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1.12.29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최고의 코믹왕은? (9)
  2. 2011.12.27 '뿌리깊은 나무 해례본' 뿌리가 된 세종, 드라마에서 놓쳤던 부분 (6)
  3. 2011.12.22 '뿌리깊은 나무' 반전의 열쇠 연두, 광화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29)
  4. 2011.12.15 '뿌리깊은 나무' 고개숙인 세종, 그 리더십에 열광하는 이유 (13)
  5. 2011.12.09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시나리오가 배출한 최고의 배우는? (19)
2011.12.29 09:42




명품연기 명대사를 남겼던 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가 남긴 최고의 감동은 백성을 땅끝까지 내려가 사랑한 지극히 고독했던 인간세종, 그리고 군왕 세종의 업적 한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페셜로 방송한 뿌리깊은 나무 제자해는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7과 드라마 주인공들의 뇌구조를 공개해 큰 재미를 주었는데요, 특히 강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연기의 혼을 실은 배우들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보너스 재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명장면 베스트는 젊은 이도가 태종 이방원에게 처음으로 맞서는 장면으로 꼽혔습니다. 송중기와 태종 이방원 역의 백윤식, 그리고 무휼의 존재감을 드러낸 명장면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의 시작이 그날부터 시작되었으니, 드라마의 탄생배경이기도 합니다. 어린 똘복이를 구한 이도, 그가 구한 첫백성은 왕의 대의를 지랄하지 말라고 욕을 하는 백성이었고, 글자를 몰라 아버지와 동무를 잃은 분노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도 없는 가여운 백성들이었죠.
그가 처음으로 본 궁궐 밖 세상, 조선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사대부들을 위한 나라, 백성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나라, 백성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말로만 떠들고 있었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서면서 세종이도는 그가 꿈꾸는 조선, 모두를 품는 거대한 마방진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관문이자 결실이 백성들의 말을 본 뜬 조선의 글자,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수많은 명장면들이 시청자를 감동의 도가니로 넣었는데, 아쉽게도 빠진 것이 있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정륜암에서의 정기준과의 끝장토론 장면과, 광평을 잃은 세종이 슬픔을 가누지 못할 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강채윤의 비난을 들은 후 고뇌를 끝내면서, 훈민정음이라는 네 글자를 적는 장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사실 모든 한장면 한장면이 버릴 수 없는 명장면들이었던 이유는, 한글이 요술방망이로 뚝딱해서 나올 수 없는 연구와 노력의 산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한석규의 연기는 근엄세종, 카리스마 세종, 지극히 인간적인 세종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았지요. 연기본좌 한석규의 미친연기는 매회 불이 활할 타오르듯 시청자를 매료시켰고, 조연들의 연기와 완벽한 한 호흡을 이루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지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었으니, 밀본 정기준과의 첨예한 대립이라는 무거움 속에서도 깨알같은 웃음으로 허를 찌른 반전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무거운 축을 담당했으면서도 허를 찌르는 세종의 코믹함(?)은 무휼과 밀당하는 장면에서도 귀요미돋는 달달커플 한쌍으로 가장 사랑을 받았고 말이지요.

 

명장면 베스트 번외편으로 제가 뽑은 코믹명장면으로 뿌리깊은 나무 그 역병같았던 드라마의 또다른 매력들도 감상해 보실까요? 코믹왕도 선정해 봤는데요, 드라마 속에서는 세종을, 드라마 밖에서는 조말생 대감 이재용을 코믹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처음 똘복이가 강채윤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겸사복으로 궁에 들어왔을때, 강채윤은 사기꾼같은 입담에 행동도 깨방정 자체였지요. 이도를 죽이겠다는 숭악한 마음을 감추기 위함이었지만, 강채윤의 코믹깨방정을 압도한 인물이 있었지요. 용포를 입고 인자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세종대왕이 현신했나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일치했던 석규세종입니다. 닉네임으로 욕세종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하례는 지랄이라며, 거침없이 쏟아지는 욕은 물론이거니와 똥지게를 진 모습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지요.

 

욕세종 등장, 감칠맛 나는 충격 "우라질, 지랄하고 자빠졌네"
인상적인 욕세종의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 두 장면으로 압축해 봤습니다. 경연장에서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해 신하들이 주절주절 반대가 극심했었지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완강한 조말생대감의 코앞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던 장면, 뜨헉!하고 놀라는 조말생대감의 표정은 대사없이도 웃음 빵터지게 했던 코믹장면이기도 했지요.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벌이시나이까, 공자왈 주자왈에 대한 세종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우라질". 아직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한자로 쓰기는 했지만, 그 신랄한 비웃음이 통쾌했던 장면입니다.
욕세종의 절정은 정기준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 하고 있음을 알고 도성에 방을 붙이고 이적(오랑캐)의 글은 안된다며, 여론몰이를 하자 내놓은 대답이었지요. 광평을 납치해서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했지만, 세종은 광평의 목숨을 두고 협상하지 않겠다며, 그 참혹한 심경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지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그저 눈만 껌벅이며 아무 대꾸조차 못하고 얼음땡 시켜버린 장면이었죠.
손뼉도 마주해야 소리가 난다고, 그 황망한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입맛만 다시는 황희대감, 눈동자 굴리는 소리까지 들리게 느껴졌던 이신적(안석환)의 눈동자 연기는, 중년연기자들의 연기내공이 이런 것이라고 확인시켜준 명품연기였고 말입니다.
세종과 무휼의 밀당, 귀여운 남남로맨스 
세종이 무휼을 놀려먹는 모습도 코믹명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했던 장면들이었지요. 이도를 죽이겠다고 칼을 숨기고 들어온 강채윤, 채윤에게 밀명을 내리면서 독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신경써주지 않았다고 무휼을 놀리는 장면이었죠. 앞으로 3보 이내에 있으라며 무휼을 뻘쭘하게 만들었지요.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장난기는 그뿐이 아니었지요. 공포심에 대한 힌트를 채윤이 알아들었을 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세종, 무휼 너도 말귀를 못알아 들었지 않았느냐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세종이었죠.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엉거주춤 세종의 뒤를 따르는 무휼에게서 조선제일검 내금위장의 체면은 땅에 곤두박질을 쳤지만, 스트레스 많았던 세종의 유일한 쉼터는 무휼이었기에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은 투기하는 무휼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했다죠ㅎ.
세종의 놀림을 조석으로 받은 인물 가운데 정인지 역시 빼면 섭하지요. 소이의 출중한 암기력과 방대한 업무를 칭찬하면서, 정인지에게 소이의 녹봉 십분의 일만 받으라고, 놀고 먹는다는 말로 정인지를 하얗게 질리게 만들기도 했지요. 훗날 정인지가 어떤 인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생각하니,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말로 들리기도 하네요. 정인지가 세조의 왕위찬탈을 적극 도왔던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초탁과 박포, 우리를 빼면 섭해요
사실 드라마에서 코믹감초역할로 배치한 인물이 초탁과 박포, 그리고 옥떨이 정종철일 겁니다. 특히 초탁과 박포는 북방떨거지와 한양돼아지새끼라며 티격태격 앙숙처럼 보였지만, 누구보다 채윤의 곁에서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줬던 인물들이지요. 채윤이 죽었을때 가장 슬프게 울었을 친구들이었는데, 마지막회 반포식장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가 잡지 않아서 쪼금 서운하기도(ㅎ) 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소이의 시신을 광화문으로 데려온 이들도 초탁과 박포였겠지요.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보니 연두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개파이가 아니라 박포(신승환)였다는군요.ㅎ

이신적과 한가놈의 바퀴달린 눈동자, 소리까지 들리더라
박포와 초탁외에 대놓고 웃기지는 않았지만, 시청자들에게 표정만으로도 즐거움을 선물해 준 분들이 있었지요. 바로 이신적(안석환)과 한가놈(조희봉)입니다. 안석환의 능수능란한 눈동자 연기는 대사보다 더 많은 내면심리를 전해줘, 그의 표정연기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엿보게 했지요. 본명이 한명회로 밝혀진 한가놈의 찌그러진 표정과 눈동자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극적 재미였습니다. 밀본에서는 정기준의 참모 한가놈이 가장 두뇌가 명석하고, 사태를 분석하는 눈도 날카로웠지요. 소이의 속치마에 적힌 글자로 한글을 쓰고 읽는 법을 독학하고, 연두와 개파이에게 한글까지 가르쳤던 두번째 한글선생님되시겠습니다. 첫 선생님은 채윤에게 한글을 가르친 소이가 되겠고요.
이 외에도 재미있는 코믹장면들이 많았지만 다 열거할 수는 없겠네요. 이 장면들 정리하느라 1부부터 24부까지 재복습했답니다;;. 추천안하고 글만 읽고 쌩가버리면 삐질거임! ㅎㅎ 농담입니당^^

"전하의 글자는 달랑 스물여덟자다"
코믹장면은 아니었지만, 코믹보다 더 기분 즐겁게 웃겼던 장면을 꼽아본다면 광평대군과 채윤의 대화입니다. "5만자 중에 천자를 배우는데도 그리 오래 걸렸는데, 도대체 전하가 만드신 글자는 몇글자나 되십니까? 5천자요? 아니면 3천자요?". "스물여덟자". "천 스물여덟자요?". " 아니 그냥 스물 여덟자". 
스물여덟자라는 그 짧고 강한 말에 배여있던 광평대군의 자신감과, 헛소리를 들은 듯한 채윤의 표정이 대조적으로 클로즈업되었는데, 다시 봐도 스물여덟글자에 삼라만상을 다 담을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이 가슴벅차게 자랑스러움으로 밀려오더라고요.
코믹명장면 베스트를 정리해 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최고의 코믹왕 본좌에도 역시 세종이 1위^^. 

신세경이 반한 당구치며 춤추는 조말생대감, 귀요미 훈남등극
여기서 끝나면 진짜 섭섭하지요. 촬영장 에피소드에서 월척 코믹왕이 등장했답니다. 드라마에서는 욕세종, 삐짐대왕, 짓궂은 세종이 코믹왕이었지만, 촬영장 에피소드를 통해 공개된 연기자들의 모습에서 의외의 반전왕이 있었으니, 놀랍게도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습니다. 조말생은 드라마에서도 멋진 보수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도 했고, 밀본 정기준을 속이고 한글유포의 임무를 위해 나인들을 궁밖으로 빼돌린 연극에서도, 최고의 배우로 등극했던 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재용의 촬영장에서의 소탈하고 장난기있는 모습에 하트뿅뿅이었답니다. 촬영장에서는 인기만점 훈남에다가 후배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분이더라고요. 신세경의 이상형으로 뽑히기도 했답니다. 이재용의 구레나룻이 멋지다는 신세경, 이재용은 자신의 매력을 멋진 옆선이라며 자신있게 자랑하기도 했는데요, 위로 치올라간 눈썹과 어울리게 구레나룻도 길게 빼서 단호한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재용의 소탈한 다른 모습에 빵터졌으니, 귀여운 모습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었답니다. 정말 귀요미 이재용이었습니다. 늘 재미있는 말과 행동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훈훈하게 하기도 하고, 소품을 이용해 당구치는 모습으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더군요. 소탈한 모습과 재미있는 모습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즐겁게 만든 중년연기자 이재용, 뿌리깊은 나무 카메라 밖 코믹왕이셨습니다. 

대본, 연기자, 연출, 시청자의 사랑이라는 네박자가 맞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드라마를 빛낸 모든 연기자들에게 조말생대감의 입을 빌어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뿌리깊은 나무 24부까지 오는 동안 내내 행복했고, 한글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님, 정말정말정말 존경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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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7 13:39




한글 그 위대함과 세종대왕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남겼던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명품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었지요. 스페셜로 편성된 해례본을 보면서 한가지 놓쳤던 부분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드라마가 끝나고서도 그 긴 여운은 아마도 주인공들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때문이었을 겁니다. 고독한 세종, 향원정을 거니는 쓸쓸한 세종만을 남긴 제작진의 인정머리없음이 못내 서운하면서도, 그럴 수 있었겠다고 제작진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저희집에서는 여전이 설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장치로서 소이 채윤 무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희생하고 버려야 했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이었기에 죽음을 죽음으로 보는 것보다는 세종의 건강, 편안함, 인간관계 등을 상징했다고 보니, 드라마 결말이 가슴에 구멍이 뚫릴 정도의 슬픔으로 자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한글과 세종대왕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는 점에서 드라마사에 길이 남기고 싶은 마음이 크고요. 
아무리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도 스페셜은 관심도가 떨어지는데, 저는 오히려 드라마에서 놓쳤던 중요한 것을 되짚어 생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장성수 학사의 주검과 함께 밀본 수장 정기준이 세종에게 보낸 짧은 협박의 문구가 그것입니다. 화시화이이의(花是花而已矣) 불가이위근(不可以爲根)-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
드라마에서 뿌리는 백성을 의미했고, 강하고 튼튼한 백성이 나라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근본이며, 글을 깨우친 백성의 힘, 백성에게 권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글자를 통해 주려했던 세종의 거시적인 역사관과 애민정신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였지요.
그런데 압축된 스페셜편을 보다보니 밀본의 시작이며 세종과 대립했던 이 짧은 문구에서 놓쳤던 것이 비로소 보였습니다. 세종은 뿌리가 되었는가? 다시 말해 세종은 백성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상한 질문이 그것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을 백성이라는 집단 속에 넣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겨나더라는 것이죠. 왕은 지배계층의 최정점이기에, 백성이라는 피지배층과는 물과 기름처럼 다른 계급인데 말입니다.
조선을 이끌고 지배하는 중심이 왕이냐 사대부냐로 놓고 본다면, 조선을 지탱하는 뿌리 싸움에 대한 세종과 밀본의 대립은 성사되지만, 정도전과 정기준의 논점대로라면, 왕은 뿌리가 될 수 없다는 말에서 이상한 싸움논리가 발견되더라는 겁니다. 밀본은 왕이라는 권력이 조선을 독단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논지에서, 조선을 운영하는 체계는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재상총재제를 내세웠죠.
그런데 세종은 백성이 그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방법으로 글자를 제시했습니다. 뭔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 싸움이지요. 즉 사대부는 왕이 뿌리가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즉 왕권견제의 카드로 재상총재제를 내세웠는데, 세종은 백성으로 뿌리에 대한 답을 냈다는 겁니다. 그럼 밀본에서 말하는 꽃(임금)은 어떻게 된 걸까요? 뿌리가 된 걸까요? 아니면 꽃인 채로 남았을까요?
밀본이 우려한 대로 뿌리가 되었다면, 세종과 백성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이 제 속에서 나왔고, 한참동안 그 답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백성과 함께 하는 임금이라는 생각도 했고, 왕도 한나라의 구성원인 백성이다라는 원론적인 생각도 해봤는데 이도저도 맞다 싶은 게 없더라죠.
그리고서야 세종과 정기준의 정륜암에서의 끝장토론을 떠올렸습니다. 세종은 글자를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지요. "임금은 늘 견제당하는 존재이기에 한계가 있다. 하여 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 하려 한다. 백성이 힘을 가지고 그 권력을 나눠 가지게 되는 새로운 균형, 새로운 질서, 새로운 조화다. 나의 글자는 그런 새로운 세상의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세종의 말에 정기준은 반박했죠. "권력을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백성의 욕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세종을 몰아세웠고, 정기준의 말에 세종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 광평을 잃고, 반포식에서 무휼과 채윤, 소이마저 잃은 세종은 처참한 모습으로 용상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정기준에게 대답을 할 수 있었지요. "너 때문에 백성을 사랑하게 됐다. 여기가 이렇게 아픈데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가 있겠느냐, 그것이 바로 사랑이야".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에 대한 기나긴 세월의 고뇌와 싸움 속에서 얻은 답이었습니다. 소이와 채윤은 백성이었습니다. 소이와 채윤을 드라마에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세종의 마음 속에서 생각했던 백성이라고 생각하면, 좀더 분명해지지요. 억압받고 고통받으면서도 그 몫을 지고 있던 백성들, 그들의 고통이 아팠던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며, 사랑하기에 고통의 짐을 나눠지려고 했던 세종이라고 생각하면, 채윤과 소이는 세종의 마음 속 고통받는 백성의 모습으로 치환되지요. 소이와 채윤의 죽음이 결말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았고, 죽음과 백성의 고통을 대치하는 장치였을 뿐이라고 생각된 순간, 소이와 채윤의 죽음이 큰 슬픔이 되지 않았던 이유였습니다. 
무휼의 죽음은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슬펐고 안타까웠지요. 마지막까지 세종을 지켰던 호위무사, 무휼은 세종의 육체를 상징하는 장치였기 때문이에요. 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세종은 건강이 악화되었고 당뇨의 합병증으로 시력까지 극도로 나빠졌고, 육체적으로 고통도 심했습니다. 무휼의 죽음은 그런 세종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 나온 글자라는 의미로 풀어봤거든요. 집현전 학사들의 죽음 역시 하루 두 시각밖에 잠을 자지 않고 책과 연구에 씨름했던 세종의 고단함을 상징하기도 했고 말이지요.
드라마에서 허구의 가상인물들은 모두 죽음으로 끝났던 이유, 결말반전에 대한 제작진의 집착이라기 보다는 그 모든 가상 인물들은 세종의 건강, 인간적인 욕망, 반대세력, 우리 글자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들로 상징화시켰던 것이기에, 마지막 그 모든 희생과 반대들이 한글반포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 소이, 채윤, 무휼, 광평 등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했습니다. 드라마속에서 잃은 세종의 소중한 사람들은 그만큼 많은 고통과 노력 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세종의 위대함과 노력을 다 보여주기에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종은 기꺼이 백성이 되었습니다. 밀본이 우려했던 뿌리가 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백성과 함께 하는 뿌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백성 위에 사랑과 애민으로 군림하는 군주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군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우연히 제작진의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뿌리깊은 나무는 백성에 대한 세종의 멜로물이었다고 하더군요. 세종이 사랑한 대상은 여인 소이가 아니라, 글자가 진정으로 필요했던 소이라는 백성이었고, 백성의 어버이로서의 자격과 의무를 묻고 신뢰했던 강채윤이라는 백성이었던 것이지요. 가상 속의 소이와 채윤이라는 백성은 세종이 글자를 창제해야만 하는 이유를 부여한 가엾고 고통받는 백성들이었고, 반포식 이후 향원정을 거닐며 세종은 다른 모습의 백성들을 상상해 보지요.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하루 하루 생생지락을 누리는 백성들의 행복한 미소를 말입니다.
사체해부를 한 것을 두고 성삼문과 박팽년의 반발에 세종이 말했지요. "이 글자들은 내 혀를 닮았다. 내 목구멍을 닮았다. 백성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세종은 자신을 백성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의 혀가 금으로 된 것이 아니었고, 임금의 목구멍이 옥으로 세공된 것도 더더구나 아니었지요. 백성과 똑같았습니다. 내 혀를, 내 목구멍을 닮았다는 말에서 세종이 얼마나 백성과 자신을 같은 자리에 두었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죠. 
여기서 세종이 뿌리가 되었느냐?에 대한 답이 나온 것이지요. 밀본이 견제하던 뿌리가 되었기에 그 권력을 나누고자 했고, 함께 책임지고자 했던 세종이었지요. 드라마를 통해 세종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혹은 정확하게 알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메시지는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과 함께, 더불어 살고자 했던 한 위대한 지도자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절실히 원하는 그런 모습이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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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2 10:47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결말에 있을 반전이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그 중심인물이 연두와 개파이가 될 것이라는 것은 많은 분들이 예상하고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성공적인 반포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아 해례인 소이는 무사히 궁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을 피했을 지가 궁금한데요, 애타게 담이를 부르며 쫓아간 강채윤에 의해 구해질 확률이 높겠지요.
소이를 죽일 정기준의 수하는 대적불가 개파이의 손까지 빌 필요는 없을테고, 밀본원 중의 한사람일테지요. 정기준은 개파이를 데리고 쑥대밭이 된 산채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은신해, 정기준은 반포식에 맞춰 이도를 죽이라는 마지막 명을 내리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채윤과 개파이, 혹은 무휼과 개파이의 한 판 대결은 어쩌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희생과 피가 따랐던 글자창제와 반포가 마지막까지 피비린 내 나는 속에서 이뤄지지는 않았으면 싶네요. 
견적희가 개파이의 얼굴을 본 순간 경기를 일으키듯 벌벌 떠는 모습만으로도 개파이의 무공이 어느 정도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지만, 원의 복위조직에 가담한 돌궐족 카르페이 테무칸이라...칸이라는 칭호를 보아하니 그쪽에서는 꽤나 명망있는 후예인데, 정기준을 따라 조선까지 흘러 들어 온 이유가 무엇인지, 두 사람의 관계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개파이가 아무 연고도 없는 조선에 들어와서 한글을 깨친 외국인 1호가 되었으니, 재미있는 설정이죠.

교활한 세종, 인자한 보살미소 뒤에 감춘 무서움
여하튼 밀본의 조직은 산산히 와해되기 일보 직전이고, 계산에 능한 우상 이신적은 세종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3정승의 재가를 얻어 반포의 절차를 합법화시키는 세종의 교활한(?) 수가 빛났지요. 인자한 미소 뒤에 감춰진 세종의 무서움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무휼이 왜 심종수가 아니라 이신적이냐고 물었지요. "심종수는 이신적에 비해 술수가 모자라다. 정치력말이다. 조정신하들은 각각의 과오가 있을 지언정 멍청한 자들은 없다. 모두가 무서운 자들이다. 3정승에 올랐다는 건 그런 무서운 자들 중 가장 정점에 있다는 것이다. 이신적이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은 황희대감보다 더 크다".
세종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능력과 사람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지요. "왕의 일이란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제하고 그들의 능력이 백성들을 위해 쓰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무휼은 이런 세종의 용인술을 태종보다 교활하다고 고백하게 하지만, 세종의 교활함은 이해를 넘어 존경의 리더십으로 칭송받게 합니다. 그 목적이 백성을 위함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지옥에 사는데 내가 보살일 줄 알았냐?"는 세종의 웃음 뒤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까지 엿보게 하지요. 나라고 항상 허허할 수 만은 없지 않느냐? 보이지 않게 갚아주는 마음도 있느니라 라는 고백과도 같았으니 말입니다.  

과정이 중요한 일이 있고, 결과가 중요한 일이 있다는 세종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글자를 만들기 까지의 과정이 중요하지만, 반포를 한다는 것은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이기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세종, 글자의 반포로 비로소 새역사는 시작될 것이기에, 세종의 글자반포에 대한 의지는 천명과도 같았습니다. 반포가 되어야만 백성들을 위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세종의 비장한 표정에는 백성들에 대한 믿음과 희망마저 일렁이고 있었지요. 새로 쓰이게 될 역사에 대한 설레임과도 같은 흥분도 엿보였고 말입니다.

정기준, 열등감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정기준의 고백은, 설득력과 명분마저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의 수장, 그의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었나 심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겠더군요. 소이에게 왜 주상을 돕느냐고 물었지요. 세종으로 인해 아비를 잃고, 자책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말이지요. 정기준은 스스로 세종에 대한 열등감으로 피해의식이 있었다는 것도 고백했지요. 백정으로 신분을 숨기고 20년이 넘도록 살아온 동안, 이도는 그 사이에 세상이 칭송하는 성군이 되어 있는 것을 보는 심정, 그 열등감이 그를 피폐하게 만들었노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정기준은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극복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오히려 열폭하는 정기준만이 보이더군요. 정기준은 세종의 글자를 다른 누구보다 칭송하지요. "이도가 만든 글자는 너무나 훌륭한 글자다. 저 훌륭하기 짝이 없는 글자를 막아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천명임을 깨달았다. 제아무리 왕이어도, 그 무엇이라도 천년의 역사를 시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난 기필고 그것을 막아낼 것이다".
정기준...이렇게 무너지나요? 참으로 찌질하게 변해가는 정기준때문에 그간 정기준에게 가졌던 그의 대의에 대한 일말의 이해심마저 무너지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기준은 결국 세종에 대한 개인적인 열폭감으로 밀본이니 성리학의 이상이니, 역사니, 백성에 대한 사대부의 책임이니 하는 것들을 떠들고 있었다는 건지, 정기준의 몰락이 초라하기 그지 없네요. 작가가 좀 그럴 듯하게 그려줬으면 좋았겠다는 동정심마저 들게 하더라지요;;. 그래도 20여년이나 와신상담했던 인물인데 말이죠.

똑같은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이 나오기도 했지요. 유포임무를 수행하러 떠나는 소이가 해례를 옮겨두고 떠나려 하자 세종은 이를 극구 말렸더군요. 그것은 소이에게 반드시 살아돌아오라는 간절함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글자를 만드는 과정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소이에게 세종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로 소이에 대한 애정을 전했지요. 강채윤이 밥을 굶기지 말아야 할텐데 라는 장난기 섞인 농도 던지면서 말이지요. "하루하루를 즐거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 강채윤과 약조하거라". 요즘말로 하면 성혼선서와도 같은 것이었지요. 주례선생님이 약조를 받는 것처럼 말이지요. 채윤과 소이의 행복한 생활이 언급될 때마다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하지만, 저는 제작진의 낚시라고 굳게 믿을 거외다!! 
한 사람은 반드시 살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고맙고 미안하다는데, 한 사람은 죽여야 하니 고맙고 미안하다고 똑같은 말을 했지요. 어린 연두마저 글자를 안다는 이유로 죽이라는 명을 내리는 정기준, 그의 눈에도 인간적인 연민은 있기에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아프지 않게 죽이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지만, 글자를 막기 위해 무자비하게 백성을 해하는 모습에서 이미 그는 사대부의 갓에 담긴 고고한 이상을 버린 살인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반포식에 독으로 무장한 살수를 풀어 막으려고 까지 하는 그의 광기를 막을 사람은 개파이가 될 듯하지만, 그가 끝까지 세종과 화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극과 극인 천명과 천명의 싸움, 둘 다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는 기치를 걸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죠.

세종과 이신적의 눈싸움, 명장면 만든 심리전
세종과 이신적의 팽팽한 신경전은 경연장에서도 극에 달했지요. 그 심리싸움의 향방을 가름할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종과 이신적은 서로의 수를 읽느라 눈동자 하나도 놓치려 하지 않는 모습이었죠. 세종의 영리한 선방은 감탄사가 나오게 했지요. 결코 한 마디의 말실수도 하지 않은 치밀함으로 말이지요. 조정 앞마당에 밀본원임을 떳떳이 밝히고 나와 토론하자고 했건만, 쥐새끼 한마리 나오지 않았다며 말문을 연 세종, 마지막 제안을 하겠다고 하지요. "9월 상한날 만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자반포를 하려하오. 이조는 정음청을 설치하고, 예조는 이 글자를 시험과목으로 도입할 수 있는 시행안을 마련하시오".
아니나다를까 최만리 영감 울그락불그락 아니되옵니다가 이어지지요. 대신들이 어떤 반발을 할지 이미 그 수를 다 읽고 있는 세종, 고단수로 찍소리 못하게끔 해버리지요. "조선이 임금이 독단적으로 밀어부쳐 엄포를 하면 무조건 행하고 따르는 나라요? 조선은 엄연히 의정부 서사제라는 체제하에 있소이다. 과인의 제안을 의정부에서 결정하면 될 일, 의정부 3정승이 논의하고 가부를 결정하면, 그 결정에 따라 교지를 내릴 것이니 가장 중요한 것은 3정승의 재가가 될 것이오".
침묵속에 미주치는 세종과 이신적의 눈빛은 설전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던 명장면이었습니다. 최만리의 계속되는 반대를 3정승의 논의로 결정하라는 하명을 듣지 못하였느냐며 일축해 버린 이신적, 그의 꿍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요. 황희정승은 찬성, 우상은 일단 반대, 좌상은 분위기 봐서..그 표의 향방이 우상 이신적의 결정에 달린 것이기에 이신적의 한표는 그야말로 역사가 걸린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제밤의 대답인 것이냐?", "아직 결정한 것은 아니옵니다. 노력을 해보겠다는 뜻이지요". 
세종의 물밑작업은 황희와 조말생을 통해서도 보였습니다. 오락가락 좌상의 한표를 황희와 조말생이 보이지 않게 도우면서 2:1로 우세를 점칠 수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이신적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술이 보통이 아니어서 안심할 상황은 못되지요. 심종수를 요리하는 이신적은 교활을 넘어 노련한 정치9단의 수를 읽게도 했지요. 심종수를 적당히 얼래고 달래며,-물론 이과정에서 주상이 이간질을 했다는 식으로 믿음도 주면서 말이죠,-정기준의 동태를 파악하고 견적희를 보내 끝까지 저울질을 하는 이신적이었기에 말이지요.

반전의 열쇠 연두와 개파이, 광화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채윤의 연통으로 내금위의 습격을 받은 밀본의 산채, 다행히 연두(정다빈)는 채윤에 의해 구해졌지만, 소이와 강채윤의 생명이 위험상황입니다.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알게 된 정기준이 소이를 죽이라 명하고, 소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강채윤과 한판대결을 벌일 것이 자명하기에 말이지요.
예상상황은 개파이와 정기준은 함께 자리를 뜨고, 채윤보다 무공이 낮은 밀본똘마니와 싸워 강채윤이 무사히 소이를 구할 것이라 저는 예상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반포식 당일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겠지요. 이도를 죽이라는 마지막 명을 받은 개파이가 칼을 마주하는 모습도 나와서, 대적불가 개파이의 선택에 따라 광화문이 피바다가 될지, 성공적인 반포가 이뤄질 지가 결정되겠지요. 
개파이는 아직 연두의 생사를 모르고 있는데, 정기준이 연두를 이용할 것이라 보여지네요. 산채의 습격에도 이렇다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개파이는 오로지 연두가 없어졌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연두라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드는 개파이에게 정기준은 연두가 내금위에 잡혀있다는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있지요. 허나 정기준이 연두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면 개파이는 정기준을 단칼에 버릴 것입니다.
이도를 죽이라는 명을 받고 광화문에 개파이가 나갈지 안나갈지는 모르지만, 개파이가 정기준에게 칼을 돌릴 것이라는 암시가 예고편에 나왔지요. "그동안 즐거웠다, 본원" 이라는 개파이의 말은 왠지 정기준에 대한 예의를 갖춘 살해암시가 읽혀지는 대목입니다. 정기준이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했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제작진의 예고편으로 오히려 머리가 뒤죽박죽된 느낌입니다.
다만 한가지 광화문에서 살아있는 연두를 본 개파이가 정기준의 거짓말을 알아차리고, 세종의 시해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예상되는 시나리오입니다. 강채윤이 세종대신 독화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피흘리는 장면도 상상되고, 세종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휼이 세종을 온몸으로 막고 죽는 모습도 상상되고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스럽습니다.
중요한 점은 광화문에 연두가 힘께 있을 거라는 것이죠. 개파이가 연두를 구하기 위해 살수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오히려 성공적인 반포를 돕게 되는 결말도 상상되네요.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다 보니ㅎㅎ. 그래도 훈민정음 반포라는 역사적인 현장에 피바람은 불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봅니다.
사람도 잃고, 대의도 상실하고, 이도에 대한 열등감에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정기준, 결국 훈민정음 반포는 성공하고 정기준이 말했듯이 그와 이도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도 끝을 맺을 것입니다. 세종의 말이 이 대목에서 결말을 암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자를 만들기 까지의 과정이 중요하지만, 반포를 한다는 것은 결과가 중요하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겨야만 일이 시작되니까. 이겨야만 백성들을 위해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정기준과 세종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일지 모릅니다. 글자가 반포에서 그치지 않고 널리 유포되어 만백성이 읽고 쓰고 제 뜻을 펼치는 그날까지, 누군가는 백성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것이고, 누군가는 백성의 커지는 힘을 막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죠. 백성이 권력을 가지는 세상을 막기 위해, 말로는 혼돈을 피하고 역사를 위해서라지만, 백성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제2의 정기준은 얼굴과 이름만 달리할 뿐 계속해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싸움이죠. 비록 드라마지만 백성이 주체가 되는 세상의 시작을 백성의 글자, 한글을 통해 열어 준 세종대왕, 그 싸움의 결과는 세종에게도 집현전 학사들에게도 사대부들의 손에도 달려있지 않습니다. 백성들에게 달려있죠. 세종과 정기준이 남겨둔 토론의 마지막 주제, 백성의 책임, 몫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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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5 10:38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소집한 세종은 세가지 사안으로 대신들과 학사들을 놀라게 했지요. 황망스럽게도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정수리가 보여서는 안되는 군왕이 대신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대신들 모르게 은밀히 글자를 창제하고 있었노라 고백하며, 죽은 집현전 학사들과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이 비밀조직 천지계원이라고 밝히며, 비밀리에 추진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사죄하는 세종이었지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함께 고개를 숙였네요. 그리고 얼마나 영리한 사죄였는지 무릎을 쳤습니다. 세종은 은밀히 글자를 창제했다는 것을 과오로 인정했을뿐, 영리하게도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사죄는 하지 않습니다. 감히 임금이 고개를 숙이니 대신들이 몸둘 바를 모르고 당황하지요. 세종의 영리한 기선제압 책략이었죠.
참, 책략이라는 말이 나와서 덧붙이는데, 까칠귀여운 조말생 대감이 이번 회도 깨알웃음을 주었지요. 정인지도 은근 귀여운 매력이 있는데, 두분의 선문답같은 대화에 빵터졌네요.
세종은 밀본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지요. 밀본지서의 내용이 아니라 밀본에 가입한 밀본원들이 신분노출에 위기를 느끼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밀본원으로 결속되고 있지만, 실상 내부에서는 와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는 집현전과 글자반포를 두고 거래가 성사되었지만, 공식 합의를 하기로 한 바로 그날, 갑자기 이신적이 돌변해서 반대를 했던 것에서도 유추가 되었던 것이었지요.
"밀본은 분열된 것이요", 깨소금 맛이라는 듯 웃는 세종의 표정이 살짝 귀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균열의 가능성을 가지고 책략을 만들자며 조말생을 쳐다보는 세종, 그런데 조말생이 놀란 토끼눈을 뜨고 물어보지요. 어떻게 만들거냐고 말이지요. "엥! 아니 여태 뭘 들었소. 그렇게 하자니까." 무휼에게도 못 알아들었느냐고 재차 확인하는 세종, 무휼은 알아들었다고 하는데 진짜 알아들었는지, 요즘 무휼의 넉살이 늘어가서 말이지요. "그러면 그런 식으로 하자"며 자리를 뜨는 세종이었지요. 세종 한석규가 그 장면을 찍고 나가면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하며 웃었답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지 감을 잡지 못한 조말생 대감, 정인지를 붙들고 알아들었냐고 넌지시 물어보지요. "예, 대충...". 전하께서는 원래 저러시는가?". "예, 가끔...". 정인지도 알아들은 눈치는 아니더구만, 대충이라고 얼버무리는데, 세혼자 왕따인 것같아 답답한 조말생 띠융~, 그저 눈만 껌뻑이지 못하고 멍해져 버리지요.
세종이 어찌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시겠습니까? 저들을 이간질시켜서 지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꼴좀보자는 말을 말이지요ㅎ.
그런데 나중에 최만리를 만나 심종수에 대해 예의주시하라고 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뜻을 알기는 했나 보더라고요. 고지식하고 찜찜한 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직설적으로 묻는 성격의 최만리 대감이, 심종수에게 "너 밀본이냐?"라고 묻는데, 그 뒷말에 '최만리 대감 짱이야!' 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려줬답니다. "너 밀본이라면 내 집현적 학사들을 죽인 죄를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야!" 한마디로 네 놈이 밀본이면 네 손에 죽을 줄 알라는 경고였으니 말이죠.
최만리는 비록 글자창제에 반대를 하는 입장이지만, 누구보다 집현전을 아끼고 그의 철학과 학문에 충실한 인물이기에 미워할 수 없는 적(?)입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글자창제에 가담한 인물로 밝혀져 그들의 몸에 문신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자 의금부에서 추포령이 내렸을 때도, 진관사에 가서 몸을 숨기고 있으라고 보호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세종으로 돌아가서, 여튼 대신들과 학사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 세종은, 정치적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광평대군은 밀본이 살해한 것이 아니오. 과인의 과오에서 비롯된 일이니, 밀본에 대해서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밀본은 나와는 다른 정치관을 가진 붕당으로 인정할 것이오". 와우 역시 큰 인물 큰 그릇 세종, 멋진 분!!! 
들었나? 정치관이 다른 붕당이라잖소. 다른 정치관 다른 의견을 가졌다 하면, 죄다 빨간색으로 몰아가고, 좌측정렬시키는 편협한 분들 말이외다. 눈 좀 크게 뜨고 귀 좀 열고 좀 보고 들이시오, 제발!!!! 목구멍에서 아주 이런 말들이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네요. 
조말생 대감이 가만있을 분이 아니죠. 강상의 도를 어긴 대역죄인들을 처벌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지요. 세종 조대감의 말을 조용히 묵살해 주시면서 세번째로 넘어가지요.
"제안". 요지는 밀본은 밀본이라고 떳떳히 밝히고, 조정 앞마당에 나와서 토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얼굴도 뵈주지 않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세종의 제안은 제안이라기 보다는 협박같아 보이기도 했더라지요.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손에 몇몇 밀본원들의 명단이 적힌 투서도 있다고 겁을 주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이신적의 눈이 팽글팽글 돌면서 어찌나 겁을 내고 있던지, 그 자리에서 경기일으켜 쓰러질까 겁났답니다. 안석환, 참 연기 잘하는 분이에요^^. 
세종의 큰 포용력은 다음 말에서 또 확인이 되었지요. "왕이 오죽 부실하면 과인의 뜻과 다르다 하여, 강상죄로 몰겠소?" 임금의 뜻과 다르면 무조건 대역죄를 씌우는 것에 대한 일침이었고, 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나를 찌질이 임금으로 만들지 말라고 영리한 수로 밀본을 품어버리니, 대신들조차 할말없게 만들어 버리는 세종입니다. 정책에 반대하면 무조건 급진주의니, 좌파니 하며 몰아가는 우리 정치판에서 꼭 들어야 할 말입니다. 세종의 포용은 그들을 자기시력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의 의견으로, 정치적 입장으로 존중하겠다는 겁니다. 반대없는 정치가 민주정치는 아니지요. 무조건 좋은 것이니 알려고 하지말고 따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반민주적 사고방식아니겠습니까?

조말생 대감처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토끼눈 뜰가 우려된 세종, 회의를 소집한 이유에 대해 다시한번 밑줄 쫙 정리하고 넘어가지요. "과인은 글자를 반드시 반포할 것이고, 고맙게 대신들이 수행해 준다면 이레 뒤에 광화문 앞에서 백성들과 함께 반포할 것이오". 글자를 반포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하자 대신들 땅이 꺼지게 한숨입니다.
그리고 밀본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 주지요. 밀본이 붕당을 만들어 반대를 하고자 한다면, 반포전날까지 조정 뒷마당도 옆마당도 아니고, 꼭 앞마당으로 나오시오. 만일 나오지 않고 쥐새끼들처럼 숨어있다가 반포당일 반포를 못하게 해코지를 하거나, 과인에게 밀본원임을 들킨다면, 그 이후에 생기는 모든 일은 니네들 책임이다! 이상.

밀본의 움직임이 바빠졌지요. 분열과 와해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심종수와 이신적이 각각 다른 마음으로 해례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그 칼끝이 정기준을 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궁녀들이 해례를 빼돌려 유포하고 있다고 뒤늦게 눈치챈 정기준이 나인들의 행방과 조지소, 인쇄소 등을 뒤지고 결국 꼬리가 잡히고 말았지요. 초탁을 공격한 윤평을 피해 끝수의 수레를 타고 나인들의 은신처로 왔으니, 나 잡아가쇼가 돼버렸지요.
그런데 나인들과 해례를 찾는 이신적, 심종수, 정기준이 각기 다른 꿍꿍이라 정신을 못차릴 정도입니다. 정기준파, 이신적파, 심종수파로 나뉘어 나인생포 쟁탈전을 벌이고 있고, 여기에 태평관의 청위까지 가세에 일이 삼파전 사파전이 되고 있는 양상이지요.
밀본이 와해될 것은 이미 시작부터 감지되었던 일입니다. 삼봉의 대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기득권싸움으로 변질되어 갔고, 글자를 막겠다는 이유로 자행된 방법들은 이미 성리학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으니 말입니다. 세종의 백성을 향한 명분 앞에 정기준과 밀본의 대의가 명분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죠.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명분과 대의, 이상의 크기가 달랐기 때문이었죠. 정기준의 여전히 큰 바다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글자를 막으려 하는 정기준의 성리학적 대의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도에게 성리학 위에 글자를 두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글자를 막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도와 화해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불씨의 일대기를 펴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견고한 자기만의 틀속에 갇혀버렸지요. 백성들이 쉽고 익숙한 것부터 글자를 익힌 다음의 것을 보지 못한 우를 범하고 만것이에요. 글자를 익힌 백성이 삼강오륜을 배우는 것은 더 쉬울 일이며, 성리학적 질서를 깨닫는 길도 가깝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글을 익힌 사대부조차도 5만자나 되는 한자를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음과 훈을 쉬운 글자로 표기해 둔다면 한자를 익히는 사대부들에게도 좋을 일이요, 까막눈 백성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인데도, 정기준은 불씨일대기를 찍었다는 이유로 글자가 끼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미 역병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글자지만, 해례가 중요한 것은 글자의 창제원리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메모리 저장탱크 소이의 머리에는 발음원리와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가 들어있지요. 스물여덟 글자의 창제원리와 소리내는 방법, 초성 중성 종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글자가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발음하는 지에 대한 것들이 들어있기에 중요합니다. 나인들도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은 알지만, 종합적인 정리자료는 소이의 머리속에 들어있기에 나인들 중에서도 소이는 중요한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알게 된 채윤까지 꼬리잡기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예고편을 보니 개파이가 채윤과 한판 뜰것으로 보이더군요. 그동안 설왕설래 의견이 분분했던 무술서열이 곧 정리가 될 듯도 한데, 우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급 우울입니다. 목숨이 위험한 소이, 개파이와 강채윤이 누가 우세할지 모르지만, 채윤이 밀릴 것같아 강채윤도 걱정, 이쯤되니 누군가 하나 죽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그림자가 엄습해 와서 말입니다.ㅜㅜ 죽이면 작가들 미워할거얌!!
뭉클했던 것은 세종이 강채윤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글자가 쓰이기 위해서는 반포와 유포 두가지 방책이 필요하다고 한 대목에서 입이 벌어지게 하더군요. "반포는 내가 맡을 것이나 유포는 소이가 맡아야 할 것이다. 위험한 일이니 네가 지켜줘야 한다". 유포와 반포가 완수되면 소이를 데리고 떠나라며, 그 때까지는 소이를 내 사람으로 남겨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세종과 소이는 설사 이 일을 하는 중에 누구 하나 죽더라도 남은 사람들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라고, 비장한 약속을 했지요. 소이가 "그 일을 하다가 위험에 처하거나 죽는다 하더라도 자기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걸리네요.

대신들 앞에서 고개숙이는 임금, 자신의 독단에 대해서 만큼은 진정으로 사과하고 할 줄 아는 임금 세종은 잘못을 권위로 누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학사들을 죽인 것에 본인의 과오때문이었다며, 정치적 보복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밀본 역시 그가 품어야 할 백성의 한 조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정치관이 다르다하여, 역적으로 몰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고개숙여할 부분에서는 과오를 인정하고, 품어야 할 백성은 자식을 잃은 슬픔마저 누르고 품습니다. 설령 죽음이 그 일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백성을 위한 글자반포를 멈추지 않겠다는 세종이지요. 세종의 정치철학이 민본과 애민임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결정체인 한글의 창제와 반포과정을 통해 부상하고 있는 것은 세종의 백성에게로 가는 리더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라경영과 정치를 회사경영쯤으로 생각하는 분들과는 다른 리더십입니다. 독단과 독주가 아니라 반대의견에는 귀를 열고, 끊임없는 자기검증을 통해 실효성과 필요성을 확인하고 묻는 자세는 정치지도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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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 08:46




감독 및 시나리오까지 맡은 세종의 한글반포를 위한 연극이 성공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정기준의 뒷통수를 야무지게 후려치고, 지금 각 지방의 인쇄소와 주자소에서는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책이 대량으로 찍혀 나오고 있지요. 책뿐이 아니지요. 발없는 글자가 노래가 되어 역병처럼 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윤평이 소이와 나인들이 충청감영에 가지 않았음을 보고해, 정기준이 세종의 연극을 눈치채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지요. 아무래도 소이와 강채윤에게 위험이 닥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표정이 초지일관 가면같은 반쪼가리 윤평이 소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쬐끔 귀엽기도 하더군요ㅎ.

세종과 정기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는데요, 밀본에서 움직임이 없어서 오히려 폭풍전야같이 느껴집니다. 정기준이 "글자를 막기 위해 벌어지는 모든 살인마저 용인한다"고 했던 말이 섬찟해서 말입니다.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이신적과 심종수가 배신을 때릴 것같은 생각이 들어 정기준의 신변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아들 광평대군(서준영)을 잃은 참담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광분하는 세종을 일으켜 세운 이는 강채윤이었지요. 그날이었습니다. 강채윤은 죽음 앞에서도 버리지 않았던 광평대군의 세종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았고, 글자를 보았고, 글자를 처음 익혔지요. 아버지 석삼의 이름자를 써서 그 이름을 잊지 말아달라고 내밀었던 날, 채윤은 처음으로 복수가 아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소이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일, 소이와 글자를 지키는 것은 채윤의 하고 싶어진 일이었지요.
세종은 그날 채윤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지요. "넌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똘복이어야 한다. 윗것들 싸움보다는 그냥 백성으로, 한 사람의 백성이 윗것들 싸움을 어찌 보고 판단하는지, 그것을 알아야 겠다"라고 말이지요. 채윤은 그날 세종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윗분들의 일이 우리를 죽이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광평대군의 죽음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세종을 보고, 채윤은 소이를 끌고 나가려고 하며, 전하에게 속은 것이 분하고 참담하다고 독설을 내뱉지요. "짐승새끼한테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랬습니다.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면서 까지 천민 똘복이를 구했고, 말문까지 닫아버렸던 소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줬습니다.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될 천한 똘복이와 담이를 구하고 거둔 것은, 그들도 사람이었고,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한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없었다면, 글자를 만들 생각도 애시당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게 된 이유를 돼새겨 준 채윤이었지요.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똘복이가 세종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백성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뭉클했지요.
"백성은 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루 왠종일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들 먹을 것 못먹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책임지지 않았을 때도 우린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책임 좀 떠안고 하고 싶은 것 좀 갖겠다는데, 우리도 욕망하는 것 좀 갖겠다는데, 그게 그리 지옥이십니까? 전하는 위선자십니다. 전하는 아주 소심한 겁쟁이십니다". 윗것들 싸움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했던 똘복이 강채윤은, 그렇게 세종의 흐트러진 심기를 세워줬던 것이지요.
세종에게 말은 그렇게 독하게 했지만, 채윤이라고 어찌 광평대군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어요. 남겨진 광평대군의 신발 한짝을 보며 우는 강채윤, 몰래 광평대군을 추모하는 채윤의 눈물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임금에게 울지말라고 했지만, 채윤은 광평대군이 마치 자신이 지켜주지 못해 그리 비명횡사한 것같아, 세종만큼 아프고 또 아팠던 것이지요.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광평대군이 궁을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만감이 교차했을 듯한 강채윤이었습니다. 상처를 입고도 아프다는 말한마디 하지않고, 고통을 이겨내던 광평대군를 업고 도망쳤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허망하게 가버린 광평대군을 생각하니 채윤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비로소 세종은 정신이 들었고, 결심을 굳히지요. 그리하여 글자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작가에게 놀라웠던 점은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의 이름을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백성(民)을 쓰게 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제목 뿌리깊은 나무의 '백성'을 의미하는 뿌리이기도 한 백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으로, 세종의 혼란이 정리되었음도 암시했던 장면이었지요.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글자를 더 사랑했는지 모르겠다는 세종의 고뇌와 혼란을 소리(音), 글자가 아닌, 백성을 먼저 쓰는 모습으로 정리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도 세종의 심경정리까지 연결해서 세밀하게 연출하는 작가들과 감독입니다.
세종은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도 글자를 반포할 것이라며, 멋진 시나리오를 내놓았지요. 정기준이 너무나 좋은 힌트를 던져줬습니다. "너의 글자는 역병과도 같은 무서운 글자다". 그렇지요. 역병처럼 빠르고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퍼뜨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방법은 기습과 정면공격, 정면공격은 주자소와 지방의 모든 인쇄소에서 훈민정음으로 된 책을 찍어 배포를 하겠다는 것이었죠. 주자소를 급습한 최만리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라며 목에 핏발을 세우지만, 하옥하라는 한마디로 일축해 버린 세종이었고요. 
기습공격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지요. 문제는 해례를 알고 있는 훈민정음 프로젝트팀원들이 궁밖에 나가서 광평대군이 하던 일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밀본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었지요. 궁궐 담장까지 밀본이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소이를 비롯해 궁녀들을 내보내기로 한 세종, 궁밖으로 내보낼 구실은 광평의 소재를 누설했다는 죄목을 씌워 충청감영으로 이첩을 시킨다는 속임수를 썼지요. 궁궐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리는 밀본원들은 이를 잽싸게 정기준에게 알려 밀본의 감시망을 피하게 했던 것이고요. 광평을 살해해 세종을 자극하고자 했던 정기준의 고도의 심리전에 넘어가주는 척했던 것이지요. 멋지게 정기준을 한 방 먹여버린 세종의 역공이었습니다. 
글자반포를 반대하는 집현전 학사들을 싸그리 잡아 옥에 하옥시키고, 광평대군의 죽음에 실마리를 제공한 나인들은 궁밖으로 내쳐버리면서, 궁의 분위기는 살벌함이 감돌고, 마치 이방원의 공포정치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의정 이신적이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보니, 혹시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았나 궁금해지기 까지 하더랍니다.
정기준이 세종의 급격한 변화를 보고받으면서, 자신이 의도하던 대로 되고 있다고 믿게 된 데에는 핵심역할을 해 준 조선 최고의 배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지요. 조말생이 세종의 시나리오에 동참했다는 것은 일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세종은 정기준에 이어 시청자에게도 뒷통수를 제대로 쳐주시더군요. 
사실 세종, 무휼, 채윤, 정인지, 성삼문과 박팽년, 그리고 소이 모두가 배우가 되어 세종의 시나리오에 맞춰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요. 세종이 소이와 채윤을 그리 내칠 것이라고 믿은 시청자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훤히 드려다 보이는 싱거운 연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종의 시나리오를 명작으로 빛내 준 배우가 바로 마지막 반전의 주인공 조말생이었습니다. 
'이도가 드디어 돌았구나!' 라고, 정기준이 쾌재를 부르며 자신의 생각대로 세종이 움직이고 있다고 오판했던 것은, 조말생이 밀본수사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보고때문이었지요. 조말생은 태종 이방원의 사람으로 칼의 정치에 앞장섰던 인물이었기에, 세종이 밀본을 쓸어버리겠다는 광기어린 분노에 적임자였지요. 세종의 사람이 아닌 뼈속까지 이방원의 사람 조말생이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에, 정기준은 광평을 잃은 세종이 이성을 잃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조말생이 황희대감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조말생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어느 쪽에 서야하는지 고민했던 장면입니다. "상왕께서 돌아가시며, 전하(세종)께서 하시는 일은 반대치 말라 하셨다. 오로지 밀본만 막아내라 하셨다"며 고민중이라고 했었지요.
밀본의 발본색원은 조말생의 과업이며, 그에게 있어 대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밀본수사를 강채윤에게 빼앗기고 강채윤에 대해 앙금도 클 수밖에 없었고요. 밀본수사를 맡겨달라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궁에서 내쫒기고 파면을 당해도,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드시 밀본을 잡겠다는 조말생이었기에, 소이와 나인들을 고신하고 채윤을 옥에 하옥시켜 버린 것도, 밀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생각하게 했고, 글자와는 관계없이 단지 밀본을 색출하겠다는 집념으로 보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옥에서 강채윤을 데리고 세종에게 간 순간, 헉! 이런 기막힌 반전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네요. 사실 세종과 채윤, 소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여졌는데, 조말생은 밀본색출 업무에 너무나 충실하는 모습이어서 깜빡 속았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채윤을 집으로 불러 이방지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게도 했던 조말생이었지요. 이방지 역시 정도전의 사람으로 대역죄인인데도 그를 치료하고 숨겨주었다는 사실에, 조말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었지요. 여자를 이용해 이방지의 발을 묶었던 비겁한 무사라며, 이방지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남았던 조말생은 그렇게 조선제일검 이방지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보내 주었습니다.
잘 짜여진 세종의 시나리오, 정기준의 뒷통수를 제대로 치고, 감독 극본 연출 제작을 총괄한 세종의 이번 연극작품에서 최고의 연기자는, 조말생대감 이재용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반전의 주인공이었고요. 조말생 대감역의 이재용은 냉정한 모습도 있지만, 귀여운 구석도 많은 분이죠. 경연장에서 세종이 코 앞까지 다가와 말을 걸 때, 허걱!하는 표정으로 깨알 웃음을 주기도 하는 분이죠. 나인들을 고신할 때 차라리 자신이 고신받는 것이 낫겠더라며, "하는 척만 하려니 소신 정말 힘들었사옵니다" 라는데, 진짜 미안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는데도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암튼 이번 연극의 최고 반전 배우 조말생이었습니다. 

세종이 만든 잘 짜여진 연극 한판으로 한글은 역병처럼 조선팔도 골목골목에서 번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만들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소이, 거지들의 각설이타령까지 지금 조선은 글자역병의 씨앗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훗날 역사에, 백성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워주는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세종의 말이 송곳처럼 찌릅니다. "어차피 그것은 그들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지 않느냐, 지금은 그냥 내 백성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한번도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며, 채윤이 양손을 모아 처음으로 예를 취하더군요. "그렇게 결정내려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수많은 번민과 회의, 좌절, 그리고 그의 백성에 대한 믿음 속에 나온 희망의 씨앗 한글,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지, 또한 그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되새겨 보고 있는 중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예견과 우려대로 백성(국민)이 권력의 주체가 된 지금,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글을 주신 세종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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