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효섭'에 해당되는 글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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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3.04.23 '구가의 서' 이승기의 변신, 분장을 뛰어넘는 반인반수 연기 (3)
2013.07.24 12:07




황금의 제국을 보다가 자주 딴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어린 시절, 작은 방 아랫목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동치미와 고구마를 먹던 겨울 어느날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걱정없이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고구마 한 번 배터지게 먹어보자고 맨주먹으로 일어났던 최동성 최동진 형제, 그들은 고구마를 배터지게 먹을 수 있었을까... 물질적으로는 누구보다 풍요로운 그들이지만, 온가족이 고구마를 먹으며 아무 걱정없이 웃을 수 있는 정신적 포만감은 결국 누리지 못한 듯 합니다.

 

고구마 더 먹겠다고 할퀴고 싸우고 반목하고 아우성들인 집안 식구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황금의 속성이 그런 것이겠죠. 열을 가지면 백을 가지고 싶고, 백을 가지면 천을 가지고 싶고... 끝없는 인간의 욕망, 결국 무엇때문에 황금을 얻고 싶어했는지 잊어버리고 황금을 쌓고 지키기에만 몰두하게 만듭니다. 도둑이 들지도 모르니 때로는 방망이를 먼저 들어 쳐내야 하고, 조금 허름하다 싶으면 남의 집 곳간도 쉽게 털어버리게 만들죠. 

한성제철을 인수하려는 최서윤, 한성제철을 최종 부도 처리하고 쉽게 인수하려 했던 최서윤은 뜻밖에 밥숟가락을 얹은 최민재와 장태주의 반격을 받게 됩니다. 최민재와 장태주가 실질적 공동주인이기도 한 성진건설은 성진제철을 세울 계획으로 한성제철로부터 제철기술을 37억 공사대금 대신 김사장을 협박해 입수했는데, 최서윤의 한마디는 날벼락이었죠. 성진제철 공사를 중단시키는 대신 한성제철을 부도처리하고 인수하겠다는 최서윤이었으니 말이죠.

최서윤의 결정에 장태주는 속전속결,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한성제철을 민재랑 함께 먹자고 제안하죠. 최민재와 장태하의 갑작스런 반격에 최서윤은 초강수로 맞섭니다. 외환보유고를 다 투입해서 한성제철의 외환대출금을 10억달라를 상환하고, 6천억 인수금을 1조까지 배팅해서라도 인수를 성사시키고 말겠다고 물러서지 않았죠.   

이에 맞서는 장태주, 최민재의 적토마 장태주(글쎄 끝까지 그의 적토마가 될 수 있을지는 잘모르겠지만) 역시 'all or nothing', 물러섬없는 질주로 격돌이 예상됩니다. 웅얼거리는 고수의 영어, 안쓰느니 못하다는 느낌, 고수의 연기에 그동안 불만이 없었는데 황금의 제국에서는 뭐랄까 입에 달라붙지 않은 감정없는 대사전달력과 매치되지 않은 표정연기는 뭐라 할말이... 서류를 보는데도 종이만 보고 있고, 서류에 쓰인 글자는 안보고 외운 대사처리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더이다. 어딘지 붕떠있는 느낌, 연기를 아주 못하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고, 어정쩡 애매한 연기는 고수와 이요원이 막상막하인듯;;

 

아버지의 30년 소원, 마지막 가는 길에 한성제철을 성진제철 간판으로 바꾸는 것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최서윤의 효심(?), 감동을 받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무덤덤하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군요. 최동성의 손으로 용광로를 세우고 기둥을 세웠던 것이기에 최동성에게는 각별한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켜내지 못하고 넘겼던 것도 최동성인데, 성진제철을 인수했던 김사장을 날로 먹은 것으로 생각하는 아전인수격의 해석, 성진그룹도 지금의 42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그렇게 인수했던 기업들이 어디 한 둘이었을까 싶은데, 제 주머니 털린 것만 아깝지 남 주머니 턴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네들의 사고방식에 역시 제 가슴은 열리지 않는군요.  

 

한성제철 인수와 관련해서 두 사람에게 몰아칠 바람은 우리를 공포속에 밀어넣었던 IMF 사태와 맞물려, 예상하지 못할 방향으로 흘러가겠죠. 수백만의 직장인들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고, 중소기업의 부도가 속출하고, 은행과 증권회사들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었던 끔찍한 악몽의 시작점1997년.

한성제철 인수과정은 황금의 제국이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 흐름에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6천억 싯가 한성제철을 1조원까지 투입해 인수하려고 죽기살기로 배팅하는 그들, 한성제철을 인수하고 정상화 시키면 몇곱절의 회사가 될 수 있기에 하는 배팅이겠죠.

그런데 말이죠, 이런 미친 투자의 이면에는 미친 기업경영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투자한 만큼 원금을 회수해야 해야 하는게 오너의 생각이죠. 회사를 안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에게는 값싼 댓가를 주고, 막대한 이득을 챙겨가는 그들의 기업논리, 4천억 웃돈이 더 들어갔으니 단시간에 그 돈을 빼야 하는 것이 기업주입니다. 하다못해 시설 투자를 하면 그만큼 들어간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 물건값을 올린다든지 임금동결로 투자액을 메꾸는 그들이죠. 기업의 손익계산을 보면, 참 이기적입니다. 이만큼의 최소 수익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 임금이 되었든 물건값이 되었든 이익을 챙기죠. 그래서 누가 한성제철을 인수하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IMF 경제위기로 주가는 바닥을 치게 될 것이고, 둘 중 무리한 투자로 인수한 하나는 그야말로 피똥을 싸야 겠지만 말이죠. 그래서는 안되는데도 갑자기 고소해지는 이 이상스러운 심뽀는 뭔지... 드라마 보면서 이렇게 주인공들에게 시니컬해지는 것도 처음인지라 저도 당황중입니다;;

아마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큰 이유인듯 합니다. 그다지 매력없는 고수와 이요원의 캐릭터에게도 시큰둥하게 만들고, 그나마 최민재 역의 손현주와 최동성 역의 박근형, 그리고 두 개의 혀를 가진 두 얼굴의 독사 김미숙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보고 있는 중... 

호랑이는 쓰러졌고. 27년 복수의 칼을 갈아온 독사는 그 틈을 타 호랑이의 뒷꿈치를 물려는 순간입니다. 병들어 지친 호랑이의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 노장 박근형의 연기는 눈빛만으로도 호랑이의 마지막 순간을 표현하는군요.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목소리만으로도 호랑이를 겁먹게 하며 드러내는 독사의 정체, 김미숙의 섬뜩한 위협은 간이 쪼르라들게 무섭습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최동성과 최성재를 통해 보는 것은 황금의 제국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지, 황금의 제국을 지켜내든지 말든지 보다 흥미롭군요. 실감나지 않은 기업간의 혈투와도 같은 전쟁보다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자의 27년 정에 더 끌리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은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움직이는 동물인가 봅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을 결국 서윤에게 해 준 것도, 성진그룹을 쥐어주겠다는 어머니의 머리보다는 여섯살때 그네를 만들어준 누나의 마음이 성재를 움직였기 때문이겠죠. 황금의 제국, 그 피튀기는 싸움 한복판에 성재라는 인물을 배치해둔 작가의 의도, 남녀간의 사랑 묘사는 투박한 박경수 작가지만, 깊은 인간애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진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최동성과 최성재의 독대씬, 최동성은 성재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우는 성재의 손을 꼭잡았지요(지난 글에서 큰 딸 정윤의 대사를 듣다 가족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봅니다). 이빨도, 발톱도 다 빠져버린 늙고 병든 호랑이, 그 손은 성재를 울리고 말았지요. 그리고 어머니의 계획까지 말하며 성진과 누나 서윤을 걱정하는 최성재였지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그의 왕국을 세웠던 최동성이지만, 그의 집은 야망과 질투로 얼룩진 차가운 왕국이었습니다. 아내 한정희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으로 거둔 최성재, 그에게는 하늘이 준 축복과도 같은 선물은 포장지만 선물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칼을 든 독사가 웅크리고 앉아있었음을 죽어가면서 알게 되는 최동성, 27년 그의 참회와도 같았던 사랑이 덧없어 안쓰럽더군요.

 

사흘정도 밖에 버티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 성진시멘트 전환사채를 사두지 않은 것부터 후회를 하는 한정희(김미숙), 일년만이라도 석달만이라도 저 인간이 살아있어야 되는데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발을 동동구르는 한정희,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무섭고 소름끼칩니다. 아무리 남편을 잃은 원한이 깊었어도, 27년을 부부로 살아온 최동성에게 인간으로서 아무런 연민도 느끼지 못하는 한정희의 피가 빨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성재야, 내가 저 세상 가서 네 아버지 만나면 많이 혼날거야. 생일에, 기일에, 우리 성재 아버지한테 편하게 다니라고 산길도 포장하고, 묘소 근처도 단장하고... 애비 손에 묻은 피가 많아. 그것 닦는 심정으로 널 키웠어. 성재야,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구나". 

그런 두 얼굴의 아내였는지도 모르고, 성재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껏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던 최동성,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그였겠지만 가장 불쌍한 사람이더군요. "네 엄마는 모르게 해, 애비없이 너를 어찌 키우나 겁나서 그랬을 거야. 내가 알까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아버지의 사랑, 그 진심은 성재의 입을 열게 만들었죠. 어머니의 두얼굴에 대한..." 아버지 죄송합니다. 엄마 말리려고 했는데, 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나 성진그룹 회장직같은 거 관심없는데... 아버지랑 누나랑, 그냥 지금처럼만 살고 싶은데 어떡해요, 엄마 어떡하죠? 서윤이 누나 어떡하죠?".

 

까맣게 몰랐습니다. 27년을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선물, 그 두얼굴을... 눈만 껌뻑거리며 성진그룹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늙은 호랑이, 서윤이를 애타게 찾아도 서윤이는 오지 않습니다. 가벼운 감기라고 가족들 병문안도 막아버린 한정희, "서윤이 안와요,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 이 병실에서 나갈때까지 저혼자 옆에 있을 거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최동성의 마지막 소원을 외면해 버리는 한정희, 소름돋는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그 순간 느꼈을 최동성의 절망과도 같은 공포, 다가오는 죽음도 초연하게 받아들였던 그의 눈이 절망감으로 이지러지죠. 대사없이도 눈빛의 동요만으로 충격과 두려움, 절망과 공포를 표현하는 박근형의 연기, 그 긴박한 불안을 시청자에게 이입시켜 버리더군요.

그러나 한정희에게는 뜻밖의 인물에 의해 뒤통수를 맞게 되죠. 아들 최성재(이현진), 서윤에게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알려버린 아들에게 말이죠. 한정희라는 인물을 보면, 그 원한이 이해가면서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이 철의 여인 앞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한정희는 최동성이 진심으로 그녀를 아내로, 아이들 어머니로 아끼고 사랑해 왔다는 것을 압니다. 최동성의 사랑을 알면서도 어떻게 27년을 흔들림없이 복수심만으로 품에 안겨왔는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독하다는 말도 부족하군요.

최성재가 눈물을 흘릴줄 아는 사람으로, 아버지의 마음에 눈물을 흘릴줄 아는 사람으로, 누나의 선물에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인물로 자라준 것이 지금으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황금의 제국에서는 늘 한 발 비껴 서있던 그가 그래서 가장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이 다치지 않기를 더 바라게 되네요. 

한성제철 인수문제는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박경수 작가가 짚어보고 싶었던 과거 우리 사회의 파행적인 모습, 고속 경제성장의 빛을 쫓아 무분별하게 기업확장을 하고, 국내 은행이 아니면 외환을 통해서도 빚으로 몸뚱이만 불려왔던 결과는 IMF철퇴로 돌아왔습니다. 은행지점장에게 뇌물을 주고 2천억 4천억, 천문학적 돈을 마음대로 제돈처럼 가져다 쓰는 것이 능력이었던 시절, 골동품, 골프채 하나에 사업인가를 쉽게 내주었던 시절, 100원 가진 놈이 10원을 뇌물로 쓰고 천원, 만원을 빌려 몸뚱이 늘리기에 혈안이 된 빚잔치, 그 질곡의 그늘은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서민들은 살기 팍팍하고, 취업난에 경제난, 가계경제는 빚더미죠. 

하늘을 찌르는 고층 건물들, 외형적으로는 빛나는 고속성장을 해온 우리지만 고층건물이 만든 그림자는 더 길고 진해졌습니다. 최종 승자는 최서윤이 되겠지요. 그래서 전 서윤이 배우기를 바랍니다. 고층건물, 고속 파행 성장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그녀 역시도 그 그림자를 만드는데 앞장섰다는 것을... 그 교훈으로 오늘은 어제의 서윤과는 달라져 있기를...  

황금의 제국에는 작가의 신랄한 비판이 숨어있습니다. 최동성의 마지막을 보니 깨달아지더군요. 황금의 제국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황금이었음을... 그 황금을 지키기 위해, 혹은 차지하기 위해 동생도 조카도 버리고, 27년을 부부로 살면서도 복수심으로 곁을 지켜오고, 황금덩어리를 받기 위해 숙제처럼 3년을 아버지 문안을 오기도 합니다. 황금제국의 주인은 최동성이 아니라 최동성의 황금이었던 거죠. 집에서 아버지와 누나랑 지금처럼 살고 싶을 뿐이라는 최성재의 눈물이 그래서 심금을 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는 정의도 선도 없습니다. 누가 조금 더 나쁘고 덜 나빴는지 정도랄까... 어차피 승자가 서윤이라면 최서윤이 조금 덜 나쁜 쪽에 서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나마 덜 나쁜 쪽이 왕관을 쓰는 것이 그들 황금의 제국이 만든 그림자가 조금은 덜 아프고 진하게 드리워지지 않을 듯 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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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14:17




성진건설 유상증자 파동이 있고 3년후 1997년, 바닥으로 떨어진 주식을 사들인 최민재와 장태주는 성진건설의 대주주가 되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친구하자고 손을 잡은 두 사람을 보니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종잇장이 돼버린 성진건설의 위기를 기회로 일군 장태주의 불도저같은 추진력, 장태주가 몰고 올 바람이 최서윤을 어떻게 흔들게 될 지, 아무도 승자를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 그럼에도 여전히 장태주에게 황금의 제국 주인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저는 싸우고 있습니다. 

최정윤의 최성재에 대한 언급으로 성재가 최동성 회장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동성이 유산분배를 할때 성재에게는 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라는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던 이유, 25년을 아들로 키워왔고, 누구보다 애정을 듬뿍 주었던 성재에게 큰 재산은 물려주지 않은 최동성, 그의 이중적인 모습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의 씨가 아닌 성재에게 재산은 물려줄 수 없는 최동성의 욕심, 그 이면에 느껴지는 또 다른 애정은 죽음을 앞둔 최동성의 인간적인 진심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 회사 한 두개를 반찬 덜어주듯 식탁에서 분배하는 재벌가의 이야기가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그래도 돈이 최고인 시대에 25년을 아들로 키워온 막내 성재에게는 성북동 모 회장의 집을 사 명의로 해준 것이 다더군요. 물론 그의 모친이자 최동성의 현재 부인이기도 한 한정희(김미숙)에게 장학재단을 맡기기는 했지만... 

성진걸설의 유상증자 하루 전날, 최민재와 비슷한 이유로 회심의 미소를 짓던 이가 한정희(김미숙)였습니다. 성진건설의 주인이 바뀔 날을 기다리는 그녀는 모든 것이 끝날 몇시간 후를 대비해 성재에게 미리 인사를 하라고 하죠. 아버지와 특히 서윤에게... 스물 다섯 학생 성재의 눈은 그 뒤로 계속 물기를 머금고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솔직히 황금의 제국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은 인물이 없지만. 이상하게 최민재(손현주)와 최성재(이현진)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최민재의 경우는 최동성의 다른 자식보다 몇곱절은 성진그룹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최동성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쳐지는 것에 동정심이 갔다면, 최성재의 경우는 밥그릇 빼앗긴 원주인에 대한 동정심이 컸습니다.

 

그런데 성재가 최동성과 최서윤을 대하는 괴로운 표정을 보면서, 줄곧 마음이 쓰이더군요. 유상증자 주금 납입 시간 5분을 앞두고, 대박 아니면 쪽박에 베팅을 해야 하는 한정희, 성진그룹을 갖는 것이 성재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졌거든요. 

성재의 어머니 한정희는 최동성에 대한 복수심으로 남편 회사 청마건설 전신인 성진건설을 되찾아 아들 성재가 주인이 되는 날을 위해 절치부심, 최동성의 품에 안겨왔습니다. 겉으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는 피눈물로 이를 갈아온 인물입니다. 최동성의 몰락을 기다리며, 그녀는 25년을 두 얼굴로 살아왔습니다. 어린 성재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녀의 아우성을 주입시켜 온 한정희, 재벌가의 밥그릇 싸움이라 할지라도 한정희가 참아온 지금까지의 세월이 과연 성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보여지더군요.  

최서윤(이요원)과 최성재(이현진)는 많은 점에서 닮았습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그룹 경영에 욕심이 없다는 것도... 성재의 전공이 경영학이더군요. 물론 어머니 한정희가 바랐던 이유가 컸겠지만, 갑자기 최성재가 황금의 제국 주인이 되어도 나쁠게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우리집 일도 아닌데 누가 주인이 되든 뭐 솔직히 관심은 없지만 말이죠. 새주인 바뀐 기념으로 자동차를 반값으로 할인해 줄것도 아니고, 아파트 분양가를 대폭 인하해 줄것도 아니고...

여튼 아마도 성재가 보였던 눈물 머금은 미소 그 한 장면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재 협탁 첫번째 서립에 홍삼있어요. 꼭 챙겨드세요", 다음날 아버지를 떠나야 한다는 성재의 무거운 마음은 25년을 따르고 존경해왔던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최동성 회장은 가족회의가 있던 날, 최동진이 싸온 고구마를 나눠주며 치매기를 보여주었던 모습에 자신이 무서워 피하는 것으로 오해를 했지만 말이죠. 

 

최동성이 성재에게 한 유언과도 같은 그의 진심이 마음에 와닿더군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최동성에게 최성재는 더 아픈 손가락입니다. 평생 최동성이 지고 온 십자가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씨가 아니기그만큼 아프고, 그래서 더 사랑하고 아꼈던 아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최동성이 성재를 너무도 아끼기에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믿는 자식 서윤에게는 비바람 잘날 없는 성진의 왕좌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했지만, 성재에게는 그룹 경영권 싸움에서 다치지 말고 편하게 살게 하고 싶었던 것이, 아버지로서의 인간적인 바람이고 애정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거침없이 달려왔던 그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최동성은 평범한 행복들을 놓치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한편으로는 덧없다는 생각도 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그의 아내 한정희와 성재는 그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며 살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차피 죽어 싸짊어지고 가지 못할 돈, 성재와 아내 한정희만은 밥그릇 더 키우자고 다른 행복을 저당잡히고 살지 말라고...

"사내 눈에 물기가 많어서 어쩔꼬. 어릴때 그 집에서 살고 싶다던 대만 그룹 회장집 네 앞으로 해놨다. 결혼하고 분가하거든 며늘애랑 연못에서 차마시고 손주들 그네도 밀어주고... 서윤이하고는 지금처럼 잘지내. 너희가 져야할 지게에 올려졌어. 힘들고 무거울 거야. 결혼하고 살림나면 성북동 집에서 너희 엄마하고 살아. 추위 많이 타는 사람이니 아래층 햇볕 잘드는 방에 웃풍 안들게 하고...".

아내 한정희를 향해서는 백살까지 살다오라고, 보고 싶어도 참을 거니 오래오래 재미나게 살다 오라며 아내 한정희에 대한 그의 진심어린 당부를 하기도 했죠. 

아버지를 배신하고 떠나야 하는 성재의 눈시울은 말없이 붉어지기만 했습니다. 이도저도 못하는 성재의 마음이 보이더군요. 최동성의 침실을 나오던 성재는 뜻밖에 서윤의 전화통화를 듣게 되었죠. 서윤에게 계획이 있다는 말을 말이죠.

성재는 곧바로 어머니 한정희에게 주금 납입에 신중하라고 당부하고, 그 순간 성재의 눈물머금은 얼굴에 번지는 미소의 의미... 전 그 미소가 성재가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됨에 대한 안도의 미소라고 생각되더군요. 아버지를 떠나지 않아도 되고, 누나 서윤의 뒤통수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어쩌면 아버지 떠나실 때 까지는 우리 이 집에 있어야 돼", 그 순간 입가에 번지던 성재의 미소는 성재의 진심이 나타났고, 화해의 실마리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벌가의 싸움이 되었든, 밥그릇이 크든 작든 전 가족들끼리의 혈투, 형제의 난으로 얼룩지는 모습을 어느 쪽이든 좋아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상증자를 강행하면서도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는 복안이 무엇이었을까? "유상증자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 침몰시킬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거예요". 지난 글에 최동성 회장의 병세를 밝혀 주주들을 동요시킬 것이라고 추측했었는데, 최동성의 병세를 폭로한 것은 최민재였습니다. 다 된 밥, 이제 조금 뜸만 들이면 최민재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회장님 나오셨다는 사내방송은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은 반전이었습니다.  

박근형의 카리스마,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꽃할배로 폭풍인기중이기도 한 박근형의 힘. 범접할 수 없는 기를 품어내는 황제의 존재감이란 드라마의 격을 다르게 하더군요. 내일이면 금치산자 판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최민재의 자신감있는 폭로에도 최동성 회장은 정신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탕...탕...탕',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최동성 회장,"늙은이 기억 가물한 걸 가지고 치매라고! 박철환이! 사라호 태풍때 시멘트 이천 포대 실은 트럭 뒤집힌 것. 황정식이! 시멘트 공급 계약 땄을때 사준 집에서 아직 살고 있지? 조현만! 경부고속도로 터널 공사때 다친 다리 아직 쓸만하지?".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는 최동성 회장, "시멘트 공장 기계소리 시끄러웠지. 우린 크게 묻고 크게 대답했다. 그 때처럼 해보자. 오늘 안으로 성진 시멘트에 계열사 지분 모두 넘겨!!!".

손마이크로 사장단에게 지분을 넘기라고 지시하는 최회장, "날잡아서 시멘트 공장 소풍가지. 깁밥은 내가 쌀테니 음료수는 학렬이가 준비해!". 상황이 납득이 가고 안가고를 떠나 박근형이 보여준 카리스마는, 순간 최민재에게 성진을 넘겨줘서는 안될 것 같은 마음의 동요가 생기게 하더군요.  

글쎄요, 전 여전히 최서윤의 방법이 탐탁지 않습니다. 성진건설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광고까지 크게 게재하고, 성진시멘트를 지주회사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최서윤, 성진건설은 책상과 의자 간판만 남기고 빈껍데기 회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지는 둘째치고, 기업이 호떡도 아니고 그렇게 하루 아침에 알거지 회사로 뒤집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참 할말없게 만들더군요.

 

여튼 성진건설 유상증자는 최민재의 완패로 끝나고, 최동성 회장의 집 반란자(?)들도 일거에 제압됐습니다. 서윤에게 싹싹 비는 언니 정윤과 오빠 최원재, 5분여의 급박한 시간을 남기고 서윤의 손에 모든 것을 넘겨주는 척했던 한정희의 입지는 더 강하고 견고해지는 결과로 끝났죠.

황금의 제국, 성진그룹의 주인자리에 서윤을 앉히고 나오는 최동성, 오랜 시간 짊어지고 왔던 지게를 딸에게 넘겨주고 나오는 노회한 최회장, 그리고 이어진 한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최회장은 자식들을 서재에 남겨둔채 말없이 서재의 문을 닫고 내려왔죠. 거실에 남아있던 인물은 황제의 제국 싸움과 관계없어 보이는 듯한(표면적으로는) 최원재의 부인이자 최동성의 며느리, 그리고 성재와 한정희였었죠. 사위 손검사를 제외하고는 최동성과 피 안섞인 인물들만이 왕국의 문을 닫고 나오는 최동성을 지켜보고 있었죠. 최동성이 닫고 나온 서재 안에서는 화해가 되었던, 또 다른 전쟁이 되었든 그들에게 맡기고, 최동성은 그의 시대를 스스로 마감하고 나옵니다.

 

그리고 최동성을 부축하고 침실로 들어가는 성재와 한정희를 보고서 잠깐 스쳤던 생각은 최동성의 십자가였습니다. 최동성에게는 두 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성진그룹과 한정희(성재까지 포함)죠. 성진그룹은 딸 서윤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고, 늘 참회의 기도를 하게 한 한정희라는 십자가가 남았죠. 서윤에게도 거듭 부탁을 했지만, 지난 밤 성재에게도 한정희를 부탁했던 최동성이었습니다.

비유가 혹이라도 잘못된 것일까 신성모독은 아닐까 걱정스럽지만, 그럴 의도는 전혀없음을 먼저 밝힙니다. 최회장의 오른편에서 한정희가, 왼쪽에서는 성재가 최회장을 부축하고 들어갔죠. 그 모습을 슬픈 듯, 착잡하게 바라보는 며느리.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와 두 강도가 떠오르더군요. 물론 위치는 다르지만 예수의 오른쪽 십자가에 못박혔던 강도는 회개했고(물론 그는 천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왼쪽 강도는 예수를 조롱했죠.  

최동성의 성진그룹을 청마그룹으로 바꾸는 그날을 위해 몸을 숙인채 칼을 갈고 있는 한정희, 어머니의 채찍과 아버지의 당근 사이에서 늘 괴로워 해왔던 최성재, 두 모자에게 최동성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현모양처 혀의 입처럼 구는 한정희에게 최동성은 남편을 죽게 한 원수일 뿐입니다. 친부의 생일에 흰국화를 좋아했다고 아버지에게 다녀오라는 어머니의 말에 무거운 표정을 지었던 최성재, 그에게 진심으로 좋아한 아버지였습니다.

 

재산싸움의 혼탁한 싸움에 최동성은 성재만은 발을 담그게 하지 않았죠. 성재만은 피로 얼룩진, 앞으로도 계속될 지옥 속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성재에 대한 그의 진심은 아니었을까... 다른 자식들에게는 턱턱 안겨주는 골프장이나 계열사 한 두개, 왜 성재에게는 주지 않았을까... 단순히 자신의 핏줄이 아니어서 였다고 생각하기에는 최동성이 성재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최동성 자신처럼, 자기의 자식들처럼 흙탕물 묻히고 살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것이 성재 친부에 대한 속죄의 길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게 최동성의 아들 최성재에 대한 진심은 아니었을까...

최동성의 진심에도 한정희는 그 닫히고 언 마음을 풀지 않았지요. 최동성의 사랑이 가여울 정도로 속이 차가운 한정희,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원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25년 세월을 단 한순간도 최동성의 진심에 마음을 열어주지 않은 그녀가 예수의 왼쪽 십자가에 매달렸던 강도처럼 어리석게 보였던 이유는 뭘까요.

집과 성진학원 지분을 제외하고는(물론 우리네 재산과 비교하변 그것도 엄청 큰 것이기는 합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했던 최성재였지만, 아버지의 곁에 머물 수 있음에 찰나처럼 잠깐이었지만, 기쁨의 미소를 지었죠, 그 미소는 성재의 진심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기쁨... 성재에게 최동성은 인자하고 따뜻한 아버지였을 뿐이었습니다. 한 재산을 뚝 떼어줄 금고가 아닌....

 

최동성을 재산을 물려줄 재벌 아버지로 대하지 않았던 최성재, 최동성의 자식들중 유난히 슬퍼 보였던 최성재, 그럼에도 가장 행복해 보였죠. 집과 아버지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며 지었던 짧은 미소가 오래가지는 않겠지요. 자의든 타의든... 그리고 그 역시도 황금의 제국 그 매혹적인 빛에 눈이 멀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한정희가 그를 싸움터로 나가 싸우라고 채근할 것이고(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서툰 새 왕좌의 계승자에게는 동생도 경계의 대상이 될테니까 말이죠. 

 

그런데 이 젊은 청년은 장태주처럼, 최민재처럼, 최원재처럼 황금에 눈이 멀지 않았으면 싶네요. 최동성은 자신이 일군 황금의 제국이 싸움터라는 것을 압니다. 난리통에 온갖 궂은 일을 해온 동생 최동진과도 필요에 따라 등을 돌려야 하는 곳이 그곳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동성이 지고 살아 온 참회의 십자가, 성재만은 혼탁한 전쟁터에서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던 게 최동성의 진심은 아니었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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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7 13:07




딱히 어떤 캐릭터에도 마음을 주기가 어렵다. 황금탑을 쌓으려는 자, 지키려는 자, 차지하려는 자,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만, 장태주(고수)의 야망도, 아버지 최동성(박근형) 회장의 유언같은 부탁에 성진그룹으로 돌아온 최서윤(이요원)도, 황금탑을 차지하기 위해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최민재(손현주)도 정이 가는 인물이 없다. 그들의 왕좌를 건 암투와 대립은 흡사 조선왕조 피의 전쟁을 보는 듯 하다.

 

왜 이렇게 이 드라마 인물들에게 몰입이 안되는 걸까? 그들의 천문학적 돈 싸움을 구경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는 장태주를 응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30년간 리어카를 끌어 모은 돈으로 겨우 낸 밀면집을 잃고, 아버지를 잃었던 장태주, 충분히 동정과 응원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래!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나온 그들과 한판 붙어 멋지게 성공해 보라고, 드라마에서라도 성공신화를 한 번 써보라고, 에라 모르겠다 마음을 비울 수도 있으련만 그러고 싶지가 않다. 4년 사이에 마치 4.19 세대가 기성세대가 돼버린 그런 느낌이랄까... 그에게서 나는 변질의 냄새는 악취가 더 심하다. 오래된 쓰레기는 오히려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이제 막 썩기 시작한 생선냄새가 더 구린 법이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장태주를 피칠갑으로 만든 나쁜 놈 최민재(손현주)를 은근히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말이다. 조선왕실로 치자면 그는 대군의 아들 정도의 서열로, 왕좌를 넘보면 역모죄로 바로 사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최회장(박근형)은 그의 곁에 두고 그에게 필요할 때마다 그의 추진력과 성진그룹에 대한 열정과 야망을 성진그룹을 키우는데 이용하면서도, 조금의 경계를 늦추지 않고 필요하다 싶으면 곤장 혹은 유배형을 내려왔다. 차마 사약만은 내리지 않았던 것은 난리통에 구두를 닦아 자신을 공부시키고, 감기에 걸린 그를 위해 병원 유리창을 깨 약을 훔쳐오고 경찰서에 붙들려 갔던 동생 최동진(정한용)때문이었으리라.  

조카의 두뇌는 남주기는 아까웠지만, 친아들이 아닌 조카에게 왕좌를 넘길 수는 없었다. 최회장의 딜레마는 그의 장자 최원재(엄효섭)가 못나도 너무 못난 아들이었다는 것일 게다. 막내아들 최성재가 있지만, 기업경영에는 뜻이 없고 아직 어리다(최회장이 그가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지만... 볼을 어루만지고 유독 성재에게 과잉애정을 표하는 최회장의 제스쳐는 그런 의문을 품게 한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이는 딸 최서윤이다. 딸 서윤이라면 최민재에게 성진그룹이 넘어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회장에게 진행되고 있는 역행성 선상세포종, 4년전의 종양제거 수술시 제거하지 못한 종양이 악성으로 변이되어 치매와 유사한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어장애와 기억력 장애는 이미 시작되었고, 남은 시간은 길어야 2~3년.

성당에서 기도중인 최서윤을 찾아간 최회장은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겼다. "좋은 사람이 되지 마라, 남들이 두려워 하는 사람이 되거라. 그리고 사랑한다, 내 딸아".

첫번째는 성진그룹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하고, 흙탕물도 뒤집어 쓸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리라. 두 번째는 아버지 최동성의 딸에 대한 애정이었다. 대 성진그룹의 회장이자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최동성, 그에게도 자식은 늘 사랑의 대상이다. 망나니처럼 놀고 다니는 장남 최원재에게 회초리를 들지 못했던 것도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기업경영에 뜻이 없는 최서윤을 흙탕물 속으로 끌어들이고 미안하고 안쓰러워 하는 것도 아버지의 마음이었으리라. 

최동성의 무너짐은 급격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가족회의로 자신의 병을 알리고 유산분배를 한 최동성, 모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백화점을 가지고 싶은 큰 딸 정윤에게는 골프장을, 기업경영에 욕심이 있는 사위 손검사에게는 검찰에서 뼈를 묻으라고 야멸차게 그의 욕심에 선을 그어버렸다. 목에 걸린 아픈 가시 며느리에게는 백화점을 주면서, 그의 아들 원재 곁에 남아주기를 부탁한다. 성진그룹의 노른자위 성진건설은 서윤의 뜻에 따라 유상증자로 지주회사로 만들 거라는 서윤을 지지했다. 그 순간 각각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쳐간다.

막내 아들 성재에게는 학교에 남아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라는 말, 아마 성재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으리라. 어머니의 복수심에 억지춘향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머니 한정희(김미숙)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은 하지만, 황금의 제국 피비린내 싸움이 누구보다 싫었던 이가 성재는 아니었을까 싶으니... 

고구마를 들고 온 동생 최동진, 서재에서 동진과 나눈 대화는 어떻게 오늘의 성진그룹이 탄생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군부대에서 훔친 군용품을 팔아 시멘트 회사를 차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오늘의 성진그룹에 이르렀다.

난리통 피난길에 발견한 두개의 고구마, 열명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논두렁으로 가는 대신 두 형제는 배고픔에 가족들 몰래 고구마로 허기를 채웠다. 며칠을 굶었던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와도 같았던 허기는 그 순간 어머니도, 아버지도, 동생들도 잊게 만들었다.

두 형제가 몰래 고구마를 먹던 그 시간, 폭격은 가족들 모두를 앗아가 버렸다. 얼마나 많은 시간, 얼마나 많이 후회하고 또 후회했을까? 고구마를 들고 가족들 곁으로 갔더라면, 아니 고구마가 생겼다고 가족들을 불렀더라면, 그자리에 가족들이 있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고구마를 배터지게 먹어보는 것, 두 형제들에게 고구마는 가족을 잃게 한 후회이자, 오늘까지 달려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형의 머리가 시들어가고 있음에 만감이 교차되어 고구마를 한 소쿠리 쪄서 달려왔을 최동진(정한용), 못배운 그이지만 그에게 있어 형은 하늘이었고, 아버지였다. 최동성에게 고구마가 특별하다면, 그에게는 비싼 보석함에 넣어두고 시도때도 없이 먹는 양갱이 그러할 것이다.

형 최동성에게 눈물로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최동진, "형님, 제가 가끔 시멘트 공장에 가봅니다. 공장간판 군에서 훔쳐다가 달았습니다. 시멘트 팔아서 집사고 땅사고 회사사고... 군대있는 놈이라 내 이름 못달고, 다 형님 명의로 했습니다. 형님이 약속했습니다. 나중에 벽돌 한 장도 똑같이 나누자고...".

"그렇게 하려고 했다. 5공 청문회때 원재가 정치자금 만든 것 민재가 말하지 않았으면...". 

역시 자식이 먼저인가 보다. 난리통에 구두를 닦아 공부뒷바라지를 하고, 군에서 군용품을 빼내 팔아 형의 장사밑천을 만들어주고, 최동성 자기때신 감옥을 세번이나 대신 간 동생 최동진보다, 최동성에게는 자식이 먼저였다. 최동성의 행위가 잘한 일은 아니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이어지는 최동진의 대답 역시도 같은 이유였다. "제가 그러라고 했습니다. 형님 대신 옥살이 세 번 했지만, 자식놈한테는 원재 대신에 옥살이 하라고 못하겠습디다".

 

최동성, 황금의 제국 피비린내 싸움의 근원인지도 모르겠다. 제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지... 하물며 자신의 오늘을 있게 온갖 궂은 일 도맡아 바람막이가 돼주고, 때로는 흙탕물을 대신 뒤집어 써온 동생의 아들이고 조카인데, 어찌 제자식만 그리 귀할꼬...

 

"벽돌 반으로 나눕시다. 하나는 민재 주고, 다른 하나는 형님애들 챙기고... 형님과 저는 함평농장에 내려가고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마장리 천재 소리듣던 우리형님, 머리 시들어 가는 것 남들한테 안보이고, 형님 숨 놓을 때까지 제가 수발하겠습니다". 최동진의 진심이었으리라. 형 최동성을 안타깝게 보는 그의 눈물은 적어도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최동진이 내미는 고구마에 과거 어느 한 지점으로 되돌아간 최동성, 고구마를 들고 거실에 있던 가족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머니, 동재, 동숙이...아픈 여동생에게는 한 개 더... 최동성의 행동은 그의 오랜 후회와 상상으로 인한 것이었으리라.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자했던 동진의 말대로 그리하고 싶었던... 그래서 온식구가 살아남아 고구마 배터지게 먹어보자고... 

아들 원재 앞에 무릎꿇고 우는 최동성, "아버지, 고구마가 두 개밖에 없어서 동진이가 식구들 불러서 같이 먹자고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내가 둘이서만 먹자고 했습니다. 내가 불렀으면 우리 식구들 아무도 안죽었을텐데... 죄송해요, 아버지. 미안해요 엄마".

아이처럼 우는 박근형의 연기는 얼마나 소름끼쳤던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정한용의 모습도... 최동성의 인생에 가장 후회스러운 시간이 있다면 아마도 고구마 두 개를 동생과 몰래 먹었던 그 시간이었으리라. 그리고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천마건설 배영완(한정희의 남편이자 성재의 친부)을 죽게 만든 일이었으리라.  

치매로 자주 과거로 돌아가는 최회장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난리통 이후의 최동성은 줄곧 소나무 뒤에서 몰래 고구마를 먹었던 그 최동성이었다고... 그로인해 가족을 잃었지만, 그 후회가 그를 변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여전히 그는 혼자 먹고 배부르고 싶어하니 말이다. 그때는 동생과 라도 나눠먹었는데, 지금은 나눠먹을 생각도 없다.

서윤에게 성진그룹을 맡기려 하는 것, 종국에는 그의 손자 명훈이에게 왕좌를 넘기고 황금의 제국의 주인은 최동성 자신의 핏줄로만 이으려 한다. 회사를 운영할 능력이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다. 우선은 그의 핏줄이어야만 한다. 최서윤(이요원)도 여기에는 아무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최민재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최민재가 친오빠가 아니기 떄문에 경영권을 넘겨줄 수 없는 최서윤이다.  

회사 경영권을 지키려는 최서윤, 그러나 회사경영에 뜻은 없는 최서윤, 최서윤 역시도 나는 응원하기를 주저한다. 성진그룹 왕좌를 지켜가는 그녀의 방법 역시 정도를 걷는 것은 아니었다. 용역들을 동원해 스위트룸 아파프 분양에 차질을 빚게 하고, 권력을 이용해 학교, 지하철 계획도 변경시켜 버린 그녀다. 최민재와 장태주를 막기 위해...

최민재의 새 와이프 유진을 만나 질투심을 이용해 대출을 막아버리고, 자금난에 빠지게 하는 방법 역시 치졸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싸움판이 크니 치졸이라는 단어는 격에 맞지 않고, 정정당당하지 않았다고 표현하자. 

최서윤을 응원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정정당당하지 못한 방법에 있지 않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최동성의 욕심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최동성이 가고 난 후, 그녀는 성진그룹을 곱게 지키다가 원재의 아들 명훈이에게 성진그룹을 넘기려 하는 착하다라고 하기에는 무모하다 싶은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최원재의 아들이자 최동성의 장손이기도 한 명훈이라는 아이, 스위스에 유학중이라는 것만 나오고 그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알려진 바없다.

그런데 말이다. 최명훈이라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그 아이는 경영에 뜻이있고, 또 그의 경영마인드는 어떠할까... 그가 아버지 최원재처럼 개차반이 아니라는 보장 또한 없다. 그런 아이에게 최동성의 장손이라는 이유로, 수만명이 딸려있는 성진그룹을 맡긴다고? 기업이 세습된다는 거야 삼척동자도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그래서 일까... 말단 대리부터 시작해 해외 공사판 현장에서 성진을 위해 몸바쳐온 최민재, 태어나자 마자 최동성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지분을 넘겨받고, 대학졸업 선물로 수백억의 회사를 이마에 땀한방울 흘리지 않고 얻은 최서윤, 시청자에게 권한을 준다면 나는 기꺼이 최민재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진다.

손현주의 연기가 나를 설득시키기도 남았음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결혼식날 10년 병상을 지켜온 아내 윤희가 죽었다는 말에 고개를 떨구고 울던 최민재, 장태주(고수)를 올려다 보는 핏줄 선 그의 눈을 본 순간, 성진의 오너가 될 자격을 주고 싶었던 것은 나뿐이었을까... 솔직히 아버지를 잃고 피투성이가 되어 돈가방을 들고 아버지의 유해를 뿌린 부두에 가서 울던 장태주보다 최민재가 더 마음을 움직여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한다, 내 딸아", 피도 눈물도 없이 고구마 두 개에 맺힌 후회와 슬픔을 꿈으로 바꾸고 앞만보고 달려왔을 최동성, 딸에게 사랑한다는 그말은 얼마나 깊게 사람 마음을 동요시켰던가...

사그러져 가는 육신과 정신, 그도 죽음이 두렵고 무섭다. 모든 것을 내려두고 떠날 준비를 하는 그는 딸 서윤을 안고 울었다. 아니 서윤에게 기대 울었다. 노배우의 눈물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잊게 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 미련, 만감이 교차하는 제왕의 눈물, 서윤과 부둥켜 안고 우는 최동성에게는 제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죽음 앞에선 아버지,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일 뿐이었다.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딱 한 번 주는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 선...

 

"함께가자, 황금의 제국으로", 하루만 일찍 그가 내민 손을 장태주가 잡았더라도 아내 윤희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를 최민재, 손현주는 눈물 한줄기로 최민재를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연기 내공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황금의 제국, 엘도라도를 꿈꾸며 최민재와 장태주는 결국 같은 배를 타게 됐다.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되는 제국의 패권을 향한 전쟁, 그 승자가 누가 되든 우리네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나는 최민재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가 성진을 위해 땀흘리고 있을때 최서윤은 무엇을 했으며, 훗날 왕좌가 예약된 명훈이라는 아이는 무엇을 했는가 싶어서 말이다.

 

대한은행 대출을 막은 것으로 최민재를 막았다고 생각했던 최서윤, 장태주와 최민재의 반격에 휘청인다. 최서윤에게는 최대의 위기다. 어떻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파트 계약금 천억원으로 유상증자 주금을 확보한 최민재는 현재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최동성을 금치산자로 신청하겠다는 최동성의 사위 손검사까지 최민재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이고.

 

유상증자에 참여한 가족들을 침몰시키겠다는 최서윤의 다부진 결심, 언니와 오빠라도 봐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최서윤에게 변수는 장태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가진 7%의 지분 절반을 주겠다고 제안한 최민재는 동아줄을 잡은 것이 아니라, 추락하는 날개를 스스로 만든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서윤은 어떻게 위기를 타개할까... 유상증자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 내가 최서윤이라면 주식을 사들이지 않을 것이다. 최민재가 몽땅 사들이게 만들 듯 싶다. 그렇게 되면 최민재에게 현금동원력은 없는 셈이 되고 만다. 물론 계약금 천억을 최민재가 유용하게 한 장태주 역시도 현금 보유는 제로가 되는 것일테고...

 

최서윤의 반격은 그 때 시작될 것이다. 환치기로 도박을 한 오빠 최원재의 환치기 관련자료는 팔랑귀 최원재를 최서윤 편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고, 최서윤은 정면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할 것이다. 최동성의 건강은 성진그룹의 아킬레스건이다.  

최서윤의 진짜 반격 초강수(물론 이는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고, 작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반전을 준비했겠지만)는 최회장의 병세를 공개하는 것이다. 최회장의 건강이상에 주주들은 흔들릴 것이고, 그룹 왕권을 둔 형제들의 난은 성진그룹에 대한 불안감을 치솟게 만든다. 성진그룹의 위기설은 곧 주가폭락이다. 주가가 폭락하면 유상증자에 몰빵한 최민재와 장태주는 어떻게 될까... 유상증자에 주식을 샀던 대주주와 개미들은 동요하게 될 것이고, 앞다투어 주식을 내놓을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현금을 다 동원해 유상증자에 올인한 최민재와 장태주로서는 더이상 주식을 사들일 자금이 없다. 팔아도 헐값이다.

그때 주식을 사들이는 최서윤, 폭락한 주식은 금을 쓸어담는 것이나 진배없다. 아파트 계약금 천억을 최민재에게 건넸던 장태주는 바닥으로 내려가는 주가에 X줄이 탈테고, 최서윤은 장태주가 가진 최민재의 지분 절반 3.5%를 정상가로 구입하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하리라... 돈이 신용인 그곳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있는 전개가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최서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들의 싸움에 끼어든 소액주주들, 수많은 개미들은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전 재산을 털어넣은 사람도 있으리라, 그 액수가 적든 많든 누구에게나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엘도라도였을테니까...

수백억 수천억을 잃을 그들보다 몇백만원, 몇천만원을 잃을 개미들, 최서윤이 최민재와의 싸움에서 이긴다고 해도 그것은 누군가의 눈물이 담보된 승리일 뿐이다. 게중에는 어쩌면 장태주의 아버지처럼 30년을 리어카를 끌면서 겨우 하나 낸 밀면집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박경수 작가가 말하고 싶은 황금의 제국을 향하는 자들, 과연 장태주, 최민재, 한정희(김미숙), 최원재 뿐이었을까? 떳다방을 동원해 아파트 프리미엄을 치솟게 만들자, 아파트 분양권만 사면 그 자리에서 5백에서 수천을 벌 수 있는 곳을 향해 적금을 해약하고 달려간 복부인들... 다르지 않다. 작가가 은연중에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돈! 돌고 돌아 돈인가, 사람을 돌게 만들어 돈인가...

 

***그냥 뻘소리 

1. 글이 쓰잘데없이 긴 이유: 어제 오늘 비슷한 시간대에 연속 정전사태로, 어제 쓰던 글에 이어 써서... 어제도 글쓰던 중 정전으로 컴 나가고 오늘도 또 같은 반복 ㅠㅠ, 전력난때문인지 알수없지만, 오후 시간만 되면 이 더위에 불안감으로 덜덜;;

2. 최동성(박근형)이 즐겨먹는 노란 속살의 고구마, 최동진(정한용)이 즐겨먹는 은박지에 싸인 양갱, 그들이 좋아하는 간식에도 금과 은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발상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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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4 12:48




끊어져 버린 팔찌와 함께 야수의 모습을 드러낸 최강치,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담여울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손톱이 자라나고 머리 끝부터 달라져 버린 반인반수 최강치의 모습은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이승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구월령과 윤서화의 아들 반인반수 최강치가 있었을 뿐입니다. 진짜 괴물같아서 저도 모르게 헉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분장과 연출의 효과보다 이승기의 리얼한 야수 표정에 심히 놀라고, 한편으로는 꺼려할 수도 있었을 캐릭터를 선택한 이승기의 연기도전에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박무솔의 죽음은 6회 도입부에서 강치에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부연설명하는 장면이 더해져 슬픔이 배가 되어 꺼이꺼이 울었네요. 업둥이라고 놀림받은 강치가 동네 친구들과 싸움을 일삼자 박무솔이 강치에게 말했죠.

"강치야, 난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그때 강가에 떠내려 오지 않았다면 내가 널 만날 수 없었을테니... 혈연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이어진 관계 또한 가족과 다를바 없다. 마음만으로 치자면 넌 내게 아들과도 같아".

업둥이라고 놀린 동네 꼬마아이들에게도 박무솔은 점잖게 꾸중하기도 했지요. 강치를 놀리는 것은 곧 박무솔 자신을 놀리는 거라 간주할테니 놀리지 말라고 말이죠. 

죽어 가면서도 강치에게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어주는 박무솔, "잊지말거라, 넌 내게 아들과 똑같아. 우리 태서와 청조를 지켜다오", 하늘과도 같았던 박무솔이 칼에 맞자 분노로 야수본성이 나오기 시작한 강치, 그를 막아선 이는 소정법사였지요.

거센 회오리 바람과 함께 순신간에 사라져 버렸지만, 사라진 강치로 인해 박무솔 피살사건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바로 가루로 뽀사버려도 모자랄 것 같은 나쁜 놈 조관웅의 간교함으로 말이죠. 강치를 박무솔을 죽인 범인으로 몰아 현상금까지 건 이놈의 배포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오다 못해 순대랑 놀자고 활개를 치고 다니는 수준이군요.  

 

백년객관을 떠나지 못하는 박무솔의 시신, 살아서 정승판서가 부럽지 않았던 백년객관의 관주 박무솔이 역모의 누명을 쓰고 멍석에 말아 나가는 장면은 눈물없이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아들 강치를 보지못하고 나가는 수레는 가족들이 밀어서야 겨우 움직였을 뿐이지요.

현장에서 박무솔이 조관웅 수하의 칼에 찔려 죽은 것을 목도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거늘, 세상 의지하고 사는 이라고는 박무솔 어르신과 청조에 대한 순정밖에 없는 강치를 살인범으로 몰아세운 조관웅, 사건의 정황을 모르는 저잣거리 여수 고을사람들에게 박무솔을 죽인 파렴치한 놈으로 몰렸으니 강치의 앞날이 험난하기만 합니다.

 

열흘만 동굴에서 조용히 지내라는 소정법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백년객관으로 내려간 강치, 20년전에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다고 버려진 아픔을 내비친 강치였지요.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며 눈물을 머금은 강치, 부모에게 버림받고 업둥이로 살아야 했던 강치의 픔을 소정도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비밀을 누설하면 강치가 사람이 되지 못하나 보더군요. 강치의 생모 윤서화의 마지막 유언, 사람들 속에서 온전한 사람아이로 자라게 해달라는 유언을 말해주지도 못하고 소정법사의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 갈 뿐입니다.

속이 또 타들어가는 인물이 있지요. 목숨을 두번이나 구해준 강치, 그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행적이 묘연해지자 강치를 찾아나선 담여울입니다. 추격꾼에게 들킨 담여울을 또 구해준 강치, 가까이서 본 담여울의 고운 얼굴에 머쓱한 농담을 건네보는 강치였죠. 담도령이 아니라 담낭자인데 강치가 담여울이 여자라는 것을 알면 이쪽 커플의 감정선도 변화가 있을 듯한데, 아직은 오매불망 청조뿐인 강치와 청조가 더 애틋해서 전 어느 커플에게 마음을 줘야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네요.   

착한남자에서 강마루 여동생으로 나왔었던 청조 역의 이유비, 사극연기도 잘하고 청조라는 캐릭터를 강하고 야무지게 잘 그려가고 있어서 이쁘게 보고 있는 중입니다. 박태서 역의 유연석도 연기가 좋아서 구가의 서에서 가능성있는 젊은 연기자들을 발견한 기쁨까지 함께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백년객관으로 내려간 강치는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돼버린, 집이자 그의 세상이었던 백년객관의 모습에 망연자실합니다. 매일 사람들이 북적대고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백년객관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강치, 반드시, 기필코 그놈 모가지를 자기 손으로 따버리겠다고 결심하지요. 

청조와 백년객관 식구들을 구출하러 관아에 잠입한 강치, 관기로 끌려가게 된 청조를 구하고자 하지만, 다음날 참수형에 처해지는 오라버니 태서를 먼저 구해달라는 말에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죠. "기다려, 반드시 데리러 올게", 청조의 이마에 약속의 입맞춤을 해주고 떠나는 강치, 그러나 청조와는 그것으로 이별하게 될 듯하니 불쌍한 청조를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관기가 되어 혹이라도 짐승같은 놈 조관웅의 수청을 들게 되면 어떡하나 조바심으로 제 속이 다 타네요.  

옥사로 달려간 강치는 태서만을 겨우 빼내와야 했지요. 안방마님 윤씨부인이 강치의 우직한 마음을 이제 이해하고 강치를 받아들이는 듯하더군요. 목숨을 걸고 청조와 태서를 지키겠다는 강치의 맹세, 사람인지 뭣인지도 모를 놈의 맹세따위를 어떻게 믿느냐고 찬바람 쌩쌩 불었던 윤씨부인이었는데 말이죠.

어차피 추노꾼에게 쫓길 신세, 차라리 관노로 살겠다는 말에 백년객관의 식솔들 모두 윤씨부인과 함께 하겠다고 옥사에서 나가지 않은 백년객관 하인들, 생전의 박무솔이 아랫사람들에게 어떻게 베풀고 품고 살았었는지를 보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박태서를 박무솔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던 도둑아저씨에게 맡기고 추격꾼을 유인해 산으로 도망간 강치와 여울,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습니다. 강치의 운명을 예고라도 하듯이 끊어진 팔지와 함께 강치의 반인반수 모습이 드러났지요.

강치의 변한 모습을 본 담여울이 그 충격적인 정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군요. 팔찌가 끊어져 구슬이 흩어지자 몸이 타들어가는 듯이 아프고 죽을 듯이 뜨겁다고 청조만을 애타게 생각하던 강치의 몸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버렸으니 말이죠. 

포효하는 반인반수 최강치의 모습에 소름이 쫙 끼칠정도로 무섭더군요. 이승기의 분장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이승기의 반인반수 표정연기는, 이승기로서는 훈남이미지를 내려놓는 과감한 도전과도 같았을 겁니다.

연기와 캐릭터를 위해 이승기의 얼굴 컴플렉스(전 컴플렉스라 생각하지 않지만, 이승기는 남들이 입이 크다고 한다고 호탕하게 웃어 넘기는 인터뷰도 읽었는데, 입이 큰 사람이 먹을 복이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승기씨 신경쓰지 않아도 될 듯 ㅎㅎ)를 최대한 이용하는 모습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초창기 1박2일에서 찬물에 머리를 꼭 감고 얼굴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이승기였었죠. 리얼 야생이지만 배우에게는 이미지 관리라는 것도 중요했을 테니까요.

그런 이승기가 얼굴의 모든 근육을 최대한 일그러뜨리면서 야수를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리얼한 야수의 모습을 위해 비주얼을 포기하는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비가 와도 뛰지 않는 체통이 중요한 양반님네들이야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경박하고 천박하다고 생각했을 시대, 백년객관 업둥이로 자란 강치라는 인물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반인반수의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캐릭터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더군요.

야수로 변신한 모습 뿐만아니라, 좌충우돌 욱하는 성격의 최강치라는 인물을 그려감에 있어서도 까칠과 장난기, 건방질 정도로 우직한 뚝심과 배짱, 애틋한 가슴앓이, 분노하는 감정의 폭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는 이승기입니다.

마름의 아들 업둥이라는 신분에 맞게 양반들이 보여주는 사극에서 느껴지는 진중한 무게감은 최대한 줄이고, 그러면서도 자신감과 배짱 두둑한, 요즘말로 하면 짱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할까요?

 

비주얼의 망가짐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과 두려움없는 도전, 이승기는 구가의 서 최강치라는 반인반수 캐릭터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일 진보시켰습니다. 개성 강한 캐릭터까지 소화할 수 있는 연기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죠. 비주얼의 망가짐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승기, 노력하는 자의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이승기를 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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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3 14:12




"잊지 말거라, 넌 내게 아들과 똑같아... 우리 태서와 청조를 지켜다오", 평생 모실 하나뿐인 주인이자 아버지와 같았던 박무솔(엄효섭)이 강치를 향해 파고들어오는 칼에 대신 찔려 죽음을 맞이하자, 최강치의 반인반수의 본성이 활화산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액막이 팔찌의 봉인도 막지못한 강치의 분노, 박무솔에 대한 강치의 애정과 존경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강치를 지켜준 박무솔, 그의 훌륭한 인품만큼 큰 아버지의 사랑을 죽음으로 보여주었지요. 그래서인지 드라마지만 박무솔을 잃은 슬픔이 크네요ㅠㅠ.

연한 초록빛의 눈으로 변한 최강치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고, 그 눈빛을 조관웅도 보게 되었죠. 강치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 강치의 운명이 첩첩산중이겠군요.   

불길한 기운이 백년객관을 감돌자 소정법사(김희원)는 강치의 존재가 드러날 위기에 처해질 것임을 예감합니다. 그의 친구이자 강치의 아버지인 구월령에게도 다가왔던 사람이 되는 치성의 마지막 시험관문처럼 말입니다.

 

구월령이 그랬듯이 강치 역시 겨우 열 하루를 남기고 20년의 공든탑이 무너지는 위기에 처해지죠. 해가 지기전에 백년객관을 나와 다음날까지 들어가지 말라는 소정법사의 아리송한 말을 무시하고 백년객관으로 들어가는 강치, 그날은 청조의 혼사를 앞두고 함진아비가 들어오는 날이었기에 착잡한 마음을 가눌길 없었던 강치도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려했었지요.

강치도 청조도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도 같은 박무솔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강치도 아니었고, 청조 역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말이죠. 서로의 가슴에 묻고 살 수 밖에 없는 이름 청조와 강치, 그러나 그들의 이별은 혼례로 끝나지 않습니다. 더 큰 비극이 두 사람을 슬픈 운명으로 던져버렸지요. 독사같은 놈 조관웅(이성재)의 음모로 말이죠.

윤서화의 집안을 역모로 몰아 멸문지화를 당하게 했던 조관웅, 박무솔에게도 역모의 누명을 씌워 백년객관을 한입에 꿀꺽하게 생겼습니다. 이놈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아직 다 나오지는 않았지만, 남도 일대의 상권을 잡고, 왜인들과 손잡고, 그 재력으로 뭔가를 할 꿍심이 있는 듯하더군요. 말 그대로 진짜 반역을 꿈꾸는 놈같으니 말입니다.

정명가도, 즉 명을 치러 가게 길을 내달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해 온 풍신수길의 의도를 파악한 이순신 장군, 모함으로 백의종군을 하면서도 오직 조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한 우국충정의 마음밖에 없었던 불멸의 영웅, 한산섬 수루에 홀로 앉아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을 장군을 상상하면 애국심이 불끈불끈합니다. 군자금의 용도를 묻는 박무솔에게 거북선의 단면도를 펼쳐 보이는데, 드라마인데도 거북선의 탄생을 보는 듯 감개무량함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성웅 이순신 장군과 박무솔의 만남은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지하 비밀방에 가득한 은자를 조선의 백성과 바다를 지키기 위한 군자금에 쓰라고 내어주는 박무솔, 그들에게 나라의 안위는 개인의 이익 위에 있었습니다. 드라마 캐릭터지만 무한 존경의 마음을 바치옵니다. 물론 우리의 이순신 장군님께는 평생 무한 존경의 마음이지만요.

 

강치와 이순신 장군의 실질적인 첫만남은 뜨헉하게 만들었지요. 저잣거리에서 봉출 일당이 빼앗은 고리대금을 상인들에게 나눠주는 강치를 흐뭇하게 봤던 이순신 장군에게 박무솔은 강치를 두고 아들이나 다름없는 아이라고 소개하지요. "뚝심도 있고, 책임감도 강하고, 무엇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아이라면서 말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좌수사의 휘하에 거둬 큰 재목으로 써달라"는 말에, 박무솔만을 모신다는 무한 존경심을 드러내서 시청자와 박무솔을 뻘쭘하게 만든 못말리는 강치였습니다. 

"싫습니다. 저는 아무데도 안갑니다. 나리(박무솔) 말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모시지 않을 겁니다. 태서를 도와 객관의 마름직을 이어받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은 관심없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괜한 눈독들이지 마십시오". 이런이런~~ 솔직해도 무식하게 솔직하고 충직스러운 놈을 봤나?ㅎㅎ 그런 강치라서 더 좋다!

 

강치를 눈여겨 본 인물이 또 있었지요. 담여울의 아버지 담평준(조성하)이었습니다. 담평준 역시 강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눈치더군요. 여울의 호위무사 곤에게(이 녀석도 여울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질투하는 모습이 귀엽더이다) 무슨 이상한 변화가 있으면 즉시 알리라는 것을 보면 말이죠.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청조 혼례를 앞두고 함이 들어오는 날, 백년객관에 큰 마가 끼어 반인반수의 슬픈 전설을 이을 다음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납폐가 탁자 위에서 떨어지면서 다가오는 불길한 예감, 들이닥친 포졸들, 그리고 조관웅이 음흉한 속셈을 드러냈지요.  

간밤에 보낸 자객을 잡은 것을 따지러 간 태서, 그래도 참판까지 지낸 분이라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했던 박무솔의 뒤통수를 이리 야비하게 치다니, 정말 끓는 기름에 튀겨 버리고 싶더군요(저의 생각을 잔인하게 만드는 이성재의 나쁜 놈 연기, 역시 굿입니다). 박무솔을 정여립의 대동계 일당으로 몰아 역모죄를 씌우는 조관웅이었죠. 이놈은 역모 전문가인가 봅니다.

 

역모씌우기 전문가 조관웅에게 한방 먹이는 최강치, 그 호기와 한 자 한 자 콕콕 찝어 바른말만 하는 강치의 말에 속이 후련하더군요.

"역모죄? 놀고들 계시네. 쌔빠지게 번돈으로 나라에 꼬박꼬박 세전 바쳐가며, 배고픈 사람들 까지 굽어살핀 우리 나리가 역모죄면, 당신들은 뭐요? 나라가 거둔 세전으로 꼬박꼬박 녹이나 받아 처먹어 가며, 하는 일도 없이 기왓집 방구석에 개폼잡고 들어앉아 개권세나 부리고, 선량한 상인들 상대로 심심하면 잡질이나 하는 당신들은 뭐요? 놀고 먹는 심심죄요?", 놀고 먹는 심심죄인들 요즘도 심심찮게 보는 위인들이죠. 아무튼 맑지 못한 윗물들은 예나 지금이나 쩝입니다. 강치야~ 시원하게 말 잘했다, 궁디톡톡. 

그나저나 박무솔을 역모죄로 엮어 백년객관을 차지하려는 조관웅의 악질적인 음모에 박무솔이 죽음을 당하고 말았으니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조관웅의 수상쩍은 행적을 눈치채고 있는 좌수사 이순신 장군과 담평준이었지만, 조관웅이 한 발 빨랐습니다.

누구보다 강치에게 따뜻했던 아버지와 같은 분을 잃은 강치의 슬픔과 분노는 20년의 봉인을 풀고 나올 정도로 큰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고, 회오리처럼 터져나온 강한 분노는 봉인된 반인반수의 야성을 표출할 정도였습니다. 

청조와 태서를 지켜달라는 박무솔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내어놓을 강치, 그 지킴이 사랑은 아마도 강치가 자신의 정체를 안 후의 혼란에도, 그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구가의 서'에 담긴 주제가 되겠지요

최강치도 어쩌면 수천년의 무한한 삶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천년의 영원한 삶대신 유한한 인간의 삶과 사랑을 선택한 아버지 구월령처럼, 강치 역시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인간의 삶을 택하겠지요.

"저한테 나리와 백년객관보다 더 큰 세상은 없습니다"라고 했던 최강치, 박무솔의 죽음과 함께 그의 세상을 잃어버렸습니다. 태서와 청조를 지키는 것, 박무솔 어른의 유언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에게 세상을 준 박무솔 어른에 대한 보은이겠지요. 강치에게서  가장 큰 세상을 앗아가 버린 조관웅, 그에게서 백년객관을 다시 찾아와 태서와 청조에게 돌려줘야 하는 강치입니다.

 

강치에게 희망적인 것은 담여울(수지)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윤서화는 구월령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신수라는 정체때문에 배신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담여울의 선택은 윤서화와는 다를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인간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던 구월령을 죽여버린 담평준의 마음에 남아있을 듯한 회한 또한, 담여울의 선택에 변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희망을 가져보게도 하고 말이죠.

 

좌수사 이순신 장군에게 아들과 다름없는 아이라고 소개를 해주고, 조관웅에게는 곤장 2백대를 강치 대신 맞겠다고 했던 박무솔이었습니다. 칼에 찔려 숨져가면서도 강치에게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는 그는 진짜 강치의 아버지였습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대신 내어주고 가면서도, 자식의 안전만을 걱정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사람이라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가난한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박무솔의 인성을 보고 자란 최강치, 박무솔은 강치에게 아버지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아버지이자 하늘을 잃어버린 최강치, 그의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강치의 분노는 백년객관이라는 세상을 넘어 조선이라는 더 큰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겠지요. 자신이 반인반수라는 정체성을 알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강치 역시도 구월령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숙명처럼 풀어야 할 악의 축 조관웅으로부터 지켜야 할 사람들, 그들이 곧 청조와 태서,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운명적인 사랑 담여울이자, 조선이 될 테니까요.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이승기의 연기는 사실 멜로나 액션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반인반수라는 판타지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할지가 내심 궁금했는데, 기대이상의 감정표현에 또 놀라게 되는 이승기 연기의 발전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장면을 찍기전에 이승기가 많은 고민을 했을 듯 하더군요. 박무솔의 죽음을 본 슬픔과 분노를 반인반수의 야성과 어떻게 혼합해서 보여줘야 할 것인지를 두고 말이죠. 

사람과 짐승, 두 존재의 정체성이 혼돈된 캐릭터의 감정을 표출하기란 사실 쉬울 것 같으면서도 생각처럼 쉬운 연기는 아니지요. 이런 경우 많은 부분, 분장의 효과를 보기도 합니다.

런데 제가 놀라웠던 것은 초록빛으로 변한 이승기의 눈동자때문은 아니었어요. 박무솔의 마지막을 지켜보며서 흐르는 굵은 눈물줄기, 그 슬픈 감정을 포효하는 분노보다 더 무섭고 섬뜩하게 표현한, 조관웅(이성재)에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사처리와 표정이었습니다.

"죽여버리겠어". 마치 짐승이 '크르릉'하며 성대를 울리는 소리처럼 들리게 표현하더군요. 짐승들의 감정표현, 사람으로 말하자면 화를 내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 처음부터 컹컹 짓거나 포효하거나 달려들지 않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크르렁 소리를 내서 상대를 노려 보는 것이 첫 반응입니다. 이 모습을 승기가 제대로 표현하더군요. 초록눈빛으로 변하지 않았더라도 짐승의 모습이 보였던 이승기의 반인반수 괴물연기, 분장을 뛰어넘은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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