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포교'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03.05 '추노' 굴욕적으로 살아난 송태하, 사람답게 죽은 천지호 (70)
  2. 2010.02.27 '추노' 송태하의 잘려 나간 상투의 의미 (51)
  3. 2010.02.26 '추노' 신들린 듯한 장혁의 눈물연기, 가슴으로 울다 (31)
  4. 2010.02.25 '추노' 옥에 티 넘쳤던 15회, 치정극과 시대극의 갈림길에 서다 (27)
  5. 2010.02.16 '추노' 언년이가 혁명에 방해된다는 이상한 논리 (43)
2010.03.05 08:40




추노의 묵직한 존재감 천지호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아 명복을 빌어 주는 기도라도 드리고 싶다면, 송태하는 구출장면에서부터 용골대와의 만남, 그리고 언년을 구하려는 대길의 앞길을 막은 것까지 송태하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밉상의 연속이었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천지호의 죽음은 18회 명장면이었고, 송태하 구출기는 옥에 티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송태하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인지 애초부터 송태하라는 인물의 한계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캐릭터의 비호감을 떠나 인물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의 뿌리 깊은 양반의식은 고쳐질 수 없고, 고칠 수도 없을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치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신분의식을 버리고 노비를 사랑한 사람은 드라마에서 대길이 한 사람이면 족하지요. 송태하까지 신분의식을 버리라고 하기에는 조선의 사대부들의 견고한 의식상 무리일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외세의 힘으로 목숨까지 부지했네요.  

최악의 옥에 티, 송태하의 굴욕적인 구출
이번 18회에서는 그가 받드는 나라가 조선인지 목숨을 구해 준 청 인지까지 의심스럽더군요. 아무리 썩어빠진 나라라 할지라도 조선은 그가 지켜야 할 나라인데도, 청 용골대 장군을 마치 형제처럼, 전우처럼 대하는 모습이 거슬렸습니다. 병자호란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오랑캐와 싸웠던 그 송태하장군 맞나 싶더군요. 물론 오랜만에 본 반가움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용골대가 자신을 구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일텐데 감사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용골대 대장과 검을 섞고 무인으로서 친구는 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청 용골대 부하 '용이'의 죽음에 눈을 감겨주고, 마치 자신의 부하가 죽은 듯 슬퍼하는 모습은 병자호란을 겪었던 전 조선군의 장군이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자신이 눈을 감겨 준 그 오랑캐들이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통해 조선을 짓밟고 수많은 조선사람을 죽였다 이 말이에요.
임금까지 무릎꿇고 삼전도에서 충성서약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던 오랑캐였어요. 소현세자가 청을 배우고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 이런 식의 간도 쓸개도 빼놓는 식의 우호관계를 말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지난 글에서 대길이와 송태하를 구출할 인물로 천지호와 황철웅으로 추측했는데, 천지호는 얼추 맞았는데 황철웅은 빗나갔네요. 하지만 워낙 드라마를 보며 분석하고 추측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개인적으로는 황철웅에 대해서 추측해 본 것도 재미있었어요.
사실 황철웅이나 곽한섬이나 천지호나 혹은 노비당이나 누가 구했더라도 기분은 좋았을 겁니다. 청의 용골대를 용의선상이 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은 추측하고 싶지 않았고, 제작진도 청의 용골대가 구하는 것만은 설정하지 말아주었으면 싶었는데, 가장 바라지 않는 인물들이 송태하와 대길이를 구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신단으로 조선에 온 용골대가 송태하를 구하기 위해 무사들을 풀어 조선 형조옥의 처형대를 습격해, 조선 죄수를 구출했다는 것은 내정간섭의 문제입니다.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둘러대며 좌의정에게 보고는 했지만요. 내정간섭을 받는 자체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왜 주인공들이 외세인 용골대에게 구출되어야 했느냐는 것이에요. 송태하의 혁명관의 한계를 떠나 외세를 끌어들여 주인공들을 살려 낸 제작진에게 실망을 했습니다.
자신을 구출한 용골대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포졸들과 추격자들을 헤치고 나가는 송태하의 모습은 그의 부인인 언년이가 저자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을 받고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보다 한층 어리바리더군요. 불면 날아갈새라 옥체라도 된양 빠져나가는 모습이 송태하가 무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유약하기 그지 없었어요.
송태하는 혁명을 꿈꾸기에는 그릇도 인물됨도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가진 신분적 한계가 아니라, 국가관도 심히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청의 용골대에 의해 송태하는 목숨을 건졌을 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자로서 보기에는 상당히 굴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송태하가 이루려는 세상이 청이라는 세력을 등에 업지 않고는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패배감도 들더군요.
용골대의 흑심과 송태하의 생각이 차이에 마음을 어떻게 돌릴지는 모르겠지만,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송태하가 용골대와의 의리를 어떻게 끊어낼지 그 한계도 분명해 보입니다. 원손을 찾으면 우선 봉림대군을 만나겠다고 했는데, 청을 등에 업은 송태하를 봉림대군이 곱게 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봉림대군(후에 효종)은 청이라면 이를 갈고 북벌정책을 폈던 인물입니다. 원손의 목숨을 두고 봉림대군과 어떤 합의점을 이끌어 낼지 모르겠지만, 송태하가 원손의 왕위정통성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원손을 두고 봉림대군을 만난다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자로 책봉되어 다음 보위가 내정되어 있는 인물이 얼마나 관대할지 우리 왕실의 피의 역사가 정답을 말해 주고 있지요.    

최고의 명장면, 사람답게 죽은 천지호
추노 18회는 대길이와 송태하가 구출되었다는 것보다 천지호가 죽었다는 것이 더 큰 사건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천지호의 죽음에 허무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천지호의 역할은 극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비중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기에 적정한 시점에서 하차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천지호를 대신할 월악산 짝귀(안길강)가 등장함으로써 천지호의 캐릭터와 살짝 겹쳐지는 부분도 있겠더군요. 이번회 등장한 짝귀의 말투나 행동거지를 보니 말이지요. 짝귀 안길강의 허와 실의 포스가 앞으로 추노의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천지호의 죽음은 아쉽지만 그 죽음만큼은 18회 명장면이었습니다. 천지호답게 죽었고, 가장 사람답게 죽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밧줄에 매달려 자신의 이름 '대길아'라고 소리쳐 부르는 대길은 세상에 대한 한과 미련을 끊기 힘듭니다. 여전히 언년이, 그의 삶의 의미였던 언년이에 대한 사랑을 끊고 혼자 저 세상으로 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숨 쉬기가 버거워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밧줄을 잡았던 손을 풀기 직전에 내뱉은 이름은 언년이입니다.
툭 떨어지는 대길의 손을 보는 언니 천지호, 천지호는 포졸로 위장하고 있었어요. 역시 천지호다웠네요. "칼 춤 한번 대차게 춰야겠구먼" 라며 천지호가 대길이를 향해 달려 가는데, 약속이나 한 듯 지붕위에서는 궁수들이 활을 쏘고 정체불명의 선비들이 검을 들고 나타나 처형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송태하를 구하런 온 용골대 수하들이 송태하를 구출해 가고, 천지호는 대롱대롱 매달린 대길이를 끌어 내리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오는 포졸 방망이로 막으랴 밧줄을 풀랴 혼비백산이지요. 순간 검이라도 하나 빼았어서 내리치지 왜 저렇게 뜸을 들이나 싶었어요. 물론 송태하가 멋지게 칼을 날려 밧줄을 끊어줘야 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였지만, 그보다는 천지호의 실감나는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더군요.
천지호는 마음이 너무 급합니다. 대길이 숨은 넘어가겠고, 밧줄은 끊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이 뭘까 생각해보니 이빨로 물어 뜯는 거였겠더라고요. 천지호가 그 쇠심줄 같은 밧줄을 이빨로 끊으려는 장면은 너무나 공감되었고, 사실적이었습니다. 매니큐어로 분장한 명품이빨, 역시 천지호 성동일의 세심한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숨을 쉰 대길이와 현장을 빠져나오는데, 지붕에 매복해 있던 궁수의 화살이 천지호의 몸을 관통해 버렸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산속으로 도망쳤지만 끝내 천지호는 자리에 눕고 말았어요.  그래도 이 언니 마지막 가는 길에 옷 한벌 해줬다고 대길이를 끌어 안고 자기입에 저승길 노자돈을 넣는 천지호였지요. 천지호가 마지막 가는 길에 대길이에게 부탁한 유언은 간지러운 발꼬락을 시원하게 긁어달라는 거였어요. 대길이 꽁꽁 언 천지호의 발가락을 긁어주는데 천지호는 눈을 감고 말았어요. 참으로 허망하고 남길 것 없는 죽음이었어요.
어떤 사람은 혁명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위해 죽어가고, 어떤 이는 돈을 위해 일하다 길에서 객사하고, 또 어떤 이는 아무런 이유없는 개죽음도 있었고, 어떤 이는 치열한 권력다툼에 희생양이 되기도 했었지요. 높은 궁궐 담장 안에서는 자식에게 독약을 내리기도 하고, 며느리와 손자를 내쳐 사약을 내리기도 하고, 그런 임금 곁에서 역모로 죽은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지호의 죽음은 가장 인간다운 죽음이었고, 사람답게 죽었어요. 살아서는 개, 돼지 취급받았던 개차반 추노꾼이었지만, 걷어 먹인 동생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줄도 알고,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욕구를 해소하며 갔어요. 천지호에게는 돈도 사랑도 혁명도 하잘 것 없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 무좀으로 동상으로 발가락이 가려운 것이 그 순간의 고통일 뿐이었어요.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자신의 고통 발가락 가려움증을 동생 대길이가 마다 않고 긁어주니, 죽음은 허망하고 덧없어도 죽음의 순간만큼은 행복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꽁꽁 언 발가락을 입에 가져다가 호호 불어주는 대길은 천지호의 죽음도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냅니다. 어느 날 언년이에게 말했듯이, "난 말이다, 다 싫다. 네가 힘든 게 싫고, 네가 추운 게 싫다" 그러면서 언년이의 손을 호호 불어주었던 것처럼 발을 녹여줍니다. "언니 발이 꽁꽁 얼어붙었네... 따뜻할거야..." 혹이라도 저승길 가는 길 발 시려울까봐. 

송태하가 용골대 대장으로 받은 칼은 송태하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합니다.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는 청의 장군으로부터 받은 칼로 무엇을 베낸다 한들 이미 송태하의 명분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가 벨 것은 결국 조선이기 때문입니다. 청의 칼로 조선을 벤다? 송태하를 구출한 사람 역시 청의 용골대였다는 점에서 송태하는 이미 혁명의 정당성과 국가관의 정체성 마저 흔들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제가 추노의 최악의 옥에 티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반면 천지호는 야비하고 천한 개차반으로 세상에 왔을 때 빈손으로 왔던 것처럼 욕심도 야망도 세상에 대한 미련따위도 남김없이 갔습니다. 저승길 노잣돈마저 자기 손으로 넣고 가더군요. 빚도 남기지 않고 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천지호는 동생들에 대한 원수를 갚지 못했다는 포한도, 글 읽은 양반님네들의 혁명이니 세상이니,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어쩌네 하는 것들에 대한 갈망도 미련도 없이 가는 듯 보였어요. 칼춤 한 번 신나게 췄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저승 가는 길에 새로 지은 옷 입고, 입속에 노자돈도 두 닢이나 넣었고, 자기 죽으면 초라하게나마 시신이라도 수습해 줄 대길이도 옆에 있고, 이만하면 호사스런 죽음 아니겠나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18회 장면 중에 가장 멋진 장면을 꼽는다면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대길이 발가락을 긁자 웃는 천지호와, 언니가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시원하냐고 농을 치는 대길이 두 사람의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천지호는 그런 인물이었거든요. 사랑, 혁명보다도 자신의 동상걸린 발가락이 간지러운 것에 더 신경썼던...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죽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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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6 Comment 70
2010.02.27 06:46




추노 16회에서 조선 최고 무사인 송태하가 대길이에게 패배했다는 것과 저항없이 대길이에게 끌려가 좌의정에게 넘겨졌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대길과 송태하의 대결은 승부에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송태하의 자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송태하는 질 수 밖에 없었고, 또 져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송태하는 지금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뼈속까지 양반인 그가 부인 언년이가 노비였다는 사실에 무너져 내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대업이니 명분이니 원손이니 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대길이와 맞짱을 떴다면 그게 더 이해가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이 노비와 혼인을 했다는 사실은 송태하의 근본적인 것을 흔드는 충격입니다. 노비이면서 노비임을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송태하의 금강석같은 양반의식을 보면 그렇게 충격을 받은 것이 과장은 아닐 것입니다.
굳이 제도적인 법규를 따지자면, 당시 종의 세습은 모계를 따랐어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양반인데 부인이 종이라면 그 슬하의 모든 자식은 종이 됩니다. 아버지가 종이고, 어머니 양민인 경우라면 그 자식도 양민이 됩니다. 그런데 양반 여인이 양민이나 노비와 혼인을 하면, 그 자식이 양반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지요. 양반의 쓸데없는 증가도 문제지만, 양반들이 그들의 고고한 핏줄의식으로서는 인정하기 힘든 부분이었죠. 양반가의 여식과 노비와의 혼인을 결사적으로 금지한 이유도 이런 연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양반집에서 남자종은 노동력의 의미를 가지는 재산이었다면, 여종은 그 노동력의 공급원이었지요. 자기 집 여종이 어떤 사내와 눈맞아 자식을 낳더라도 자기 집안의 종이 되니 재산증식이 되는 것이죠. 초복이 친구 반짝이를 소한마리 값과 거래하는 것만 봐도 여종의 재산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말합니다. 양반이나 양민가의 여자와 종의 혼례를 죽이면서까지 막았던 것도 재산의 손실을 막고자 하는 양반님네들 계산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송태하가 언년이가 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라도 자신과 언년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종인지 양반인지 거기까지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부인의 출신성분은 그 자식까지 되물림되는 것이기에 중요한 문제지요. 서자들이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도 어머니의 피가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요. 
송태하같은 특히 사대부 의식이 투철한 양반들은 종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은 계급의식이 골수처럼 박혀있는 사람이에요. 사대부의 출발이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구별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에요.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던 노비와 혼인을 했으니, 송태하로서는 자신의 근본이 뿌리채 흔들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혁명을 넘어서 자신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하려고 했는데 글이 길었네요.
대길이와 송태하의 대결이 추노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했는데요, 이는 송태하가 비로소 혁명관을 세우게 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송태하에게는 정치적 사회적 혁명관만 있을 뿐입니다. 원손을 옹립해 부패한 조선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런데 조선비 등 유생들과 송태하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송태하는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송태하가 원손을 구할 때는 소현세자에 대한 충절심과 의리, 그리고 어린 원손을 생명의 위험에서 구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의 유일한 혈손이기에 원손 석견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정통성에 입각한 왕위계승론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권력을 잡겠다는 야망은 없었던 순수 무사였어요.
그런데 조선비를 비롯한 유생들을 보며 송태하는 그들 역시 권력욕에 사로잡힌 다른 장치세력과 다름없음을 알고 회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조선비와 송태하가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는 원손을 왕위에 올린다는 것만이 공통점이었다는 것이죠.
송태하는 혁명군의 수장으로 추대되면서 갈등하게 됩니다. 비로소 혁명의 가장 중요한 이유, 즉 누구를 위한 혁명이냐? 어떤 세상을 위한 혁명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봉착하게 된 것이지요. 지금까지 송태하의 혁명관이 뚜렷하게 나오지 않은 이유는 송태하가 아직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혁명의 당위성이라는 시류에 떠밀려 가고 있는 거예요.

대길이 "내가 그런 미천한 집안 종년한테 마음을 줬을 것 같나?"라는 말을 듣고 중심을 잃고, 정신도 멍해져 버린 송태하는 대길의 칼에 상투가 잘려 나갔지요. 대길과의 결투신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바로 송태하의 상투가 잘려나간 장면입니다.
상투란 일종의 자존심이자 조선 사대부 양반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조선 사대부들에게 상투란 중요한 신분적 의미였고, 자존심이었습니다. 흔히 '상투를 잡는다, 상투 꼭대기 놀고 있다, 상투를 올렸다' 등등의 말은 상기해 보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일제시대 단발령이 내려지자 상투를 자르느니 목을 내놓겠다고 자결한 유생들이 많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상투는 사대부 양반들의 혼이었습니다. 그런 사대부 양반의 혼이 잘려 나간 것입니다. 송태하의 한계일 수 밖에 없었던 신분이 잘려져 나간 것이지요. 
대길은 종 언년이와 평생 살 수 있는 양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꿈꿨기에 사회적 신분적으로는 언년이를 통해 오래전에 양반이라는 계급의식을 스스로 잘라냈던 혁명적인 인물입니다. 제가 대길이를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길은 개인적인 자기혁명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대길의 문제는 자기혁명으로부터 정치적 사회적 혁명으로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송태하와의 대화에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는 말이 그것이지요.

하지만 송태하는 정치적 사회적 혁명에는 눈을 떴지만, 송태하 자신의 혁명은 이루지 못했어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출발이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스스로의 입을 통해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혁명은 이루지 못했던 것이지요. 언년이가 종이었다는 사실은 송태하의 근본을 흔들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 사람에 차별을 두었던 견고한 껍질에 균열이 간 것이지요. 양반으로서의 혁명가 송태하는 있었으나 사람으로서의 혁명가 송태하는 되지 못했기에 그 균열의 고통이 클수 밖에 없습니다.
언년이 어떤 큰일이라도 따뜻한 밥 한공기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주체인 사람이 되고 있지 못했다는 자각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분이니 혁명이니 원손이니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송태하 자신이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 속에 있었기에 대길과의 결투에서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상투가 잘린 후 송태하는 노비 낙인을 가린 머리띠를 비로소 풀어 버렸습니다. 의식적 자각은 아니지만 행동으로 자각한 것이에요.
한양으로 가는 길에 대길과 송태하 두 사람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이는 한계와 동시에 두 사람의 뜻이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내 부인이 노비였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양반이고 상놈이고 서로 마음만 주고 받았으면 그걸로 된거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사람의 근본은 지엄한 것이다"
"너 같은 놈이 벼슬을 하니까 세상이 지랄맞은 거다. 너 같은 놈이 없었으면 나 같은 놈도 생기지 않았겠지. 결국 니놈은 니놈 자리로 돌아가 예전처럼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거겠지"
"너야 말로 조선의 질서를 바로 잡는다며 추노를 한다며 무고한 백성을 들볶고 왈패처럼 거들먹거렸겠지"
"당연하지,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그래야 살 수 있는 세상을 너 같은 벼슬아치들이 만들었으니까"
"너는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한 적이 있었나?"
"도술을 부린 홍길동도 못 바꾼 이 지랄 같은 세상을 바꾼다?"
"세상은 도술로 바꾸는 게 아니다. 사람이 바꾸는 거지"
"세상은 절대로 바뀌지가 않는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 함부로 하지마라. 그런 말을 가장 무서워 하는 사람이 있으니..."

두 사람이 한 곳에서 만나는 지점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가장 무서워 하는 사람에 있습니다. 바로 언년이지요. 송태하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세상에 뛰어 들었으나 정작 언년이가 종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허우적거려 버렸지요. 절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대길은 종인 언년이를 사랑하면서 가치관을 버렸으면서도, 사회적의식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언년이를 잃으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부인을 해 버렸습니다. 
언년이가 무서워 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송태하는 신분이라는 견고한 알에서 깨어 나와야 하고, 대길이 역시 그 말을 가장 무서워 하는 언년이에게 새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한 정치적 자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길이와 송태하의 혁명의 출발에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그 중심에는 언년이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비가 했던 말 "혁명에 낭만따위는 필요없어"와 묘하게 대치가 되네요. 대길이의 개인적인 혁명관이나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하는 송태하의 자각의 시작점이 사랑이었음을 보면 말이지요.

추노에 흐르는 혁명의 기본논리는 사람과 사랑에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사극은 궁궐 담장안에서의 혁명이었어요. 그들의 혁명논리는 권력, 정치, 이해타산, 탁상공론식의 명분 싸움, 정통성 등등의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혁명논리는 민초를 대변하는 저잣거리의 삶과는 딴 세상 이야기들이지요.
저잣거리에서는 임금이 자식을 죽였다고, 손자를 죽이려 한다고 죽창을 들고 궁궐을 향하지는 않습니다. 남인이니 서인이니 정치싸움이 꼴보기 싫다고 양반집을 쳐들어 가지도 않습니다. 보리 한됫박을 수탈해 가는 포졸때문에, 어린 딸을 늙은 양반 영감 수청을 들라해서 낫을 들고 호미를 들고 뛰어나갔지요. 이렇게 피부로 실감되는 억압에 정치의식이 성장되었고 저항의식이 싹텄지요. 그리고 그 저항의식들이 조직적으로 규합되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났어요.
추노에서 말하고자 하는 혁명은 개인의 자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의 혁명관이 미완인 것은 자신으로부터의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려나간 상투처럼 송태하는 뿌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송태하의 혁명관을 세우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지요. 그 혼란이 너무 크기에 송태하는 대길에게 질 수 밖에 없었고, 져야만 했습니다. 고통없이 알을 깨고 나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추노가 말하고 싶어하는 혁명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혁명은 개개인의 내부로부터 시작되고, 그 목표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요. 혁명의 주체는 권력이 아니라 알에서 깨어난 사람들이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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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6 10:25




대길과 언년의 만남, 그리고 대길과 송태하의 접전을 기점으로 무대를 한양으로 옮겨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드라마의 모든 인물이 한양으로 모였다는 것은 폭풍전야를 알리는 것입니다. 원손을 들쳐업고 언년이도 한양 인근 수원으로 향했고, 오라버니 배자를 싼 보자기를 안고 설화도 길을 나섰지요. 중요한 것은 이대길과 송태하, 조선비, 천지호, 그리고 업복이가 어떤 형태로든 맞딱뜨리게 될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지요. 황철웅의 마수행각이 드러나고, 또한 이 모든 배후에는 좌의정이라는 정치실세가 있다는 것이 주인공들을 어떤 형태로든 규합하게 만들겠지요. 
또한 그 동안 궁금증에 싸여있었던  노비당의 그 분(박기웅)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분에 대해서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많은데 다음에 정리해서 올리기로 하고요, 이번회는 추노의 주요 감정라인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길이 장혁의 신들린 연기가 또 다시 빛났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언년이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는 함축적인 대사와 오열은 대길이의 언년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 가슴 뭉클했습니다. 상황이 애틋하지도 않았고, 장면상으로는 오히려 냉소적이었는데도 대길은 결코 언년이를 버리지 못함을 보여주었지요. 언년이를 찾으면 왕손이랑 최장군이랑 옹기종기 모여서 평생 살겠다는 소박한 꿈은 버렸지만, 언년이는 대길이가 죽음과 바꿀 정도로 지켜주고 싶어 합니다.

언년아, 이제는 편히 살거라
"살아있다고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란다" 대길이 언년에게 했던 말은 언년이와 함께 있지 않았던 시간은 대길에게는 온통 불행한 시간들이었다는 대길의 고백이었어요. 언년이가 없는 세상은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의미였겠지요.
자신의 목을 겨눈 송태하에게 최장군과 왕손이를 죽였느냐고 묻지만 송태하는 자신의 부하들을 죽였느냐고 되물으며 두 사람은 칼을 섞습니다. 대길을 향하는 칼을 언년이가 막아서고, 송태하를 향하는 대길의 칼을 다시 언년이가 가로막지요. 과거의 정인과 현재의 남편 사이에 이도저도 못하는 언년이 심정이 오죽했겠을까 싶어요. 언년은 송태하에게 저 분이 과거의 정인이었다며 자신이 죽기를 원합니다. 자기때문에 죽었는데 따라죽지도 못했다는 언년의 말에 대길이의 마음도 아려옵니다. 자신이 죽은 줄 알았기에 언년이도 여태껏 대길이를 찾아볼 생각도 못했었다는 것을 알지요.
그리고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그 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자신의 신분을 말하려고 하는데 송태하는 혹이라도 다시 언년의 입에서 정인이라는 말이 나올까봐 말을 막아버립니다. "정인이라는 말 하지 마십시오, 그대 정인은 납니다"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얹고서요. 그 모습을 보는 대길이 마음은 또다시 갈기갈기 찢어졌겠지요. 
다른 장소에서 멋지게 한판뜨자는 송태하의 제의에 대길이도 순수히 응하지요. 언년이에게 송태하를 베는 모습도, 혹이라도 자신이 베이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테지요.
그렇게 하자며 숨을 잠시 고르고 "모두가 죽으면은 편안해질게다" 라고 나지막히 말하고는 앞장을 서는 대길이었지요. 이말은 언년이를 향해 하는 말이었어요. 대길이와 송태하 사이에서의 언년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대길이도 읽었던 게지요. 마치 '내가 죽어 버리면 언년이 네가 편할 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마음 같았어요. 언년이에게 편히 살거라라며 작별을 고하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송태하를 잡든 혹은 자신이 송태하의 칼에 맞아 죽든 자신으로 인해 더 이상 고통스럽길 원하지 않는 대길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진짜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살아라" 라고 하는 말하는 대길은 가슴으로 울고 있었어요.
원손을 부탁하고 가는 송태하에게 언년이는 마음으로 부탁합니다. "저 분을 살려주세요"
대길이는 자신을 죽었다고 생각하라며 작별을 고하고,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절대로 대길이를 죽이지 말라 하니 두 사람의 사랑의 무게가 죽음을 거래할 만큼의 크기였나 봅니다. 그래서 엇갈려 버린 두 사람의 운명이 안타까운 것이겠지요.

언년아, 누구를 탓하겠느냐!
송태하와 이대길의 대결은 송태하의 단연 우세입니다. 정통무예를 익힌 전 훈련원 판관의 실력이 길바닥 무슬을 이기지 못한다면 개가 방귀 뀔 일이겠지요. 한때 정인이었다는 이유가 그대를 살렸다는데 대길이 "내가 그런 미천한 집안 종년한테 마음을 줬을 것 같나?" 라는 말에 송태하는 몸의 중심도 넋도 나가버립니다. 대길의 칼에 상투가 잘려 나간 송태하는 노비의 낙인이 찍혀있는 이마를 드러냅니다. 자신이 그렇게 부정하고 싶은 노비라는 신분, 그런데 아내가 된 혜원이 노비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될 일입니다. 송태하는 뼈속까지 양반이라는 지배계급의 사고가 박혀있는 인물이에요. 노비로 떨어졌으면서도 한번도 노비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송태하였지요.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죽일 생각은 없었을테지요. 언년이 목숨을 걸고 서로의 칼을 막아섰는데, 그런 언년이때문에라도 죽일 수 없는 두 사람입니다.(이대길과 송태하의 대화장면과 상투를 베어 버린 장면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들이라 따로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싸울 힘도 없이 넋나가 발랑 누워버린 송태하를 향해 대길은 최장군의 비녀를 빼서 한번은 최장군을 위해, 한번은 왕손이를 위해 송태하를 향해 찌릅니다. 송태하의 몸이 아닌 송태하의 마음을 찔렀지요. 그렇게 대길식의 복수를 해주었지요.
그런데 하루를 일년같이 그리워 했던 언년이는 목이 메여 이름조차 부르기 힘이 듭니다. "언년아.... 언년아" 결국은 비녀를 떨구고 허공을 향해 언년이의 이름만을 부르고 쓰러집니다. 자신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언년이, 그래서 송태하에게 분노할 수도 없었어요. 송태하의 칼을 가로막고 섰던 언년이도 비록 몸은 송태하의 여인이 되었지만, 목숨을 내놓고 자신을 지켜 주고 싶어 했었어요. 남편의 칼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요. 약한 조선이 청나라에 짓밟히고, 양반과 종의 사랑이 허락되지 않은 세상을 탓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너무 늦게 찾았던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늘을 향해 언년이를 부르고는 송태하 곁에 쓰러져 가슴으로 우는 대길입니다. 

어서 와서 밥 먹자, 최장군 왕손아!
송태하를 좌의정에게 넘기고 온 대길은 주막으로 돌아와 여느 때와 똑같은 밥상을 받습니다. 큰주모나 작은주모 누군가가 최장군 밥속에 달걀도 하나 삶아 넣었겠지요. 최장군의 밥속에 달걀을 꺼내 먹으며 오열하는 장혁은 슬픔 이상의 감정을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말이다, 너희들을 죽인 그 놈을 포청에 넘겼어. 죽였어야 했는데 언년이 남편이라 죽이지도 못하고 그냥 넘겨 버렸다. 헤죽... 돈도 돌려줄 거야. 그리고 이 바닥을 떠야겠다. 이젠 추노할 이유도 없고, 돈을 벌 필요도 없어졌다. 내일 해가 뜰지 안뜰지 이젠 관심도 없다. 그냥 오늘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뭐. 참 세상 지랄맞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보고 싶다 최장군, 왕손이 이 놈. 밥 식는데 어서 와서 밥 먹자...."
대길이 마음이 이랬을 것 같아요. 형제같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없는 밥상, 대길은 그리움과 허전함에 오열하고 가슴을 쥐어 짜며 웁니다. 꾸역꾸역 달걀을 밀어 넣으면서 끝내 오열하고 마는 대길을 연기하는 장혁의 신들린 듯한 눈물을 보여 주었던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언년아, 너는 살아야 한다
마음껏 울고 싶은데, 최장군 비녀 꼽고, 왕손이 팔뚝찌 올려 두고 그렇게 함께 있는 듯 밥한그릇 먹고 싶은데, 울지도 먹지도 못하게 합니다. 대길의 목을 향해 날아든 오라에 저항도 못하고 포청으로 끌려 가고  말았어요.
포청으로 끌려 온 대길 앞에 송태하는 고문으로 축 쳐져있고, 대길이도 뭇매를 맞습니다. 송태하를 잡았을 때 4살가량의 아이를 보았느냐며 죽도록 매질을 하지요. 4살 가량의 사내아이, 그날 서원에서 언년의 품에 안겨있던 그 아이임을 떠올리는 대길이지요. "애새끼인지 나발인지 나는 몰라"  그 순간 황철웅이 조선비를 끌고 고문장에 등장했지요. "이렇게 셋이 모이니 벗들을 만난듯 반갑구나" 대길을 직접 고문하기 위해 빨간 인두를 가져가는 황철웅의  표정없는 비열함이 섬뜩했지요.
대길이는 이제서야 모든 오해를 풉니다. 최장군과 왕손이를 해친 것이 송태하가 아닌 황철웅이었음을요. 한양까지 오는 동안 대화를 했을 법도 한데 대길이나 송태하나 참 말수가 적은 양반들인가 봅니다. 언년이 종이었다는 사실에 놀란 송태하가 부하들을 죽인 것이 대길이었느냐고 더 이상 묻지도 않았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좀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지만, 대길이와 송태하를 함께 감옥에 넣어야 할 극적인 장치가 필요했을테니 그냥 넘어가야 겠네요.
저는 대길이가 죽도록 맞으면서도 그 애새끼 못봤다고 하는 부분에서 언년에 대한 대길의 깊은 사랑을 또다시 확인해서 가슴이 아팠어요. 언년이와 원손을 떠올리면서 대길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언년이었을 겁니다. 송태하를 추노하라고 한 일이며, 최장군과 왕손이를 송태하가 죽였다고 오해 하게 한 모든 일이 원손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과, 언년이가 문제의 원손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을 겁니다. 정치적인 일은 관심없는 대길이지만, 이 무시무시한 정치적 살변 속에 언년이가 있다는 것을요. 언년이와 원손이 함께 있다는 것을 봤다고 말하는 순간, 언년이는 추격을 받게 될 것이고 목숨 또한 잃을 거라는 것도요. 사실을 실토하지 않으며 고문받는 장면은 그래서 더 아팠고 비장했어요. 청의 용골대 군사를 향해 낫을 들었던 대길이었지요. 언년이를 살리는 것, 그것이 대길이의 사랑의 시작이었고 끝이니까요.
요동치는 시대의 한복판으로 달려 가려는 대길이, 그의 혁명은 역사를 바꾸는 것도, 임금을 바꾸는 것도 아닌 언년이와 함께 평생살 수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버리고자 했는데, 거친 풍랑속에 자신의 꿈이었던 언년이가 던져져 있습니다. 다 잊어버리려고 언년의 그림까지 태워 버렸는데 마음은, 사랑은 태울 수가 없었나 봅니다. 이제는 대길이 자각합니다. 언년이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년이를 해치려는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요. 그 세상 속에 언년이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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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09:58




최장군과 왕손의 죽음의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이번 회도 연막을 치고 대신 굵직한 사건들을 보여 주었다. 추노의 감정선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대길과 언년의 만남, 송태하와 조선비의 대립, 원행으로 시작된 혁명의 태동들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허무하다 못해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의문까지 들게 만들정도로 도랑으로 빠져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대체 목적불문 이유불문 살인귀 황철웅의 살인행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황철웅은 이번 회만 해도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힘들 살인을 자행했는데, 드라마의 축까지 흔들어 버리는 살인행각에 드라마 추노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회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드라마가 결국은 혁명이 아니 개인 치정극쯤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 같은 불길함이었다.
대길이가 양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지나가는 말처럼 꿈꿀때, 업복이가 종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양반 사냥을 나설 때, 그리고 송태하가 원손 석견을 내세워 썩은 정치를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 때 적어도 색깔은 다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비록 좌절된 꿈이라 할 지라도 무작정 박수쳐 주고 싶어 가슴이 뛰었었다. 그런데 혁명은 개뿔, 갑자기 드라마는 가족 치정극으로 치닫고 있으니 방향이 틀어져도 한참 틀어져 버렸다는 생각이다.
이번회는 숨죽이고 봤던 것 만큼 드라마 곳곳에 드러나는 옥에 티가 많았던 회차였다.

황철웅은 초능력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비에 가까운 황철웅은 초능력자이다. 시간차를 두고 나섰다고는 하나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향하던 송태하의 부하들과 유생들은 황철웅의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속도 앞에 칼을 맞고 고꾸라지거나 켁 소리도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나마 대사 몇번 하고 죽은 이광재는 행운이겠다. 이광재와 칼을 겨눌 때 선연했던 핏자국이 1초가 되기도 전에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한 칼로 변해 버린 것은 굳이 옥에 티라 하기에도 염치없을 정도이다.
게다가 그래도 한 칼 한다하는 송태하의 부하들이 한방에 나가 떨어지니 하잘 것 없는 실력으로 혁명군을 이끌겠다고 했으니 차라리 일찍 잘 죽었다 싶다. 그래도 몇합은 겨루고 죽을 줄 알았는데 이정도의 실력으로 누구랑 맞서 싸우겠다는지 심히 전직 훈련원 무사들의 허접한 실력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질질 짜는 설화, 갈수록 짜증난다
최장군과 왕손이를 밤새 찾다 들어 온 대길이 기진맥진 탈진해서 쓰러져 자버렸는데, 다음날 설화는 대길이에게 자기 마음 좀 봐달라고 징징댄다. 사랑타령도 때와 장소를 가려해야지 이건 뭐 찰딱서니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언년이 보다 심한 껌딱지 민폐 캐릭터가 되고 있으니 극 초반에 주었던 설화의 애틋함이 한방에 무너져 버렸다. 물론 바늘에 찔려 가며 대길이 위해 손수 지었다는 배자도 눈물겨웠지만, 원손 석견을 구하고 뜬금없이 애정행각을 벌였던 송태하와 언년이의 키스장면보다 짜증났던 설화의 징징댐이었다.
설화도 왕손이와 최장군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위험을 감지했을 터인데도 대길이 네 갈길 가라고 하니 "이 나쁜놈아 왜 안 떠나냐고 물어보면 나더러 어쩌라고... 오라버니가 좋아져서 그러는데 좋아한다는 말을 못하니까 자꾸 물어보지마" 라고 우는데, 좋아한다고 고백할 타이밍은 아니었다. 설화도 지금 상황이 얼나마 심각한지 알고 있는데 말이다.
마루에 놓인 최장군의 비녀와 왕손이의 팔뚝찌를 싼 송태하의 편지를 보고 달려나가는 대길을 쫓아가며 우는 설화의 모습 역시 감정신으로 넣기에는 극의 흐름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제는 저잣거리에서 눈물 질질짜며, 오라버니 하고 부르는 설화 모습이 언년이 못지 않게 짜증캐릭터로 변하고 있으니, 이건 떠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대길이 옆에 붙어서 질질 짜고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짜증스러울 뿐이다.
극의 흐름을 깨는 설화의 사랑타령은 드라마 흐름상 짜증스러운 옥에 티였다.
쓸데없이 칼 늘어뜨리고 폼잡고 뛰는 송태하
부하 이광재의 죽음을 보고 위험을 감지하고 서원을 향해 송태하가 달리기 시작했다. 발길이 한시가 급한데 그 와중에 언제 칼을 칭칭 쌌던 천을 풀었을까? 마른 풀을 베고 달려가는 송태하의 달리는 폼이 영상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그리 칼을 늘어 뜨리고 폼잡고 뛰기에는 사태가 심각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말이 나온김에 하나 더하자. 할 말 있다던 언년이는 나으리께 할 말이 있다더니 지난 글에서 추측했듯이 결국은 하지 못하고 말았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대화와 황철웅과 최장군의 결투신이 교차되어 나올 때, 몰입을 방해하면서 드라마의 흐름마저 끊어지게 만든 대사들과 질질 끄는 지루한 장면들은 편집상의 옥에 티라고 보여진다. 사극과 녹아들지 못하는 언년이와 송태하의 대사는 왜 그렇게 또 긴지...
언년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송태하는 언년이가 울던 말던 시종일과 미소를 띤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현재의 부딪친 혼란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얘기한다. 부인은 울고 있는데 저렇게 책을 읽듯이 미소띠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아무튼 송태하 스승으로 자처하고 나선 언년이의 급똑똑하고, 지혜로운 모습은 언년이를 위한 좋은 캐릭터의 방향이기는 하지만, 이 커플이 나올 때마다 주옥같은 대사들도 왜 그렇게 붕붕뜨는지 아무리봐도 대사궁합이 맞지 않은 커플이다.

허무했던 대길과 언년의 만남
추노가 지금까지 시청자들 애간장을 태우며 끌어왔던 관심 하나는 언년과 대길의 만남이었다. 장장 15회만에 대길이와 언년이 만났는데, 한마디로 아! 허무함이여!이다. 조선비가 원손에게 문후를 여쭙겠다는 말에 자리를 피해 준 언년이 마당에서 애를 태우며 초조해 하고 있을 때 대길이 나타났다. 장에서 대길을 보고 차마 그 앞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죄책감에 숨죽이고 울었던 언년이 굵은 눈물을 떨구었다. 
"도방노비 따위가 평온할 줄 알았더냐?" 시리도록 차가운 대길의 대사에 언년이 확 깨는 질문 " 저를 찾으셨나요?" 순간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무너져 울어도 모자랄 판에 찾으셨느냐고 묻는 폼새가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차라리 가슴이라도 쥐어 뜯으며 주저 앉지...
이어지는 대길의 대사 "노비들은 말이다, 주인에게 질문할 자격이 없단다"
그런데 언년이 또 분위기 깨는 질문이 이어진다. "혹, 제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셨었는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순간에 언년이가 한 대사가 이해가 안가니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기 때문에 대길이 집안을 풍비박산을 내고도 모자라 아직까지 자신을 가슴에 품고 있었느냐고 과거의 애정까지 확인하려 든다. 무릎끓고 차라리 울고 말지... "도련님"이라며 목매이는 한마디만 부르면서 말이다.
대길이 "반상과 주종의 법도를 어기고 주인인 나를 배신하였느냐?"고 물으니 언년이 당찬 대사를 날리기는 했는데, 10년만에 만난 대길과 하늘의 뜻이니 사람답게 사는 법도니 논의할 시점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언년이가 사람답게 살려고 대길이 얼굴을 낫으로 긋고 불 지르고 나갔던 것도 아니고, 가지않으려고 버팅기면서 큰놈이에게 끌려 갔을 뿐이었는데, 마치 대길이라는 양반과 종이라는 갈등으로 집을 나가고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것처럼 자신을 옹호하니, 언년이가 똑똑하기는 하나 맹랑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대길이가 살아있는 것으로 행복하게 죽겠다며 목숨을 거두라는 언년이에게 대길이 시원하게 일갈한다. 뭐가 행복해 보이느냐고... 대길이 말 한번 잘했다 싶다. 차라리 "살아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지난 번 저자에서의 방백이 그나마 언년이 심정을 가장 잘 나타냈다 싶다.
이런저런 대사가 이어지는 동안 우스꽝스럽게 폼잡고 달려 온 송태하가 대길의 목을 겨누고, 대길은 언년이의 목에 창을 겨누면서, 맥풀린 대길과 언년의 10년만에 만남은 애틋하지도 가슴아프지도 않게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허무하게 끝난 대길과 언년의 해후, 대길이의 심정만 절절하게 전해졌던 옥에 티였다.

시대극인가? 치정극인가? 갈림길에 서다
이번 회 드러난 추노의 가장 큰 옥에 티는 주인공들이 싸워야 할 적을 개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극으로서의 무게감을 떨어뜨리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을 스스로 베어내고 있다. 개인의 원한을 혁명의 이름으로 과대포장시켜 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말이다. 추노에 혁파해야 할 공공의 적이 없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황철웅은 적이라 하기에는 개인적인 상처로 싸이코가 되어 가는 인물이니 적이라기 보다는 사회범죄자쯤으로 제껴 둬야 할 것 같다. 그럼 적이 좌의정일까? 좌의정이 혁명의 대상으로 혁파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좌의정 한 사람 쳐낸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느냐는 말이다. 좌의정이라는 실세의 손아귀에서 갈팡질팡하는 인조 역시 혁명의 제거 대상은 아니다. 
추노를 관통하는 핵심은 송태하의 입을 빌어서 나오기는 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임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세상인지에 대해서는 송태하가 소현세자의 유지 어쩌고 하면서 두리뭉실하게 넘어가 버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원손 석견을 옹립하겠다는 것 자체가 송태하와 조선비의 한계였지만, 그 시대 죽자고 정통성을 따지는 사대부들의 군주관을 생각하면 그 시대의 명분이었을 터.  
그런데 혁명을 꿈꾸는 첫발을 떼기도 전에 송태하와 조선비측 유생은 황철웅의 무자비한 칼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말았다. 꿈이 꺾이는 첫 순간이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길과 언년, 송태하의 갈등을 지극히 개인적인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는 데서 드라마 추노가 말하고자 했던 혁명은 치정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대길이와 좌의정을 엮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모든 원한의 초석을 깔아 준 황철웅이라는 인물, 대단하다.  그러나 이대길, 송태하, 천지호까지 드라마의 주인공 대부분이 황철웅의 무자비한 칼에 의해 분노하고, 그 분노가 혁명으로 귀결되는 구도를 잡는 것은 위험하다. 추노가 원한극인지 치정극인지 시대극인지 판가름나는 갈림길에 서 있기때문이다. 
장혁을 비롯한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누차 말하지 않아도 추노를 살리고 있으니, 이제는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풀어 놓았으면 싶다. 추노의 스토리 완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작으로 남느냐 원한치정극의 하나로 남느냐 그 방향키를 잘 잡아야 할 시점이다. 길바닥 사극 추노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 처절한 죽음행진곡으로 쓰고자 했던 이들의 혁명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제대로 집고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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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 07:09




추노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원손 석견을 구한 송태하가 조선비가 마련한 서원으로 옮기면서 혁명으로 화제가 옮겨지기 시작한 거지요. 송태하와 언년의 감정선은 혼례라는 방법으로 연결지으면서 대길과는 비극적인 운명이 예고되기도 했지요. 언년을 잃은 대길과 언년을 얻은 송태하의 극중 대립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요.
언년이 송태하와 혼례를 올린 것은 개인적인 견해로는 성급한 전개였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물 건너 간 이야기니 접어두기로 하고요, 저는 송태하와 조선비의 혁명에 대한 발언에 대해 추노가 길을 헤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송태하가 석견을 구하려 했던 이유와 조선비가 혁명의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엇박자가 났는데, 왜 언년이를 걸고 넘어지냐는 것이었어요. 
또한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이 자칫하면 언급되지도 못하면서 사랑이냐? 혁명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유약한 장군의 모습만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조선비와의 대화에서 송태하가 동굴에서 혜원에게 말했던 부분과 달라지면서, 송태하가 원손을 구하려고 했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도 다시 짚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한섬이 궁녀와 함께 석견을 데리고 피신했을 때 한섬을 뒤쫓던 송태하가 팔에 화살을 맞아 잠시 동굴에서 언년의 신통방통한 치료를 받았을 때의 일을 상기하면 이해가 가지 않은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 송태하는 언년이에게 만날 분이 승하하신 세자 저하의 아드님이시고, 언년이 그 분을 구하면 나중에 왕이 되시냐고 묻자 그래야 한다고 대답했지요. 임금을 바꾸겠다면서 말이지요. 임금이 바뀌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빠지지 않을 거라면서요. 저는 그 장면에서 송태하가 품고 있는 생각이 임금을 바꾸는 일종의 반정을 꿈꾸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비를 만나서 하는 대사는 조금 달라져 있었어요. 조선비는 현 세자인 봉림을 부인하고, 원손마마를 세자로 옹립할 것이며, 조선을 세자(원손)에게 돌려드릴 것이라는 혁명의 기치를 내세웠지요. 그리고 스승 임영호가 죽었으니 자신과 송태하가 선봉에 서야한다고 송태하를 혁명군의 수장으로 추대했습니다. 조선비는 상소로 원손의 복권이 해결될 것이 아니기에 거병의 필요성을 주장했지요.
송태하가 이에 "반정에 뜻을 두고 있느냐" 며, "먼저 봉림대군과 접촉을 해야 하지 않느냐" 고 반문하면서 앞으로 조선비와 대립할 가능성이 암시되었지요. 송태하와 조선비는 혁명에 있어 방법적인 차이를 보인 것이지요. 송태하는 상소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원손을 복권시켜 세자로 옹립시킨 연후에 왕위를 물려받든, 왕으로 내세우든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반면, 조선비는 그 절차가 불가능할 것이니 아예 거병을 통한 무력반정을 하자는 입장이지요.
여기서 두 사람의 방법을 옳다 그르다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송태하의 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현재 봉림대군은 사서에 소현세자의 급서이후 두 번 세자책봉을 거절한 것으로 나와있지만, 기정사실화된 차기 왕위 후계자입니다. 봉림대군에게 야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겠지요. 현재 봉림대군을 따르는 세력은 반청세력들, 즉 서인들입니다. 그런데 소현세자는 청을 배우자는 입장의 친청세력이었어요. 이 때문에 삼전도의 치욕 이후 정신병적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인조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었고,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당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조선의 정세에서 송태하가 봉림대군을 언급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알려져 있다시피 봉림대군과 소현세자의 청에 대한 입장과 시대관이 극명하게 달랐었지요. 소현세자를 따랐던 송태하였으니 봉림대군과는 정치적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었고, 더구나 봉림대군에게 "큰 아들이 아니니 조카 석견에게 세자자리를 물려주시지요" 라고 점잖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조선비가 "혈족을 죽이고 돌아보지도 않은 왕가에서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일 거라는 말이 오히려 타당하지요.
따라서 현재 석견을 세자로 옹립하는 방법은 쿠데타라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거병이라는 방법의 무력충돌을 통해서 말이지요. 조선비가 판단하는 정세는 이렇듯 사안이 경각에 달린 긴박한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언년이와 사랑에 빠진 송태하가 못마땅한 것도 사실일 겁니다. 사랑에 빠진 송태하가 혁명군을 이끌 수장이 되는데 있어 언년이가 걸림돌이 될 거라는 우려였겠지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언년이 때문에라는 언년이 민폐리스트에 또 하나 리스트를 추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조선비의 차디찬 말 "혁명에 낭만따위는 필요없어" 라는 말은 언년이 조선비로부터 경계를 받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었죠. 언년이에게 왜 또다시 혁명의 걸림돌이라는 짐을 지우려는 것에 당혹스러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년이에 대한 경계가 아니라 조선비와 송태하의 혁명에 대한 입장 정리라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언년이를 갈등구조로 세울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혁명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젼이 대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비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혁명보다는 정치적인 야욕에서의 혁명에 대한 의지가 큰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태하는 정치적인 야심에 있어서는 조선비보다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서 혁명의 당위성 내지는 필요성에 대한 구체적인 비젼은 제시되지 않았어요.
지난 글 <혁명가 이대길이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이유>에서도 밝혔듯이 송태하와 조선비는 혁명의 한계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기득권 세력들입니다. 우선 조선비가 원손 석견을 왕으로 옹립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죽은 인조의 적장자 소현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봉림을 제치고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당시의 서인과 남인의 권력 싸움의 연장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조선비는 억눌린 정치권력의 대변자쯤으로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송태하의 대의는 무엇인지 애매모호 합니다. 다만 억눌린 자들의 울분과 소현세자에 대한 충절과 의리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아직 송태하의 대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석견을 구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청사진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하다못해 소현세자가 청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동조하는 것도, 조선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떤 대의명분도 보여주지 않았지요. 다만 소현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상복문제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관노신분으로 떨어지고, 소현세자의 아들 석견을 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제시된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모름지기 어느 인물을 군주로 모시고자 했다면 주군이 되는 인물의 정치관에 함께 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떼고 기저귀를 뗐을 어린 석견에게 대의란 있을 수 없지요, 이제 겨우 말문이 트였을 뿐인데 말이지요. 그럼 소현세자의 뜻을 잇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송태하가 뜻을 둔 대의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 혁명관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요. 
단순히 신분회복과 소현세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원손을 세자로 추대하려는 것은 정치적인 파벌싸움일 뿐이지 대의 혹은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에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길은 양반 상놈 구분없는 평등세상을 꿈꾸고, 업복은 종놈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데, 송태하는 4살배기 원손 석견을 세자로 봉하고 후일 왕으로 세우려는 다분히 소현세자에 대한 충절심밖에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물들 중 가장 정치적인 인물이 송태하라고 할 수 있어요. 노비임에도 노비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송태하의 태생적인 한계는 있지만, 송태하는 썩어빠진 정치를 바로잡고, 시대의 흐름을 읽는 정치적인 의식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조선비와 갈등을 해야 하는 부분은 방법론이 되었든 정치관, 혹은 혁명관이 되었든 보다 거시적인 구도에서의 대립으로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조선비라는 또 다른 기득권 정치세력의 야심과 부딪치면서, 송태하가 진심으로 꿈꿔야 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자각이 있으면 더 좋을 일이지요. 그런데 이 중요한 대립에 언년이를 끼워넣는 것은 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송태하와 조선비의 갈등구조를 각자가 지향하는 세상에 대한 혁명론이 아닌 사랑타령으로 또 다시 언년이를 애물단지로 만들어 버린다면, 드라마 추노는 시대극이 아닌 멜로사극으로 남을 공산이 큽니다. 언년이의 민폐리스트가 하나 더 추가될 일만이 남았고요.
길바닥 사극 추노가 완성도 높은 사극으로 남기 바라는 이유, 그것은 21C 우리가 추노를 통해 비록 좌절된 혁명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세상을 향해 치열하게 싸웠던 시대, 그 역사의 한 부분을 보고 있으며, 그 시대를 이끌었던 주인공들의 꿈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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