지 말라고 했던 장면과도 연결이 되는데요, 황철웅처럼 칼을 쓰는 무사는 송태하를 베었을 때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철웅의 마지막 목표는 송태하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황철웅이 마지막에 대길이에게 칼을 들지 않았던 것은 칼로는 이겼지만, 송태하나 대길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의지와 열망에 졌기 때문이었어요. 송태하나 이대길은 가고자 하는 길이 있었지만, 황철웅은 길이 없었지요. 오직 송태하를 쓰러뜨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목표도 없었던 황철웅은 송태하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모든 것이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된 거에요.
송태하의 죽음이 암시된 부분은 언년과의 마지막 대화 부분이었어요. 언년이에게 자신의 뜻을 따라 주겠느냐며 청나라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지요.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을 것 같다고요. 언년이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자 송태하도 "고맙습니다, 부인. 그리 말씀해 주셔서. 금방 회복될 겁니다. 다 나으면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요. 혜원이, 언년이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될 그런..."이라며 다시 일어서서 언년의 부축을 받고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 송태하와 언년이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부상의 고통이 아닌 죽음을 알고 언년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처럼 보였어요. 곽정환 감독이 배우들도 대본에도 없는 깜짝 반전이 있다고 인터뷰를 했다는데, 그것은 연출로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저는 그 깜짝반전이 송태하의 죽음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곽감독의 의중이 제 생각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송태하는 마지막에 이대길과 마음으로 친구가 되었어요. 대길이이게 언년이가 없는 세상은 죽음이라는 것도 마음으로 읽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용골대 수하를 데리고 가서 나눈 이야기도 아마 언년을 두고 간다는 말을 미리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대길에게 굳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달라며 함께 하리라 믿는다고 안성천을 강조한 것도 언년을 두고 떠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언년이 다시는 홀로 두고 가지 말라는 말에도 송태하가 대답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황철웅에게 칼을 맞은 이후 대길이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라면서 어서 가라고 할 때도 송태하가 부상 와중에도 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었는데요, 송태하는 아마 언년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결코 대길을 혼자 두고 도망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대길에게 빚을 지고 미안했던 마음, 그것은 언년이의 남편이 되었다는 것도 있었지만, 언년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더 미안한 일이 되는 것이었죠.  
감독은 마지막 회에서 대길이와 송태하를 언년이를 사이에 둔 공동운명체 친구로 만들어 주었던 것 같아요. 물론 복선적인 연출이었지만요. 대길이나 송태하나 결국 언년이는 꿈이었어요. 저는 감독이 왠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것에 대해 송태하의 의리를 복선으로 보여주려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송태하의 죽음으로 대길에 대한 송태하의 우정과 사랑을 존중해 준 의리같은 트릭을 숨겨 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송태하가 황철웅을 대길이 혼자 상대하게 하고 그 자리를 뜬 이유는 대길이의 목숨이었던 언년을 지켜주고 싶었던 대길에 대한 우정이었고, 자신의 부인 혜원을 지키고자 했던 사랑이었고, 원손 석견을 보호하는 마지막 소현세자에 대한 충절심이었습니다. 송태하 역시 죽어가면서 언년이와 원손을 지켜낸 것이지요. 송태하의 죽음암시, 이게 바로 곽정환 감독이 말한 연기자들도 모르는 깜짝반전이 아니었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6 Comment 81
2010.03.18 12:52




추노 21화에서 유의깊게 봤던 것은 송태하가 길게 소현세자와 청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정리하던 부분과 대길이 최장군에게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작별하는 장면이었어요. 특히 대길이가 최장군을 향해 손까지 흔들며 대길이 답지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섬뜩했는데요, 이에 못지않게 송태하가 남겨 둔 기록을 원손 석견에게 읽어주는 언년의 모습이 송태하의 죽음을 복선으로 깔아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모를 두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는 냄새가 짙게 깔려있다는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송태하와 이대길 두 사람이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둘 중 한 사람은 살리지 않을까 기대도 가지고 있는데, 아마 누구를 죽이고 살릴까 이 부분에서 작가가 머리털 빠지도록 고민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바람은 여러 번 글에서 밝혔듯이 대길이가 조선의 희망으로 살아 남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바람입니다만.
예고편에서 황철웅과 대치하는 모습도 잠깐 나왔지만, 다음 회에서 둘 중 누군가가 허무하게 죽어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제작진을 향해 폭탄테러와도 같은 원성이 쏟아질 테니까요. 그런데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죽을 것이라는 암시는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도 하나씩 복선으로 깔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의 죽음 암시
언년이는 늘 궁금합니다. 자신이 송태하의 무엇을 믿고 기다리고 따라야 하는지를요. 언년이 소현세자를 따라 청에 갔을때 무엇을 배웠고 느꼈는지를 물었지만, 송태하가 대답을 해주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어요. 아마 그 긴 대답을 장문의 글로 남겨두고자 했나 봅니다.
저는 이번회 송태하가 소현세자와의 회고록을 쓰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원손 석견을 위한 송태하의 마지막 유고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송태하는 현재 미래의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한양으로 가서 현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원손 석견에 대한 신분안전을 부탁해서 원손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송태하 자신의 안위는 보장받지 못할 것입니다. 봉림대군이 송태하의 안위까지 책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송태하는 역모죄로 수배중인 인물이고, 도망관노이며 사형장에서 도주했다는 죄목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많은 죄인입니다. 그 중 역모에 가담했다는 것은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뺄 수 없는 죄목에 해당됩니다. 봉림대군이 세자의 자리에 있다고 한들 송태하와 이번회 곽한섬이 만났던 반정무리의 수괴로 밝혀진 이재준 대감과의 관련인물들을 사면해 줄만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관노로 다시 잡아 봉역을 치루게 하고, 그 목숨을 부지시켜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석견을 왕위에 옹립하고자 했던 이재준 세력은 엄밀히 역모세력입니다. 구족을 멸할 수 있는 역적이지요. 이재준에게 병력을 요구하며 찾아왔던 곽한섬에게 "성즉군왕, 패즉역적(이기면 왕이요, 지면 역적)"이라 했듯이 역적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중심에 송태하가 있는 것이고요. 원손을 복위시키겠다는 반정기도가 들통난 마당에 원손의 사면은 불가능 할 것이고, 역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원손은 강화도에 유배되는 벌에 처해지겠지요.
원손은 강화도에 다시 유배시킨다고 해도, 역모와 관련된 송태하를 사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이재준을 비롯한 혁명동지들이 제거된 마당에 거병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송태하에게 남은 것은 잡히면 죽음, 아니면 평생 도망다녀야 함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송태하가 작성한 소현세자 회고록은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서 원손에게 남기는 소현세자의 유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태하가 지금 하고자 하는 마지막 일은 혁명도, 언년이도 아닌 소현세자의 마지막 혈육인 원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에요. 송태하의 소현세자에 대한 마지막 충절이고, 송태하가 지키고자 하는 의리인 것이지요. 목숨처럼 여겼던 사대부의 의리일 수도 있겠고요. 송태하에게 사랑과 의리를 택하라면 잔인한 선택이겠지만, 아마 송태하는 의리를 택할 것입니다. 정치라는 생리를 아는 송태하가 비록 원손의 목숨을 보장받았다고 할지라도 반정을 꾀한 자신이 무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작가가 송태하를 죽이든 살리든 작가의 펜에 달렸겠지만요.

대길의 죽음 암시
다음으로 대길이와 최장군의 작별장면에서 풍겼던 불길함도 대길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도 보여졌어요. 대길이의 환영을 위한 짝귀 산채에서의 떠들썩한 잔치도 대길에게는 가시방석입니다.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언년이때문이지요.
10년을 그토록 찾아헤매다 겨우 만났는데, 이미 남의 부인이 돼 버린 언년을 눈앞에 두고도 만져볼 수도 없는 대길입니다. 마음을 접어 보려하지만, 의지와 다르게 눈이 먼저 언년이를 행해 가버리는 대길이지요. 설화의 질투어린 눈길도, 설화가 따라주는 술도, 은실이가 가져 온 닭다리도 대길의 입에는 고무같이 질기고 쓰기만 합니다. 
안 보면 언년이의 얼굴을 지울 수 있을까 자리를 피해보지만, 하늘에 떠있는 무심한 달 속에도 언년이 얼굴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대길의 마음을 읽은 최장군이 와서 묻지요. 혼자서 뭐하냐고요. 달구경한다며 실없는 대답을 하지만, 대길이의 만갈래로 찢어지는 마음을 최장군은 다 읽지요. 그냥 다 잊고 이천으로 가서 우리끼리 재미나게 살자고 말하지만, 대길이에게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최장군도 모르지 않습니다.  
"예전엔 말이야,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눈 앞에 어른 거리는데 만져보지도 못하고... 세상 참 지랄맞게 사는 것 같아"  
그리고 대길이 갑자기 최장군! 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지요.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면서요. 왕손이 놈이랑 몸조리 잘하라며 "금방 갔다 올게" 라며 뜬금없이 웃으면 인사를 했어요. 귀엽게 손까지 흔들면서 말이지요. 송태하와 동행하기로 한 것이지요. 송태하의 안전이 언년이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 때 대길은 송태하의 동행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길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추노질 몇년에 용모파기가 조선팔도에 쫙 깔린 마당에, 그것도 원손을 빼돌린 역모의 죄를 쓰고 있는 송태하와 동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언년이의 행복을 바라는 대길이기에 위험에 처한 송태하를 보호하는 것 역시 언년을 위한 대길의 사랑이었어요. 바보같지만 그게 대길이거든요. 
 
송태하의 길을 막아서고 대길이 묻지요. "이번에 마실 나가면 니놈이랑 원손, 그리고 니놈 부인 다 잘 살 수 있는 거냐?" 고요. 평생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이냐고요. 쫓기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송태하의 대답에 한양까지 동행하겠다고 하지요. 도움이 필요없다는 말에 황철웅을 앗쌀하게 만져주겠다는말로 둘러대기도 하지만, 왕손이랑 최장군이 살아 있는데 굳이 황철웅을 찾아 복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송태하도 알지요. 진짜 이유가 뭐냐는 말에 "니네 년놈들 꼴보기 싫어서 눈에 안보이는 것에다 치워버릴라고 그런다" 라고 길을 따라 나섰지요. 송태하도 대길이 말에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피식 웃어보이기도 했어요. 이런 게 남자들 세계에서 싹트는 우정이겠지요. 
그럼 제작진은 누구를 죽이려고 하고 있을까요? 둘 다 죽이기에는 너무 허망해서 한 사람이라도 꼭 살려두었으면 싶은데 고민이 많겠지요. 저는 송태하가 소현세자의 유고집을 쓰는 장면을 보고 송태하가 죽게 될 것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언년이와 헤어지면서도 이번이 두번째라며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했었지요.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말이 오히려 불안스럽게 들렸고, 안아주는 송태하 뒤에서 하염없이 언년이 눈물을 흘렸는데 왠지 두 사람의 불행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송태하의 죽음을 암시한 것은 짝귀에게 언년이 원손의 이름을 태원이라고 하는 데서도 감지가 되었어요. 짝귀가 간 다음 송태하가 '다음에 아이가 생기면 태원이라고 이름을 지읍시다"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태원이라는 이름은 송태하가 살아 생전에 불러볼 수 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에게 혹시 태기가 있다면, 훗날 언년이 아이를 낳아 태원이라는 이름을 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조금 드라마틱하게 "태원아, 이눔의 자식, 글 공부 안하고 어딜 싸질러 돌아다니는 게야?" 라며 대길이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연상되더군요. 또 다른 장면으로는 대길이가 태원이라는 사내아이에게 길바닥 무술을 연마시키면서 혼내는 장면도 상상해 봤고 말이지요.  
송태하와의 의리는 언년이에게 태원이라는 아이로 이어지고, 대길이의 양반상놈 구분없는 세상은 비록 작은 세상이지만, 언년과의 해피엔딩으로 또다른 조선의 희망으로 남게 되고, 뭐 이런 결말을 혼자 상상해 봤습니다. 여전히 저는 대길이가 희망으로 살아남길 바라거든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죽어갔던 인물도 있었고, 권력에 이용당해 허무하게 죽어버린 인생도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죽어야 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죽어버린 인물들도 있었겠지요. 곧 죽어도 변절이 아니라며 방법적으로 다른 길을 찾으려 했다는 변명의 역사까지....
맞아요. 곽한섬이 말했듯이 한 번 진 꽃이 다시 피는 일 없고, 조선비가 했던 말처럼 수많은 실개천이 있다한들 다 바다로 흘러들지요. 죽음으로 대의를 지켰던 이도 있었고, 구차한 삶으로도 지키고자 하는 게 있었겠지요. 우리네 삶이 다양하듯이 삶의 이유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지요. 
이름없는 공중의 새도 다 살아있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군요. 대길이가 감옥에서 송태하에게 말했듯이 반드시 살아있어야 할 이유, 그 하나는 남겨주었으면 싶습니다. 조선의 희망으로, 아니 21세기 우리에게 제작진이 무엇을 남길지 모르겠지만, 좌절 속에서도 이름없는 풀포기 작은 희망 하나라도 남겨주었으면 싶습니다. 월악산 산채의 흥겨운 잔치가 닥쳐올 불안을 암시하는 것같아 조마조마한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의 소박한 웃음이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이들의 곤궁한 삶이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2 Comment 31
2010.03.12 07:43




애초부터 길바닥 사극 추노에 혁명이라는 거창한 구호는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 조선의 피폐한 역사 속에 도망노비가 속출하고, 그 노비를 쫓는 인간사냥꾼 추노꾼이라는 재미있는 소재가 드라마 줄기였고, 부수적인 양념으로 소현세자와 그 아들 원손 석견을 끼어넣어 혁명이라는 곁가지를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줄기는 대길이와 언년이의 쫓고 쫓기는 안타까운 사랑이겠지요.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 그 사연 하나만으로도 추노라는 소재는 성공적인 사극멜로드라마지요. 그러나 혁명을 얘기하기에는 의미가 퇴색해 버렸습니다. 혁명보다는 사랑에 그 무게중심이 쏠렸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혁명과 사랑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두었다하여 드라마가 수작이다 혹은 졸작이라고 평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드마라 추노는 사랑에 무게중심이 쏠려도 긴장감과 추노 특유의 코믹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으니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추노에서 그리고자 했던 혁명이라는 부분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에요.

드라마 추노에서 말하고자 하는 혁명은 실패입니다. 원손 석견을 왕위에 세우고자 하는 것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고, 혁명의 중심인물로 세운 송태하를 영웅적인 인물로 그리지 못했다는 점이 두번째 실패 요인입니다. 
우선 원손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혁명이 실패한 첫째 이유라고 했는데요, 원손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것은 정통성이라는 명분싸움에서는 합당한 혁명의 논리가 되겠지만, 드라마 추노에서는 그 외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린아기가 세자가 되고 다음 보위에 내정된 것은 조선 왕조사에서 수없이 있었던 일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는 일입니다. 원손 석견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의 아들이라는 점이겠지요. 소현세자가 청의 볼모로 잡혀가서 8년만에 조선에 돌아와 두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에, 그리고 독살이라 의심되는 부분때문에 석견을 왕위에 옹립한다는 것은 타도의 대상이 그 의문의 중심에 있는 패륜적인 왕 인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선비와 송태하의 혁명론에 대한 탁상공론으로 그친 혁명만이 있었을 뿐 그들이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조선비와 송태하를 대변하는 사대부들의 한계만을 노출시킨 채 방법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그들의 혁명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반정을 위한 거사는 황철웅이라는 희대의 슈퍼맨으로부터 봉쇄당했고, 임영호나 20회 말미에 예고로 보여준 곽한섬이 만난 이재준 대감 역시 임영호의 역할정도 밖에는 그려주지 못할 것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송태하가 스승이라 따르는 임영호는 이름만 드높았을 뿐 어떤 사고를 가진 인물인지 드라마에서 드러내 준 것이 없기에 그를 따르는 유생들과 송태하와 부하들은 임영호 팬클럽 회원쯤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드라마 추노의 혁명관의 실패는 임영호라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기에 오는 혼란일 것입니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이재준 대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그럼 임영호가 준비했다는 시대적인 소임을 누구를 통해서 보여줬어야 했느냐? 바로 송태하였어요. 그런데 송태하는 드라마 20회가 진행되는 동안 구체적으로 세상에 대한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한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원손을 지키고 소현세자의 유지를 받드는 충절심있는 한때의 장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이제는 신분에 대한 각성까지 해야 하니 숙제가 많은 인물이지요.
가장 영웅적으로 그려졌어야 할 송태하가 가장 답답한 캐릭터로 나오고 있으니, 도망노비나 쫓는 추노꾼 이대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요. 언년이에게 약속한 앙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사 하나로도 이대길은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 돼버렸고, 정작 새로운 세상을 세우겠다, 역사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았던 송태하는 원손과 언년이를 데리고 조선팔도를 도망치는 신세만 되고 말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저는 송태하에 대한 기대는 많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을 이루기에는 그의 힘이 너무 미약했고, 그가 세우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드라마에서 계속 미적거리며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끝까지 송태하가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은 완성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린 송태하의 상황때문이겠지요. 부하장수들을 다 잃었고, 조선비는 변절해서 동지들 이름을 팔아버렸고, 송태하 혼자서 칼을 들고 궁궐로 쳐들어 갈 수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지금 잠시 몸을 의탁한 월악산 산채의 녹림거사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일테고요. 저라도 안싸우지요. 이유없이 죽을 자리를 찾아 가겠냐고요. 차라리 숨어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백번 나아보이니까요.
송태하는 드라마에서 가늘고 길게 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혁명을 꿈꿀 때 부터 그는 굵고 짧게 사는 운명을 택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대길이나 천지호, 짝귀같은 인물은 늘 칼부림이 난무한 저잣거리에서 살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가늘고 길게 살자가 인생 모토인 것도 같습니다.
20회에서 호기심 많은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지요. 대길이랑은 왜 같이 다니게 된 거냐? 여기에 얼마나 머무실 요량이냐? 청에서 무엇을 배우셨는냐? 승하하신 저하는 어떤 생각을 하셨느냐? 등등... 언년이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차게 물어봤지만 송태하는 이번회에도 답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멋드러지게 칼을 꺼내 뭔가 결심한 듯 폼만 잡다 말았어요. 이러니 시청자가 한 번 예상해보라는 질문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제작진이 송태하의 갈 길을 송태하의 입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 근 10여회를 뜸을 들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제가 송태하라면, 아니 작가라면 어떤 방향으로 송태하의 앞길을 그릴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저는 송태하의 생각이 그 테두리가 작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처음 원손을 왕위에 세우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큰 테두리의 혁명이 아니라, 그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송태하 나름의 각성이고 혁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 중심에는 원손과 부인 언년이가 있겠지만요.
송태하가 중요한 단서를 흘렸는데요, 대길이에게 혼자 떠날 것이라며 부인과 원손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지요. 대길이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느냐는 말에 "난 한번도 우리 백성을 죽인 일이 없다" 라며 조선 최고의 무사, 애민정신이 투철한 장군의 모습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평생 도망칠 수도 숨어살 수도 없으니 끝을 봐야겠다며 월악산 산채를 나가겠다는 말을 대길이에게도 언년이에게도 했어요. 송태하가 가는 곳은 아마 현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타협점을 찾거나 수원에서 거사를 위해 만나기로 한 다른 동지를 만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송태하의 말이 크게 달라진 곳이 두군데가 있었어요. 하나는 대길이 앞에서 내 부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감옥에서나 그 이전에는 항상 "내 부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그냥 부인이라는 호칭을 썼다는 점이에요. 대길이와 언년이와의 관계를 알게 된 연유이기도 하겠고, 대길이에 대한 감정적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거리감도 느껴지더군요. 자신이 지금 하려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을 때를 대비한 말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내 부인이라는 말로 언년이는 자신의 여인이라고 굳이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대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같기도 하고요. 물론 억지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두번째는 원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송태하가 주장해 왔던 것은 처음에는 원손의 왕위 옹립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원손의 복귀, 그리고 원손의 사면이라는 식으로 송태하의 입장이 계속 바뀌고 있었지요. 동굴에서 언년이에게는 원손을 왕위에 올릴 것이라고 했고, 조선비와의 대립에서는 왕위가 아닌 복권을, 그리고 대길과 함께 교수대에서 처형될 위기에 처한 이후에 용골대와 만나서는 봉림대군에게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겠다는 의중을 폈습니다. 그런데 이번회에서 송태하는 언년에게 "마마님이 숨어사는 왕족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씩씩하고 굳건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다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송태하의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송태하는 더이상 원손을 내세운 혁명이라는 기치를 걸지 않겠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니까요. 이는 송태하가 언년이 노비였음을 알고 난 이후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각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태하는 왕을 새로 세우겠다는 혁명가에서 백성을 지키는 혁명가로 거듭나고, 그 현장에서 죽고자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송태하가 언년이에게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했던 말이 있었어요. 백성의 고충을 깨닫고자 했으나, 반상의 경계가 없고 노비가 없는 세상은 그려보지 않았으며, 노비가 되어서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옳은 생각을 세울 때까지 기다려 주겠느냐고 말이지요. 
송태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은 듯 보입니다. 원손을 왕위에 세운다느니 썩은 정치를 갈아엎겠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이 노비로 떨어져 살아본 그 민초들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월악산에 모여든 막바지 인생들, 그 민초들 역시 자신이 보듬고 가야 할 백성이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의 범주에 넣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송태하가 마지막에 칼을 빼든 장면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 칼을 사람 그림자 없는 월악산 속 요새까지 숨어들어야 했던 바닥인생들을 지켜주기 위해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림대군을 만나기 위해서든지 곽한섬이나 다른 누구를 만나러 산채를 나가든, 황철웅으로 부터 월악산이 공격을 받게 되면, 송태하는 아마 미친 듯이 칼춤을 출 것입니다. 원손도, 언년이도 아닌 자신이 한번도 백성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월악산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송태하의 혁명관이 완성되는 것이 바로 월악산 산채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송태하를 중심으로 한 혁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드마마의 무게 중심도 언년이와 대길이, 그리고 송태하, 설화의 사랑으로 초이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애초에 추노에 혁명이 곁가지로 끼어들어간 셈이니 뭐라고 할 수 는 없겠지만, 왠지 그 사랑이 더 무겁게만 느껴지네요. 남의 여자가 된 언년이를 여전히 놓지 못하는 대길이, 10년을 자신을 찾기 위해 개차반 추노꾼이 되어 팔도를 뒤지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언년이 고민도 커지겠지요. 두 사람의 모든 사연을 알게 된 송태하, 그리고 대길에게 용감무쌍하게 들이대는 설화까지 사랑은 점점 무거워지고, 그 사랑의 무게에 짓눌린 탓인지 혁명의 이야기는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재미없어진 것도 아니고, 월악산 산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울고 웃게 하니, 그렇게 숨어서라도 오손도손 평화롭게 살았으면 싶어요. 힘들겠지만요. 허풍쟁이 월악산 짝귀와 급코믹해진 최장군때문에라도, 추노는 끝까지 놓치고 싶지않은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세상을 뒤집는 것도 혁명이지만 자기로부터의 혁명도 혁명이랄 수 있겠지요. 대길이의 혁명의 시작과 끝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에 있지만, 송태하의 혁명의 시작과 끝은 백성에 있을 것 같습니다. 노비라는 밑바닥 삶을 경험한 그가 가장 밑바닥 민초들을 위해 칼을 든다는 각성이야말로 송태하다운 혁명의 완성이 아닐까요? 혁명에 대한 그림이 큰지 작은지, 성공이냐 좌절이냐 하는 것들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를 위해 칼을 들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작은 혁명에 대한 모습이라도 드라마 추노에서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2 Comment 27
2010.03.02 07:02




시청자들이 궁금해 했던 노비당의 당수 그분(박기웅)이 밝혀졌는데요, 극 중 이름은 없고 아직은 그분이라는 3인칭 대명사로 통하고 있지요. 물소뿔과 관련된 상인을 암살하는 과정에서 위기에 처한 업복이와 끝동이를 구하며 극적으로 등장했는데요, 그분의 드라마에서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지난 글 <업복이에게 암살 지령 내린 그분, 누구?>에서 저는 기생행수 찬을 그분 혹은 그분의 명령을 받는 인물이라고 추측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좌의정에 대해서는 그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제로에 가깝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지금도 그분과 관련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기생행수의 정체에 대한 글을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좌의정이 의심간다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저도 사실 긴가민가 의혹을 품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좌의정은 그분과 관련된 인물의 선상에는 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글 중간에 밝히도록 하겠고요, 혜성처럼 등장한 그분은 조금 싱겁게 등장을 한 점도 있지만, 여전히 그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16회 리뷰글을 올리면서 대길이와 송태하의 결투의 중요성과 노비당 그분에 대해서 글을 올리겠다는 말씀을 드려서, 대길이와 송태하의 대결은 <송태하의 잘려나간 상투의 의미>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렸고요, 이번 글은 약속드린 대로 그분에 대한 글입니다. 다음 17회에서 아마 그분이 대길이와 송태하, 혹은 왕손이와 최장군을 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에 그분에 대한 것을 집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요.

그분과 기생행수 찬과의 관계
저는 여전히 기생행수 찬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어요. 새로 들어온 제니 역시 발언이 당돌해서 정체가 의심되는 부분이 많은데, 일단 그분과 제니를 엮기에는 제니가 등장한 시점이 업복이에게 화살로 밀지, 즉 천냥짜리 어음을 가지고 있던 박병의를 암살하라는 명령 이 후라는 점에서 일단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또한 찬의 기루에 오기 전에 평양기생이었다는 점에서도 개연성이 부족한 면이 있지요. 그런데 기생행수 찬이나 좌의정 이경식에게 대하는 그 당돌한 발언 때문에 제니 역시 궁금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현재 좌의정의 동선을 꿰뚫고 있는 인물은 기생행수 찬과 좌의정 곁에 있는 딸랑이(이분 극중 이름을 모르겠네요)입니다. 그런데 딸랑이는 그간의 언행으로 봐서 노비당을 이끌만한, 혹은 이용할 만한 배포 큰 인물은 아닌 것 같고요, 저는 기생행수 찬이 노비당 그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노비당 그분이 종으로 있던 양반집이 몰락하면서 형제들도 뿔뿔이 팔려갔다고 했는데요, 기생행수가 그분의 누이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과 기생 찬이 관계있다는 것은 그분이 얻은 정보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생 찬은 좌의정이 박병의에게 어음 천냥을 준 일이나 좌의정이 물소뿔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청의 용골대가 푼 자객들이 제주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좌의정이 간파하고 있었던 일이었고요. 사실 이를 기생 찬과 얘기를 나눈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좌의정이 수하와 정치적 논의를 주로 하는 비밀장소가 기생 찬의 기루라는 점에서 기생 찬도 알았을 것이라는 전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추측은 그분이 기생 찬의 기루에서 일을 하는 종일 수도 있겠지요. 날랜 몸을 보아 기생찬과 좌의정의 대화를 엿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기루에서 일하는 노비가 매번 잠복해서 기생 찬의 방을 기웃거릴 수도 없을테니 단순한 종은 아닐 겁니다. 또한 그분은 지금은 한양에 살지 않고 팔도를 돌아다니며 뜻을 같이 할 동지들을 규합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도 했었지요. 전국에 2천여명의 노비당 조직이 있다는 것을 보면, 그분은 전국적으로 활동을 해야하는 자유를 부여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이고요. 따라서 기생 찬의 전폭적인 협력없이는 그분이 그렇게 전국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노비당이 대길이와 송태하, 그리고 왕손이와 최장군을 구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16회가 끝나고 다음회 예고편에서 암시가 되었습니다. 업복이과 끝동이가 총을 겨누는 모습도 비춰졌고, 그분이 지도를 펼치고 작전을 짜는 모습도 있었어요. 그 지도는 포청의 건물배치도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런데 노비당에서 왜 송태하와 대길이를 구하려고 하는냐에 의문을 품어야겠지요. 이는 송태하가 원손과 연관된 인물이고, 송태하를 구출한다는 것은 곧 왕과 정치실세인 좌의정에게 총을 들이미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노비당이 포청관아를 습격했다는 것은 양반들에게는 위협적인 일이지요. 더구나 노비당이 습격해서 구출한 인물이 도망노비 송태하라는 사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닌 것이지요. 송태하는 어떤 의미이든지 현 정치실세들의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소현세자와 관련된 인물이며 아직도 살아있는 소현세자의 아들 석견과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도망노비를 구출했다는 것과는 사안이 다른 문제이지요. 
좌의정을 비롯한 정치실세는 송태하의 배후에 또 다른 세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임영호가 죽었고, 석견을 옹립하려는 유생 대부분이 제거되었는데, 여전히 반정의 기미가 있는 세력이 활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양반실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위협을 보여 주기 위해 노비당의 업복이가 관아를 습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관아의 습격이 실패한다면 송태하와 대길이 교수형에 처할 위기에서 새끼줄을 명중해서 살릴 가능성도 있겠지요. 극적인 장치이기는 합니다만.

송태하와 이대길을 구출하라는 지시는 기생행수 찬이 내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생 찬은 송태하가 붙잡힌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좌의정의 성정상 이대길 역시 그대로 둘 위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을 겁니다. 좌의정이 송태하를 추노하고 있던 것은 기생찬이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대길이에게 일을 지시할 때 기생행수 찬을 대동하고 있었고, 대길이 몸값을 흥정할 때 묘하게 흥미롭다는 표정을 보였지요. 기생찬은 대길이 예사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압구정 정자에서 대길의 배포를 보고 알았을 겁니다. 물론 원손을 왕위에 옹립하자는 뜻을 같이 품을 수는 없더라도 좌의정이 공적이라는 것은 공통적인 이해관계이지요. 
대길이를 찾아 온 천지호가 대길이를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천지호 역시 대길이의 구출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크겠지요. 황철웅과의 대결이 예고편이 나왔는데 무술 실력이 한참 딸리는 천지호가 변을 당하지 않기만을 바라네요. 천지호도 알고 보면 추잡한 개차반이지만 극중 천지호의 비중이 적지 않아 일찍 수명을 단축시키지나 말았으면 싶네요. 황철웅의 마지막 숨통은 천지호가 끊어 주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황철웅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의혹이 많아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아직 황철웅의 심적인 부분이 나오지 않아 섣불리 추측하기가 어려워서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황철웅에게도 그분 못지 않은 큰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비당 업복이가 대길이와 송태하를 구출하면서 세사람의 운명적인 만남과 연합이 이뤄지게 되겠지요. 노비당이 대길이와 송태하 혹은 왕손이와 최장군(이 두사람은 살아있다는 전제하에서 입니다)을 구출하면서 수세에 몰리게 될 것이고 관으로부터 대대적인 추포령이 떨어지면, 마지막으로 이들이 몰려들게 될 곳이 짝귀가 있는 월악산이 아닐까 조심스레 점쳐 봅니다. 노비당의 그분과 짝귀 역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동지일 가능성도 있을 거고요.

그분이 좌의정의 조종을 받는다면 실망이다
많은 분이 노비당의 그분이 좌의정의 조종을 받는 인물일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는데요, 저는 극적인 반전은 크지만, 추노에 흐르는 민초들의 저항이라는 그 역사적 의미는 실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비당을 이끌면서 종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그분은 좌의정의 꼭둑각시 노릇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노비당이 모인자리에서 모두에게 양반다리를 하라며 같은 사람임을 역설했습니다. 큰일하는 처지에 남녀노소 구분도 두지 않은 혁명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입니다. "누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맙시다. 양반만 양반다리 하라는 법 있습니까?" 라는 행동에서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지요. 그보다 경천동지할 발언은 "양반 상놈이 뒤집어져 우리가 그들을 부리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왕이 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라는 발언이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좌의정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면 그런 발언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분의 언행은 극중에서도 연기가 아닌 마치 도를 터득한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좌의정을 조종을 받기에는 그분의 혁명적인 사고관이 득도를 한 이상으로 진지하고 심오했지요.
또한 좌의정이 노비당의 배후라면 박병의를 죽였을 때 5만냥어치의 물소뿔을 천냥에 강탈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거사 자금으로 노비당이 회수하길 원했다면 그 보다 큰 돈을 지원해 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요. 또한 노비당을 좌의정이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이용하고자 했다면, 암암리에 거사자금을 대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노비당을 조직적으로 규합시켜 도성을 향하게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 역시 노비당의 제거 1순위가 될 것인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목적도 없기 때문이죠.
물론 좌의정을 용의선상에 놓을 수 있는 여지 한가지는 있습니다. 바로 노비당을 이용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켜 왕권을 흔들고, 노비당을 일망타진해서 공을 세우는 계책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현실성은 떨어져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노비당이 좌의정에게 조종되는 꼭두각시 당이라고 한다면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드라마 추노는 비록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일지라도 그 좌절 속에서 역사가 진보해 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선 이전에 노비들의 난이 있었지요. 고려시대 망이, 망소이의 천민의 난,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의 난 등이 그것이지요. 만적의 난은 사전에 발각되어 좌절되었지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말은 노비와 피지배계층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은 저항의식의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그분의 신분해방을 위한 계급투쟁 역시 주체적인 신분자각에서 비롯된 저항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좌의정이라는 양반계급에게 이용당한 무지몽매한 민초들이라고 한다면, 좌의정에게 이용당했다는 극적인 반전은 클 지 모르나 길바닥 사극 추노 속의 역사적 의의는 평가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역사는 비록 성공하지 못하고 수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그분과 노비당과 같은 밑바닥에서의 저항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조선을 뒤흔들었던 홍길동이 그러했고, 임꺽정 역시 주체적으로 신분해방을 설파하고 저항했던 인물이지요. 홍길동이나 임꺽정같은 신분해방 의식은 피지배계층의 저변의식으로 확대해 가면서 저항의식의 밑거름이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어요. 이후 숙종때 활약했던 장길산과 같은 인물 역시 어느 날 뚝 떨어져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동학농민전쟁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추노 속의 노비당 그분이 좌의정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이 아닌 주체적인 신분해방론자이기를 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좌절하고 실패한 저항들이었지만 민중들사이에서는 늘 꿈이 있었습니다. 신분제 타파를 들고 봉기한 동학농민전쟁이 우연속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요.
민초들 사이에 끊임없이 희망을 노래했던 파랑새에 대한 꿈이 입에서 입으로 세대를 거쳐 파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나 송태하 업복이 대길이는 우리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장길산, 전봉준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제가 그분이 좌의정의 꼭둑각시가 아니길 바라는 이유입니다. 

관련글: '추노' 송태하의 잘려나간 상투의 의미
           '추노' 업복이에게 암살 지령 내린 그분, 누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22
2010.02.27 06:46




추노 16회에서 조선 최고 무사인 송태하가 대길이에게 패배했다는 것과 저항없이 대길이에게 끌려가 좌의정에게 넘겨졌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대길과 송태하의 대결은 승부에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송태하의 자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송태하는 질 수 밖에 없었고, 또 져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송태하는 지금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뼈속까지 양반인 그가 부인 언년이가 노비였다는 사실에 무너져 내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대업이니 명분이니 원손이니 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대길이와 맞짱을 떴다면 그게 더 이해가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이 노비와 혼인을 했다는 사실은 송태하의 근본적인 것을 흔드는 충격입니다. 노비이면서 노비임을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송태하의 금강석같은 양반의식을 보면 그렇게 충격을 받은 것이 과장은 아닐 것입니다.
굳이 제도적인 법규를 따지자면, 당시 종의 세습은 모계를 따랐어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양반인데 부인이 종이라면 그 슬하의 모든 자식은 종이 됩니다. 아버지가 종이고, 어머니 양민인 경우라면 그 자식도 양민이 됩니다. 그런데 양반 여인이 양민이나 노비와 혼인을 하면, 그 자식이 양반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지요. 양반의 쓸데없는 증가도 문제지만, 양반들이 그들의 고고한 핏줄의식으로서는 인정하기 힘든 부분이었죠. 양반가의 여식과 노비와의 혼인을 결사적으로 금지한 이유도 이런 연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양반집에서 남자종은 노동력의 의미를 가지는 재산이었다면, 여종은 그 노동력의 공급원이었지요. 자기 집 여종이 어떤 사내와 눈맞아 자식을 낳더라도 자기 집안의 종이 되니 재산증식이 되는 것이죠. 초복이 친구 반짝이를 소한마리 값과 거래하는 것만 봐도 여종의 재산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말합니다. 양반이나 양민가의 여자와 종의 혼례를 죽이면서까지 막았던 것도 재산의 손실을 막고자 하는 양반님네들 계산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송태하가 언년이가 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라도 자신과 언년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종인지 양반인지 거기까지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부인의 출신성분은 그 자식까지 되물림되는 것이기에 중요한 문제지요. 서자들이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도 어머니의 피가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요. 
송태하같은 특히 사대부 의식이 투철한 양반들은 종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은 계급의식이 골수처럼 박혀있는 사람이에요. 사대부의 출발이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구별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에요.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던 노비와 혼인을 했으니, 송태하로서는 자신의 근본이 뿌리채 흔들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혁명을 넘어서 자신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하려고 했는데 글이 길었네요.
대길이와 송태하의 대결이 추노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했는데요, 이는 송태하가 비로소 혁명관을 세우게 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송태하에게는 정치적 사회적 혁명관만 있을 뿐입니다. 원손을 옹립해 부패한 조선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런데 조선비 등 유생들과 송태하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송태하는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송태하가 원손을 구할 때는 소현세자에 대한 충절심과 의리, 그리고 어린 원손을 생명의 위험에서 구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의 유일한 혈손이기에 원손 석견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정통성에 입각한 왕위계승론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권력을 잡겠다는 야망은 없었던 순수 무사였어요.
그런데 조선비를 비롯한 유생들을 보며 송태하는 그들 역시 권력욕에 사로잡힌 다른 장치세력과 다름없음을 알고 회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조선비와 송태하가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는 원손을 왕위에 올린다는 것만이 공통점이었다는 것이죠.
송태하는 혁명군의 수장으로 추대되면서 갈등하게 됩니다. 비로소 혁명의 가장 중요한 이유, 즉 누구를 위한 혁명이냐? 어떤 세상을 위한 혁명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봉착하게 된 것이지요. 지금까지 송태하의 혁명관이 뚜렷하게 나오지 않은 이유는 송태하가 아직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혁명의 당위성이라는 시류에 떠밀려 가고 있는 거예요.

대길이 "내가 그런 미천한 집안 종년한테 마음을 줬을 것 같나?"라는 말을 듣고 중심을 잃고, 정신도 멍해져 버린 송태하는 대길의 칼에 상투가 잘려 나갔지요. 대길과의 결투신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바로 송태하의 상투가 잘려나간 장면입니다.
상투란 일종의 자존심이자 조선 사대부 양반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조선 사대부들에게 상투란 중요한 신분적 의미였고, 자존심이었습니다. 흔히 '상투를 잡는다, 상투 꼭대기 놀고 있다, 상투를 올렸다' 등등의 말은 상기해 보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일제시대 단발령이 내려지자 상투를 자르느니 목을 내놓겠다고 자결한 유생들이 많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상투는 사대부 양반들의 혼이었습니다. 그런 사대부 양반의 혼이 잘려 나간 것입니다. 송태하의 한계일 수 밖에 없었던 신분이 잘려져 나간 것이지요. 
대길은 종 언년이와 평생 살 수 있는 양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꿈꿨기에 사회적 신분적으로는 언년이를 통해 오래전에 양반이라는 계급의식을 스스로 잘라냈던 혁명적인 인물입니다. 제가 대길이를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길은 개인적인 자기혁명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대길의 문제는 자기혁명으로부터 정치적 사회적 혁명으로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송태하와의 대화에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는 말이 그것이지요.

하지만 송태하는 정치적 사회적 혁명에는 눈을 떴지만, 송태하 자신의 혁명은 이루지 못했어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출발이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스스로의 입을 통해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혁명은 이루지 못했던 것이지요. 언년이가 종이었다는 사실은 송태하의 근본을 흔들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 사람에 차별을 두었던 견고한 껍질에 균열이 간 것이지요. 양반으로서의 혁명가 송태하는 있었으나 사람으로서의 혁명가 송태하는 되지 못했기에 그 균열의 고통이 클수 밖에 없습니다.
언년이 어떤 큰일이라도 따뜻한 밥 한공기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주체인 사람이 되고 있지 못했다는 자각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분이니 혁명이니 원손이니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송태하 자신이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 속에 있었기에 대길과의 결투에서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상투가 잘린 후 송태하는 노비 낙인을 가린 머리띠를 비로소 풀어 버렸습니다. 의식적 자각은 아니지만 행동으로 자각한 것이에요.
한양으로 가는 길에 대길과 송태하 두 사람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이는 한계와 동시에 두 사람의 뜻이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내 부인이 노비였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양반이고 상놈이고 서로 마음만 주고 받았으면 그걸로 된거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사람의 근본은 지엄한 것이다"
"너 같은 놈이 벼슬을 하니까 세상이 지랄맞은 거다. 너 같은 놈이 없었으면 나 같은 놈도 생기지 않았겠지. 결국 니놈은 니놈 자리로 돌아가 예전처럼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거겠지"
"너야 말로 조선의 질서를 바로 잡는다며 추노를 한다며 무고한 백성을 들볶고 왈패처럼 거들먹거렸겠지"
"당연하지,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그래야 살 수 있는 세상을 너 같은 벼슬아치들이 만들었으니까"
"너는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한 적이 있었나?"
"도술을 부린 홍길동도 못 바꾼 이 지랄 같은 세상을 바꾼다?"
"세상은 도술로 바꾸는 게 아니다. 사람이 바꾸는 거지"
"세상은 절대로 바뀌지가 않는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 함부로 하지마라. 그런 말을 가장 무서워 하는 사람이 있으니..."

두 사람이 한 곳에서 만나는 지점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가장 무서워 하는 사람에 있습니다. 바로 언년이지요. 송태하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세상에 뛰어 들었으나 정작 언년이가 종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허우적거려 버렸지요. 절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대길은 종인 언년이를 사랑하면서 가치관을 버렸으면서도, 사회적의식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언년이를 잃으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부인을 해 버렸습니다. 
언년이가 무서워 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송태하는 신분이라는 견고한 알에서 깨어 나와야 하고, 대길이 역시 그 말을 가장 무서워 하는 언년이에게 새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한 정치적 자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길이와 송태하의 혁명의 출발에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그 중심에는 언년이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비가 했던 말 "혁명에 낭만따위는 필요없어"와 묘하게 대치가 되네요. 대길이의 개인적인 혁명관이나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하는 송태하의 자각의 시작점이 사랑이었음을 보면 말이지요.

추노에 흐르는 혁명의 기본논리는 사람과 사랑에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사극은 궁궐 담장안에서의 혁명이었어요. 그들의 혁명논리는 권력, 정치, 이해타산, 탁상공론식의 명분 싸움, 정통성 등등의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혁명논리는 민초를 대변하는 저잣거리의 삶과는 딴 세상 이야기들이지요.
저잣거리에서는 임금이 자식을 죽였다고, 손자를 죽이려 한다고 죽창을 들고 궁궐을 향하지는 않습니다. 남인이니 서인이니 정치싸움이 꼴보기 싫다고 양반집을 쳐들어 가지도 않습니다. 보리 한됫박을 수탈해 가는 포졸때문에, 어린 딸을 늙은 양반 영감 수청을 들라해서 낫을 들고 호미를 들고 뛰어나갔지요. 이렇게 피부로 실감되는 억압에 정치의식이 성장되었고 저항의식이 싹텄지요. 그리고 그 저항의식들이 조직적으로 규합되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났어요.
추노에서 말하고자 하는 혁명은 개인의 자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의 혁명관이 미완인 것은 자신으로부터의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려나간 상투처럼 송태하는 뿌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송태하의 혁명관을 세우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지요. 그 혼란이 너무 크기에 송태하는 대길에게 질 수 밖에 없었고, 져야만 했습니다. 고통없이 알을 깨고 나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추노가 말하고 싶어하는 혁명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혁명은 개개인의 내부로부터 시작되고, 그 목표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요. 혁명의 주체는 권력이 아니라 알에서 깨어난 사람들이어야 하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