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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0 '천일의 약속' 수애의 사랑과 모성애, 고상한 치매의 비호감? (14)
2011.12.20 08:25




드라마 결말에 이르러서는 비호감 주인공이나 조연들도 호감으로 돌아서고 상처들도 봉합의 과정을 거치는데, 천일의 약속 여주인공 수애는 마지막까지 민폐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하는 것은 김수현 작가의 실수가 아닐까 싶네요. 수애의 모성애와 사랑(?)은 치매환자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게 합니다.
자신이 치매라는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똑똑한 서연은 여전히 시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읊어대는 고상한 치매환자입니다.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문학적 과시욕은 아닌가, 혹은 메말라 가는 현대인들에게 시 하나는 읊고 외우고 살라는 작가의 진심어린 충고인지, 그 진심을 읽기가 힘들군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하필 치매환자가 매회 한 두편씩은 읊어내는 시구절은 서연이 치매환자가 맞기는 하나 싶게 만듭니다. 치매환자이니 젖은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눕고, 카레를 부어 손으로 밥을 집어 먹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똥오줌 못가리는 치매환자의 실상을 그런 식으로 묘사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게 똥오줌이라고 생각하면 말못할 수치이며 비극이고,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슬픔을 떠나 힘겨운 뒷치닥거리지요. 묵묵하게 서연의 병수발을 들고 있는 박지형의 순애보는 순애보가 아니라, 도우미에서 간병인까지, 회사일까지 줄여가며 온갖 잡일을 다해내고 있으니, 그 정성과 마음이 갸륵하고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제왕절개로 딸을 낳은 서연, 지형과 서연의 딸 예은이는 무럭무럭 커가는데, 서연은 점점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치매증세도 심해지지요. 애를 떨어뜨릴까봐 겁나서 아기를 안지도 못하는 서연, 예은이가 울어도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발만 동동거리는 서연, 아기를 혹이나 어떻게 할까 염려하는 모성애(?)때문이라지만, 본능적인 엄마의 행동마저 제어하는 서연을 보니, 가슴 한 쪽이 쓰라려 오면서도 뭔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는 모성애였습니다. 아이와 눈맞추고 토실토실 살쪄가는 아이 엉덩이도 토닥거리고 싶은 것이, 서연이 누리고 싶었던 행복이라며,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을 금세 잊어버린 서연은 확실이 치매가 맞기는 합니다.
떨어뜨리면 어떡하냐고, 아기를 집어 던지면, 환각이 생겨 아기가 괴물로 보여서 죽이려고 밟아대면 어떡하냐는 서연의 말에서, 아기를 지키고 싶은 엄마의 마음도 읽혀지기는 하지만, 그저 독한 서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얼마나 아기를 안고 싶을까요. 그런데도 아기가 어떻게 될까 걱정되어, 아니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서연은 엄마의 감정을 누르고 아기를 보호하려는 게지요. 그 마음을 알면서도 아기가 울면 자연히 손이 가는 엄마의 본능을 누르는 서연의 감정은, 치매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강해 보입니다. 본능마저 제어하는 것이 모성애의 힘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냥 안고 있으면 된다는 문권의 말에 잔소리하지 말라며, "나도 다 생각이 있단 말이야.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방을 나가버리는 서연을 보며, 향기를 만나고자 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했습니다. 아이에게 정을 남겨두지 않으려는 서연, 아기를 너무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 손에 아기를 주고 싶지 않는 마음이 들까봐, 애써 아기에게 무심하게 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의 병세가 심해질수록 아기에 대한 걱정이 늘어가는 서연은 예은이를 방배동 지형네 집에 보내자고 말하지요. 자신을 믿을 수없다며, 아기있는 데서 엄마가 똥싸고 오줌싸는 것 싫다고 말이지요. 괜찮다는 지형이지만, 고모가 힘들어서도 안된다고 서연은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제정신일 때는 예은이의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게 보일까요? 그런 아이를 두고 죽어야 한다는, 아니 그 예쁜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도 모르게 될 거라는 것때문에, 혹이라도 아기를 어떻게 해버릴까 서연은 불안하고 걱정됩니다.
갑자기 베란다에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천길 낭떠러지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 보는 모습은 역시 자살낚시였지만, 서연이 자살을 하려고 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자살이라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떤 상태인지를 인지하고 있을 때 행하는 행동이기에, 처참하게 으깨져 죽은 모습을 남길 서연은 아니지요.

그보다는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는 서연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은이에게 의도적인 거리감을 두려는 서연의 모습에서도 엿보이기는 했지만, 짐작이 틀리지 않아서 당황스럽더군요.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서연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향기를 만난 지형, 향기에게 못할 짓을 한 지형이기에 향기를 만나 부탁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서연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들어주고 싶다며,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다는 지형의 부탁에 향기는 서연을 찾아 옵니다.
향기가 내미는 꽃바구니를 받아들며 뜬금없이 김용택님의 봄날은 간다 중 서리편을 읊는 서연, '꽃도 잎도 다 졌니라 실가지 끝마다 하얗게 서리꽃은 피었다마는 내 몸은 시방 시리고 춥다 겁나게 춥다 내 생에 봄날은 다 갔니라', 서연의 죽음에 대한 자기정리적인 시였지만, 향기를 앞에 두고 그 어색하고 뜬금없는 장면이 섬뜩스럽게 무섭기까지 하더군요.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서연의 표정이어서 향기가 누군지 모르고, 자기만의 치매 세계로 들어가 버린 서연으로 착각하게 만들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서연이 문학했던 사람이었던 지라 치매에 걸려도 참 우아하고 고상하군요ㅎ;;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내가 저 이를 향기씨한테 떠나 보냈을 때보다 더 힘들었을 거예요. 만나서 이해와 용서...염치없어요. 미안해요". 지형의 이별통보는 벼락맞은 거였노라고 고백하며, 하지만 사랑은 두 마음이 같아야 완전한 건데, 지형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향기였지요.
주위를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추는 서연, 향기를 부른 이유를 말하지요. "나는....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때까지 오빠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거든, 내가 없어졌을 때 향기씨가 옆에 있어 줬으면...뻔뻔스럽지만 어쩌면 더 박지형이라는 남자를 나보다 더 잘아는 사람일 지도 모르니까...". 지형을 향기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는 두통을 호소하는 서연이었지요. 지형의 가슴에 안겨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서연, "나는 정말 한심하고 비열해, 말도 안돼, 나 어떡해...".
향기에게 지형을 부탁하고 우는 서연에게는 두가지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밤에 베란다에서 서연이 위험한 행동을 했던 것을 알고는 지형이 그랬지요. 지형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말라고요. 도망치려고도 하지말고 배신하지 말라고 말이지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서연은 자신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습니다. 자기만을 바라보고 눈만 마주치고 있는 것으로도 행복하다는 지형을 머지않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서연은, 그렇게 자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지형을 두고 자꾸 삶을 포기하려는 자신이 한심하고 밉습니다. 그리고 향기에게 또 미안한 죄를 지으려는 자신의 비열함이 밉습니다. 내 남자였다며 향기에게서 지형을 빼앗은 서연, 그리고 이제는 그 남자를 돌려보낼테니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자신이 너무나 비열해서 밉습니다.
작가는 서연 스스로의 입을 통해 자신을 비열하다고 서연을 위한 변명을 마련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서연이가 참 야속하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것은 저의 얄팍한 이해심과 너그러움때문일 듯합니다. 향기가 끝까지 지형을 기다리고 말고는 서연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지요. 서연이 부탁해서도 안될 말이고요.
향기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서연이 떠난 후에도 지형과 아이를 택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향기의 사랑이지, 서연이의 지형에 대한 사랑이나 진심으로 향기에게 하는 사과는 아니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지형을 모습만을 좇고 있는 향기의 눈에서 향기가 여전히 지형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읽었겠지만, 마치 유언처럼 향기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조금은 뻔뻔한 이기심같아 보입니다. 지형이 향기를 끝까지 여자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혹이나 두 사람이 훗날 결혼을 한다해도 향기는 지형의 껍데기만을 안고 사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어서 말이지요.
정말 향기에게 미안하고 향기를 지형에게 보내고 싶었다면, 향기가 아니라 지형에게 부탁을 했어야 순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떠나면 향기와 다시 시작해 보라고, 예은이를 위해서라도 무릎꿇고 싹싹 빌어서 평생 향기 눈에서 눈물 쏟게 하지말고 위해 주고 살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향기에게 유언처럼 부탁을 하고 것은 신파로밖에 보이지 않네요. 
사랑이라는 감정에 무뎌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연이 그것이 향기에게 하는 사과였고, 지형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다 이해하기는 힘들더군요. 지형이 서연을 끝까지 잊지 못하고 그 추억만으로 살아간다면, 향기는 처녀귀신으로 늙으라는 말인지 뭔지...착한 향기는 그저 서연이 안됐고 지형이 안쓰럽지만, 서연의 부탁은 내내 향기에게는 짐이 되지 않겠냐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향기를 만난 서연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치매증상도 심각하게 나빠져 버렸지요. 불과 몇시간만에 이렇게 증상이 악화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귀신처럼 앉아 있지를 않나,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추한 모습으로 변해가지요. 오즘싸는 치매환자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 뿐이 아니었지요. 욕실 청소를 하고 몰래 오열하는 지형을 위로하는 재민을 뒤로하고, 카레밥을 손으로 집어먹는 모습까지 나와 시청자를 놀라게 했지요. 옥에 티라면 서연이네 집은 밥을 냉장고에 넣는다는 점? 치매 어른을 둔 가정에서 똥을 집어먹는다는 얘기들도 많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연상되어서 가슴 아프면서도, 주위 가족에게 힘겨운 상황이라는 생각에 가슴만 무거워지네요. 
마지막회 한 회만을 남겨둔 천일의 약속, 지형과 서연의 예정된 시간 천일이 다 되어감에도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순애보는 여전히 감금상태입니다. 지형이 미치겠다는 말로 삶과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서연에 대한 안타까운 눈물연기를 보였지만, 김래원의 사랑에는 극히 인색했던 김수현 작가였기 때문에 말이지요. 수애의 치매와 치매진행 과정에 중심을 두다 보니, 사랑보다는 고상한 치매환자의 짧은 삶이야기가 되고 말았지요. 드라마 마지막까지도 이 드라마가 치매환자 이야기인지, 작가가 마지막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던 순애보 정통멜로였는지, 무게중심을 이동시키지 않은 것은 작가의 실수입니다.
"나를 없애버리고 싶어. 결혼 안해야 했어. 행복하고 싶었어. 행복할 줄 알았어"라는 서연의 말도, "나는 너고, 너는 나 자신이야. 우린 한 사람이야, 사랑해 서연아"라는 지형의 말도, 절절하게 와닿지를 못하고 흩어져버리는 멜로는 처음입니다. 이기적인 민폐 여주인공이 되어버린 서연의 말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지형의 사랑도 왜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회에서는 치매가 아니라, 감동으로 적시는 두 사람의 사랑때문에 울 수 있을지, 오래 참은 김에 마지막까지 참고 봐야겠네요. 치매수애가 남는 드라마가 아니라,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런 사랑도 있구나'로 남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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