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3.03.28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 무죄, 그러나 송혜교는 유죄인 이유 (6)
  2. 2013.02.22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김태우, 냉혈함 속에 감춘 쓸쓸한 바람 (32)
  3. 2013.02.15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송혜교, 원숙한 내면연기가 반갑다 (37)
  4. 2012.05.22 '하지원-한지민' 안타까운 캐릭터 붕괴, 연기력으로 승부한 배우들 (60)
2013.03.28 11:31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픕니다. 오수(조인성)와 왕비서(배종옥)가 떠난 자리를 느껴가는 오영(송혜교), 혼자라는 외로움과는 다른 쓸쓸함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21년간 싸워왔던 외로움과는 다른 허허로움입니다.

그때는 미움이라도 있었습니다. 엄마와 오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다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미움도, 기다림마저도 가질 수 없는 오영입니다.

 

'봄날은 간다'를 보며 장면을 설명해 주고, 초콜렛을 입에 넣어주며 입 가장자리를 닦아주던 오수는 없습니다. 시금치국을 끓여주고, 보이지 않는 오영을 위해 컵 하나까지, 음식이 놓인 방향을 매일 설명해주던 왕비서도 없습니다. 오영을 외롭게 하는 빈자리는 오영을 지독하게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떠나고 오영은 두 사람의 자리를 더 크게 느낍니다. 20년 넘게 함께 살아 온 왕비서의 부재는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오수의 빈자리는 그를 사랑하는 오영의 그리움입니다. 왕비서가 없는 불편함은 깨진 유리잔에 발을 다치는 소소한 것만은 아닙니다. 미워했던 만큼 사랑했던 왕비서였음을 오영은 그녀가 떠난 후에야 알아갑니다.

장변호사에게 넌즈시 왕비서의 안부를 물어보는 오영, 왕비서의 목소리가 밝고 좋았다는 말이 왠지 서운하게 들립니다. "다행...이네요", 가늘게 떨리는 오영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서운함, 그리고 왕비서에 대한 그리움(사랑)이었습니다. 오영없이는 하루도 못살거라는 왕비서, 영이 너밖에 없다는 왕비서가 잘 지낸다는 말에 쓸쓸함을 느끼는 오영이었죠. 

 

집을 나온 왕비서(배종옥)가 교차로에서 어디로 향할지 몰라 멍해있는 모습은 앞이 보이지 않는 영이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누구에게 가야할지, 한번도 영이를 떠날 생각을 못했던 왕비서는 패닉에 빠져 허둥대고 있었지요.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왕비서, 빈껍데기가 된 듯한 왕비서가 보여서 마음이 쓰라리더군요.

인생을 다 걸고 사랑했던 영, 그런 영에게 내쳐지고 그녀는 길잃은 아이처럼 세상이 막막해 보입니다. 헛개비처럼 휑한 눈으로 왕비서의 상태를 보여주는 배종옥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지도 않습니다. 바람빠져 버린 풍선처럼, 온몸에서 모든 진액이 다 빠져나가 버린 듯한 넋나간 모습이 왕비서라는 인물의 영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편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식당에서 쓸쓸히 혼자 앉아 음식을 주문하는 왕비서, 그녀 자신보다 영이를 더 사랑했던 왕비서, 그녀의 영에 대한 사랑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엄마였습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아줌마, 눈이 안보여요"했던 날부터 영이는 그녀의 딸이었습니다. 영이의 눈을 망가지게 방치하면서까지 영이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왕비서, 용서하기 힘든 일도 그녀가 "난 엄마니까"라는 말 한마디에 누그러지게 합니다.

엄마라는 단어는 사람을 묘하게 약하게 합니다. 밑도끝도 없이 왕비서를 믿고 싶었던 근저에는 왕비서가 영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는 믿음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을 겁니다. 

 

"나는 눈을 잃고 당신은 당신 인생 전부를 걸고 사랑했던 딸같은 나를 잃고, 계산은 정확해야죠", 곁에만 있게 해달라는 왕비서를 영은 매몰차게 나가라고 하죠. "그럼 떠나야지, 왜? 난 엄마니까... 엄마는... 자식들한테 지는게 엄마니까".

오영의 집을 떠나면서 장변호사에게도 왕비서는 엄마임을 잊지 않습니다. 가끔 영이 소식 알려달라면서도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겠다면 말하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자식 걱정시키는 부모에요".

 

오수 역시 오영을 목숨만큼 사랑하게 되었죠. 사랑따위에 목숨걸지 않았던 오수, 그는 78억대신 오영의 사랑을 가지고 떠납니다. "내가 널 사랑한 건 진심이었다", 자신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아니 진심임을 78억 가방으로 또 고백하고 떠나는 오수였습니다.

"사랑했어. 널 옆에 두고 사랑할 자신은 없지만 니가 날 속인거 무죄야. 넌 살기 위한 방법이었고, 난 행복할 때도 있었으니까". 

오빠라고 속인 오수에게 오영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오영을 사랑해버린 오수, 그 사랑에 형량을 구형할 수는 없습니다. "널 버린 엄마지만 널 한 번이라도 찾아왔던 걸 기억하기 바래. 그리고 이젠 그만 희주씨에 대한 죄책감에서도 벗어나길 바래, 네 자신을 오래 미워했잖아, 스스로도 지칠만큼".

영을 두고 간 엄마와 오빠는 영을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오수를 버린 엄마는 그래도 오수가 어떻게 사는지 찾아라도 봤지만, 영의 엄마는 영이가 아픈데도 찾아오지도 않았죠. 물론 아버지와 왕비서때문에 못 온 이유도 있었겠지만, 마음이 더 다쳐있는 영이 오수를 위로합니다. 오수의 자책감까지도 말이죠.  

 

"사랑했어",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수와 왕비서에게 영이 마지막 한 말입니다. 오수에게 78억을 주고, 왕비서에게는 죄를 묻지않고 내보내는 것이 오영의 용서라고는 보이지 않더군요. 수술을 앞두고 신변정리에 더 가까워보였으니까요. 오수에게 가장 필요한 돈을 주고, 왕비서에게도 그녀가 가진 주식과 횡령한 돈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식으로 두 사람을 내보낸 오영, 그녀가 두 사람을 용서하며 무죄를 내렸지만, 오영은 유죄입니다.

목숨 대신 사랑을 택한 오수, 자신의 인생 대신 영의 손발과 눈이 되어온 왕비서-(오수의 사기의도와 왕비서의 영의 눈에 대한 부분은 두 사람에게 오영의 곁에 머물지 못하게 한 것으로 형벌을 내렸다고 치고)- 오영은 자기 사랑은 방치 내지는 유기를 하려합니다.  

오수와 왕비서를 사랑하면서도 오영은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수가 걸어둔 풍경소리에 벌써부터 오수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보면서도, 왕비서가 잘지낸다는 말에 서운해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오영은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려 하죠. 오수와 왕비서의 사랑에는 무죄를 선고했으면서도 오영은 그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막으려고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오영이야 말로 유죄인 거에요. 이제는 오영이 사랑할 때입니다. 오영이 무죄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왕비서의 사랑을 엄마이고 싶은 그녀의 사랑 자체로 받아들여줘야 하고, 오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닫지말아야 할 오영입니다 

별장에서 잠들어있는 오수의 이마, 코, 입술을 만져보고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기억하려고 했던 오영, 사기꾼 오수로 떠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오영에게 키스를 하고 오영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던 오수처럼 그녀가 이제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외롭고 힘든 오영이었지만,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랑해 준 왕비서, 목숨을 걸고 사랑한 남자가 곁에 있었던 오영, 그런 사랑을 받은 오영이 이제는 사랑을 줘야 할 때가 아닐런지.... 

진정한 용서는 이해가 아니라 사랑이 아닐까요? 사랑을 할 때는 행복합니다. 돈때문에 오빠 행세를 했던 오수였지만, 또 그것때문에 괴로웠지만, 오영을 사랑한 오수는 행복했습니다.  첩질한다며 가족들이 외면했고, 영의 눈을 멀게 방치한 형벌을 매일매일 괴롭게 받으면서도, 영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면서, 뇌종양을 이기고 살아있는 영을 보는 것이 왕비서는 행복했습니다.  

오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영, 오빠가 아니라 돈때문에 온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사랑도 끝내려는 영,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의지해왔지만 그녀를 사랑할 줄은 몰랐던 영, 영은 그래서 행복하지 못합니다.

수술을 하고 살아나고 시력을 되찾는다고 해도 영은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없는 영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일 뿐입니다. 오영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존재이유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영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영이 행복했으면 좋겠군요.

사랑하는 영을 목숨을 걸고, 혹은 인생을 걸고 사랑했던 오수와 왕비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말합니다. 사랑하라고, 사랑은 무죄라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유죄라고...

직 오영 그녀가 유죄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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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13:09




사람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가끔은 그 중요성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돈을 쫓아보기도 하고, 명예와 성공을 쫓는 것도 지켜야 할 사람이 있기에 원동력을 가지는 것이겠지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왕비서와 조무철을 보면 전혀 다르지만 왠지 비슷한 색깔의 삶의 이유가 보입니다. 두 사람은 삶의 이유를 매일 문신처럼 각인시키고 살아가는 사람들 같습니다. 눈 먼 영이를 위해, 죽은 희주를 위해...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위해서 라는 것이 대조적입니다. 왕비서는 영이가 없으면 마른 나뭇잎처럼 바스라져 버릴 자신을 위해 영이를 지키고 있고, 조무철은 죽은 희주에 대한 미련으로 남아버린 첫사랑, 그 미련한 그리움을 지키고 있는 인물같아 보여서 말이죠. 그래서 이 두 캐릭터를 미워하기가 힘들군요. 밉기보다는 아픕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하는 입체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왕비서(배종옥)과 청부폭력배 조무철(김태우)입니다. 왠지 이 두 캐릭터에게서는 진한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어린 영을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고 시력을 상실하도록 방치한 왕비서의 복잡한 심리만큼이나 오수(조인성)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조무철에게서는 본성까지 미워할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느껴지죠.

죽은 희주에 대한 순정, 노희경 작가는 전작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나이든 중년들의 순정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김민철(김갑수)의 윤영(배종옥)에 대한 소년같은 순정, 나이들어 우정처럼 편해진 감정이 되면서도 순정이라는 설렘을 맛깔스럽게 두 중년배우를 통해 잘 녹여냈었죠.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는 주먹을 무기삼아 밑바닥 인생을 사는 조무철의 쓸쓸하도록 냉소적인 눈빛, 그 너머에 일렁이는 서글픈 빛깔의 그리움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김태우의 눈빛연기가 참 좋더군요. 조무철이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궁금하게 만든 것은 김태우의 섬뜩하리 차가운 눈빛이 늘 먼지점 어느 한 곳에 머무는 듯한 쓸쓸함때문일 겁니다. 그곳이 죽은 희주였음이 5회에 드러나기도 했죠. 악연이라면 악연이고, 두 사람의 상처를 서로 치유해야 할 운명이라면 운명과도 같은 무철과 오수의 과거의 인연의 공통분모가 희주였습니다.

어쩌면 오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상처를 서로 치유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 그 막을 수 없는 감정을 누구보다 조무철이 잘 알고 있을 듯 해서 말이죠. 오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오수를 용서할 듯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랑을 아는 인물이 조무철이기 때문일 듯 해서 말이죠. 아마 그 때문인 듯 합니다. 조무철에게 보이는 죽은 희주에 대한 아프도록 슬픈 순정. 

희주를 죽게 한 짙은 혐오감은 오수를 사지에 밀어넣기도 하지만, 그게 오수에 대한 증오때문만은 아닌듯 합니다. 결국 희주를 오수에게 보낸 것은 자신이었고, 희수를 지키지 못했던 그 역시 희주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자리합니다.

오수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해도 살아돌아올 희주가 아님을 알기에 오수에 대한 증오는 더 진해져만 갑니다. 오수의 아이를 가졌다고, 진짜 오수가 자기 것이 됐다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희주, 그의 마음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행복한 미소를 짓던 희주, 무철에게 희주의 임신은 더이상 희주를 바라볼 수 없는 절망같은 좌절감이었지만, 희주에게는 찬란하게 쏟아지던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습니다.

그 미소를 지켜주는 것이, 희주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희주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무철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아이를 거부하고 돌아서는 오수의 뒤를 쫓다 차에 치어 숨진 희주의 마지막 모습은 무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희주는 삶의 의미,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했던 때였으니 말이죠.

 

희주의 기일을 잊어버린 오수, 솜사탕을 만져보고 혀끝을 가져다 대보고 행복해 하는 오영을 데리고 바닷가로 향했지요. 정체가 탄로나기 전에 오영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서둘렀던 것이었지만, 오영에게 자꾸 뭔가를 해주고 싶어지는 오수입니다. 그녀가 웃게 되니까요. 

오영의 오빠와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다른 사람들의 추억과는 다른 기억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너무나 짧아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몇 안되는 기억들이었기 때문이었죠. 그 후 오영은 암흑과 같은 시간 속에 던져져야 했고, 사람들로부터 상처입고 걷어내고 싶은 기억들만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엄마와 물놀이를 갔던 강가에 데려달라는 오영, 죽은 오수의 유골을 뿌린 곳이라는 것을 오수는 알아챘지요. 그들 남매에게 특별한 추억이 깃든 강가는 어쩌면 그들 가족이 마지막으로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던 장소였을 겁니다. 

오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희주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했고, 오영의 친오빠 오수의 죽음을 봤기에 말이죠. 강물로 저벅저벅 들어가는 오영을 끌어내 자기도 모르게 뺨을 때렸던 것은, 눈 앞에서 또다시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희주처럼, 죽은 오수처럼...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곳, 그 순간이었길 바랬다는 오영의 말이 오수를 아프게 합니다. 행복했다는 오영의 말이 오수의 가슴을 아프게, 아니 불안스럽게 쑤셔댑니다. "오빠 니가 와서 좋다"며 품속을 파고드는 오영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돈때문에 오영의 친오빠 행세를 하는 그의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리고 오영 그여자에게서 동생이 아닌 여자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아무렇지 않게 오빠의 품이라고 파고드는 그녀의 손길이 불편한 오수입니다. 그냥 돈많은 눈먼 여자, 죽은 오수의 여동생이 아닌, 특별한 여자가 될 것만 같습니다.

"이제 내가 널 왜 찾아왔는지, 내가 찾아온 이유가 돈이 아니라 오직 너때문이라는 걸 믿는 거야?", 대답없는 영, 차라리 대답을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오수도 혼란스럽습니다. 돈때문에 오영의 오빠 행세를 하는 것이 후회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여자인줄 알았더라면, 무철의 손에 78억짜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을 택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래도 오영 이 여자가 웃는 것이 좋습니다. 이 여자가 행복하다고 하니 오수도 잠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두달동안만... 오영이 옆에 있으라면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해 준 오수, 그도 왜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냥 오영 그여자 곁에 있어주고 싶습니다.

오수는 오영을 통해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다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도, 일출이 이렇게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것도, 한 여자의 미소가 그를 웃게 한다는 것도...

보이지 않는 오영보다 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상하죠? 오영 그 여자를 통해 눈을 뜨고 있는 것은 오수 자신인 것만 같으니 말입니다. 희주와 함께 했던 짧았던 행복 이후 처음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잠시만 행복하고 싶은 오수입니다. 오영 그여자가 행복해 하는 시간만은, 돈도 무철도 오수가 누구인지도 잠시 잊어보고 싶습니다.

 

오수의 행복, 오영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필이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 그 날이 희주의 기일이었는데, 잊어버린 오수입니다. 어떻게 희주의 기일을 잊을 수가 있었는지 죽이고 싶도록 자신이 미운 오수지요. 희주의 유골을 묻은 희주나무, 행복같은 건 그의 인생에 없는 단어였음을 희주나무에 와서 또 깨닫는 오수입니다.

무철이 건넨 죽음의 약, 오영 그 솜사탕처럼 여린 여자를, 새하얀 눈처럼 예쁜 여자를 죽이든지, 오수가 먹고 죽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합니다. 아이를 가진 희주에게 화를 내고 돌아서버린 그를, 그래서 희주를 죽게 한 오수를 무철은 이렇게 말하죠. "넌 영이에게 준다에 한 표 던진다. 넌 구더기가 나는 썩은 쓰레기니까...".

그때는 너무 어렸다고, 아이를 가진 희주를 밀어냈을 만큼 두려웠다고 변명을 해도 무철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모든 것을 버리고 오수 하나만 택한 희주를 죽게 했고, 자신의 아이도 버린 모진 놈이었다는 말에 주저앉는 오수입니다. 오수를 버린 부모보다 모진 놈이라는 말이 오수에게 비수가 되어 꽃힙니다. 증오하고 미워하고 원망했던 그의 어머니의 판박이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죠.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외면할 정도로 오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오수를 택했던 희주, 부모까지 등지고 오수를 찾아왔던 희주의 사랑을 알고 있던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무철이었습니다. 정작 눈이 멀었던 것은 오수였던 거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오영은 사물을 볼 수 없지만 마음을 보는 눈을 가졌지만, 오수는 마음을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도, 자신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눈이 멀어서 말이죠. 버려졌다는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은 오영보다 오수 자신이 더 심했다는 것을 깨닫는 오수입니다.

죽은 오수 행세를 하며 78억을 뜯어낼 목적으로 들어온 오영의 집은 오수와 오영의 목숨이 걸린 도박판이 돼버렸습니다. 그런 오수에게 오영이 약을 달라고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말이죠. "죽고 싶을 때 먹으면 괴로움도, 고통도, 절망도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마음이 아주 편해진대".

약을 먹고 오영이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날까? 품속을 파고드는 오영의 손길에서 여자를 느꼈던, 심장이 쿵쾅거리던 그 여자는 더이상 기억할 행복이 없어서, 더이상 만들 행복이 없어서 죽고 싶어 합니다.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죽고 싶은 사람은 오수인데, 눈꽃처럼 시리게 예쁜 이 여자가 죽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치게 슬픈 오수입니다.

촉촉히 젖어드는 오수의 눈을 그녀가 볼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세상에 대한 역겨움만 담고 있는 자신의 눈물을 그 여자가 볼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떨리고 있는 그의 마음을 그녀가 아직은 읽을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오빠가 아닌 남자이고 싶은 그의 마음을 그녀가 오래도록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오빠를 만나 행복해 하는 시간을 조금더 오래 만들어 주고 싶은 오수입니다.

그러나... 그 바람마저도 오래가지 못하나 봅니다. 오수의 정체가 들통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고, 오영을 동생이 아닌 여자로 느껴는 마음을 감추지 못할 듯 하니 말입니다.

 

바람...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가슴 시리게 아픈, 그런데도 자꾸 그 바람이 궁금하고 맞고 싶습니다...

왕비서와 무철의 주위를 맴도는 쓸쓸한 바람마저도 그 온도가 궁금해지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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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5 10:13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라고 하는데 보지 않아서 내용은 잘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행세를 하며 사기행각을 했던 대표적인 작품을 떠올리면 알랭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입니다.

죽은 필립의 사체가 요트에서 끌어올려지고, 아무것도 모른채 필립행세를 해 온 톰(알랭드롱)이 부두로 들어오는 엔딩장면이 압권인 작품이죠.

그겨울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조인성의 우수에 찬 듯,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무심하기도 하고 비열하기도 한 표정을 보니, 젊은 시절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드롱이 잠시 스치더군요. 올백 헤어스타일로 반항기와 우수의 눈빛을 동시에 쏘아내는 표정은 제임스 딘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조인성의 연기가 그만큼 강렬하고 좋았습니다ㅎ.

송혜교는 또 어떻고요, 차갑고 냉소적인 표정에도, 여전히 소녀같은 외모에 가끔 짓는 미소는 천사의 모습같기도 했습니다. 그냥 송혜교의 미소를 보면 세상이 한없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오영, 그녀의 미소는 마음이 내는 소리처럼 보였거든요. 송혜교의 연기에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세상과 차단했지만 누구보다 밝고 따뜻하고 투명하리만큼 때묻지 않은 순수,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볼 수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라 덮어놓고 선택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생각보다 훨씬 잘 나온 듯합니다. 노희경 작가의 세상과 화해하는 따뜻한 시선을 좋아하기에 작가에 대한 믿음도 한몫했지만, 감각적인 영상미와 절제된 원숙미로 돌아온 조인성과 송혜교의 복귀는 삼박자의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김태우의 무정한 듯 비열한 연기도 극중 무게감을 더했고, 배종옥과 김규철의 절제된 연기는 고급스런 고명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대본, 연출, 배우의 삼박자 하모니 외에도 이 작품을 명품으로 만드는 또 하나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바람의 의미일 겁니다. 냉기서리고 혹독하기만 한 차가운 겨울, 그 속에 부는 바람이 삭풍이 아니라 미풍일 될 듯한 따뜻함입니다.

드라마의 주제는 일찌감치 던져주었습니다. 조인성(오수)의 나레이션이었죠.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구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시간이 가면 기억도 못할 값어치 없는 사랑에 하나뿐인 제 목숨을 걸기도 하고, 또 누구는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하찮은 순간의 욕망에 허무하게 제 인생을 걸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두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럼 나도 덩달아 이 더러운 시궁창같은 삶에서 의미를 한 번 찾아봐? 그러면 내 인생이 뭐가 바뀌나... 세상에 태어나 믿을 거라고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온 내게도 찬란히 눈부신 햇살이라도 비추나?".

삶의 의미, 작가는 이 무거운 주제를 사랑과 결부시키면서도 통속적이지 않습니다. 작가의 통속의 거부는 송혜교와 조인성의 절제된 연기에 흐르는 원숙한 내면연기를 통해 드러나고 있더군요. 그래서 두 배우의 원숙한 연기가 반갑습니다.

송혜교의 초점없는 퀭한 눈동자, 단지 시각장애인이라는 연기를 넘어선 고독과 절망의 싸늘함이 느껴지는 눈빛은 시각장애인의 육체적 장애만을 그리고 있지 않더군요. 오영이라는 인물의 트라우마, 엄마 오빠에게 버려지고 홀로 남겨졌다는, 그래서 세상 누구도 어느 것도 믿지 못하는 강한 불신과 경계를 담아내고 있더군요.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희뿌옇게 보이는 빛의 감지는 그녀에게 남아있는 세상과의 화해 가능성의 복선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완전이 닫혀있지 않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읽혀져서 말이죠. 그녀의 시력상실이 뇌종양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종양을 믿지 않는다는 오영의 말을 빌어보면, 강한 정신적 충격때문에 실어증이 오기도 하듯이, 어렸을때의 정신적 충격으로 시력이 상실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봤습니다(이건 의학적으로 검색해보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강보에 싸여 추운 겨울 나무밑에 버려진 오수와 엄마와 오빠(죽은 오수)가 떠나고 암흑의 세상에 던져진 오영은 각기 다른 상처로 세상에 냉소적인 인물들입니다. 쾌락과 환락, 이왕 태어난 목숨이니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나 보자는 오수는 첫사랑 희주의 불의의 사고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인물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소라(서효림)의 농간으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78억이라는 상상같은 액수를 갚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청부폭력배 조무철(김태우)에게 린치를 당하고 칼에 찔리는 등, 100일이라는 시한부 생명의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죠.

 

무철(김태우)의 칼에 찔려 협박당하는 순간, 그는 죽음의 공포를 절감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그는, 맹목적인 삶이라고 할지라도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같은 이름을 가졌던 죽은 오수가 PL그룹의 진짜 아들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절망 같은 삶에서 한가닥 희망을 찾아 나서죠. 78억이라는 거대한 판돈, 아니 그 이상을 얻을 수도 있을 게임이 시작된 겁니다. 겜블러였던 오수에게 78억은 게임과 같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한 판 승부수....

그리고 그 게임이 잘못되었음을 알아가게 돼죠. 게임의 말이라 여겼던 앞못보는 시각장애인 오수의 동생 오영, 그녀는 똑똑했고, 치밀했고,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과 같은 절망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죠. 오수가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면 그녀는 죽기 위해 사는 궁궐 속의 인형, 갇혀있는 새와도 같았습니다.

 

78억을 뜯어내기 위해 오영의 집에 들어왔지만, 오수는 그 집의 많은 비밀들과 마주합니다. 왜 왕비서(배종옥)은 죽은 오수의 편지를 오영에게 전해주지 않았을까? 왕비서의 맹목적인 오영에 대한 보호의식은 모성과도 같은 사랑일까, 아니면 또다른 감춰진 욕망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의 삶 역시도 무의미한 절망속에 던져지고 그 끝에서 찾은 희망은 아니었을까?(개인적으로 저는 왕비서 배종옥의 캐릭터에도 급호기심 발동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게임을 방해하는 예상밖의 복병을 만납니다. 오영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과 말이죠. 그리고 오영을 볼 때마다 자신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살아야 할 의미없이 박제된 삶의 한가닥 탈출구 죽음을 갈구하는 오영과 죽지못해 살고자 하는 오수는 너무도 닮아있었던 겁니다.

삶과 죽음은 정반대 단어지만 그들에게는 같은 의미였습니다. 오수에게는 매일을 사는 것이 죽음과도 같았고, 오영에게는 죽음이 그녀를 자유의 세상에서 살게 하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장애가 되지 않는 역설적인 의미의 삶이었던 것이었죠.

자신을 죽여주면 아무 조건이나 조사없이 유산을 주겠다는 유언장을 쓰겠다는 제안을 하는 오영, '왜 이 여자는 죽고 싶어 환장하는 것일까? 나는 죽기가 싫어서 이렇게 죽은 오수 행세를 하며 사기까지 치고 있는데... 궁금하다...너의 닫힌 마음의 문이 무엇때문이었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다 죽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데 오영이라는 여자는 시각장애때문에 죽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진 오수입니다.

 

오영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인간들이 '돈'때문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오수는 죽음과도 같은 참담한 그녀의 고독을 보게 돼죠. 밤마다 엄마의 온실 비밀방에서 어릴 적 비디오를 틀어놓고 엄마와 오빠, 그리고 행복했던 그녀의 6살을 생각하며 웃음짓는 그녀는 시들어버린 화초들만 가득한 온실에서만 행복한 아이였습니다. 온실밖을 나서는 순간 그녀는 고독과 절망이라는 세상에 버려진 6살 꼬마였습니다.

연민... 그녀에 대한 연민은 1년전에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친오빠가 차에 치여 죽어가는 것도 보지 못한채 울며 택시를 부르던 그녀... (**이 장면이 어찌나 울컥하고 목이 매이던지 엄청 울었답니다 ㅠㅠ)

오수의 눈에 도로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오영의 친오빠 오수와 시각장애인 오영, 두 남매의 엇갈림은 오래도록 그에게 짐처럼 남아있었습니다. 자기때문에 죽은 오수, 자기때문에 죽은 첫사랑 희주, 희주의 죽음으로 자신을 증오하는 폭력배 무철의 섬뜩한 눈빛, 오수야말로 죽고 싶을만큼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지 못하는 것은, 아니 살고 싶은 것은 그 절망이라는 놈과 한판 붙고 싶은 겜블러의 근성인지, 치기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갓난아이를 나무밑에 버리고 딱 한 번 나타나 5만8천원을 건네주고 도망쳐버린 생모에게, 당신없이도 이렇게 보란듯이 잘산다고 보여주고 싶은 애증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어버린다면 허무하게 끝나버린 게임처럼, 버려진 그의 인생이 너무도 가여울 것같아 악착같이 살고 싶은 오수입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답게 살라고? 엿먹으라지... 그냥 살아지니까 사는 거야!

 

장변호사(김규철)라는 사람이 찾아와 오수냐고 물었을때, 그는 자신이 오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오수가 죽은 진짜 PL그룹의 오수임을 알고서도 오수는 진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순간 눈에 고이는 눈물은 조인성의 소름돋는 내면연기였습니다. 그 눈물에는 죽은 오수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떳떳하지 못한 부끄러움, 그리고 '택시!'를 부르며 지팡이를 들고 떨고 서있던 여자에 대한 부채의식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진실을 밝히지 못한 죄책감과 재벌 아들이 되어 78억을 뜯어내고 무철의 공포에서 벗아나고 싶었던 순간의 욕심, 자신을 죽은 오수로 둔갑시켜버린 뒷일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말이죠.

죽은 오수가 그랬지요. 자신의 이름 한자를 이름에는 잘 쓰지 않는 지킬 수(守)를 쓴 것은 동생 영이와 세상을 지키라는 의미로 어머니가 지어준 것이라고요. 동생 영이를 지키라는 유언과도 같은, 숙명과도 같은 '오빠'역할을 못하게 한 것이 바로 오수때문이었습니다. 그날 형사들을 피해 도망치는 자신을 따라 달리던 죽은 오수가 차에 치었던 것은 오수 자신때문이었죠.

진성(김범)에게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며 멍하게 서있던 오수의 불안하게 떨리는 눈, 그리고 넋나간 듯한 얼굴에 차오르는 눈물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오수의 복잡한 심경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었던 눈빛이었습니다.

돈때문에 PL그룹 오영의 성과도 같은 집에 들어왔지만, 그 이유를 깜빡깜빡 잊어버리게 되는 오수입니다. 오영, 그 여자의 초점없는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놀라는 오수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녀가 자신의 속을 보고 있는 듯한 날카로운 느낌, 그리고 죽고싶다는 그녀의 절망이 먼저 보이곤 합니다. 오수의 78억짜리 게임판이 혼란으로 빙빙 돌기 시작합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삶일지라도 의미를 찾고 싶어 몸부림치는 오수, 남부러울 것 없이 다 가졌지만 나날이 깊어가는 절망으로 죽고 싶어하는 오영, 두 사람의 대조적인 삶은 우리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 삶의 의미에 대해서 말이죠. 삶의 가치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일까?

오수와 오영은 상처입은 새들입니다. 한 사람은 거친 세상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를 흘리고 아파하고, 한 사람은 새장 속에서 탈출하려 제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새장을 온몸으로 부딫히기를 반복하죠. 이 가여운 새들은 서로의 날개로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을까요? 그 겨울, 그들의 꽁꽁 언 마음에 부는 바람은 어떤 바람일까요? 삭풍이어도 미풍이어도 바람이 의미있는 이유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겠죠. 삭풍이라면 서로가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미풍이라면 웅크린 날개를 펴고 따사로운 햇살아래 그 바람을 온몸으로 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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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08:41




막바지에 다다른 더킹투하츠와 옥탑방왕세자, 드라마를 보면서 '엇 이게 아닌데 뭐가 잘못됐지?'라고 의구심을 품은 캐릭터가, 김항아(하지원)와 박하(한지민)입니다. 드라마 중반 전후로 급격한 캐릭터의 변화가 느껴졌는데, 열연을 하고 있는 연기자들이 의기소침하지는 않을까 언급하기가 망설여지더군요.
하지원과 한지민, 명실공히 수목드라마 여주인공들이죠. 남자배우들을 빛나게 하는 여배우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하지원이 승승장구에 나와 말하는 것을 보니 딱히 마음 상한다는 느낌은 없어서, 참 겸손한 배우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드라마에서 두 배우를 만난 것은 하지원은 다모에서 채옥으로 만났고, 한지민의 경우는 대장금에서 의녀 신비로 나왔을 때였네요. 사극에도 현대극에도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진 배우들이죠. 이후 황진이(하지원), 이산(한지민), 시크릿 가든(하지원), 경성스캔들(한지민) 등은 두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믿음이 갈 정도로, 하지원과 한지민은 극중 캐릭터에 몰입하게 했고, 연기 또한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가 몇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수현, 김영현, 소현경, 노희경, 그리고 김은숙 작가입니다. 물론 더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지금 떠오르는 작가들이 이분들이네요. 스토리를 짜는 능력도 탁월하고, 소위 말하는 대중들이 원하는 코드를 드라마 캐릭터로 잘 풀어내는 분들이죠. 작가들의 공통점은 시청률을 위한 무리한 전개나 비현실적인 상황들보다는, 개연성에 비교적 충실한다는 점입니다.
이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비중이 적은 조연이라 할지라도 캐릭터가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에요.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캐릭터가 성숙해 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캐릭터가 지닌 기본적인 모습이나 개성을 견지하는 것은, 작가가 놓치지 말아야 할 기본사항이죠.
그런데 더킹 투하츠를 보면서 우려했던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는 실망스럽더군요. 홍진아 작가의 작품 중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느꼈던 캐릭터의 변질 혹은 붕괴가, 더킹 투하츠에서도 또 보여서 말이죠. 두루미(이지아)가 강마에(김명민)를 사랑하게 되면서, 극히 수동적이고 눈물만 흘려대는 답답한 캐릭터로 바뀌었는데, 더킹 투하츠의 김항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이재하를 만났을때 이재하의 깐족대는 말에 화장실로 끌고 가 기선을 제압하던 당차고 강한 여전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지금은 필요한 상황에서만 특수부대 출신이었음을 기억하게 하는  액션신만 소화하고 있죠.  하지원이기에 가능한 대역없는 액션신들이기에 하지원의 연기에 대해서는 찬사가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 외의 모습은 극히 재하만을 위한 여자, 재하에게 사랑에 빠진 약하디 약한 여자, 그대 이름은 여자가 돼버렸다는 점입니다.
옥탑방 왕세자에서 한지민이 연기하고 있는 박하라는 캐릭터도 붕괴된 지는 오래입니다. 기억을 잃은채 이역만리 미국으로 입양되어, 오직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하에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씩씩하고 강하게 자라왔던 박하, 한국에 온 지 2년동안 조그만 소형 트럭을 몰며 야채가게 배달을 하는 등, 억척스럽게 살아온 캐릭터죠. 너무 억척스러워서 아줌마 필이 나기까지 했던 캐릭터였습니다.
옥탑방에 조선의 네 남자가 나타났을 때는 박하는 주도권을 쥐고 네 남자를 호령하며, 박하라는 캐릭터의 개성을 유지했었지요. 이각이 용태용 행세를 하며 블랙카드로 돈의 위력을 과시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새로 신축한 옥탑방에 입성하면서 도우미(?)로 전락한 박하는, 초반 패기 쩔던 그 박하가 아니었습니다. 이각을 사랑하게 되면서 패기는 없어지고, 왕세자 이각에게 의존적인 여주인공이 되더니, 지금은 멍청돋는 캐릭터로 변질돼 버렸죠. 
여주인공의 급격한 캐릭터 변화는 드라마가 원톱 주인공 위주의 흐름에 따른 현상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퀄리티나 완성도면에서는 썩 좋은 모습이 아니에요. 때로는 여주인공의 급격한 변화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다른 캐릭터를 보고 있는 것같기도 하고 말이죠. 
캐릭터가 변질되지 않으면서 윈-윈한 드라마를 개인적으로는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하지원)과 주원(현빈)을 꼽고 싶습니다. 더킹 투하츠의 김항아와 이재하, 옥탑방 왕세자의 박하와 이각이라는 캐릭터와 비슷한 구조임에도, 시크릿 가든에서 두 주인공 특히 여주인공 길라임이라는 캐릭터는, 사랑에 빠지면서도 캐릭터의 붕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상위 0.0001% VVIP와 사랑에 빠지면서도, 스턴트 우먼으로서의 긍지와 자긍심, 직업의식이 철저했고, 주원과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해 가면서도 갑작스럽게 순종적이거나, '연약한 여자에요'를 남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길라임이라는 캐릭터의 기본성향과 본질적인 특징은 유지했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하지원과 현빈이 윈-윈커플이었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김항하와 박하는 어떤가요?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여군관 김항아는 대한민국 왕실이라는 곳에 주눅부터 들었고, 어느 순간 '나는 살랑살랑 바람에도 날아가는 깃털같은 여자에요'가 되었지요. 재하와 본격적인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재하에 대한 의존도는 급격히 늘어갔고, 중국 포로수용소에서 구출되고서는 180도 다리를 찢고 탈출을 감행했던 패기를 버리고, 무서웠다며 우는 한마리 가녀린 새로 돌아가 버리지요. 물론 사랑하는 재하의 품에 안겨 우는 항아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지만, 문제는 김항아를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이재하의 사랑을 위한 캐릭터로 만들어, 극히 수동적인 인물로 보이게 한 점이죠.
옥탑방 왕세자의 박하 캐릭터도 비슷합니다. 과거의 신분은 조선의 왕세자, 현대는 홈쇼핑 후계자 용태용이라는 VVIP 어리버리 매력남을 만나면서, 박하라는 캐릭터는 씩씩한 억순이-->선생님-->착하기만 한 순둥이--> 이각이 말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수동적 멍청이로 변해갔습니다.
드라마에서 캐릭터는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드라마 속 캐릭터도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이라는 것을 가지지요. 큰 사건을 겪으면서 일정부분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변화되기도 하지만, 사랑에 빠졌다고 강했던 자의식까지 버리고, 오직 남자바라기만을 하는 여자주인공들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인기있는 멜로드라마는 흔히 앓이라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많은 경우 남자주인공에게 나타나지요. 이 과정에서 작가들이 놓치기 쉬운 것이 캐릭터의 균형과 일관성입니다. 심한 경우는 상대주인공이 쩌리화되거나, 피동적인 인물로 변질되어 가면서, 캐릭터가 가지고 있던 개성을 잃어가기도 합니다. 특히 사랑이라는 코드는 캐릭터 붕괴의 주범이 되기도 합니다.
더킹 투하츠와 옥탑방 왕세자에도 이 현상이 나타나고 말더군요. 남자주인공 이승기, 박유천의 매력은 갈수록 수직상승인데, 두 작품 공통적으로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종속적이며 수동적으로 변해갔지요. 이승기 박유천은 물오른 연기력은 물론, 캐릭터의 매력까지 더해 이렇게 매력적인 남자주인공들이 있을까 싶을만큼 연기자로 자리매김을 했고, 두 사람이 아니면 이재하와 이각이라는 캐릭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캐릭터를 각인시켰습니다.
그런데 하지원과 한지민의 김항아와 박하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소홀하지 않았나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드라마 초반, 당차고 씩씩하고 능동적이고, 누구보다 자의식이 강했던 캐릭터들을 사랑에 빠진 순간 눈물을 머금은 한떨기 수선화들로 둔갑시켜 버리는 것이 안타깝더라고요. 왜 작가들은 여자 주인공들을 사랑에 빠지면 하나같이 수동적이고, 남자에게 의존적인 캐릭터들로 만들어 버리는지 말입니다. 하지원, 한지민이 아니었으면, 김항아와 박하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사랑받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원, 한지민은 변질되고 붕괴되는 여주캐릭터마저도 뛰어난 연기력으로 설득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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