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조인성'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3.04.04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의미있는 해피엔딩 설명한 두 장의 그림 (11)
  2. 2013.03.29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김태우의 죽음, 마음 짠하게 만든 꽃다발 (14)
  3. 2013.03.28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 무죄, 그러나 송혜교는 유죄인 이유 (6)
  4. 2013.03.22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의 복수, 이별의 웨딩드레스 (16)
  5. 2013.03.14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조인성 눈물, 그 겨울 바람을 말하다 (9)
2013.04.04 10:34




"사기꾼 오수의 어릴 적 꿈이 뭐였어?", 오수가 가짜라는 것을 안 후 별장에서 오영이 물었었죠. "목수, 농부, 어부, 엔지니어... 사기꾼이, 겜블러가 아닌 모든 것"이라고 오수는 대답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수는 진짜 꿈을 말하지 않았죠. 오수의 꿈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엔딩에서 오수가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줬습니다. 김규태 감독의 영상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참 섬세하더군요. 김감독은 오영의 시력회복에 대해서도 뿌옇게 처리한 벚꽃으로 오영의 시력의 정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오영이 100% 시력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뿌옇게 처리한 화면이었죠.  

화사한 벚꽃엔딩으로 긴 겨울을 끝낸 오영과 오수, 그들의 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겨울에 불었던 바람은 닫힌 마음을 연 사랑의 바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왕비서는 오영의 곁으로 돌아왔고, 영의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도박장에서 오수는 게임에서 이겨 김사장의 빚을 갚았고,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김사장의 협박으로 진성이 오수를 칼로 찔렀지만, 두 번째 찌르려다 칼을 놓아버리고 목놓아 우는 진성,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아 오수는 살았고, 모두가 해피엔딩이었습니다. 게임을 끝내고 나온 오수가, 병원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진성의 칼을 맞은 연출은 참 생뚱맞았지만;;  

 

조무철의 죽음이 아쉽고, 그가 뒷골목 동생들을 어떻게 지키다 갔는지, 오수와 진성이 아는지 모르는지 그 점이 아쉽기는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조무철만이 자기를 이해해주고 떠난듯 해서 말이죠ㅠㅠ. 김태우의 강한 여운이 남는 연기, 정말 좋았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김사장 똘마니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했던 것은, 작가의 조무철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마지막 애도 내지는 애정의 표시라고 보고 싶더군요.

김사장 똘마니의 팔을 망가뜨려 그 바닥에서 살지못할 거라면서, "얘야, 집에 가!"라고 나즈막히 내뱉는 조무철, 그의 후회가 들어있는 말이었습니다. 집에 가라는 말, 이보다 강한 메시지가 있을까 싶습니다. 밑바닥 주먹인생, 그들에게 집에 가라는 말은 사람답게 살라는 말보다 강한 여운을 남기더군요.  

 

왕비서(배종옥)와 오영의 화해, 조무철만큼이나 애정을 가지고 봐왔던 캐릭터였기에 그녀가 오영에게 하는 드라마 속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궁금했었습니다. "영이야, 분명히 말해둘게 있어, 너는 혼자 살 수 없어.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린 누구도 혼사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내가 네가 있어서 지금까지 산 것처럼... 수술 후 네가 눈을 다시 못떠도 눈이 안보이더라도, 눈이 안보이는 것 때문에 더는 마음 아프지 않길 바란다".

영이를 안고 "그래도 미안해, 많이 미안해" 사과하는 왕비서, 그녀는 여전히 영이의 엄마였습니다. 영이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언제나 자식을 위해 달려와주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어갈 수 있는, 무엇보다 영이를 너무도 사랑하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영의 눈을 망가뜨려 20년 넘게 암흑속에서 살게 한 죄가 씻어지지는 않겠지만, 왕비서가 영에게 꼭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진심으로 사과하더군요.  

 

엔딩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성(김범)과 희선(정은지)의 수에 대한 대화가 좀 찜찜했을 듯해서 말이죠. "내일 수한테 가는 날인 거 알지? 이번에 수한테 갈때 무슨 꽃 가져갈까? 지난 번에 안개꽃 가져 갔었는데...", 수 이야기가 나오자 진성의 표정이 우울해서 마치 오수가 죽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죠. "영이 닮은 렘즈이어".

짧게 대답하는 진성의 표정과 꽃이야기가 오수를 추억하러 가는 것마냥 들렸지만, 바로 이전에 자전거를 타고 오영을 스쳐지나가는 장면으로 오수가 살아있음을 미리 보여 주었지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귀에 익숙한 소리에 오영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 사람이 오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죠.  

오수가 일하는(주인인가?) 레스토랑에서 차를 마시며 렘즈이어를 만지는 오영, 그 렘즈이어는 희선과 진성이 가져다 준 것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오수가 그리다만 나무에 꽃이 피어있는 그림이 완성되어 걸려있었죠. 고로 희선과 진성의 대화는 오수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진성의 표정에 보였던 무거움은 오수를 칼로 찌른 것에 대한 미안함을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이죠.  

 

자살기도를 하고 오영은 오수가 남긴 비디오 테입을 봤지요. "사람이 사람한테 해줄게 참없다는게 마음이 아프다"는 오수의 울먹이는 목소리, 오영은 오수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확인합니다.

"널 만나 처음으로 세상이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내 인생도 처음으로 서운하지 않았어, 너 때문에... 만약 이게 끝이 아니면 언젠가 한 번은 꼭 보자. 그 땐 너한테 말하지 못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 니 첫인상부터 널 사랑한게 언제부터였는지, 니가 얼마나 이뻤는지, 그리고 말로 다하지 못하 내 죄책감도... 그리고 니 진짜 오빠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또...", 영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 오수, 눈물이 앞을 가려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수였지요.

오수의 말을 들으며 눈물흘리며 미소짓는 오영, 그녀는 행복합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그 사랑에는 사기도 돈도 없었다는 오수의 진심을 확인했기에 다친 상처가 다 치유되는 오영입니다. 

 

온실에서 돌아온 오영은 오수에게 진심을 고백하죠. 듣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오수를 꼭 다시 만나겠다는 그녀의 마음이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오수를 다시 못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오영, 그녀의 진심을 고백했죠. 지금이 아니면 혹이라도 영영 말하지 못하게 될까봐...

"나는 지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니가 가고 나는 너를 볼 수가 없는데 니가 보고 싶은게 참 힘이 들더라. 나 역시 너처럼 너를 보낼때 끝이 아니었나봐. 끝내려는 그 순간에도 니가 달려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한테 있었던 것 같아. 손목을 그을때도 두려움보다는 니가 내 방문을 열지는 않을까 기대했어, 마치 단 한번도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사랑해, 많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을 훌쩍 넘기고 봄을 맞이했습니다. 오영 앞에 나타나지 않는 오수, 왜였을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도 오수는 종적을 감추고 있었지요.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 오수가 일하는 레스토랑과 두 장의 그림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수는 오영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고 싶었던 듯 합니다. 오영의 자살기도 후 감자수프를 끓여주며 오수가 말했죠. 진짜 요리사가 될까보다고요. 셰프가 꿈이었던 죽은 오수, 오수는 오영의 진짜 오빠 오수의 꿈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오수 자신의 꿈도 찾아가기 시작했죠.

첫회 희선이 여자팬티를 식탁에 던지던 날, 희선이 오수의 집 거실 한 귀퉁이에 놓인 미완성된 그림과 물감들을 힐끗보며 오수에게 말했죠. "너 그림 안그려? 그리라는 그림은 안그리고 맨날 기집애들이랑 잠이나 자고". 

"사기꾼 오수의 어릴적 꿈이 뭐였어?", 오수의 꿈은 화가였습니다. 오수의 그림 주제는 자기자신, 나무였습니다. 어릴 적 나무밑에 버려져서, 보육원 주위에 나무가 많아서 나무 수자가 이름이 된 오수, 그러나 오수의 나무는 나뭇잎도 꽃도 없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나무가지만이 날카롭게 가지를 뻗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쓰레기같다는 오수의 인생처럼 말이죠. 오수의 심리가 그대로 투영되었던 삭막한 나무였죠.

그런데 그 그림이 레스토랑에 완성되어 걸려있더군요. 꽃이 만발한 나무로 말이죠. 레스토랑 한켠에 세워진 나무 그림 역시 무성한 잎들과 초록의 잔디가 깔린 그림이었죠. 오수가 버려졌던 겨울의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에 봄이 온 그림이었습니다. 오의 꿈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된 오수의 변화에 대한 연출이었죠. 

 

오수는 오영에게 사기꾼이 아닌 오수로 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오영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말이죠. 요리를 배우고,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그리고 오영을 지켜봐왔습니다. 오영이 가는 복지관 가는 길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이유는 오영을 보기 위해서였겠지요.

 

"많이 기다렸는데, 언제 나한테 말걸어주나...".

"용기가 안났어, 혹이라도 네가 날 보게 되면 내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차가운 겨울, 잎 하나 없는 나무밑에 버려진 오수에게 꽃이 만발하고 잎이 무성한 봄이 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차가운 겨울에 혼자 남겨진 오영에게 벚꽃처럼 화사한 봄이 왔습니다. 레스토랑에 놓인 오수의 그림과 오영이 보게 된 찬란한 벚꽃은 오수와 오영의 지독한 겨울이 끝났음을 영상으로 보여준 미학이었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쓰레기같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 남자와, 살고 싶은 이유가 없어서 죽고 싶은 여자가 만났다', 삶의 이유가,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 마음이 겨울이었던 두 사람의 긴 겨울은 이렇게 봄꽃 화사한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오영과 왕비서의 대화가 전 마지막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더군요.

"우린 누구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서툰 방식으로라도 날 사랑하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렇게 외롭진 않았을텐데".

 

첫회 오수의 나레이션을 통해 노희경 작가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전달했지요. "사람들은 모두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럼 나도 이 더러운 시궁창같은 삶에서 의미를 한 번 찾아봐? 세상에 태어나 믿을 거라고는 나밖에 없다고 평생을 살아온 내게도 찬란히 눈부신 햇살이라도 비추나? 그러면 내 인생이 뭐가 바뀌나? 그럼 어디 한 번 해볼까?".

오영을 만나 삶의 이유를 찾았던 오수는 요리를 배우고 그림을 다시 시작했고, 죽고 싶어했던 영은 살고 싶은 의지로 수술을 받고 복지관 봉사활동에 열심입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이유를 찾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 오수와 오영입니다.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오수, 아무도 믿지못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오영, 서로를 사랑하면서 변화된 것은, 그들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수가 말했죠. 세상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이 오영이라고, 영이 니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두 사람의 재회도 예뻤지만, 자신을 사랑하게 된 오수와 오영의 변화가 더 크게 와닿더군요. 오수가 셰프가 되고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것, 그리고 오영이 복지관 일에 열심인 모습이 제게는 가장 의미있는 해피엔딩으로 보이더군요.

두 사람이 우연히 벚꽃아래에서 재회하는 아름다운 영상만으로 끝내도 해피엔딩이었겠지만,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진정한 해피엔딩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오수와 오영의 변화였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이 엔딩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그들이 찾은 삶의 이유와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에요. 오영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재회하는 것만 보여줬다면, 오수는 돈많은 여자를 만난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속된 말로 땡잡은 거죠. 그러나 오수를 1년을 기다리며 오영 앞에 사기꾼, 도박꾼이 아닌, 오수로 만날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오영도 큰 변화가 있었지요. 아무도 믿지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오영이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돈많은 시각장애인 상속자가 아닌...

 

내 마음이 겨울이면 주변도 다 겨울이고, 세상은 외롭고 고독한 곳일 뿐이죠. 삭막한 나무가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하게 변했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상이 벚꽃으로 화사해졌듯이, 오수와 오영은 자신들 스스로를 춥게 만들었던 겨울을 끝내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이었던 마음이 봄이 된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다 저마다의 삶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지만, 삶은 삶 자체로 이유이고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을 빗대어 쓰레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오수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영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야말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진짜 해피엔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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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9 10:16




설마했는데 드라마속 현실이 되었고, 오영의 손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는 실망을 금하지 못하겠더군요. 가슴 졸이며 오영이 주변과 이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게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위한 것만은 아니기를 바랐습니다.

원작에서도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영의 자살시도는 딱히 공감이 가지않아 더더구나 비현실적인 비주얼 드라마의 비현실성만 각인시켜줬군요. 오영의 상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영의 자살시도는 감성적 사치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오영에 비하면 김사장의 똘마니에게 칼을 맞은 조무철(김태우)의 죽음이 더 아프고 애절합니다. 오영의 불쌍함은 드라마 스토리의 정서가 우리랑 맞지 않아 큰 설득력을 얻기는 부족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조무철의 죽음을 보면서 오영은 배부른 사치같아 영 뒷맛이 씁쓸하군요. 물론 오영이 죽지는 않겠지만 자살을 시도했다는 설정은 신파적 작위성이 너무 보여서 보기 껄끄럼하더군요. 

오영은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입니다. 장변호사나 왕비서, 친구 미라와 중태부부, 그리고 나중에 오빠라도 찾아온 오수까지, 그녀는 돈이 많아서였든, 시각장애인이라는 동정심이 되었든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죠. 그 사랑에 의심하고 믿지 못했던 것은 오영이었고, 물론 앞을 보지 못하는 오영이기에 의심하는 것은 십분이해는 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상처 안에 스스로를 감금시키고 스스로 불행속에서 살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왕비서가 붙박이 가구처럼 오영을 가뒀던 것이 아니라, 문제는 오영에게 있었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더군요.

 

왕비서와 오수를 내보내고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에 흐느끼는 오영, 오수와 함깨 했던 행복했던 기억들은 그녀를 더 외롭고 힘들게 만들죠. 쏟아버린 렘즈이어가 다시 심어져 있는 온실, 오수의 냄새가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 집입니다. 그가 없다는 것을 더 힘들게 만드는 오수의 흔적들이죠. 

수술을 앞두고 집에서 모든 사람들을 내보낸 오영은 욕조에서 자살기도를 합니다. 늘 죽고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영, 그것은 살고싶다는 절규였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떠나버리고 혼자남은 집에서 오영은 정말로 죽음을 실행에 옮깁니다.

오수와 왕비서를 그토록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면 죽을 힘으로 살아서 사랑을 할 것이지 왜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느냐고!! (오영의 경우은 뇌종양 재발이라는 악재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삶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란다, 오수의 말대로 사는데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야지...!) 

그런 오영을 질책하듯 흐르는 오수의 나레이션, "나는 영이에게 그말만은 해야 했다. 잘못했다, 사랑한다. 우린 끝이 아니다. 다시 또 만나자. 우연히라도 널 한번은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모든 말들은 변명같아 하지 못했어도 나는 영이에게 그 말만은 해야 했다. 상처뿐인 세상에서 인생 별거 아니라고, 그냥 살아지면 살아지는게 인생이라고 생각한 나에게, 그래도 영이 너는 내가 인간답게 살아볼 마지막 이유였는데, 나도 너에게 그럴 수는 없느냐고, 허무한 세상 니가 살아갈 마지막 이유가 나일 수는 정말 없는 거냐고...". 

오영이 왜 자살을 시도했을까? 오영의 진심은 오수가 떠나지 않기를, 나가라고 해도 왕비서가 끝까지 남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영의 말을 너무도 잘들었던 오수와 왕비서인듯 하군요;;

오영에게 안좋은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미친듯 달려가는 오수, 그의 독백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크게 마음을 움직이더군요. "네가 살아갈 마지막 이유가 나일 수는 없는 거냐?", 살아갈 마지막 이유가 되고 싶다는 오수의 고백이 오영에게도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겨울 리뷰를 쓰면서 초지일관 오영이 살 것이라는 것으로 일관했는데요, 드라마속 오영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죽을 이유를 찾지말고 살 이유를 찾으라고, 세상은 살 이유들이 너무나 많다고... 누군가(오수, 왕비서)에게 살 이유인 오영, 세상에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움을 받는 사람들도 많은데, 누군가의 살아가는 이유인 너는 백 배 천 배 행복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를 물어본다면, 십중팔구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부모에게 버려진 상처나 사랑에 실패한 상처, 엘리베이터에 갇힌 폐소공포증, 혹은 사업에 실패해 거리로 나앉은 일 등등 개개인의 상황에 따른 트라우마를 가지기는 합니다만, 죽음이라는 것은 겪어봤거나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누구에게나 공포, 혹은 가장 큰 두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앞둔 조무철, 폼나게 죽겠다고 병원치료도 거부한 그이지만 그가 칼에 찔리는 순간은 두려웠을 겁니다. 죽음을 마주하는 두려움. 

폐암말기로 살 가능성이 없는 조무철,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인물이죠. 그렇다고 먼저 죽음을 앞당기려 하지도 않았죠. 사는데까지는 아둥바둥 그의 시간들을 채우고 있었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삶에 대해 조무철은 스스로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도 이해해야지, 안그러면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희선에게 했던 말들이 왜 그렇게 공감이 되는지...

쓸쓸하게 웃는 미소는 김태우라는 배우에게서 보여지는 저력, 나 연기 죽을 둥 살 둥으로 하고 있다는 안간힘이 없어도, 시청자의 감정을 한순간에 빨아들입니다. '아,,,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구나, 미련한게 아니라 네 앞의 현실이 널 너무나 고단하게 했겠구나불쌍하다, 조무철...'이라는 감정을 말이죠. 

 

그는 불쌍하거나 동정의 시선을 받아야 할 캐릭터는 사실 아니에요. 청부폭력배, 주먹질로 사는 사람을 고운 시선으로 볼 수는 없으니 말이죠. 그런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대사는 그가 청부업자도, 주먹질을 하는 깡패도 아닌, 지독한 가난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만든 가련한 인간일 뿐임을 설득시켜 버립니다.

나이 열여섯에 여덟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소년가장,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여덟식구의 삶'이라는 무게가 그의 지난 행적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죠. 조무철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조무철같은 삶을 살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김태우의 감성적 설득력을 가진 연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청부폭력배 조무철에게도 동정이나 연민을 가지게 만듭니다. 

폐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조무철이 마지막에 한 일은 더더구나 조무철이라는 캐릭터에 애정을 갖게 만들죠. 조폭에게도 의리가 있고, 눈물겹게 그리운 가족이 있고,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우리네와 똑같은 정서를 가진,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것에, 그의 무거운 인생과 상처에 동질감을 가지게 합니다.

김사장의 손에서 오수와 진성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 그게 조무철이 주먹으로 함께 그 바닥을 누볐뎐 동생들, 같은 동네에 살았던 동생같은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의리였습니다. 아무도 몰라주지 않아서 슬픈 지킴이 형...

 

엄마 국밥 생각나서 진성부모네 가게에서 국밥을 먹고 가면서도 시골의 부모님께는 차마 인사를 하러가지 못하는 아들, 곧 죽을 아들의 모습을 부모에게 기억하게 하지않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였습니다.

오수에게 자동차 키를 주면서 무철은 오수와도 마지막 인사를 하죠. "보기 좋았다, 니가 하는 사랑이... 정말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있는지 알고 싶었는데 정말 사랑이 있네. 너랑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오수와 조무철은 너무도 닮아있었습니다. 희주를 보내고 그들의 삶은 함께 무너졌습니다. 웃는 모습이 예뻤던 희주, 고단한 소년가장의 삶도 희주의 웃음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 위안이었는데 그 위안이 없어져 버렸던 무철, 갓난아이때 버려져서 아무도 곁에 없었던 오수에게 부모님도 대학도 포기하고 왔던 희주를 잃은 오수였죠.

그런 오수가 가짜동생을 만나 진짜 사랑을 하는 모습을 보며 무철은 위안을 받습니다. 희주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삶을 망가뜨리며 사는 오수를 무철은 늘 안쓰럽게 생각해왔습니다. 오수에게 험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어쩌면 오수만은 정신차리고 살라고 양아치처럼 사는 것을 막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죽은 희주를 위해 무철이 해줄 수 있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고요.  

"보기 좋았다, 니가 하는 사랑이...", 희주를 사랑한다며 처음 오수가 무철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도, 영이를 살려달라고 두번째 무릎을 꿇었을 때도 무철은 오수의 사랑에 손을 들어줬지요. 무철은 하지 못하는 일, 사랑때문에 자기를 버리는 오수가 좋았던 무철입니다. 쉽게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는데, 어렵게 사랑을 지키는 오수를 보며 무철은 진짜 사랑이 있었다고 말하죠.

 

오수가 떠나고 허망하게 김사장 부하에게 칼을 맞은 조무철, 그 순간에 보여진 김태우의 표정연기는 조인성의 압도적인 비주얼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만든 만든 명연기였습니다. 허탈하고 아쉽고 억울하고, 그러면서도 올 게 왔다는 편안함마저 보여주는 시시각각 흔들리는 눈빛은 그의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져지는 듯한 착시현상까지 불러일으키더군요.  

이그러진 김태우의 이마의 주름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칼에 찔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뒷골목 삶, 희주를 잃은 후 희망을 놓아버리고 살아온 그의 삶의 여정이 통째로 읽혀지는 듯한 고통이 뚝뚝 흘러내리는 듯합니다. 김태우의 일그러진 표정에 조무철이라는 인물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나오더군요.

얼마남지 않은 시간, 조무철의 주변정리는 자신을 위한 것은 없었지요. 재산도 두루두루 동생들을 위해 나눠주려는 듯하고, 오수와 진성 그리고 희선이가 김사장 손에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무철이었죠.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는 욕을 들어가면서도 아무도 몰라주는 지킴이가 되었던 조무철, 그는 사랑을 했던 인물이었어요. 가족도 못지키면서 동네형한테 무슨 의리냐고 진성에게 주먹을 날리면서도, 그는 동네 동생들을 그렇게 사랑으로 지켜주고 있었던 게지요.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진짜 사람을 사랑했던 인물은 조무철이 아니었을까?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런데도 정작 자신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너무나 쓸쓸하게 살다 갔다는 것. 

나중에 얘기하자며 급히 차를 몰고 가는 오수를 보는 쓸쓸한 조무철의 눈빛, 그에게 나중이라는 때는 이제 없을텐데... 시한부 삶인 조무철에게 나중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고 헛헛한 메아리였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더군요.

희선의 꽃집에서 하얀 봄꽃을 사서 향기를 맡아 보는 조무철, 왜 하필 흰색 후레지아였을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는 자신을 자기라도 이해해주고 싶다는 조무철, 흰 꽃다발자신에게 주는 조화(弔花)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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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8 11:31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픕니다. 오수(조인성)와 왕비서(배종옥)가 떠난 자리를 느껴가는 오영(송혜교), 혼자라는 외로움과는 다른 쓸쓸함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21년간 싸워왔던 외로움과는 다른 허허로움입니다.

그때는 미움이라도 있었습니다. 엄마와 오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다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미움도, 기다림마저도 가질 수 없는 오영입니다.

 

'봄날은 간다'를 보며 장면을 설명해 주고, 초콜렛을 입에 넣어주며 입 가장자리를 닦아주던 오수는 없습니다. 시금치국을 끓여주고, 보이지 않는 오영을 위해 컵 하나까지, 음식이 놓인 방향을 매일 설명해주던 왕비서도 없습니다. 오영을 외롭게 하는 빈자리는 오영을 지독하게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떠나고 오영은 두 사람의 자리를 더 크게 느낍니다. 20년 넘게 함께 살아 온 왕비서의 부재는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오수의 빈자리는 그를 사랑하는 오영의 그리움입니다. 왕비서가 없는 불편함은 깨진 유리잔에 발을 다치는 소소한 것만은 아닙니다. 미워했던 만큼 사랑했던 왕비서였음을 오영은 그녀가 떠난 후에야 알아갑니다.

장변호사에게 넌즈시 왕비서의 안부를 물어보는 오영, 왕비서의 목소리가 밝고 좋았다는 말이 왠지 서운하게 들립니다. "다행...이네요", 가늘게 떨리는 오영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서운함, 그리고 왕비서에 대한 그리움(사랑)이었습니다. 오영없이는 하루도 못살거라는 왕비서, 영이 너밖에 없다는 왕비서가 잘 지낸다는 말에 쓸쓸함을 느끼는 오영이었죠. 

 

집을 나온 왕비서(배종옥)가 교차로에서 어디로 향할지 몰라 멍해있는 모습은 앞이 보이지 않는 영이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누구에게 가야할지, 한번도 영이를 떠날 생각을 못했던 왕비서는 패닉에 빠져 허둥대고 있었지요.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왕비서, 빈껍데기가 된 듯한 왕비서가 보여서 마음이 쓰라리더군요.

인생을 다 걸고 사랑했던 영, 그런 영에게 내쳐지고 그녀는 길잃은 아이처럼 세상이 막막해 보입니다. 헛개비처럼 휑한 눈으로 왕비서의 상태를 보여주는 배종옥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지도 않습니다. 바람빠져 버린 풍선처럼, 온몸에서 모든 진액이 다 빠져나가 버린 듯한 넋나간 모습이 왕비서라는 인물의 영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편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식당에서 쓸쓸히 혼자 앉아 음식을 주문하는 왕비서, 그녀 자신보다 영이를 더 사랑했던 왕비서, 그녀의 영에 대한 사랑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엄마였습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아줌마, 눈이 안보여요"했던 날부터 영이는 그녀의 딸이었습니다. 영이의 눈을 망가지게 방치하면서까지 영이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왕비서, 용서하기 힘든 일도 그녀가 "난 엄마니까"라는 말 한마디에 누그러지게 합니다.

엄마라는 단어는 사람을 묘하게 약하게 합니다. 밑도끝도 없이 왕비서를 믿고 싶었던 근저에는 왕비서가 영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는 믿음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을 겁니다. 

 

"나는 눈을 잃고 당신은 당신 인생 전부를 걸고 사랑했던 딸같은 나를 잃고, 계산은 정확해야죠", 곁에만 있게 해달라는 왕비서를 영은 매몰차게 나가라고 하죠. "그럼 떠나야지, 왜? 난 엄마니까... 엄마는... 자식들한테 지는게 엄마니까".

오영의 집을 떠나면서 장변호사에게도 왕비서는 엄마임을 잊지 않습니다. 가끔 영이 소식 알려달라면서도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겠다면 말하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자식 걱정시키는 부모에요".

 

오수 역시 오영을 목숨만큼 사랑하게 되었죠. 사랑따위에 목숨걸지 않았던 오수, 그는 78억대신 오영의 사랑을 가지고 떠납니다. "내가 널 사랑한 건 진심이었다", 자신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아니 진심임을 78억 가방으로 또 고백하고 떠나는 오수였습니다.

"사랑했어. 널 옆에 두고 사랑할 자신은 없지만 니가 날 속인거 무죄야. 넌 살기 위한 방법이었고, 난 행복할 때도 있었으니까". 

오빠라고 속인 오수에게 오영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오영을 사랑해버린 오수, 그 사랑에 형량을 구형할 수는 없습니다. "널 버린 엄마지만 널 한 번이라도 찾아왔던 걸 기억하기 바래. 그리고 이젠 그만 희주씨에 대한 죄책감에서도 벗어나길 바래, 네 자신을 오래 미워했잖아, 스스로도 지칠만큼".

영을 두고 간 엄마와 오빠는 영을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오수를 버린 엄마는 그래도 오수가 어떻게 사는지 찾아라도 봤지만, 영의 엄마는 영이가 아픈데도 찾아오지도 않았죠. 물론 아버지와 왕비서때문에 못 온 이유도 있었겠지만, 마음이 더 다쳐있는 영이 오수를 위로합니다. 오수의 자책감까지도 말이죠.  

 

"사랑했어",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수와 왕비서에게 영이 마지막 한 말입니다. 오수에게 78억을 주고, 왕비서에게는 죄를 묻지않고 내보내는 것이 오영의 용서라고는 보이지 않더군요. 수술을 앞두고 신변정리에 더 가까워보였으니까요. 오수에게 가장 필요한 돈을 주고, 왕비서에게도 그녀가 가진 주식과 횡령한 돈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식으로 두 사람을 내보낸 오영, 그녀가 두 사람을 용서하며 무죄를 내렸지만, 오영은 유죄입니다.

목숨 대신 사랑을 택한 오수, 자신의 인생 대신 영의 손발과 눈이 되어온 왕비서-(오수의 사기의도와 왕비서의 영의 눈에 대한 부분은 두 사람에게 오영의 곁에 머물지 못하게 한 것으로 형벌을 내렸다고 치고)- 오영은 자기 사랑은 방치 내지는 유기를 하려합니다.  

오수와 왕비서를 사랑하면서도 오영은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수가 걸어둔 풍경소리에 벌써부터 오수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보면서도, 왕비서가 잘지낸다는 말에 서운해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오영은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려 하죠. 오수와 왕비서의 사랑에는 무죄를 선고했으면서도 오영은 그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막으려고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오영이야 말로 유죄인 거에요. 이제는 오영이 사랑할 때입니다. 오영이 무죄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왕비서의 사랑을 엄마이고 싶은 그녀의 사랑 자체로 받아들여줘야 하고, 오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닫지말아야 할 오영입니다 

별장에서 잠들어있는 오수의 이마, 코, 입술을 만져보고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기억하려고 했던 오영, 사기꾼 오수로 떠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오영에게 키스를 하고 오영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던 오수처럼 그녀가 이제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외롭고 힘든 오영이었지만,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랑해 준 왕비서, 목숨을 걸고 사랑한 남자가 곁에 있었던 오영, 그런 사랑을 받은 오영이 이제는 사랑을 줘야 할 때가 아닐런지.... 

진정한 용서는 이해가 아니라 사랑이 아닐까요? 사랑을 할 때는 행복합니다. 돈때문에 오빠 행세를 했던 오수였지만, 또 그것때문에 괴로웠지만, 오영을 사랑한 오수는 행복했습니다.  첩질한다며 가족들이 외면했고, 영의 눈을 멀게 방치한 형벌을 매일매일 괴롭게 받으면서도, 영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면서, 뇌종양을 이기고 살아있는 영을 보는 것이 왕비서는 행복했습니다.  

오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영, 오빠가 아니라 돈때문에 온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사랑도 끝내려는 영,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의지해왔지만 그녀를 사랑할 줄은 몰랐던 영, 영은 그래서 행복하지 못합니다.

수술을 하고 살아나고 시력을 되찾는다고 해도 영은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없는 영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일 뿐입니다. 오영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존재이유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영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영이 행복했으면 좋겠군요.

사랑하는 영을 목숨을 걸고, 혹은 인생을 걸고 사랑했던 오수와 왕비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말합니다. 사랑하라고, 사랑은 무죄라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유죄라고...

직 오영 그녀가 유죄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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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2 12:24




"봄 냄새 난다, 지난 겨울은 너무 추웠어", "아니... 난 니가 있어서 별로".

"닌 니가 있어도 바람이 너무 차던데...이 봄도 지난 겨울처럼 추우려나 보다".

별장으로 향하는 차에서 오영은 거짓말로 오수와의 이별을 준비합니다. 사실 오영에게 지난 겨울만큼 따뜻했던 겨울은 없었습니다.

겨울과 함께 찾아온 오빠를 봄과 함께 떠나 보내려는 오영입니다. 오빠로 왔다가 오빠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 오영이 사랑해 버린 남자 오수로 떠나는 남자. 그 남자를 떠나보내면 올 봄은 지난 겨울보다 더 추울 것 같습니다.  

영이는 이제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하려고 합니다. 20년 넘게 자기 곁을 지키며 엄마가 되고자 했던 왕비서를 보내고, 회사회장자리도 내놓으며, 모든 재산은 복지원에 기부한다는 유언장도 새로 작성했지요. 이명호 본부장에게는 문자로 파혼통보를 보냈죠. 오수에게는 78억을 줄 생각입니다. "너 돈 많잖아?",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듯한 희선의 오지랖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사정과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많은데 78억쯤은 줘도 되지 않느냐는 말에 기가 차더군요;; 오수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야 알지만.

 

진소라의 음성메시지를 받은 오영, 오수와 왕비서의 대화를 듣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버리죠.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친오빠가 죽었다는 말에도 슬퍼할 수조차 없는 영, 오수에 대한 사랑이 컸던 만큼 분노도 컸습니다. 더 괴로운 것은 그런 오수를 여전히 사랑하는 오영 자신입니다.  

오수가 들려준 만개의 풍경소리, 함께 음식을 만들고 눈밭을 뒹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보지않겠다며 살고 싶게 만든 오수에 대한 사랑이 오영을 힘들게 합니다.

세상에서 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단 한사람, 그 사람이 78억 때문에 영과 오빠와의 추억을 훔치고 속인 것이 부들부들 떨리고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주었던 따스한 손은 진심이었음을 알기에 더 힘이 드는 영입니다.

 

왕비서에게도 비슷한 감정인 영이죠. 20년 넘게 자기곁을 지켜준 사람, 법정대리인이지만 늘 엄마가 되고 싶어했던 사람, 눈을 멀게 방치하고 치료를 받을 수 없게 했지만, 혹독하게 점자를 가르치고 회사일을 보게 한 여자, 영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와 주는 사람,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아보이지 않으면 한 밤중에 조용히 이마를 짚어보고 한참을 한 숨만 쉬고 나가는 왕비서는 영이 죽도록 증오해 왔으면서도 의지해 온 사람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녀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는 영을 보는내내 착잡하더군요. 왕비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고르게 하고, 왕비서님만 좋다면 괜찮다는 영이었죠. 웨딩드레스는 오빠를 위해 입고 싶었지만, 왕비서를 위해 입어주는 영이었습니다. 사진을 그렇게나 많이 찍으면서도 왕비서와는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던 영은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왕비서에게 보여주죠. 사진도 함께 찍고 말이죠.  

해줄게 이것 밖에 없다는 영, 수술을 하고 눈이 보이게 되면 왕비서가 더는 필요하지 않을테니 갈 데를 알아보라는 말에 왕비서는 영의 손을 빼며 쓸쓸함을 거두지 못하지만, 전 영이 왕비서를 내보낸다기 보다는 수술 가망성이 없을 것을 대비한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오수의 정체와 왕비서의 악행, 서로 침묵하고 있었던 비밀을 알아버린 두 사람이 함께 지내기 또한 쉽지 않겠죠. 어쩌면 영이 할 수 있는 왕비서에 대한 복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녹화테입에 남겨둔 눈치료를 해주지 않은 왕비서의 비밀이기도 하죠. "끝이 아냐. 복수할 거야, 나한테는 오빠가 있어".

왕비서의 손을 잡아주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선물은 영의 진심이었습니다. 영이 곁에 있어준 고마움... 그리고 동시에 갈 곳을 알아보라는 말로 왕비서에게는 가장 잔인한 형벌을 동시에 내린 영이었습니다. 영이가 그녀의 삶의 이유였는데 그것을 빼앗아 버렸으니 말이죠. 

진즉에 왕비서를 영에게서 해방시켜  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필요로 하고, 그게 자신을 더 외롭고 힘들게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영입니다. 결국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는 영, 영의 문제는 홀로 일어설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성장시켜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비서에게서 자립하지 않으면 결혼을 해도 평생 왕비서의 도움을 구할 영일테니까요.

이는 앞이 보이는 문제와는 별개의 정신적 독립의 의미가 큽니다. 영이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의지했기에 서로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왕비서의 해방은 왕비서 역시도 영에게서 벗어나 그녀의 인생을 살라는 말(용서)임과 동시에, 영이 방식의 복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왕비서에게 고마움과 미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영이듯이 말이죠.

 

영이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과 이별하는 방식은 증오를 토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오수에게도 같았죠. 헉헉 거리며 영을 업고 별장을 오르는 오수, 그것은 오수의 행복이기도 했을테니까요. 자기를 속인 것에 대한 분풀이처럼 춥다고 장작을 패게 하고, 배고프다고 세시간이 넘게 산을 내려갔다 오게 하면서 그래도 힘듦을 내색하지 않은 그는, 영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게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을테니까요.  

오수도 오영도 서로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더는 오영을 속이지 않으려는 오수를 고문하듯이 별장에서의 추억을 자꾸 되묻죠.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면서도 말이죠.

 

별장의 추억, 아빠가 장작을 패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엄마를 위해 차를 준비한 일 따위는 없었다고 마지막 가족여행이 돼버린 그날을 말해주는 오영, 오수와 별장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던 것은 그녀의 외로움과 상처, 비극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지만, 오빠 오수가 아닌 오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밀의 방 녹화테입에도 없는 오영의 이야기였으니까 말이죠. 

여행을 간 별장은 마지막 가족여행이며 영이의 비극이 시작된 곳이었지요. 아빠는 장작을 패고, 오빠와 영이는 장작을 모으고, 엄마는 세사람을 보며 미소를 짓고, 비탈길에서 오빠랑 눈썰매도 타고, 어린 영이와 수가 상상했던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먹고 엄마와 다정하게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며 피곤에 지쳐 졸린 눈을 비벼대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 잠드는 오빠와 영, 영이 마음으로 그렸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밤새 엄마와 아빠는 싸웠고, 영과 수는 방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게 마지막 그들의 가족여행이었죠. 이별여행이 돼버린... 그 날 우는 영이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와 오빠는 21년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별장에서의 가족이야기는 오빠가 아닌 오수에게 털어놓은 그녀의 상처였습니다. "그날은 오늘처럼, 아니 요 며칠처럼 아주 끔찍한 날이었을 뿐이야". 

영이는 오수에 대해 물어보죠. 난 이렇게 사실을 말했는데, '너도 이제 너에 대해 털어놔봐', "나무 밑에 버려진 오수는 꿈이 뭐였어? 처음부터 사기꾼이었나? 나무밑에 버려졌을 때부터 죄없는 사람들마저 적으로 삼을 만큼 걔는 태생부터 그냥 쓰레기인거야? 사기꾼 오수 어릴때 꿈이 뭐였어?".

오수도 영이 자신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압니다. 오기전부터 영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오수였지요. "목수, 농부, 어부, 엔지니어... 사기꾼 겜블러가 아닌 모든 것... 처음부터는 아니고 널 만나고부터...".

"내가 내가 널 용서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중에 제일 용서할 수 없는 건, 엄마만큼 그리웠던 오빠의 죽음을 알고도 너에 대한 분노때문에 슬퍼할 수도 없다는 거야, 사기꾼인 널 사랑한 건, 앞 못보는 내 잘못이라고 치자.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니가 밉지만, 앞 못보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 잘 속았어... 그동안...". 

오빠 오수라고 왜 속였는지, 정말 78억을 빼내가려고 했었는지, 아무 변명도 이해도 구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면서 78억 대신 목숨을 내놓기로 했고, 처음으로 무철에게 무릎을 꿇고 수술받게 도와달라고 애원했다는 것도, 수술만 끝나면 빈손으로 나가려고 했다는 것도, 영이에게 추억을 찾아준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고, 행복해 하는 영이 너의 웃음이면 됐었다고, 얼마나 영이가 예쁘고 맑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고, 그것이 전부였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오수였습니다.  

오영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라고 거친 키스로 보여줬을 뿐입니다. "널 사랑하니까" 오수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습니다. 왜 입을 맞췄느냐고 오영이 물었었죠.

거세게 반항하던 영도 결국 오수의 입술을 받아들이죠. 영도 오수를 사랑하니까요. 오수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그런 그를 사랑하는 영이니까요.

 

"이젠 우리 진짜 끝난 거지?...".

이젠 더 이상 오빠 동생일 수 없는 두 사람,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영이 수술을 받을 때까지 오빠로서 최선을 다해 오영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막으려고 했고,  자신의 정체를 떠난 후에 알기를 바랐는데 사랑도 막지 못했고, 오빠노릇도 못하게 된 오수입니다. 

 

"이제 우리 진짜 끝난 거지?...". 

21년만에 처음으로 웃게 해 준 오빠, 살고 싶게 만든 오빠, 그리고 가슴이 뛰고 설레는 사랑을 알게 한 남자와 그곳에서 이별합니다. 그녀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역시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비극이 시작된 별장에서.... 그녀에게 그렇게 아프고 추운 겨울이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오영에게도 봄의 희망이 보일 듯해서 전 꿋꿋하게 해피엔딩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의 실패에도 조박사가 뭔가 희망적인 것을 찾았다는 말에 두 귀 쫑긋입니다^^

더불어 지난 글 오수의 목에 있는 상처가 해피엔딩의 복선이라는 생각 역시 여전히 가지고 있고요. 수술 후 눈을 뜬 영이 오수를 알아볼 결정적인 증거가 오수 목의 상처가 되리라는....

오영과 오수의 겨울이 이제 그만 끝났으면 좋겠군요. 늘 겨울이었던 영, 늘 마음이 시리고 추웠던 영에게 봄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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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 12:11




오수가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왕비서와 장변호사가 오수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게 되는 듯한데, 전 개인적으로 장변호사나 왕비서가 오수에게 아직은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싶습니다. 오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오수이기에 좀 더 오수를 지켜봤으면 싶네요. 

앞으로 오수의 거취문제나 정체가 오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쯤해서 오수의 정체를 오영이 알았으면 싶군요. 오수에게 끌리는 감정이 단순한 오빠에 대한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가는 오영의 심리변화도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말이죠. 송혜교의 연기가 좋아서 여자가 되어가는 감정연기도 보고 싶어지는군요.

 

이젠 오수에게도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는 것이 상관없어졌지요. 오수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살 수 있는 78억이 아니라, 오영을 살리는 것이 되었으니까요. 사랑하니까, 많이... 

"왜 약을 안먹였냐"고 이유를 물어보는 오영에게 오수가 말하죠.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하거나...". 희주의 죽음 이후 오수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에게 여자란 하룻밤 욕정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진소라의 사랑도 집착일 뿐이라고, 선을 긋습니다.

"사랑은 의리가 아니야. 니가 나한테 하는 것은 집착. 사랑은 아주 간단해, 상대가 끝났다고 하면 끝나는 것, 싫다는 사람에게 같이 사랑하자고 하는 건 집착. 사랑은 거래가 아니어서 배신이 없어.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거니까 생색도 안통하고, 자랑도 안통해. 우긴다고 집착이 사랑이 되지는 않아".

노희경 작가 특유의 문체가 살아있는 대사였습니다. 간단명료하고 냉정할 정도로 솔직한,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듭니다. 상대가 끝났다고 하면 끝나는 것! 상대는 끝냈는데 인간인지라 무자르듯 끊을 수 없는 감정이기에 집착으로 변하고, 상대도 본인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진소라가 영이가 목숨을 걸만큼 좋냐고 묻자 오수가 말하죠. "모든 인간은 딱 한 번 죽는다는 말을 기억하려고 해. 그렇다면 지금이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잠시 이 대사에서 혼란이 왔지만(조인성의 대사 끊는 지점이 모호해서 이해하는데 애먹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딱 한 번/죽는다는 말을 기억하려고 해"로 대사를 쳤는데, 그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전 "모든 인간은 딱 한 번 죽는다는 말을/기억하려고 해"로 풀었습니다. 그렇죠, 인간에게 죽음은 딱 한 번 뿐이죠.

 

희주의 죽음 이후 사랑따윈 없다고 생각했던 오수의 삭막한 겨울에 분 바람,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닫힌 마음을 사랑으로 연 오수입니다. 그 바람은 시궁창같은 곳에 쳐박혀도, 무철의 칼에 찔려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버둥쳤던 오수를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는 이유같은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오수,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던 오수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물론 죽고 싶을 때는 많았던 오수였지요. 그런데 진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처음입니다. 죽어도 좋겠다면 지금, 오영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어느새 가슴 한가득 꽃으로 피어나 버린 그녀를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도 좋겠다는 오수입니다. 

그런 오수이기에 무철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하지요. 무철의 누나에게 오영을 수술하게 도와달라고 말이죠. "살려주라, 형. 내일도 올게. 모레도 또 올게. 내가 형 손에 죽으면 되잖아. 영이는 살리자, 죄없는 애는 살리자. 희주처럼은 만들지 말자", 무철에게 발로 채이고 주먹으로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오수는 영이만은 살리자고 눈물로 애원합니다.

돌아서서 가는 무철의 작은 흔들림은 그의 마음이 움직였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희주를 짝사랑했던 무철의 사랑도 지금의 오수처럼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었던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오수의 겨울에 분 바람이 목숨을 내놓아도 좋을 사랑이었다면, 오영의 겨울에 분 바람은 살고 싶다는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오영의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그래서 그 삶에 대한 의지가,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절박해서, 오히려 죽고 싶어하는 오영의 진심을 말이죠.

안괜찮아도 된다며, 팬션에서 영이 했던 말로 위로받았던 오수가 영을 위로하지요. "안괜찮아도 되니까 울래?". 영이 그랬던 것처럼 오수가 영을 위로해 주지요. 영은 괜찮지 않았습니다. 뇌종양이 재발되었다고 막상 의사가 말했다고 하니까 무섭고 두렵고 슬픈 영이었지요. 영의 눈물은 살고 싶은 영의 마음이 흘러내렸던 거였지요. 

오영을 살리기 위해, 살고 싶다는 말을 뱉을 때까지 오수는 오영에게 차갑게 대합니다. "참 재수없다, 너! 내가 너보다 나은게 딱 하나있어. 난 그 어떤 순간에도 살고 싶어한다는 거야".

"넌 살고 싶으면 살아지지만, 난 살고 싶어해도 살 수 없어. 여섯살때부터 준비한 거야. 언젠가 때가 오면 지금처럼 웃으면서 가야지. 구차하게 연연해 말아야지. 너랑 있는 이 순간도 너무 좋고 따뜻해도 연연해 말아야지. 그러니까 날 흔들지마. 기대하게 하지마!".

뇌종양이 재발되었다는 말에- 물론 오영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오영은 담당의사를 찾아가 물어보죠.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는 거냐고 말이죠. 그의 가족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 해도 수술을 받게 할 거라고 말했던 의사는 오영의 물음에 답하기를 주저합니다. 수술이 성공해도 또다시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산다는 확신을 해주지 못하지요.

 

한가닥 희망을 찾고 싶었던 오영은 삶의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려 합니다.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오영, 그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은, 살고 싶다는 생각을 여섯살 이후 처음 들게 한 오수에게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왕비서에게 결혼하겠다며 우는 영, 수술을 받지 않으려는 영에게 처음으로 손찌검을 한 왕비서, 두 사람이 21년간을 지내온 세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왕비서에게 영은 삶의 이유였고,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영이 필요로 하는 사람, 그녀를 영이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그녀에게는 사형선고와도 다름없는 순간일 겁니다. 아직 왕비서가 영의 눈을 제때 치료하지 않은 이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줌마"하며 영이 고사리같은 손을 내밀었던 그날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영이가 크면 언젠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가 올것이고, 영의 아버지 회장님이 죽으면 왕비서는 영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어질테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영에게는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왕비서는 그런 영을 보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명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을 보란듯이 키우고 싶었습니다. 첩살이한다고 형제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PL그룹의 내연녀라는 딱지는 그녀를 영의 집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했습니다. 영이 정상인처럼 회사일을 보고 PL그룹을 이끌어 나가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었고, 영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었고, 그녀가 사는 이유였습니다. 

첩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모욕도 감수했던 왕비서였지만, 죽은 회장은 왕비서를 끝내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랑도 하지 않았죠. 생각해보면 왕비서도 불쌍한 여자입니다. 영을 수술시키기 위해,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영을 빰을 때리기 까지 한 왕비서, 영이가 살아야 자신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에게 올인한 그녀의 인생, 영이가 없으면 그녀의 삶은 죽음과도 같은 사막이 될 거라는 걸 왕비서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영이 없이는 못산다고 한박사와 전화통화를 하던 왕비서의 마음은 거짓이 아닌 듯 보이더군요. 왕비서의 영에 대한 사랑은 거짓이 아니지만, 영에게 필요한 사람이 자신뿐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아직 왕비서는 알지못하고 있을 뿐이죠.

영이도 왕비서의 그 마음을 알고 있었지요. 알면서도, 왕비서가 없으면 영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왕비서를 숨막혀 하면서도 서로를 이용하고 의지합니다. 전 이 두사람의 관계에 이상하게도 연민을 느낍니다. 으르렁대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습으로 보여서 말이에요. 

 

왕비서의 손찌검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던 영, 오수의 차가움에 무너지고 말지요. 영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오랜 바람을 말입니다. 여섯살때 뇌종양을 앓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영은 어린 나이에 받고 싶었던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반항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타난 오빠, 영의 언 마음을 녹여주고, 보이지 않는 영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 오빠가 차갑게 영의 손을 뿌리칩니다. 그리고 영이 죽기보다 듣기 싫은 말, 영에게 가장 두려운 말을 뱉지요. "나 이제 떠날려고".

"왜 왔어? 처음부터 이럴려고 왔어?".  

혼자 남겨지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영에게 오수가 말하죠.
내가 너에게 원하는 건, "살고 싶다는 말, 살아야 겠다는 의지".

 

어떻게든 영을 수술시키고 싶은 오수는 영이 수술을 받지않으면 떠나겠다고 이를 악물고 영에게 차갑게 대하지요. 영의 비밀의 방에서 알아버린 혼자 남겨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늘 외로웠던 아이 영을 알고 있기에 말이지요. 그런 오수의 가슴에 오영의 말이 심장을 할큅니다.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 난 살 수도 없는데, 니가 보고 싶지 않냐고? 보고 싶어, 니가 오고부터 매일 네가 그리워. 그럼 뭐해? 난 볼 수도 없는데...나도 무서워 죽는게.... 왜 날 이렇게 약하게 만들어 넌! 왜 자꾸 날 살고 싶게 만들어, 넌!!".

 

오영의 차가운 겨울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속에 자라고 있는 뇌종양을 살 수 없을 거라 말합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떠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런데도...그런데도 오빠가 떠나는 것이 더 두려운 오영입니다. 살고 싶다고 말하면 그가, 오빠가 떠나지 않을까요? 진짜 살고 싶습니다. 간절하게...

사랑을 버린 남자에게 사랑의 바람이, 죽고 싶은 여자에게 살고 싶은 마음이 불고 있습니다. 노희경 작가가 그들의 겨울을 어떤 바람으로 따뜻하게 녹일지 궁금해지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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