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당 그분'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0.03.25 '추노' 세 커플 키스신에 담겨있는 결말의 비밀 (13)
  2. 2010.03.23 '추노' 상반된 세상, 진정한 우두머리는 누구인가? (16)
  3. 2010.03.19 '추노' 가장 무서운 인물, 업복이의 분노 (31)
  4. 2010.03.18 '추노' 대길과 송태하의 죽음암시, 누가 죽나? (31)
  5. 2010.03.18 '추노' 좌의정 이경식 손아귀에 놀아난 혁명 (16)
2010.03.25 15:05




추노에서 주 애정라인을 끌고 갔던 커플은 대길이와 언년이, 송태하와 언년이, 업복이와 초복이 세 커플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언년이 이다해의 노출신이 화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노의 애정신은 많지가 않았어요. 마지막회 한 회를 남겨 두고 더 이상 키스신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추노에서 지금까지 나왔던 키스신은 딱 세번이었어요.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여종 언년이와의 키스, 송태하와 언년이가 제주도 절벽에서 나눈 절벽키스, 그리고 23회 업복이와 초복이의 기약없는 약속키스 키스 세 번이었지요.
세 커플의 키스신은 각각 그 의미가 다른 키스신이었어요. 그 중 너무 처연해서 슬픔마저도 아름답게 승화되었던 업복이와 초복이의 키스신이 가장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에 대해서는 이전글<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의 의미>에서 언급을 했었는데, 이번 글은 세 커플의 키스신이 담고 있는 의미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추노 종방을 앞두고 드라마를 통해 보여 주었던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추노와도 이제 이별을 해야 하니까요ㅜㅜ.

대길이와 언년이의 신분을 넘어선 키스 - 한계, 과거를 말하다
대길이와 언년이의 키스는 대길이와 언년이의 회상속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장면이었지요. 혼사를 하라는 대길이 부친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둔 처자가 없다는 이야기에 실망한 언년이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있을 때 대길이 다가와 언년이의 발에 꽃신을 신겨주며 "평생 살거다... 너랑" 이라고 말하던 장면이 있었지요. 부엌을 나가는 대길을 쫓아 나가 언년이 대길에게 먼저 입맞춤을 했었지요.
대길이와 언년이는 양반과 노비라는 하늘과 땅 차이 신분에서의 키스였어요. 신분제가 엄격한 조선에서 대길이와 언년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어요. 신분의 벽을 넘어 선 두 사람의 사랑은 어쩌면 가장 절망적이어서 슬플 수 밖에 없는 키스였을 겁니다. 대길이 양반 신분을 버릴 수도 없었고, 언년이 양반이 될 수도 없었던...
아이러니 하게도 대길이는 언년이 오라비 큰놈이로 인해 양반이라는 신분을 버렸고, 언년이는 공명첩을 사들여 가짜 양반이 되었어요. 결국 두 사람은 신분적으로 숙명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어요. 10년간을 언년이만을 품고 살았던 대길이의 사랑이 우리를 가슴 절절하게 아프게 하는 이유는 대길이의 한 여자밖에 몰랐던 일편단심과 과거 두 사람이 이루지 못했던 신분의 한계에 있었을 겁니다.

송태하와 언년이의 절벽키스 - 선택, 현재를 말하다
황철웅으로부터 원손을 구하고, 한섬에게 원손을 맡겨두고 송태하가 달려간 곳은 칼을 두고 왔던 자리였어요. 무사가 칼을 두고 간 것은 다시 오겠다는 뜻입니다 라고 말했던 그 약속을 언년이에게 지켰지요.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언연이와 송태하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 아찔한 절벽위에서 키스를 했었어요. 그 갑작스러운 전개에 쌩뚱맞은 키스신이었다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송태하와 언년이의 키스신은 송태하에게도 언년이에게도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있었던 장면이었어요.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키스는 두 사람에게 아득한 현실에서의 구원의 의미였어요.
혼례를 치른 첫날밤 도망 나온 언년이는 정작 집을 나섰지만 갈 곳이 없었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송태하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도 명분도 분명치 않은 상황이었어요. 다만 소현세장의 하나 남은 혈육 원손을 지키고 훗날을 도모해야 한다는 막연한 희망밖에는 없었습니다. 믿었던 친구 황철웅의 배신과 좌의정이라는 거대한 실세의 힘 앞에 무기력한 송태하는 언년이에게 달려가는 순간 혁명이라는 대의명분을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전쟁 속에서만 살았던 자신이 정작 지켜야 할 아내와 아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은 송태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악몽과도 같았어요.
우연히 동행하게 되었지만 언년이라는 여인을 새롭게 가슴에 품으면서, 송태하는 두 번 다시 아끼는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릅니다. 언년이는 긴 시간 송태하를 괴롭혔던 아내와 아들에 대한 죄책감의 탈출구였을 겁니다. 이 여인만은 지켜주겠다는...
불가능한 꿈과 같은 한 혁명, 새 세상에 대한 열망도 결국은 한사람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현실적인 자각이었던 것이지요. 
혁명의 방향을 잃어 버린 송태하에게 사랑은 현재였고, 언년이의 가출은 노비도 양반도 아닌 사람 김혜원으로 살겠다는 선택이었지만, 친정집에서는 오라버니가 호위무사를 풀어 자신을 뒤쫓고 있었고, 혼례를 올린 최사과가 푼 자객의 추격까지 받아야 했던 쫓기는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만난 송태하와 언년이는 서로가 기댈 수 밖에 없었던 선택이었던 것이지요.
양반이라는 신분에서 노비로, 다시 도망노비로 떨어진 송태하, 그러나 자신이 노비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던 노비양반 송태하와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리고 노비도 양반도 아닌 도망나간 새색시 언년이는 자신의 신분이 무엇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져 버린 채 도망쳐야 했었지요.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었던 공감대는 도망자라는 것이었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동반자로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 - 희망, 미래를 말하다
노비라는 낙인이 짙게 찍힌 업복이와 초복이는 가장 현실적으로 맺어지기 쉬운 커플이었어요. 둘 다 노비에 처녀 총각, 이 보다 찰떡궁합일 수는 없습니다. 신분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완벽한 조합인 이 커플앞에 놓인 장벽은 노비라는 신분의 굴레였어요. 주인에게 종속되어 목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재산가치일 뿐이었고, 값을 후하게 쳐주면 소 한마리에 거래되는 물건일 뿐이었어요. 사람으로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천한 것에 불과한...
이 완벽한 한 쌍의 커플은 주인의 명령이 아니면 그 어떤 선택을 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목숨에 불과했어요. 주인의 마음에 따라 파리 목숨이 되었다가 소한마리값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주인의 마음에 따라 사랑도, 살 집도, 값도 정해질 뿐이었지요.

마음에 담은 초복이가 남의 집 팔려가 시집을 갔다는 말에 업복이는 비로소 왜 낫을 들어야 하고, 총을 들어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노비당 그 분(나쁜놈)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이유없이 양반을 죽이면서도 죄책감과 왜 죽여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던 업복이가 비로소 신분제도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된 것이지요. "양반을 종으로 부리면 지금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 며 양반사냥에 의구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뇌해야 했던 추노 속 휴머니즘의 상징 업복이가 바라던 세상은 세 끼 굶지 않고 살면 되는 세상이었어요. 초복이가 차려주는 밥상 그것이면 족했던 인물이었지요. 그런데 그 소박한 꿈마저 노비라는 이유로 허락되지 않는 사치임을 알았을 때, 업복이는 비로소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업복이가 깨달은 것은 "노비도 사람이다"는 각성이었어요. 
업복이의 각성이 중요한 것은 업복이의 분노가 개인을 넘어 제도적인 각성에 이르렀다는 대목이에요. 초복이를 월악산 영봉 노비들이 숨어산다는 곳으로 보내면서 업복이가 물어보지요. "그냥 아무도 모르는데서 그냥 살까... 나는 호랑이 잡고 너는 농사짓고, 호랑이 팔아서 큰 값 받으면 꽃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가고...그렇게 그냥 살까?"
마음으로는 그렇게 하자고 백번이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싶은 초복이지만 "그럼 세상은 누가 바꿔요?" 라며 업복이를 노비당의 거사에 보냈지요. 업복이와 초복이는 알았어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면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요. 꽃놀이 물놀이가 하루 잠시 꾸었던 현재의 행복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자신들과 같은 업복이와 초복이는 나올 것이라는 것을요.
내일의 또 다른 업복이와 초복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버려야 했던 업복이와 초복이의 눈물의 노비키스는, 다음 또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질 희망에 대한 약속이었어요. 추노에 나왔던 키스신 중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가 가장 아름다웠던 이유는 과거 속에 붙들린 것도, 현재의 불가피한 선택도 아닌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보내야 했던 초복이와 가야만 했던 업복이는 추노가 담고 싶었던 이름없는 역사의 주인공들이었고, 희망이었고,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 대길이 죽는다는 결말이 나왔다는데, 이 세 커플의 키스신에 주인공들의 삶과 죽음의 비밀을 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길의 과거를 상징하는 언년이와의 키스는 송태하의 부인이 돼 버린 언년이를 보고 더 이상 지킬 것이 없어졌기에 삶의 의미도 상실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대길이의 사랑이 죽음에 대한 복선이 돼버린 셈이지요. 또한 현재를 상징하는 송태하와 언년이는 살아가야겠지요. 지켜내야 할 의미이기 때문이에요. 가장 중요한 업복이는 미래이기 때문에 지금 불투명한 상태에요. 초복이와 업복이의 행복한 결말을 바라지만 희망을 남겨두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업복이까지 포함되어 있는지는 최종회에서 확인되겠지요.
<관련글: 업복이와 초복이 노비키스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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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3 13:33




숨가쁘게 달려 달려 한양까지 온 대길과 송태하, 이들이 먼거리를 돌아와 다시 한양으로 온 이유는 봉림대군을 만나 원손의 안위를 부탁하고자 였어요. "역모를 꾀하려고 하느냐" 며 차갑게 돌아섰지만, 봉림대군이 발걸음도 무거울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 가장 위협적인 조카를 살릴 수도 인정상 죽일 수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권력의 논리이고, 왕가의 인정일 것입니다. 훗날을 위해 왕위를 넘볼 수 있는 여지는 그 싹을 제거해 버리는 게 피바람을 막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번 글은 저잣거리와 궁궐의 인정에 대한 추노 속 다른 세상이야기를 말해 볼까 합니다. 봉림대군과 인조, 그리고 짝귀와 용골대의 대화를 들으면서, 궁궐과 저잣거리의 인정이 그 우두머리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왕실의 피, 가장 잔인한 가족
조정 대신들사이에서 원손 석견의 일로 왈가왈부하자 인조는 엄포를 놓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원손의 일을 입에 담지 말라고요. 그리고 인조는 봉림대군의 처소를 찾았지요. 역모가 발각되어 다행이라는 봉림대군이 말에 인조는 자신에 대한 역모가 아닌 세자, 즉 봉림에 대한 역모였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네 자리 네가 지켜라" 라는 뜻이였겠지요. 조정에서 더 이상 원손의 일을 거론하지 말라고 했던 인조는 봉림에게 정통성에 관한 논란은 없을 것이라며 봉림을 후사에 세우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합니다, 앞으로 석견이 어떻게 될 것 이냐는 말에도 그의 휘(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역모라고 일축해 버립니다. 그 아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인정이 과한 것이라며 "사가의 인정은 평온함을 부르지만 왕가의 인정은 피를 부르는 경우가 과반이다" 라고 말하지요.
우리 역사에서 왕실의 피를 불렀던 일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왕자의 난으로 이어진 피바람은 끊임없이 있어왔고, 인조 역시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니, 용상이라는 자리가 단순히 선왕의 유지로 받들어지는 약속의 자리가 아님을 잘 알고 있겠지요.
원손 석견의 안위를 부탁하려는 송태하를 만난 자리에서도 봉림은 그 뜻을 분명히 전합니다. 원손으로 왕위에 올리고자함이 아니라, 원손과 함께 새 세상을 이루겠다는 것 자체가 역모라고 일축해 버렸지요. 원손의 사면은 어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고, 세자로서 석견의 안위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해 줄 수 없다고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봉림대군으로서도 어린 석견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인정상 힘들기에 청으로 가는 것이 어떠하느냐는 제안을 하지만, 이는 어린 석견에 대한 동정심으로서의 제안이지 복권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요. 원손의 복권은 세자 책봉 논란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왕위라는 자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혈통의 자리도 아니고, 생명의 위협과 수틀리면 왕도 바꿔버리는 무서운 신하들의 감시대상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리지만 한순간에 독살을 당할 수도 있고, 폐위될 수도 있는 불안한 자리지요.
자식도 죽여버리고, 손자도 죽이려는 무서운 곳이 궁궐이라는 곳이지요. 대길이의 말이 떠오릅니다. "나랏님네들은 백성을 자식처럼 떠받드네 하면서도 신경 안 써", 혈통도 왕좌를 위해서는 칼을 들이대는데 하물며 백성이라고 별반 차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백성의 힘이 가장 무서운 것인데도, 이 힘이 결집되어 있지 않은 개개인의 것일 경우에는 권력 앞에 한없이 작고 보잘 것 없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광장을 싫어하고 백성들이 모이는 것을 늘 경계하나 봅니다. 뭉치면 왕권보다 강한 힘이 백성의 뜻이니까요.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을 성군은 금과옥조로 폭군은 불온사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모습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탐욕의 세상, 도구일 뿐인 자식
죄의정 이경식은 자신의 곳간을 위해 사위를 살인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추노 속 또 하나의 권력의 실체 우두머리입니다. 그는 탐욕을 위해서 왕마저도 그의 손아귀에 놓고 저울질하는 무서운 인물이지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는 소현세자를 이용하기도 하고, 전쟁을 도발하여 이익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좌의정 이경식은 단순한 권력의 주구 역할이 아닌 조선의 경제권을 장악하려는 실리주의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목적은 용상도 아니고 한 정파를 이루고자 함에 있지도 않습니다. 부가 곧 권력임을 깨우친 현대판 독점재벌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좌의정의 개가 되어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수하 박종수나 황철웅에게 좌의정이 가지는 자기 사람에 대한 애정은 이용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좌우합니다. 

저잣거리,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갚는다
저잣거리 패거리들은 크게 세부류입니다. 천지호 패거리, 대길패거리,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한 월악산 짝귀패거리지요. 대길패거리에서 나이상으로는 최장군이 어른이지만,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대길이라고 봐야 겠지요. 각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대길이, 천지호, 짝귀는 비록 거느리는 무리는 적지만, 그네들 야차의 세상에서는 왕들이라고 편의상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소그룹의 왕들이 자기 수하를 챙기는 모습은 왕가의 피를 넘어선 끈끈함이 넘쳐 납니다. 추노에서 가장 악랄하고 인정사정 없는 개차반으로 묘사되었던 인물을 꼽는다면, 엽전 두냥을 입에 넣고 이승을 하직한 천지호였지요. 제주에서 수하 만득이와 한양으로 올려 보낸 수하들이 죽은 것을 보고는 눈이 뒤집혀 버린 천지호는 황철웅에 대한 복수로 추노질과 삶의 욕구까지 끊어 버립니다. 어찌보면 가장 목숨에 대해 질길 것 같았던 인물이 천지호였어요. 그런 천지호도 수하를 잃고서는 동생들을 죽인 황철웅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대길이를 구하려 들었다가 화살을 맞고 비명에 가버렸습니다.
대길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송태하가 최장군과 왕손이를 죽인 것으로 알았을 때 그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형제같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달걀을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마치 달걀이 목에 걸려 숨을 못쉬고 죽어 버리길 바라는 것같은 심정으로 먹는 장면이 있었어요.
송태하와 결투를 하면서, 그리고 송태하를 붙잡아 좌의정 이경식의 손에 넘겨주면서까지 대길이가 송태하에게 물엇던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를 어떻게 했느냐 였어요. 감옥에 붙잡혀 들어가 황철웅이 "네놈이나 네놈 동패들이나 하나같이 눈빛이 불량하구나" 라고 말했지요. 모든 것을 꾸민 것이 황철웅임을 알았을 때 대길이 이를 갈며 말했지요. "네놈 죽는 날 나 거기 서 있을 거다" 라고요. 그 분노는 황철웅의 손에 들린 달군 인두보다 뜨겁고 강렬했어요.
이번회 짝귀의 대사에서도 천지호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것과 같은 복수심이 끓어 넘칠 것이라는 것을 감지했어요. 산채 주위를 경계하던 수하들이 죽어 나간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아직 황철웅이 죽인 것은 모르지만, 원손을 납치하기 위해 잡입한 용골대를 붙들어 처음 질문한 것이 "밑에 있던 우리 애들 니가 죽였냐?" 였어요. 용골대는 우린 아니라고 대답했고, 짝귀가 그럼 누구냐고 물었는데 황철웅이 수하들을 죽인 것을 알게 될 날도 머지 않았겠지요.

현실과 마음 속 유토피아
천지호나 대길이처럼 짝귀 역시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보호자로서의 우두머리가 지녀야 할 마음을 잃지 않습니다. 거느린 식솔이 많든 적든, 피가 섞였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켜줄 사람들, 내가 거둔 가족이라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에 반해 인조, 봉림대군, 소현세자, 석견은 같은 피가 흐르는 혈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느리는 가족은 의미가 다릅니다. 한쪽에서는 살점을 내줘도 아깝지 않고, 목숨을 내놓고도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반면, 왕가라는 가족은 견제의 대상이고 정치적인 대상이며, 왕좌를 위해서라면 자식이고 손자고 죽여버리는 냉혹한 가족일 뿐입니다. 자신의 훗날을 위협하는 조카에게도 마찬가지지요. 봉림대군이 석견을 두고 떠올렸던 것은 세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종을 폐위하고 유배시킨 비정한 숙부였지요. 봉림으로서는 원손에 대한 사사로운 인정은 있겠지만, 세조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조선 궁궐에서는 먼나라 속담일 뿐이고, 저자에서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통하는 세상이에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같아요. 말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며 표밭을 누비고 다닐 때는 간이며 쓸개까지 다 빼줄 듯하다, 번쩍거리는 뱃지를 달고 난 후에는 난 모르쇠로 돌아서는 모습과 닮아 있어 씁쓸합니다. 
왕가의 피나 좌의정 이경식이라는 인물의 탐욕을 보면서 역사라는 이름 앞에 일개 이름없는 백성의 존재가 얼마나 작고 희미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그에 비하면 대길이 패거리나 짝귀패거리에 둥지를 튼 인생들은 세상의 눈에서는 하찮고 천대받은 인생들이지만, 그 작은 세상안에서는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천지호가 동생들을 죽인 황철웅에 대한 복수심에 눈에 광기를 띠는 것이나, 대길이 최장군과 왕손이를 죽였다고 생각한 황철웅에게 쌍심지를 켜는 모습에서 우두머리의 진정성을 읽게 됩니다. 정작 살펴야 할 백성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용상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조나, 곳간을 채우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는 좌의정의 사람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구의 사람일까요? 선거철 한표 행사로 금뱃지를 달게 해 주는 정치인들, 보다 높은 곳에 있는 분... 대길이나 짝귀 산채의 사람 중 누구의 사람이라고 말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우두머리가 대길이나 짝귀처럼 가족을 대하는 마음으로 지켜주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것이겠지요. 

추노 속에 보여지는 가장 작은 세상이 가장 든든해 보이고, 그 속에 깃들어 살고 싶은 것은 왜일까요? 버림받고 궁핍하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세상인데도 가장 따뜻해 보이니 말입니다. 아마 힘들고 고된 우리 현실을 보며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개개인 한 사람이 귀하게 여겨지고, 희망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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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2:44




추노 22회의 큰 사건은 노비당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궁궐로 들어가는 곡식창고인 선혜청을 습격한 사건이 그것이지요. 선혜청을 습격했다는 것은 그들의 총구가 궁궐을 향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아직까지 노비당이 누구의 조종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추측만 난무하고 있기에, 좌의정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또 다른 반전이 숨어있을 수도 있기에 섣불리 규정하기도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이제 2회분량을 남기고 그동안 터지지 않았던 업복이의 분노를 마지막으로 터뜨렸습니다. 업복이를 추노 속 등장인물들 중 마지막 뇌관으로 남긴 것은 그 혁명관의 위험성때문이었을 겁니다. 양반세상을 뒤업고 노비들이 주인인 세상을 만든다는 노비당의 혁명론은 입 밖에 내는 순간 능지처참형에 처해질 수 있는 체제전복성을 가진 것입니다. 이는 왕을 바꾸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겠다는 반정 혹은, 다른 왕조를 세우는 역성혁명보다 훨씬 무섭고, 위험한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서는 말이지요. 물론 고려시대 만적의 난도 있었고, 천민인 망이 망소이의 난도 있었지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며 노비들의 세상을 꿈꿨던 만적의 난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했지만, 노비들의 난은 말 그대로 세상을 뒤집는 논리이기에 조선 지배계층으로서는 가장 무서운 난일 것입니다. 등골이 서늘하다 못해 오줌을 지릴만한 일이지요. 만약 성공한다면 말이지요. 
업복이로 대변되는 노비당은 신분계급상 가장 낮은 계급입니다. 계급의 취급조차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요. 노비와 소 한마리로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시대였으니, 보리쌀 닷되에 팔려 간 사당패나 다름없었던 사유재산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업복이의 등장은 첫회부터 있었습니다. 국경에서 대길이 패거리가 도망도비 모녀를 잡았을 당시부터 나왔던 인물이 업복이 공형진입니다.
관동포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빚때문에 노비로 팔려가 도망가다 붙잡혀 와서, 얼굴에 노비 낙인이 찍히고, 자신을 붙잡아 온 추노꾼 이대길의 대갈통에 구멍을 날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지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르쳐 준 것은 노비들의 모임이었어요. 업복이는 아마도 노비당 그 분의 포섭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 분이 좌의정이나 권력의 배후라는 가정이 맞다면 말이지요. 업복이의 방포술을 노비들에게 익히게 하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선혜청을 습격하기 전에 업복이는 노비당 그 분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지요. 동지 중 누군가가 잡혔을 때는 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노비당의 선혜청 습격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업복이는 포로로 잡힌 강아지라는 노비동지를 자기 손으로 쏴야 했습니다. 업복이는 지금까지 노비당 그 분의 임무를 받고 양반을 죽이면서도 늘 고민했던 인물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막 죽여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초복이에게 심정을 터 놓기도 했지요. 업복이가 자의적으로 죽인 경우는 반짝이를 밤마다 괴롭힌 양반뿐이었어요.
강아지라는 동지를 자신의 손으로 쏘고 주저앉아 우는 업복이는 처음으로 살인의 슬픔을 느끼는 듯했어요. 그동안 노비당 그분의 지시로 죽였던 양반들은 막연한 죄책감으로 괴로워 했지만, 직접 동지의 가슴에 충구를 겨눠야 했기에 업복이가 느꼈을 인간적인 고뇌는 컸을 겁니다. 큰소리도 내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울음을 밀어넣는 모습은 업복이를 연기하는 공형진의 내공을 압축해서 보여주었던 장면이었어요. 
선혜청을 공격하고 강아지를 쏘고 돌아와 동지를 죽인 죄책감에 업복이가 울고 있던 시각, 초복이는 내일이면 다른 집 씨종에게 팔려간다는 말을 하기 위해 업복이를 기다립니다. 노비당 모임이 끝나고 밤이면 수줍게 밤길을 함께 걷고, 아저씨 등에 업혀 여자로서 두근거림도 느껴봤던 초복이, 얼굴에 노비 낙인이 찍혀 사람구실도, 여자로서 사랑도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햇던 그녀에게 찾아 온 사랑은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어요. 노비들에게는 사랑도 금지되어 있었지요. 주인양반이 좋아하는 남녀 종을 맺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인이 짝을 정해주면 부부연을 맺는게 당시의 노비들 혼인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업복이와 대길이의 사랑은 그 신분이 하늘과 땅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네요. 대길이는 양반이었기에 노비를 마음대로 사랑하지 못했고, 업복이는 종이기에 사랑도 주인의 허락없이는 사랑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금지된 사랑과 허락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초복이가 다른 집 씨종에게 시집갔다는 말을 들은 업복이가 낫을 들고 주인양반을 향하는 것은 업복이의 신분적인 분노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업복이는 그 동안 양반사냥을 하면서도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고 옳은 일인지 의문을 가져왔지요. 그런데 고백 한 번 제대로 못한 초복이가 다른 집에 팔려갔다는 것을 알고, 업복이는 비로소 낫을 들고, 총을 들 명분을 스스로 찾아 버렸습니다. 비로소 양반이라는 가진 자들의 대갈통에 총구를 겨냥해야 할 이유를 찾은 것이에요.
업복이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가장 낮은 계급에서의 각성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대길이 송태하에게 했던 말이 있었어요. "너는 방법이 틀려먹었다. 싸움은 말이지, 도망을 가다가다 갈데가 없을 때 싸우는 거다" 라고 했었지요. 업복이가 지금 그런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떨어질래도 떨어질 수 없는 가장 낮은 신분, 사랑마저도 주인이 마음대로 정해주는 세상, 대길이의 말대로 그 지랄같은 세상을 향해 총을 들어야 한다는 각성을 이룬 것이에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요? 업복이가 고양이를 물기 위해 이빨을 세운 것이지요.
잠깐 옆길로 이야기가 새는데 언문도 깨치지 못한 업복이나 설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대길의 이름자를 알려 달라고 해서 대길이를 위해 지은 옷에 이름을 수놓는 장면이 있었지요. 그리고 언년이 원손 석견에게 송태하가 적어 둔 소현세자 회고록을 읽어 주는 장면에서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가면 "백성들에게 새로운 것을 알리는 책을 많이 편찬 할 것이다" 라는 대목이 있었어요.
업복이와 설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조선의 사대부들이 하층계급에게 글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업복이나 설화같은 하층민의 지적자각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피지배계급의 지적자각과 각성은 지배계급을 위협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기에,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보호막을 쳤을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드라마에서 언급되었던 부분처럼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고 보위에 올랐다면, 더 많은 백성들이 지식에 눈을 뜨고, 조선도 더 일찍 개화에 눈을 떳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치더군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이고, 만약이라는 가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현세자가 역사적으로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추노에 흐르는 주 테마는 결국 사랑이었어요. 대길이는 언년이를 사랑해서 양반 상놈 없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대로 사랑하는 세상을 꿈꿨지요. 업복이는 종이기에 사랑이라는 지극히 감정적인 것마저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봉건사회의 계급모순에 눈을 뜨게 되었고요. 사랑때문에 신분의 각성을 한 것은 대길이와 업복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년이가 종이었음을 알게 된 송태하의 신분적인 한계 역시 같은 선상에서의 눈뜸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요.  
두 사람은 금지된 사랑과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했다는 닮은 점이 있어요. 그 사랑때문에 대길이는 인생이 바뀌었고, 업복이는 분노의 총을 들게 되었지요. 송태하의 한계는 개인적인 극복인지, 사상의 벽까지 깬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아마 깨기 힘든 벽일 것이지만 그렇다고 송태하가 잘못되었다고는 규정지을 수만은 없겠지만요.
칼든 자보다 붓든 자가 무서운 법이라고 최장군이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대길이 "무섭기로 치면 총든 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지" 했던 대사가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업복이의 분노를 마지막에 터뜨린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총든 자 업복이가 추노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업복이의 분노가 물론 성공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총든자, 즉 업복이가 무서운 것은 그 총구가 양반이라는 지배계급을 구체적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업복이의 분노는 대길이와도 송태하와도 다른 의미입니다. 바로 최하층 계급의 신분해방으로 연결되는 분노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초복이를 잃고 낫을 든 업복이가 찾아갈 곳은 언젠가 노비들 모임에서 들었던 도망노비들이 모여사는 곳일 겁니다. 대길이가 은실이 모녀를 안돈하라 보냈던 월악산 짝귀산채가 그 곳이겠지요. 가장 비천한 계급 업복이가 월악산 산채에 합류하게 될 날도 머지 않은 것이지요.
이렇게 월악산 산채는 세상을 바꾸려 했던 자, 사랑을 쫓았던 자, 세상을 등진 자, 세상에 쫓기는 자 등 쫓고 쫓기는 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될 것 같습니다. 버림받은 사람들,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지막 요새 월악산 산채가 처참하게 짓밟힐지, 좌절의 역사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 둥지가 될지 다음주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확인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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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 12:52




추노 21화에서 유의깊게 봤던 것은 송태하가 길게 소현세자와 청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정리하던 부분과 대길이 최장군에게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작별하는 장면이었어요. 특히 대길이가 최장군을 향해 손까지 흔들며 대길이 답지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섬뜩했는데요, 이에 못지않게 송태하가 남겨 둔 기록을 원손 석견에게 읽어주는 언년의 모습이 송태하의 죽음을 복선으로 깔아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모를 두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는 냄새가 짙게 깔려있다는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송태하와 이대길 두 사람이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둘 중 한 사람은 살리지 않을까 기대도 가지고 있는데, 아마 누구를 죽이고 살릴까 이 부분에서 작가가 머리털 빠지도록 고민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바람은 여러 번 글에서 밝혔듯이 대길이가 조선의 희망으로 살아 남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바람입니다만.
예고편에서 황철웅과 대치하는 모습도 잠깐 나왔지만, 다음 회에서 둘 중 누군가가 허무하게 죽어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제작진을 향해 폭탄테러와도 같은 원성이 쏟아질 테니까요. 그런데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죽을 것이라는 암시는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도 하나씩 복선으로 깔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의 죽음 암시
언년이는 늘 궁금합니다. 자신이 송태하의 무엇을 믿고 기다리고 따라야 하는지를요. 언년이 소현세자를 따라 청에 갔을때 무엇을 배웠고 느꼈는지를 물었지만, 송태하가 대답을 해주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어요. 아마 그 긴 대답을 장문의 글로 남겨두고자 했나 봅니다.
저는 이번회 송태하가 소현세자와의 회고록을 쓰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원손 석견을 위한 송태하의 마지막 유고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송태하는 현재 미래의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한양으로 가서 현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원손 석견에 대한 신분안전을 부탁해서 원손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송태하 자신의 안위는 보장받지 못할 것입니다. 봉림대군이 송태하의 안위까지 책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송태하는 역모죄로 수배중인 인물이고, 도망관노이며 사형장에서 도주했다는 죄목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많은 죄인입니다. 그 중 역모에 가담했다는 것은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뺄 수 없는 죄목에 해당됩니다. 봉림대군이 세자의 자리에 있다고 한들 송태하와 이번회 곽한섬이 만났던 반정무리의 수괴로 밝혀진 이재준 대감과의 관련인물들을 사면해 줄만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관노로 다시 잡아 봉역을 치루게 하고, 그 목숨을 부지시켜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석견을 왕위에 옹립하고자 했던 이재준 세력은 엄밀히 역모세력입니다. 구족을 멸할 수 있는 역적이지요. 이재준에게 병력을 요구하며 찾아왔던 곽한섬에게 "성즉군왕, 패즉역적(이기면 왕이요, 지면 역적)"이라 했듯이 역적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중심에 송태하가 있는 것이고요. 원손을 복위시키겠다는 반정기도가 들통난 마당에 원손의 사면은 불가능 할 것이고, 역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원손은 강화도에 유배되는 벌에 처해지겠지요.
원손은 강화도에 다시 유배시킨다고 해도, 역모와 관련된 송태하를 사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이재준을 비롯한 혁명동지들이 제거된 마당에 거병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송태하에게 남은 것은 잡히면 죽음, 아니면 평생 도망다녀야 함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송태하가 작성한 소현세자 회고록은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서 원손에게 남기는 소현세자의 유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태하가 지금 하고자 하는 마지막 일은 혁명도, 언년이도 아닌 소현세자의 마지막 혈육인 원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에요. 송태하의 소현세자에 대한 마지막 충절이고, 송태하가 지키고자 하는 의리인 것이지요. 목숨처럼 여겼던 사대부의 의리일 수도 있겠고요. 송태하에게 사랑과 의리를 택하라면 잔인한 선택이겠지만, 아마 송태하는 의리를 택할 것입니다. 정치라는 생리를 아는 송태하가 비록 원손의 목숨을 보장받았다고 할지라도 반정을 꾀한 자신이 무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작가가 송태하를 죽이든 살리든 작가의 펜에 달렸겠지만요.

대길의 죽음 암시
다음으로 대길이와 최장군의 작별장면에서 풍겼던 불길함도 대길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도 보여졌어요. 대길이의 환영을 위한 짝귀 산채에서의 떠들썩한 잔치도 대길에게는 가시방석입니다.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언년이때문이지요.
10년을 그토록 찾아헤매다 겨우 만났는데, 이미 남의 부인이 돼 버린 언년을 눈앞에 두고도 만져볼 수도 없는 대길입니다. 마음을 접어 보려하지만, 의지와 다르게 눈이 먼저 언년이를 행해 가버리는 대길이지요. 설화의 질투어린 눈길도, 설화가 따라주는 술도, 은실이가 가져 온 닭다리도 대길의 입에는 고무같이 질기고 쓰기만 합니다. 
안 보면 언년이의 얼굴을 지울 수 있을까 자리를 피해보지만, 하늘에 떠있는 무심한 달 속에도 언년이 얼굴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대길의 마음을 읽은 최장군이 와서 묻지요. 혼자서 뭐하냐고요. 달구경한다며 실없는 대답을 하지만, 대길이의 만갈래로 찢어지는 마음을 최장군은 다 읽지요. 그냥 다 잊고 이천으로 가서 우리끼리 재미나게 살자고 말하지만, 대길이에게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최장군도 모르지 않습니다.  
"예전엔 말이야,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눈 앞에 어른 거리는데 만져보지도 못하고... 세상 참 지랄맞게 사는 것 같아"  
그리고 대길이 갑자기 최장군! 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지요.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면서요. 왕손이 놈이랑 몸조리 잘하라며 "금방 갔다 올게" 라며 뜬금없이 웃으면 인사를 했어요. 귀엽게 손까지 흔들면서 말이지요. 송태하와 동행하기로 한 것이지요. 송태하의 안전이 언년이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 때 대길은 송태하의 동행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길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추노질 몇년에 용모파기가 조선팔도에 쫙 깔린 마당에, 그것도 원손을 빼돌린 역모의 죄를 쓰고 있는 송태하와 동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언년이의 행복을 바라는 대길이기에 위험에 처한 송태하를 보호하는 것 역시 언년을 위한 대길의 사랑이었어요. 바보같지만 그게 대길이거든요. 
 
송태하의 길을 막아서고 대길이 묻지요. "이번에 마실 나가면 니놈이랑 원손, 그리고 니놈 부인 다 잘 살 수 있는 거냐?" 고요. 평생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이냐고요. 쫓기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송태하의 대답에 한양까지 동행하겠다고 하지요. 도움이 필요없다는 말에 황철웅을 앗쌀하게 만져주겠다는말로 둘러대기도 하지만, 왕손이랑 최장군이 살아 있는데 굳이 황철웅을 찾아 복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송태하도 알지요. 진짜 이유가 뭐냐는 말에 "니네 년놈들 꼴보기 싫어서 눈에 안보이는 것에다 치워버릴라고 그런다" 라고 길을 따라 나섰지요. 송태하도 대길이 말에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피식 웃어보이기도 했어요. 이런 게 남자들 세계에서 싹트는 우정이겠지요. 
그럼 제작진은 누구를 죽이려고 하고 있을까요? 둘 다 죽이기에는 너무 허망해서 한 사람이라도 꼭 살려두었으면 싶은데 고민이 많겠지요. 저는 송태하가 소현세자의 유고집을 쓰는 장면을 보고 송태하가 죽게 될 것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언년이와 헤어지면서도 이번이 두번째라며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했었지요.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말이 오히려 불안스럽게 들렸고, 안아주는 송태하 뒤에서 하염없이 언년이 눈물을 흘렸는데 왠지 두 사람의 불행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송태하의 죽음을 암시한 것은 짝귀에게 언년이 원손의 이름을 태원이라고 하는 데서도 감지가 되었어요. 짝귀가 간 다음 송태하가 '다음에 아이가 생기면 태원이라고 이름을 지읍시다"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태원이라는 이름은 송태하가 살아 생전에 불러볼 수 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에게 혹시 태기가 있다면, 훗날 언년이 아이를 낳아 태원이라는 이름을 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조금 드라마틱하게 "태원아, 이눔의 자식, 글 공부 안하고 어딜 싸질러 돌아다니는 게야?" 라며 대길이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연상되더군요. 또 다른 장면으로는 대길이가 태원이라는 사내아이에게 길바닥 무술을 연마시키면서 혼내는 장면도 상상해 봤고 말이지요.  
송태하와의 의리는 언년이에게 태원이라는 아이로 이어지고, 대길이의 양반상놈 구분없는 세상은 비록 작은 세상이지만, 언년과의 해피엔딩으로 또다른 조선의 희망으로 남게 되고, 뭐 이런 결말을 혼자 상상해 봤습니다. 여전히 저는 대길이가 희망으로 살아남길 바라거든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죽어갔던 인물도 있었고, 권력에 이용당해 허무하게 죽어버린 인생도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죽어야 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죽어버린 인물들도 있었겠지요. 곧 죽어도 변절이 아니라며 방법적으로 다른 길을 찾으려 했다는 변명의 역사까지....
맞아요. 곽한섬이 말했듯이 한 번 진 꽃이 다시 피는 일 없고, 조선비가 했던 말처럼 수많은 실개천이 있다한들 다 바다로 흘러들지요. 죽음으로 대의를 지켰던 이도 있었고, 구차한 삶으로도 지키고자 하는 게 있었겠지요. 우리네 삶이 다양하듯이 삶의 이유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지요. 
이름없는 공중의 새도 다 살아있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군요. 대길이가 감옥에서 송태하에게 말했듯이 반드시 살아있어야 할 이유, 그 하나는 남겨주었으면 싶습니다. 조선의 희망으로, 아니 21세기 우리에게 제작진이 무엇을 남길지 모르겠지만, 좌절 속에서도 이름없는 풀포기 작은 희망 하나라도 남겨주었으면 싶습니다. 월악산 산채의 흥겨운 잔치가 닥쳐올 불안을 암시하는 것같아 조마조마한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의 소박한 웃음이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이들의 곤궁한 삶이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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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 09:21




추노 21회를 보며 이 드라마가 벌여놓은 것이 너무 많아 정리하기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합니다. 이번 회 보여 준 내용은 언년과 대길, 송태하 그리고 설화의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애절한 사랑과 송태하의 하나남은 부하 곽한섬의 죽음을 큰 축으로 다뤘습니다. 특별한 대사없이 주구장창 열심히 달리는 황철웅도 간간히 존재감을 드러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무엇보다 이번회 주목을 해야 할 인물이 좌의정이었어요. 베일에 싸여있던 좌의정의 음모를 직접적인 설명으로 보여주었지요. 좌의정과 그 수하 박종수의 대화를 통해 좌의정이 꿍꿍이를 드러낸 것이지요. 노비당도 결국 좌의정의 탐욕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는 살인도구일 뿐이라는 것도 여실히 밝혀졌지요. 저는 좌의정이 노비당 그분의 배후 인물이 아니기를 여러 의미에서 바랐지만, 희망과 권력의 갭이 너무 컸네요. 노비당 그분이 자발적인 각성에 의해 움직이는 가장 낮은 자들의 분노였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드러난 좌의정의 속셈은 권력도, 왕권에 대한 도전도 아닌 부의 탐욕이었습니다. 청과의 전쟁을 유도해 그동안 모아 온 물소뿔을 매수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자 함이었지요. 좌의정의 말을 빌어 보겠습니다.
"원손을 보위에 올리려 역모가 일어난 터, 원손은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시지... 이로써 조정은 우리 목소리만 낭자하게 될 것이야. 그 후로는 마지막 한 가지만 남게 되시지. 대대적인 호적정리로 노비들을 모아 북방으로 올려 보내셔야지. 본격적으로 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그때 물소뿔을 푼다"
좌의정의 음모는 인조의 어심을 읽어 청을 징치코자 함도, 원손의 복위를 통한 반정을 저지하려 함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탐욕을 위해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에요. 띠웅~ 그동안 추노에 담겨진 메세지를 찾고자 나름대로 드라마를 연구하다시피 분석해 왔던 저는 헛수고 했나 싶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좌의정을 보며 드라마 추노에 흘렀던 민초들의 항거, 혹은 좌절된 희망에 대한 길바닥 사극의 기획의도 자체가 실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심한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결국 우리 모두는 좌의정 이경식의 손아귀에 놀아난 꼴 밖에는 안됐으니까요.
추노가 시작된 발단부터 집어보기로 하지요. 물론 대길이 언년이를 찾는 것은 언년에 대한 대길의 지독한 사랑, 그 개인적인 의미였으니 일단 제껴두기로 하지요. 언년이가 송태하와 엮이면서 대길이도 원손이라는 정치적인 상황에 휩쓸리기는 했지만요.
우선 혁명을 담당했던 한 축 송태하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게 순서겠군요.
송태하가 마방관노로 떨어지게 된 것은 황철웅의 간계에 의한 것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죽고 없어진 임영호를 제거하기 위한 좌의정의 술책이었지요. 송태하의 목숨을 담보로 임영호의 정계은퇴라는 목적을 좌의정은 성공했고, 고속승진을 거듭한 끝에 현재 좌의정이라는 자리를 꿰찼지요.
좌의정의 다음 단계는 원손의 제거였어요. 어린 원손을 빌미로 반정의 씨앗을 제거한다는 것은 애초에 없었고, 소현세자의 세력을 제거한다는 의미가 큰 것이었지요. 즉 조정에 반청세력들만 남기겠다는 뜻이었어요. 좌의정이 계획하고 있는 일은 청과의 전쟁이었으니 말이지요. 원손을 따르는 세력, 엄밀히 말하자면 소현세자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좌의정은 제주도의 참상을 그린 그림을 유포했지요. 소현세자의 잔당들을 색출하기 위한 좌의정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동굴에 불을 지피고 여우를 잡 듯 말이에요. 어린 석견이 상주가 된 모습을 본 유생과 선비들은 비분강개하여, 원손을 왕위에 올리고 썩은 정치를 혁파하겠다는 혁명의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송태하의 도주가 있었고, 좌의정은 조선 최고의 추노꾼 대길에게 송태하를 추쇄하는 일을 맡겼지요. 한편으로는 사위 황철웅에게도 송태하와 원손을 처리하라는 명을 내렸고요. 유생들의 수장이었던 조선비를 회유해 변절케하고, 남은 세력과 수원의 이재준 대감까지 명단을 입수하고, 이번 회 이재준 대감을 제거하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곽한섬이 비명에 가버렸네요. 곽한섬의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저승에서는 이뤄주는 CG로 궁녀 장필순과 함께 고이 하늘나라로 모셔 주었습니다. 곽한섬과 장필순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충직한 곽한섬에 대한 예우였는지 생뚱맞게 환시를 통해 가는 길 고이 모셔 주어서 감동적이었다고 해야하는지, 판타지스러웠다고 해야 하는지 잘모르겠습니다만. 
좌의정은 전쟁을 통해 조선의 영토를 확장시키겠다 혹은 임금에게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 준 청에 분노함도 아닌, 자신의 배를 채울 꿍꿍이만 했었던 것 뿐이었어요. 악의 축 중심인물의 꿍꿍이가 자신의 곳간에 있었다니, 그리고 우리는 좌의정 곳간때문에 조선팔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나 싶습니다. 추노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임금의 옥좌도 당파싸움도 세자자리도 아닌 좌의정 곳간이었습니다. 좌의정을 보니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전쟁이나 이라크 침공 등 전쟁을 통해 무기판매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나라가 생각나더군요. 
결국은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좌의정의 탐욕에서 비롯된 쫓고 쫓기는 얘기에 희망이니 혁명이니 세 세상이니 하는 꿈을 주인공들과 함께 꾸었나 싶어 허망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재벌들을 위해 개미처럼 일하지만, 고용불안으로 늘 생계의 위험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결국 배부르는 것은 거대 재벌이고, 서민들의 생활은 팍팍하기만 한... 
좌의정의 손아귀에 놀아난 송태하의 혁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작이 좌의정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에요. 좌의정이 짜 준 판에 송태하가 들어가 일단 원손을 구하고 보자며 칼춤부터 췄으니, 송태하가 혁명관을 세우기도 힘들었고, 송태하와 부하들이 준비한 거사 역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변절한 조선비가 오히려 영리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大를 희생하고 小를 건졌는지, 小를 희생하고 大를 건졌는지 그것은 역사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추노의 한 축을 움직였던 송태하의 혁명의 시작이 좌의정 이경식의 탐욕에서 비롯되었고, 그 끝 역시 좌의정에 의해 좌절된다는 것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네요. 노비를 해방시켜 북방으로 올려 보낸다는 좌의정의 계획은 무모한 무리수로 까지 보입니다. 판을 이 정도로 짤 정도의 권력이라면 군권을 장악해서 북진을 추진할 수도 있을텐데, 노비들을 신분해방시켜 북벌의 도구로 쓰겠다는 것은 늙은이 망발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소뿔을 팔기 위해 노비들의 호적정리까지 단행하겠다니 좌의정이 어찌보면 신분해방의 선봉장으로 봐야 하는지, 사리사욕에 눈 먼 저승길 가까운 노인네의 탐욕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추노 속 송태하를 축으로 한 희망은 좌의정의 농간에 놀아나 앞뒤 분간없이 일을 진행하다 이재준 대감과 곽한섬의 죽음과 함께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좌절되었고, 남은 희망은 대길이의 사랑에 걸어볼까 합니다. 양반 상놈 없는 세상을 꿈꿌던 대길은 그나마 좌의정의 탐욕과는 관계없이 희망을 노래했던 파랑새였으니 말입니다. 언년이에 대한 사랑 하나로 새 세상을 꿈꿨던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었으니까요.
파랑새들의 터전 월악산 산채, 그곳이 제가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추노의 희망입니다. 삶의 가장 저변에 있는 밑바닥 인생들의 평화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쥐도 구멍을 내 주고 쫓는다고 하지요. 조선의 인구 절반이 도망노비로 전락해 가는 암울한 시대, 삶의 팍팍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해 도망가야 했던 그들이 숨어들 곳 하나는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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