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세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12.29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최고의 코믹왕은? (9)
  2. 2011.12.02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냉소,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반전 (21)
  3.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4회' 세종대왕이 욕을 하는 이유 (1)
  4. 2011.11.04 '뿌리깊은 나무 10회'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23)
2011.12.29 09:42




명품연기 명대사를 남겼던 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가 남긴 최고의 감동은 백성을 땅끝까지 내려가 사랑한 지극히 고독했던 인간세종, 그리고 군왕 세종의 업적 한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페셜로 방송한 뿌리깊은 나무 제자해는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7과 드라마 주인공들의 뇌구조를 공개해 큰 재미를 주었는데요, 특히 강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연기의 혼을 실은 배우들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보너스 재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명장면 베스트는 젊은 이도가 태종 이방원에게 처음으로 맞서는 장면으로 꼽혔습니다. 송중기와 태종 이방원 역의 백윤식, 그리고 무휼의 존재감을 드러낸 명장면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의 시작이 그날부터 시작되었으니, 드라마의 탄생배경이기도 합니다. 어린 똘복이를 구한 이도, 그가 구한 첫백성은 왕의 대의를 지랄하지 말라고 욕을 하는 백성이었고, 글자를 몰라 아버지와 동무를 잃은 분노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도 없는 가여운 백성들이었죠.
그가 처음으로 본 궁궐 밖 세상, 조선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사대부들을 위한 나라, 백성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나라, 백성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말로만 떠들고 있었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서면서 세종이도는 그가 꿈꾸는 조선, 모두를 품는 거대한 마방진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관문이자 결실이 백성들의 말을 본 뜬 조선의 글자,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수많은 명장면들이 시청자를 감동의 도가니로 넣었는데, 아쉽게도 빠진 것이 있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정륜암에서의 정기준과의 끝장토론 장면과, 광평을 잃은 세종이 슬픔을 가누지 못할 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강채윤의 비난을 들은 후 고뇌를 끝내면서, 훈민정음이라는 네 글자를 적는 장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사실 모든 한장면 한장면이 버릴 수 없는 명장면들이었던 이유는, 한글이 요술방망이로 뚝딱해서 나올 수 없는 연구와 노력의 산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한석규의 연기는 근엄세종, 카리스마 세종, 지극히 인간적인 세종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았지요. 연기본좌 한석규의 미친연기는 매회 불이 활할 타오르듯 시청자를 매료시켰고, 조연들의 연기와 완벽한 한 호흡을 이루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지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었으니, 밀본 정기준과의 첨예한 대립이라는 무거움 속에서도 깨알같은 웃음으로 허를 찌른 반전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무거운 축을 담당했으면서도 허를 찌르는 세종의 코믹함(?)은 무휼과 밀당하는 장면에서도 귀요미돋는 달달커플 한쌍으로 가장 사랑을 받았고 말이지요.

 

명장면 베스트 번외편으로 제가 뽑은 코믹명장면으로 뿌리깊은 나무 그 역병같았던 드라마의 또다른 매력들도 감상해 보실까요? 코믹왕도 선정해 봤는데요, 드라마 속에서는 세종을, 드라마 밖에서는 조말생 대감 이재용을 코믹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처음 똘복이가 강채윤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겸사복으로 궁에 들어왔을때, 강채윤은 사기꾼같은 입담에 행동도 깨방정 자체였지요. 이도를 죽이겠다는 숭악한 마음을 감추기 위함이었지만, 강채윤의 코믹깨방정을 압도한 인물이 있었지요. 용포를 입고 인자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세종대왕이 현신했나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일치했던 석규세종입니다. 닉네임으로 욕세종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하례는 지랄이라며, 거침없이 쏟아지는 욕은 물론이거니와 똥지게를 진 모습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지요.

 

욕세종 등장, 감칠맛 나는 충격 "우라질, 지랄하고 자빠졌네"
인상적인 욕세종의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 두 장면으로 압축해 봤습니다. 경연장에서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해 신하들이 주절주절 반대가 극심했었지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완강한 조말생대감의 코앞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던 장면, 뜨헉!하고 놀라는 조말생대감의 표정은 대사없이도 웃음 빵터지게 했던 코믹장면이기도 했지요.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벌이시나이까, 공자왈 주자왈에 대한 세종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우라질". 아직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한자로 쓰기는 했지만, 그 신랄한 비웃음이 통쾌했던 장면입니다.
욕세종의 절정은 정기준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 하고 있음을 알고 도성에 방을 붙이고 이적(오랑캐)의 글은 안된다며, 여론몰이를 하자 내놓은 대답이었지요. 광평을 납치해서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했지만, 세종은 광평의 목숨을 두고 협상하지 않겠다며, 그 참혹한 심경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지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그저 눈만 껌벅이며 아무 대꾸조차 못하고 얼음땡 시켜버린 장면이었죠.
손뼉도 마주해야 소리가 난다고, 그 황망한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입맛만 다시는 황희대감, 눈동자 굴리는 소리까지 들리게 느껴졌던 이신적(안석환)의 눈동자 연기는, 중년연기자들의 연기내공이 이런 것이라고 확인시켜준 명품연기였고 말입니다.
세종과 무휼의 밀당, 귀여운 남남로맨스 
세종이 무휼을 놀려먹는 모습도 코믹명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했던 장면들이었지요. 이도를 죽이겠다고 칼을 숨기고 들어온 강채윤, 채윤에게 밀명을 내리면서 독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신경써주지 않았다고 무휼을 놀리는 장면이었죠. 앞으로 3보 이내에 있으라며 무휼을 뻘쭘하게 만들었지요.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장난기는 그뿐이 아니었지요. 공포심에 대한 힌트를 채윤이 알아들었을 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세종, 무휼 너도 말귀를 못알아 들었지 않았느냐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세종이었죠.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엉거주춤 세종의 뒤를 따르는 무휼에게서 조선제일검 내금위장의 체면은 땅에 곤두박질을 쳤지만, 스트레스 많았던 세종의 유일한 쉼터는 무휼이었기에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은 투기하는 무휼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했다죠ㅎ.
세종의 놀림을 조석으로 받은 인물 가운데 정인지 역시 빼면 섭하지요. 소이의 출중한 암기력과 방대한 업무를 칭찬하면서, 정인지에게 소이의 녹봉 십분의 일만 받으라고, 놀고 먹는다는 말로 정인지를 하얗게 질리게 만들기도 했지요. 훗날 정인지가 어떤 인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생각하니,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말로 들리기도 하네요. 정인지가 세조의 왕위찬탈을 적극 도왔던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초탁과 박포, 우리를 빼면 섭해요
사실 드라마에서 코믹감초역할로 배치한 인물이 초탁과 박포, 그리고 옥떨이 정종철일 겁니다. 특히 초탁과 박포는 북방떨거지와 한양돼아지새끼라며 티격태격 앙숙처럼 보였지만, 누구보다 채윤의 곁에서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줬던 인물들이지요. 채윤이 죽었을때 가장 슬프게 울었을 친구들이었는데, 마지막회 반포식장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가 잡지 않아서 쪼금 서운하기도(ㅎ) 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소이의 시신을 광화문으로 데려온 이들도 초탁과 박포였겠지요.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보니 연두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개파이가 아니라 박포(신승환)였다는군요.ㅎ

이신적과 한가놈의 바퀴달린 눈동자, 소리까지 들리더라
박포와 초탁외에 대놓고 웃기지는 않았지만, 시청자들에게 표정만으로도 즐거움을 선물해 준 분들이 있었지요. 바로 이신적(안석환)과 한가놈(조희봉)입니다. 안석환의 능수능란한 눈동자 연기는 대사보다 더 많은 내면심리를 전해줘, 그의 표정연기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엿보게 했지요. 본명이 한명회로 밝혀진 한가놈의 찌그러진 표정과 눈동자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극적 재미였습니다. 밀본에서는 정기준의 참모 한가놈이 가장 두뇌가 명석하고, 사태를 분석하는 눈도 날카로웠지요. 소이의 속치마에 적힌 글자로 한글을 쓰고 읽는 법을 독학하고, 연두와 개파이에게 한글까지 가르쳤던 두번째 한글선생님되시겠습니다. 첫 선생님은 채윤에게 한글을 가르친 소이가 되겠고요.
이 외에도 재미있는 코믹장면들이 많았지만 다 열거할 수는 없겠네요. 이 장면들 정리하느라 1부부터 24부까지 재복습했답니다;;. 추천안하고 글만 읽고 쌩가버리면 삐질거임! ㅎㅎ 농담입니당^^

"전하의 글자는 달랑 스물여덟자다"
코믹장면은 아니었지만, 코믹보다 더 기분 즐겁게 웃겼던 장면을 꼽아본다면 광평대군과 채윤의 대화입니다. "5만자 중에 천자를 배우는데도 그리 오래 걸렸는데, 도대체 전하가 만드신 글자는 몇글자나 되십니까? 5천자요? 아니면 3천자요?". "스물여덟자". "천 스물여덟자요?". " 아니 그냥 스물 여덟자". 
스물여덟자라는 그 짧고 강한 말에 배여있던 광평대군의 자신감과, 헛소리를 들은 듯한 채윤의 표정이 대조적으로 클로즈업되었는데, 다시 봐도 스물여덟글자에 삼라만상을 다 담을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이 가슴벅차게 자랑스러움으로 밀려오더라고요.
코믹명장면 베스트를 정리해 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최고의 코믹왕 본좌에도 역시 세종이 1위^^. 

신세경이 반한 당구치며 춤추는 조말생대감, 귀요미 훈남등극
여기서 끝나면 진짜 섭섭하지요. 촬영장 에피소드에서 월척 코믹왕이 등장했답니다. 드라마에서는 욕세종, 삐짐대왕, 짓궂은 세종이 코믹왕이었지만, 촬영장 에피소드를 통해 공개된 연기자들의 모습에서 의외의 반전왕이 있었으니, 놀랍게도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습니다. 조말생은 드라마에서도 멋진 보수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도 했고, 밀본 정기준을 속이고 한글유포의 임무를 위해 나인들을 궁밖으로 빼돌린 연극에서도, 최고의 배우로 등극했던 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재용의 촬영장에서의 소탈하고 장난기있는 모습에 하트뿅뿅이었답니다. 촬영장에서는 인기만점 훈남에다가 후배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분이더라고요. 신세경의 이상형으로 뽑히기도 했답니다. 이재용의 구레나룻이 멋지다는 신세경, 이재용은 자신의 매력을 멋진 옆선이라며 자신있게 자랑하기도 했는데요, 위로 치올라간 눈썹과 어울리게 구레나룻도 길게 빼서 단호한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재용의 소탈한 다른 모습에 빵터졌으니, 귀여운 모습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었답니다. 정말 귀요미 이재용이었습니다. 늘 재미있는 말과 행동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훈훈하게 하기도 하고, 소품을 이용해 당구치는 모습으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더군요. 소탈한 모습과 재미있는 모습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즐겁게 만든 중년연기자 이재용, 뿌리깊은 나무 카메라 밖 코믹왕이셨습니다. 

대본, 연기자, 연출, 시청자의 사랑이라는 네박자가 맞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드라마를 빛낸 모든 연기자들에게 조말생대감의 입을 빌어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뿌리깊은 나무 24부까지 오는 동안 내내 행복했고, 한글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님, 정말정말정말 존경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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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2 08:16




40여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세종과 정기준, 두 사람의 만남이 이리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당혹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세종이 마지막으로 설득하고 품어야 할 사람이 정기준임을 알기에, 조금 더 아껴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은 세종도, 강채윤도 알게 되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겠지요. 소위 사대부의 보이지 않는 실세 밀본 본원이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조직을 이끌어 왔다는 것은 까무라칠 일이지요. 무엇보다 세종이 정기준을 어떻게 설득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즈음해서,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했던 역사적 의미를 보여 준 최만리와의 대화는 곱씹어야 할 명대사였습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설득하고 그의 사람으로 만들 논리가 최만리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방지를 만난 강채윤, 제자이기에 앞서 그와 너무나 닮은 꼴인 강채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이방지는 강채윤이 밀본과 뜻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요.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주군의 여자를 연모하고 있는 모습이 지난날의 자신과 같음에 마음이 천근만근이지요.
이방지가 무휼에게 채윤과 소이의 앞날을 약속받는 장면이 가슴 찡했고, 주상이 하지 않는다면 무사로서 목숨을 빚진 자로서 약속한다는 무휼의 말은 금강석보다 강해 보였던 명장면이었죠. 칼을 든 무사들의 진정한 약속, 칼을 두고 맹세하는 모습이었기에 더욱이나 인상적이었더 장면이습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든 것이 중화를 거스르고 조선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사대부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투신자살한 유생 박세명, 그가 남긴 격문이 도성 곳곳에 나붙어 조정대신들의 글자반포에 대한 반대와 세종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지기만 합니다.  
세종과의 독대를 청한 최만리, 세종이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는, 군주이기에 앞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역사학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더이다.

최만리는 자신을 밀본이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려도 좋다며, 밀본이 노비 서용의 과거급제 사건을 통해 모두가 글자를 아는 세상이 가져올 혼란을 말했다고 하지요.
"진정 그것이 혼란이기만 한 것이냐? 백성들이 글자를 안다면 배우고자 할 것이고, 잘 살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삶의 즐거움을 찾아 살아서 꿈틀거릴 것이다".
그 꿈틀이 신분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최만리의 반박에 대한 세종의 일갈은 통쾌하기 까지 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무너진다. 영원한 것이 어디있더냐. 전조 고려 전조를 보아라. 정체되어 썩다 사대부들에 의해 귀족들은 멸했다". 
최만리는 지지않고 지금은 고려와는 달리 시험으로 본다고 전조와의 차별성을 말하지만, 세종은 그 어폐를 꼬집습니다. "그 시험은 무엇으로 보느냐? 너희들만 아는 너희들의 글자 한자로 시험을 본다. 정작 한자를 아는 너희들만 관료가 되는 것 아니냐? 이대로라면 100년 뒤에는 서얼들의 과거가 금지될 것이고, 200년이 지나면 양반들만 시험을 보게 될 것이고, 300년이 지나면 양반을 사고팔고 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조선은 그렇게 경직될 것이고, 그 폐해 또한 날로 심해질 것이다. 역서를 보아라. 어느 나라의 역사든 다 그렇지 않느냐. 하여 그 폐해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희망으로서 글자를 만든 것이다".
최만리는 더 거세게 반발합니다. "하오면 양반을 없앨 수 있습니까? 노비를 없앨 수 있습니까? 사농공상의 지위를 없앨 수 있습니까?".
"못한다. 못한다. 못한다".
"헌데 글자라는 희망만 백성들에게 내리면 그 희망으로 고신당하는 백성들은 어찌 합니까?".
"그것 또한 역서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길을 모색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찾고 찾는 중에 싸우고 타협하여 이뤄가야만 조선은 천세만세를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전조 고려처럼 썩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만리와의 대화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임금이 신분질서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40 여년 밖에 되지 않은 갓 시작된 조선의 임금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드라마속 세종이 조선의 앞날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점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더군요. 이후 서얼금고법으로 서얼이 과거시험을 영구히 보지 못하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임진왜란후 세종의 말 그대로 조선사회 신분질서의 혼란으로 양반을 사고파는 일들이 성행했으니 말입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성리학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성리학으로 세워진 나라가 성리학의 이념논쟁, 일례를 들어 예송논쟁으로 시작된 당쟁이 조선을 정체되게 했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멸망하게 되었으니, 실로 세종의 혜안은 600년 뒤를 내다봤던 아니겠습니까. 세종의 글자가 한글로 통일되면서 보편화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망한 이후였으니, 개탄스럽기 까지 합니다.
한글이 조선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백성들의 의식은 세종의 말대로 꿈틀대며 일어났고, 신분사회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기에 이르렀으며, 공자왈 맹자왈 서책이나 끼고 한량짓하던 양반들은 도태되어 몰락하게 되었으며, 잡학이라 천시하던 잡문에 능한 중인, 양인들이 부를 축적해 갓떨어진 양반들을 조롱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나왔으니 말입니다.
세종은 성리학, 한자의 한계를 이리도 멀리 내다봤던 것입니다. 왜냐? 성리학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며, 기득권자들은 그 기득권으로 인해 망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집중되고 정체되어 있으면, 필히 그 권력에 맞서는 새로운 권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천년만년 갈 것같았던 고려가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신흥권력에 의해 망하는 것을 보았던 세종, 권력이란, 지배층이란, 영원히 보장된 금줄이 아니라는 것을 세종은 역사를 통해 알았던 것이지요.
세종이 백성에게 눈을 돌린 것은 드라마속에서는 똘복이의 모습을 통해서였지만,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 백성이 주인공이 될 세상을 똘복이를 통해서 봤습니다. 백성은 분노하지 않는자가 아니라, 다만 분노를 감추고 있다는 것뿐임을, 그리고 분노할 이유 앞에서는 누구보다 무섭게 분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기준을 만나기로 결심한 세종, 그러나 행방이 묘연해진 이방지로 인해 정기준과의 만남은 불발되었지요. 마음이 심란한 세종은 무휼과 소이만을 데리고 정륜암에 오르고, 고기를 싸서 따라온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밝히면서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대치상황으로 뿌리깊은 나무 18회가 끝났습니다.
고기를 써는 개파이의 꽃반지를 보고 그가 탈바가지를 썼던 고수였음을 알아챈 무휼이 칼을 빼들고, 무휼과 개파이를 보던 세종이 가리온의 눈빛에 놀라 멍해져 있는데, 정기준이 뒷짐을 지고 그의 정체를 밝혔지요. 귀싸대기를 열두번도 때려주고 싶은 싸갈통 머리없는 모습으로 세종앞에 선 정기준에게, "네가 정기준이냐?"며 냉소로 마주하는 장면은 돈주고도 못볼 명장면이었습니다.
정기준, 그가 누구입니까? 성리학, 유학의 질서를 목숨보다 숭배하는 자 아닙니까? 그런데 삼강오륜이 기본인 자가 임금 앞에서 뒷짐을 지고 이름자까지 뱉는 모습은 이미 그의 사상적 오류를 고백하는 장면이나 다름없었지요. 세종을 시해하고 반역을 결심했다기로 서니, 그는 그가 신봉하는 성리학에서 단정하는 패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안 세종, 아니 한석규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냉소에 전율이 일더군요. 경악의 눈빛도 아닌 썩소를 날리다니, 반전 중의 반전장면이었으며 한석규가 해석하는 세종은 명물 중의 명물임을 느끼게 했지요.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비웃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을 향한 욕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실망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삼봉의 조선을 훔친 이방원의 조선,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어린 세종에게 자괴감을 안겨주었던 오랜 트라우마의 근원 정기준은 그렇게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고작 보여주는 것이 집현전 학사들을 죽이는 폭력이었고, 노비의 장원급제와 유생의 죽음으로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동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비웃었던 이방원의 모습과 빼다박은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정륜암에서 벌어지게 될 고수들의 대결과 함께 뭔지 모를 불안한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지만, 세종과 정기준이 벌일 논쟁의 승패는 세종의 냉소에서 이미 판가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정도전의 건국이념에 발이 묶여 한치의 발전도 없는 모습으로, 오히려 퇴보하고 정체된 모습의 정기준이었기에, 세종은 정기준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어린 유생시절의 패기와 의협심, 냉철한 지성은 사라지고, 왕권을 견제하는 재상총재제를 구현하겠다는 빌미는 있었지만, 정작 사대부 선비정신을 버린 것은 정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냉소 속에 읽혀졌던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 비웃음, 욕, 실망감은 그때문이었겠지요. 웃음 하나에도 내면을 모두 담아내다니, 한석규 무서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력입니다.

***'뿌리깊은 나무' 이전 리뷰글들 대부분이 또다시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ㅠㅠ.
글만 복구해서 다시 올려놓겠습니다. 워낙 애착이 있는 작품이고, 심혈을 기울여 쓴 글들이라 제 블로그에도 꼭 남겨두려고요.
 
* 다음 Life On Award 2011 커뮤니티 '티스토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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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31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역사의 큰 비극은 옳고 그름이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 두 옳음이 맞서 싸울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왕조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태종, 왕의 일인독주를 막으려는 사대부, 그들이 싸우는 명분은 대의였습니다. 양측의 입장에서 둘 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싸움은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었죠.
그럼, 세종 이도의 대의는 무엇이었을까요? 훈민정음 반포를 앞두고 집현전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도 대의끼리의 충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것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지만, 그 끝은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종 이도의 대의로 귀결됩니다. 

집현전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 드라마에서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정도전-정도광-정기준으로 이어지는 밀본이라는 조직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가 정도전이 기초하고 세운 조선이었고, 그것이 조선의 새통치질서 즉, 대의라고 봤지요. 따라서 사대부들은 칼로 지배하는 이방원의 대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종이 죽고 세종이 실질적 권력을 잡았음에도 사대부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습니다. 왕과 신하의 마찰은 권력 주도권과 기득권의 싸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왕실재정을 위해 귀족들의 잇권을 침해하면 폭군이며 폭정이라며 반발했고, 백성들을 위한 토지정책이나 구휼정책들 역시도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었지요. 실질적인 소유자 양반들의 재산침해였기 때문이죠. 부와 권력이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과거나 요즘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는 권력이 부였다면, 요즘은 부가 권력으로 순서가 바뀌었을 뿐, 둘의 관계는 업어치나 매치나입니다.
집현전의 살인사건에 숨겨진 한글창제 저지음모는 사대부들의 기득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지적재산권 싸움이라고 할 수 있죠. 글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기에, 그들의 재산과도 같았고 특권이었죠. 그런데 임금이 이를 백성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일이었죠.

본격적인 드라마의 진행을 앞두고, 정리하지 못한 것이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세종이 깨달은 마방진의 답부분입니다. 백성이 근간이 되는 조화로운 세상이라는 간결한 말로 이도의 답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하례는 지랄"이라는 말로, 파격적으로 등장한 한석규의 새로운 세종으로 인해, 세종에게 욕이 어떤 의미였는지, 드라마 내용과 관련해서 정리를 했습니다.  

마방진에서 구한 세종의 답은?
"대의? 지랄하지 말라고 해. 우리 아버지 죽이는 대의가 뭔데? 반푼이도 아들 살리는 것 아는데...임금은 백성의 어버이랬잖아, 대의로 지랄 말라고 해". 똘복이의 말에 충격받은 이도의 눈에 눈물이 고였었지요. 그리고 처음으로 얻은 백성이라며, 무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저아이를 살리라고 했지요.(핵심: 세종이 처음으로 얻은 그의 백성 똘복이에게 지랄이라는 욕을 배웠다는 것, 그가 살린 첫 백성이 그를 죽이러 왔다는 것이 드라마틱한 재미기도 하지요)

빈찬합을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던 이도는 빈찬합과 방진의 모형이 같은 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궁녀들을 모아 결국 33방진을 푸는데 성공했지요. 이도가 깨달은 것은 방진의 답, 숫자의 배열이 아니라, 규칙이었습니다. 어떠한 숫자의 방진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숫자도 빼지 않고 같은 답을 구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음을 알아낸 것이지요. 5방진 8방진 16방진 25방진 33방진 55방진, 어떤 숫자의 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가로세로 대각선 모두 같은 합의 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종 이도는 그날 이 규칙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종의 질문에 대한 답도 내놓을 수 있었지요. 마방진이 아무리 숫자가 커진다고 해도 풀 수 있는 규칙이 있었듯이, 그의 조선도 그의 식대로 풀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고 말이지요. 마방진의 규칙을 찾고 세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 랄'이었습니다. 그리고 놀이는 끝났다며 방진을 치우라고 말하지요. (핵심: 똘복이가 했던 말 '대의로 지랄하지마'입니다. 이도가 방진을 풀고 했던 말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어요. 이 단순한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지랄을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방원과 사대부와의 싸움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지요. 자기에게 편한대로 대의를 만들고, 그것을 명분으로 지랄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도가 내놓은 답은 현명한 자를 모아 전각을 세워, 글이나 읽으며 아버지 태종의 사후를 준비하고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문으로 통치할 것라며, 경연하는 조선을 만들 것이고 말하지요. 경연은 사대부들이 왕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펄쩍 뛰는 태종에게, 이도는 단호하게 대답했지요. "그것이 고려에서 개혁된 조선의 시작이었고, 조선의 정체이며, 성리학의 이상이니까요".

왜 집현전을 만들었을까?
세종은 지랄을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진의 규칙을 찾았듯이 조선의 이념 성리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했고, 연구해야 했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가진 이론을 알아야 하고, 약점과 오류 또한 지적할 수 있어야 하지요. 따라서 학문을 권력이나 정치를 위한 목적으로 두지 않은, 똑똑하고 현명한 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정기준이 내 집현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그 학식의 깊이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이지요. 
   
세종이 집현전을 지어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다린 것은, 그들의 성숙이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치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었죠. 기득권의 논리로, 멋대로 맛대로 해석하고, 주자선생이 말씀하셨다 하면 모든 게 통하는 수구세력의 논리에 맞설 수 있어야 했지요. 집현전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서책과 경전에만 몰두하는 그들을 대신들은 적대세력으로 여기지는 않지요. 그럼에도 집현전은 신권으로 대변되는 사대부와 대신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는 학사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습니다. "책만 파는 니들이 정치를 알아?" 이런 식이었죠.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연, 세종은 드라마에서 표헌한 대로 집현전이라는 '친위부대'를 통해, 해박한 논리와 학식으로 그들을 견제했고, 사사건건 소위 태클을 겁니다.  세종의 영리한 자기 사람 관리방식이었고, 통치방식이었습니다.서책이나 읽는 서생들이라고 만만하게 봤던 대신들이 번번히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문(文)의 통치입니다. 

왜 세종은 욕을 입에 달고 살까?
욕쟁이 세종캐릭터는 다혈질 세종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를 위해 욕쟁이 세종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드라마 속 세종의 욕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백성들의 말을 상징하기도 하고, 백성과 임금의 직접 소통을 막는 사대부들에 대한 세종의 속풀이용 꿍시렁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나라입니다. 이상이 현실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헛된 망상이 되고, 백성없는 임금(나라)은 뿌리없는 꽃일 뿐이죠. 백성을 잊은 임금은 한나라의 어버이라 할 수 없듯이 말이지요. 공자왈 맹자왈 주자께서...어쩌고 저쩌고..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이 대의라고 하면서, 대의는 여러개의 얼굴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위장을 하기도 합니다. '주자께서 그리 가르치셨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조선의 사대부에게 주자의 말씀은 앞뒤토막 다 자르고 철저하게 기득권을 위해 해석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우라질! 

백성들은 한자를 모르기에 정확하게 자기의견을 말하기 어려웠고, 전달하기도 힘들었지요. 성리학을 해석하는 데도 평생을 글만 읽혀왔다는 사대부들도 '아'다르고 '어'다르게 해석하니, 몽매한 백성들이 글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죠. 우리 말과 한자가 그 발음과 뜻이 달랐기 때문이죠.
집현전에 잠입했다 잡힌 강채윤이 붙잡혔을 때는, "집현전에 똥을 싸러 갔다는 말이냐?"라며, 임금의 입에 담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똥'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뱉습니다. 똥을 한자로 표현하면 '변'이라는 말이 있지만, 변을 싸다, 변을 누다, 변을 보다, 그 어떤 식으로 해도 똥만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지요. 변 하나만 해도 한자의 모양도 뜻도 다른 글자가 열개가 넘더군요.

욕은 감정과 그 정서를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우라질, 지랄, 젠장같은 우리말을 소리와 뜻이 일치하는 한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요. 음이 같아서 뜻은 다른 글자가 돼버리니 말입니다. 똘복이에게 처음 들었던 지랄을 한자로 간질병을 떤다라고 표기할 수도 없으며, 어떤 한자를 조합해도 지랄을 표기하는 한자는 없었죠. 백성들은 성리학이 뭔지, 주자선생이 뭐하고 굴러먹다 조선으로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심지어 산간벽골에서는 고려가 망했는지, 이씨 조선이 세워졌는지 조차 모르는 백성조차 많았고, 백성을 위한 나라를 이상으로 삼은 성리학의 나라에서 정작 백성은 소외된 채 살고 있습니다.

마방진의 규칙을 따르면 어떤 숫자라도 풀 수있듯이, 이와 기의 조화,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가 조화를 이룰 때 만물이 평화로우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조화를 이루는 나라가 성리학의 이상국가입니다. 그의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조선입니다. 백성과 소통하는 조선이어야 했고, 소통의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지랄, 젠장, 우라질, 빌어먹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욕쟁이 괴짜군주 세종,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논리로 대신들을 제압하는 세종, 그는 태종에게 자신했던 그런 조선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복잡한 마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같은 답을 얻었듯이, 힘이 아닌 말로써 설득하고, 토론과 논쟁으로 합의점을 찾아가고, 백성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도 백성을 근본으로 삼은 성리학의 원칙으로 귀결됩니다. '누구를 위한 제도와 원칙인지'가 바로 선 나라, 세종이 꿈꾸는 조선의 대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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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4 01:11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의 비밀스러운 전개도 흥미진진했지만, 그동안 설왕설래했던 정기준의 정체가 백정 가리온(윤제문)이라는 사실은 충격과 경악이었습니다. 너무나 쉬운 단서들을 던져 준 제작진때문에 더 놀라운 반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의심했지만, 가리온이 정기준이었군요. 지난 글에서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했었는데, 글이 삭제조치를 당한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독자분들이 글을 읽기 위해 클릭했다가 아무 것도 뜨지 않은 화면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지...저도 어이없고 기막히지만, 독자분들도 마찬가지였을 듯하네요.

최고의 반전, 가리온(윤제문)이 정기준이었다니....
비록 블라인드 처리되기는 했지만 가리온이 정기준일 것이라고 추측한 근거는, 아비가 도적들에게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말한데서 그가 정기준일 정황은 충분했지요. 손톱만큼의 재주를 뽐내다가 일가족이 죽었다는 말 역시 같은 배경을 가진 것이었고요. 또한 정기준의 용모파기와 싱크로울 100%일치하는 귀모양이 같다는 점, 그리고 집현전 학사들의 사인을 귀신같이 알아냈다는 점은 그가 윤평, 이방지와 관련된 인물임을 추측하게 했었습니다. 또한 허담학사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건익사공을 들었는데, 물 한방울로 죽었음에도 검안소에 왔을 때, 옷깃이 물에 젖어있었다고 말했던 점이 거짓말같다는 추측을 했었고요.
뼈속까지 양반사대부인 그가 조선에서 가장 천한 백정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길을 걸어왔던 것에서, 그의 참혹하고 외로운 길이 강채윤과 세종 이도의 그것과 같았다는 글을 참 정성스럽게도 썼는데, 제작사측이 없애버렸군요.
그런데 지난 9회에서는 가리온이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목숨과도 같다며 울부짖는 모습에, 심하게 흔들려서 가리온이 천지계원이 아닐까 다른 추측도 했었습니다. 윤제문의 진심을 담은 연기가 정말 천한 백정의 애환을 절절하게 담았기에 더 감쪽같이 속았고 말이죠. 미친연기력의 윤제문, 역시 비중있는 배우의 무게감과 존재감은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상상과 추측의 재미가 드라마를 열배 즐겁게 즐기게 하기에, 뿌리깊은 나무는 너무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세종의 가장 강한 견제자 정기준이 세종의 하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있는 설정입니다. 위험한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이렇게 소름끼치게 실감되다니 말이죠.

이런 정리글이 삭제되어 참 분통이 터지네요. 이런 분석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드라마를 꼼꼼히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쉽게 저작권 침해라는 횡포와 행패에 가까운 행위로 싹둑 잘라 내버리지는 못할텐데, 개인적으로 마음이 불편하네요. 그외에 뿌리깊은 나무와 관련된 대부분의 리뷰글이 삭제조치로 블라인드처리되어, 지금 제 마음이 제 마음이 아니랍니다. 협조를 구해 다시 글만 복원하는 방법을 찾아 다시 복구는 해보겠지만, 영 씁쓸하네요.
앞으로는 글을 올리고 하루 뒤에 인용한 사진자료들은 다 삭제할 생각입니다. 사진없는 글이 드라마 리뷰를 보는 감흥을 떨어뜨리기는 하겠지만, 글 자체를 없애버리는 처사에 이렇게 대처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뿌리깊은 나무만 저작권 침해라는 이유로 삭제조치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천일의 약속은 그대로 두었던데 말입니다. 이는 SBS측보다는 제작사가 가위를 들고 있는 것같아 보이는데, 음,,,제작사 상당히 얄밉군요. 제가 인용한 사진으로 책받침을 만들어 팔아먹는 것도 아니고, 떡을 쪄 먹을 것도 아닌데... 다른 블로거의 글들은 무사한지 모르겠지만, 제 글은 지난 글들 모두 대부분 블라인드 처리되어 제가 표적이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속이 쓰려서 화풀이 좀 길게 했습니다ㅠㅠ.
여튼 가리온이 이신적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반전이었습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 자체가 소름이었다기 보다는,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반전을 거듭하는 표정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굽신거리고 눈치만 보는 듯한 힘풀린 눈동자에 서서히 힘을 주더니, 수만볼트 안광을 쏘다내며, 이신적에게 본원의 명을 거역한 것을 추궁하는 장면은, 과연 윤제문이구나 라는 말이 튕겨나오게 하더군요. 비밀조직의 수장이며, 조선의 가장 천한 백정, 두 얼굴의 정기준 가리온, 그의 무섭도록 완벽한 1인2역에 감탄, 또 감탄했네요. 한석규, 장혁, 윤제문, 조진웅 이들 미친 4인방의 불꽃튀는 연기는 감히 경쟁을 한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그저 자신들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자신을 던지고 있을 따름이라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들의 연기는 비교분석하지 않으려고요^^;;

남사철에게 놀아난 세종과 강채윤, 그리고 정기준 가리온
세종도 정기준도 강채윤도 시청자도 남사철의 자작극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는데요, 남사철은 철저하게 사대부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꼴통 사대부였군요. 가부조사를 나가지 않으려는 남사철의 오줌 잘금거리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어마어마한 거짓말이 밀본의 본원을 드러내게 하고, 세종과 강채윤을 교묘하게 속이기 까지 했으니 말이죠. 가리온을 구출하기 위해 파옥을 단행하는 거사를 일으켰다면, 정기준이 정체가 세종과 강채윤에게도 들통이 났을텐데, 결국 소이와 강채윤, 세종이 합심해서 가장 큰 적을 구해낸 꼴이 되었으니, 일이 골치아프면서도 재미있게 되버렸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을 불러 한글을 검증받는 세종, 이번회는 귀요미 돋는 세종, 삐짐대왕 세종의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하며 깨알같은 재미도 주었지요. 성삼문과 박팽년의 입바른 지적에 당황스러워 하고, 귀엽게 화를 내는 세종, "냉정한 것들 같으니라고!"에 빵터지기도 하고,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모습도 귀엽기까지 했다죠. 강채윤에게 가리온의 무혐의를 밝힐 수있을 결정적 힌트를 주며 독대하는 자리에서, 무휼이 5보 떨어져 있었다고 토라지는 세종, "다음부터는 3보 이내에 있어야 되느니라. 보면은 은근히 신경을 안써" ㅎㅎ.
그나저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세종의 알송달송한 말을 채윤이 풀어가는 모습은, 그의 동물적 감각이 놀랍기만 했지요. 세종이 무휼에게 넌 못알아 들었잖느냐며 면박을 주고, 무휼을 뻘쭘 창피하게도 했지만, 저도 세종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말이 처음에는 남사철 사건에 어떤 힌트였는지 이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에게 열정적으로 한글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하는 중, 밀본을 언급한 세종이었지요. 아무래도 한글창제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할 세력이 사대부였기에 그런 우려를 토로했던 듯 싶습니다. "상왕이 정도전 일가와 심온 대감, 강상인 일가를 모두 추단하신 것이 밀본때문이었다는 풍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 세종은 머리를 잡고 큰 실수를 깨달았지요. 세종을 정신 번쩍 들게 한 것은 풍설이라는 단서였지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세종은 심온대감이 밀본이 아니었음을 확신했었고, 심온대감을 제거한 것이 왕권에 대항하는 밀본에 놀라, 힘을 가진 모든 세력은 숙청해 버렸던 이방원의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근자에 일어난 해괴한 일들을 밀본의 짓이라고 믿어버린 이도 역시, 아버지 이방원에게 잠재해 있던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결국 남사철 집에 남겨진 협박장과 칼은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본 남사철 공포심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지요. 가리온 역시 만천하가 아는 백정인데, 자신의 칼을 여보란 듯이 사건현장에 남겨두고 갈 바보도 아닐테고, 더구나 조선 최고의 검시실력을 자랑하는 가리온이 그런 실수를 했을 리는 없는 일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강채윤의 함정수사에 말려든 남사철은 조말생 대감과의 협공으로 붙잡혔고, 그는 밀본도 뭣도 아닌 찌질이 겁쟁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우라질 같은 놈이 다 있단 말이냐!", 세종의 한마디가 그를 정리해 주더군요.
또 한명의 판관 강채윤, 가장 무서운 자, 가장 멀리있는 자의 의미
세종은 가리온을 구명하기 위해 소이에게 겸사복 강채윤을 만나라고 하지요. 가리온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소이의 청에 강채윤은 냉소적입니다. 사건 당일 소이는 어명을 받고 가리온을 만났었고, 세종의 밀명이 드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가리온을 구명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채윤이었지요. 국가 대사를 위해 천한 목숨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비꼬는 채윤에게, 소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요. "왜 때죽나무와 산조인을 섞어 먹느냐 하셨죠? 어린 시절 나의 치기로 아비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전하의 대사는 전하의 것만이 아닙니다.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자고 싶습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구해 주십시오".
자신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잠 못이루는 소이, 채윤은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애틋하고 가련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그녀를 말이지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지요. 나인 소이가 어린 시절 시집오겠다던 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강채윤은 얼마나 놀랄 것인지, 서로를 죽은 줄만 알고 있던 두 사람이 언제쯤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지....
강채윤을 만나고 온 소이가 세종에게 묻지요. "왜 그 자입니까? 그 자가 물었습니다. 대의를 위해서인지, 가리온의 목숨을 위해서인지...".
잠시 상념에 잠긴 듯하더니 세종 이도가 입을 열었지요.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왕이 외었을 때, 모두가 내게 대의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했다. 또한 왕은 그래야만 한다고 했고...헌데 내가 대의로 한 것을 두고, 어떤 놈이 '지랄하고 자빠졌네'했다. 그 자가 바로 강채윤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자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더냐, 그래서 그 자다. 또 한 명의 판관, 가장 무서운 자,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자".
성삼문과 박팽년 외에 또 한명의 판관 강채윤이라는 인물의 의미는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며, 세종의 과제이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정기준, 아니 정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종이 싸우는 이념은 '대의'의 뿌리가 다름에 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떠받들고 지탱하는 뿌리를 사대부로 봤지만, 세종은 그 뿌리를 똘복이, 즉 백성에게 뒀지요. 정도전과 세종의 성리학적 이념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백성을 위한 민본주의, 성리학의 이념이자 근간입니다. 허나 나라를 경영하는 주도권이 재상에게 있느냐, 왕에게 있느냐를 두고 이방원과 정도전은 의견을 달리했고, 세종 이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이방원-정도전, 세종 이도-정기준, 대를 이은 이들의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입니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죠.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세종 이도와 정기준의 차이는 그들을 지탱하는 뿌리의 다름입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밀본지서를 금과옥조로 삼고 사대부들을 뿌리로 세우려 했고, 세종은 똘복이와 같은 백성이 뿌리가 되어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습니다. 한글은 세종이도가 백성에게 가는 길이었습니다. 백성을 얻는 방법이었고, 백성을 받드는 길이었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었습니다. 세종이 그 오랜 시간 비밀조직 천지를 이끌면서 집현전 학사들에게 조차 실체를 밝히지 않고, 홀로 외로이 걸어왔던 길, 백성에게 향하는 길이었지요. 그것이 세종의 대의였습니다.
그러나 정기준의 대의는 답보상태, 아니 후퇴를 했습니다. 오히려 대의에 역행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말이지요.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사대부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일에 게거품을 물며 반대를 했고, 백성을 위한 세법개혁이나 농사, 상업에 필요한 실용학문을 천시했죠. 왜? 백성의 힘이 커짐을 경계하고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백성들, 부유한 백성들은 왕 못지않게 경계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을 반대하기 위한 반대일 뿐이었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집현전을 철폐해야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똑똑한 학자들,날로 새로워지는 학자들의 논리에 고인물이 당할 재간이 없었던 거죠. 경연은 왕을 견제하기 보다는 세종, 즉 왕권을 강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이죠. 경연을 강조했던 정도전에 반해 정기준이 집현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사상적 퇴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기준이 가리온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예상은 했지만 아이러니한 그의 모습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더군요.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버러지 목숨입니다"라고 했던 말이었어요.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을지, 궁여지책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는지 모르겠어서 말이지요. 국가를 왕-사대부양반-양민-천민 등 철저한 신분계급에 따라 성리학의 질서를 대입시켰던 것이, 이들 유학을 숭배하던 성리학자들 아니었습니까. 신분을 감추고 백성들 사이에 몸을 숨긴 정도전이 반촌에 숨어든 것은 공자의 사당이 그곳에 있었고, 성리학의 요람이자 성지이기 때문이라는 설득력은 있지만, 천민들이 모여사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에서 이율배반적이지요. 사람 취급하지 않은 천민들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점, 과연 정기준은 그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변화는 없었을까가 자못 궁금하기만 합니다. 
가리온이 세종의 한글창제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할 지, 종국에는 "이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고 했던 그의 말을 철회할 날이 오겠지만, 가리온이 결정적으로 세종의 한글창제에 마침표를 찍을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극적입니다. 아직 미완인 부분이 후음인데, 소이를 통해 가리온에게 전달한 밀명이 이와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가리온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저는 이부분이 참으로 궁금하네요. 작가가 멋지고 의미있게 갈무리를 하겠지만 말입니다.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강채윤을 가장 무서우면서 가장 믿을 만한 자이며, 가장 멀리있는 자라고 했지요. 강채윤은 돌복이로 대변되는 세종의 백성을 상징하겠지요. 임금이라는 자리는 백성의 말을 가장 무서워 해야 하는 자리이며, 백성의 믿음 위에 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요. 임금과 가장 멀리있으나 가장 무서운 자, 백성을 두려워 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못지않게 군주가 지녀야 할 기본덕목입니다.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궁에 들어 온 똘복이라는 드라마적인 설정은 있지만, 세종의 백성을 대하는 자세는 오늘 가장 필요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 판관으로 백성으로 대변되는 똘복이 강채윤을 둔 것은, 백성이 원하지 않으면, 백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힘을 들여 만들어 왔다고 해도 버릴 것이라고 했던, 세종의 위대한 민본주의 정신에 일치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크지요. 집현전 학사들의 검증, 재검증을 거치고도, 백성을 위한 일을 그 백성에게 또 검증을 받으려 하는 세종대왕,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일들을 똥고집으로 강행하는 어떤 이들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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