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05 '1박2일' 초딩 은지원, 몰래카메라의 행운 (34)
  2. 2009.10.02 추석이 슬픈 맏며느리의 고백 (37)
2009.10.05 07:16




민족의 대명절 추석 특집으로 방송된 1박2일은 사전녹화된 방송분이었지만, 1박2일 멤버들의 뜬금없는 큰절에 기분이 좋았던 방송이었어요.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은 새해 뿐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들어도 좋은 인사니까요. 더구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멤버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1박2일 55번째 여행지는 옹진군의 연평도입니다. 연평도는 꽃게로 유명하지요. 한창 꽃게잡이로 분주한 연평도로 간다니 장소가 공개되자마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가 예상되지요. 꽃게잡이에 누군가는 동원되어야 하니 복불복 게임도 치열할 것이고요.

인천항에서 연평도로 향한 페리호에 승선한 1박2일 멤버들, 완공된 인천대교의 모습을 소개해주는데 백두산에 갈때만해도 공사중이던 대교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선실에 들어와 멤버들은 가볍게 점심을 걸고 게임을 하는데 호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은지원의 신내린 엉덩이가 웃음을 주었네요. 요즘들어 은지원의 몸개그가 날로 일취월장하는 모습입니다. 춤인지 글씨를 쓰고 있는지 알기 어렵던데 이승기가 호랑이를 맞추는 대목에서 놀라운 집중력의 소유자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지요.
휴식을 취한 후 꽃게잡이에 동원될 멤버를 뽑는 복불복 게임이 이어졌는데 손에 땀을 쥐게 했지요. 추석에 맞게 전통놀이인 윷놀이가 나왔는데, 한복을 곱게 입어서 였는지 더욱 흥미진진해 보였습니다. 엎치락 뒷치락 끝에 꽃게잡이에는 김C와 MC몽이 당첨되었어요. 두사람은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연평도에 도착하는 순간 꽃게잡이 어선에 승선해야 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요? 이승기와 한팀이었던 은지원이 가위바위보 복불복에서 지는 바람에 게임에서 다 이기고도 꽃게잡이에 투입이 되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배에서 나오다가 뒤쳐진 은지원을 골탕먹일 작정으로 강호동과 이수근, 이승기가 짜고 한 은지원의 몰래카메라였답니다. 황당해 하는 은초딩의 표정을 보니 나중에 은지원이 어떤 식으로든지 복수해 줄 것 같은 예감이 들더라고요.
은지원을 배에 태워 보내고 강호동, 이수근, 이승기는 스쿠터를 타고 연평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해변을 따라 흐르는 자연경관이 한폭의 깨끗한 그림이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더라고요. 마이앤트메리의 '푸른 양철 스쿠터'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도착한 등대공원에서는 깜짝 게스트가 등장했어요. 바로 88년 올림픽때 굴렁쇠 소년으로 유명한 윤태웅군(29세).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가웠어요. 더구나 윤태웅군은 연평도교전이 있었던 당시 해병대에 근무했었다네요. 우연히 자신의 군복무지를 찾았다가 1박2일 팀을 만났다는데, 1박2일의 매력이 이렇게 예정되지 않은 만남을 통한 반가운 얼굴을 기억하게 하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88년 올림픽때 전국민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렀던 굴렁쇠 소년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윤태웅씨, 정말 반가웠습니다. 늘름하고 멋지게 성장한 모습보니 반갑고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
앗! 잠시 꽃게잡이 배를 타고 간 은지원과 MC몽과 김C를 잊을 뻔했네요. 이분들 지금 고생이 말이 아니에요. 편집이 되었는지, 그동안 몇번 고기잡이 배에 끌려나가 이력이 붙었는지 이제는 심한 멀미 증세는 보이지 않아 다행이네요. 배멀미는 정말 경험하지 않은 분들은 그 고통을 모를거에요. 하늘이 노랗고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거든요. 꽃게잡이배를 탄 멤버들은 꽃게라면을 향한 기대감에 힘들어도 많은 내색은 하지 않았는데, 걸걸한 입담을 자랑하시는 선장님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40년간 배를 탔다는 선장님은 은지원의 몰래카메라부터 꽃게를 잡는 내내 웃음과 감동을 주셨던 분이시지요. 그물에 달려오는 싱싱한 꽃게들을 보니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도 풍성해졌어요. 그물 가득 붙어있는 꽃게들을 끌어올리며 MC몽이 "일은 고되지만 오길 잘했다"고 하는데, 만선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마음이 안방 가득 전해지더라고요. 국민 어부라는 칭호도 얻은 김C의 묵묵한 손놀림도 선장님과 멤버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지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번 꽃게잡이배에 승선한 은지원은 몰래카메라의 행운아인 것 같아요. 일은 고되고 허리도 많이 아팠겠지만,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즉석 꽃게라면을 실컷 먹는 행운이 뒤따라 줬으니까요. 싯가 7만원 상당의 라면이라는데, 갓잡은 꽃게로 끓여먹는 것이 7만원어치의 꽃게를 넣어 끓여먹는 맛과 비교할 수야 없겠지요. 1박2일을 본후 저도 집에서 꽃게를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답니다. 냉동게였지만 몇조각을 넣고 끓였는데 국물맛이 시원한게 라면이 아주 럭셔리해지더라고요. 하지만 자주는 못할 것 같아요. 비록 냉동게지만 라면 끓일때마다 게를 넣자니 장바구니 부담이 클 것 같아서요.ㅎ

저는 이번 주 1박2일을 보면서 선장님의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선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불과 3년전만해도 연평도에 꽃게가 많지 않았다고 해요. 이렇게 많은 꽃게 수확을 할 수 있는게 해군에서 봄, 가을에 바다 청소를 해준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해군이 바다를 깨끗이 청소를 해준 덕분에 바다도 깨끗해지고, 꽃게도 많아지고, 덕분에 어업농가에 도움이 되고 있다니 바다를 지키는 우리 늠름한 해군장병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꼭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바다생태계까지 지켜주시는 해군장병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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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2 07:53




추석인데 이번 명절은 유난히 마음이 무겁습니다.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정말 그리운 분이 있어 제 마음을 적어봅니다. 마음 한구석 꼭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는데, 아마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게 슬퍼서 일거에요. 저는 종가집의 맏며느리에요. 맏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 늘 부끄럽지만 종가집의 맏며느리라는 위치는 제게는 책임감도 있지만, 벼슬을 부여받은 듯한 으쓱함도 있어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저희 시아버님 영향이 큽니다. 저희 시아버님은 늘 제게 책임감과 의무감 보다는 대우를 먼저 해주셨거든요. 제가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안돼서 아버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에미야. 너는 우리 집안의 대들보다. 네 엄니가 돌아가시면 너는 이집안의 대장인 거야, 그러니 항상 대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라"는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시동생의 결혼식 전날, 아버님이 저와 시동생을 불러앉히고 해주시던 말씀도 기억납니다. "ㅇㅇ야. 이제 너도 한 가정을 이루고 어른이 되겠지만 항상 우리집의 어른이 너희 형수임을 잊지말아라. 형수는 어머니와 동격인 사람이다. 그러니 어려운 일 있으면 형수와 의논하고 상의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들으며 얼마나 감동했는지, 평상시에도 존경했지만 아버님은 그렇게 크신 어른이셨어요. 그런데 시동생이 결혼하던 그해 7월에 병을 얻으셨습니다. 뇌졸중으로 좌측마비가 왔어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님은 일곱살 아이수준의 지적능력과 말씀도 어눌해지시고, 보행하시는데도 지장이 많으셨지요. 언어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져 예, 아니오 정도의 가벼운 말씀 밖에는 하실 수 없는 상태에 이르셨어요. 10년을 그렇게 한쪽 감각을 잃은 상태로 사시다가 작년에 다시 재발이 되서 중환자실과 일반병동을 왔다갔다 하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셨습니다. 호흡곤란으로 목에 호스까지 뚫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했지만 병을 이겨내시지 못했어요.

아버님은 제게는 너무나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외국에 나와 있어서 명절마다 찾아뵙기는 힘들었지만 전화로나마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는데, 올 추석은 어눌하신 목소리라도 들을 수 없으니 마음이 허전하고 슬퍼지네요. 추석이 다가오니 또 다시 그리운 얼굴 아버님. 나의 시아버지. 지금은 불러도 대답을 하실 수 없는 곳에 계심에 허전하고 그리운 마음이 더 커져갑니다.
이번 추석부터는 아버님 위패를 모시겠지요. 언제나 든든한 저의 후원자셨던 아버님을 보내고, 아직도 그 빈자리를 털어내지 못하고, 자책과 그리움에 이따금 빈 하늘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언제나 아버님을 생각하면 얼굴 가득한 미소, 병중이시라 모습이 애매한 미소셨지만, 제게는 늘 건강하셨을때의 미소와 오버랩되어 그저 환한 미소로만 여겨지는, 그 순박하고 저를 향한 100%아니 1000%의 사랑을 담은 그 미소가 먼저 떠오릅니다.
돌아가시기전 중환자실 계셨을때 한국에 가보지 못해 앙상하셨다는 그 모습을 전 뵙지를 못했습니다. 어머님도 우리에게 그 모습 기억시켜주고 싶지 않아서 애들과 저를 한국에 못들어오게 하셨다 합니다. 말씀이라도 하실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사람이라도 알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종손자, 종손녀, 종부로서 당연히 갔어야 했는데, 병원에 갔을때는 이미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어머님도 다른 가족들도 남편도 한사코 기다리라는 말만 하더니... 

너무나 가슴 아프고 죄송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 못된 마음이겠지요? 사실 저는 그 때문에 아버님을 그 미소와 함께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마지막 앙상한 모습을 뵙지못한 회한도 있지만요... 아버님의 임종 소식을 듣고 14시간의 비행시간, 그리고 화장터까지 달려가기까지 제겐 너무도 길게 느껴졌던 그 시간, 아버님은 그것마저도 기다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도착하기 20분전에 이미 뜨거운 불길로 들어가 한줌 재로밖에 제겐 볼 기회를 주시지 않았지요. 그렇게 서둘러 달려갔건만..
가슴 찢어질 듯한 저의 슬픔마저도, 제가 힘들까봐, 힘들어할까봐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한없이 부족한 저를 종가집 맏며느리라고 늘 예우해주시고, 대우해주시던 아버님. 너무도 사랑해주시고 아껴주고 믿어주신분. 가시면서도 제슬픔까지 걱정하시고 가셨나 싶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장례식에 가서 전 통곡마저도 너무 죄스러워 못했어요. 부음을 듣고 전화기를 붙들고, 그 이후로 또 얼마나 기진맥진되도록 울었던지, 막상 한국에 가서는 통곡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남은 가족을 향한 슬픔이 더 컸어요. 특히 우리 시어머니..그분을 위해..홀로 남은 어머니의 허전함과 망부의 고통을 향한..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저의 죄책감도 함께 실어서..

종가집의 맏며느리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국 머나먼 타국에서 살아가는 참으로 모자라고 모자란 종부로서의 멍에가 저를 옥죄어 와서 명절은 제게 참으로 슬픈 날이네요. 저의 많은 부족함을 다 이해해주신 아버님과 어머님께 늘 감사한 마음과 죄책감이 들어서요. 이제 고인이 되신 나의 시아버지, 아버님께 한 줄 글 올린다고 다 못한 도리가 덮어지지 않겠지만,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에 기어이 제마음을 써보고 말았습니다. 
가끔 전화드리면 항상 괜찮다고 "괜찮아 괜찮아" 하시던 그 음성, 생각납니다. 아버님, 괜찮은거지요? 지금은 더 괜찮은 거지요? 하늘나라에서는 예전 건강하신 모습으로 정말 괜찮은 거지요? 생전에 법없이도 사신다는 말씀 늘 주위에서 들으셨으니 아버님 편한 곳에 계시리라 믿고 기도드립니다.
이번 추석은 아버님이 정말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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