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팽년'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1.12.23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 울리고 감동시킨 최고의 명장면 (36)
  2. 2011.12.17 '뿌리깊은 나무' 결말반전, 세종과 정기준은 화해할 수 있을까? (5)
  3. 2011.12.16 '뿌리깊은 나무' 화끈한 세종, 너털웃음 속에 감춘 무서운 한 수 (5)
  4. 2011.12.15 '뿌리깊은 나무' 고개숙인 세종, 그 리더십에 열광하는 이유 (13)
  5. 2011.12.09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시나리오가 배출한 최고의 배우는? (19)
2011.12.23 10:42




누구의 죽음부터 정리해 가야할 지, 마지막회는 선혈이 낭자한 죽음들이 이어져 말 그대로 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값진 죽음, 개죽음, 죽어야 마땅할 죽음 등이 뒤범벅이 되었지요. 그중 개죽음 1순위에 꼽을 인물은 돌궐족 대적불가 개파이의 죽음이겠죠. 정기준과 어떤 연유로 함께 했는지 조선에 온 이유조차 모르고, 마지막은 변발로 두발단장까지 깔끔(?)하게 하고 죽은 놈이죠. 무휼과 강채윤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정기준 따라 남의 나라와서 그야말로 살인병기로 이용당하다 죽은 개죽음.
반쪼가리 윤평의 죽음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으나 평생 모시는 주군을 지키기 위해 죽었으니, 아무도 원망마라 네 팔자다 싶고...도담댁은 반촌의 행수로 왜 정기준과 밀본에 충성하는지, 대의보다는 정도광 어른에 대한 노예의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대를 이어 충성한 뼈대있는(?) 천민의 죽음 정도되겠습니다. 
마지막 반전은 한가놈(조희봉)이 한명회라는 것, 이 또한 오래전부터 짐작했던 일이었기에 그의 입으로 본명을 말할 때 잠깐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성삼문과 박팽년과 부딪칠 때는 몇년 후에 벌어질 참혹함이 떠올라 치를 떨게 했지요.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고 순진무구하게 지나치는 성삼문과 박팽년의 얼굴이 아른거려, 곧 닥칠 슬픔이 오버랩되는 장면이었지요.
정기준은, 음 마지막까지 쥐새끼같은 행동을 하더군요. 청계천 비밀통로를 따라 경성전에 잠입해서 감히 용상에 앉아 죽었으니, 마지막 길이 호사스럽기는 했으나 끝까지 발칙한 놈이었습니다. 제작진이 정기준의 마지막을 용상에 앉혀 죽이는 것에 당혹스럽고 화까지 나더군요. 용상에서 피까지 꿀럭꿀럭 흘리는 것을 보고는 더럽혀진 용상을 어이할꼬 걱정스럽기 까지 했네요. 풍자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 청계천을 복구한 인물이 옛말로 치면 지금 용상에 앉아 죽을 쑤고 있다죠. 
소이가 해례임을 알게된 정기준은 소이를 죽이라는 명을 내리고, 때마침 현장에 당도한 강채윤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지요. 정기준의 목을 겨냥한 채윤, 소이를 풀어주라고 하고 다행스럽게 도망을 치는데는 성공했지만, 개파이의 독화살을 맞고 소이가 벼랑아래로 떨어져 버리지요.
동이 터오자 의식을 회복한 소이는 독이 퍼져감을 알고 동굴에 몸을 숨겨 제자해를 적어가기 시작합니다. 속치마를 찢어 해례본을 작성한 소이, 소이의 마지막을 보는 시청자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지요. 소이를 찾은 채윤에게 제자해를 반포식에 맞춰 가져가라 이르고는,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게 한 소이였지요. 오라버니 만나서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꿀맛같은 잠을 잘 수 있었노라, 그래서 행복했노라 고백하는 소이, "우리 글자자가 성공적으로 반포되는 모습, 백성들이 그 글자를 읽는 모습, 오라버니 눈을 통해서 꼭 볼거야. 오라버니가 반드시 봐야 돼. 가서 내게 보여줘".
채윤의 품에서 긴 잠에 빠져든 소이였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야 된다는 어명을 지키지 못한 소이였습니다. 언제 누가 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이의 머리맡에 다정하게 놓여있는 목기러기 한쌍에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요.
"백성은 고통으로 책임지고 있다고 오라버니가 그랬잖아. 무서워 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어. 우리 아버지 석삼이 아재 다 그렇게 죽었잖아", 윗것들 싸움에 머리통 깨지고 밥그릇 빼앗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랫것들의 삶인지, 고통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절실하게 와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이의 제자해를 들고 광화문을 향해 뛰어가는 강채윤의 동공은 풀어졌고, 그의 허망한 눈빛을 통해 삶과 죽음이 부질없음이 느껴졌습니다.
백성들 틈에 쥐새끼처럼 숨어든 정기준은 살인병기 개파이에 의해 세종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지요. 변발로 멋을 낸 개파이는 복싱선수들이 입장을 하듯이 머리까지 시꺼면 옷을 뒤집어쓴 채 세종을 향해 걸어갔고, 금위군의 방어는 속수무책으로 뚫려버리지요. 비호처럼 날아오는 무휼, 몇합을 겨루면서 서로 찌르고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지만, 개파이 앞에 무릎을 꿇고 만 조선제일검 무휼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주군을 지키기 위해 개파이의 바지를 움켜잡는 무휼의 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가장 슬픈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세종을 향해 하늘을 나는 개파이, 절체절명의 시간에 독수리처럼 하늘을 가르는 이가 있었으니, 소이를 잃은 슬픔조차 가누지 못하고 반포식장으로 해례를 가지고 온 채윤이었습니다. 채윤이 옷이 찢어지며 흩날리는 제자해들은 소이의 눈이었고, 소이의 귀였고, 소이의 입이었고, 소이의 손이었습니다. 소이(해례)는 그렇게 만백성들에게 희망의 씨앗처럼, 바람을 타고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지요. 멋드러진 영상미이기도 했지만, 글자가 그렇게 퍼져나감을 의미하는 상징성까지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세종을 지키는 개파이의 바지를 움켜 쥔 무휼, 공중에서 소이(해례)를 가슴에 안고 떨어지는 강채윤의 모습 두 장면은 제가 마지막회에서 가장 가슴아파했고, 의미를 주고 싶은 명장면입니다. 또한 채윤이 소이에게 지어주던 마지막 웃음, "보고 있니 담아, 글자가 반포되었다" 라고 전하는 장면에서 장혁의 표정은 예술이었죠.
고통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 원망도 없었고, 희망의 씨앗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여주고 마지막 임무를 다했다는 듯, 편하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백성은 고통으로 책임져 왔다는 똘복이의 말처럼, 이런 고통이라면 행복하였노라고 고백하는 장면처럼도 보였고 말입니다. 죽음도 아깝지 않게 지킬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우리의 글자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의 손에 들린 제자해는 연두의 노력으로 읽히고 있었고, 이미 역병처럼 번져버린 글자를 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정기준은 칼을 거두고 말지요. 조말생의 눈에 걸려 추적을 당해 현장을 뜨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세종과의 마지막 인사가 있었기에 피투성이인 채로 궁으로 잠입하게 하더군요.
무휼과의 일전에서 이미 중상을 입은 개파이였지만, 대적불가 개파이는 채윤에게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베고 베이고 피가 튀는 현장, 끝내 개파이는 채윤의 일격을 받고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지요. 잘가라 퉷! 정말 이놈은 왜 조선에 왔는지 모르겠네요. 견적희마저 짐보따리 싸서 도망쳤다고 하니, 명나라 왈짜패들을 고향으로 퇴출시켜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무휼, 채윤을 죽인 너에겐 심히 유감이 많다!
무휼도 채윤도 세종에게 왕의 길을 가라고 했지요. "무휼에겐 무사의 길이 있고, 전하에게는 전하의 길이 있사옵니다",  소이의 행방을 묻는 세종에게 채윤이 눈물로 대답하지요. "어서 가셔야지요. 반포하셔야지요. 담이가 보고 있잖습니까 전하.", 그리고는 가슴에 품고 온 소이를 건네는 채윤이었지요. 무휼과 채윤은 늘 그랬습니다. 언제나 세종이 가는 길을 믿어주고 힘을 주었던, 그의 손과 발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이의 죽음을 예상하는 세종, 왈칵 쏟아지려고 하는 눈물, 그러나 왕은 울 수가 없습니다. 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는 자리가 왕의 자리였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을 주위를 돌아보며 삼키는 세종이었지요. 한석규의 섬세한 감정선에 감탄사 연발하며 울었네요.
제자해를 모아 반포식을 다시 시작하는 세종, "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이 일러 말하고 싶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아, 내 이를 위하여..." 미처 완성하지 못한 서문은 즉석에서 잇는 세종이었습니다. "내 이를 위하여 백성들을 어엿삐 여겨 새로 스물 여덟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나날이 씀에 있어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글이 길어져도 세종대왕의 뜻과 백성에 대한 사랑에 감사를 드리고자 훈민정음 서문을 그대로 썼습니다. 소이가 적은 피묻은 제자해를 읽으며, 소이와 글자를 만들던 과정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으면서도,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고 스물여덟자 해례를 읽어내려가는 세종이었지요.
안간힘으로 글자가 반포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채윤은 쓰러지고 맙니다. "백성은 늘 고통으로 책임진다 하지 않았습니까? 보십시오. 담이 똘복이처럼...". 소이가 전해달라고 했다는 말을 끝으로 세종의 품에서 눈을 감은 세종의 첫백성 똘복이였습니다. 
풀어진 눈으로 하늘을 향해 담이에게 웃음짓던 채윤의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가 않네요. 담이에게 그렇게 지켜보았노라고, 너의 눈으로, 또한 나의 눈으로 너의 글자가, 우리의 글자가 반포되는 것을 보았노라고, 그리고 너의 곁으로 가겠노라고 미소짓는 채윤이 모습이 말입니다. 여기서 분위기 확깨는 쓸데없는 말 덧붙이면 혼날텐데, 암튼 요런 것 쓰면 안되는데, 분위기 침울해서 웃음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세종의 품에 안겨 죽은 채윤, 이상한 포즈로 안기다보니 단발머리가 되었더라는;;

무휼과 채윤, 소이의 죽음은 세종을 서있을 힘도 없게 합니다. 그런데 뜨헉, 이게 뉘신가? 정기준이 비밀통로를 통해 쥐새끼처럼 경성전 용상에 떡 하니 앉아있습니다. 피를 질질 흘리면서 말입니다. "니 꼬라지가 이게 뭐냐? 정기준!". 욕도 안나오고 화도 나지 않은 세종, 그만큼 허탈하고 슬펐고, 그만큼 그의 사람을 잃은 허망함이 커서였을 겁니다.
"당신의 글자는 위정자와 지배층에 그렇게 이용될지도 모른다", 정기준이 세종과의 토론을 이었지요. 아주 오래전 성균관의 사당에서 정도전의 치국사상을 놓고 벌였던 논쟁의 일부였지요. 조선경국전 정보위의 내용입니다. "무릇 백성은 어리석어 보이나 지혜로써 속일 수 없다 했다. 허나 그 말은 어쩌면 어리석기 때문에 속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혜가 없는 산이나 바위를 속일 수 없는 것처럼... 헌데 너의 글자로 지혜를 갖게 된 백성은 속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속게 되고 이용당하게 될 것이야.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개새끼처럼".
정기준은 말귀를 알아듣는 백성이기에 위정자들이 더 속이려 들을 지 모른다는 경고를 하지요. 말귀 못알아듣는 개나 산, 바위는 그냥 무시를 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알아듣기에 더 교묘한 수로 속이려 들것이라는 것입니다. 정기준의 말은 여전히 칼처럼 예리합니다. 언론을 통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을 세뇌시키고 있으며, 간교하기 그지없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은 정교하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세종은 부정도 긍정도 아닌 대답으로 정기준에게 답하지요. "그들은 그들의 지혜로 지혜를 모색해 갈 것이다. 그리고 매번 싸우고 또 싸우려 할 것이다. 어떤 때는 이기고 어떨 때는 속기도 하고...지더라도 괜찮다. 수많은 왕족과 지배층이 명멸했으나, 백성들은 이땅에서 수만년 동안 살아왔으니까...또 싸우면 되니까".
죽은 정기준을 향해 세종이 울부짖지요.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헌데 이제는 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야. 여기가 이렇게 아픈데,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가 있겠느냐. 고맙구나 정기준". 세종은 오랜 시간 스스로 고민하고 절망하고 고뇌하며 얻고자 했던 답을 찾았습니다. 백성이 그에게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이었지요. 사랑이라고...
희미하게 웃는 정기준은 처음으로 세종을 인정하더군요. 주상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이제 주상의 말이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백성의 힘을 믿어보고 싶다는 정기준의 항복과도 같은 인정이었고, 또한 바람이었습니다.
무심하게 흘러버린 시간은 1년후의 향원정에서 멈췄지요. 차디찬 겨울흙을 뚫고 나온 노란 꽃 한송이, 이름없는 들꽃이 세종의 눈을 붙들었지요. "이 꽃이 원래 여기 있었더냐? 수십년동안 수천번을 바라보았을텐데 저런 꽃이 있는 줄도 몰랐다. 궁의 하늘이 저렇게 파랗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청와대 뒷산을 오르며 같은 말을 했던 분도 있었지요. 참 많은 것들이 겹쳐 보입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은 세종의 주위에는 스산한 바람만이 불고 있었지요. 너무나 고독했고, 너무나 쓸쓸해 보였고, 임금의 길을 두고 오랜 시간 고뇌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길을 가기 위해 밤잠을 포기한 수십년의 시간, 글자를 백성들에게 주고, 세종은 더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를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던 열정이 사라진 듯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반전처럼 그에게 노란 꽃을 보게 하더군요.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 색의 꽃, 그것은 세종이 만든 글자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희망을 암시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글자는 세상의 것이고, 저들의 것이다. 그 글자가 어떤 세상을 만들지도 저들의 책임이다".
일이 없을 때는 향원정에서 그 꽃을 본다는 마지막 대사는 희망을 보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습니다. 수십년동안 피고 지고 반복했을 이름모를 들꽃, 백성은 그렇게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눈길과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보기에는 약하고 여리지만, 추위를 뚫고 나온 인동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말입니다. 세종이 보고 있던 들꽃은 똘복이와 담이였습니다. 글자가 뿌린 씨앗은 또다른 똘복이와 담이, 또 그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는 그들의 역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고 있는 우리말  우리글자인 한글, 너무나 익숙해서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쓰고 있지요. 수만번을 봐왔을 꽃인데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문득 한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음에 놀랍니다. 밀본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한글이 퍼지지 못하도록 천시하고, 천대해야 한다는 새 강령을 마련해 지하로 꽁꽁 숨어들었고, 한명회라는 걸물(?)이 전면에 나서 집현전을 박살내 주겠다며, 다가올 비극들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그후로도 500여년을 한글은 밀본과 싸워온 셈이고,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말에, 지금은 영어가 대세인 시대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태종 이방원의 예언처럼 이도의 길은 훨씬 더 참혹하고 힘든 길인가 봅니다. 그러나 이도는 성공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거의 모든 국민이 문맹을 벗은 오늘, 한글은 이름없는 들꽃처럼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공기와도 같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정기준과의 토론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우리는 희망의 이름이 될 것인가? 한글이라는 위대한 글자를 만들어 주신 세종대왕에게, 희망이라 확신시켜 줄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세종의 말대로 때로는 이기기도 하고, 때로는 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항상 싸워왔듯이, 앞으로도 싸울 것이라는 겁니다. 지치지 않고 피어나는 들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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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4 Comment 36
2011.12.17 09:04




뿌리깊은 나무에서 간댕이가 배밖으로 나오다 못해 심지어 마당까지 쓸고 있는 인물이 둘 있었죠. 감히 임금의 이름자를 부르는 대역죄인들로 그 자리에서 목을 뎅강 잘라버려도 할말없을 강채윤과 정기준입니다. 유일하게 세종을 이도라고 칭하며 어금니를 갈던 인물들이죠. 세종과는 개인적인 원한과 사상적 이념적 대립으로 얽혀 드라마의 대립축을 형성했던 인물들입니다. 강채윤은 드라마 중반까지도 세종과 화해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원수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고, 정기준은 세종의 권력을 무력화시켜 상징적인 꽃으로 남겨두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큰 변수가 생겼지요. 세종이 만든 글자때문입니다. 세종의 글자는 강채윤에게는 생생지락의 희망이 되게 했고, 전장을 누비며 갈아왔던 복수심을 내려놓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백성도 대의라는 것을 가져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설레이게 합니다. 소이와의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그의 아들 딸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또 그 아들 딸의 아들 딸들이 글자를 익혀, 지금보다는 삶이 덜 고달파질 것을 꿈꾸게 하죠.

정기준에게 글자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게 하는 것이 세종의 글자였고, 혁명과도 같은 글자, 역병과도 같은 무서운 파급력을 가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분산, 그것도 백성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무지몽매한 군중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것이었으니, 정기준은 혼돈에 빠질 조선의 미래를 염려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도의 무책임한 책임 떠넘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성리학보다, 사대부의 임무보다, 정도전의 밀본지서보다, 글자를 막는 것이 그의 시대적 사명이 된 것은, 어찌보면 백성에게 권력을 나눠주려는 세종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해, 백성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정륜암에서의 끝장토론은 무승부였고, 어느쪽도 설득하지 못하고 설득당하지도 못했지요. 책임부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들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세종도 정기준을 만나고 와서 흔들렸고, 정기준 역시 사대부가 백성을 교화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 대한 고민에 직면하게 되었고요.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화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서로의 길을 더 치열하게 가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말입니다. 불씨일대기를 펴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버린 정기준이었고, 글자로 인해 벌어질 미래가 혼돈일 지, 희망일 지는 그들의 몫으로 두겠다며, 현재의 백성을 위해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겠다는 세종이었지요.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를 쓰면서 맨 마지막으로 바를 정(正)자를 썼던 것은, 백성에게 글자를 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그가 내린 결론이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정기준을 어떻게 처리할까는 제작진 뿐만이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이제 2회만을 남겨두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 어떤 결말이 될지, 아니 누가 죽게 될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두고 지켜보겠지만, 저는 정기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더 무게를 두고 생각중입니다. 작가는 아니지만;;
정기준과 강채윤은 세종에게는 임금으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어떤 군왕이 될 것인가에 대한 아킬레스건이자 트라우마였고, 과제였습니다. 세종이 강채윤을 두번째 판관이라면서, "가장 멀리있는 자이니 가장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더냐" 라고 했었지요. 강채윤과 정기준의 공통점은 세종에 대해 아버지를 죽게 한 원수, 혹은 그 아들이라는 복수심과 분노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세종이 하는 일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인간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이기에, 가장 멀리있을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그들이 세종의 글자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다른 누구의 판단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채윤과 정기준이 원한과 증오심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한다는 것이야 말로 글자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두 사람 모두 세종의 글자를 보았고, 강채윤은 머리를 조아려 완전히 세종에게 감복하고 그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처음으로 뱉은 강채윤의 인사는 판관으로서 글자에 대한 그의 의견이기도 했습니다. 정기준도 세종의 글자를 판단했고, 놀라운 글자, 훌륭한 글자라고 인정했지요. 그러나 글자가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세종의 뜻에 동의하지 못하는 정기준이지요.
정기준은 세종에 대한 글자를 보고 공포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글자를 알게 된 백성이 지혜를 가지게 되고, 들끓는 군중의 욕망이 정치를 향하게 될 때의 혼돈에 대한 공포입니다. 백성의 욕망에 대한 경계이지만, 정기준의 생각을 사대부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정륜암에서 세종은 정기준에게 핵심적인 말을 했었습니다. 정기준이 경계하고 걱정하는, 백성이 힘을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에 대해서 말입니다. 정기준은 백성의 들끓는 거대한 욕망을 만나면 공포에 질리게 된다고 했죠. 그 욕망들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요. 욕망들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세상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백성의 욕망은 정치를 향하게 돼 있으며, 나아가 그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려 들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까지 했지요. 백성들이 뽑은 지도자가 실정을 하면, 그 백성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것이냐며, 세종이 글자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나눠주려고 하는 본심은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지요. 자신이 백성으로 살았기에 백성들에게 희망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책임을 질 수 있는 몇몇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면서 말이지요.
그 때 세종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대체 너는 백성에 대한 신뢰가 어찌 그리도 없단 말이냐? 정말 측은한 일이다".
세종은 울부짖고 분노하는 백성을 통해, 힘없는 백성과 무서운 백성을 동시에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랜시간 참고 인내하며 설득해왔죠. 강채윤을 설득한 것이 그 예지요. 그 진심이 전해졌을 때 강채윤은 완전한 세종의 백성으로 거듭났고, 누구보다 강하게 신뢰할 수 있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힘이 아닌 말로 설득했고, 취함이 아니라 베품으로 설득했고, 명령이 아니라 허락으로 설득했고, 고기를 잡아 먹여주지 않고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쳤고, 고기가 아닌 그물을 주었습니다.
강채윤은 여전히 감시자입니다. 왕의 가장 강한 견제자입니다. 윗것들 싸움이 아랫것들을 살리는지 죽이는지를 두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그래서 죽이면 안되욤!!!

중요한 정기준을 어떻게 처리할까의 문제입니다. 세종은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습니다. 그를 이도라고 부르는 가장 멀리있는 자 중 한사람만을 설득했으니 말입니다. 정기준과의 화해, 혹은 정기준을 설득해야 만이 세종의 대의가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의에 대한 평가는 말 그대로 후세의 몫일지라도 말이지요. 
여기서 강채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강채윤은 백성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소이와 나인들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들은 한글창제에 동참하고 유포라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일이라고 신명나게 합니다. 명령을 받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일을 합니다. 강채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멀리있는 자가 가장 가까이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주인의식이었습니다. 희망에 대한 설레임때문이었습니다. 
정륜암에서 정기준은 칼을 겨누고 있던 강채윤을 천 것이라는 말로 자극하려 했지요. 어찌 아비를 죽은 원수인 임금의 편에 설 수 있느냐며, 그것을 천한 노예근성이라고 채윤의 감정을 자극하려 했었지요. 그때 채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칼로 대답하려는 것을 소이가 말려 상황을 정리시켜 버렸고요.
세종과 정기준이 남겨둔 토론의 결말은 강채윤과 정기준이 해결지어야 할 문제와 같은 것입니다. 백성의 책임, 백성의 욕망에 대한 답이 바로 강채윤이기 때문입니다. 강채윤이라는 인물은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캐릭터입니다. 처음 강채윤이 등장했을때 깨방정을 떨며 사기꾼처럼 위장했던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겸사복이 되어서는 원수 이도를 죽일 기회가 가까워졌음에 오직 어사주를 받는 날을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수사에 뛰어드는 수사관으로 진중해져 갔지요. 세종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이후 강채윤은 가치관의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글자가 밥을 주는 것도 아닌데, 글자를 백성들을 위해 주네마네 하는 임금도 웃겼고, 백성들이 글자 좀 익히는 것이 뭐 대수라고 성균관 유생이 투신자살까지 하는지 한마디로 꼴갑들이었지요.
윗것들의 싸움이 윗것들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글자가 줄 희망때문이었습니다. 아랫것들이 똑똑하지 못하면 윗것들의 싸움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희망을 가지고 주체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기준이 간과한 것은 이것입니다.

강채윤은 세번에 걸쳐 세종을 잡아주는 백성 역할을 충실히 했지요. 집현전 학사의 죽음이 연이어 벌어졌을때, 흔들리는 세종은 강채윤의 "결심이 왜 결심이겠느냐"는 말에 너는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라고 의지를 세웠지요. 광평대군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세종에게 강채윤은 한발짝 더 나와 힐난하기 까지 했습니다. "전하는 한방울의 눈물을 흘리실 자격이 없으십니다" 라고요. 위험에 처한 소이때문에 또 세종은 흔들렸지요. 그때도 강채윤은 백성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또 흔들리고 계십니까? 흔들림없지 전하의 길을 가십시오".
정기준은 왜 강채윤이 세종의 일에 함께 하는지 그것을 욕망때문이라고, 이도가 심어준 거짓 사탕발림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백성에 대한 신뢰가 없는 그이기에 말이지요. 세종을 가장 신뢰한 것은 결국 백성이었습니다. 백성이 신뢰하는 것은 세종이 아닙니다. 세종의 뜻이며, 백성에게 향하려 한 세종의 진심입니다. 백성은 정기준의 우려처럼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빠듯해서 정치에 관여할 여력이 없는 것이 백성입니다.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잡초처럼 스스로 자생하고 커갑니다. 강채윤을 변화시킨 것은 세종이 아니라, 세종이 뿌리내려 주려한 희망때문이었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세종을 세워줬던 것은 백성 강채윤이었지요. 백성을 위한다고 말로만 성리학의 나라, 사대부 선비입네 하면서, 진정 백성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왜 반대하느냐고 따질 수 있는 인물은 세종이 아닌, 백성 강채윤입니다. 그가 임금이나 사대부나 그토록 강조하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정기준의 우려처럼 백성은 무지몽매하지만은 않지요. 스스로 판단하고 자각하고 커가는 것이 백성입니다. 글자는, 세종의 글자는 이런 백성들을 더 많이 만들 것이며, 이렇게 자각하는 백성이 많아지면 사대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깨어있는 백성은 사대부를 깨어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이는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똑똑한 국민은 결코 멍청한 정치인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똑똑하고 강한 백성이 있는 한, 나라는 결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왕조의 이름이나 지배세력은 달라지겠지만, 백성은 결코 뿌리가 잘려나가지 않습니다. 정기준이 이 부분에서 세종과 화해했으면 싶군요.
결말에 반전이 있을 거라는 예상도 되고, 정기준의 자결과 밀본의 와해를 다룰 가능성이 크지만, 저는 왠지 세종이 정기준을 살릴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세종이 반쪼가리 윤평에게 했던 말이 있었지요. "나는 피로써 갚지 않겠다. 다만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네 놈들이 어떻게 실패하는지". 세종의 치세에 사사시킨 예가 없다는 점에서도, 정기준이 잡힌다면 사형을 시킬 세종은 아닐 듯합니다. 물론 정기준의 최후는 배신한 밀본원에 의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광평대군에게 사과하며 했던 말처럼, 깔끔하게 자결로 마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도 저는 혼자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키득거린답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산골오지니 섬에 귀양을 보내 숨어살게 하면서, 그곳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훈장을 하라는 것으로 벌을 내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정도전의 후손에 대한 세종의 마지막 예우로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정기준과 세종이 화해해야 하는 이유는 세종이 꿈꿨던, 모두를 품는 마방진이 진정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입니다. 정기준은 세종이 마지막까지 참고 인내하며 설득해야 할 마지막 조각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글자가 백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역사를 어떻게 다르게 했을 지, 세종도 정기준도 모르는 일입니다. 희망의 씨앗일지, 지옥문을 여는 시작일지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백성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살기와 원한을 버리고 글자를 지키려는 강채윤, 목숨을 걸고 글자를 유포시키려는 소이와 같은 나인들의 설레임, 그것은 역사의 주체가 되어가는 작은 시작이었을 겁니다.
희망은 스스로 만들어갈 때 힘이 되어 움직입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을 믿는 것이며, 미래를 믿는 것이기에 희망이라 하는 것이겠지요. 씨를 뿌리는 농부가 수확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씨를 뿌릴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백성들에게 일렁이고 있는 희망을 정기준이 마지막까지 외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기준 그 역시도 백성에게 이로운 것을 고민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을 거라 믿기에 말입니다. 정기준이 죽음을 맞이하든, 제가 생각하는 한글훈장님이 되라는 벌((ㅎㅎ)을 받든, 마지막에 한가지는 꼭 했으면 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까지는 아니어도, 이도가 아니라 '전하'라고 진심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제가 바라는 해피엔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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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0:41




소이, 덕금, 목야가 납치되었음을 알고 고심하는 세종, 글자로 인해 또다시 자신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것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세종을 잡아준 이는 채윤이었지요. 누구보다 소이의 안위에 애간장이 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채윤이지만 세종을 탓하지 않지요. 소이를 지키지 못한 자신때문이라며, 세종에게 전하의 길을 계속 가라는 채윤이었습니다. 혁명과도 같은 글자는 강채윤에게도 목숨을 걸고 지킬 그 무엇이었습니다. 소이가 원하는 길이라는 것, 또한 강채윤이 처음으로 가져 본 대의라는 것,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거지들을 죽여버리고, 아이들에게 죽음을 부르는 노래라고 글자가 퍼져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살인병기 윤평, 글자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수거하고 나인들을 납치해 밀본산채로 데려갔지요.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하는 정기준은, 글자의 유포를 막았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나 밀본내에 불고 있는 배신의 그림자는 피바람을 예고하며 밀본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심종수와 이신적의 동상이몽은 정기준을 몰아내고 밀본의 수장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각각의 명분으로 등을 지고 맙니다. 삼봉 정도전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며 밀본의 차기 수장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심종수, 밀본이라는 붕당의 수장이 되어 재상총재제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라는 제안을 받은 이신적, 대의와 명분은 욕망이라는 덫에 걸린 채 서로를 향해 칼부리를 겨누고 있으니, 이 상황을 지켜보는 정기준이야말로 가장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밀본과 글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도담댁과 한가놈(조희봉)의 충정어린 호소는, 정기준으로 하여금 큰 결심을 하게 할 듯 보이더군요.
재상총재제의 구현이 조선 정치체제의 안정을 위한 삼봉 정도전의 이상이고, 한 사람의 왕에 의해 나라의 명운이 좌지우지되는 것보다는, 현명한 다수의 사대부들이 나라를 경영하는 것이 백성들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는 삼봉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지만, 정기준은 기필코 글자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글자는 말이다, 이도와 내가 서로의 생각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난 역사를 놓고 벌이는 이도의 이 위험천만한 장난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정치를 하는 자가 백성을 두고 어찌 될지도 모르고, 자신이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시험을 해보려 하다니, 기껏해야 50년도 다스리지 못하는 일개 왕따위가!!!".

정기준의 말은 현재의 우리가 듣기에는 한참이나 잘못된 생각이지만, 당시로서는 지식인의 고민이었고, 무게였을 겁니다. 정기준에게는 글자를 막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백성과 역사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글자로 인해 벌어질 혼돈을 방지하자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백성에 대한 걱정이었고, 역사에 대한 책임부분이었지요. 글자가 무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글자도 일종의 체제속에 있어야 한다는 사고관이지요. 글자에도 하늘과 땅, 상하 질서계급을 부여한 철저한 성리학적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었죠. 
정기준이 말은 다른 의미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이 국민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그 역사적, 정치적 책임부분에서 진지한 고민보다는, 특히 실적위주의 정치를 펴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말입니다.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는 분들보다는 정기준의 고민이 오히려 진지하게 들리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정기준과 이도는 글자가 가질 역사적 가치와 백성의 희망이라는 부분에서 생각의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지만, 백성에게 이로운 것에 대해 같은 무게로 고민하는 지식인들이라는 점에서는 화해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심종수의 하극상의 칼 역시 정기준에게 충격이었겠지만, 심종수의 말은 정기준이 글자를 막는 것에 급급해 간과한 것을 곱씹어 볼 여지를 주기도 했지요. 
밀본은 말 그대로 하극상으로 칼부림이 나기 일보직전입니다. 예고편을 보며 심종수가 조선의 선비다 라는 말로 비장한 결심을 하는 장면이 보였는데요, 정기준을 치기 위해 칼을 드는 것 같더군요. 어제의 동지가 오늘 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하는 것이 바로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정기준은 세종에게 백성의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고 글자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정작 정기준은 권력의 욕망 앞에 부서지고 배신하는 밀본원들을 보게 되지요. 박쥐형 이신적의 욕망, 사대부의 대의라는 말로 명분을 세웠지만 심종수 역시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인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이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겠지요. 대의와 명분이라는 이름으로 눈가림한 사대부 기득권층을 위한 욕망인지, 진심으로 백성을 향하는 욕망인지 말입니다.
정기준이 하극상의 칼을 받고 경악하는 시각, 세종은 이신적을 만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적 담판에 나섰지요. 노련한 정치 100단들의 허허실실 대화는 소름끼치게 흥미로웠던 장면이었습니다. 안석환이라는 중견배우의 내공과 한석규의 미친연기력이 추위도 녹여버릴만큼 숨막히게 하더군요. 본심들을 감춘 웃음이 서로 어떤 의미인지를 다 알면서도, 내숭으로 눙을 치는 두 사람의 독대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겪은 고수들의 한판이었죠.
전하의 길을 가라는 채윤의 응원에 탄력받은 세종, 이신적을 쥐도새로 모르게 가마에 태워 와 술상앞에 마주합니다. 세종에게도 이신적에게도 철저한 보완이 필요했기에, 007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으로 말이지요. 초반에는 쓸데없는 말로 분위기에 흥을 돋구지요. "내 치세를 어떻게 보시오?", 이런 것을 질문이라고, "태평성대지요...". 다 신료들 덕분이오, 우상도 고생많으셨소. 술한잔 기꺼이 하사하는 세종, 우상이 술을 마시기도 전에 간이 콩알만해지는 질문을 던지지요.
 "밀본이시오?". 세종 정말 화끈하십니다! 우상 이신적 속에서는 간이 철렁 소리를 냈지만, "소신이 어찌..", 애매모호한 답을 하지요. "아이고, 농이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능청스럽게 이신적을 가지고 노는 세종, 밀당의 고수였죠. 얼랬다 달랬다 사탕물리고 옆구리 차고, 아무튼 세종대왕 짖궂기도 하셔라~

그리고는 강도높은 질문에 들어가지요. "밀본의 가장 큰 대의가 재상총재제인데 어찌 그걸 거부하셨소?". 집현전과 글자를 두고 거래를 했다가 협상당일 결렬되고 말았던 일을 끄집어내는 세종이었지요. 영리하게 세종은 우상이 빠져나갈 쥐구멍 하나는 만들어 줍니다. "아, 우상이 밀본이라는 가정하에 말이오". 일종의 오프 더 레코드에 해당되는 세종의 영리한 수였지요.
이신적도 세종이 자신이 밀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듯 보였지만 능란하게 받아 치지요. 밀본이라고 가정하고 답을 올리겠다고 말이지요. "그것은 내부에 의견을 달리한 자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는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끙끙 앓던 속풀이까지 하지요. "소신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엇이 재상총재제보다 우선할 수 있겠습니까? 어쩔 줄 몰라 미치겠습니다". 이신적의 말에는 글자반포를 양보해 주고 재상총재제를 관철시켜, 재상의 자리에 앉겠다는 야무진 꿈을 깨버린 정기준에 대한 원망이 들어있었지요. 밀본에 분열이 생긴 거냐고 묻는 세종, 이신적 아차 걸렸구나 싶어 또 안절부절 눈이 팽글팽글 튀어나올 지경입니다. 요럴 때는 웃어주는 것이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특효약이죠. 우상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줄 몰랐다고 세종 껄껄껄 웃어보이지요.
세종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지요. 밀본에게 자복하고 나와서 토론하자고 했는데, 왜 우상은 자수를 안했냐며, 아~주 부드럽게 물어 주시지요. "믿음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전하를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무인정사때 삼봉선생이 참혹하게 죽은 후 역당으로 낙인 찍힌 세월이 수십년입니다. 그 긴 세월의 기억을 하루 아침에 잊고, '소신이 밀본입니다' 라고 나서기에는 불안한 것이겠지요".
"경연장에서 광평을 죽인 것에 대한 죄를 묻지 않겠다, 또 밀본을 붕당으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보다 더 믿음을 줄 수는 없소이다", 요지는 이렇게 많이 양보하고 참아줬는데 뭘 더 내놓으라는 것이냐고 돌려말하는 세종이었습니다. 이신적의 대답도 만만치 않았지요. 전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인간의 뿌리깊은 불안을 달래주지는 못하셨다고 받아치지요. 그 불안감을 달래줄 수는 없으니, 그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떠보는 세종이었지요.
세종도 영리하지만 이신적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또 쥐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이신적이었지요. "소신 멍청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못알아 듣겠습니다". "이런 답답한..." 세종의 너털웃음 웃음 뒤에는 이런 마음을 숨겨버리더군요(허, 요놈 봐라, 목숨줄 길게 붙들고 살고 싶다 이거지?). 짧은 순간 일그러지는 입모양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더군요. 한석규의 세심한 연기는 입술이라고 예외가 없더라고요. 입속의 혀까지도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는 듯 보였고 말이지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싹하게 무섭기까지 한 입모양에서는, 이신적을 한 대 치고 싶어하는 세종의 심정마저도 느껴졌으니 말입니다. 
의미없는 헛웃음으로 대화를 정리하는 세종, 그러면서 한말씀 콕 찔러 오줌 잘금거리게 만들어 버리지요. "우상께서 이리 그럴 듯하게 얘기하시니, 내 우상대감이 밀본인 줄 알겠소". 하하하. 이신적 술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몰랐을 겁니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냐', 뭐 이런 심정이었겠죠.
밀담은 끝났고 먼저 나가는 우상, 그냥 돌려보낼 세종이 아니었지요. 진짜 본론이 남았는데 말입니다. 이신적에게 빼도박도 못하게 세종이 쐐기를 박아버리지요. "정기준을 넘기시오". 크헉...심장이 쪼그라지게 하는 세종의 말에 이신적의 눈이 튀어 나오더라죠. 세종의 말인즉슨 정기준을 넘기고, 스스로 밀본임을 자복해서 밀본의 수장이 되어 조정에서 재상총재제를 주장하라는 폭탄제안이었습니다. 불안해서 믿지 못하겠다면, 스스로 그 믿음을 만들어 보라는 말이 이것이었죠. 붕당의 수장이 되어 과연 세종이 어떻게 나오는지 직접 경험하고 믿어보라고 말입니다.
다른 의견이라 하여 대역으로 몰지 않겠다, 자신과는 다른 정치관을 가진 붕당이라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세종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밀본입니다. 개미새끼 한마리도 조정 앞마당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세종이 대역조직인 밀본마저 품겠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죠. 이신적에게 붕당의 깃발을 들고 나오라고 제안한 것은 두가지의 노림수가 있었죠. 하나는 정기준의 소재를 알아 정기준과 담판을 하고, 소이를 구하기 위해서 였지요. 또 하나는 밀본이 스스로 와해되든지, 명분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커가는 기회를 갖든지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와해되는 밀본, 배신에 배신이 겹치는 상황에서 정기준의 생각은 어떻게 변할까가 가장 궁금한 대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상상해 왔던 시나리오를 내일 올릴 예정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

오늘의 보너스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정인지가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마구마구 웃었답니다. 정인지와 최만리가 동갑이라죠. 일찍 곰삭아 버린 최만리가 놀림받을 때마다 자네 편들어줬다고 생색내는 정인지가 웃음 하나 터뜨려 주지요. 자기가 동안인 것이지 최만리가 노안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말이죠. 최강의 동안 정인지, 최강의 노안 최만리 두 동기동창생의 대화가 은근 웃겼습니다.
워낙 근엄한 최만리대감, 생전에 웃어는 봤을까 싶은 표정인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웃음을 터뜨리시기는 하더라죠. 그것도 근엄한 웃음이기는 했습니다만.ㅎㅎ 물론 역사에도 나와있듯이 최만리는 끝까지 한글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만리의 생각을 고집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당시 사대부들의 사고방식이 하루아침에 깨지기는 쉽지 않았겠죠. 생각의 틀을 깬다는 것, 그게 항아리 깨듯 쉬운 것이라면, 역사는 수백번도 하루아침에 바뀌고 새로 쓰이고 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딘 걸음일지라도 역사는 바뀌어 왔고, 새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가 새로 쓰이는 그 순간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소이와 강채윤, 그리고 세종이라는 위대한 인물처럼 말입니다. 국가적으로 큰 일들을 앞두고 있는 지금, 어쩌면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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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5 10:38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소집한 세종은 세가지 사안으로 대신들과 학사들을 놀라게 했지요. 황망스럽게도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정수리가 보여서는 안되는 군왕이 대신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대신들 모르게 은밀히 글자를 창제하고 있었노라 고백하며, 죽은 집현전 학사들과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이 비밀조직 천지계원이라고 밝히며, 비밀리에 추진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사죄하는 세종이었지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함께 고개를 숙였네요. 그리고 얼마나 영리한 사죄였는지 무릎을 쳤습니다. 세종은 은밀히 글자를 창제했다는 것을 과오로 인정했을뿐, 영리하게도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사죄는 하지 않습니다. 감히 임금이 고개를 숙이니 대신들이 몸둘 바를 모르고 당황하지요. 세종의 영리한 기선제압 책략이었죠.
참, 책략이라는 말이 나와서 덧붙이는데, 까칠귀여운 조말생 대감이 이번 회도 깨알웃음을 주었지요. 정인지도 은근 귀여운 매력이 있는데, 두분의 선문답같은 대화에 빵터졌네요.
세종은 밀본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지요. 밀본지서의 내용이 아니라 밀본에 가입한 밀본원들이 신분노출에 위기를 느끼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밀본원으로 결속되고 있지만, 실상 내부에서는 와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는 집현전과 글자반포를 두고 거래가 성사되었지만, 공식 합의를 하기로 한 바로 그날, 갑자기 이신적이 돌변해서 반대를 했던 것에서도 유추가 되었던 것이었지요.
"밀본은 분열된 것이요", 깨소금 맛이라는 듯 웃는 세종의 표정이 살짝 귀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균열의 가능성을 가지고 책략을 만들자며 조말생을 쳐다보는 세종, 그런데 조말생이 놀란 토끼눈을 뜨고 물어보지요. 어떻게 만들거냐고 말이지요. "엥! 아니 여태 뭘 들었소. 그렇게 하자니까." 무휼에게도 못 알아들었느냐고 재차 확인하는 세종, 무휼은 알아들었다고 하는데 진짜 알아들었는지, 요즘 무휼의 넉살이 늘어가서 말이지요. "그러면 그런 식으로 하자"며 자리를 뜨는 세종이었지요. 세종 한석규가 그 장면을 찍고 나가면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하며 웃었답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지 감을 잡지 못한 조말생 대감, 정인지를 붙들고 알아들었냐고 넌지시 물어보지요. "예, 대충...". 전하께서는 원래 저러시는가?". "예, 가끔...". 정인지도 알아들은 눈치는 아니더구만, 대충이라고 얼버무리는데, 세혼자 왕따인 것같아 답답한 조말생 띠융~, 그저 눈만 껌뻑이지 못하고 멍해져 버리지요.
세종이 어찌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시겠습니까? 저들을 이간질시켜서 지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꼴좀보자는 말을 말이지요ㅎ.
그런데 나중에 최만리를 만나 심종수에 대해 예의주시하라고 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뜻을 알기는 했나 보더라고요. 고지식하고 찜찜한 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직설적으로 묻는 성격의 최만리 대감이, 심종수에게 "너 밀본이냐?"라고 묻는데, 그 뒷말에 '최만리 대감 짱이야!' 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려줬답니다. "너 밀본이라면 내 집현적 학사들을 죽인 죄를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야!" 한마디로 네 놈이 밀본이면 네 손에 죽을 줄 알라는 경고였으니 말이죠.
최만리는 비록 글자창제에 반대를 하는 입장이지만, 누구보다 집현전을 아끼고 그의 철학과 학문에 충실한 인물이기에 미워할 수 없는 적(?)입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글자창제에 가담한 인물로 밝혀져 그들의 몸에 문신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자 의금부에서 추포령이 내렸을 때도, 진관사에 가서 몸을 숨기고 있으라고 보호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세종으로 돌아가서, 여튼 대신들과 학사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 세종은, 정치적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광평대군은 밀본이 살해한 것이 아니오. 과인의 과오에서 비롯된 일이니, 밀본에 대해서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밀본은 나와는 다른 정치관을 가진 붕당으로 인정할 것이오". 와우 역시 큰 인물 큰 그릇 세종, 멋진 분!!! 
들었나? 정치관이 다른 붕당이라잖소. 다른 정치관 다른 의견을 가졌다 하면, 죄다 빨간색으로 몰아가고, 좌측정렬시키는 편협한 분들 말이외다. 눈 좀 크게 뜨고 귀 좀 열고 좀 보고 들이시오, 제발!!!! 목구멍에서 아주 이런 말들이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네요. 
조말생 대감이 가만있을 분이 아니죠. 강상의 도를 어긴 대역죄인들을 처벌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지요. 세종 조대감의 말을 조용히 묵살해 주시면서 세번째로 넘어가지요.
"제안". 요지는 밀본은 밀본이라고 떳떳히 밝히고, 조정 앞마당에 나와서 토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얼굴도 뵈주지 않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세종의 제안은 제안이라기 보다는 협박같아 보이기도 했더라지요.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손에 몇몇 밀본원들의 명단이 적힌 투서도 있다고 겁을 주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이신적의 눈이 팽글팽글 돌면서 어찌나 겁을 내고 있던지, 그 자리에서 경기일으켜 쓰러질까 겁났답니다. 안석환, 참 연기 잘하는 분이에요^^. 
세종의 큰 포용력은 다음 말에서 또 확인이 되었지요. "왕이 오죽 부실하면 과인의 뜻과 다르다 하여, 강상죄로 몰겠소?" 임금의 뜻과 다르면 무조건 대역죄를 씌우는 것에 대한 일침이었고, 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나를 찌질이 임금으로 만들지 말라고 영리한 수로 밀본을 품어버리니, 대신들조차 할말없게 만들어 버리는 세종입니다. 정책에 반대하면 무조건 급진주의니, 좌파니 하며 몰아가는 우리 정치판에서 꼭 들어야 할 말입니다. 세종의 포용은 그들을 자기시력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의 의견으로, 정치적 입장으로 존중하겠다는 겁니다. 반대없는 정치가 민주정치는 아니지요. 무조건 좋은 것이니 알려고 하지말고 따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반민주적 사고방식아니겠습니까?

조말생 대감처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토끼눈 뜰가 우려된 세종, 회의를 소집한 이유에 대해 다시한번 밑줄 쫙 정리하고 넘어가지요. "과인은 글자를 반드시 반포할 것이고, 고맙게 대신들이 수행해 준다면 이레 뒤에 광화문 앞에서 백성들과 함께 반포할 것이오". 글자를 반포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하자 대신들 땅이 꺼지게 한숨입니다.
그리고 밀본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 주지요. 밀본이 붕당을 만들어 반대를 하고자 한다면, 반포전날까지 조정 뒷마당도 옆마당도 아니고, 꼭 앞마당으로 나오시오. 만일 나오지 않고 쥐새끼들처럼 숨어있다가 반포당일 반포를 못하게 해코지를 하거나, 과인에게 밀본원임을 들킨다면, 그 이후에 생기는 모든 일은 니네들 책임이다! 이상.

밀본의 움직임이 바빠졌지요. 분열과 와해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심종수와 이신적이 각각 다른 마음으로 해례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그 칼끝이 정기준을 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궁녀들이 해례를 빼돌려 유포하고 있다고 뒤늦게 눈치챈 정기준이 나인들의 행방과 조지소, 인쇄소 등을 뒤지고 결국 꼬리가 잡히고 말았지요. 초탁을 공격한 윤평을 피해 끝수의 수레를 타고 나인들의 은신처로 왔으니, 나 잡아가쇼가 돼버렸지요.
그런데 나인들과 해례를 찾는 이신적, 심종수, 정기준이 각기 다른 꿍꿍이라 정신을 못차릴 정도입니다. 정기준파, 이신적파, 심종수파로 나뉘어 나인생포 쟁탈전을 벌이고 있고, 여기에 태평관의 청위까지 가세에 일이 삼파전 사파전이 되고 있는 양상이지요.
밀본이 와해될 것은 이미 시작부터 감지되었던 일입니다. 삼봉의 대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기득권싸움으로 변질되어 갔고, 글자를 막겠다는 이유로 자행된 방법들은 이미 성리학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으니 말입니다. 세종의 백성을 향한 명분 앞에 정기준과 밀본의 대의가 명분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죠.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명분과 대의, 이상의 크기가 달랐기 때문이었죠. 정기준의 여전히 큰 바다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글자를 막으려 하는 정기준의 성리학적 대의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도에게 성리학 위에 글자를 두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글자를 막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도와 화해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불씨의 일대기를 펴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견고한 자기만의 틀속에 갇혀버렸지요. 백성들이 쉽고 익숙한 것부터 글자를 익힌 다음의 것을 보지 못한 우를 범하고 만것이에요. 글자를 익힌 백성이 삼강오륜을 배우는 것은 더 쉬울 일이며, 성리학적 질서를 깨닫는 길도 가깝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글을 익힌 사대부조차도 5만자나 되는 한자를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음과 훈을 쉬운 글자로 표기해 둔다면 한자를 익히는 사대부들에게도 좋을 일이요, 까막눈 백성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인데도, 정기준은 불씨일대기를 찍었다는 이유로 글자가 끼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미 역병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글자지만, 해례가 중요한 것은 글자의 창제원리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메모리 저장탱크 소이의 머리에는 발음원리와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가 들어있지요. 스물여덟 글자의 창제원리와 소리내는 방법, 초성 중성 종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글자가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발음하는 지에 대한 것들이 들어있기에 중요합니다. 나인들도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은 알지만, 종합적인 정리자료는 소이의 머리속에 들어있기에 나인들 중에서도 소이는 중요한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알게 된 채윤까지 꼬리잡기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예고편을 보니 개파이가 채윤과 한판 뜰것으로 보이더군요. 그동안 설왕설래 의견이 분분했던 무술서열이 곧 정리가 될 듯도 한데, 우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급 우울입니다. 목숨이 위험한 소이, 개파이와 강채윤이 누가 우세할지 모르지만, 채윤이 밀릴 것같아 강채윤도 걱정, 이쯤되니 누군가 하나 죽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그림자가 엄습해 와서 말입니다.ㅜㅜ 죽이면 작가들 미워할거얌!!
뭉클했던 것은 세종이 강채윤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글자가 쓰이기 위해서는 반포와 유포 두가지 방책이 필요하다고 한 대목에서 입이 벌어지게 하더군요. "반포는 내가 맡을 것이나 유포는 소이가 맡아야 할 것이다. 위험한 일이니 네가 지켜줘야 한다". 유포와 반포가 완수되면 소이를 데리고 떠나라며, 그 때까지는 소이를 내 사람으로 남겨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세종과 소이는 설사 이 일을 하는 중에 누구 하나 죽더라도 남은 사람들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라고, 비장한 약속을 했지요. 소이가 "그 일을 하다가 위험에 처하거나 죽는다 하더라도 자기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걸리네요.

대신들 앞에서 고개숙이는 임금, 자신의 독단에 대해서 만큼은 진정으로 사과하고 할 줄 아는 임금 세종은 잘못을 권위로 누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학사들을 죽인 것에 본인의 과오때문이었다며, 정치적 보복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밀본 역시 그가 품어야 할 백성의 한 조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정치관이 다르다하여, 역적으로 몰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고개숙여할 부분에서는 과오를 인정하고, 품어야 할 백성은 자식을 잃은 슬픔마저 누르고 품습니다. 설령 죽음이 그 일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백성을 위한 글자반포를 멈추지 않겠다는 세종이지요. 세종의 정치철학이 민본과 애민임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결정체인 한글의 창제와 반포과정을 통해 부상하고 있는 것은 세종의 백성에게로 가는 리더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라경영과 정치를 회사경영쯤으로 생각하는 분들과는 다른 리더십입니다. 독단과 독주가 아니라 반대의견에는 귀를 열고, 끊임없는 자기검증을 통해 실효성과 필요성을 확인하고 묻는 자세는 정치지도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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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 08:46




감독 및 시나리오까지 맡은 세종의 한글반포를 위한 연극이 성공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정기준의 뒷통수를 야무지게 후려치고, 지금 각 지방의 인쇄소와 주자소에서는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책이 대량으로 찍혀 나오고 있지요. 책뿐이 아니지요. 발없는 글자가 노래가 되어 역병처럼 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윤평이 소이와 나인들이 충청감영에 가지 않았음을 보고해, 정기준이 세종의 연극을 눈치채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지요. 아무래도 소이와 강채윤에게 위험이 닥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표정이 초지일관 가면같은 반쪼가리 윤평이 소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쬐끔 귀엽기도 하더군요ㅎ.

세종과 정기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는데요, 밀본에서 움직임이 없어서 오히려 폭풍전야같이 느껴집니다. 정기준이 "글자를 막기 위해 벌어지는 모든 살인마저 용인한다"고 했던 말이 섬찟해서 말입니다.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이신적과 심종수가 배신을 때릴 것같은 생각이 들어 정기준의 신변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아들 광평대군(서준영)을 잃은 참담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광분하는 세종을 일으켜 세운 이는 강채윤이었지요. 그날이었습니다. 강채윤은 죽음 앞에서도 버리지 않았던 광평대군의 세종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았고, 글자를 보았고, 글자를 처음 익혔지요. 아버지 석삼의 이름자를 써서 그 이름을 잊지 말아달라고 내밀었던 날, 채윤은 처음으로 복수가 아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소이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일, 소이와 글자를 지키는 것은 채윤의 하고 싶어진 일이었지요.
세종은 그날 채윤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지요. "넌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똘복이어야 한다. 윗것들 싸움보다는 그냥 백성으로, 한 사람의 백성이 윗것들 싸움을 어찌 보고 판단하는지, 그것을 알아야 겠다"라고 말이지요. 채윤은 그날 세종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윗분들의 일이 우리를 죽이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광평대군의 죽음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세종을 보고, 채윤은 소이를 끌고 나가려고 하며, 전하에게 속은 것이 분하고 참담하다고 독설을 내뱉지요. "짐승새끼한테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랬습니다.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면서 까지 천민 똘복이를 구했고, 말문까지 닫아버렸던 소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줬습니다.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될 천한 똘복이와 담이를 구하고 거둔 것은, 그들도 사람이었고,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한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없었다면, 글자를 만들 생각도 애시당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게 된 이유를 돼새겨 준 채윤이었지요.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똘복이가 세종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백성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뭉클했지요.
"백성은 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루 왠종일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들 먹을 것 못먹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책임지지 않았을 때도 우린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책임 좀 떠안고 하고 싶은 것 좀 갖겠다는데, 우리도 욕망하는 것 좀 갖겠다는데, 그게 그리 지옥이십니까? 전하는 위선자십니다. 전하는 아주 소심한 겁쟁이십니다". 윗것들 싸움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했던 똘복이 강채윤은, 그렇게 세종의 흐트러진 심기를 세워줬던 것이지요.
세종에게 말은 그렇게 독하게 했지만, 채윤이라고 어찌 광평대군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어요. 남겨진 광평대군의 신발 한짝을 보며 우는 강채윤, 몰래 광평대군을 추모하는 채윤의 눈물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임금에게 울지말라고 했지만, 채윤은 광평대군이 마치 자신이 지켜주지 못해 그리 비명횡사한 것같아, 세종만큼 아프고 또 아팠던 것이지요.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광평대군이 궁을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만감이 교차했을 듯한 강채윤이었습니다. 상처를 입고도 아프다는 말한마디 하지않고, 고통을 이겨내던 광평대군를 업고 도망쳤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허망하게 가버린 광평대군을 생각하니 채윤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비로소 세종은 정신이 들었고, 결심을 굳히지요. 그리하여 글자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작가에게 놀라웠던 점은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의 이름을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백성(民)을 쓰게 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제목 뿌리깊은 나무의 '백성'을 의미하는 뿌리이기도 한 백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으로, 세종의 혼란이 정리되었음도 암시했던 장면이었지요.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글자를 더 사랑했는지 모르겠다는 세종의 고뇌와 혼란을 소리(音), 글자가 아닌, 백성을 먼저 쓰는 모습으로 정리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도 세종의 심경정리까지 연결해서 세밀하게 연출하는 작가들과 감독입니다.
세종은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도 글자를 반포할 것이라며, 멋진 시나리오를 내놓았지요. 정기준이 너무나 좋은 힌트를 던져줬습니다. "너의 글자는 역병과도 같은 무서운 글자다". 그렇지요. 역병처럼 빠르고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퍼뜨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방법은 기습과 정면공격, 정면공격은 주자소와 지방의 모든 인쇄소에서 훈민정음으로 된 책을 찍어 배포를 하겠다는 것이었죠. 주자소를 급습한 최만리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라며 목에 핏발을 세우지만, 하옥하라는 한마디로 일축해 버린 세종이었고요. 
기습공격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지요. 문제는 해례를 알고 있는 훈민정음 프로젝트팀원들이 궁밖에 나가서 광평대군이 하던 일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밀본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었지요. 궁궐 담장까지 밀본이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소이를 비롯해 궁녀들을 내보내기로 한 세종, 궁밖으로 내보낼 구실은 광평의 소재를 누설했다는 죄목을 씌워 충청감영으로 이첩을 시킨다는 속임수를 썼지요. 궁궐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리는 밀본원들은 이를 잽싸게 정기준에게 알려 밀본의 감시망을 피하게 했던 것이고요. 광평을 살해해 세종을 자극하고자 했던 정기준의 고도의 심리전에 넘어가주는 척했던 것이지요. 멋지게 정기준을 한 방 먹여버린 세종의 역공이었습니다. 
글자반포를 반대하는 집현전 학사들을 싸그리 잡아 옥에 하옥시키고, 광평대군의 죽음에 실마리를 제공한 나인들은 궁밖으로 내쳐버리면서, 궁의 분위기는 살벌함이 감돌고, 마치 이방원의 공포정치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의정 이신적이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보니, 혹시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았나 궁금해지기 까지 하더랍니다.
정기준이 세종의 급격한 변화를 보고받으면서, 자신이 의도하던 대로 되고 있다고 믿게 된 데에는 핵심역할을 해 준 조선 최고의 배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지요. 조말생이 세종의 시나리오에 동참했다는 것은 일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세종은 정기준에 이어 시청자에게도 뒷통수를 제대로 쳐주시더군요. 
사실 세종, 무휼, 채윤, 정인지, 성삼문과 박팽년, 그리고 소이 모두가 배우가 되어 세종의 시나리오에 맞춰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요. 세종이 소이와 채윤을 그리 내칠 것이라고 믿은 시청자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훤히 드려다 보이는 싱거운 연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종의 시나리오를 명작으로 빛내 준 배우가 바로 마지막 반전의 주인공 조말생이었습니다. 
'이도가 드디어 돌았구나!' 라고, 정기준이 쾌재를 부르며 자신의 생각대로 세종이 움직이고 있다고 오판했던 것은, 조말생이 밀본수사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보고때문이었지요. 조말생은 태종 이방원의 사람으로 칼의 정치에 앞장섰던 인물이었기에, 세종이 밀본을 쓸어버리겠다는 광기어린 분노에 적임자였지요. 세종의 사람이 아닌 뼈속까지 이방원의 사람 조말생이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에, 정기준은 광평을 잃은 세종이 이성을 잃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조말생이 황희대감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조말생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어느 쪽에 서야하는지 고민했던 장면입니다. "상왕께서 돌아가시며, 전하(세종)께서 하시는 일은 반대치 말라 하셨다. 오로지 밀본만 막아내라 하셨다"며 고민중이라고 했었지요.
밀본의 발본색원은 조말생의 과업이며, 그에게 있어 대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밀본수사를 강채윤에게 빼앗기고 강채윤에 대해 앙금도 클 수밖에 없었고요. 밀본수사를 맡겨달라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궁에서 내쫒기고 파면을 당해도,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드시 밀본을 잡겠다는 조말생이었기에, 소이와 나인들을 고신하고 채윤을 옥에 하옥시켜 버린 것도, 밀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생각하게 했고, 글자와는 관계없이 단지 밀본을 색출하겠다는 집념으로 보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옥에서 강채윤을 데리고 세종에게 간 순간, 헉! 이런 기막힌 반전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네요. 사실 세종과 채윤, 소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여졌는데, 조말생은 밀본색출 업무에 너무나 충실하는 모습이어서 깜빡 속았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채윤을 집으로 불러 이방지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게도 했던 조말생이었지요. 이방지 역시 정도전의 사람으로 대역죄인인데도 그를 치료하고 숨겨주었다는 사실에, 조말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었지요. 여자를 이용해 이방지의 발을 묶었던 비겁한 무사라며, 이방지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남았던 조말생은 그렇게 조선제일검 이방지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보내 주었습니다.
잘 짜여진 세종의 시나리오, 정기준의 뒷통수를 제대로 치고, 감독 극본 연출 제작을 총괄한 세종의 이번 연극작품에서 최고의 연기자는, 조말생대감 이재용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반전의 주인공이었고요. 조말생 대감역의 이재용은 냉정한 모습도 있지만, 귀여운 구석도 많은 분이죠. 경연장에서 세종이 코 앞까지 다가와 말을 걸 때, 허걱!하는 표정으로 깨알 웃음을 주기도 하는 분이죠. 나인들을 고신할 때 차라리 자신이 고신받는 것이 낫겠더라며, "하는 척만 하려니 소신 정말 힘들었사옵니다" 라는데, 진짜 미안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는데도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암튼 이번 연극의 최고 반전 배우 조말생이었습니다. 

세종이 만든 잘 짜여진 연극 한판으로 한글은 역병처럼 조선팔도 골목골목에서 번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만들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소이, 거지들의 각설이타령까지 지금 조선은 글자역병의 씨앗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훗날 역사에, 백성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워주는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세종의 말이 송곳처럼 찌릅니다. "어차피 그것은 그들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지 않느냐, 지금은 그냥 내 백성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한번도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며, 채윤이 양손을 모아 처음으로 예를 취하더군요. "그렇게 결정내려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수많은 번민과 회의, 좌절, 그리고 그의 백성에 대한 믿음 속에 나온 희망의 씨앗 한글,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지, 또한 그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되새겨 보고 있는 중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예견과 우려대로 백성(국민)이 권력의 주체가 된 지금,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글을 주신 세종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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