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규세종'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12.16 '뿌리깊은 나무' 화끈한 세종, 너털웃음 속에 감춘 무서운 한 수 (5)
  2. 2011.12.15 '뿌리깊은 나무' 고개숙인 세종, 그 리더십에 열광하는 이유 (13)
  3. 2011.12.09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시나리오가 배출한 최고의 배우는? (19)
  4. 2011.12.02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냉소,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반전 (21)
  5. 2011.11.04 '뿌리깊은 나무 10회'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23)
2011.12.16 10:41




소이, 덕금, 목야가 납치되었음을 알고 고심하는 세종, 글자로 인해 또다시 자신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것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세종을 잡아준 이는 채윤이었지요. 누구보다 소이의 안위에 애간장이 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채윤이지만 세종을 탓하지 않지요. 소이를 지키지 못한 자신때문이라며, 세종에게 전하의 길을 계속 가라는 채윤이었습니다. 혁명과도 같은 글자는 강채윤에게도 목숨을 걸고 지킬 그 무엇이었습니다. 소이가 원하는 길이라는 것, 또한 강채윤이 처음으로 가져 본 대의라는 것,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거지들을 죽여버리고, 아이들에게 죽음을 부르는 노래라고 글자가 퍼져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살인병기 윤평, 글자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수거하고 나인들을 납치해 밀본산채로 데려갔지요.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하는 정기준은, 글자의 유포를 막았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나 밀본내에 불고 있는 배신의 그림자는 피바람을 예고하며 밀본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심종수와 이신적의 동상이몽은 정기준을 몰아내고 밀본의 수장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각각의 명분으로 등을 지고 맙니다. 삼봉 정도전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며 밀본의 차기 수장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심종수, 밀본이라는 붕당의 수장이 되어 재상총재제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라는 제안을 받은 이신적, 대의와 명분은 욕망이라는 덫에 걸린 채 서로를 향해 칼부리를 겨누고 있으니, 이 상황을 지켜보는 정기준이야말로 가장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밀본과 글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도담댁과 한가놈(조희봉)의 충정어린 호소는, 정기준으로 하여금 큰 결심을 하게 할 듯 보이더군요.
재상총재제의 구현이 조선 정치체제의 안정을 위한 삼봉 정도전의 이상이고, 한 사람의 왕에 의해 나라의 명운이 좌지우지되는 것보다는, 현명한 다수의 사대부들이 나라를 경영하는 것이 백성들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는 삼봉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지만, 정기준은 기필코 글자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글자는 말이다, 이도와 내가 서로의 생각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난 역사를 놓고 벌이는 이도의 이 위험천만한 장난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정치를 하는 자가 백성을 두고 어찌 될지도 모르고, 자신이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시험을 해보려 하다니, 기껏해야 50년도 다스리지 못하는 일개 왕따위가!!!".

정기준의 말은 현재의 우리가 듣기에는 한참이나 잘못된 생각이지만, 당시로서는 지식인의 고민이었고, 무게였을 겁니다. 정기준에게는 글자를 막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백성과 역사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글자로 인해 벌어질 혼돈을 방지하자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백성에 대한 걱정이었고, 역사에 대한 책임부분이었지요. 글자가 무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글자도 일종의 체제속에 있어야 한다는 사고관이지요. 글자에도 하늘과 땅, 상하 질서계급을 부여한 철저한 성리학적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었죠. 
정기준이 말은 다른 의미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이 국민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그 역사적, 정치적 책임부분에서 진지한 고민보다는, 특히 실적위주의 정치를 펴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말입니다.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는 분들보다는 정기준의 고민이 오히려 진지하게 들리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정기준과 이도는 글자가 가질 역사적 가치와 백성의 희망이라는 부분에서 생각의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지만, 백성에게 이로운 것에 대해 같은 무게로 고민하는 지식인들이라는 점에서는 화해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심종수의 하극상의 칼 역시 정기준에게 충격이었겠지만, 심종수의 말은 정기준이 글자를 막는 것에 급급해 간과한 것을 곱씹어 볼 여지를 주기도 했지요. 
밀본은 말 그대로 하극상으로 칼부림이 나기 일보직전입니다. 예고편을 보며 심종수가 조선의 선비다 라는 말로 비장한 결심을 하는 장면이 보였는데요, 정기준을 치기 위해 칼을 드는 것 같더군요. 어제의 동지가 오늘 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하는 것이 바로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정기준은 세종에게 백성의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고 글자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정작 정기준은 권력의 욕망 앞에 부서지고 배신하는 밀본원들을 보게 되지요. 박쥐형 이신적의 욕망, 사대부의 대의라는 말로 명분을 세웠지만 심종수 역시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인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이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겠지요. 대의와 명분이라는 이름으로 눈가림한 사대부 기득권층을 위한 욕망인지, 진심으로 백성을 향하는 욕망인지 말입니다.
정기준이 하극상의 칼을 받고 경악하는 시각, 세종은 이신적을 만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적 담판에 나섰지요. 노련한 정치 100단들의 허허실실 대화는 소름끼치게 흥미로웠던 장면이었습니다. 안석환이라는 중견배우의 내공과 한석규의 미친연기력이 추위도 녹여버릴만큼 숨막히게 하더군요. 본심들을 감춘 웃음이 서로 어떤 의미인지를 다 알면서도, 내숭으로 눙을 치는 두 사람의 독대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겪은 고수들의 한판이었죠.
전하의 길을 가라는 채윤의 응원에 탄력받은 세종, 이신적을 쥐도새로 모르게 가마에 태워 와 술상앞에 마주합니다. 세종에게도 이신적에게도 철저한 보완이 필요했기에, 007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으로 말이지요. 초반에는 쓸데없는 말로 분위기에 흥을 돋구지요. "내 치세를 어떻게 보시오?", 이런 것을 질문이라고, "태평성대지요...". 다 신료들 덕분이오, 우상도 고생많으셨소. 술한잔 기꺼이 하사하는 세종, 우상이 술을 마시기도 전에 간이 콩알만해지는 질문을 던지지요.
 "밀본이시오?". 세종 정말 화끈하십니다! 우상 이신적 속에서는 간이 철렁 소리를 냈지만, "소신이 어찌..", 애매모호한 답을 하지요. "아이고, 농이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능청스럽게 이신적을 가지고 노는 세종, 밀당의 고수였죠. 얼랬다 달랬다 사탕물리고 옆구리 차고, 아무튼 세종대왕 짖궂기도 하셔라~

그리고는 강도높은 질문에 들어가지요. "밀본의 가장 큰 대의가 재상총재제인데 어찌 그걸 거부하셨소?". 집현전과 글자를 두고 거래를 했다가 협상당일 결렬되고 말았던 일을 끄집어내는 세종이었지요. 영리하게 세종은 우상이 빠져나갈 쥐구멍 하나는 만들어 줍니다. "아, 우상이 밀본이라는 가정하에 말이오". 일종의 오프 더 레코드에 해당되는 세종의 영리한 수였지요.
이신적도 세종이 자신이 밀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듯 보였지만 능란하게 받아 치지요. 밀본이라고 가정하고 답을 올리겠다고 말이지요. "그것은 내부에 의견을 달리한 자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는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끙끙 앓던 속풀이까지 하지요. "소신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엇이 재상총재제보다 우선할 수 있겠습니까? 어쩔 줄 몰라 미치겠습니다". 이신적의 말에는 글자반포를 양보해 주고 재상총재제를 관철시켜, 재상의 자리에 앉겠다는 야무진 꿈을 깨버린 정기준에 대한 원망이 들어있었지요. 밀본에 분열이 생긴 거냐고 묻는 세종, 이신적 아차 걸렸구나 싶어 또 안절부절 눈이 팽글팽글 튀어나올 지경입니다. 요럴 때는 웃어주는 것이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특효약이죠. 우상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줄 몰랐다고 세종 껄껄껄 웃어보이지요.
세종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지요. 밀본에게 자복하고 나와서 토론하자고 했는데, 왜 우상은 자수를 안했냐며, 아~주 부드럽게 물어 주시지요. "믿음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전하를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무인정사때 삼봉선생이 참혹하게 죽은 후 역당으로 낙인 찍힌 세월이 수십년입니다. 그 긴 세월의 기억을 하루 아침에 잊고, '소신이 밀본입니다' 라고 나서기에는 불안한 것이겠지요".
"경연장에서 광평을 죽인 것에 대한 죄를 묻지 않겠다, 또 밀본을 붕당으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보다 더 믿음을 줄 수는 없소이다", 요지는 이렇게 많이 양보하고 참아줬는데 뭘 더 내놓으라는 것이냐고 돌려말하는 세종이었습니다. 이신적의 대답도 만만치 않았지요. 전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인간의 뿌리깊은 불안을 달래주지는 못하셨다고 받아치지요. 그 불안감을 달래줄 수는 없으니, 그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떠보는 세종이었지요.
세종도 영리하지만 이신적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또 쥐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이신적이었지요. "소신 멍청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못알아 듣겠습니다". "이런 답답한..." 세종의 너털웃음 웃음 뒤에는 이런 마음을 숨겨버리더군요(허, 요놈 봐라, 목숨줄 길게 붙들고 살고 싶다 이거지?). 짧은 순간 일그러지는 입모양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더군요. 한석규의 세심한 연기는 입술이라고 예외가 없더라고요. 입속의 혀까지도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는 듯 보였고 말이지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싹하게 무섭기까지 한 입모양에서는, 이신적을 한 대 치고 싶어하는 세종의 심정마저도 느껴졌으니 말입니다. 
의미없는 헛웃음으로 대화를 정리하는 세종, 그러면서 한말씀 콕 찔러 오줌 잘금거리게 만들어 버리지요. "우상께서 이리 그럴 듯하게 얘기하시니, 내 우상대감이 밀본인 줄 알겠소". 하하하. 이신적 술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몰랐을 겁니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냐', 뭐 이런 심정이었겠죠.
밀담은 끝났고 먼저 나가는 우상, 그냥 돌려보낼 세종이 아니었지요. 진짜 본론이 남았는데 말입니다. 이신적에게 빼도박도 못하게 세종이 쐐기를 박아버리지요. "정기준을 넘기시오". 크헉...심장이 쪼그라지게 하는 세종의 말에 이신적의 눈이 튀어 나오더라죠. 세종의 말인즉슨 정기준을 넘기고, 스스로 밀본임을 자복해서 밀본의 수장이 되어 조정에서 재상총재제를 주장하라는 폭탄제안이었습니다. 불안해서 믿지 못하겠다면, 스스로 그 믿음을 만들어 보라는 말이 이것이었죠. 붕당의 수장이 되어 과연 세종이 어떻게 나오는지 직접 경험하고 믿어보라고 말입니다.
다른 의견이라 하여 대역으로 몰지 않겠다, 자신과는 다른 정치관을 가진 붕당이라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세종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밀본입니다. 개미새끼 한마리도 조정 앞마당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세종이 대역조직인 밀본마저 품겠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죠. 이신적에게 붕당의 깃발을 들고 나오라고 제안한 것은 두가지의 노림수가 있었죠. 하나는 정기준의 소재를 알아 정기준과 담판을 하고, 소이를 구하기 위해서 였지요. 또 하나는 밀본이 스스로 와해되든지, 명분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커가는 기회를 갖든지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와해되는 밀본, 배신에 배신이 겹치는 상황에서 정기준의 생각은 어떻게 변할까가 가장 궁금한 대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상상해 왔던 시나리오를 내일 올릴 예정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

오늘의 보너스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정인지가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마구마구 웃었답니다. 정인지와 최만리가 동갑이라죠. 일찍 곰삭아 버린 최만리가 놀림받을 때마다 자네 편들어줬다고 생색내는 정인지가 웃음 하나 터뜨려 주지요. 자기가 동안인 것이지 최만리가 노안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말이죠. 최강의 동안 정인지, 최강의 노안 최만리 두 동기동창생의 대화가 은근 웃겼습니다.
워낙 근엄한 최만리대감, 생전에 웃어는 봤을까 싶은 표정인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웃음을 터뜨리시기는 하더라죠. 그것도 근엄한 웃음이기는 했습니다만.ㅎㅎ 물론 역사에도 나와있듯이 최만리는 끝까지 한글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만리의 생각을 고집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당시 사대부들의 사고방식이 하루아침에 깨지기는 쉽지 않았겠죠. 생각의 틀을 깬다는 것, 그게 항아리 깨듯 쉬운 것이라면, 역사는 수백번도 하루아침에 바뀌고 새로 쓰이고 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딘 걸음일지라도 역사는 바뀌어 왔고, 새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가 새로 쓰이는 그 순간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소이와 강채윤, 그리고 세종이라는 위대한 인물처럼 말입니다. 국가적으로 큰 일들을 앞두고 있는 지금, 어쩌면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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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5 10:38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소집한 세종은 세가지 사안으로 대신들과 학사들을 놀라게 했지요. 황망스럽게도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정수리가 보여서는 안되는 군왕이 대신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대신들 모르게 은밀히 글자를 창제하고 있었노라 고백하며, 죽은 집현전 학사들과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이 비밀조직 천지계원이라고 밝히며, 비밀리에 추진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사죄하는 세종이었지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함께 고개를 숙였네요. 그리고 얼마나 영리한 사죄였는지 무릎을 쳤습니다. 세종은 은밀히 글자를 창제했다는 것을 과오로 인정했을뿐, 영리하게도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사죄는 하지 않습니다. 감히 임금이 고개를 숙이니 대신들이 몸둘 바를 모르고 당황하지요. 세종의 영리한 기선제압 책략이었죠.
참, 책략이라는 말이 나와서 덧붙이는데, 까칠귀여운 조말생 대감이 이번 회도 깨알웃음을 주었지요. 정인지도 은근 귀여운 매력이 있는데, 두분의 선문답같은 대화에 빵터졌네요.
세종은 밀본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지요. 밀본지서의 내용이 아니라 밀본에 가입한 밀본원들이 신분노출에 위기를 느끼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밀본원으로 결속되고 있지만, 실상 내부에서는 와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는 집현전과 글자반포를 두고 거래가 성사되었지만, 공식 합의를 하기로 한 바로 그날, 갑자기 이신적이 돌변해서 반대를 했던 것에서도 유추가 되었던 것이었지요.
"밀본은 분열된 것이요", 깨소금 맛이라는 듯 웃는 세종의 표정이 살짝 귀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균열의 가능성을 가지고 책략을 만들자며 조말생을 쳐다보는 세종, 그런데 조말생이 놀란 토끼눈을 뜨고 물어보지요. 어떻게 만들거냐고 말이지요. "엥! 아니 여태 뭘 들었소. 그렇게 하자니까." 무휼에게도 못 알아들었느냐고 재차 확인하는 세종, 무휼은 알아들었다고 하는데 진짜 알아들었는지, 요즘 무휼의 넉살이 늘어가서 말이지요. "그러면 그런 식으로 하자"며 자리를 뜨는 세종이었지요. 세종 한석규가 그 장면을 찍고 나가면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하며 웃었답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지 감을 잡지 못한 조말생 대감, 정인지를 붙들고 알아들었냐고 넌지시 물어보지요. "예, 대충...". 전하께서는 원래 저러시는가?". "예, 가끔...". 정인지도 알아들은 눈치는 아니더구만, 대충이라고 얼버무리는데, 세혼자 왕따인 것같아 답답한 조말생 띠융~, 그저 눈만 껌뻑이지 못하고 멍해져 버리지요.
세종이 어찌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시겠습니까? 저들을 이간질시켜서 지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꼴좀보자는 말을 말이지요ㅎ.
그런데 나중에 최만리를 만나 심종수에 대해 예의주시하라고 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뜻을 알기는 했나 보더라고요. 고지식하고 찜찜한 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직설적으로 묻는 성격의 최만리 대감이, 심종수에게 "너 밀본이냐?"라고 묻는데, 그 뒷말에 '최만리 대감 짱이야!' 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려줬답니다. "너 밀본이라면 내 집현적 학사들을 죽인 죄를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야!" 한마디로 네 놈이 밀본이면 네 손에 죽을 줄 알라는 경고였으니 말이죠.
최만리는 비록 글자창제에 반대를 하는 입장이지만, 누구보다 집현전을 아끼고 그의 철학과 학문에 충실한 인물이기에 미워할 수 없는 적(?)입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글자창제에 가담한 인물로 밝혀져 그들의 몸에 문신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자 의금부에서 추포령이 내렸을 때도, 진관사에 가서 몸을 숨기고 있으라고 보호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세종으로 돌아가서, 여튼 대신들과 학사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 세종은, 정치적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광평대군은 밀본이 살해한 것이 아니오. 과인의 과오에서 비롯된 일이니, 밀본에 대해서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밀본은 나와는 다른 정치관을 가진 붕당으로 인정할 것이오". 와우 역시 큰 인물 큰 그릇 세종, 멋진 분!!! 
들었나? 정치관이 다른 붕당이라잖소. 다른 정치관 다른 의견을 가졌다 하면, 죄다 빨간색으로 몰아가고, 좌측정렬시키는 편협한 분들 말이외다. 눈 좀 크게 뜨고 귀 좀 열고 좀 보고 들이시오, 제발!!!! 목구멍에서 아주 이런 말들이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네요. 
조말생 대감이 가만있을 분이 아니죠. 강상의 도를 어긴 대역죄인들을 처벌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지요. 세종 조대감의 말을 조용히 묵살해 주시면서 세번째로 넘어가지요.
"제안". 요지는 밀본은 밀본이라고 떳떳히 밝히고, 조정 앞마당에 나와서 토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얼굴도 뵈주지 않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세종의 제안은 제안이라기 보다는 협박같아 보이기도 했더라지요.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손에 몇몇 밀본원들의 명단이 적힌 투서도 있다고 겁을 주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이신적의 눈이 팽글팽글 돌면서 어찌나 겁을 내고 있던지, 그 자리에서 경기일으켜 쓰러질까 겁났답니다. 안석환, 참 연기 잘하는 분이에요^^. 
세종의 큰 포용력은 다음 말에서 또 확인이 되었지요. "왕이 오죽 부실하면 과인의 뜻과 다르다 하여, 강상죄로 몰겠소?" 임금의 뜻과 다르면 무조건 대역죄를 씌우는 것에 대한 일침이었고, 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나를 찌질이 임금으로 만들지 말라고 영리한 수로 밀본을 품어버리니, 대신들조차 할말없게 만들어 버리는 세종입니다. 정책에 반대하면 무조건 급진주의니, 좌파니 하며 몰아가는 우리 정치판에서 꼭 들어야 할 말입니다. 세종의 포용은 그들을 자기시력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의 의견으로, 정치적 입장으로 존중하겠다는 겁니다. 반대없는 정치가 민주정치는 아니지요. 무조건 좋은 것이니 알려고 하지말고 따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반민주적 사고방식아니겠습니까?

조말생 대감처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토끼눈 뜰가 우려된 세종, 회의를 소집한 이유에 대해 다시한번 밑줄 쫙 정리하고 넘어가지요. "과인은 글자를 반드시 반포할 것이고, 고맙게 대신들이 수행해 준다면 이레 뒤에 광화문 앞에서 백성들과 함께 반포할 것이오". 글자를 반포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하자 대신들 땅이 꺼지게 한숨입니다.
그리고 밀본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 주지요. 밀본이 붕당을 만들어 반대를 하고자 한다면, 반포전날까지 조정 뒷마당도 옆마당도 아니고, 꼭 앞마당으로 나오시오. 만일 나오지 않고 쥐새끼들처럼 숨어있다가 반포당일 반포를 못하게 해코지를 하거나, 과인에게 밀본원임을 들킨다면, 그 이후에 생기는 모든 일은 니네들 책임이다! 이상.

밀본의 움직임이 바빠졌지요. 분열과 와해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심종수와 이신적이 각각 다른 마음으로 해례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그 칼끝이 정기준을 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궁녀들이 해례를 빼돌려 유포하고 있다고 뒤늦게 눈치챈 정기준이 나인들의 행방과 조지소, 인쇄소 등을 뒤지고 결국 꼬리가 잡히고 말았지요. 초탁을 공격한 윤평을 피해 끝수의 수레를 타고 나인들의 은신처로 왔으니, 나 잡아가쇼가 돼버렸지요.
그런데 나인들과 해례를 찾는 이신적, 심종수, 정기준이 각기 다른 꿍꿍이라 정신을 못차릴 정도입니다. 정기준파, 이신적파, 심종수파로 나뉘어 나인생포 쟁탈전을 벌이고 있고, 여기에 태평관의 청위까지 가세에 일이 삼파전 사파전이 되고 있는 양상이지요.
밀본이 와해될 것은 이미 시작부터 감지되었던 일입니다. 삼봉의 대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기득권싸움으로 변질되어 갔고, 글자를 막겠다는 이유로 자행된 방법들은 이미 성리학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으니 말입니다. 세종의 백성을 향한 명분 앞에 정기준과 밀본의 대의가 명분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죠.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명분과 대의, 이상의 크기가 달랐기 때문이었죠. 정기준의 여전히 큰 바다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글자를 막으려 하는 정기준의 성리학적 대의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도에게 성리학 위에 글자를 두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글자를 막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도와 화해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불씨의 일대기를 펴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견고한 자기만의 틀속에 갇혀버렸지요. 백성들이 쉽고 익숙한 것부터 글자를 익힌 다음의 것을 보지 못한 우를 범하고 만것이에요. 글자를 익힌 백성이 삼강오륜을 배우는 것은 더 쉬울 일이며, 성리학적 질서를 깨닫는 길도 가깝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글을 익힌 사대부조차도 5만자나 되는 한자를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음과 훈을 쉬운 글자로 표기해 둔다면 한자를 익히는 사대부들에게도 좋을 일이요, 까막눈 백성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인데도, 정기준은 불씨일대기를 찍었다는 이유로 글자가 끼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미 역병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글자지만, 해례가 중요한 것은 글자의 창제원리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메모리 저장탱크 소이의 머리에는 발음원리와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가 들어있지요. 스물여덟 글자의 창제원리와 소리내는 방법, 초성 중성 종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글자가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발음하는 지에 대한 것들이 들어있기에 중요합니다. 나인들도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은 알지만, 종합적인 정리자료는 소이의 머리속에 들어있기에 나인들 중에서도 소이는 중요한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알게 된 채윤까지 꼬리잡기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예고편을 보니 개파이가 채윤과 한판 뜰것으로 보이더군요. 그동안 설왕설래 의견이 분분했던 무술서열이 곧 정리가 될 듯도 한데, 우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급 우울입니다. 목숨이 위험한 소이, 개파이와 강채윤이 누가 우세할지 모르지만, 채윤이 밀릴 것같아 강채윤도 걱정, 이쯤되니 누군가 하나 죽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그림자가 엄습해 와서 말입니다.ㅜㅜ 죽이면 작가들 미워할거얌!!
뭉클했던 것은 세종이 강채윤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글자가 쓰이기 위해서는 반포와 유포 두가지 방책이 필요하다고 한 대목에서 입이 벌어지게 하더군요. "반포는 내가 맡을 것이나 유포는 소이가 맡아야 할 것이다. 위험한 일이니 네가 지켜줘야 한다". 유포와 반포가 완수되면 소이를 데리고 떠나라며, 그 때까지는 소이를 내 사람으로 남겨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세종과 소이는 설사 이 일을 하는 중에 누구 하나 죽더라도 남은 사람들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라고, 비장한 약속을 했지요. 소이가 "그 일을 하다가 위험에 처하거나 죽는다 하더라도 자기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걸리네요.

대신들 앞에서 고개숙이는 임금, 자신의 독단에 대해서 만큼은 진정으로 사과하고 할 줄 아는 임금 세종은 잘못을 권위로 누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학사들을 죽인 것에 본인의 과오때문이었다며, 정치적 보복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밀본 역시 그가 품어야 할 백성의 한 조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정치관이 다르다하여, 역적으로 몰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고개숙여할 부분에서는 과오를 인정하고, 품어야 할 백성은 자식을 잃은 슬픔마저 누르고 품습니다. 설령 죽음이 그 일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백성을 위한 글자반포를 멈추지 않겠다는 세종이지요. 세종의 정치철학이 민본과 애민임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결정체인 한글의 창제와 반포과정을 통해 부상하고 있는 것은 세종의 백성에게로 가는 리더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라경영과 정치를 회사경영쯤으로 생각하는 분들과는 다른 리더십입니다. 독단과 독주가 아니라 반대의견에는 귀를 열고, 끊임없는 자기검증을 통해 실효성과 필요성을 확인하고 묻는 자세는 정치지도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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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 08:46




감독 및 시나리오까지 맡은 세종의 한글반포를 위한 연극이 성공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정기준의 뒷통수를 야무지게 후려치고, 지금 각 지방의 인쇄소와 주자소에서는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책이 대량으로 찍혀 나오고 있지요. 책뿐이 아니지요. 발없는 글자가 노래가 되어 역병처럼 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윤평이 소이와 나인들이 충청감영에 가지 않았음을 보고해, 정기준이 세종의 연극을 눈치채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지요. 아무래도 소이와 강채윤에게 위험이 닥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표정이 초지일관 가면같은 반쪼가리 윤평이 소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쬐끔 귀엽기도 하더군요ㅎ.

세종과 정기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는데요, 밀본에서 움직임이 없어서 오히려 폭풍전야같이 느껴집니다. 정기준이 "글자를 막기 위해 벌어지는 모든 살인마저 용인한다"고 했던 말이 섬찟해서 말입니다.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이신적과 심종수가 배신을 때릴 것같은 생각이 들어 정기준의 신변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아들 광평대군(서준영)을 잃은 참담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광분하는 세종을 일으켜 세운 이는 강채윤이었지요. 그날이었습니다. 강채윤은 죽음 앞에서도 버리지 않았던 광평대군의 세종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았고, 글자를 보았고, 글자를 처음 익혔지요. 아버지 석삼의 이름자를 써서 그 이름을 잊지 말아달라고 내밀었던 날, 채윤은 처음으로 복수가 아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소이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일, 소이와 글자를 지키는 것은 채윤의 하고 싶어진 일이었지요.
세종은 그날 채윤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지요. "넌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똘복이어야 한다. 윗것들 싸움보다는 그냥 백성으로, 한 사람의 백성이 윗것들 싸움을 어찌 보고 판단하는지, 그것을 알아야 겠다"라고 말이지요. 채윤은 그날 세종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윗분들의 일이 우리를 죽이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광평대군의 죽음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세종을 보고, 채윤은 소이를 끌고 나가려고 하며, 전하에게 속은 것이 분하고 참담하다고 독설을 내뱉지요. "짐승새끼한테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랬습니다.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면서 까지 천민 똘복이를 구했고, 말문까지 닫아버렸던 소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줬습니다.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될 천한 똘복이와 담이를 구하고 거둔 것은, 그들도 사람이었고,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한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없었다면, 글자를 만들 생각도 애시당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게 된 이유를 돼새겨 준 채윤이었지요.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똘복이가 세종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백성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뭉클했지요.
"백성은 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루 왠종일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들 먹을 것 못먹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책임지지 않았을 때도 우린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책임 좀 떠안고 하고 싶은 것 좀 갖겠다는데, 우리도 욕망하는 것 좀 갖겠다는데, 그게 그리 지옥이십니까? 전하는 위선자십니다. 전하는 아주 소심한 겁쟁이십니다". 윗것들 싸움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했던 똘복이 강채윤은, 그렇게 세종의 흐트러진 심기를 세워줬던 것이지요.
세종에게 말은 그렇게 독하게 했지만, 채윤이라고 어찌 광평대군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어요. 남겨진 광평대군의 신발 한짝을 보며 우는 강채윤, 몰래 광평대군을 추모하는 채윤의 눈물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임금에게 울지말라고 했지만, 채윤은 광평대군이 마치 자신이 지켜주지 못해 그리 비명횡사한 것같아, 세종만큼 아프고 또 아팠던 것이지요.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광평대군이 궁을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만감이 교차했을 듯한 강채윤이었습니다. 상처를 입고도 아프다는 말한마디 하지않고, 고통을 이겨내던 광평대군를 업고 도망쳤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허망하게 가버린 광평대군을 생각하니 채윤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비로소 세종은 정신이 들었고, 결심을 굳히지요. 그리하여 글자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작가에게 놀라웠던 점은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의 이름을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백성(民)을 쓰게 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제목 뿌리깊은 나무의 '백성'을 의미하는 뿌리이기도 한 백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으로, 세종의 혼란이 정리되었음도 암시했던 장면이었지요.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글자를 더 사랑했는지 모르겠다는 세종의 고뇌와 혼란을 소리(音), 글자가 아닌, 백성을 먼저 쓰는 모습으로 정리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도 세종의 심경정리까지 연결해서 세밀하게 연출하는 작가들과 감독입니다.
세종은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도 글자를 반포할 것이라며, 멋진 시나리오를 내놓았지요. 정기준이 너무나 좋은 힌트를 던져줬습니다. "너의 글자는 역병과도 같은 무서운 글자다". 그렇지요. 역병처럼 빠르고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퍼뜨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방법은 기습과 정면공격, 정면공격은 주자소와 지방의 모든 인쇄소에서 훈민정음으로 된 책을 찍어 배포를 하겠다는 것이었죠. 주자소를 급습한 최만리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라며 목에 핏발을 세우지만, 하옥하라는 한마디로 일축해 버린 세종이었고요. 
기습공격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지요. 문제는 해례를 알고 있는 훈민정음 프로젝트팀원들이 궁밖에 나가서 광평대군이 하던 일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밀본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었지요. 궁궐 담장까지 밀본이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소이를 비롯해 궁녀들을 내보내기로 한 세종, 궁밖으로 내보낼 구실은 광평의 소재를 누설했다는 죄목을 씌워 충청감영으로 이첩을 시킨다는 속임수를 썼지요. 궁궐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리는 밀본원들은 이를 잽싸게 정기준에게 알려 밀본의 감시망을 피하게 했던 것이고요. 광평을 살해해 세종을 자극하고자 했던 정기준의 고도의 심리전에 넘어가주는 척했던 것이지요. 멋지게 정기준을 한 방 먹여버린 세종의 역공이었습니다. 
글자반포를 반대하는 집현전 학사들을 싸그리 잡아 옥에 하옥시키고, 광평대군의 죽음에 실마리를 제공한 나인들은 궁밖으로 내쳐버리면서, 궁의 분위기는 살벌함이 감돌고, 마치 이방원의 공포정치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의정 이신적이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보니, 혹시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았나 궁금해지기 까지 하더랍니다.
정기준이 세종의 급격한 변화를 보고받으면서, 자신이 의도하던 대로 되고 있다고 믿게 된 데에는 핵심역할을 해 준 조선 최고의 배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지요. 조말생이 세종의 시나리오에 동참했다는 것은 일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세종은 정기준에 이어 시청자에게도 뒷통수를 제대로 쳐주시더군요. 
사실 세종, 무휼, 채윤, 정인지, 성삼문과 박팽년, 그리고 소이 모두가 배우가 되어 세종의 시나리오에 맞춰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요. 세종이 소이와 채윤을 그리 내칠 것이라고 믿은 시청자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훤히 드려다 보이는 싱거운 연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종의 시나리오를 명작으로 빛내 준 배우가 바로 마지막 반전의 주인공 조말생이었습니다. 
'이도가 드디어 돌았구나!' 라고, 정기준이 쾌재를 부르며 자신의 생각대로 세종이 움직이고 있다고 오판했던 것은, 조말생이 밀본수사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보고때문이었지요. 조말생은 태종 이방원의 사람으로 칼의 정치에 앞장섰던 인물이었기에, 세종이 밀본을 쓸어버리겠다는 광기어린 분노에 적임자였지요. 세종의 사람이 아닌 뼈속까지 이방원의 사람 조말생이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에, 정기준은 광평을 잃은 세종이 이성을 잃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조말생이 황희대감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조말생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어느 쪽에 서야하는지 고민했던 장면입니다. "상왕께서 돌아가시며, 전하(세종)께서 하시는 일은 반대치 말라 하셨다. 오로지 밀본만 막아내라 하셨다"며 고민중이라고 했었지요.
밀본의 발본색원은 조말생의 과업이며, 그에게 있어 대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밀본수사를 강채윤에게 빼앗기고 강채윤에 대해 앙금도 클 수밖에 없었고요. 밀본수사를 맡겨달라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궁에서 내쫒기고 파면을 당해도,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드시 밀본을 잡겠다는 조말생이었기에, 소이와 나인들을 고신하고 채윤을 옥에 하옥시켜 버린 것도, 밀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생각하게 했고, 글자와는 관계없이 단지 밀본을 색출하겠다는 집념으로 보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옥에서 강채윤을 데리고 세종에게 간 순간, 헉! 이런 기막힌 반전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네요. 사실 세종과 채윤, 소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여졌는데, 조말생은 밀본색출 업무에 너무나 충실하는 모습이어서 깜빡 속았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채윤을 집으로 불러 이방지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게도 했던 조말생이었지요. 이방지 역시 정도전의 사람으로 대역죄인인데도 그를 치료하고 숨겨주었다는 사실에, 조말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었지요. 여자를 이용해 이방지의 발을 묶었던 비겁한 무사라며, 이방지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남았던 조말생은 그렇게 조선제일검 이방지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보내 주었습니다.
잘 짜여진 세종의 시나리오, 정기준의 뒷통수를 제대로 치고, 감독 극본 연출 제작을 총괄한 세종의 이번 연극작품에서 최고의 연기자는, 조말생대감 이재용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반전의 주인공이었고요. 조말생 대감역의 이재용은 냉정한 모습도 있지만, 귀여운 구석도 많은 분이죠. 경연장에서 세종이 코 앞까지 다가와 말을 걸 때, 허걱!하는 표정으로 깨알 웃음을 주기도 하는 분이죠. 나인들을 고신할 때 차라리 자신이 고신받는 것이 낫겠더라며, "하는 척만 하려니 소신 정말 힘들었사옵니다" 라는데, 진짜 미안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는데도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암튼 이번 연극의 최고 반전 배우 조말생이었습니다. 

세종이 만든 잘 짜여진 연극 한판으로 한글은 역병처럼 조선팔도 골목골목에서 번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만들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소이, 거지들의 각설이타령까지 지금 조선은 글자역병의 씨앗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훗날 역사에, 백성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워주는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세종의 말이 송곳처럼 찌릅니다. "어차피 그것은 그들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지 않느냐, 지금은 그냥 내 백성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한번도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며, 채윤이 양손을 모아 처음으로 예를 취하더군요. "그렇게 결정내려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수많은 번민과 회의, 좌절, 그리고 그의 백성에 대한 믿음 속에 나온 희망의 씨앗 한글,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지, 또한 그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되새겨 보고 있는 중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예견과 우려대로 백성(국민)이 권력의 주체가 된 지금,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글을 주신 세종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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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2 08:16




40여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세종과 정기준, 두 사람의 만남이 이리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당혹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세종이 마지막으로 설득하고 품어야 할 사람이 정기준임을 알기에, 조금 더 아껴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은 세종도, 강채윤도 알게 되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겠지요. 소위 사대부의 보이지 않는 실세 밀본 본원이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조직을 이끌어 왔다는 것은 까무라칠 일이지요. 무엇보다 세종이 정기준을 어떻게 설득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즈음해서,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했던 역사적 의미를 보여 준 최만리와의 대화는 곱씹어야 할 명대사였습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설득하고 그의 사람으로 만들 논리가 최만리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방지를 만난 강채윤, 제자이기에 앞서 그와 너무나 닮은 꼴인 강채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이방지는 강채윤이 밀본과 뜻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요.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주군의 여자를 연모하고 있는 모습이 지난날의 자신과 같음에 마음이 천근만근이지요.
이방지가 무휼에게 채윤과 소이의 앞날을 약속받는 장면이 가슴 찡했고, 주상이 하지 않는다면 무사로서 목숨을 빚진 자로서 약속한다는 무휼의 말은 금강석보다 강해 보였던 명장면이었죠. 칼을 든 무사들의 진정한 약속, 칼을 두고 맹세하는 모습이었기에 더욱이나 인상적이었더 장면이습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든 것이 중화를 거스르고 조선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사대부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투신자살한 유생 박세명, 그가 남긴 격문이 도성 곳곳에 나붙어 조정대신들의 글자반포에 대한 반대와 세종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지기만 합니다.  
세종과의 독대를 청한 최만리, 세종이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는, 군주이기에 앞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역사학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더이다.

최만리는 자신을 밀본이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려도 좋다며, 밀본이 노비 서용의 과거급제 사건을 통해 모두가 글자를 아는 세상이 가져올 혼란을 말했다고 하지요.
"진정 그것이 혼란이기만 한 것이냐? 백성들이 글자를 안다면 배우고자 할 것이고, 잘 살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삶의 즐거움을 찾아 살아서 꿈틀거릴 것이다".
그 꿈틀이 신분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최만리의 반박에 대한 세종의 일갈은 통쾌하기 까지 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무너진다. 영원한 것이 어디있더냐. 전조 고려 전조를 보아라. 정체되어 썩다 사대부들에 의해 귀족들은 멸했다". 
최만리는 지지않고 지금은 고려와는 달리 시험으로 본다고 전조와의 차별성을 말하지만, 세종은 그 어폐를 꼬집습니다. "그 시험은 무엇으로 보느냐? 너희들만 아는 너희들의 글자 한자로 시험을 본다. 정작 한자를 아는 너희들만 관료가 되는 것 아니냐? 이대로라면 100년 뒤에는 서얼들의 과거가 금지될 것이고, 200년이 지나면 양반들만 시험을 보게 될 것이고, 300년이 지나면 양반을 사고팔고 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조선은 그렇게 경직될 것이고, 그 폐해 또한 날로 심해질 것이다. 역서를 보아라. 어느 나라의 역사든 다 그렇지 않느냐. 하여 그 폐해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희망으로서 글자를 만든 것이다".
최만리는 더 거세게 반발합니다. "하오면 양반을 없앨 수 있습니까? 노비를 없앨 수 있습니까? 사농공상의 지위를 없앨 수 있습니까?".
"못한다. 못한다. 못한다".
"헌데 글자라는 희망만 백성들에게 내리면 그 희망으로 고신당하는 백성들은 어찌 합니까?".
"그것 또한 역서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길을 모색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찾고 찾는 중에 싸우고 타협하여 이뤄가야만 조선은 천세만세를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전조 고려처럼 썩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만리와의 대화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임금이 신분질서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40 여년 밖에 되지 않은 갓 시작된 조선의 임금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드라마속 세종이 조선의 앞날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점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더군요. 이후 서얼금고법으로 서얼이 과거시험을 영구히 보지 못하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임진왜란후 세종의 말 그대로 조선사회 신분질서의 혼란으로 양반을 사고파는 일들이 성행했으니 말입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성리학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성리학으로 세워진 나라가 성리학의 이념논쟁, 일례를 들어 예송논쟁으로 시작된 당쟁이 조선을 정체되게 했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멸망하게 되었으니, 실로 세종의 혜안은 600년 뒤를 내다봤던 아니겠습니까. 세종의 글자가 한글로 통일되면서 보편화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망한 이후였으니, 개탄스럽기 까지 합니다.
한글이 조선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백성들의 의식은 세종의 말대로 꿈틀대며 일어났고, 신분사회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기에 이르렀으며, 공자왈 맹자왈 서책이나 끼고 한량짓하던 양반들은 도태되어 몰락하게 되었으며, 잡학이라 천시하던 잡문에 능한 중인, 양인들이 부를 축적해 갓떨어진 양반들을 조롱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나왔으니 말입니다.
세종은 성리학, 한자의 한계를 이리도 멀리 내다봤던 것입니다. 왜냐? 성리학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며, 기득권자들은 그 기득권으로 인해 망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집중되고 정체되어 있으면, 필히 그 권력에 맞서는 새로운 권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천년만년 갈 것같았던 고려가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신흥권력에 의해 망하는 것을 보았던 세종, 권력이란, 지배층이란, 영원히 보장된 금줄이 아니라는 것을 세종은 역사를 통해 알았던 것이지요.
세종이 백성에게 눈을 돌린 것은 드라마속에서는 똘복이의 모습을 통해서였지만,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 백성이 주인공이 될 세상을 똘복이를 통해서 봤습니다. 백성은 분노하지 않는자가 아니라, 다만 분노를 감추고 있다는 것뿐임을, 그리고 분노할 이유 앞에서는 누구보다 무섭게 분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기준을 만나기로 결심한 세종, 그러나 행방이 묘연해진 이방지로 인해 정기준과의 만남은 불발되었지요. 마음이 심란한 세종은 무휼과 소이만을 데리고 정륜암에 오르고, 고기를 싸서 따라온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밝히면서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대치상황으로 뿌리깊은 나무 18회가 끝났습니다.
고기를 써는 개파이의 꽃반지를 보고 그가 탈바가지를 썼던 고수였음을 알아챈 무휼이 칼을 빼들고, 무휼과 개파이를 보던 세종이 가리온의 눈빛에 놀라 멍해져 있는데, 정기준이 뒷짐을 지고 그의 정체를 밝혔지요. 귀싸대기를 열두번도 때려주고 싶은 싸갈통 머리없는 모습으로 세종앞에 선 정기준에게, "네가 정기준이냐?"며 냉소로 마주하는 장면은 돈주고도 못볼 명장면이었습니다.
정기준, 그가 누구입니까? 성리학, 유학의 질서를 목숨보다 숭배하는 자 아닙니까? 그런데 삼강오륜이 기본인 자가 임금 앞에서 뒷짐을 지고 이름자까지 뱉는 모습은 이미 그의 사상적 오류를 고백하는 장면이나 다름없었지요. 세종을 시해하고 반역을 결심했다기로 서니, 그는 그가 신봉하는 성리학에서 단정하는 패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안 세종, 아니 한석규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냉소에 전율이 일더군요. 경악의 눈빛도 아닌 썩소를 날리다니, 반전 중의 반전장면이었으며 한석규가 해석하는 세종은 명물 중의 명물임을 느끼게 했지요.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비웃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을 향한 욕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실망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삼봉의 조선을 훔친 이방원의 조선,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어린 세종에게 자괴감을 안겨주었던 오랜 트라우마의 근원 정기준은 그렇게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고작 보여주는 것이 집현전 학사들을 죽이는 폭력이었고, 노비의 장원급제와 유생의 죽음으로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동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비웃었던 이방원의 모습과 빼다박은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정륜암에서 벌어지게 될 고수들의 대결과 함께 뭔지 모를 불안한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지만, 세종과 정기준이 벌일 논쟁의 승패는 세종의 냉소에서 이미 판가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정도전의 건국이념에 발이 묶여 한치의 발전도 없는 모습으로, 오히려 퇴보하고 정체된 모습의 정기준이었기에, 세종은 정기준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어린 유생시절의 패기와 의협심, 냉철한 지성은 사라지고, 왕권을 견제하는 재상총재제를 구현하겠다는 빌미는 있었지만, 정작 사대부 선비정신을 버린 것은 정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냉소 속에 읽혀졌던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 비웃음, 욕, 실망감은 그때문이었겠지요. 웃음 하나에도 내면을 모두 담아내다니, 한석규 무서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력입니다.

***'뿌리깊은 나무' 이전 리뷰글들 대부분이 또다시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ㅠㅠ.
글만 복구해서 다시 올려놓겠습니다. 워낙 애착이 있는 작품이고, 심혈을 기울여 쓴 글들이라 제 블로그에도 꼭 남겨두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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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4 01:11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의 비밀스러운 전개도 흥미진진했지만, 그동안 설왕설래했던 정기준의 정체가 백정 가리온(윤제문)이라는 사실은 충격과 경악이었습니다. 너무나 쉬운 단서들을 던져 준 제작진때문에 더 놀라운 반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의심했지만, 가리온이 정기준이었군요. 지난 글에서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했었는데, 글이 삭제조치를 당한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독자분들이 글을 읽기 위해 클릭했다가 아무 것도 뜨지 않은 화면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지...저도 어이없고 기막히지만, 독자분들도 마찬가지였을 듯하네요.

최고의 반전, 가리온(윤제문)이 정기준이었다니....
비록 블라인드 처리되기는 했지만 가리온이 정기준일 것이라고 추측한 근거는, 아비가 도적들에게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말한데서 그가 정기준일 정황은 충분했지요. 손톱만큼의 재주를 뽐내다가 일가족이 죽었다는 말 역시 같은 배경을 가진 것이었고요. 또한 정기준의 용모파기와 싱크로울 100%일치하는 귀모양이 같다는 점, 그리고 집현전 학사들의 사인을 귀신같이 알아냈다는 점은 그가 윤평, 이방지와 관련된 인물임을 추측하게 했었습니다. 또한 허담학사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건익사공을 들었는데, 물 한방울로 죽었음에도 검안소에 왔을 때, 옷깃이 물에 젖어있었다고 말했던 점이 거짓말같다는 추측을 했었고요.
뼈속까지 양반사대부인 그가 조선에서 가장 천한 백정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길을 걸어왔던 것에서, 그의 참혹하고 외로운 길이 강채윤과 세종 이도의 그것과 같았다는 글을 참 정성스럽게도 썼는데, 제작사측이 없애버렸군요.
그런데 지난 9회에서는 가리온이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목숨과도 같다며 울부짖는 모습에, 심하게 흔들려서 가리온이 천지계원이 아닐까 다른 추측도 했었습니다. 윤제문의 진심을 담은 연기가 정말 천한 백정의 애환을 절절하게 담았기에 더 감쪽같이 속았고 말이죠. 미친연기력의 윤제문, 역시 비중있는 배우의 무게감과 존재감은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상상과 추측의 재미가 드라마를 열배 즐겁게 즐기게 하기에, 뿌리깊은 나무는 너무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세종의 가장 강한 견제자 정기준이 세종의 하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있는 설정입니다. 위험한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이렇게 소름끼치게 실감되다니 말이죠.

이런 정리글이 삭제되어 참 분통이 터지네요. 이런 분석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드라마를 꼼꼼히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쉽게 저작권 침해라는 횡포와 행패에 가까운 행위로 싹둑 잘라 내버리지는 못할텐데, 개인적으로 마음이 불편하네요. 그외에 뿌리깊은 나무와 관련된 대부분의 리뷰글이 삭제조치로 블라인드처리되어, 지금 제 마음이 제 마음이 아니랍니다. 협조를 구해 다시 글만 복원하는 방법을 찾아 다시 복구는 해보겠지만, 영 씁쓸하네요.
앞으로는 글을 올리고 하루 뒤에 인용한 사진자료들은 다 삭제할 생각입니다. 사진없는 글이 드라마 리뷰를 보는 감흥을 떨어뜨리기는 하겠지만, 글 자체를 없애버리는 처사에 이렇게 대처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뿌리깊은 나무만 저작권 침해라는 이유로 삭제조치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천일의 약속은 그대로 두었던데 말입니다. 이는 SBS측보다는 제작사가 가위를 들고 있는 것같아 보이는데, 음,,,제작사 상당히 얄밉군요. 제가 인용한 사진으로 책받침을 만들어 팔아먹는 것도 아니고, 떡을 쪄 먹을 것도 아닌데... 다른 블로거의 글들은 무사한지 모르겠지만, 제 글은 지난 글들 모두 대부분 블라인드 처리되어 제가 표적이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속이 쓰려서 화풀이 좀 길게 했습니다ㅠㅠ.
여튼 가리온이 이신적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반전이었습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 자체가 소름이었다기 보다는,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반전을 거듭하는 표정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굽신거리고 눈치만 보는 듯한 힘풀린 눈동자에 서서히 힘을 주더니, 수만볼트 안광을 쏘다내며, 이신적에게 본원의 명을 거역한 것을 추궁하는 장면은, 과연 윤제문이구나 라는 말이 튕겨나오게 하더군요. 비밀조직의 수장이며, 조선의 가장 천한 백정, 두 얼굴의 정기준 가리온, 그의 무섭도록 완벽한 1인2역에 감탄, 또 감탄했네요. 한석규, 장혁, 윤제문, 조진웅 이들 미친 4인방의 불꽃튀는 연기는 감히 경쟁을 한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그저 자신들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자신을 던지고 있을 따름이라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들의 연기는 비교분석하지 않으려고요^^;;

남사철에게 놀아난 세종과 강채윤, 그리고 정기준 가리온
세종도 정기준도 강채윤도 시청자도 남사철의 자작극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는데요, 남사철은 철저하게 사대부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꼴통 사대부였군요. 가부조사를 나가지 않으려는 남사철의 오줌 잘금거리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어마어마한 거짓말이 밀본의 본원을 드러내게 하고, 세종과 강채윤을 교묘하게 속이기 까지 했으니 말이죠. 가리온을 구출하기 위해 파옥을 단행하는 거사를 일으켰다면, 정기준이 정체가 세종과 강채윤에게도 들통이 났을텐데, 결국 소이와 강채윤, 세종이 합심해서 가장 큰 적을 구해낸 꼴이 되었으니, 일이 골치아프면서도 재미있게 되버렸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을 불러 한글을 검증받는 세종, 이번회는 귀요미 돋는 세종, 삐짐대왕 세종의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하며 깨알같은 재미도 주었지요. 성삼문과 박팽년의 입바른 지적에 당황스러워 하고, 귀엽게 화를 내는 세종, "냉정한 것들 같으니라고!"에 빵터지기도 하고,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모습도 귀엽기까지 했다죠. 강채윤에게 가리온의 무혐의를 밝힐 수있을 결정적 힌트를 주며 독대하는 자리에서, 무휼이 5보 떨어져 있었다고 토라지는 세종, "다음부터는 3보 이내에 있어야 되느니라. 보면은 은근히 신경을 안써" ㅎㅎ.
그나저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세종의 알송달송한 말을 채윤이 풀어가는 모습은, 그의 동물적 감각이 놀랍기만 했지요. 세종이 무휼에게 넌 못알아 들었잖느냐며 면박을 주고, 무휼을 뻘쭘 창피하게도 했지만, 저도 세종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말이 처음에는 남사철 사건에 어떤 힌트였는지 이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에게 열정적으로 한글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하는 중, 밀본을 언급한 세종이었지요. 아무래도 한글창제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할 세력이 사대부였기에 그런 우려를 토로했던 듯 싶습니다. "상왕이 정도전 일가와 심온 대감, 강상인 일가를 모두 추단하신 것이 밀본때문이었다는 풍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 세종은 머리를 잡고 큰 실수를 깨달았지요. 세종을 정신 번쩍 들게 한 것은 풍설이라는 단서였지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세종은 심온대감이 밀본이 아니었음을 확신했었고, 심온대감을 제거한 것이 왕권에 대항하는 밀본에 놀라, 힘을 가진 모든 세력은 숙청해 버렸던 이방원의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근자에 일어난 해괴한 일들을 밀본의 짓이라고 믿어버린 이도 역시, 아버지 이방원에게 잠재해 있던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결국 남사철 집에 남겨진 협박장과 칼은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본 남사철 공포심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지요. 가리온 역시 만천하가 아는 백정인데, 자신의 칼을 여보란 듯이 사건현장에 남겨두고 갈 바보도 아닐테고, 더구나 조선 최고의 검시실력을 자랑하는 가리온이 그런 실수를 했을 리는 없는 일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강채윤의 함정수사에 말려든 남사철은 조말생 대감과의 협공으로 붙잡혔고, 그는 밀본도 뭣도 아닌 찌질이 겁쟁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우라질 같은 놈이 다 있단 말이냐!", 세종의 한마디가 그를 정리해 주더군요.
또 한명의 판관 강채윤, 가장 무서운 자, 가장 멀리있는 자의 의미
세종은 가리온을 구명하기 위해 소이에게 겸사복 강채윤을 만나라고 하지요. 가리온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소이의 청에 강채윤은 냉소적입니다. 사건 당일 소이는 어명을 받고 가리온을 만났었고, 세종의 밀명이 드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가리온을 구명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채윤이었지요. 국가 대사를 위해 천한 목숨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비꼬는 채윤에게, 소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요. "왜 때죽나무와 산조인을 섞어 먹느냐 하셨죠? 어린 시절 나의 치기로 아비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전하의 대사는 전하의 것만이 아닙니다.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자고 싶습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구해 주십시오".
자신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잠 못이루는 소이, 채윤은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애틋하고 가련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그녀를 말이지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지요. 나인 소이가 어린 시절 시집오겠다던 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강채윤은 얼마나 놀랄 것인지, 서로를 죽은 줄만 알고 있던 두 사람이 언제쯤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지....
강채윤을 만나고 온 소이가 세종에게 묻지요. "왜 그 자입니까? 그 자가 물었습니다. 대의를 위해서인지, 가리온의 목숨을 위해서인지...".
잠시 상념에 잠긴 듯하더니 세종 이도가 입을 열었지요.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왕이 외었을 때, 모두가 내게 대의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했다. 또한 왕은 그래야만 한다고 했고...헌데 내가 대의로 한 것을 두고, 어떤 놈이 '지랄하고 자빠졌네'했다. 그 자가 바로 강채윤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자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더냐, 그래서 그 자다. 또 한 명의 판관, 가장 무서운 자,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자".
성삼문과 박팽년 외에 또 한명의 판관 강채윤이라는 인물의 의미는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며, 세종의 과제이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정기준, 아니 정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종이 싸우는 이념은 '대의'의 뿌리가 다름에 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떠받들고 지탱하는 뿌리를 사대부로 봤지만, 세종은 그 뿌리를 똘복이, 즉 백성에게 뒀지요. 정도전과 세종의 성리학적 이념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백성을 위한 민본주의, 성리학의 이념이자 근간입니다. 허나 나라를 경영하는 주도권이 재상에게 있느냐, 왕에게 있느냐를 두고 이방원과 정도전은 의견을 달리했고, 세종 이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이방원-정도전, 세종 이도-정기준, 대를 이은 이들의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입니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죠.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세종 이도와 정기준의 차이는 그들을 지탱하는 뿌리의 다름입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밀본지서를 금과옥조로 삼고 사대부들을 뿌리로 세우려 했고, 세종은 똘복이와 같은 백성이 뿌리가 되어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습니다. 한글은 세종이도가 백성에게 가는 길이었습니다. 백성을 얻는 방법이었고, 백성을 받드는 길이었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었습니다. 세종이 그 오랜 시간 비밀조직 천지를 이끌면서 집현전 학사들에게 조차 실체를 밝히지 않고, 홀로 외로이 걸어왔던 길, 백성에게 향하는 길이었지요. 그것이 세종의 대의였습니다.
그러나 정기준의 대의는 답보상태, 아니 후퇴를 했습니다. 오히려 대의에 역행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말이지요.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사대부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일에 게거품을 물며 반대를 했고, 백성을 위한 세법개혁이나 농사, 상업에 필요한 실용학문을 천시했죠. 왜? 백성의 힘이 커짐을 경계하고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백성들, 부유한 백성들은 왕 못지않게 경계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을 반대하기 위한 반대일 뿐이었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집현전을 철폐해야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똑똑한 학자들,날로 새로워지는 학자들의 논리에 고인물이 당할 재간이 없었던 거죠. 경연은 왕을 견제하기 보다는 세종, 즉 왕권을 강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이죠. 경연을 강조했던 정도전에 반해 정기준이 집현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사상적 퇴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기준이 가리온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예상은 했지만 아이러니한 그의 모습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더군요.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버러지 목숨입니다"라고 했던 말이었어요.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을지, 궁여지책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는지 모르겠어서 말이지요. 국가를 왕-사대부양반-양민-천민 등 철저한 신분계급에 따라 성리학의 질서를 대입시켰던 것이, 이들 유학을 숭배하던 성리학자들 아니었습니까. 신분을 감추고 백성들 사이에 몸을 숨긴 정도전이 반촌에 숨어든 것은 공자의 사당이 그곳에 있었고, 성리학의 요람이자 성지이기 때문이라는 설득력은 있지만, 천민들이 모여사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에서 이율배반적이지요. 사람 취급하지 않은 천민들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점, 과연 정기준은 그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변화는 없었을까가 자못 궁금하기만 합니다. 
가리온이 세종의 한글창제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할 지, 종국에는 "이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고 했던 그의 말을 철회할 날이 오겠지만, 가리온이 결정적으로 세종의 한글창제에 마침표를 찍을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극적입니다. 아직 미완인 부분이 후음인데, 소이를 통해 가리온에게 전달한 밀명이 이와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가리온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저는 이부분이 참으로 궁금하네요. 작가가 멋지고 의미있게 갈무리를 하겠지만 말입니다.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강채윤을 가장 무서우면서 가장 믿을 만한 자이며, 가장 멀리있는 자라고 했지요. 강채윤은 돌복이로 대변되는 세종의 백성을 상징하겠지요. 임금이라는 자리는 백성의 말을 가장 무서워 해야 하는 자리이며, 백성의 믿음 위에 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요. 임금과 가장 멀리있으나 가장 무서운 자, 백성을 두려워 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못지않게 군주가 지녀야 할 기본덕목입니다.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궁에 들어 온 똘복이라는 드라마적인 설정은 있지만, 세종의 백성을 대하는 자세는 오늘 가장 필요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 판관으로 백성으로 대변되는 똘복이 강채윤을 둔 것은, 백성이 원하지 않으면, 백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힘을 들여 만들어 왔다고 해도 버릴 것이라고 했던, 세종의 위대한 민본주의 정신에 일치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크지요. 집현전 학사들의 검증, 재검증을 거치고도, 백성을 위한 일을 그 백성에게 또 검증을 받으려 하는 세종대왕,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일들을 똥고집으로 강행하는 어떤 이들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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