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이도'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1.12.22 '뿌리깊은 나무' 반전의 열쇠 연두, 광화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29)
  2. 2011.12.09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시나리오가 배출한 최고의 배우는? (19)
  3. 2011.12.02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냉소,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반전 (21)
  4.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4회' 웃기는 세종 한석규, 허를 찌르는 완벽한 반전 (1)
  5.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회' 서서히 드러나는 세종 이도의 야망 (2)
2011.12.22 10:47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결말에 있을 반전이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그 중심인물이 연두와 개파이가 될 것이라는 것은 많은 분들이 예상하고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성공적인 반포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아 해례인 소이는 무사히 궁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을 피했을 지가 궁금한데요, 애타게 담이를 부르며 쫓아간 강채윤에 의해 구해질 확률이 높겠지요.
소이를 죽일 정기준의 수하는 대적불가 개파이의 손까지 빌 필요는 없을테고, 밀본원 중의 한사람일테지요. 정기준은 개파이를 데리고 쑥대밭이 된 산채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은신해, 정기준은 반포식에 맞춰 이도를 죽이라는 마지막 명을 내리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채윤과 개파이, 혹은 무휼과 개파이의 한 판 대결은 어쩌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희생과 피가 따랐던 글자창제와 반포가 마지막까지 피비린 내 나는 속에서 이뤄지지는 않았으면 싶네요. 
견적희가 개파이의 얼굴을 본 순간 경기를 일으키듯 벌벌 떠는 모습만으로도 개파이의 무공이 어느 정도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지만, 원의 복위조직에 가담한 돌궐족 카르페이 테무칸이라...칸이라는 칭호를 보아하니 그쪽에서는 꽤나 명망있는 후예인데, 정기준을 따라 조선까지 흘러 들어 온 이유가 무엇인지, 두 사람의 관계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개파이가 아무 연고도 없는 조선에 들어와서 한글을 깨친 외국인 1호가 되었으니, 재미있는 설정이죠.

교활한 세종, 인자한 보살미소 뒤에 감춘 무서움
여하튼 밀본의 조직은 산산히 와해되기 일보 직전이고, 계산에 능한 우상 이신적은 세종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3정승의 재가를 얻어 반포의 절차를 합법화시키는 세종의 교활한(?) 수가 빛났지요. 인자한 미소 뒤에 감춰진 세종의 무서움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무휼이 왜 심종수가 아니라 이신적이냐고 물었지요. "심종수는 이신적에 비해 술수가 모자라다. 정치력말이다. 조정신하들은 각각의 과오가 있을 지언정 멍청한 자들은 없다. 모두가 무서운 자들이다. 3정승에 올랐다는 건 그런 무서운 자들 중 가장 정점에 있다는 것이다. 이신적이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은 황희대감보다 더 크다".
세종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능력과 사람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지요. "왕의 일이란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제하고 그들의 능력이 백성들을 위해 쓰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무휼은 이런 세종의 용인술을 태종보다 교활하다고 고백하게 하지만, 세종의 교활함은 이해를 넘어 존경의 리더십으로 칭송받게 합니다. 그 목적이 백성을 위함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지옥에 사는데 내가 보살일 줄 알았냐?"는 세종의 웃음 뒤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까지 엿보게 하지요. 나라고 항상 허허할 수 만은 없지 않느냐? 보이지 않게 갚아주는 마음도 있느니라 라는 고백과도 같았으니 말입니다.  

과정이 중요한 일이 있고, 결과가 중요한 일이 있다는 세종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글자를 만들기 까지의 과정이 중요하지만, 반포를 한다는 것은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이기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세종, 글자의 반포로 비로소 새역사는 시작될 것이기에, 세종의 글자반포에 대한 의지는 천명과도 같았습니다. 반포가 되어야만 백성들을 위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세종의 비장한 표정에는 백성들에 대한 믿음과 희망마저 일렁이고 있었지요. 새로 쓰이게 될 역사에 대한 설레임과도 같은 흥분도 엿보였고 말입니다.

정기준, 열등감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정기준의 고백은, 설득력과 명분마저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의 수장, 그의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었나 심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겠더군요. 소이에게 왜 주상을 돕느냐고 물었지요. 세종으로 인해 아비를 잃고, 자책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말이지요. 정기준은 스스로 세종에 대한 열등감으로 피해의식이 있었다는 것도 고백했지요. 백정으로 신분을 숨기고 20년이 넘도록 살아온 동안, 이도는 그 사이에 세상이 칭송하는 성군이 되어 있는 것을 보는 심정, 그 열등감이 그를 피폐하게 만들었노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정기준은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극복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오히려 열폭하는 정기준만이 보이더군요. 정기준은 세종의 글자를 다른 누구보다 칭송하지요. "이도가 만든 글자는 너무나 훌륭한 글자다. 저 훌륭하기 짝이 없는 글자를 막아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천명임을 깨달았다. 제아무리 왕이어도, 그 무엇이라도 천년의 역사를 시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난 기필고 그것을 막아낼 것이다".
정기준...이렇게 무너지나요? 참으로 찌질하게 변해가는 정기준때문에 그간 정기준에게 가졌던 그의 대의에 대한 일말의 이해심마저 무너지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기준은 결국 세종에 대한 개인적인 열폭감으로 밀본이니 성리학의 이상이니, 역사니, 백성에 대한 사대부의 책임이니 하는 것들을 떠들고 있었다는 건지, 정기준의 몰락이 초라하기 그지 없네요. 작가가 좀 그럴 듯하게 그려줬으면 좋았겠다는 동정심마저 들게 하더라지요;;. 그래도 20여년이나 와신상담했던 인물인데 말이죠.

똑같은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이 나오기도 했지요. 유포임무를 수행하러 떠나는 소이가 해례를 옮겨두고 떠나려 하자 세종은 이를 극구 말렸더군요. 그것은 소이에게 반드시 살아돌아오라는 간절함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글자를 만드는 과정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소이에게 세종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로 소이에 대한 애정을 전했지요. 강채윤이 밥을 굶기지 말아야 할텐데 라는 장난기 섞인 농도 던지면서 말이지요. "하루하루를 즐거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 강채윤과 약조하거라". 요즘말로 하면 성혼선서와도 같은 것이었지요. 주례선생님이 약조를 받는 것처럼 말이지요. 채윤과 소이의 행복한 생활이 언급될 때마다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하지만, 저는 제작진의 낚시라고 굳게 믿을 거외다!! 
한 사람은 반드시 살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고맙고 미안하다는데, 한 사람은 죽여야 하니 고맙고 미안하다고 똑같은 말을 했지요. 어린 연두마저 글자를 안다는 이유로 죽이라는 명을 내리는 정기준, 그의 눈에도 인간적인 연민은 있기에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아프지 않게 죽이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지만, 글자를 막기 위해 무자비하게 백성을 해하는 모습에서 이미 그는 사대부의 갓에 담긴 고고한 이상을 버린 살인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반포식에 독으로 무장한 살수를 풀어 막으려고 까지 하는 그의 광기를 막을 사람은 개파이가 될 듯하지만, 그가 끝까지 세종과 화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극과 극인 천명과 천명의 싸움, 둘 다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는 기치를 걸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죠.

세종과 이신적의 눈싸움, 명장면 만든 심리전
세종과 이신적의 팽팽한 신경전은 경연장에서도 극에 달했지요. 그 심리싸움의 향방을 가름할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종과 이신적은 서로의 수를 읽느라 눈동자 하나도 놓치려 하지 않는 모습이었죠. 세종의 영리한 선방은 감탄사가 나오게 했지요. 결코 한 마디의 말실수도 하지 않은 치밀함으로 말이지요. 조정 앞마당에 밀본원임을 떳떳이 밝히고 나와 토론하자고 했건만, 쥐새끼 한마리 나오지 않았다며 말문을 연 세종, 마지막 제안을 하겠다고 하지요. "9월 상한날 만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자반포를 하려하오. 이조는 정음청을 설치하고, 예조는 이 글자를 시험과목으로 도입할 수 있는 시행안을 마련하시오".
아니나다를까 최만리 영감 울그락불그락 아니되옵니다가 이어지지요. 대신들이 어떤 반발을 할지 이미 그 수를 다 읽고 있는 세종, 고단수로 찍소리 못하게끔 해버리지요. "조선이 임금이 독단적으로 밀어부쳐 엄포를 하면 무조건 행하고 따르는 나라요? 조선은 엄연히 의정부 서사제라는 체제하에 있소이다. 과인의 제안을 의정부에서 결정하면 될 일, 의정부 3정승이 논의하고 가부를 결정하면, 그 결정에 따라 교지를 내릴 것이니 가장 중요한 것은 3정승의 재가가 될 것이오".
침묵속에 미주치는 세종과 이신적의 눈빛은 설전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던 명장면이었습니다. 최만리의 계속되는 반대를 3정승의 논의로 결정하라는 하명을 듣지 못하였느냐며 일축해 버린 이신적, 그의 꿍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요. 황희정승은 찬성, 우상은 일단 반대, 좌상은 분위기 봐서..그 표의 향방이 우상 이신적의 결정에 달린 것이기에 이신적의 한표는 그야말로 역사가 걸린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제밤의 대답인 것이냐?", "아직 결정한 것은 아니옵니다. 노력을 해보겠다는 뜻이지요". 
세종의 물밑작업은 황희와 조말생을 통해서도 보였습니다. 오락가락 좌상의 한표를 황희와 조말생이 보이지 않게 도우면서 2:1로 우세를 점칠 수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이신적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술이 보통이 아니어서 안심할 상황은 못되지요. 심종수를 요리하는 이신적은 교활을 넘어 노련한 정치9단의 수를 읽게도 했지요. 심종수를 적당히 얼래고 달래며,-물론 이과정에서 주상이 이간질을 했다는 식으로 믿음도 주면서 말이죠,-정기준의 동태를 파악하고 견적희를 보내 끝까지 저울질을 하는 이신적이었기에 말이지요.

반전의 열쇠 연두와 개파이, 광화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채윤의 연통으로 내금위의 습격을 받은 밀본의 산채, 다행히 연두(정다빈)는 채윤에 의해 구해졌지만, 소이와 강채윤의 생명이 위험상황입니다.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알게 된 정기준이 소이를 죽이라 명하고, 소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강채윤과 한판대결을 벌일 것이 자명하기에 말이지요.
예상상황은 개파이와 정기준은 함께 자리를 뜨고, 채윤보다 무공이 낮은 밀본똘마니와 싸워 강채윤이 무사히 소이를 구할 것이라 저는 예상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반포식 당일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겠지요. 이도를 죽이라는 마지막 명을 받은 개파이가 칼을 마주하는 모습도 나와서, 대적불가 개파이의 선택에 따라 광화문이 피바다가 될지, 성공적인 반포가 이뤄질 지가 결정되겠지요. 
개파이는 아직 연두의 생사를 모르고 있는데, 정기준이 연두를 이용할 것이라 보여지네요. 산채의 습격에도 이렇다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개파이는 오로지 연두가 없어졌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연두라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드는 개파이에게 정기준은 연두가 내금위에 잡혀있다는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있지요. 허나 정기준이 연두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면 개파이는 정기준을 단칼에 버릴 것입니다.
이도를 죽이라는 명을 받고 광화문에 개파이가 나갈지 안나갈지는 모르지만, 개파이가 정기준에게 칼을 돌릴 것이라는 암시가 예고편에 나왔지요. "그동안 즐거웠다, 본원" 이라는 개파이의 말은 왠지 정기준에 대한 예의를 갖춘 살해암시가 읽혀지는 대목입니다. 정기준이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했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제작진의 예고편으로 오히려 머리가 뒤죽박죽된 느낌입니다.
다만 한가지 광화문에서 살아있는 연두를 본 개파이가 정기준의 거짓말을 알아차리고, 세종의 시해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예상되는 시나리오입니다. 강채윤이 세종대신 독화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피흘리는 장면도 상상되고, 세종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휼이 세종을 온몸으로 막고 죽는 모습도 상상되고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스럽습니다.
중요한 점은 광화문에 연두가 힘께 있을 거라는 것이죠. 개파이가 연두를 구하기 위해 살수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오히려 성공적인 반포를 돕게 되는 결말도 상상되네요.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다 보니ㅎㅎ. 그래도 훈민정음 반포라는 역사적인 현장에 피바람은 불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봅니다.
사람도 잃고, 대의도 상실하고, 이도에 대한 열등감에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정기준, 결국 훈민정음 반포는 성공하고 정기준이 말했듯이 그와 이도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도 끝을 맺을 것입니다. 세종의 말이 이 대목에서 결말을 암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자를 만들기 까지의 과정이 중요하지만, 반포를 한다는 것은 결과가 중요하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겨야만 일이 시작되니까. 이겨야만 백성들을 위해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정기준과 세종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일지 모릅니다. 글자가 반포에서 그치지 않고 널리 유포되어 만백성이 읽고 쓰고 제 뜻을 펼치는 그날까지, 누군가는 백성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것이고, 누군가는 백성의 커지는 힘을 막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죠. 백성이 권력을 가지는 세상을 막기 위해, 말로는 혼돈을 피하고 역사를 위해서라지만, 백성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제2의 정기준은 얼굴과 이름만 달리할 뿐 계속해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싸움이죠. 비록 드라마지만 백성이 주체가 되는 세상의 시작을 백성의 글자, 한글을 통해 열어 준 세종대왕, 그 싸움의 결과는 세종에게도 집현전 학사들에게도 사대부들의 손에도 달려있지 않습니다. 백성들에게 달려있죠. 세종과 정기준이 남겨둔 토론의 마지막 주제, 백성의 책임, 몫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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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 08:46




감독 및 시나리오까지 맡은 세종의 한글반포를 위한 연극이 성공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정기준의 뒷통수를 야무지게 후려치고, 지금 각 지방의 인쇄소와 주자소에서는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책이 대량으로 찍혀 나오고 있지요. 책뿐이 아니지요. 발없는 글자가 노래가 되어 역병처럼 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윤평이 소이와 나인들이 충청감영에 가지 않았음을 보고해, 정기준이 세종의 연극을 눈치채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지요. 아무래도 소이와 강채윤에게 위험이 닥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표정이 초지일관 가면같은 반쪼가리 윤평이 소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쬐끔 귀엽기도 하더군요ㅎ.

세종과 정기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는데요, 밀본에서 움직임이 없어서 오히려 폭풍전야같이 느껴집니다. 정기준이 "글자를 막기 위해 벌어지는 모든 살인마저 용인한다"고 했던 말이 섬찟해서 말입니다.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이신적과 심종수가 배신을 때릴 것같은 생각이 들어 정기준의 신변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아들 광평대군(서준영)을 잃은 참담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광분하는 세종을 일으켜 세운 이는 강채윤이었지요. 그날이었습니다. 강채윤은 죽음 앞에서도 버리지 않았던 광평대군의 세종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았고, 글자를 보았고, 글자를 처음 익혔지요. 아버지 석삼의 이름자를 써서 그 이름을 잊지 말아달라고 내밀었던 날, 채윤은 처음으로 복수가 아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소이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일, 소이와 글자를 지키는 것은 채윤의 하고 싶어진 일이었지요.
세종은 그날 채윤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지요. "넌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똘복이어야 한다. 윗것들 싸움보다는 그냥 백성으로, 한 사람의 백성이 윗것들 싸움을 어찌 보고 판단하는지, 그것을 알아야 겠다"라고 말이지요. 채윤은 그날 세종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윗분들의 일이 우리를 죽이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광평대군의 죽음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세종을 보고, 채윤은 소이를 끌고 나가려고 하며, 전하에게 속은 것이 분하고 참담하다고 독설을 내뱉지요. "짐승새끼한테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랬습니다.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면서 까지 천민 똘복이를 구했고, 말문까지 닫아버렸던 소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줬습니다.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될 천한 똘복이와 담이를 구하고 거둔 것은, 그들도 사람이었고,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한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없었다면, 글자를 만들 생각도 애시당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게 된 이유를 돼새겨 준 채윤이었지요.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똘복이가 세종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백성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뭉클했지요.
"백성은 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루 왠종일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들 먹을 것 못먹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책임지지 않았을 때도 우린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책임 좀 떠안고 하고 싶은 것 좀 갖겠다는데, 우리도 욕망하는 것 좀 갖겠다는데, 그게 그리 지옥이십니까? 전하는 위선자십니다. 전하는 아주 소심한 겁쟁이십니다". 윗것들 싸움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했던 똘복이 강채윤은, 그렇게 세종의 흐트러진 심기를 세워줬던 것이지요.
세종에게 말은 그렇게 독하게 했지만, 채윤이라고 어찌 광평대군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어요. 남겨진 광평대군의 신발 한짝을 보며 우는 강채윤, 몰래 광평대군을 추모하는 채윤의 눈물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임금에게 울지말라고 했지만, 채윤은 광평대군이 마치 자신이 지켜주지 못해 그리 비명횡사한 것같아, 세종만큼 아프고 또 아팠던 것이지요.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광평대군이 궁을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만감이 교차했을 듯한 강채윤이었습니다. 상처를 입고도 아프다는 말한마디 하지않고, 고통을 이겨내던 광평대군를 업고 도망쳤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허망하게 가버린 광평대군을 생각하니 채윤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비로소 세종은 정신이 들었고, 결심을 굳히지요. 그리하여 글자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작가에게 놀라웠던 점은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의 이름을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백성(民)을 쓰게 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제목 뿌리깊은 나무의 '백성'을 의미하는 뿌리이기도 한 백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으로, 세종의 혼란이 정리되었음도 암시했던 장면이었지요.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글자를 더 사랑했는지 모르겠다는 세종의 고뇌와 혼란을 소리(音), 글자가 아닌, 백성을 먼저 쓰는 모습으로 정리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도 세종의 심경정리까지 연결해서 세밀하게 연출하는 작가들과 감독입니다.
세종은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도 글자를 반포할 것이라며, 멋진 시나리오를 내놓았지요. 정기준이 너무나 좋은 힌트를 던져줬습니다. "너의 글자는 역병과도 같은 무서운 글자다". 그렇지요. 역병처럼 빠르고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퍼뜨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방법은 기습과 정면공격, 정면공격은 주자소와 지방의 모든 인쇄소에서 훈민정음으로 된 책을 찍어 배포를 하겠다는 것이었죠. 주자소를 급습한 최만리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라며 목에 핏발을 세우지만, 하옥하라는 한마디로 일축해 버린 세종이었고요. 
기습공격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지요. 문제는 해례를 알고 있는 훈민정음 프로젝트팀원들이 궁밖에 나가서 광평대군이 하던 일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밀본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었지요. 궁궐 담장까지 밀본이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소이를 비롯해 궁녀들을 내보내기로 한 세종, 궁밖으로 내보낼 구실은 광평의 소재를 누설했다는 죄목을 씌워 충청감영으로 이첩을 시킨다는 속임수를 썼지요. 궁궐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리는 밀본원들은 이를 잽싸게 정기준에게 알려 밀본의 감시망을 피하게 했던 것이고요. 광평을 살해해 세종을 자극하고자 했던 정기준의 고도의 심리전에 넘어가주는 척했던 것이지요. 멋지게 정기준을 한 방 먹여버린 세종의 역공이었습니다. 
글자반포를 반대하는 집현전 학사들을 싸그리 잡아 옥에 하옥시키고, 광평대군의 죽음에 실마리를 제공한 나인들은 궁밖으로 내쳐버리면서, 궁의 분위기는 살벌함이 감돌고, 마치 이방원의 공포정치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의정 이신적이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보니, 혹시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았나 궁금해지기 까지 하더랍니다.
정기준이 세종의 급격한 변화를 보고받으면서, 자신이 의도하던 대로 되고 있다고 믿게 된 데에는 핵심역할을 해 준 조선 최고의 배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지요. 조말생이 세종의 시나리오에 동참했다는 것은 일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세종은 정기준에 이어 시청자에게도 뒷통수를 제대로 쳐주시더군요. 
사실 세종, 무휼, 채윤, 정인지, 성삼문과 박팽년, 그리고 소이 모두가 배우가 되어 세종의 시나리오에 맞춰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요. 세종이 소이와 채윤을 그리 내칠 것이라고 믿은 시청자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훤히 드려다 보이는 싱거운 연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종의 시나리오를 명작으로 빛내 준 배우가 바로 마지막 반전의 주인공 조말생이었습니다. 
'이도가 드디어 돌았구나!' 라고, 정기준이 쾌재를 부르며 자신의 생각대로 세종이 움직이고 있다고 오판했던 것은, 조말생이 밀본수사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보고때문이었지요. 조말생은 태종 이방원의 사람으로 칼의 정치에 앞장섰던 인물이었기에, 세종이 밀본을 쓸어버리겠다는 광기어린 분노에 적임자였지요. 세종의 사람이 아닌 뼈속까지 이방원의 사람 조말생이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에, 정기준은 광평을 잃은 세종이 이성을 잃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조말생이 황희대감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조말생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어느 쪽에 서야하는지 고민했던 장면입니다. "상왕께서 돌아가시며, 전하(세종)께서 하시는 일은 반대치 말라 하셨다. 오로지 밀본만 막아내라 하셨다"며 고민중이라고 했었지요.
밀본의 발본색원은 조말생의 과업이며, 그에게 있어 대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밀본수사를 강채윤에게 빼앗기고 강채윤에 대해 앙금도 클 수밖에 없었고요. 밀본수사를 맡겨달라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궁에서 내쫒기고 파면을 당해도,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드시 밀본을 잡겠다는 조말생이었기에, 소이와 나인들을 고신하고 채윤을 옥에 하옥시켜 버린 것도, 밀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생각하게 했고, 글자와는 관계없이 단지 밀본을 색출하겠다는 집념으로 보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옥에서 강채윤을 데리고 세종에게 간 순간, 헉! 이런 기막힌 반전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네요. 사실 세종과 채윤, 소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여졌는데, 조말생은 밀본색출 업무에 너무나 충실하는 모습이어서 깜빡 속았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채윤을 집으로 불러 이방지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게도 했던 조말생이었지요. 이방지 역시 정도전의 사람으로 대역죄인인데도 그를 치료하고 숨겨주었다는 사실에, 조말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었지요. 여자를 이용해 이방지의 발을 묶었던 비겁한 무사라며, 이방지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남았던 조말생은 그렇게 조선제일검 이방지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보내 주었습니다.
잘 짜여진 세종의 시나리오, 정기준의 뒷통수를 제대로 치고, 감독 극본 연출 제작을 총괄한 세종의 이번 연극작품에서 최고의 연기자는, 조말생대감 이재용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반전의 주인공이었고요. 조말생 대감역의 이재용은 냉정한 모습도 있지만, 귀여운 구석도 많은 분이죠. 경연장에서 세종이 코 앞까지 다가와 말을 걸 때, 허걱!하는 표정으로 깨알 웃음을 주기도 하는 분이죠. 나인들을 고신할 때 차라리 자신이 고신받는 것이 낫겠더라며, "하는 척만 하려니 소신 정말 힘들었사옵니다" 라는데, 진짜 미안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는데도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암튼 이번 연극의 최고 반전 배우 조말생이었습니다. 

세종이 만든 잘 짜여진 연극 한판으로 한글은 역병처럼 조선팔도 골목골목에서 번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만들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소이, 거지들의 각설이타령까지 지금 조선은 글자역병의 씨앗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훗날 역사에, 백성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워주는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세종의 말이 송곳처럼 찌릅니다. "어차피 그것은 그들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지 않느냐, 지금은 그냥 내 백성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한번도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며, 채윤이 양손을 모아 처음으로 예를 취하더군요. "그렇게 결정내려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수많은 번민과 회의, 좌절, 그리고 그의 백성에 대한 믿음 속에 나온 희망의 씨앗 한글,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지, 또한 그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되새겨 보고 있는 중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예견과 우려대로 백성(국민)이 권력의 주체가 된 지금,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글을 주신 세종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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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2 08:16




40여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세종과 정기준, 두 사람의 만남이 이리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당혹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세종이 마지막으로 설득하고 품어야 할 사람이 정기준임을 알기에, 조금 더 아껴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은 세종도, 강채윤도 알게 되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겠지요. 소위 사대부의 보이지 않는 실세 밀본 본원이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조직을 이끌어 왔다는 것은 까무라칠 일이지요. 무엇보다 세종이 정기준을 어떻게 설득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즈음해서,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했던 역사적 의미를 보여 준 최만리와의 대화는 곱씹어야 할 명대사였습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설득하고 그의 사람으로 만들 논리가 최만리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방지를 만난 강채윤, 제자이기에 앞서 그와 너무나 닮은 꼴인 강채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이방지는 강채윤이 밀본과 뜻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요.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주군의 여자를 연모하고 있는 모습이 지난날의 자신과 같음에 마음이 천근만근이지요.
이방지가 무휼에게 채윤과 소이의 앞날을 약속받는 장면이 가슴 찡했고, 주상이 하지 않는다면 무사로서 목숨을 빚진 자로서 약속한다는 무휼의 말은 금강석보다 강해 보였던 명장면이었죠. 칼을 든 무사들의 진정한 약속, 칼을 두고 맹세하는 모습이었기에 더욱이나 인상적이었더 장면이습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든 것이 중화를 거스르고 조선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사대부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투신자살한 유생 박세명, 그가 남긴 격문이 도성 곳곳에 나붙어 조정대신들의 글자반포에 대한 반대와 세종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지기만 합니다.  
세종과의 독대를 청한 최만리, 세종이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는, 군주이기에 앞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역사학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더이다.

최만리는 자신을 밀본이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려도 좋다며, 밀본이 노비 서용의 과거급제 사건을 통해 모두가 글자를 아는 세상이 가져올 혼란을 말했다고 하지요.
"진정 그것이 혼란이기만 한 것이냐? 백성들이 글자를 안다면 배우고자 할 것이고, 잘 살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삶의 즐거움을 찾아 살아서 꿈틀거릴 것이다".
그 꿈틀이 신분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최만리의 반박에 대한 세종의 일갈은 통쾌하기 까지 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무너진다. 영원한 것이 어디있더냐. 전조 고려 전조를 보아라. 정체되어 썩다 사대부들에 의해 귀족들은 멸했다". 
최만리는 지지않고 지금은 고려와는 달리 시험으로 본다고 전조와의 차별성을 말하지만, 세종은 그 어폐를 꼬집습니다. "그 시험은 무엇으로 보느냐? 너희들만 아는 너희들의 글자 한자로 시험을 본다. 정작 한자를 아는 너희들만 관료가 되는 것 아니냐? 이대로라면 100년 뒤에는 서얼들의 과거가 금지될 것이고, 200년이 지나면 양반들만 시험을 보게 될 것이고, 300년이 지나면 양반을 사고팔고 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조선은 그렇게 경직될 것이고, 그 폐해 또한 날로 심해질 것이다. 역서를 보아라. 어느 나라의 역사든 다 그렇지 않느냐. 하여 그 폐해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희망으로서 글자를 만든 것이다".
최만리는 더 거세게 반발합니다. "하오면 양반을 없앨 수 있습니까? 노비를 없앨 수 있습니까? 사농공상의 지위를 없앨 수 있습니까?".
"못한다. 못한다. 못한다".
"헌데 글자라는 희망만 백성들에게 내리면 그 희망으로 고신당하는 백성들은 어찌 합니까?".
"그것 또한 역서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길을 모색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찾고 찾는 중에 싸우고 타협하여 이뤄가야만 조선은 천세만세를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전조 고려처럼 썩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만리와의 대화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임금이 신분질서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40 여년 밖에 되지 않은 갓 시작된 조선의 임금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드라마속 세종이 조선의 앞날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점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더군요. 이후 서얼금고법으로 서얼이 과거시험을 영구히 보지 못하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임진왜란후 세종의 말 그대로 조선사회 신분질서의 혼란으로 양반을 사고파는 일들이 성행했으니 말입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성리학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성리학으로 세워진 나라가 성리학의 이념논쟁, 일례를 들어 예송논쟁으로 시작된 당쟁이 조선을 정체되게 했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멸망하게 되었으니, 실로 세종의 혜안은 600년 뒤를 내다봤던 아니겠습니까. 세종의 글자가 한글로 통일되면서 보편화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망한 이후였으니, 개탄스럽기 까지 합니다.
한글이 조선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백성들의 의식은 세종의 말대로 꿈틀대며 일어났고, 신분사회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기에 이르렀으며, 공자왈 맹자왈 서책이나 끼고 한량짓하던 양반들은 도태되어 몰락하게 되었으며, 잡학이라 천시하던 잡문에 능한 중인, 양인들이 부를 축적해 갓떨어진 양반들을 조롱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나왔으니 말입니다.
세종은 성리학, 한자의 한계를 이리도 멀리 내다봤던 것입니다. 왜냐? 성리학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며, 기득권자들은 그 기득권으로 인해 망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집중되고 정체되어 있으면, 필히 그 권력에 맞서는 새로운 권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천년만년 갈 것같았던 고려가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신흥권력에 의해 망하는 것을 보았던 세종, 권력이란, 지배층이란, 영원히 보장된 금줄이 아니라는 것을 세종은 역사를 통해 알았던 것이지요.
세종이 백성에게 눈을 돌린 것은 드라마속에서는 똘복이의 모습을 통해서였지만,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 백성이 주인공이 될 세상을 똘복이를 통해서 봤습니다. 백성은 분노하지 않는자가 아니라, 다만 분노를 감추고 있다는 것뿐임을, 그리고 분노할 이유 앞에서는 누구보다 무섭게 분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기준을 만나기로 결심한 세종, 그러나 행방이 묘연해진 이방지로 인해 정기준과의 만남은 불발되었지요. 마음이 심란한 세종은 무휼과 소이만을 데리고 정륜암에 오르고, 고기를 싸서 따라온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밝히면서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대치상황으로 뿌리깊은 나무 18회가 끝났습니다.
고기를 써는 개파이의 꽃반지를 보고 그가 탈바가지를 썼던 고수였음을 알아챈 무휼이 칼을 빼들고, 무휼과 개파이를 보던 세종이 가리온의 눈빛에 놀라 멍해져 있는데, 정기준이 뒷짐을 지고 그의 정체를 밝혔지요. 귀싸대기를 열두번도 때려주고 싶은 싸갈통 머리없는 모습으로 세종앞에 선 정기준에게, "네가 정기준이냐?"며 냉소로 마주하는 장면은 돈주고도 못볼 명장면이었습니다.
정기준, 그가 누구입니까? 성리학, 유학의 질서를 목숨보다 숭배하는 자 아닙니까? 그런데 삼강오륜이 기본인 자가 임금 앞에서 뒷짐을 지고 이름자까지 뱉는 모습은 이미 그의 사상적 오류를 고백하는 장면이나 다름없었지요. 세종을 시해하고 반역을 결심했다기로 서니, 그는 그가 신봉하는 성리학에서 단정하는 패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안 세종, 아니 한석규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냉소에 전율이 일더군요. 경악의 눈빛도 아닌 썩소를 날리다니, 반전 중의 반전장면이었으며 한석규가 해석하는 세종은 명물 중의 명물임을 느끼게 했지요.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비웃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을 향한 욕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실망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삼봉의 조선을 훔친 이방원의 조선,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어린 세종에게 자괴감을 안겨주었던 오랜 트라우마의 근원 정기준은 그렇게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고작 보여주는 것이 집현전 학사들을 죽이는 폭력이었고, 노비의 장원급제와 유생의 죽음으로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동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비웃었던 이방원의 모습과 빼다박은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정륜암에서 벌어지게 될 고수들의 대결과 함께 뭔지 모를 불안한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지만, 세종과 정기준이 벌일 논쟁의 승패는 세종의 냉소에서 이미 판가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정도전의 건국이념에 발이 묶여 한치의 발전도 없는 모습으로, 오히려 퇴보하고 정체된 모습의 정기준이었기에, 세종은 정기준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어린 유생시절의 패기와 의협심, 냉철한 지성은 사라지고, 왕권을 견제하는 재상총재제를 구현하겠다는 빌미는 있었지만, 정작 사대부 선비정신을 버린 것은 정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냉소 속에 읽혀졌던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 비웃음, 욕, 실망감은 그때문이었겠지요. 웃음 하나에도 내면을 모두 담아내다니, 한석규 무서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력입니다.

***'뿌리깊은 나무' 이전 리뷰글들 대부분이 또다시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ㅠㅠ.
글만 복구해서 다시 올려놓겠습니다. 워낙 애착이 있는 작품이고, 심혈을 기울여 쓴 글들이라 제 블로그에도 꼭 남겨두려고요.
 
* 다음 Life On Award 2011 커뮤니티 '티스토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하러 가기:
http://campaign.daum.net/LifeOnAwards2011/vote/community/tistory#m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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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26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사랑받았던 젊은 세종 송중기에서 인간적인 세종과 카리스마 넘치는 괴짜군왕 한석규로의 변화는 완벽한 캐릭터의 반전이었습니다. 아마도 세종을 다룬 사극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세종을 만난 듯합니다. "이방원없는 천하다"라며 한줄기 눈물을 흘리는 송중기의 모습이 연못에 일렁이고, 중후한 세종 한석규로 바뀌는 과정은 빼어난 영상미로 젊은 세종과 중년 세종의 변화를 담았지요. 이번 뿌리깊은 나무 4회에서 최고의 영상미로 꼽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곱고 여린 노랑나비가 호랑나비로 변해 연못을 나는 모습은, 젊은 세종과 중년 세종의 함축적인 캐릭터의 변신을 담아낸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죽음도 가볍지 않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태종 이방원(백윤식), 두 부자는 죽는 순간에도 논쟁을 멈추지 않았지요. 태종의 독설과 염려도 여전했고 말이지요. "내가 갔던 길보다 훌씬 더 참혹할 게야. 훗날 넌 반드시 내 무덤 앞에 무릎꿇고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고백하며 울 것이다". 세종을 마지막까지 시험해 보는 태종이었지요.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조선의 임금은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니까요"라며, 태종이 했던 말로 응수하는 세종. 태종은 세종의 멱살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지요. "해내거라, 그래야 네놈을 왕으로 세운 제일 큰 업적이 될 거이니...". 세종의 확신에 찬 대답에 미소를 짓는 태종, 그의 마지막 눈빛은 아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왕, 조선의 찬란한 문화르네상스를 연 성군 세종대왕이니, 진실로 태종의 가장 큰 업적은 세종대왕을 낳았다는 것일 겁니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릴 수나 있었겠습니까? 머리 터지게 한자랑 씨름했겠지요.

한석규의 세종은 어떨까? 한마디로 명불허전입니다. 정확한 발음발성,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력, 게다가 그 파격적 캐릭터 변신은 "그래, 바로 그거야"라며 흥분하게 했답니다. 온화한 듯 진지한 듯 감을 잡기 어려운 표정으로 "하례는 지랄...", "젠장, 우라질"이라는 거친 말들이 튀어나오는데, 곤령포 입은 지엄한 임금님께서 입단속을 그리 안하시는 모습에 뻥뻥 터졌고, 궁녀에게 "우라질이 맞느냐?"며, 진지하게 물으며, "과하게 많다, 우라지게 많다, 우라질...이 얼마나 내 정서를 잘 표현하였느냐? 궁궐에는 이런 말이 없어"라며, 경연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한석규의 세종은 대박이었습니다. 작품뿐만이 아니라 인간 세종, 군주 세종의 새로운 캐릭터로서도 대박입니다.

세종의 거친 말속에도 우리글의 필요성을, 한글을 만들어야 하는 세종의 집념을 제대로 담아냈고 말이지요. 경연장에서도 당태종이 어땠고, 고려왕조에서 어땠고, 주자선생이 어땠고 하는 고리타분한 그놈의 경서 읊조리는 신하들을 한자로 '우라질"이라고 몰래 적으며, 자신의 정서를 기록하는 세종이었죠ㅎ. 운동이 부족해 옥체가 상할까 저어된다고 하도 난리들을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신경쓰지 말라며 스트레칭을 하는 세종은 또 어땠고요. 능청스러운 세종의 모습까지 감히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새로 등장한 세종은 물건입니다(죽여주시옵소서). 
웃음보터진 성삼문(현우)의 허벅지를 꼬집는 박팽년(김기범) 등 샤방샤뱡 빛나는 젊은 꽃미남 학사들도 등장해서 눈까지 호강했는데, 괴짜스러운 천재 성삼문과 박팽년의 대조적인 캐릭터도 눈여겨 봤답니다. 

그러나...여기까지의 세종을 보고 웃기는 임금님일세 라고 하면 큰 코 다칩니다. 경연의 주제 '부민고소금지법'을 선왕대에 이미 금지된 법을 왜 다시 경연을 하시느냐고, 그 불피요함에 대해 미주왈 고주왈 남의 나라 법과 경전을 들어 반대하는 신하들을 입도 딸싹 못하게 눌러버리는 언변과 논리는 오금저리게 만들었지요. 이현령 비현령 자기들 편한 대로, 유리한대로만 해석하려드는 기득권자들을 완벽한 논리로 박살내는 모습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말입니다. "주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끝마다 주자 주자를 거론하는 탁상공론자들에게, 주자께서는 한시도 백성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경전의 행간을 읽으라는 세종의 일갈은 참으로 멋집니다.

이번 경연의 하이라이트는 "전하께서 한가지 질문을 빠뜨렸다" 고 지적하는 성삼문(현우)때문에 벌어진 상황입니다.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세종의 질문은 두 가지였죠. 첫째, 성리학의 나라에서 감히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고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런데 간관들이 내말을 듣지 않는 것은 어긋나지 않는 것이냐? 둘째, 백성들의 고소마저 금지한다면 수령들은 왕보다도 제약이 없게 되는데, 이들은 누가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하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가 빠졌다고 성삼문이 감히 왕에게 지적을 하지요.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린 놈이 뭘안다고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어른 말씀하시는데..."였죠.
얼굴빛이 싸늘하게 변하는 세종, "바로 이것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식이 얄팍하다는 이유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하극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진다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면, 과인은 대체 어디서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이오?". 게임 끝입니다. 반어와 비유, 헛점을 낚을 유도심문까지, 참으로  우라지게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세종!!! 말까지 서민적이고 우리정서에 꼭 맞는 표현만 골라서 하시고 말이지요.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과 비바사론(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의 증발사건을 보고받은 세종이 "이런 빌어먹을"이라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뱉는 모습도 나왔지요. 실제로 세종대왕이 욕을 잘했다는 것도 전해지는데, 궁궐에 임금이 사용해야 하는 욕을 궁중용어로 따로 만들어 가르치지도 않았을테니, 감정대로 욕나오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임금도 사람인데 말이지요. 
무엇보다 눈여겨 보아야 하는 대목은 임금이 궁녀들에게 저잣거리의 상스러운 백성들 말을 배우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우라질처럼 한자로 옮겨적을 수 있는 말들은 그나마 표기라도 할 수 있지요. 젠장, 빌어먹을 같은 말을 어떻게 한자로 표기해야 할지 참 깝깝한 일이지요.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경연을 통해서도 한글, 우리글이 왜 반드시 필요한 지를 말해줍니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은 성리학에서 가르치는 성군의 덕목이지요. 헌데 그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니 글로 적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수령들이나 관리들이 지들 욕하는 백성들의 입을 자기들 편한대로(위 아래 엄격한 규범이 있는 주자학에 위배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이렇게 막고 있으니 말이지요.

집현전 학사 허담과 김종서의 6진에서 무관 고인설 살해사건이 발생하고, 첫회 강채윤(장혁)이 세종 암살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장면으로 다시 이어지면서,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종서의 추천으로 겸사복으로 궁에 들어온 강채윤(똘복이), 첫날부터 여기저기 궁을 들쑤시고 말썽을 일으키면서 무휼과 세종의 눈에 띄게 되었지요. 오로지 이도의 암살만이 목표인 강채윤이 집현전에서 일어난 사건현장에 잡입했다가 무휼(조진웅)에게 걸리고,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요. 
고인설과 허담을 죽인자는 같은 놈이라 생각한다며, 고인설 수사일지를 보여주며 위기를 넘긴 강채윤은 때마침 취조현장에 온 세종과 다시 재회합니다. 고인설 수사일지를 본 세종이 허담 살해사건을 수사하라는 명을 내리고, 강채윤은 비밀수사원으로 집현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사건을 해결하면 어사주를 내려달라는 간청을 한 강채윤, 집현전에서 발행하는 연쇄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강채윤은 세종의 조선과 마주하게 될 듯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석삼이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하려는 이도의 조선, 임금을 지랄이라고 증오하는 한지골 똘복이가 더이상 없는 조선, 지랄을 지랄로, 우라질을 우라질로, 백성의 소리를 그들의 말로 쓰고 읽고 듣고 싶어하는 이도의 조선을 말이지요.

주인공들이 코믹과 진지를 겸한다는 것은 모험일 수 있습니다. 특히 사극에서는 말이지요. 동이에서 숙종 역의 지진희가 그 경계를 허물어서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세종 역의 한석규도 인간적인 세종과 카리스마 세종으로 그간 정형화된 세종대왕의 캐릭터에 파격을 감행했는데요, 한석규의 세종이 너무나 멋지네요. 역시 지도자는 사람냄새가 나야 더 가까움을 느끼게 되나 봅니다. 아무리 백성백성, 국민국민 떠들면 뭐합니까? 경연을 펼치던 신하들처럼 경서 나부랭이나 줄줄 읊어대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과 진배없는데 말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업적, 최고의 존경을 받는 성군 세종대왕, 한글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말하기 전헤 더 먼저 칭송하고 감사하고 되집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의 결정체이니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지도자들이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마음입니다. 국민들을 어여삐 좀 여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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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2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탄탄한 극본, 힘있는 연출, 송중기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뿌리깊은 나무 3회, 밀본지서를 가지고 반촌에서 도망치는 정도광을 가로막고 말을 빼앗아 달아나는 똘복이, 그 과정에서 똘복이의 잃어버린 복주머니는 그에게 궁으로 가야 하는 복수의 이유를 되뇌이게 합니다. 반촌에 군사를 풀 수 있는 자는 오직 한사람 왕이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를 죽게 하고, 아버지의 유서마저 임금때문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똘복이는 그렇지 않아도 악밖에 남지 않은 듯한데,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에 이를 듯하더군요. 광기어린 어린 똘복이의 괴성이 회가 갈수록 거북스럽게 여겨져서 참... 하긴 송중기의 아역 충녕대군과 정기준의 아역연기는 뭐라 할말이 없게 만드는 심각한 수준이었답니다. 아역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연기가 참 거시기 하더구만요.
 
쫓기는 자 정도광, 정도광을 잡으려고 반촌에 난입한 조말생(태종측), 정도광과 정기준을 구하려고 온 무휼(세종측)의 일촉즉발 대립 속에, 멋모르고 또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된 똘복이,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도 그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 가는 과정을 촘촘한 스토리로 엮었습니다. 
아버지 태종에게 맞서는 세종, 그들의 조선이 다름을 정기준을 찾으려는 이유의 다름을 통해 드러냈지요. 태종 이방원은 강한 왕권을 위해 정기준을 없애야 했고, 세종 이도에게는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조선은, 1 하나가 아닌 23456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이었기에, 정기준이 상징하는 정도전의 사대부 세력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모두의 조선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태종의 조선은 군주의 한 사람의 나라였지만, 세종의 조선은 조선백성 모두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리학의 기본이념 민본주의를 재선포한 것입니다.
왕자의 난과 공신들의 숙청을 통해 왕권을 잡은 태종 이방원에게 조선은 불안한 나라였습니다. 삼봉 정도전을 살해한 이방원에게 사림은 등을 돌렸고, 대의와 명분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대부들에게 이방원은 주자의 도를 모르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말합니다. "전장을 누비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제거하고, 태조 이성계를 왕위에 올린 실질적인 공은 다름 아닌 이방원의 '칼'에서 나왔다고, 따라서 조선은 나의 것이다라고...".
그런 이방원에게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재상(신하)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이 아니나,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가 죽는다. 부실한 꽃은 꺾으면 그만이다". 한마디로 왕이 뚯대로 따르지 않으면 폐하면 그만이라고 지하동굴에 새겨놓은 삼봉의 글귀는 이방원에게는 간담서늘한 경고였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했던 말, "꽃은 꽃일뿐 뿌리가 되지도 뿌리를 없애지도 못하오"에 대한 설명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왕은 한 나라의 얼굴,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었던 것이지요. 밀본의 정체는 정도전의 나라(사대부의 나라)를 사수하라는 밀명이었던 셈입니다. 

세종은 이방원보다 더 야망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세종이 어린 시절 본 것은 '칼보다 강한 글의 힘'이었습니다. 과장에서 나온 한장의 종이가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급기야 열대여섯의 어린 유생을 찾아 죽이려는 것을 본 이도는 아버지 태종의 칼을 떨게 한 것이, 다름 아님 글이었음을 본 것입니다. 세종이 문치주의를 표방한 것은 아버지 태종의 나라보다 강한 조선, 영원무구한 조선을 꿈꿨기 때문인 것이지요. 조선의 글이 필요하다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이도입니다. 글이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쓰는 조선, 세종에게는 수치였을 겁니다. 세종은 유약한 임금이 아니었고, 국방에서도 적극적인 임금이었습니다. 김종서로 하여금 6진을 개척하게 하고, 국경을 확장한 것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장에서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홀연히 사라진 어린 유생 정기준, 세종이 훗날 태종과 군주과 국가관을 극명하게 달리 하게 한 인물입니다. "왕은 허군이고, 실군은 재상이다. 이것이 조선을 건국한 삼봉선생의 치국 기본사상이었다"는 답안을 본 이도는 그 담대한 답안에 놀라 정기준을 따라가게 되고, 글을 본 태종 역시 조말생을 시켜 정기준을 쫓게 됩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아우 정기광의 아들이었고, 태종은 정도광의 집 지하동굴에서 벽에 새겨진 정도전의 글을 보고 경악합니다. 정도전이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너의 아버지는 삼봉의 나라를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라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주먹을 날리는 이도, 그런 이도에게 정기준은 "네 아버지와 다를 바 없구나"라며 비웃음을 날리죠. 정기준의 집은 이미 병사들에 의해 살육이 자행되고 있었고, 이도의 만류에도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며, 담대하게 자신을 밝히며 걸어나가는 정기준을 보고 이도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정기준의 말은 두고두고 어린 이도를 괴롭혀 온 숙제이기도 했습니다.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과도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정기준을 향해 칼이 내려치는 찰나, 정도광은 아들을 구해 말을 타고 도망갑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정기준이 숨어있는 이도를 향해 지은 비웃음이 이도를 짓눌러 왔습니다. 

태종의 명으로 비밀리에 밀본을 추적해 오던 조말생의 움직임을 보고 받은 세종은 정도광, 정기준을 쫓는 것임을 직감하고 무휼을 보냅니다. "반드시 살려서 데리고 오라"는 명과 함께 말이지요.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마방진을 풀어낸 이도, 그의 마방진, 그의 조선이 아버지와 어찌 다를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했기에 세종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태종에게 "살려만 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면서 까지 태종과 한판승부를 벌인 세종이었지요. 겉으로는 효심깊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권위는 살려준 듯하나, 은밀하게 주고 받는 태종과의 설전에서는 "제 방식대로 방진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세종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내놓은 방진의 답은 '문이 통치하는 나라'였습니다. 태종은 그런 세종에게 밀본에 대해 아느냐며 정기준의 생존에 대해 언급하지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는 세종 이도에게는 지난 날의 깊은 상처가 지나갑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오래도록 짓눌러왔던 정기준의 조소에 대한 답을 구한 이도, 그를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때 하지 못했던 답을 말해 줄 것입니다. "조선은 정도전의 나라도, 내 아버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다. 조선의 뿌리는 사대부가 아니라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물론 세종이 신분을 망라한 평등한 세상을 꿈꾸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아무리 임금이었더라도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조선은 건국이념은 성리학입니다. 성리학은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합니다. 성리학은 계급을 초월한 학문이나 이념은 아니지요. 하늘과 땅의 위치가 불변이듯, 상하 지배 피지배관계가 불변한 이치이며, 그 이치안에서의 조화를 말했던 학문이죠. 백성을 통치대상이 아니라 보호대상으로 가르치고, '인'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철학입니다. 오늘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부분이죠. '군자(사대부)는 학문과 백성을 가르치는데 힘쓰고, 소인은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익히 들어온 문구만을 봐도, 그 근간에는 계급적 질서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도 성리학이 가르치는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역할을 하는 조화를 이루는 세상입니다. 그 조화에 정기준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사대부 세력은 반드시 필요했고, 왕과 신하(사대부)와의 평화는 피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에게 아버지의 칼은 폭정이었고, 조선의 불안이었습니다. 모든 왕조(나라)의 숙원은 대대만년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존속되는 것일 겁니다. 세종과는 방법적으로 달랐지만, 태종이 칼의 정치를 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종은 대대만년 조선을 지킬 수 있는 답을 칼이 아닌 조화에서 구합니다. 

세종의 눈에 비친 아버지 태종의 나라는 이 조화가 깨진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마방진은 정도전의 통치이념과는 다릅니다. 정도전은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는 이방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권력의 핵심 ' 마방진의 1'에 사대부를 대치한 것에 불과하니 말이지요. 세종의 조선은 왕의 나라도 아니요, 사대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꿉니다. 그의 마방진은 모든 숫자들, 조선의 백성들 모두를 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드라마의 제목이 왜 뿌리깊은 나무인지가 드러납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무엇을 뜻하는 지도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의 '나무'는 세종이 꿈꾸는 거대한 마방진, 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뿌리는 '백성'입니다. 정도전이 말한 밀본이 사대부를 지칭했다면, 세종은 백성으로 대상을 확대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른다는 용비어천가의 첫구절은, '조선의 영원무구함'을 염원한 노래한 세종의 원대한 청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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