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호'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2.05.30 '추적자' 얼음송곳과 싸우는 손현주, 연기가 더 무섭다 (3)
  2. 2011.05.31 '미스리플리' 충격변신 이다해, 두 얼굴의 가면 누가 씌웠나? (6)
  3. 2011.02.11 '싸인' 윤지훈의 충격적 거짓증언? 또다른 반전의 시작이다 (33)
  4. 2011.02.10 '싸인' 정병도의 유언, 자살인가 타살인가? (28)
  5. 2011.01.07 '싸인' 밝혀진 진범, 죽은 자가 남긴 진실게임 시작되다 (17)
2012.05.30 12:09




"나 전당포 한다. 금이빨은 받아.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영화 아저씨에 나왔던 원빈의 대사입니다. 블랙박스에 찍힌 수정의 사고 필름을 본 백홍석이 PK준을 만나 주먹을 날렸을 때의 감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원빈의 이 대사가 떠오르더군요. 아마 이 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아버지니까요.

카메라 동선은 장례식장을 나선 백홍석의 핏발 선 눈을 쫓습니다. 그의 핏발 선 눈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슬픔인지 분노인지 조차 알 수가 없었고, 딸아이를 잃었다는 슬픔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무표정으로 굳어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같은 눈물만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말이지요.

형사가 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모든 사건현장에는 단서가 남아있다', 수정이 사고를 당한 날의 CCTV가 그것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백홍석이 마주한 것은 미심쩍은 은폐의혹 뿐이었습니다. 사고현장은 갑자기 포장되어 혈흔과 타이어 자국도 지워버렸고, 경찰청이 해킹당해 CCTV 파일은 다 날아갔고, 백업파일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 있는 것은 수정의 옷에 남긴 타이어 자국이었지만, 경찰에 그 타이어 샘플만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어야 했지요.
범인이 남긴 타이어 자국으로 수사를 시작하는 백홍석, 국내에 300대 정도 들어 온 최고급 스포츠카라는 단서를 잡았습니다. 불법도박장을 운영하는 조폭사무실을 급습, 조폭들의 협조(?)를 구해 결국 자동차를 찾아냈고, 결정적인 증거물 블랙박스를 손에 넣은 백홍석이었죠. 
그러나 아직까지 신은 백홍석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강동윤의 편이었죠. 검찰청에서 백홍석의 사연을 듣게 된 서지원(고준희)는 스포츠카를 구입한 사람들의 명단을 알게 해줬고, 그 일을 아버지 서회장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것이죠. 서지원이 흘린 정보로 백홍석의 뒤통수를 쳐버린 강동윤이었지요. 불법도박장을 급습한 경찰에 의해 백홍석과 황반장, 조형사는 현장에서 뇌물을 받기 위해 온 비리경찰로 검거가 되었고, 블랙박스는 강동윤의 손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죠.
첫회 총을 겨누고 있는 백홍석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의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던 고준희가 서회장(박근형)의 막내딸이자 강동윤의 처제라니... 로열패밀리 공순호의 딸 조현진(차예련)이 오버랩되기도 하더군요. 백홍석의 딸 수정의 죽음에 자기 집안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향후 변화가 궁금한 인물입니다.
황반장(강신일)은 백홍석과 조형사를 빼내기 위해 조폭에게 뇌물을 받은 자신을 연행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거짓진술을 하고, 백홍석과 조형사를 일단 풀려나오게 합니다. 수정이를 죽인 범인을 잡으라면서 말이죠. 수정을 살인한 범인이 인기스타 PK준이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콘서트를 끝내고 그의 행적은 오리무중입니다. 휴대폰을 꺼 놓은 상태라 위치추적도 불가능했고 말이죠.
백홍석이 PK준을 쫓고 있음을 알게 된 강동윤은 PK준에게 외국으로 떠나있을 것을 종용합니다. 방배동 건물을 가지고 딜을 하는 강동윤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PK준, 역으로 강동윤을 몰카로 협박하지요. 나쁜 놈들은 머리를 쓰는 것도 비슷비슷 비열하더군요. 정말 지랄들이구나 싶더군요. 휴대폰 촬영이 시작되자 PK준의 위치가 떴고, 덕분에 백홍석은 PK준을 체포하게 되지요. 조용히 잡혀가면 뒷일은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강동윤의 PK준의 배후인물이 되었고, 법정에서의 진실을 가릴 일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결과는 첫회에 나왔던 것처럼 PK준은 무죄판결을 받았고, 대신 백홍석으로부터 총알을 받게 됩니다. 생사여부는 아직 모르지만, 죽었든지 살았든지 관심은 안가는 인물입니다. 죽었다면 감사, 살았으면 죄값을 더 혹독하게 치뤘으면 싶군요. 나쁜 놈.... 이 드라마를 욕하지 않으면서 볼 자신이 없군요;;.
첫회 무서운 연기내공을 폭발하며 이목을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손현주, 2회에서 그는 한 번의 감정폭발없이도 눈물을 쏟게 만들었습니다. 손현주의 연기를 보면서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다가, 연기의 치밀함에 속으로 탄성을 내지른 장면이 있었어요. 발인시각에 PK준(이용우)를 끌고 와 수정의 영정사진과 마주하게 한 장면에서 였습니다.
"무릎꿇어 새끼야"와 같은 거친 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손현주는 PK준의 오금을 한방 걷어차는 것으로 무릎을 꿇리더군요. 말보다 발과 주먹이 앞서는 마음, 아버지의 분노를 그처럼 잘 표현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의 직업이 형사라는 것도 이 한 장면으로도 설명이 되었고 말이죠.
17세의 꽃다운 아이, 영문도 모른채 죽어야 했습니다. 삶이 재미없는 재벌가의 딸 서지수의 운전사고로 자동차에 치인 수정은, 추잡한 스캔들을 덮고 싶은 한 인기스타의 '인기'를 위해 무참히 짓밟혀야 했고, 돈에 의해 또 한 번 주사로 죽어야 했고, 최종적으로 강동윤의 권력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PK준과 강동윤은 무서울 정도로 닮은 인간들이었습니다. 단어만 다르지, 인기와 권력때문에 무고한 소녀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죽여버리는 섬뜩하고 잔인한 성정이 말입니다. "호빠짓하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PK준의 말에서 강동윤도 그가 자기와 같은 종자의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발인이 끝나고 한 줌 재로 뿌려진 후에도, 이 가여운 영혼은 또 죽임을 당합니다. 원조교제를 했다는 친구의 거짓진술은 수정이의 영혼마저 두 번 세 번 갈기갈기 찢어버립니다.
너무 잔인하고 끔찍합니다. 17세 여고생의 단순교통사고가, 고의적 살인, 돈에 의한 살인, 권력에 의한 살인에 이어, 인격과 명예까지 어떻게 이렇게도 잔인하고 무참히 죽임을 당할 수 있을까요? 치밀어 오르는 분노보다 토악질이 나옵니다.
수정이의 아버지 백홍석은 어떠할까요? 블랙박스에 찍힌 딸 수정이의 사고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딸아이의 몸을 두번세번 짓밟는 덜커덕 소리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합니다. 분노의 불길이 너무 세서, 눈물을 말려버렸기 때문입니다. 빗속의 발인, 수정이는 여전히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아빠를 보며 웃습니다. 수정의 영정사진 앞에 PK준을 잡아 무릎을 꿇리면서, 백홍석이 웁니다. "수정아. 아빠가 왔다. 이번엔 약속지켰다. 미안하다 수정아, 미안하다".
손현주는 정극에서도 특유의 코믹함을 잃지 않는 배우입니다. 드라마를 맛깔스럽게, 무거운 분위기도 그의 개그감 넘치는 몸연기로 업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는 배우지요. 손현주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중 지금까지도 그 좋은 연기가 기억에 크게 남는 작품은, 故최진실과 함께 했던 장미빛 인생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암에 걸린 최진실을 살리기 위해, 없는 살림에 거금을 주고 사기꾼에게서 기적의 물을 사들고 왔던 바보같은 행동에 눈물을 쏟게 했지요. 입냄새가 난다며 잇몸에 피가 나도록 양치를 하는 최진실에게 입냄새 나지 않는다고 뽀뽀를 해주는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투박한 얼굴로 멜로보다 더 저릿한 감정을 전달해 주었던 손현주였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그 절박한 순수함은 바람피운 남편이었지만 용서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손현주를 떠올리면 하늘색 추리닝을 입고, 늦잠 실컷 자고 일어난 풀어진 모습으로 런닝 속에 손을 넣고 배를 북북 긁어대도 밉지 않은 남자가 연상됩니다. 친숙함이죠. 눈 한 번 가벼이 흘기고 넘어가는 남편같고, 넉살좋은 이웃집 아저씨같죠. 그런 편한 남자가 분노로 온몸을 칭칭감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드라마에 나타났을때, 많이 놀랐습니다. 소리를 벅벅 질러도 감추지 못하는, 손현주에게서 만나게 되는 그 특유의 인간적인 모습을 감출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너무 감춰서 오히려 놀랐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두 번 세 번 죽임을 당한 딸,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밖에는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손현주가 감정을 누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르고 있는데도 이 정도의 아우라면 그 내공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수정이를 죽인 범인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벌가의 딸, 호빠출신의 인기가수, 누구보다 믿었던 친구, 그리고 무서운 정치권력가입니다. 상대하기가 모두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가장 마지막에 맞딱뜨리게 될 강동윤은 거구의 골리앗입니다.
김상중이 연기하는 강동윤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말하라 하면 얼음송곳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손현주가 싸우는 대상은 이 얼음송곳입니다. 차갑고 독하고 무섭습니다. 얼음송곳처럼 말이죠. 얼음송곳은 살인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재질의 무기입니다. 왜? 흔적을 감추기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기 때문이죠. 도로를 갈어엎고 포장을 해버리고, 경찰청까지 해킹해서 자료를 삭제해 버릴 수도 있는...
백홍석의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돈에 넘어간 친구가 그의 딸을 죽였다는 진실을 그가 감당할 수 있을 지, 그 돈의 실체 강동윤의 거대한 얼음송곳을 그가 부러뜨릴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보여주게 될 손현주의 믿고 보는 연기변신이 더 무서울 듯해서,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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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1 11:52




학력위조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작품동기를 읽었을 때만해도, 별 쓰잘데기 없는 것이 다 드라마로 제작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사회의 한 병폐이기도 한, 소위 학벌이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해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다해의 차기작이라 기대도 컸지만, 성균관 스캔들의 박유천의 연기자로서의 진검승부가 될 작품이기도 해서 기대를 가지고 첫 회를 봤습니다. 
첫 회를 본 소감은 스토리 전개는 빨라서 좋았는데, 연출과 편집이 산만한 느낌이었습니다. 남녀 주인공들이 얽히는 과정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억지스러움이 많았죠. 같은 고시원에서 장미리와 박유천이 만나는 장면도, 아트홀에 면접을 보러갔다가 성추행을 당하고 나온 장미리와, 피아니스트 아내의 불륜현장을 보는 장명훈(김승우)과의 첫만남도 헐거워 보이는 전개였습니다. 장면이 급작스럽게 다른 인물로 옮기는 것이 반복되어, 스토리가 다소 정신없이 전개되었고, 교차편집이 지나치게 반복되다 보니, 연출은 산만하고 스토리 흐름도 들쑥날쑥해서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기대를 가지고 보려고 생각중입니다. 장미리라는 캐릭터가 대변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라마를 통해서 곱씹어주길 바라기 때문일 겁니다. 겉모습, 가진 것, 조건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외적 잣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어떻게 녹여낼 지 기대되기도 하고요.  

미스 리플리는 바닥인생의 한 여자에게 천우신조같은 고속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세상아 엿먹어봐라'는 듯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속인 것이 아니라, 너희가 속은 거야' 라며, 세상을 조롱하고 싶은 여자, 이 여자의 거짓말에 세상은 조롱거리가 되고, 그럼에도 잘못은 너의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다고, 손가락질 받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아, 그럴 것 같다고요. 신정아의 사건이 말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저는 그렇게 봤거든요.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서 드라마 메시지도 이런 것이 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첫회는 주인공 장미리(이다해)의 불행만이 반복되는 인생에서 시작됩니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더럽게도 운없는 여자에게 베란다 청소물까지 끼얹어지는, 박복해도 저렇게 박복할 수가 있을까 싶게 철저하게 그녀의 인생은 비참하게 꼬이기만 하지요. 꼬인다기 보다는 안풀린다는 말이 정확하겠군요. 워낙 가진 조건이라는 것이 바닥이라, 그녀에게는 기회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포주에게 겁탈을 당하려는 위기를 모면하고, 건물에 화재사고를 내고는 한국행 비행기를 탄 장미리, 토악질을 해가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번 이유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입니다. 양아버지의 노름빚을 갚고 한국으로 가서 엄마를 찾으려는 장미리, "최소한 이렇게는 안살 거 아냐..." 한국이라는 나라는 밑바닥 술집여자보다는 다른 인생을 살 기회를 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가진 것, 배운 것없는 그녀는 냉대를 당합니다. 고아에 고졸학력은 장미리가 어떤 재능을 가졌든 문전박대의 이유가 돼버립니다. 
주인공 장미리는 술집여자로 돈에 웃음을 파는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지우고 싶은 과거입니다. 술집여자출신이라는 꼬리표없이 새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온 한국, 그러나 그녀가 발붙일 곳은 송곳만큼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가진 것없는 고아, 고졸학력은 그녀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느냐를 묻기도 전에, 당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단정지어져 버립니다. 장미리의 몸뚱이를 보는 욕정에 사로집힌 미친 남자들 몇을 빼고는 말이지요. 
양아버지가 진 노름빚을 갚기 위해, 사창가에서 술팔고 웃음을 팔았던 장미리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취업비자없이 한국에 장기체류할 수 없는 장미리, 장미리가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길은 취업해서 비자를 취득하는 방법뿐입니다. 취직은 그녀의 절박한 희망이 셈이죠. 그러나 고아출신, 고졸학력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기 만큼 힘이 듭니다. 여기저기 면접을 다니지만, 그녀를 채용하겠다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아트홀 직원채용 면접장에 가서는 면접관이 성추행까지 하려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뭐 저런 개떡같은 놈이 있나 싶은데, 여튼 장미리는 취직을 하기 위해 면접관을 유혹했다고 오해까지 받지요. 어머니를 찾아 온 한국, 가족도 학벌도 인맥도 없는 그녀는, 여기서나 저기서나 그렇게 노리개감으로 취급당합니다. 그런 장미리에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호텔리어 장명훈이 하카타 사투리를 하는 그녀를 VVIP 나까무라상의 통역을 제대로 해주면 정규직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지요.
그녀의 운명을 가른 한마디는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였습니다. 앞뒤토막 다 자르고 동경대 나왔다면 취사선택해서 들어버리는 장명훈, 장미리는 순간 동경대 나온 인재가 돼버린 것입니다. '세상 재미있다, 될대로 되라지, 동경대가 별거냐?' 처음에 오해한 것은 장명훈 당신이야.
"길가다가 우연히 만나서 누구의 추천도 보증도 없이... 제가 아무리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정규직 취직은)불가능하겠죠".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12글자에 불과한 말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말이 돼버리지요. 듣는 사람의 오해에 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절박함에 거짓말이 시작되고,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가기만 합니다.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다른 거짓말이 필요했고,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장미리의 모습은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돼 버리겠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도 모르게 섞여버리죠.그녀의 첫번째 거짓말,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는 '동경대를 나왔다'로, 장미리는 동경대 출신인재로 가짜 학력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녀에게 가면이 씌워진 거죠. 그녀의 학력가면을 누가 씌웠는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과 함께 말이지요.

첫회 직업여성의 모습부터 냉소적이고 까칠한 모습까지 미스 리플리 신고식을 무사히 치룬 이다해, 바닥까지 떨어진 장미리의 심리변화를 잘 표현했고, 감정처리도 무난하게 해냈습니다. 아직은 영글지 않은 장미리라는 캐릭터임에도 그렁그렁 맺힌 눈물만으로도, 희망없는 세상을 향한 비참함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아하면서도 슬픔과 청초함이 돋보이는 눈매를 가진 이다해, 장미리라는 복합적인 인물에 캐스팅된 것은, 이다해에게는 연기변신의 큰 분수령이 될 기회를 잡은 듯합니다.
그만큼 장미리라는 캐릭터는 감종소모가 많은 역할이  될 듯 하더군요. 원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복잡하게 살죠. 가지고 있는 표정도 많고요. 매서우면서 냉소적이고, 그러면서 슬픔 한덩어리가 가슴께에 얹혀있는 듯한 복합적인 눈빛으로 장미리라는 인물을 잘 표현하더군요. 조금은 어두운 이미지로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이다해, 미스 리플리는 이다해에게는 연기성숙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될 듯합니다.

***덧붙이기: 기대되는 박유천
성균관 스캔들로 연기자로서도 제2의 인생을 출발한 박유천은 첫회 분량은 적었지만, 다정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같더군요. 최명길의 아들로 나오는 것을 보면 재벌가의 아들인데도, 가난한 고시원에 짐을 푼 것이 좀 의아하더군요. 나레이션을 통해 짐작한 바로는 최명길(이화)의 친아들은 아닌 듯하고, 복잡한 가정사가 숨겨있는 듯보이더라고요. 일본에서 돌아와 고시원에 방을 구하는 것이 조금 현실감이 부족해 보였지만, 장미리와의 만남을 위한 설정이라고 보여졌습니다.
박유천의 현대극에서 샤방샤방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살짝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지나치게 순박한 모습에 환상에 금가는 소리도 들렸다지요ㅎㅎ. 헤어스타일이 촌뜨기같았음...살짝 웨이브를 넣어주면 샤방한 얼굴이 빛나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저 혼자만요ㅎ;;. 박유천은 성균관 스캔들에 이어 두번째 작품인데, 연기가 더 안정된 것 같더군요. 발음 발성도 더 가다듬어 졌고, 표정연기도 자연스러워 연기자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세상을 향해 가면을 쓰기로 한 여자 장미리, 가면 속의 얼굴을 두 남자가 봅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되겠죠. 첫장면에서 장미리의 해맑은 웃음 위로 흐르는 두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표현되는 여자는 가면 속 장미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두 남자가 사랑한 장미리지요. '어머니의 눈을 닮은 여자, 웃는 얼굴이 예쁜 여자, 삶의 기쁨을 가르쳐 준 여자, 심장같은 여자...'
김승우와 박유천의 나레이션을 들으며 궁금해 지더군요. 두 사람은 가면 쓴 장미리를 사랑한 걸까, 가면을 벗은 장미리를 사랑한 걸까? 드라마 시작과 함께 흐른 김승우와 박유천의 나레이션은 드라마의 새드엔딩에 대한 암시까지 깔려있어,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드라마가 되리라는 짐작도 하게 됩니다. 애정관계는 아무도 연결되지 않을 것 같더군요ㅜㅜ. "나는 그녀를 정말 사랑했습니다"는 사랑한다는 진행형이 아니라, 끝나버린 마침표의 의미가 더 읽혀지니 말이지요.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또다시 묻게 될 듯합니다. 그녀에게 가면을 씌운 사람은 누구일까 입니다. 거짓의 가면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장미리라는 여자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의 질문이 되겠지요. 장미리의 거짓말이 나쁜 것인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게 한 학벌병에 걸린 우리 사회의 단면이 더 나쁜 것인지, 다소 버거운 질문에 얼마나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지는 드라마가 끝날 즈음에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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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11:43




*오늘 글은 드라마속 내용에 전하는 메세지가 너무 많아서 깁니다. 긴 글 읽는 것 싫어하시는 분은 클릭하지 마세요 ^^;; 저는 지쳐서 잠시 쓰러져있는 중입니다..
윤지훈이 검찰시민위원회에서 한태주의 사인을 안티몬 중독이 아닌 급성내인사이며, 사망의 종류를 자연사로 규정하며 시청자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지만, 저는 드라마가 끝나고 소리없는 살인범 안티몬을 드라마로 끌어낸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드라마에 중독된다는 것은 약물중독보다 헤어나기 어렵게 합니다. 드라마 싸인에 중독되어 한시간을 몰입하고 난 후에 느끼는 생각이에요. 약물에 중독된 경우가 없으니, 제가 좋아하는 커피중독으로 단어를 바꿔야 겠네요. 드라마 싸인을 보며 느끼는 것처럼, 단어 한마디로도 사건을 정반대의 결과로 이끌기도 하기에, 신중해서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싸인 12회에서 윤지훈 선생이 검찰시민위원회에 나와 증언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드러난 20년 전의 비밀, 소리없는 범인 안티몬
너무나 촘촘하게 엮여있는 사회부조리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할 정도로 드라마 속에 암시된 꼬집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故 김성재의 의문사부터 연쇄살인범, 미군총기사건, 재벌의 불법증여까지 굵직한 이슈들을 다른 시각으로 파헤치며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단순히 재미와 흥미, 박신양과 전광렬이라는 배우의 연기력 이상의 의미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재벌의 불법증여에 대한 문제를 안티몬이라는 독극물 살해로 접근했지만, 정말 얘기하고 싶은 것은 줄줄이 죽어나간 한영그룹 간부진들의 의문사가 아니었습니다. 소리없는 범인 안티몬이라는 중금속에 관한 문제와 재벌의 변칙 자금운영에 관한 것입니다.
스승이자 아버지였고 인생의 멘토 정병도의 죽음에 오열하는 윤지훈, 정병도의 집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이명한의 넥타이핀이었습니다. 정병도 원장이 죽기전에 이명한이 찾아왔었다는 것을 알게 된 윤지훈은 이명한에게 20년전의 일을 물어보지요. 정병도의 자살을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죠. 극중 "법의관이라는 직업은 자살하기 가장 힘든 직업입니다"라는 대사가 나왔지요. 자살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기 때문이라는 대사가 이어졌는데, 그냥 넘길 수 없는 대사였습니다.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최진실, 최진영 남매도 생각났고, 삶의 무게가 버거워 죽음을 선택한 생각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말입니다.
"때로는 들춰서는 안되는 비밀이 있다고 했었지 않았느냐"며, 정병도의 죽음과 20년전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두려워 하는 이명한, 그에게는 존경했던 선배 정병도에 대한 명예와 국과수의 신뢰가 걸린 문제이기에, 열혈 법의관 윤지훈을 막아설 수 밖에 없었지요. 20년전 열악한 국과수를 신념과 소신으로 지켜가던 동료가 과로사로 죽은 것을 본 이명한이,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정병도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밝혀졌지요. 고작 연금 몇푼이나 주어지는 법의관의 처우는 대한민국의 법의학 종사자의 현실이었고, 이명한 눈에 비친 미래였습니다. 죽은 자가 말하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밤을 세우고, 과로로 쓰러져가면서도 부검실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희망과 학문에 대한 소신과 직업에 대한 미래였습니다. 그러나 이명한의 눈에 비친 미래는 과로사로 죽은 동료 강지현의 모습처럼 암울하고 열악할 환경뿐이었습니다.
이명한과 죽은 강지현 법의관이 떠난 국과수, 한 시신이 검시실로 오게 되지요.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다는 원망과 슬픔에 고개를 떨구고 분노의 눈길을 보내던 소년, 윤지훈과 정병도가 처음 만나던 날입니다. 정병도는 당시 어린 윤지훈에게 아버지가 가족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자살이 아닌 실족사로 결론을 내려주었지요. 아버지의 손가락에 피멍이 들고, 지문이 없어질 정도의 상처가 났던 것을 보여주며, 아버지는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살려고 했었다고, 윤지훈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실족하게 된 이유는 독극물에 의한 것이었지만, 자살이 아니었다는 것은 밝혀 주었지요. 아버지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듣게 된 윤지훈이 법의관이 되겠다고 장래희망을 품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진실보다 중요한 명예는 없습니다"
그런 정병도원장이 20년전 아버지와 아버지의 동료들의 죽음을 조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윤지훈은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지요. 20년전 아버지의 동료였던 여직원 박희정의 사체를 본 윤지훈은 독극물에 의한 타살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안티몬이라는 독극물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명한 역시도 20년전의 사건을 알고 있었고, 그 댓가로 정병도 원장이 거래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이 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은 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이명한이 다섯명의 대기업 의문사자들을 죽음을 조사했느냐, 윤지훈 아버지의 시신이 오기전 피해자들의 부검을 통해 안티몬 독극물을 이명한도 알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정병도 원장이 한영그룹 전 회장으로부터 사인을 조작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 댓가가 오늘의 국과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부차적인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부검결과가 조작되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던 스승 정병도에 대한 충격이 더 컸지요. 
"국과수 시스템의 기초가 됐던 게 바로 권력이야". 이명한이 왜 그토록 권력에 집착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고,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전광렬의 연기가 압권이었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은 권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시청자의 온몸을, 마치 뱀이 휘감고 숨조차 쉬지 못하게 하는 중압감을 느끼게까지 했으니까요. 전광렬의 섬뜩한 연기의 힘입니다. 아무튼 드라마 싸인 속의 전광렬과 박신양의 용광로같은 연기는 싸인 속의 또 다른 스토리입니다.
스승님의 명예와 국과수의 신뢰, 하지만 윤지훈이 택한 것은 진실이었습니다. 윤지훈의 대답은 드라마 싸인에 흐르는 핵심이며 명언이었습니다. "정병도 원장의 신뢰와 명예, 국과수의 신뢰와 명예도 진실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실보다 중요한 명예는 없습니다. 전 모든 걸 밝히겠습니다". 윤지훈의 굽히지 않는 소신에 박수를 보냈고, 이명한의 그 위기감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는 장면이습니다.
스승의 편지에 오열하는 윤지훈, "한없이 사랑한다"
검찰시민위원회의 심문이 열리는 날, 윤지훈에게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지요. 죽은 정병도 원장의 편지였습니다.
"20년전 널 처음 만났던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날이었고, 가장 악몽같은 날이었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부검을 조작한 날이었다. 치졸한 변명이지만 난 국과수를 포기할 수 없었다. 너와 함께 보낸 20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런 못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나는 내 명예를 천금처럼 여기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단 한번의 실수로 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걸 그냥 놔둘 수 없었다. 내 비밀을 묻을 수 있는, 그리고 너에게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이해해다오. 미안하다. 그리고 한없이 사랑한다"
편지를 읽으며 정병도 원장과 찍은 사진을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박신양의 연기가, 처절하리 만큼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던 장면이었습니다. 슬픔이 아닌, 아픔과 절망을 느끼게 하는 박신양의 명품오열 연기였다고 평하고 싶더군요. 박신양의 연기가 대단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 장면을 해석하는 눈물의 종류를 스토리이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검찰시민위원회의 판결여부로 검찰에 기소한다는 방침에 피고석에 앉은 정차영, 김정태의 연기는 미친존재감을 뿜으며 드라마의 긴장감을 고조시켰지요. 그 뻔뻔함과 두들겨 패주고 싶을 정도로 능글스러운 잔인성이 김정태의 표정에 독사처럼 살아 움직이더군요. 김길태를 부검한 고다경이 안티몬에 대한 중독사였음을 진술하고, 뒤이어 윤지훈이 시민법정에 모습을 드러냈지요. 윤지훈의 증언은 법정에 찬물을 끼얹으며, 충격에 빠지게 해버렸습니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이명한 원장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반전을 위한 윤지훈의 증언, 그는 진실을 놓지 않을 것이다
저도 한동안 윤지훈의 증언에 멍하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소신법의관 양심법의관 윤지훈이, 스승의 명예를 위해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한태주의 시신에서 안티몬이 검출됐습니다. 그러나 죽은 한태주에게서 검출된 안티몬은 치사량에 이른다고 볼 수 없습니다". 증언을 하는 윤지훈의 눈은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봤던 소신과 패기에 찬 모습이 아니라, 버벅대고 있었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아니었지요.
정말 충격반전이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이어지는 윤지훈의 증언을 들으며, 저는 윤지훈에게서 또다른 반전의 예고를 봤습니다. "안티몬의 체내 치사량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습니다. 126mg/L 때문에 한태주가 죽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한태주의 사인은 안티몬 중독사가 아니라, 급성내인사, 사망의 종류는 자연사입니다". 윤지훈의 증언은 거짓이 아니었어요. 사례가 없고, 치사량을 정확히 모르기때문에, 지금까지의 사례에 따른 객관적이고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증언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현재까지 알고 있는 법의학의 기준에서 말이지요. 

윤지훈이 스승 정병도의 명예를 지키고자 굴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윤지훈이 준비하는 반전은 따로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과수의 명예와 스승의 명예 모두를 지키고, 진실까지 규명할 수 있는 카드를 윤지훈은 복안으로 마련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와 감독의 거시적인 사회적 시각이 보였습니다. 윤지훈의 증언에서 놓쳐서는 안될 핵심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치사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아직 국내에서는 안티몬에 의한 중독사 케이스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차영이 윤지훈에게 한 말이 있었지요. "살아있는 인간에게 직접 독을 먹여 본 적 있어? 그 사람의 모든 체질을 고려한 정확한 치사량, 생체실험을 절대 할 수 없다는 게 니네 법의학의 맹점이야".
정병도 원장과 국과수의 명예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말이 이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치사량을 모른다는 것이죠. 그리고 안티몬이라는 중금속이 인체내에서 어떤 증상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사례도 없었다는 겁니다. 20년전의 정병도 원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의 열악한 시스템으로는 검출조차 불가능했을 지도 모를 일이였죠. 안티몬이 추출되었다고 하더라도, 치사량의 기준에 대한 연구가 없었기에 정병도 원장이 안티몬에 의한 중독사라고 판명할 수도 없을 상황이기도 했고요. 당시 국과수의 시스템은 타살임을 밝힐 수 있을 만한 설비도, 인원도 없었지요. 물론 사인조작을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병도가 조작한 것은 타살이 아닌 의문사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병도 원장이 사인을 조작했다는 것이 아닌, 과거 20년전과 현재 한영그룹 직원들의 연이은 돌연사에서 검출된 안티몬이라는 중금속 독극물입니다. 윤지훈이 한영그룹 정차영을 조여 갈 카드이기도 합니다. 안티몬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윤지훈의 앞으로의 과제이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이기도 하겠지요. 이 사건을 여기서 종결짓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안티몬은 정차영이 선대회장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고 했지요. 안티몬 가루가 정차영의 방에서 압수되는 장면도 나왔고요. 안티몬이라는 것이 왜 한영그룹 회장 손에 있었을까요? 그리고 20년전 죽은 다섯명의 한영그룹 사람들은 일반부서가 아닌 연구팀 소속이었습니다. 이번에 발생한 다섯명의 희생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안티몬은 통신장비, 반도체, 에나멜, 고무경화제, 유리, 패트병, 플라스틱제조 등에 사용되는 중금속이라고 합니다. 원소기호나 복잡한 화학성분들은 이해하기 귀찮아서 패스했습니다. 제가 눈여겨 본 것은 반도체, 플라스틱, 페인트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중금속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20년전에 죽은 희생자 박희정의 사체가 부패없이 보존되고 있었다는 것은 안티몬 성분이 체내에 쌓여있을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지도 보여주는 예입니다.
예전에 라면을 많이 끓여먹는 친구에게 제가 우스개 소리로 "너 죽으면 썩지도 않겠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순간 뇌리에 스치더군요. 인스턴트 식품에 들어가는 방부제때문에 썩지않을 것이라는 악담 비슷한 농담을 했는데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 겁니다. 

과일쥬스 패트병 음료에서 안티몬 독성성분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던 적이 있었죠. 장난감에서도 뇌를 손상시키는 안티몬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도 생각납니다. 선대 회장이 안티몬에 대해 어떻게 알았을까요? 보아하니 그 집안이 깡패집단같아서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튼 불법증여를 알게 된 직원들이 한영그룹의 연구실 소속이었다는 것을 유추해서 보면, 한영그룹의 어떤 제품을 만드는 것에 안티몬이 사용되었고, 연구실에서는 안티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연구를 했고 보고를 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안티몬은 한영그룹 연구실에서 나온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선대회장이 자신의 불법주식증여를 문제삼는 직원들을 살해했고, 아들 정차영에게도 무슨 좋은 가문의 비법이라고, 전수를 했던 것입니다. 
윤지훈이 이런 극악무도한 놈을 놓아줄까요? 자신의 눈앞에서 생체실험을 했다는 정신병자같은 소리까지 한 놈인데다, 다섯번째 희생자 배성진의 죽음을 눈앞에서 봤는데 말입니다. 20년전에 딸이 무슨 이유로 왜 죽었는지조차 알지못한 아버지의 한맺힌 눈빛을 봤던 윤지훈인데 말입니다.

정차영에게 안티몬을 준 사람은 누구?
윤지훈이 가진 반전의 카드는 다섯번째 희생자 배성진의 사체입니다. 배성진의 경우는 다른 희생자들에 비해 안티몬을 다량 먹여 독살했지요. 정차영이 자신의 방에서 나가는 배성진을 보며, 죽음의 카운트다운까지 했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공통점들을 들어 재수사를 요구하겠지요. 산악회 회원중 남은 한명 이철원도 카드입니다. 정차영이 이철원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철원을 이용해서 결정적 증거를 잡을 수도 있고요. 현장에서 잡는다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정차영이 무죄로 방면되는 꼴은 저는 죽어도 못보겠습니다.ㅜㅜ
그런데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정차영이 안티몬을 누구로부터 받았을까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선 의심가는 인물은 마지막 남은 이철원입니다. 이철원은 정우진 검사에게 소환되어 왔을때 처음에는 진술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그리고 한태주가 임신중이었다는 말에 심경변화를 일으키며, 정차영과 관련된 불법증여문제를 알고 있었고, 그를 협박에 돈을 뜯어냈다고 자백했지요. 이철원 역시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정차영에게 문제의 안티몬을 건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간이 돈에 얼마나 나약하고 간사한 지를 이번 사건을 통해서 다시금 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 불법증여 관련파일을 발견했을 때,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것이 발단이 되었지만, 인간이 돈 앞에 얼마나 유약하고 무력하고 유혹당하기 쉬운 지를 보는 것이 씁쓸합니다.
다른 한 용의자는 죽은 정차영의 부친입니다. 독극물 살해수법과 함께 안티몬까지 건넸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 부분까지 밝혀진다면, 윤지훈은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20년전 다섯명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까지도 밝힐 수 있을 것이고, 명백한 타살이었음도 빍힐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박희정의 아버지에게는 진실을 알려 주었으면 싶더군요. 20년간을 왜 죽었는지도 모른채, 딸의 시신을 숨기고 있었던 노부의 한이라도 풀어줬으면 싶어서 말이지요.

정병도 원장의 사인조작부분은 당시 안티몬이 국내에 알려진 독극물이 아니었다는 점, 사인의 케이스로 한번도 없었다는 점을 들어 정병도 원장의 명예까지 실추시키지는 않을 듯합니다. 사실이 그랬고요. 20년전 국과수의 실험장비와 시스템으로서는 안티몬 성분에 대한 치사량과 사인까지 밝힐 수 없는 노후한 설비를 가지고 있었기에, 정병도 원장이 밝혀내지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여기서 정병도 원장의 명예도 지켜줄 수 있고, 국과수의 신뢰도 무너지는 정도까지는 아니죠. 오히려 국과수의 첨단설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결론까지 이끌어 낼 수 있는 강한 반전까지 들어있는 것이지요. 500억 지원이 아니라 더 큰 금액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명분까지 얻을 수 있는 셈입니다. 부족한 인력과 시스템으로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죠. 권력으로 국과수를 지키려고 하는 이명한과 진실로 국과수를 지키려고 하는 윤지훈, 싸움 방식의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권력이 아닌 진실이 이긴다는 것을, 우리가 드라마 속 윤지훈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윤지훈은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스승의 죽음에 아파했고 슬퍼했을 뿐입니다. 진실만큼 강한 희망은 없으며, '진실'이 국과수의 존립이유이며, 힘이며, 미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윤지훈입니다. '진실보다 중요한 명예는 없습니다'. 윤지훈이 이 말을 놓지 않기를 바라고 또 믿고 싶습니다.
안티몬의 치사량이 얼마인지, 윤지훈은 과학적 진실을 향해 움직이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티몬의 출처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 한영그룹이 불법 증여 이상으로 저지르고 있는 범죄까지도 말입니다. 드라마 싸인은 안티몬이라는 독극물을 통해 인체내 중금속 중독의 심각성까지 사회적으로 시선을 확대시킵니다. 중금속에 노출되어 있는 사업장들, 얼마나 많습니까? 심한 경우는 보호장비 하나 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 사업장도 많습니다.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비자에게 중금속에 노출시키는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기업윤리의식도 우리가 감시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까지,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명한이 말했지요. 소리없는 범인, 안티몬이라고요. 어디 안티몬뿐이겠습니까? 우리를 조금씩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물질들이 말입니다. 무엇에 대한 경각심을 말하고 있는지 너무나 강하게 와닿습니다.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그리고 드라마 싸인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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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08:26




국과수로 실려 온 사체에는 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연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폐부를 몸에 남은 싸인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산자의 입을 통해 전달받는 것보다 통렬한 고발입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사건일까 궁금하게 하는 드라마 싸인, 이번 사건은 20년전 국과수에서 있었던 대기업 간부들의 의문사 조작사건으로 정병도 원장의 과거로 시선을 돌렸지만, 단발적으로 보인 모습은 얼마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맷값재벌 사건을 드라마에서 단죄하려는 모습까지 복합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구방망이 한대에 100만원씩 계산해서 화물연대 소속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때리고, 2천만원을 준 만행을 저지른 가해자 최철원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며칠전에 뉴스로 접했는데요, 드라마 싸인에 나온 한영그룹의 정차영 사장을 보니 아주 판박이더구만요. 최이한 경사에게 수표를 뿌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얼굴짝을 아주 불이 나도록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살인죄가 적용되는 범죄자이니만큼 죄값을 톡톡히 치르겠지만 말입니다. 이명한(전광렬)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 사회에는 죽어야 마땅한 쓰레기들이라는 말입니다.
맷값재벌의 통렬한 고발, 후련하다
드라마 싸인이 대담하게 우리 사회의 썩은 환부를 정면으로 그려가는 것을 보면서, 소름끼치게 무서우면서도 드라마에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 보고 나면 속이 후련해요. 현실도 이렇게 속이 후련하게 진실과 정의가 이기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병도 원장이 목숨과 함께 가져가 버린 20년전의 진실, 그것은 약자라서 지키지 못하는 강자의 횡포에 대한 굴복이었습니다. 이명한 원장이 왜 권력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정병도 원장의 죽음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기도 했지요.
윤지훈의 아버지가 다녔던 한영그룹 중견간부들의 연이은 사망사건, 공통분모에 정차영 이사가 연루되어있음이 드러났지요. 사망하기 전에 하나같이 정차영을 만났다는 다이어리의 약속일정이 실마리가 되겠지만, 그놈 낯짝을 보니 그냥 당할 놈은 아닌 듯하더군요. 사인은 예고편에도 나왔듯이 독극물에 의한 사망으로 판명이 나지만,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어떻게 죽었느냐, 즉 독극물 사인이 아닌, 왜 죽였느냐의 메시지입니다.
또한 현재의 사건은 20년전 정차영의 부친이 저질렀던 사건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식지분으로 간부의 반발에 부딪히자 목숨을 앗아 버린 것이지요. 사고사를 위장해서 말입니다. 재벌의 불법적 재산축재 범죄행위였습니다. 재벌의 불법 상속과 증여, 은닉, 자금세탁, 해외로 빼돌리기 등등 생각나는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세세한 것까지 드라마에서 대사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재벌의 불법적 재산축적문제까지 드라마는 사회고발적 시선으로 메시지를 확대합니다. 드라마 싸인이 진정 드러내고 도려내고 고발하고 싶은 부분들이죠. 돈으로 진실까지 사버리고, 은폐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썩은 폐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20년전 한영그룹의 간부 5명이 자연사 혹은 사고사를 가장한 의문사를 당했는데, 왜 국과수가 그 사실을 은폐했느냐 입니다. 20년전 사체를 부검한 담당 부검관이 정병도 원장이었음을 알게 된 윤지훈, 자신의 아버지의 사인을 밝혀준 정병도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윤지훈이 충격을 받고 정병도 원장에게 향하지요. 같은 시각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인터뷰한 주인혁을 만난 고다경과, 사건파일을 통해 20년전에도 같은 의문사가 있었음을 알게 된 최이한과 정우진 검사도 정병도의 집을 향합니다. 네사람의 눈앞에 벌어진 충격적인 장면은 정병도 원장의 죽음이었습니다.
정병도와 이명한의 20년전 이야기
윤지훈의 전화를 받고 지훈을 기다리던 정병도 원장에게 먼저 모습을 나타난 인물은 뜻밖에도 이명한 원장이었습니다. 윤지훈이 20년전 한영그룹의 의문사를 조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 이명한이 정병도의 입을 막기 위해서였지요. 국과수의 존폐가 걸린 문제, 무엇보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정병도 원장의 치부를 윤지훈이 감당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윤지훈이 정병도 원장집에서 함께 살때 사용하던 지훈의 방에서 목맨 채로 발견된 정병도 원장, 애타게 선생님을 부르는 윤지훈의 절망스러운 흐느낌으로, 정병도 원장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눈 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본 듯한 박신양의 연기는 정말 말이 필요없더군요.
정병도 원장이 신념과 소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명한이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에, 우리는 사회부조리보다는 국과수의 과거 열악한 환경과 마주해야 합니다. 거액의 뒷돈이 오간 사체부검, 정병도가 소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과수를 다른 방식으로 지키고자 한 오늘의 이명한의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재벌의 금권 앞에 과거 국과수는 힘없는 기구였을 뿐이었고, 국과수 부검의들의 직업적 사명관마저 흔들리게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요. 실제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국과수 법의학자들을 만나 사전조사를 했는데, 투철한 사명관과 직업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더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한번도 국과수와 법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는 국과수라는 기구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기 보다는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망자의 몸을 다룬다는 일 자체가 소신과 사명감이 없다면 힘든 일이기에, 그들의 수고로움과 직업적 고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병도 원장의 죽음을 보며 이명한이 권력형 인간이 된 이유와 정병도 원장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명한이 권력이 필요했던 한 가지 이유는 20년전 정병도의 부검소견서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검소견서는 두 개였습니다. 윤지훈이 국기기록원에서 열람한 부검소견서는 정병도 원장이 국과수의 '무엇'-저는 자존심과 소신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과 바꾼 돈의 기록물이었습니다. 한영그룹에서 나온 큰 돈은 정병도 원장이 국과수의 열악한 설비투자에 사용했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명한이 보관하고 있는 진짜 부검소견서입니다. 이명한이 왜 진짜 부검소견서를 보관하고 있을까 에 대한 해답은 이명한만이 알고 있겠지만, 저는 국과수의 자존심과 소신이 굴복하는 것을 본 이명한이 절치부심의 증거로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힘을 가지겠다는 다짐같은 것이기도 하고요.
정병도의 유서, "우리는 과학적 진실만을 추구한다"
롤모델이었던 선배의 권력과 금권에 의한 굴복을 본 이명한이 권력을 가지려고 한 이유는, 굴복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법의관의 양심을 버린 한 번의 굴욕으로 아끼는 후배가 변질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정병도 원장, 20년 후 같은 사건을 마주하며 그가 선택한 것은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윤지훈에게만은 진실을 알리고 싶어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병도 원장이 죽음을 택할 정도로, 사랑하고 걱정한 사람은 윤지훈이었습니다.
정병도 원장은 죽음을 선택하면서 윤지훈에게 한 줄의 유서를 남겼지요. 지훈이 사용했던 방 대들보에 적힌 "우리는 오직 진실만 추구한다"는 국과수의 모토였습니다. 정병도 원장이 마지막 가는 길을 윤지훈의 방으로 택한 이유는 윤지훈에게 유서를 남기고 싶어서였겠지요. 정병도 원장이 윤지훈에게 남긴 유언은 진실만 보고 가는 국과수를 지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가 한 번의 실수로 평생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일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고, 법의관이 되겠다는 윤지훈에게 처음에도 그랬듯이 마지막까지도 진실에 귀를 기울이라는 가르침을 남기며 떠난 것이지요. 
권력과 야합하는 이명한에게도 그만의 명분은 존재합니다. 국과수를 지키겠다는 명분, 국과수의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대외적인 명분을 내세우는 이명한과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국과수를 지키는 것이라는 윤지훈과의 대립은, 정병도원장의 죽음을 통해 더 첨예한 대립으로 치닫습니다.
"어려운 부탁인데 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명한이 정병도를 살해하지는 않았겠지요. 자살을 종용했을 것이고, 정병도는 진실을 안고 사라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정병도 원장의 죽음, 자살일까요, 타살일까요? 너무나 많은 대답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자살이었음에도 타살이었고, 타살이었음에도 자살이었으니 말입니다. 그 키를 쥐고 있는 이명한 원장, 그가 정의의 편에 있는가, 불의의 편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것은 '진실'이라는 한가지 입니다. 
20년전과 똑같은 상황을 마주한 이명한과 윤지훈, 두 사람은 어떤 길을 택할까요? 정병도 원장이 윤지훈에게 유언으로 전달한 글귀가 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훈이 20년전에 써둔 글귀, 국과수의 모토 "우리는 오직 과학적 진실만을 추구한다". 모든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아버지 대에서 저지른 업보를 되물림하고 있는 정차영, 그가 아버지가 20년전에 저지른 죄값까지 단죄받기를 바랍니다. 정병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큽니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권력형 타살도, 권력형 자살도 더이상은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0년 후 똑같이 발생하는 대기업 간부들의 의문사, 윤지훈이 맞딱뜨리게 될 20년 전의 진실과 현재의 진실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스승 정병도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두 인물, 윤지훈과 이명한은 결국 한지점에서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진실의 시작점입니다. 죽은자의 말을 듣느냐 산자의 말을 듣느냐의 갈림길이자, 국과수의 존립이유 지점이 되겠지요. 한 인간의 죽음을 통해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단면들,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는 싸인, 드라마를 통해 던지는 굵직한 메시지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재미, 그 이상의 의미를 던집니다. 갈수록 흥미에 의미를 더하는 드라마 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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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07:41




한 아이돌 스타의 의문의 죽음은 치정관계나 소속사의 문제가 아닌, 배후에 차기대권후보라는 거대권력으로 범위를 넓히면서, 드라마 싸인이 단순히 망자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법의학의 문제를 넘어서, 사랑, 정치와 휴머니즘, 도덕적 양심과 법집행의 공정성까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구조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싸인 2회를 보면서도 듀스의 故김성재의 의문사에 대한 문제가 계속 머리속을 파고 들더군요. 김성재 관련기사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관련기사를 검색해서 보시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이기에 부언하지는 않겠습니다.
고다경(김아중)이 서윤형의 죽음이 타살이었음을 밝혀줄 가장 명백한 증거물인 파란쿠션을 찾아 헤매다가, "초동수사만 제대로 됐었어도... CCTV테입만 있었어도.."라며, 빗속에서 우는 장면이 나왔는데, 수사관이나 법의관들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적어도 미해결 죽음이 절반이상은 줄어들 수 있을 테니까요. 
드러난 사인, 그리고 진범의 배후
"사인은 비구폐색성 질식사, 사망종류는 명백한 타살입니다". 서윤형의 사체에서 미세섬유(실오라기) 증거물을 찾은 윤지훈, 그러나 범인이 자수를 했다는 소식에 수사는 미궁으로 빠져 버립니다. 질식사에 의한 타살이 분명한데, 서윤형을 죽였다고 자백한 코디는 음료수에 청산가리를 탔다고 자백하고 나섰기에, 윤지훈은 범인의 자백을 믿지 못합니다. 더구나 혈액 감식결과로 나온 미미한 양의 청산가리로는, 건강한 20대의 남자를 죽일만큼의 치사량이 되지도 못했고요. 
사체부검 과정에서의 단독행동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윤지훈은 이명한(전광렬)의 수사결과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섭니다. 이명한은 서윤형이 과거 폐결핵을 앓았기에, 미미한 양의 청산가리였지만 치명적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지요. 이에 윤지훈은 서윤형의 폐는 건강했다며, 다시 사체부검을 해서 폐질환이 없었음을 증명하겠다고 맞섰지요.
이미 화장했을 거라는 이명한을 당황시킨 인물은 정병도 원장(송재호)이었습니다. 정병도 원장이 국과수원장으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체 재부검을 요청하고, 징계위원회가 부검을 허락하면서 윤지훈과 이명한의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체 재부검에서 건강한 폐였음이 밝혀진다고 해도, 윤지훈이 이기는 싸움일 수는 없겠죠. 파란쿠션과 살해현장을 담은 CCTV는 소각되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이제부터 파헤쳐야 할 것은 '왜 죽였으며, 무엇때문에 권력이 동원되어 은폐시키려고 하는 것이냐' 겠지요. 사라진 CCTV 테잎을 감춘 인물이 고다경의 선배 전 국과수 감식반 정년퇴직자였음이 밝혀지는 순간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서윤형의 의문사를 쫓는 형사 최이한(정겨운)은 살해범이라고 자수한 코디 이수정의 엄마 계좌에 10억이 이체된 사실을 알아내고, 그 증거를 정우진 검사에게 전해줍니다. 권력과 손을 잡고 검사의 직권을 남용, 국과수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이명한을 도운 정우진 검사(엄지원)는 부장검사를 만나 그 배후를 묻는데, 차기대통령후보 강준혁 의원이 딸 강소현이라고 합니다. 진범을 알려줬으니 알아서 하라고, 한마디로 "거대권력과 맞장 뜰 자신이 있으면 해보라"고 하지요. 검사의 양심과 권력의 시녀, 그리고 자신의 야망 앞에서 고민하는 정우진 검사, 과연 그녀의 칼이 누구를 겨냥하게 될지 주사위가 던져졌습니다. 부장검사 이응수의 대사는 이 드라마가 싸워야 하는 대상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성역은 없다. 강준혁 의원이 판사로 재직할 때 늘 입버릇처럼 외쳐왔던 말이지. 거짓말이야. 성역은 늘 있어왔고, 절대로 허물어지지 않아. 칼자루는 자네가 쥐고 있어. 하지만 그 칼 잘못 휘둘렀다가는 자네 팔이 잘려나갈 수가 있어". 
사진 속의 묘령의 여인이 강준혁 의원의 딸 강소현이었고, 파란쿠션의 주인공이었지요. 국과수와 검찰, 경찰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며 윤지훈을 무릎꿇게 만든 실체는 바로 권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습니다. 윤지훈이 싸워야 할 상대가 이명한의 뒤에 있는 더 무서운 권력이기에, 그의 싸움은 힘겨울 수 밖에 없습니다. 
권력이 진실이 되고 승자가 된다고 믿는 이명한, 국과수의 모토처럼 "우리는 오직 과학적인 진실만을 추구한다"며, 진실의 힘으로 맞서는 윤지훈 법의관, 불꽃처럼 강렬하게 쏘아져 나오는 전광렬과 박신양의 카리스마 대결이 흥미로웠던 싸인 2회였습니다.
죽은 자가 남긴 진실, 전광렬과 박신양의 게임이 시작되다
연기력만으로도 부실한 내용이 보강되는 드라마가 많은데, 스토리와 출연진의 연기까지 만족스러운 싸인입니다. 여전히 연기에 힘이 들어가 있는 정우진 역의 엄지원은, 캐릭터 연구에 더 신경을 썼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사보다는 생활주임 선생님, 혹은 여군 조교같은 모습은 표정과 목소리에 힘만 들어가 있고, 대사전달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발음은 정확한데 뜻이 전달이 되지 않으니 붕떠있는 느낌마저 드네요.

전광렬, 박신양 두 연기자의 연기대결을 보는 것으로도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싸인, 이번 회는 전광렬의 비열 카리스마가 돋보였던 회였습니다. 징계위원회에서 사체부검을 허락한다는 위원장의 말에, 똥씹는 표정을 지으며 넥타이를 잡아 세우는 모습은, 섬뜩스러운 광기마저 나오더군요. 단순히 눈을 부라리는 것이 아닌 얼굴근육과 이목구비를 한꺼번에 이용해서, 표나지 않게 낭패감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널 밟아 버리겠다"는 듯한 비열한 감정선이 모두 읽혀졌던 장면입니다. 입술과 콧구멍까지도 연기를 했다고 말하고 싶더군요. 
특히 차갑기도 하면서 비열하기도 하고, 잔인해 보이기도 했던 전광렬의 눈빛은 가히 일품연기였습니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서인숙이나 한승재에게 쏘아보던 눈빛과는 또 달랐습니다. 그 때의 눈빛과 표정에는 분노와 연민, 그리고 "날 가지고 한 번 놀아봐라"는 식의 숨겨진 여유까지 느껴졌는데, 드라마 분위기와 상황이 달라서 다르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표정인데도 전혀 다른 감정으로 와닿더군요. 당혹감과 동시에 정복욕구같은 것이 더 강하게 느껴졌거든요. 
박신양이 연기하는 윤지훈은 사체부검의 목적은 진실을 듣는 것에 있습니다. 옳은 것은 옳은 것, 틀린 것은 틀린 것일 뿐입니다. 다혈질에 맹목적이고, 흔히 예술가들에게 보여지는 예민한 성격의 인물로 감정적인 성향을 보이지요. 김아중이 연기하는 고다경의 캐릭터도 비슷한 캐릭터입니다. 
반면 전광렬이 연기하는 이명한은 권력추구형 인간이기에 감정을 드러내게 표출하는 것보다는 절제하는 캐릭터입니다. 심리전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인물이지요.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박신양과는 대조적이지요. 정우진 검사도 이명한과 같은 부류의 인물같아 보이더군요. 자신이 하는 일만을 보는 인물과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인물의 차이라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박신양과 전광렬의 캐릭터는 카리스마를 뿜는 것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색깔을 보여주지요. 가히 드라마를 끌고가는 연기내공 고수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연기력입니다. 
한 아이돌 스타가수의 죽음을 통해 권력이 가진 거짓들을 파헤쳐 가는 스토리로 넘어가는 드라마 싸인, 이 드라마는 메디컬 수사드라마 장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불의와 정의, 휴머니즘의 이야기가 더 짙게 깔려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죽은 자의 몸에 남겨진 싸인, 그것이 말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치부와 죄악의 흔적, 진실을 들어주는 망자의 마지막 친구들(법의관)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처음으로 싸인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망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봉합을 하기도 전에 증거물로 치부되어 압수되는 사체, 정병도 원장의 말이 뇌리에 오래도록 남더군요. "여기는 신성한 검시실이다. 마지막 망자의 유언을 듣는 곳이다. 피해자의 시신 앞에서 무례함은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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