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3.03.15 '그 겨울, 바람이 분다' 해피엔딩 암시한 조인성(오수)의 흉터 (41)
  2. 2013.03.08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조인성 눈물, 절망 속에 피는 사랑 (11)
  3. 2013.03.07 '그 겨울, 바람이 분다' 행복해서 죽고 싶은 송혜교, 눈물이 아프다 (18)
  4. 2013.03.01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 조인성 정체 모르고 있을까? (38)
  5. 2013.02.28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 시리도록 아픈 그녀의 눈빛 (5)
2013.03.15 10:31




오수에 대해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오영, 오영을 향한 마음을 더 이상 감추기 힘들어진 오수, 멜로의 급진전을 예고한 오수의 키스가 나왔지요. 오수의 정체는 장변호사와 왕비서, 그리고 오영의 친구 미라와 중태까지 모두 알게 되었지만, 왕비서가 영을 위해 당분간 비밀에 부치려고 합니다.

오수로 인해 달라진 오영,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된 왕비서(배종옥)는 오수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죠. 영을 올려다 보는 오수의 눈빛이 동생이 아닌 여자를 향하는 눈빛이라는 것도 말이죠.  

 

차갑게 돌아선 오수를 뒤따라 나가는 영, "오빠 가지마", 그 슬픈 목소리와 눈은 여섯살 오영에게 남아있는 악몽같은 슬픔이었습니다. '또다시 버려졌다, 또 오빠는 떠나버렸다', 체념하고 돌아서는 오영에게 다시 돌아온 오수, 뒤쫓아 온 왕비서가 오영의 외투와 신발을 챙겨줍니다. 왕비서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오수가 오영에게 차갑게 대한 것이 오영의 마음을 돌려 수술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오영이 차에 타는 것을 도와주지요.  

 

"잊지마, 난 널 버렸어", 영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오수는 매섭게 몰아부칩니다. 눈을 뜨게 되면, 오수를 떠나보내고 유령의 집같은 온실방에 갖다놓고 보라고 말하지요. 온실 비밀방에서 녹화테이프를 돌려보는 영에게 오빠에 대한 기억 하나를, 버렸다는 기억을 하나 더 추가시키라고 말이죠.

오수의 품을 찾는 오영을 힘겹게 밀쳐내며 오수는 울먹입니다. "넌 내가 널 떠나보내고 어떤 마음일지 상관이 없어, 그치? 죽으면 그 뿐이니까. 니가 이렇게 싸가지없는 애인줄 알았다면, 좀더 일찍 알았다면, 너랑 음식만들고 눈꽃소리 듣고, 널 안고, 마음 아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런 추억은 절대 만들지 않았을거야. 이제 난 살기 위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나는 살아야겠으니까. 나는 너 없이도 이 더러운 세상을 살아야겠으니까". 

제게는 오수의 말이 오영에 대한 그의 힘겨운 사랑고백처럼 들리더군요.  영을 사랑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절대 그 집에 들어가 죽은 오수 흉내는 내지 않았을 거라고, 널 아프게 떠나보낼 수도 없고, 널 떠나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너없이는 못살겠다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오수가 진짜 오수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보육원을 찾아 오수의 과거 사진을 본 왕비서는 어린 오수의 목에 난 흉터를 오수에게서 본 것을 기억해 내지요. 장변호사도 중태의 과거사진을 통해 오수의 팔 화상이 왼쪽팔이었음을 확인했고, 진짜 오수는 1년여전에 이미 죽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수를 집에서 내보내려는 왕비서와 장변호사, 두 사람 모두 오영에게 오수의 정체를 밝히기를 주저합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연 오영이 받을 배신감과 상처, 그리고 다시 오영이 문을 닫아버릴까 걱정되는 두 사람이기에 말이죠. 결국 오수의 정체는 암묵적으로 비밀에 부치기로 합니다. 영이 수술을 받겠다는 말을 먼저 꺼냈기 때문이었지요. 

영이를 변화시킨 오수를 당분간은 영이 곁에 두자는 왕비서, 그녀에게 영이는 자신의 삶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이를 위해서라면 사기꾼에게 잠시 속아줄 수 있는 왕비서입니다.

왕비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제 믿음은 비록 그녀가 오영의 눈치료를 방치했다는 잘못은 있지만, 오영에 대한 사랑은 모정과도 같은 진심이라고 봤기 때문이었는데, 왕비서와 오영의 해묵은 오해와 갈등, 애증을 오영의 상처의 치유과정에서 함께 화해해 갈 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눈 위에 '살고싶다'는 글과 함께 오수 눈사람을 만들어 둔 영, 오수의 마음이 활짝 개인 맑은 날처럼 환해져 옵니다. 오영과 눈사람을 만들고, 영의 눈에 맞은 척 "아야" 엄살을 피우면서도 오수는 행복합니다. 오영이 수술을 받겠다는 말이 그를 웃게 하고, 즐거워 하는 오영의 웃음이 그를 행복하게 합니다. 이런 추억이라면, 무철의 손에 죽게 되더라도 기꺼이 간직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오수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처럼 즐거웠다. 무철형의 칼도 두렵지 않았고, 서른살 내 인생이 처음으로 억울하지 않았다. 세상은 분명 공평하다는 생각도 처음으로 들었다. 영이와 있는 지금 이순간을 잊지 말아야지. 그래서 무철형의 칼을 맞을 때 절대 억울해 하지 말아야지. 수백 수천 번을 다짐해 본다. 그래도 순간순간 두렵다. 그래도 또 생각하려 한다. 오늘 이 순간 이전까지 끝없이 죽음을 두려워 했을 내 앞의 영이를... 난 내 삶이 절대 억울하지 않다. 지금 행복하다. 됐다".

 

그러나 오수의 웃음과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영의 주변사람들이 자기가 진짜 오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진소라의 문자를 통해 알면서, 떠날 준비를 합니다. 오영의 수술만 끝나면... 그리고 무철의 손에 죽겠다고... 

오수를 힘겹게 하는 것은 오영이 수술성공률이 낮다는 조선(정경순, 전 조선희인줄 알고 지난 글에서 선희누나라고 계속해서 쓰고 있었네요;;)의 말에 힘이 빠져버리죠. 오영을 데리고 다시 오겠다고,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게 하라"는 선이누나 말을 무시하고 나가지만,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오수였습니다. 병원기둥에서 흐느끼는 오수, 그의 등이 어찌나 슬프고 힘겨워 보이던지요.

눈위에 살고 싶다는 말을 써두고 오수에게 결심을 밝힌 영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오수입니다. 오빠의 코가 얼마나 높은지, 키는 얼마나 큰지 보고 싶어하는 오영, 그 아이에게 삶의 희망이란 정말 없는 것인가? 10%의 희망, 9%보다 많고, 0%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희망적인 숫자입니다. 오수야, 오영아 힘내자! 

 

집에 돌아온 오수의 귀에 들리는 풍경소리, 실을 묶고 자는 오영을 보며 영에게 향하는 마음을 막지못하는 오수였습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오수도 어쩌지 못합니다. 오영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오수의 눈에 눈물 한줄기가 흐르고, 오영이 눈을 떠 키스하는 오수를 느끼죠.

이명호 본부장이 했던 키스와는 다른 느낌,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마음이 편해오는 입맞춤, 키스라는 것이 이런 거였나 봅니다. '오빠의 여자친구에게 질투를 느끼고, 자꾸만 오빠의 얼굴을 만지고 싶고, 오빠의 입술이 궁금하고, 매일매일 그리워지면서도, 죄지은 듯 가슴이 콩닥거리는 이 느낌, 이 감정은 뭘까?'. 

 

***해피엔딩을 암시한 오수의 흉터

 

오수의 목에 있는 흉터를 본 순간, 첫회 의문으로 남았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오수의 목에 흉터가 있는 것을 본 왕혜지(배종옥)가 현재의 오수에게 같은 흉터가 있음을 기억하고는 오수의 정체를 확신했지요.

오수의 흉터를 보면서 전 해피엔딩의 강한 복선으로 읽었습니다. 첫회 오수와 오영의 첫만남에서 형사가 자신을 쫓는 것을 알게 된 오수가 오영의 입을 거칠게 막고, "안다치게 할테니까 잠시만 조용히 하라"고 했었던 장면 기억하실 겁니다.

그 때 오영의 눈동자가 클로즈업되면서 뿌옇지만 뭔가 오영의 눈에 보이는 장면이 나왔었죠. 처음에는 오수의 피부라고 넘겼는데, 이번회 오수의 흉터를 보면서 오영이 그날 본 것이 오수 목에 난 흉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영의 시력은 전맹은 아니지요. 희미한 빛을 감지할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오영의 주변 사람들은 전혀 안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말이죠.

그런데 왜 1회에서 오수의 흉터를 보는 오영의 눈을 클로즈업시켰을까요? 전 결말에 대한 복선을 깔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영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항암치료를 받을 것이고, 각막제공자를 구해 눈 수술도 성공을 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무철이가 줄 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무철이 누나에게 그랬지요. 오수가 자기보다 나은 점은 오수는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기를 버릴 줄 아는 놈이라고요, 무철은 폼잡느라, 한마디로 모냥빠지는 짓은 안한다가 그의 쿨한 인생관이었는데, 오수는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도 버리고, 무릎을 끓는 놈이라고 말이죠. 폐암말기,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한부 무철이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자기 것을 주고 갈 수 있다면, 각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력을 찾게 되는 오영, 오수는 오영이 수술을 마치면 그녀 곁을 떠나겠지요. 진짜 오빠로 남을 수도 없는 오수이고, 왕비서와도 오영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만이라고 합의를 볼 듯하고요.

떠난 오수를 오영이 알아볼 수 있는 것, 오영이 오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말을 하기 전에는 목소리로 감별할 수도 없고, 눈앞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오영은 오수를 그냥 지나치겠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니까 말이죠. 낯익은 좋은 냄새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지요.  

시력을 되찾은 오영이 오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혹시 오수에게 생일선물로 준 풍경팔찌 소리와 오수의 목에 난 흉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1년여전에 오빠 오수를 찾아갔다가 오빠의 편지를 읽어주던 그 남자 오수에게서 희미하게 보았던.... 오수는 그녀를 그냥 지나치려 하지만, 오영이 오수를 알아보지 않을까...

오영이 얼마나 오래 사는 지는 수술 후의 문제이며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이 얼마나 살 지는 모르니까요. 

1회 오영이 오수의 흉터를 본 장면을 클로즈업시켰던 이유, 그것은 오영도 살고 시력도 찾고 오수와도 재회한다는 해~~~피한 결말을 위한 것은 아닐까...요? 

 

***개인적인 부탁드립니다. 드라마 신의 재리뷰를 하면서 임자방을 따로 마련해 임자들과 많은 인연들을 맺게 됐습니다. 그 중에 임산부도 있었는데 태아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예쁜 딸아이를 올 1월 순산했습니다.

우리 임자들이 가슴으로 함께 품고 기도한 아이가 오늘 심장수술을 받습니다. 두달이 채 안되는 어린 아기가 잘 버틸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함께 해준다는 것이 많은 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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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8 14:36




건달들에게 둘려싸여 봉변을 당하고 있는 오영을 본 오수의 눈이 뒤집혔습니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그의 안광은 시각장애인을 희롱한 정안인에 대한 분노게이지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다가온 여자, 동생처럼 정말 아껴주고 싶은 영이었기에 더했겠지요.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준 학생도 있었지만, 앞을 보지 못한다고 희죽대며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도 이 사회에는 공존합니다. 다행이면서도 불행스럽게도 시각장애인 영이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영이 혼자가 아니고 싶은 그 심정은 간절함을 넘은 절박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믿지못하는 영, 그 아이를 과보호하고 있는 왕비서에 대한 불신은 그녀의 눈에 이상이 생겼을때 생긴 뿌리깊는 불신입니다.

다행히 아버지의 후배이자 영을 누구보다 딸처럼 아껴주는 장변호사(김규철)가 있지만, 24시간 영의 손발과 눈이 돼줄 수는 없겠지요. 

복지관이 유일한 탈출구이자 혼자만의 허락된 시간을 살아왔던 영, 그마저도 영이 한참 커서 성인이 된 후에야 얻은 휴식같은 것이었습니다. 영이 죽고 싶어하는 이유가 단지 앞이 보이지 않아서, 가족이 없는 외로움때문만은 아니었지요. 그녀의 막대한 재산도 복합적인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에게 돈이 없다면 그녀의 곁에 남아있을 사람도 없었겠지요. 오수가 처음 찾아왔을 때도 돈때문이라고 차갑게 단정지어 버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21년을 떨어져 지낸 오빠에 대한 애틋함이나 그리움과는 별도로 그녀 곁에 있는 사람은 영의 돈때문이었으니까요.

사랑하지도 않는 이명호 본부장과의 결혼은 보이지도 않는 종이에 회장으로서 싸인을 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듯 이본부장과의 결혼도 시키니까, 아버지가 정해줬으니까 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죠. 영에게 사람은 결재서류와도 같았던 게지요. 처음에는 오빠 오수마저도...

 

물론 영에게도 첫사랑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이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자 소원해졌고, 첫사랑 그 남자아이도, 영도 서로에 대한 오해를 좁히지 못하고 영은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첫사랑 그 아이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에 복지관 봉사활동을 하다 지금의 아내(청각장애인)을 만나 결혼해 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영이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달래주고 오랜 시간이 걸려 마음으로 화해를 하기도 했지요.

 

뒤늦게 찿아온 오빠의 목적이 돈이냐고 끊임없이 의심했던 것은 오영이 처한 상황에서는 당연하겠지요. 오수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은 돈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주었고, 언 마음을 녹인 것은 엄마와 어릴 때 오빠와 함께 했던 추억이었습니다. 오수가 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27살 오영에게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주었지요. 왕비서나 이명호 본부장이 주지 않았던 현재라는 세상에서의 행복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영에게는 도와주는 믿을만한 지팡이가 필요했습니다. 21년만에 오빠라고 나타난 오수는 오영의 추억을 끄집어 내주었고, 영은 자신의 지팡이가 돼줄 수 있을 사람이라고 경계를 풀기 시작했지요. 길바닥에 주저앉아 오빠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말해달라는 영의 오열은 지팡이가 필요한 영의 비명과도 같았습니다. 

영은 정말로 죽고 싶어한 아이였습니다. 그녀의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뇌를 갉아먹는 듯한 고통이 시작되면서 영은 죽음을 선택하려 합니다. 고통도 절망도 괴로움도 한순간에 사라지고 편하게 해준다는 약을 먹고 싶을 만큼 통증이 심해지지만, 영은 병원만은 거부하죠. 얼마남지 않은 삶, 주사바늘과 투약, 항얌치료로 병원에 갇혀있다 죽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오빠와 엄마가 떠난 이후,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 영은 희망이라는 것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온 아이였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설레는 연애를 해 볼 희망도,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붉게 물든 단풍이 들고 온세상을 하얀 눈이 덮어도, 영은 체감온도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뿐입니다. 계절은 속절없이 왔다가며 영의 코와 피부를 자극하기도 한다지만, 영은 새로운 관계라는 것을 맺을 수 없는 아이입니다. 복지관을 제외하고는 왕비서가 정해준 사람만이 영이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그들마저 왕비서가 건네는 돈이 큰 이유였지만 말이죠. 중태도 미라도...   

그때 영에게 나타난 사람이 오빠 오수였습니다. 왜 오빠라고 철썩같이 믿고 의심을 하지 않았을까? 혈액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자는 왕비서에게 말하지요. "추억은 조작할 수 없어요. 오빠는 우리 둘밖에 알 수 없는 추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어요. 오빠가 아니라는 근거는 없어요".

 

영은 또 다른 오수와 연락이 된다는 무철의 명함을 들고 진짜 오빠일지도 모를 또다른 오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혼자 집을 나섰지요. 오수에게 화를 내는 오영의 감정을 혼자서 되집어 봤습니다. 그토록 따뜻한 사람이, 엄마와 오빠와 함께 했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보여준 사람이, 영을 편하게 해주는 만 개의 풍경소리를 들려준 사람이, 자기가 없어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언제나 풍경이 흔들릴 거라고 점자 편지를 써주고 영의 팔에 실로 풍경을 연결해 주고 간 사람이,  진짜 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희선이 네 오빠라고 나타난 인간이 사기꾼이라고 했던 말과 팬션에서 오수가 또 다른 오수를 사기꾼 쓰레기라고 했던 말들이 하나로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오수는 사기꾼이며 가짜 오빠일 수도 있다는... 오영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오수가 진짜 오빠인지가 아니라, 자기를 속인 사기꾼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미치더군요. 영이 처음으로 믿고 싶어진 사람은 오빠이든 아니든, 지금의 오수 그 사람이 21년만에 처음이었으니까요.

차갑게 굳어버린 영의 얼굴, 오수가 처절하게 자신이 다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그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영의 차가운 얼굴, 미소가 걷힌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을 이젠 견디기 힘들어진 오수이니 말이죠. 

얼마나 참기 힘든 고통이었으면 한순간에 편하게 죽게 해준다는 약을 먹으려 했을까... 유언장까지 써주며 자기를 죽여달라고 했는데 오수가 왜 자신의 죽음을 방해하는지, 오영은 그 마음이 궁금해집니다. 돈을 노리고 왔다면 돈을 가져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도 말이죠.

오영은 오수가 자신을 살리고 싶어한다는 것이 밉습니다. 죽게 내버려뒀으면 얼굴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낯선 남자들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그런 모습을 오수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됐을텐데... 오영의 눈물은 오수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 않았던 자존심, 여자로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처럼 여겨졌을 듯 하더군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하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현실... 

오빠 오수는 좋은 것만, 아름다운 것만, 예쁜 소리만 들려주고 싶어하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오영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희롱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오영은요, 오빠지만 오수에게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여자가 되고 있었던 거예요. 이는 이성간의 관계를 떠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자연스러운 변화이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장난처럼 공동소유로 하자고 했던 죽음의 약이 동물을 안락사시키는 독약이었음을 알게 된 영, 돈을 노리고 온 사기꾼일지도 모르는 수의 정체, 유산을 주겠다는 유언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기를 죽이지 않으려는 오수의 마음이 무엇인지 영은 혼란스럽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죽여달라고, 죽고 싶다고 노래처럼 했던 영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기만을 찾아 바닥을 더듬는 그 이율배반적인 절망감을 오수 오빠라는 놈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죽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고자 발버둥치는 앞뒤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오영의 비참한 심정을 오수는 보게 되죠. 죽고 싶어하는 것이 살고자 발버둥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죠.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아서 죽기살기로 살려했던 오수,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죽고 싶은 오영, 동전의 양면처럼 두 모습 다 동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고 살려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이제는 잃고 싶지 않은 오수입니다. 지키고 싶어진 오수입니다. 오수의 눈물은 오영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78억때문에 무철의 손에 죽더라도, 김사장 손에 죽더라도 오영은 살리겠다는...

그가 희주를 보내고 방황했듯이 무철도 밑바닥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사랑을 다시는 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그들의 인생을 방치하고, 망가뜨리고 살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그것이 희주에 대한 죄책감과 그들의 사과방식, 고민방식이기도 했고 말이죠.  

 

오수에게 남자들에게 희롱당하며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고는 "왜 못 죽였어? 난 이렇게 쉬운데... 난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하는데 왜 못죽였어 날!!"이라며 우는 오영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전 역설적이게도 자그마한 삶희망을 봤습니다.

독약을 쏟아버리고 빈캡슐을 먹으라고 준 오수의 마음을 읽은 영, 오수가 진정한 사랑에 마음의 눈을 떠가듯 오영에게도 그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오수가 왜 자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할까에 대한 답을 오영은 찾을 수 있을까요? 왜 그 사람을 믿고 싶었었는지에 해답이 있을 듯한데, 상처와 아픔이 유독 많은 오영이기에 오수의 마음을 알아가기엔 오영의 겨울은 조금 더 길어질 듯 합니다.

그래서 전 왕비서와 장변호사가 오영을 도와주었으면 싶네요. 모처럼 문을 연 오영의 마음이 다시 닫혀버리지 않게 말입니다. 때로는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오수의 정체를 통해 봅니다. 오수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지금의 오영에게 좋은 일일까 싶어서 말이죠. 오영도 오수의 정체를 거의 확신하는 듯 하지만, 오영 또한 더 모른척 오수를 곁에 두고 싶어할 듯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영과 수의 마음은 겨울이었습니다. 마음을 닫고 살았던 그 시간이 그들에게는 겨울입니다. 오빠와 엄마와 헤어지고, 희주를 보내고 그들은 그들의 겨울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겨울을 깨우는 소리, 그들의 마음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오래도록 꽁꽁 얼어서, 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시리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들 마음속 그리움과 외로움이 달려있는 풍경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을 녹이는 소리를, 사랑을 말해주는 소리를, 혼자가 아니라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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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7 12:27




오수에게 살면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날이 있다면 생일이라는 날입니다. 쓰레기같은 막장 인생이 시작된 그 날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죠. 생명의 축복같은 것은 오수에게는 동화에나 나오는 먼 나라 사람 얘기였습니다.

이름조차 받지 못하고 버려진 그에게 생일의 의미는 개떡같은 날일 뿐이었습니다. 빵을 만들어주겠다고 부산을 떨던 영, 그때까지도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죽은 오수의 생일이었음을 말이죠.

화점에서 쓰러진 오영, 한사코 검사를 거부하는 오영에게 화를 내지만 창립파티에 함께 참석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내미는 오영의 손을 거절하지 못하는 오수입니다. 도와달라는 말을 이제는 스스럼없이 하는 영, "날 불쌍한 장애인으로만 보는 회사 사람들 앞에 난 혼자가 아니다, 네겐 멋진 오빠까 있다 자랑하고 싶어". 창립파티에 함께 가야 24시간 아픈지 안아픈지 감시할 수 있지 않느냐고 영악을 떠는 오영에게 두손 두발 들어버리는 오수였지요.

 

"감기 몸살만 걸려도 검사하고, 무균실에 보내고, 바늘을 수없이 찌르고... 나도 무서워. 내가 제일 무서운 거는 이 냄새나는 병원에 재미없는 왕비서랑 24시간 갇혀 지내는 거야", 영에게 병원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숨막히게 외로운 곳, 병이 나아도 또 창살없는 감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영에게는 외로움의 연속, 연장일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한시적으로 오빠로 영의 곁에 있는 오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영에게는 21년만에 느껴보는 행복입니다. 31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시간동안은 병원에 쳐박혀 지내고 싶지 않은 영입니다.

리프트를 타고 산 정상까지 영을 업고 간 오수, 나뭇가지에 눈꽃이 피어있는 절경을 보여주지요. 앞을 보지 못하는 영에게는 소리로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설경을 느끼게 합니다. 눈이 얼어 부딪히며 내는 소리, 만개의 풍경을 달아놓은 듯 반짝이는 소리를 영도 느낍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설경이 영의 보이지 않는 눈에도 상상으로 전해집니다.

소리와 영상의 미학, 김규태 감독의 디테일에 눈도 호강했지만 마음도 감동받았던 눈이 시리게 예쁜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시각장애인 영에게 들려주는 언 눈들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노작가와 김감독이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선물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겨울, 수와 영 두 사람의 언마음처럼 차가운 마음에 이는 눈꽃 부딪치는 청량한 소리는, 그들 차가운 마음에 이는 사랑의 감정을 영상과 소리로 전해준 장면이기도 합니다.

"풍경을 잃어버려도 겨울 바람이 불면 얘들은 언제나 여기서 이렇게 소리를 낼 거야. 니가 지금 이걸 볼 수 있었음 참 좋겠다. 하지만 이것보다 내가 너에게 진짜 보여주고 싶은 건 바로 영이 너야. 니가 그 어떤 것보다 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넌 아주아주 예쁘고 멋지고...".

오수의 진심이 전달되어 옵니다. 오영의 눈에서 흐르는 한줄기 눈물은 고마움이었습니다. 돌아서서 오수의 볼에 뽀뽀를 해주는 영, "오빠한텐 이렇게 키스하는 게 맞지?".

오수가 오빠라고 찾아왔던 첫날, 지팡이를 휘두르며 "니가 주는 사랑 따위 필요없어. 가져갈 게 있으면 챙겨 꺼져"라고 차갑게 돌아섰던 오영이었죠. 이젠 오수가 주는 사랑이 고맙고 행복하고 설레는 오영입니다. 오수의 소리인양 잠잘때는 오수가 달아준 풍경소리를 들어야 마음이 편해지고, 그에게서 나는 좋은 냄새인양 소리마저 향기롭습니다.

***전 오영이 오수가 진짜 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오영이 차려준 생일상도 남다르게 다가 오더군요. 물론 진짜 오빠에 대한 것을 알고 싶어할 오영이기는 하지만, 오수에게 들은 또 다른 오수의 사연을 알고 있는 오영이지요. 태어나자 마자 나무밑에 버려진 아이, 그의 진짜 생일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태어났음음 오영 혼자라도 축하해주고 싶어한 듯해서 말이죠. 오영을 기쁘게 해주고, 웃게 해주고, 그런 오빠 오수에게 '당신의 인생이 쓰레기는 아니라고, 나를 웃게 해준 것만으로도 내 오빠가 돼준 것으로도 고맙다'는 인사를 그녀가 죽기전에, 오수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어한 듯해서 말이죠.

 

장변호사에게 줄 선물을 사러갔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영이 실은 오수의 생일 선물 자그마한 풍경이 달린 팔찌를 사러갔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수, 영이 준비한 케익과 잔받침에 커피를 흘리고 식어버린 커피를 마주하는 수는 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자는 영을 보며 또다시 키스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수,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애간장 녹이는 수의 감정은 고통스럽기 까지 합니다. 오빠라고 믿고 있는 영이 받을 충격에 간신히 감정을 또 접어보지만, 수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음을 알게 돼죠. 영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한 오수였지만, 오수의 닫힌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은 영이었습니다.

버려진 아이, 희주와 자신의 아이도 버리고 돌아섰던 자책감에 아무 것에도 마음을 주지 않았던 그가 사랑을 알아갑니다. 첫사랑을 잃은 오수의 방황은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젠장. 하필이면 그 사랑이 사기를 쳐서 돈을 뜯어내려던 영이라니...'.

목적을 이루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던 오수가 영의 곁을 떠나기 힘들 것임을 알아가죠. 영을 향하는 위험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도 말이죠. "멈출 수 있었다면 그 때 멈췄어야 했다. 영이에게 더는 다가가지 말라는, 나의 위험한 놀이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경계경보를 난 그 때 분명 들었다. 자만해선 안됐었다. 내가 사랑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 처음으로 이 위험한 놀이에 영이 그 아이보다 내가 더 처절히 다치리란 확신이 들었다".

처음으로 받아본 생일케익과 선물이었습니다. 앞도 보이지 않은 영이 커피를 내리고 서투른 손으로 커피를 따르고,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수입니다. 처음입니다. 수의 진짜 생일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태어난 날을 축하해 준 것이 말이죠.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던 오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축하해주는 영에게 깊이 빠져드는 자신을 봅니다. 

사랑 따위 사치일 뿐이라고, 그 사랑이라는 것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 하찮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오수가 사랑에 빠져듭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모든 것을 버리고 왔던 희주, 그 아이도 그랬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살리고 싶은 오수입니다. 영이를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는 오수임에도 영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에 그도 행복합니다. 그 행복이 오수에게는 말 못할 고통이 되어 부메랑처럼 가슴을 할큅니다. 눈치료가 가능하다면 치료를 해주고 싶은 오수입니다. '살고 싶어 하는 남자가 죽고 싶어하는 여자를 만났다', 지하철에서 등을 밀라며 죽고 싶어하는 여자, 혼자 남겨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여자를 살리고 싶어진 오수입니다.

세상에 덩그라니 혼자 남겨진 오수,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누구에게도 속박되고 싶지 않았던 오수였습니다. 희주를 보내고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았던 것은 오수에게 내재된 상처때문이었습니다.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죠. 이젠 이 아이 영을 그렇게 남겨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친오빠가 아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영이 받을 상처와 충격, 배신감을 오수가 더 감당하기 힘들 듯 합니다. 영이 받을 배신감과 상처를 생각할 때마다 수의 마음이 더 아프고 괴롭습니다. 수가 겪게 될 처절한 고통은 그것을 말함이겠죠. 그리고 더 이상 다가가서는 안되는 마음, 눈덩이 처럼 커져만 가는 영에 대한 사랑이 힘겹기만 합니다. 다가갈 수 없는 사랑, 지켜만 보는 사랑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만 멈추라는 위험신호를 보냈을때 멈춰야 했건만, 기침처럼 감추기 힘든 게 또한 사랑거늘, 이 남자의 힘겨운 사랑을 어떡하나요?

오영, 그 아이가 창립파티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든든한 오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알 것 같은 오수입니다. 오영의 외로움이 오수때문에 쓸려갔다는 것을... 오수 그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아물지 않고 욱신욱신 쓰라리는 상처를 비집고 이미 사랑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검사를 거부하고 통증을 참고 기념사를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 영, 식은 땀으로 범벅이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만큼 고통스럽습니다. 영은 압니다, 그 고통이 앞으로 더 자주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괴로울때 먹으면 괴로움도 고통도 절망도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마음이 아주 편해진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오수 방을 뒤져 약을 찾고 먹으려 했을까... 약을 먹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 오영인 듯 하지만, 죽고 싶을 만큼 지독한 통증을 겪고 있는 오영, 이 캐릭터가 너무 마음 아픕니다.

죽음과도 같은 외로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 왕비서의 인형처럼, 붙박이 가구처럼 갇혀있는 생활은 영에게 죽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수가 말했듯이 그냥 사니까 살고 있는, 하루 하루 마음을 갉아가며 사니까 살고 있었던 오영이었습니다. 외로움에 죽고 싶고, 재발된 뇌종양의 통증으로 차라리 죽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해 답답하고, 오빠 오수가 나타나 잠시 거둬가 준 외로움이 없어진 지금 이순간 떠나고 싶은 오영입니다. 외롭지 않은 행복한 이 순간만 기억하며...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 준다는 약을 찾았던 오영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그 여린 가슴의 절망과 심적 육체적으로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이 짠하고 시립니다.

15년간 겨울이었던 오영, 그녀를 지독하게 외롭게 했던 15년간의 겨울에도 풍경소리처럼 아름다운 바람이 불어줄까요?

 

오수의 이름은 나무 수(樹), 진짜 오빠 오수는 지킬 수(守), 오영의 이름은 꽃부리 영 혹은 꽃영(英, 榮)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오영과 오수가 동명이인이라는 인연으로 속고 속이는 관계로 만나기는 했지만, 꽃을 지키고 꽃을 피우게 하는 나무로 해석하니 이름에도 노희경 작가가 이야기를 숨겨둔 듯 싶습니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꽃,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만든 풍경소리처럼 말이죠.

 

***

조무철(김태우)이 두달밖에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과 무철의 누나로 나온 의사 정경순(아마 뇌질환 관련 전문의같습니다)이 오영에게 희망적인 복선을 내비쳐서 뒷 얘기가 추측도 되지만, 무철의 사연이 참 가슴 아프더군요. 깡패가 되어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던 팍팍하기만 했던 그의 삶,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 갈 것만 같아서 말이죠.

죽은 희주에 대한 그의 사랑, 무철이 해줄  있는 것은 희주가 사랑했던 오수의 진정한 사랑을 위한 무엇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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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1 11:38




첫방송을 보고는 조인성의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가 좋았는데, 한회 두회 그 힘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각장애인 역할을 하는 송혜교이다 보니 조인성의 눈빛은 나홀로 레이져를 발사하는 느낌이어서, 부들부들 떨며 폭발하는 오수의 감정에 다가가기가 힘들었다고나 할까...

다행히 송혜교의 차분함이 그 감정선의 간극을 메워주고는 있었지만, 조인성의 경우 애틋함보다는 필사적이기 까지 한 그 감정의 정체가 뭘까 고민이 되기도 했네요.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캐릭터의 감정선마저 순차적 단계없이 폭발시키는 바람에 마른 하늘의 번개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에고고 너무 빠르다, 먹구름도 아직 안끼었는데...'이러고 있었죠. 진한 먹구름이 드리우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에 익숙한 저에게는 오수의 마른하늘에 지그재그를 그리는 번개가 낯설었습니다. 감정이입하기도 힘들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오수에게도 몰입할 수 있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7회였습니다. 처음으로 오수의 눈물이 가슴에 스며들었고, 오영의 이마에 뽀뽀를 하는 그가 자연스러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힘을 조금 빼니 오수의 아픔과 캐릭터가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오영의 방 금고를 털려다 왕비서에게 들킨 오수는 왕비서의 약점을 상기하며 떨던 심장을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당당하기 까지 하죠. "영이의 눈을 정말 고칠 수 없었던 겁니까? 혹시 고칠 수 있었는데도 방치한 건 아니세요?", 정곡을 찌르는 오수의 반격에 왕비서(배종옥)는 78억을 제안하지만 오수는 거절하죠. 그것보다 많은 돈을 주겠다는 오영의 유언장이 있는데 뭣하러 그러느냐면서 말이죠. 그리고 왕비서에게 선전포고까지 하죠. "제가 떠나기 전까지 왕비서님을 제대로 의심해야겠습니다".

오수를 보며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비밀의 방에서 비디오 테입을 보며 오영이 시력을 잃은 비밀을 알게 된 오수, 뇌종양때문이 아니라 망막색소변성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시력을 잃어버린 그 아이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슬퍼하고 충격에 휩싸이는 그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끝이 아니라며, 영에게는 오빠 오수가 있다며, 혼자가 아니라고 우는 영의 고등학교때의 비디오 테입을 보며, 오수는 그렇게나 그리워하는 영의 친오빠를 자기때문에 죽게 한 죄책감에 괴로움이 커져만 갑니다. 왜 그렇게 오빠를 기다리고 그리워 했는지 오영의 마음도 더 알게 되었죠. 믿어도 된다고 말해달라던 영의 오열이 가슴을 후벼팝니다.

'진짜 오빠가 돼주고 싶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이야'.

 

영의 전화를 받고 나간 오수는 집앞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오영을 보고, 가슴 쓰라리게 그녀를 바라보지요. 조인성의 눈빛에 강렬함보다는 그윽한 깊이를 담아내니 훨씬 좋더군요.

 

"오빠 어디야? 내가 마중나갈까?".

집 근처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오수를 마중나가고 싶어하는 오영, 오수의 눈에 그녀의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그동안의 외로움이 또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수 그와도 너무나 닮아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오빠를 기다리며 설레고 즐거운 그녀의 소소한 행복을 막고 싶지 않았던 오수도 거짓말을 하지요. 집 근처라고...

지팡이를 짚으며 한성수퍼 4거리를 향하는 오영의 뒤를 말없이 따르는 오수, 그 사이에 흐르는 두 사람의 착한 거짓말, 그 작은 행복이 가슴에 스미면서 눈물이 솟구치더군요.

오영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오수, 오영이 지팡이를 더듬으며 자신을 마중나오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지요. 한무리의 학생들이 지나가자 길옆으로 몸을 피하는 오영, ""내동생 기특하네, 밤에도 혼자 잘 다니고". 오영의 뒷말에 아차~싶은 오수였지요. "바보, 내게는 밤이나 낮이나 같거든".

이명호 본부장의 전화를 받는 오영에게 느껴지는 야릇한 질투심, 오수는 오영에게 이 본부장을 보면 설레냐고 물어보죠. 설레면 좋아하는 거라고... "그럼 난 널 좋아하는 건데?", 오영의 말에 오수가 잠깐 또 흔들립니다. '내가 설렌다고? 날 좋아한다고?...'.

"사람들은 첫눈에 반한다고 하는데 난 첫눈에 반할 눈이 없어. 나좋다는 사람과 살면돼", 앞이 보이지 않아도 좋다 싫다의 감정이 있을 법한데, 이 아이는 아버지가 정해준 사람이니까 결혼도 선택권이 없다고 말할 뿐입니다. '사람에 대한 의욕도 흥미도 관심도,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처럼 이 아이에게는 없구나...'.

눈검사를 다시 해보자는데도 그닥 흥미를 느끼지 않는 오영이었지요. 오영은 뇌종양이 재발되어 살날이 얼만 남지 않았다고 스스로 단정짓고 있기에 눈검사마저도 시큰둥입니다. 그보다는 오수가 떠나는 것이 더 싫은 오영이었지요. 수술하고 투병하는 동안 오수 이 남자가 예정대로 떠나버릴 것이 싫은 오영입니다(이 남자라고 표현한 이유는 오영이 오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이어서 입니다).

"나 혼자두고 떠나는 것 미안하지?"라는 오영에게 놀러가자고 제안하는 오수, 눈썰매장이 있는 팬션으로 진성(김범), 희선(정은지)과 함께 MT를 가지요. 눈썰매를 타는 네 사람은 한폭의 화보였습니다. 아이들처럼 좋기만 한 그들, 눈이 좋고 사람이 좋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것이 그저 좋을 뿐입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 앞을 보지 못해도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가는 느낌, 비탈을 시원스레 달리는 그 기분은 다르지 않습니다. 오수 오빠가 뒤에서 지켜주고 있기에 오영은 앞이 보이지 않아도 무섭지가 않습니다.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오수 오빠, 그 남자가 보호해줄 것임을 믿기에...

이마에 닿는 그 남자의 입술, 차갑지만 뭔가가 짜릿하게 지나가는 듯 합니다. 차가웠다가 이내 따스하게 가슴을 감싸고 맴도는 그 느낌이 좋은 오영입니다. 희선이 질투로 째렸지만, 힘없는 째림일 뿐 ㅎㅎ.

눈밭에 누워 사진을 찍는 오수와 오영, 환하게 웃는 오영의 미소가 눈처럼 희고 고와서 한참동안이나 쳐다보았네요. 그 환한 웃음이 제 마음 어둠까지 거둬가는 것 같아서 말이죠. 오수 역시 그랬을 듯 합니다. 오영 그 아이의 웃음이 오수를 힐링하는 느낌입니다. 죽은 희주와 오토바이를 타며 웃던 오수의 밝은 모습이 다시 나온 듯한 것을 보면 말이죠.

그날 밤 팬션에서 오영은 오수의 오래도록 무거웠던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했지요. '위로'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 찡하고 아프면서도 따뜻한 힐링이 되는 단어임을 오랜만에 깨닫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다친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은 정말이지 너무 따뜻하고 뭉클합니다^^

오수에게 다른 오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오영," 그 사람 수자는 무슨 수자야?".

왜인지 모릅니다. 오영 그아이가 자신에 대해 물어보자 오수는 고해성사를 하듯 쓰레기같은 놈이라고 고백하지요. 그것은 눈처럼 맑은 오영 그 아이에게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네가 알고 있는 나는 이런 놈이라고'.

"엄마가 나무밑에 버리고 가서 나무 수, 어느날 불쑥 나타나 친구에게 5만8천원을 전해주고는 도망치듯 택시를 타고 가버린 여자, 그게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모습이었대".

"안됐다... 그래서 그 사람은 마음의 상처때문에 사기꾼이 됐나?".

"그 놈은 원래 그런 놈이야. 태생부터 쓰레기 같은 놈이지.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애를 가졌다고 한 순간 뒤도 안돌아보고 여자를 버렸대. 그러다 그놈을 뒤따라온 여자가 그만 사고로.... 열아홉, 여자도 그놈도... 나도 한때 너처럼 부모한테 쓰레기처럼 버려진 그 놈을 이해하고 동정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그런 놈은, 사랑해서 집을 버리고, 학교를 포기하고, 자기 애까지 가진 여자를 책임지지 못한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오수는 자신을 그렇게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자기를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오영의 뜻밖의 반문에 오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오영이 자신의 눈물을 보지 못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오영으로부터 '위로'라는 말을 배웁니다. 자신을 위로하는 법을, 상처를 위로하는 법을, 다른 사람의 상처를 위로하는 오영의 따스함을 배웁니다. 상처투성이의 아이 오영, 그 아이가 쓰레기처럼 살고 있는 자신을 위로합니다.

"네가 뭔데 그 사람을 용서해? 사람이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용서가 아니라 위로야".

오영도 그랬노라고, 처음 뇌종양에 걸렸을때 사람들의 위로가 필요했었다고, 그런데 여섯살 아이에게 용기를 강요했노라고, 그래서 울 수 없었다고... 그 때 울지 못해서 지금도 여섯살 그 때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는 오영,  소리내지도 못하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고 앉아있는 오수와 용기와 인내를 강요받고 투정도 부리지 못하고 투병해야 했던 그 어린 영이를 생각하니 어찌나 가슴 미어지게 아프던지요.

"그 사람도 나같지 않았을까? 기억도 못할 나이에 나무밑에 버려졌는데, 어쩌다 나타난 엄마는 고작 5만8천원을 주고는 떠났는데, 그것도 모자라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를 열아홉 어린 나이에 영원히 잃어버렸는데... 아무한테도 위로받지 못했잖아. 열아홉, 그 사람은 자기도 책임질 수 없는 열아홉이었어. 그 나이에 자기 인생을 꼭 빼닮을 것 같은 아이라면 많이 무서웠을거야".

오영은 자신이 위로받지 못해 외롭기만 했던 여섯살의 상처를 생각하며, 오수가 기억도 못할 갓난아기때의 버려진 아픔과 열아홉 상처를 위로합니다.

오수가 울며 무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위로로 들려주는 오영이었습니다. '난 그때 어렸고, 무서웠다고...".

'괜찮지 않았을 거야, 무서웠을 거야, 그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 버거웠을거야, 아이와 사랑하는 여자를 책임지지 못한 것은 잘못했지만, 그것때문에 너를 너무 미워하지는 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오영처럼 오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무철은 쓰레기같은 놈이라고 죽이려들고, 희선은 울언니 죽인 나쁜놈이라고 욕만했고, 아무에게도, 아무에게도 그런 위로를 받지 못했던 오수였지요. 처음입니다. 자기 상처를 안됐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이제 오영 이 아이를 위해 정말 오빠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이 아이의 눈을 고쳐주고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어도 될 사람이 돼주고 싶습니다. 사기꾼 오수, 도박꾼 오수로 살아온 쓰레기 인생이지만, 오영 이 아이에게만은 믿어도 되는 오빠가 돼주고 싶어진 오수입니다. 살아지니까 사는 게 인생이라고, 아니야 이젠 그 말을 철회하고 싶은 오수입니다. '이 아이를 위해 살고 싶어졌어. 이 아이를 외롭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이 아이곁에 있는게 위로와 행복이 된다면 그것도 사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설사 그 끝이 죽음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열아홉에서 멈춰버린 오수의 성장, 스스로 쓰레기라고 자신을 비하하며 아름다움을 멀리하려고만 했던 오수가 보지못했던 것을 보는 눈을 뜨는 듯 합니다. 또한 오영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도 깊어만 갈 듯 합니다. 오수의 마음에 일렁이는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기 시작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입니다.

 

***영이는 오수의 정체를 알고 있을까요? 모르고 있을까요? 전 모른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변이 오수의 지문이 묻은 그림 유리를 가지고 갔는데, 전 왠지 오영이 장변에게 그 사람의 정체를 왕비서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처음부터 영이는 오수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지요. 1년전에 만났던 또다른 오수라는 남자의 말투, 이를 앙다물고 말하는 습관, 그리고 그 사람의 냄새는 오영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무언가에 쫓기듯 바쁜 와중에도 오빠의 편지 말미에 사랑한다는 말이 쓰여있다고 전해주고 간 남자, 오영이 기억하는 그 남자는 친절한 남자였습니다.

 

오영이 엄마와 오빠와 함께 추억을 만든 강가로 갔을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강물로 들어갔던 일이 있었지요. 오영을 끌어낸 오수는 영의 따귀를 때렸고, 오영은 어렸을때 똑같이 빰을 때렸던 오빠를 기억하고는 진짜 오빠처럼 그의 얼굴을 만져보고, 우리오빠라고 말도 했지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시각장애인 오영에게는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 주고 뺨을 때려준 어렸을 때의 진짜 오수오빠처럼 지금의 가짜 오빠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오영에게는 그 사람의 생김새가, 그 사람의 유전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잘못했다고 때려주고, 죽고 싶어하는 오영에게 화를 내고, 추억을 찾아주고, 엄마의 온실을 살려준 그 사람이 오빠입니다. 영이를 웃게한, 영이를 행복하게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오빠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믿고 싶은 사람,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입니다.

눈썰매장 팬션에서 고백한 오수의 이야기가 오빠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이야기임을 오영을 알고 있었을 듯 합니다. 희선이가 네가 오빠라고 하는 오수의 진짜 정체는 사기꾼에 도박꾼이라고 말도 했었고, 언니도 죽게 만들었다고도 했었지요. 오수의 또다른 오수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음을 오영은 알아챘을 겁니다. 오수에게 했던 오영의 말은 이미 오수의 정체를 알았다는 말과도 같았습니다.

"실수한 거야 너, 난 네 덕분에 그 사람이 더 궁금해졌거든". 여기서 그 사람은 누구를 말한 걸까요? 전 오영 앞에 있는 지금의 오수를 말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오빠라고 나타난 당신이 진짜 궁금해졌어. 더 알고 싶어'라는 말처럼 말이죠.

 

만약 눈이 보이게 된다면 제일 보고 싶은 것이 뭐냐는 오수의 말에 오영은 말했지요. "지금은 너,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잘 모르겠는 오빠 너". 오영에게 오수는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오영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을 보고 싶고, 잘생겼다고 잘난척하는 그 얼굴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웃게 해 준 그 사람의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오영입니다. 만약이 사실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일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만약에 볼 수 있게 된다면,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그 사람을 보고 싶은 오영입니다.

그런데도 오영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오영이 알고 있음을 오수가 안다면 그가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오영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오수의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봤습니다. 돈을 노리고 왔을지라도 자신을 웃게 만들고, 추억을 찾아주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이 사람이 오빠라고 속이면서도 더 오래 자기곁에 있어 주었으면 싶은 오영입니다. 죽기 전까지만이라도, 마음놓고 오빠이야기, 엄마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 사람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향기에 가슴이 설레는 것도, 허락한다면 조금만 더 오래하고 싶은 것이 오영의 마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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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8 12:32




오영(송혜교)은 오수(조인성)에게 말합니다. "너 그거 알아? 너한테서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 거... 비누향도 아니고, 화장품향도 아니고, 뭔지 모르지만 아주 좋은 냄새가 나...". 오영이 맡은 오수의 향기는 오영이 그립다는 사람의 냄새겠지요.

오래전에 잃어버린 가족이라는 둥지에서 나던 그 향기, 포근한 향기, 따뜻한 향기, 그리고 자꾸만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아늑한 향기... 잠든 오영의 손을 잡아주는 오수의 손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믿고 싶은 사람의 향기... 뭔지 알 수 없지만 가슴이 떨리는 향기.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가 가지고 있는 오감(五感-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육감이라는 제 6의 감각이 있습니다. 오영에게는 시각이 없습니다. 시력이 없는 대신 다른 감각들이 더 발달해 있죠. 특히 후각과 청각은 시각장애인에게 정안인보다 발달한 감각입니다. 그리고 오영은 육감이 발달한 아이입니다. 몹쓸병은 그녀의 시력을 앗아갔지만, 육감이라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감각이 그녀의 눈을 대신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자꾸만 오수를 곁에 붙들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이 단순히 그가 오빠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돈을 노리고 왔다고 해도, 그녀만이 감지하는 오수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색다른 감정입니다. 오수가 죽었다 깨나도 친오빠가 될 수 없듯이, 뭔가를 감추는 듯한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거짓과 진심이 뒤섞여 있는 그의 목소리는 자꾸만 그를 보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그의 마음을 읽고 싶고, 그의 진심을 보고 싶고, 그리고 믿고 싶어집니다. 

암흑 속 추운 새장에 찾아든 따스한 바람이 오빠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장변아저씨나 이명호 본부장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오수가 잡아주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 그렇게 오수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오영에게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남녀 사이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하는 오영은 그것이 오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닐 겁니다. 

 

잦아지는 두통과 현기증, 오영은 자기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이 오빠가 떠나기 전이었으면 싶은 오영입니다. 돈을 노리고 왔든, 그가 친오빠가 아니든, 사기꾼에 도박꾼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오영에게 남은 것은 돈이 아니라, 그녀가 사는 동안만큼만 누리고 싶은 행복이기에 말이죠. 진심으로 오영을 웃게 해주고, 그 옛날 철모르던 시절, 행복이 행복인줄도 모르고 웃던 여섯살의 그 행복한 시간을 기억하며 떠날 수 있다면...

21년만에 행복을 찾아준 오빠를 위해 오영은 뭔가를 해주고 싶어합니다. 오빠가 바라는 것, 돈이라면 그녀가 떠난 후에는 아무 쓸모도 없을 돈을 줄 것이고, 오빠가 바란다면 사랑없는 이명호 본부장과의 결혼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오수가 그녀의 곁에 있어준다면, 오빠 그가 몰고온 바람이 잠시 곁에 머물러 있는 동안만이라도...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오영은 오빠라고 찾아온 오수의 향기가 진짜였다고 믿고 싶습니다. 오영이 믿고 싶은 것은 그가 오빠라는 것이 아니에요. 오영을 마음으로 안아주는 사람을 말함이었죠.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오영의 마음을 속여온 주변사람들과는 다른, 오영의 돈이 아니라 오영의 외로움을 달래줄 그런 사람말이죠.

오영의 외로움은 오빠와 엄마가 떠난 그날부터, 그리고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면서 깊어만 갔습니다. 왕비서는 그런 오영을 치료해 주지도 않고 거짓말로 속였습니다. 무엇때문인지 오영은 알지 못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오영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음에도 왕비서는 그런 욕심을 내비치지도 않습니다.

영이만 무사하면, 영이만 안전하면, 영이만 자기 눈 앞에서 살아있으면, 그녀의 도움없이는 살 수 없는 영이로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왕비서는 영이의 어둠을 때로는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이가 외로울 수록, 영이가 기댈 사람이 없을 수록 왕비서의 목소리에 힘이 넘치고, 뭔가 할일이 있는 것처럼 생기마저 느껴집니다.

'그녀는 왜 내 어둠을 좋아하는 걸까?', 어려서부터 영이가 품어온 의심이었습니다. 엄마이고 싶어하는 그 여자가 보호자, 법정대리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영이의 상처를, 영이의 외로움을 그녀만이 독차지 하려는 일그러진 사랑때문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왕비서의 보호가 더해질 수록, 왕비서의 영이를 보는 애처로움이 깊어갈수록 영이의 외로움은 왕비서의 새장속에서 더 커져만 가고 있었음을 왕비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 새는 커갈수록 마음을 꽁꽁 닫아걸기만 했습니다. 영이가 커가는만큼 그 닫혀버린 마음의 문도 크고 높아만 갔죠. 영이는 왕비서에게 날개다친 새였습니다. 혼신을 다해 치료해주고 다시 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왕비서의 새장 속에서만 날아야 하는 영이었습니다. 두발달린 짐승은, 날개가진 새는 아무데고 갈 수 있다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영이었습니다.

그런 영에게 찾아온 사람이 오빠라고 21년만에 나타난 오수였습니다. 새장속 영을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주고, 영이의 추억을 찾아준 사람입니다. 비디오 테입속에만 살고 있는 영이의 추억...

세상에서 단 한나뿐인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해줘... 내가 오빠 널 믿어도 된다고...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오열하는 오영에게 힘겹게 오수는 말합니다. "난 믿어도 돼, 난 믿어도 돼 영이야..".

힘겹게 뱉는 "난 믿어도 된다"는 오수의 복잡한 심경, 갈등과 다짐이 교차하는 오수의 온몸에 들어간 힘은 오영을 대하는 그의 고뇌이기도 합니다. 잔인하게 엮어버린 인연, 그의 목숨이 걸린 사기행각에 오영의 눈물은 오수를 힘겹게 합니다. 죽이지도 죽을 수도 없는 오수, 오영이라는 여자에게 끌리는 감정, 그것은 늪과도 같았습니다.  

동생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오영의 공허한 눈빛이 끌어당기는 것, 그것은 오영의 향기였습니다. 

오영은 오수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정말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은 그녀의 초점없는 눈빛이었습니다. 언뜻언뜻 별처럼 빛나는 그 눈빛은 오수의 지난 날들을 씻어주는 정화수처럼 맑기만 합니다.

'대체 난 왜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 걸까? 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도 없으면서 앞 못보는 이 아이에게 이렇게 끝없는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살려고 하는 걸까?... 인생 별거 아니라고, 그냥 살아지면 사는게 인생이라고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어쩌면 모두 거짓말이었나... 살아서 지금같은 순간을 나도 모르게 한 번쯤은 미치게 기다리고 있었나?".

이명호와 첫키스를 했다고, 기대보다 별로였다고 모래처럼 메마른 말을 무덤하게 말하며 잠이드는 오영,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싶어진 오수, 처음입니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고 싶어진 것이... 떠난 희주에게도 그는 믿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준다는 것은 지켜준다는 것이겠죠. 갓난아이때 버려진 오수는 누군가를 믿는 것도,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오영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키스는 이런 거라고 해주고 싶어진 오수입니다. 오영이 동생이 아닌 여자로 느껴집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이명호 본부장에게 다른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된 오수는 술집에서 오영에게 한 이명호의 키스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미친놈", 오영의 입술 가까이에 가버린 오수, 이 여자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 두려운 오수입니다. 아니 이미 사랑을 시작해 버린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이 듭니다. 오영의 방 그림 뒤 금고를 털어서 그냥 여기서 끝내고 싶은 오수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여자의 맑은 호수가 더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 맑은 호수에서 더 이상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자기와 같은 외로움을 가진 그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왕비서에게 들켜버린 오수, 그는 어떤 변명을, 아니 왕비서와 어떤 거래를 하게 될지... 왕비서(배종옥)에게 오영의 눈을 방치한 약점을 말할 듯 싶은데, 오수 이 남자 오영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더 힘겹겠군요.

 

*******

키스를 하려다 퍼뜩 정신줄을 챙긴 오수를 생각하며 오늘 감상곡 가사 올려봅니다. 오수를 생각하며 전 요즘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답니다. (엠씨더맥스의 사랑이 사랑을 버리다...노래를 링크로 걸려고 했는데 울딸이 집에 없는 관계상 어떻게 거는지 몰라 그냥 가사만 ㅎㅎ 아마 아시는 분 많을 거에요. 한 멤버가 실망스러워서 에잇! 싶지만 노래는 명곡)

 

아닐 거라고 사랑 아닐 거라고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도망쳐 보고 나를 타일러 봐도

가슴은 이미 시작했나봐


사랑한 널 두고 미련한 널 두고

다른 사랑에 빠진 날 어쩌니

널 돌아선채로 걸음이 더 빨라져

그사람을 봐야 살 것 같아서


너무나 미안해서 미안하다 말 못해

감히 행복해서 행복하라 말 못해

너보다 더한 아픔 겪게 될테니

잠시만 날 보내줘


눈물이 나는 널 나만 바라본 널

지켜주겠다던 나였었는데

스쳐갈 바람은 잠시 흔들리다가

다시 돌아가길 기도했는데

 

사랑할 이유들이 내겐 너무 많아서

사랑할 방법이 내겐 너무 없어서

울고 웃다가 자꾸 뒤돌아 서는

내가 너무 싫어져

 

너무나 미안해서 미안하다 말 못해

감히 행복해서 행복하라 말 못해

너보다 더한 아픔 겪게 될테니

잠시만 날 보내줘

잠시만 행복할게

**********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계속적으로 한 사람의 눈동자에 머무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송혜교의 초점을 잃은 눈동자입니다. 시각장애인 연기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더군다나 그렇게 코앞으로 들이밀고 들어오는 카메라 앞에서는 연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을텐데 동요하지 않고 감정선을 유지하는 연기가 참 좋더군요. 상대배우와 눈빛을 교감하지 않는 연기는 독백 모노드라마보다 힘이 들 듯한데도, 차분함과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을 잘 이어주는 송혜교의 재발견이라고 할만큼 연기에 향기가 있더군요.

이번 6회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장면은 적절하게 삽입된 영화 '봄날은 간다'였습니다. 허진호 감독이 소리의 영화라고 까지 했던, 영상과 소리에 공을 들였던 영화의 선택이 탁월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오영이 봄날은 간다를 여러번 봤다는 말이 마음에 닿더군요.

소리로 장면들을 상상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 대나무 소리, 눈녹는 소리, 바람부는 소리 등등을 담은 영화속 은수(이영애)와 상우(유지태)는 오영이 이명호와 본 액션영화보다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쉬웠을 듯도 하고, 참 많은 감정들이 스치더군요. 남녀간의 미묘한 분위기를 궁금해 하는 오영의 궁금증도 솔직하게 표현해서 좋았고요.

 

그걸 보면서 전날밤 오영이 키스하려고 했던 오수의 행동을 알고도 모른척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안인보다 감각이 섬세한, 더군다나 불면증까지 있는 오영이 자기 얼굴에 가까이 다가오는 오수의 숨결을 느끼지 못했을까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도 오영은 눈을 뜨지 않았죠. 그 느낌이 오빠가 아닌 남자의 향기였다는 것도 오영은 느꼈을 듯 합니다. 그럼에도 오영이 눈을 뜨지 않았던 이유는 정말 잠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눈을 뜨면 오수가 자기 곁에서 떠나버릴 것 같아서는 아니었을까???....

오빠라고 믿고, 그냥 짧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고 싶은 오영의 바람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상에 단 한사람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는 사람, 믿고 싶어진 사람 오수가 조금더 곁에 머물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작은 바람이 깨질까 두려워 눈을 뜨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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