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해'에 해당되는 글 49건

  1. 2013.07.11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종석, 기억 잃었어도 가슴이 기억한 이보영 (3)
  2. 2011.05.31 '미스리플리' 충격변신 이다해, 두 얼굴의 가면 누가 씌웠나? (6)
  3. 2010.04.18 '하이킥 결말 처참했다', 신세경의 고백을 보고 (49)
  4. 2010.03.28 '추노' 언년이 캐릭터 실패 이유 네가지 (96)
  5. 2010.03.27 '추노' 업복이, 좌의정의 어디를 쏘았나? (29)
2013.07.11 09:38




'합리적 의심', '무죄추정의 원칙'... 어춘심을 살해하고도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갔던 민준국(정웅인), "망할놈의 원칙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그 원칙을 혐오하던 사람이 그 원칙으로 한 사람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필사적으로...".

코끼리 퍼즐을 예를 들어 최후변론을 한 서도연 검사의 말도 쉽게 이해되었고,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장혜성의 변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도연 검사가 예시했던 사건의 피해자가 혜성의 어머니였다는 것을 밝히면서 까지 수하의 무죄를 주장한 장혜성, 민준국이 빠져나갔던 것과 같은 법의 원칙에 근거해 수하는 무죄판결을 받고 나오게 되었지요. 휴~~ 다행. 수하의 선고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일주일이 참 길었다우~ 

박수하를 목격했다는 신고자 문성남을 찾아간 서도연, 그리고 도연과 과일가개 아줌마를 지켜보고 있는 민준국의 등장으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했죠.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살해당할 가능성이 커보이기는 한데, 뒤를 캐고 다니는 과거 11년전의 또다른 목격자 서도연(이다희)도 민준국의 범행대상에 오를 것 같아 불안하군요. 곧 형집행정지로 풀려날 것이라는 황달중 역시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수하의 공판은 5:4라는 배심원 평결이 나왔지만, 아내를 토막살인했다는 죄목으로 25년째 감옥에서 살고 있는 황달중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마치 남일 얘기하듯 자신의 머리가 뭐가(뇌종양?) 생겨 형집행정지로 다음 주면 나가게 될 거라는 황달중, 뒤에 이어진 황달중의 미소가 너무 맑고 좋아보여서 슬펐습니다. "박수하 그 친구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친구는 나처럼 살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민준국에게 왼손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증언으로 수하에게 유리한 증인이 돼주기도 했던 황달중, 그는 25년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지만, 수하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만족해 하는 그의 미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혜성의 최후변론 마지막 말이 가슴께에 얹혀오더군요. "(무죄임에도) 인생의 빛나는 시간을 감옥에서 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망할 놈의 원칙(형법 325조)이 필요한 겁니다. 제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놔 준 개떡같은 원칙이지만, 또 그 원칙이 피고인을 살릴 수 있는 지푸라기같은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울음을 꾹꾹 참으며 최후변론을 마치고 나온 혜성은 끝내 화장실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지요. 어머니를 죽인 살인마를 내보내야 했던 법이었는데, 수하를  살리기 위해 그 원칙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자신이 잘한 일이었냐고 물으면서 말이죠. 우리가 흔히 법대로 하자는 말을 하는데, '법대로'라는 말, 적용되는 사례는 하늘과 땅차이의 결과로 나오는군요.

김공숙(김광규) 판사도 이번 재판은 개운한 마음이었을 듯 합니다. 지난 번 민준국 재판때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볼 일보고 뒷처리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온 듯한 표정이더니 말입니다.  

 

무죄판결을 받고 법원로비에 우두커니 서있는 박수하,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수하에게 세상은 망망대해 같았을 겁니다. 수하의 집주소를 알고 있던 혜성이 수하를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지만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수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열쇠수리공을 기다려야 했지요.

30분안에 온다는 열쇠수리공을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혜성은 세상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죠. 자신의 어깨에 잠든 혜성의 머리를 기대주는 수하, 재판중 메모를 하던 혜성의 왼손바닥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수하입니다. 참 고마운 손입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참 좋은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혜성의 손에 입을 맞추는 수하, 마치 숭고한 의식을 치루듯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하는 손키스에 가슴이 벌렁...  

온 마음이 담아 잠든 혜성에게 전하는 수하의 마음, 혜성의 손을 잡고 감사의 키스를 한 일이 벌렁할 일이 아니었는데, 너무 숭고한 의식같아서 뭉클했는데도, 수하(이종석)땜시 덜컹했네요. 요즘 이 어린 남자에게 제 마음도 홀라당 빠지고 있는 중이라...ㅎ

 

충기에게서 건네받은 일기장, 완전히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퍼즐 한 조각처럼 장혜성과의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한 수하입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혜성에 대한 기억이 없음에도 혜성을 보면 자석처럼 수하 마음이 따라가죠.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 망망대해같은 세상에서 수하의 손을 잡아줄 단 한사람처럼 느껴지는 수하입니다. '난 당신을 잊지않았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면 내가 꼭 지켜주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느 날 적어둔 자신의 일기, 일기속의 당신이 장변임을 수하는 알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었어도 가슴은 그녀를 기억하는 수하입니다.  

이종석의 담백한 내면연기가 참 좋더군요. 자신의 감정을 다 표출하지 않는데도 이종석의 졸린듯 촉촉한 눈빛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고, 감정을 싣기보다는 착잡하게 내뱉는 대사톤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목소리가 매력적입니다. 

 

물론 어린 연하남 수하에게 빠지고 있는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애써 부인해보고 수하와 거리를 두고 피하려고 해보지만 혜성도 수하를 좋아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지요. 재판이 끝나고, 수하의 무죄를 끌어내면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느냐고 다시 묻겠다던 차관우 변호사를 피하는 혜성, 화장실 앞에서 차관우를 보고 잽싸게(완전 티나게 ㅎㅎ) 몸을 숨겼지만, 들켜버렸지요. "내가 안되는 이유, 물어봐도 돼요?", "내가 말도 안되게 어이없게도 그 애가 자꾸 신경쓰여요. 정말 말도 안되게 내가 그 애를 좋아하나봐요". 

혜성은 수하를 좋아하게 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수하를 피해다녔죠, 사무실로 찾아온 수하때문에 책상밑에서 발에 쥐가 나도록 숨어있어도 보고, 김공숙 판사의 가운을 방패로 거리에서 엉덩이를 쭉 빼고 숨어걸어가기도 했고, 수하에게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는 포스트잇까지 붙여두고 왔지만, 수하를 그녀 마음에서 밀어내지는 못했더군요.

결국 회전문에서 수하에게 꼼짝없이 잡힌 혜성, 수하에게 모진 말로 거리를 두려고 하지요. "널 피곤할 정도로 싫어했어. 니가 아니라 민준국이 나한테 특별해서 열심히 변호한거야. 네 덕에 변호사가 뭔지 알게 된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치만 거기까지! 그니까 너도 여기까지!!". 

수하와 만나기를 불편해 한다는 눈치를 채고 있었던 차관우의 구조전화로 수하를 두고 커피숍을 나와 도망치듯 택시를 타고 가버린 혜성, 혜성의 귀에 수하의 말이 자꾸 맴맴 돕니다. "가지마요, 가지마".

 

커피숍에서 수하에게 모진말을 해주고 돌아서 버렸던 혜성, 차관우가 집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결국 나가고 말았죠. 억수같이 비가 오는데, 그 바보같은 녀석은 아마도 그 자리에서 꼼짝않고 혜성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혜성은 기억도 못하는 약속을 지킨다고 10년을 찾아 혜성 앞에 나타났던 그 녀석, 그 녀석의 쇠심줄같은 고집, 그 멈추지 못하는 사랑을 혜성은 이미 알고 있거든요. 

"진짜 미치겠다, 너를 어떡하면 좋으냐...", 비를 쫄딱 맞고 커피숖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수하, 혜성의 가슴이 철렁합니다. '안되는데, 이건 아닌데... 어린 널 좋아하고 있는 나는 어떡하면 좋냐... 니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날 겁나게 한다, 수하야'.

 

수하가 웃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웃고 있습니다. 떨어뜨린 우산을 주워 혜성에게 씌워주면서 수하는 웃습니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기억은 잃었어도 내 가슴은 여전히 당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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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1 11:52




학력위조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작품동기를 읽었을 때만해도, 별 쓰잘데기 없는 것이 다 드라마로 제작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사회의 한 병폐이기도 한, 소위 학벌이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해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다해의 차기작이라 기대도 컸지만, 성균관 스캔들의 박유천의 연기자로서의 진검승부가 될 작품이기도 해서 기대를 가지고 첫 회를 봤습니다. 
첫 회를 본 소감은 스토리 전개는 빨라서 좋았는데, 연출과 편집이 산만한 느낌이었습니다. 남녀 주인공들이 얽히는 과정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억지스러움이 많았죠. 같은 고시원에서 장미리와 박유천이 만나는 장면도, 아트홀에 면접을 보러갔다가 성추행을 당하고 나온 장미리와, 피아니스트 아내의 불륜현장을 보는 장명훈(김승우)과의 첫만남도 헐거워 보이는 전개였습니다. 장면이 급작스럽게 다른 인물로 옮기는 것이 반복되어, 스토리가 다소 정신없이 전개되었고, 교차편집이 지나치게 반복되다 보니, 연출은 산만하고 스토리 흐름도 들쑥날쑥해서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기대를 가지고 보려고 생각중입니다. 장미리라는 캐릭터가 대변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라마를 통해서 곱씹어주길 바라기 때문일 겁니다. 겉모습, 가진 것, 조건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외적 잣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어떻게 녹여낼 지 기대되기도 하고요.  

미스 리플리는 바닥인생의 한 여자에게 천우신조같은 고속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세상아 엿먹어봐라'는 듯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속인 것이 아니라, 너희가 속은 거야' 라며, 세상을 조롱하고 싶은 여자, 이 여자의 거짓말에 세상은 조롱거리가 되고, 그럼에도 잘못은 너의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다고, 손가락질 받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아, 그럴 것 같다고요. 신정아의 사건이 말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저는 그렇게 봤거든요.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서 드라마 메시지도 이런 것이 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첫회는 주인공 장미리(이다해)의 불행만이 반복되는 인생에서 시작됩니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더럽게도 운없는 여자에게 베란다 청소물까지 끼얹어지는, 박복해도 저렇게 박복할 수가 있을까 싶게 철저하게 그녀의 인생은 비참하게 꼬이기만 하지요. 꼬인다기 보다는 안풀린다는 말이 정확하겠군요. 워낙 가진 조건이라는 것이 바닥이라, 그녀에게는 기회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포주에게 겁탈을 당하려는 위기를 모면하고, 건물에 화재사고를 내고는 한국행 비행기를 탄 장미리, 토악질을 해가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번 이유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입니다. 양아버지의 노름빚을 갚고 한국으로 가서 엄마를 찾으려는 장미리, "최소한 이렇게는 안살 거 아냐..." 한국이라는 나라는 밑바닥 술집여자보다는 다른 인생을 살 기회를 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가진 것, 배운 것없는 그녀는 냉대를 당합니다. 고아에 고졸학력은 장미리가 어떤 재능을 가졌든 문전박대의 이유가 돼버립니다. 
주인공 장미리는 술집여자로 돈에 웃음을 파는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지우고 싶은 과거입니다. 술집여자출신이라는 꼬리표없이 새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온 한국, 그러나 그녀가 발붙일 곳은 송곳만큼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가진 것없는 고아, 고졸학력은 그녀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느냐를 묻기도 전에, 당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단정지어져 버립니다. 장미리의 몸뚱이를 보는 욕정에 사로집힌 미친 남자들 몇을 빼고는 말이지요. 
양아버지가 진 노름빚을 갚기 위해, 사창가에서 술팔고 웃음을 팔았던 장미리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취업비자없이 한국에 장기체류할 수 없는 장미리, 장미리가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길은 취업해서 비자를 취득하는 방법뿐입니다. 취직은 그녀의 절박한 희망이 셈이죠. 그러나 고아출신, 고졸학력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기 만큼 힘이 듭니다. 여기저기 면접을 다니지만, 그녀를 채용하겠다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아트홀 직원채용 면접장에 가서는 면접관이 성추행까지 하려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뭐 저런 개떡같은 놈이 있나 싶은데, 여튼 장미리는 취직을 하기 위해 면접관을 유혹했다고 오해까지 받지요. 어머니를 찾아 온 한국, 가족도 학벌도 인맥도 없는 그녀는, 여기서나 저기서나 그렇게 노리개감으로 취급당합니다. 그런 장미리에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호텔리어 장명훈이 하카타 사투리를 하는 그녀를 VVIP 나까무라상의 통역을 제대로 해주면 정규직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지요.
그녀의 운명을 가른 한마디는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였습니다. 앞뒤토막 다 자르고 동경대 나왔다면 취사선택해서 들어버리는 장명훈, 장미리는 순간 동경대 나온 인재가 돼버린 것입니다. '세상 재미있다, 될대로 되라지, 동경대가 별거냐?' 처음에 오해한 것은 장명훈 당신이야.
"길가다가 우연히 만나서 누구의 추천도 보증도 없이... 제가 아무리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정규직 취직은)불가능하겠죠".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12글자에 불과한 말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말이 돼버리지요. 듣는 사람의 오해에 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절박함에 거짓말이 시작되고,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가기만 합니다.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다른 거짓말이 필요했고,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장미리의 모습은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돼 버리겠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도 모르게 섞여버리죠.그녀의 첫번째 거짓말,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는 '동경대를 나왔다'로, 장미리는 동경대 출신인재로 가짜 학력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녀에게 가면이 씌워진 거죠. 그녀의 학력가면을 누가 씌웠는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과 함께 말이지요.

첫회 직업여성의 모습부터 냉소적이고 까칠한 모습까지 미스 리플리 신고식을 무사히 치룬 이다해, 바닥까지 떨어진 장미리의 심리변화를 잘 표현했고, 감정처리도 무난하게 해냈습니다. 아직은 영글지 않은 장미리라는 캐릭터임에도 그렁그렁 맺힌 눈물만으로도, 희망없는 세상을 향한 비참함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아하면서도 슬픔과 청초함이 돋보이는 눈매를 가진 이다해, 장미리라는 복합적인 인물에 캐스팅된 것은, 이다해에게는 연기변신의 큰 분수령이 될 기회를 잡은 듯합니다.
그만큼 장미리라는 캐릭터는 감종소모가 많은 역할이  될 듯 하더군요. 원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복잡하게 살죠. 가지고 있는 표정도 많고요. 매서우면서 냉소적이고, 그러면서 슬픔 한덩어리가 가슴께에 얹혀있는 듯한 복합적인 눈빛으로 장미리라는 인물을 잘 표현하더군요. 조금은 어두운 이미지로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이다해, 미스 리플리는 이다해에게는 연기성숙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될 듯합니다.

***덧붙이기: 기대되는 박유천
성균관 스캔들로 연기자로서도 제2의 인생을 출발한 박유천은 첫회 분량은 적었지만, 다정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같더군요. 최명길의 아들로 나오는 것을 보면 재벌가의 아들인데도, 가난한 고시원에 짐을 푼 것이 좀 의아하더군요. 나레이션을 통해 짐작한 바로는 최명길(이화)의 친아들은 아닌 듯하고, 복잡한 가정사가 숨겨있는 듯보이더라고요. 일본에서 돌아와 고시원에 방을 구하는 것이 조금 현실감이 부족해 보였지만, 장미리와의 만남을 위한 설정이라고 보여졌습니다.
박유천의 현대극에서 샤방샤방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살짝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지나치게 순박한 모습에 환상에 금가는 소리도 들렸다지요ㅎㅎ. 헤어스타일이 촌뜨기같았음...살짝 웨이브를 넣어주면 샤방한 얼굴이 빛나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저 혼자만요ㅎ;;. 박유천은 성균관 스캔들에 이어 두번째 작품인데, 연기가 더 안정된 것 같더군요. 발음 발성도 더 가다듬어 졌고, 표정연기도 자연스러워 연기자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세상을 향해 가면을 쓰기로 한 여자 장미리, 가면 속의 얼굴을 두 남자가 봅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되겠죠. 첫장면에서 장미리의 해맑은 웃음 위로 흐르는 두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표현되는 여자는 가면 속 장미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두 남자가 사랑한 장미리지요. '어머니의 눈을 닮은 여자, 웃는 얼굴이 예쁜 여자, 삶의 기쁨을 가르쳐 준 여자, 심장같은 여자...'
김승우와 박유천의 나레이션을 들으며 궁금해 지더군요. 두 사람은 가면 쓴 장미리를 사랑한 걸까, 가면을 벗은 장미리를 사랑한 걸까? 드라마 시작과 함께 흐른 김승우와 박유천의 나레이션은 드라마의 새드엔딩에 대한 암시까지 깔려있어,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드라마가 되리라는 짐작도 하게 됩니다. 애정관계는 아무도 연결되지 않을 것 같더군요ㅜㅜ. "나는 그녀를 정말 사랑했습니다"는 사랑한다는 진행형이 아니라, 끝나버린 마침표의 의미가 더 읽혀지니 말이지요.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또다시 묻게 될 듯합니다. 그녀에게 가면을 씌운 사람은 누구일까 입니다. 거짓의 가면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장미리라는 여자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의 질문이 되겠지요. 장미리의 거짓말이 나쁜 것인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게 한 학벌병에 걸린 우리 사회의 단면이 더 나쁜 것인지, 다소 버거운 질문에 얼마나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지는 드라마가 끝날 즈음에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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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8 07:18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보다 신세경이 한 프로그램에서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이 처음에는 마음에 와 닿았는데 돌이켜보니 처참했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고, 뭐랄까 반가운 고백을 들은 것 같았어요. 사실 결말부분에 대해 신세경이 죽음으로 가자는 의견을 함께 했다는 기사를 보고 굉장히 실망했고 충격 또한 컸었어요. 신세경은 제 아들과 한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제게는 딸같은 나이인데, 그런 결말을 생각했다는 데에 당혹스러웠거든요. 저는 어떤 이유로든 죽음에 대해 미화하거나, 작품을 위해 억지 죽음을 넣는 드라마에 대해서는 좋게 보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죽음이 삶을 넘어서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은 지금도 감독의 충격적인 결말을 위한 강박관념이 낳은 어거지 죽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두 번다시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결말이에요. 제게는요.
세경과 지훈의 죽음은 추노에서 주인공 대길의 죽음과는 다른 죽음이에요. 많은 사랑을 받은 대길의 죽음은 설득력과 당위성이 있는 죽음이었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또한 있었지요. 대길의 죽음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무게까지 짊어지고 간 죽음이었기에, 죽어도 죽지 않은 여운과 감동이 남았었지요. 업복이의 최후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추노가 끝나고 이다해와 오지호의 인터뷰를 보니 극 결말에 자신들도 죽고 싶었었다고 하더군요. 주인공들의 죽음은 그만큼 강렬한 여운을 남기기에 그런 욕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 다 죽을 수 있는 상황들이었어요. 황철웅과 관군들에 의해 쫒기는 상황이었고, 삶보다는 죽음이 더 가까웠던 절박한 상황이었지요. 그럼에도 작가는 희망을 남주고 싶은 이유로 대길에 의해 이들을 지키게 했어요. 

그런데 세경과 지훈의 죽음은 거창하게 각성이라는 말로 포장은 했지만, 죽음으로 이어질만한 숭고한 사랑도 아니었고,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런 무게를 가진 사랑도 아니었어요. 더구나 지훈이 각성했다고 까지 붙일만큼의 뒤늦은 깨달음도 아니었고요.
하이킥 결말의 문제는 각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준에다 죽음을 끼워넣었다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차라리 황당스럽게도 공항가는 길에 빗길사고로 죽어버렸다는 식의 설정이었다면, 충격까지는 아니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재수없는 사고사를 당해 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결말 역시 납득이 가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각성이라는 말로 시청자를 우롱했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신세경의 뒤늦게 생각해보니 지붕킥의 결말이 처참했다고 고백한 것에 반갑다고 한 것은, 제 아들같은 나이의 젊은 여배우가 드라마라는 이유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감정에만 빠져 죽음을 합리화시키려 했던 자신을 돌아봤음에 반가웠어요. 또한 신세경이 지붕뚫고 하이킥의 전체적인 부분을 돌이켜 봤다는 것에 반가웠어요. 신세경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그리고 신세경이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더 자세한 내용은 기사에 나오지 않았기에 모르겠지만, 신세경도 극중 동생 신애와 아버지, 그리고 지훈이의 가족들 등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극중 세경이의 성장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을 테고요. 또 하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받았을 충격에 대해서도 시청자의 입장이 되어서도 생각해 봤을 거라 짐작됩니다. 
제가 아는 이웃 중에 하이킥의 결말을 본 이후 충격에 그 후 드라마 리뷰글을 더 이상 올리기 싫어졌다는 분도 있고, 하이킥 팬 중에는 그동안 받아 두었던 파일들을 전부 삭제해버렸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모든 분들이 결말에 허무감과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이킥의 충격적인 결말에 대한 후유증이 컸다는 것은 그만큼 하이킥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와 파급효과가 컸음을 반증하는 예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드라마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영상물의 재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 드라마를 보며 막장이다 명품이다 라는 식의 평가를 하겠어요? 그것은 드라마가 우리 이야기를 담고 있고,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에 공감을 끌어내고, 또한 일종의 사회의식의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하이킥은 시트콤이라는 형식을 빈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고, 때로는 신랄하게 문제점을 꼬집어 주기도 했어요. 88세대들의 문제점이나 권력의 방송장악,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과 부에 대한 편견까지 해학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하이킥에 열렬히 호응했던 이유는 가난한 세경이의 모습이 나이든 어머니들의 젊은 날의 초상이었고, 세경의 성장과 행복을 통해 희망적인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정음의 모습이 오늘날 88세대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이기도 했기에 취업의 높은 장벽때문에 좌절하는 젊은이의 모습도 봤고요.
제가 특히 세경과 지훈의 죽음으로 감독에게 충격받았던 것은 과연 세경이 죽음을 통해 사랑을 이룬다고 행복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어요. 행복의 기준이 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사랑이 행복의 기준이 되는 사람도 있겠고, 돈이 행복의 기준인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 명예, 자식들의 출세 등등 저마다 행복의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극중 세경의 행복 우선 순위는 뭐였을까요? 처음 하이킥의 제작의도에서 밝힌 것은 세경의 성장이었어요. 그리고 세경은 서울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의탁할 곳 없는 동생과 다행스럽게 순재옹네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며 적은 월급이지만, 그돈으로 신애 뒷바라지할 적금도, 그리고 못다한 공부를 계속할 꿈도 키우고 있었어요. 지훈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으로 세경이 힘들기도 했지만, 세경은 봄이 오면 아버지와 함께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도 가지고 있었어요.
이런 세경의 강한 모습에 세경의 행복을 열렬히 응원했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지훈이 못돼 보이기도 했었지요. 저도 처음에는 지훈이와 세경이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훈이 정음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고,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굳이 사랑하는 사람을 세경의 시선에서 떼놓으려고 하는 것이 무리다 싶어 지훈과 정음을 지지해 주기로 방향을 틀었어요. 왜냐면, 세경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에서 지훈과 세경의 러브라인을 지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훈의 입장에서는 정음과 사귀는 것이 행복한데 지훈에게 세경을 봐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내가 좋아하는 세경이라는 애가 지훈이 너를 지독히 좋아한다, 그러니 너도 세경이를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훈과 정음라인 속에서도 지훈이 속으로는 세경을 좋아했는데, 깨닫지 못했다고 설정한 것은 감독만의 컨셉이었을 뿐, 시청자가 납득하고 복선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한 것은 감독의 착각이었고, 억지였어요. 시청자는 감독의 전작들에 비춘 결말들의 예에 비추어 예상했을 뿐입니다. 감독의 전작들을 세포분석하듯이 파헤치는 시청자들이야 감독의 성향을 알아서 그런 예측들을 하겠지만. 처음으로 김병욱 감독의 작품을 본 시청자거나, 아무런 분석없이 던져주는 대로 보는 시청자들이 감독의 성향까지 분석해가며 하이킥을 봤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말도 안되는 결말에 분노하고 다시는 김피디의 작품을 보지 않겠다고 보이코트까지 선언하는 하이킥 시청자들도 있었겠지요.

신세경의 충격고백, 의미가 큰 이유
주인공이었던 신세경이 하이킥 결말에 대해 돌이켜보니 처참했다고 한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세경이 죽음으로 가자는 결말을 제의했든, 감독의 의견에 따랐든 신세경이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을 때, 저는 배우 신세경 개인에 대해서 안티가 되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20살밖에 안된 여배우의 생각이 이뤄지지 못할 사랑에 대해 죽음이라는 소아기적인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충격이었거든요. 따지고 보면 지훈과 세경이 죽음으로 맞설만큼 이뤄지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어요. 까놓고 지훈이 세경을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 우습지도 않은 각성을 했다면, 세경을 데리고 도망이라도 쳤을 수 있을 것이고, 가족들에게 당당히 폭탄선언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지훈이 각성했기 때문에 일부러 자동차 사고를 내고 세경과 동반죽음을 택한 것은 아니었어요. 
문제는 김병욱 감독이 지훈의 각성과 죽음을 동일시하는 결말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부분을 보고, 그리고 세경에게 달러를 넣어 둔 데미안 책을 보며, 감독의 소년적인 감수성에 놀랐을 뿐이에요. 젊은 시절,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것이 헤세에게서 보여지는 허무주의 혹은 나르시즘일 겁니다. 저는 감독이 여전히 젊은 시절의 감수성에서 머물러 있구나 라는 생각에 실망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나이들어서도 그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순수하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이킥 결말에 대해 감독에게서 보여지는 허무주의와 죽음을 미화하면서 까지 세경에 대한 지독한 감독의 짝사랑을 볼 수 있었다는 글도 올렸는데, 여하튼 충격만을 위한 결말에 대한 김감독의 외골수적인 고집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감하지 못하겠네요.

그런 점에서 신세경이 늦게나마 하이킥 결말에 대해 처참했다고 말한 기사를 접하고 신세경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덜어낸 것 같습니다. 신세경의 하이킥 결말에 대한 고백은 김병욱 피디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김피디 작품의 결말이 하나같이 죽음이 나오지 않은 것들이 없었고, 충격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에 끔찍하기도 했었는데, 그 중 지붕뚫고 하이킥이 가장 끔찍했었거든요. 김피디는 감독으로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세경의 고백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드라마는 감독의 손을 떠나 방송으로 내보내는 순간부터는 시청자와 함께 하는 것이지, 감독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이 시청자에게 공감을 주고, 기억에 남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결말로 기억에 남게 하려는 것에서는 이제 졸업했으면 싶습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마지막회 충격적인 결말이 아니었어도, 그전 에피소드들 만으로도 기억에 남을 작품이었어요. 마지막회는 보기 좋은 케이크에 초가 아니라, 칼이 꽂혀져서 기억하고 싶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버렸지만요.
드라마에서 죽음으로 결말을 내는 것은 많이 있고, 흔한 장치들입니다. 하지만 하이킥의 경우는 죽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사랑의 자각이라는 문학적 감수성을 죽음의 무게와 동일선상에 놓아 버렸기에 위험하기까지 한 결말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죽음이 삶의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각이었든 진실한 사랑이었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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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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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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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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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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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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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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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7 07:32




추노 최종회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고, 인상깊었던 업복이의 최후는 드라마 추노에 관통하고 있는 분노, 울분, 설움, 희망,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의 과제까지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추노의 주인공은 업복이와 초복이라는 노비들, 가장 낮은 자 민초들이었습니다.
화려한 짐승남들의 저잣거리 무용담 속에서도 노비들의 이야기는 조용히 진행시켜 왔어요. 특히 과거 관동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업복이였음에도,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은 민초들이 그만큼 힘없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호랑이의 포효보다 강한 분노 한 방을 위해 숨죽이고 살게 했었지요. 하지만 조용한 사람이 더 무섭다고 업복이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 낸 이름없는 영웅이었습니다. 
추노 최종회 최고의 명장면은 업복이가 궁궐로 들어가 화승총을 날리고, 붙잡혔던 15분여의 장면이었습니다. 대길이의 죽음은 뜨거운 사랑을 받은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것에, 그리고 이대길을 연기하는 장혁의 눈부신 연기에 감정선을 끓어오르게 했다면, 업복이는 그 담대함과 죽음 자체에 대한 의미가 컸던 부분이었어요. 제가 업복이의 죽음 부분을 따로 정리한 이유는 추노의 메시지가 업복이에게 함축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같은 노비가 있었다"
초복이를 월악산 영봉으로 보내고, 노비당 동지들을 향해 장례원으로 간 업복이는 처참하게 살해된 동료들의 시신과 수색하는 관원들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 숨 한자락이 붙어있던 끝봉이로부터 이 모든 것이 그분 그놈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지요.
"업복이랑 도망 가 둘이 살아. 무섭다, 그 놈들 정말 무서운 놈들..."이라며 끝봉이가 숨을 거둘 때 업복이의 그 울음이 아직도 눈물나게 합니다. 업복이 공형진은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 올라오는 슬픔과, 끝봉이 이름만 애타게 부르면서도 슬픔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절절함을 소름끼치게 표현했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보고도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터져 나오는 곡성을 참으며 입만 벌리던 그 상황이 너무나 가슴 절절하게 와닿은 장면이었어요. 공형진의 소름끼치는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업복이는 노비당 그분이 무엇때문에 '노비들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 '양반세상을 뒤엎고 노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라며 노비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희망을 주었는지, 왜 노비들을 이용해 양반사냥을 했었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고 죽겠지요. 일을 꾸민 좌의정 이경식과 그분(그놈)을 죽여 버렸으니까요. 
업복이는 봤어요. 선혜청 습격의 성공으로 들떠 궁궐로 쳐들어 가자며, 내일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흥분하고 기대에 찼던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요. 홀로 가 본 궁궐의 담장은 성처럼 높고 견고했고, 지금까지 가장 커 보였던 주인양반집 문과는 비교도 안되게 높고 컸다는 것을요. 또한 좌의정이 그분을 시켜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리려 했음을요. 
죽은 끝봉이에게 업복이 울며 말하지요. "내는 초복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야, 갸가 먼저 가서 기다린다 그랬는데...." . 기다리고 있는 초복이에게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요. 조용히 숨어 둘이 일콩달콩 살고 싶었을 업복이에요. 하지만 업복이는 알았어요. "그럼 세상은 누가 바꾼대요?" 라며 동지들에게 보냈던 초복이가 누구보다 자신의 결정을 잘했다고 할 것이라고요.
"내는 개죽음 당하지 않을 거라니,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을 거라니, 그렇게만 되면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 그러나 초복아?" 
초복이에게 전해지지 않을 말이었지만, 여느 장수보다 멋지고 여느 혁명가보다 뜨거웠던 노비 업복이의 출정식 결의였어요. 총 네자루를 지고 광화문을 향해 당당하게 선 업복이는 광화문 수문병을 총으로 쏘고 궁궐로 진입했지요. 궁궐로 들어가는 업복이의 표정은 두려움없이 담대했고, 화승총을 든 손은 한치의 떨림도 없었어요. 양반들을 죽이면서 수없이 고민했고,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주춤거리기도 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업복이의 모습이었어요. 궁궐로 들어가면서 반짝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지었던 쓴웃음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업복이의 표정같습니다.
그 분을 시켜 노비들을 이용한 우두머리가 좌의정임을 알게된 업복이는 좌의정을 향해 총을 겨눴습니다. 수하 뒤에 숨는 좌의정의 공포에 떠는 모습은 좌의정의 죽음보다 통쾌해 보였어요. 칼을 들고 덤벼드는 그분을 향해 한방, 변절자 조선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방, 그리고 좌의정을 향해 한방을 쏘고는 붙잡히고 말았지요.
바닥에 누운 업복이와 궁궐 밖 반짝이 아버지의 시선이 교차되는 장면, 그리고 반짝이 아버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장면은 추노에서 하고 싶었던 말, 드라마에 시종일관 흘렀던 민초들의 분노, 꺾을 수 없는 희망과 의지를 보여주었던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양반의 저녁 노리개로 팔려 가는 것을 보면서도, 슬픔이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던 반짝이 아버지였지요. 반짝이 아버지의 주먹은 새로운 업복이로 이어질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순종하는 역사가 아닌 항거하는 역사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업복이는 닫혀가는 궁궐 밖 세상을 향해 외쳤어요. "노비도 사람이다" 라는 것을요.  '분노하지 않는 순종은 굴복이며, 희망도 없다'는 것을요.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이 나오지 않은 이유
업복이가 궁궐로 들어가 총을 쏜 사람은 그분과 조선비, 그리고 좌의정 이경식을 향해서 였어요. 이들 세사람을 향한 업복이의 총구가 달랐어요. 그분과 조선비를 향해서는 관동명포수답게 한 번에 심장을 명중해 버렸지요. 그런데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 장면은 좌의정을 향해서 총은 쐈지만, 좌의정 이경식이 쓰러지는 장면과 굴러떨어지는 관모만으로 좌의정의 죽음을 암시했지요. 저는 감독의 연출이 이렇게 담대하고 세심하게 함축적인 메시지의 복선을 깔았다는 데서 놀랍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업복이가 죄의정을 쏜 부위는 어디였을까요? 바로 좌의정의 머리였어요. 양반들 대갈통에 구멍을 내겠다는 말을 업복이가 늘 했었지요. 좌의정은 양반계층의 최고 지위에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에요. 그 양반들 대갈통을 향해 업복이가 총을 쐈던 것이지요. 드라마 추노는 매회 선혈이 낭자한 죽음이 이어졌지만,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만은 화면에서 처리하지 않았어요. 굴러떨어진 벼슬아치들의 상징인 관모로 좌의정의 죽음과 함축적인 의미, 그 모든 것을 보여 주었어요. 
도망노비와 양민들을 추쇄해서 그들을 북방으로 올려 성을 축성하자는 의견을 인조 임금에게 주청하고 나오던 좌의정 이경식을 죽인 곳은, 놀랍게도 조선의 중요한 정치를 논하던 근정전 입구인 근정문 앞이었습니다. 업복이는 좌의정의 몸뚱아리가 아닌 양반이라는 지배계층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쏜 것이었어요. 업복이는 양반들의 지배논리와 의식,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썩어빠진 정치를 향해 쏴 버린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자고 혁명을 노래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업복이의 혁명은 성공했습니다. 썩은 사회의 정점에 있는 좌의정을 죽였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은 한걸음 가까워졌기 때문이에요.

가볍지 않은 업복이의 죽음
또 하나 업복이의 최후를 보며 새삼 놀라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업복이의 죽음은 비록 화면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업복이가 최후를 맞이 한 장소는 어디였을까요? 네, 바로 높디 높은 대궐,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고 나오는 궁궐 안이었어요.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출생과 함께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가장 비천하고 힘없는 사람, 이름자 하나 제대로 짓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개똥이, 사월이, 오월이, 초복이, 업복이, 언년이로 불리웠던 노비가 조선에서 가장 큰 집, 가장 큰 힘을 가진 대궐 마당에서 죽었다는 것, 저는 이런 드라마 속 의미들이 너무 멋진 연출들이었고, 그 상징적인 의미에 박수를 치고 싶더군요. 
업복이는 죽어가며 닫혀가는 궁궐문 안에서 반짝이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어요. 우리가 주인되는 세상, 사람이,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 그 세상에 누워 있다. 나는 죽지만 죽지 않는다. 아저씨가 있고, 월악산에 남겨 둔 초복이가 있고, 또 다른 끝봉이, 개놈이가 있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요. 포기하지 말자고요. 희망은 포기하는 순간 내 것이 될 수 없고, 꿈을 꾸는 순간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요. 초복이와 은실이의 대사가 업복이가 궁궐에서 죽어가며 전해 준 메시지인 것이에요. 
"저 해가 누구 건지 알아? 우리 거야. 왜냐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업복이는 진정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이루겠다며 혁명을 꿈꿨던 송태하는 동지들의 죽음과 불분명한 명분으로 결국은 원손의 목숨과 언년이를 지키는 것도 작은 희망이라며 개인의 각성으로 이어졌습니다. 대길이 역시 마찬가지에요. 양반 상놈 없는 세상에서 언년이와 평생 함께 살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꿈이고 희망이었던 언년이를 잃고 사랑만 쫓는 추노꾼이 되고 말았어요. 물론 송태하나 대길이의 각성과 그 의미가 결코 작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업복이는 사랑하는 초복이에게 결국 가지 않는 길을 택했어요. 대길이나 송태하는 사랑을 택했지만, 업복이는 남은 초복이를 위해 세상을 향해 더 나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 지엄한 궁궐을 홀홀단신으로 들어가 가장 부조리한 사람 좌의정을 쏴버렸습니다. 좌의정 이경식같은 인물들은 반복해서 나오겠지요. 오포교의 자리에 더 악랄한 육포교가 앉았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또 다른 업복이와 초복이가 나오듯이 업복이의 외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민초들의 노래
저는 송태하도 죽었을 거라고 지난 글에서 예상했는데, 여하튼 대길이, 송태하, 업복이는 같은 지점 죽음에서 만났습니다. 죽음을 가장 강하게 거부했던 대길이에게 황철웅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물었지요. 대길이 "저 놈이 세상을 바꾼대잖아, 이 지랄 같은 세상" 이라고 대답해 줬을 때 황철웅은 무너졌어요. 이들이 달리는 이유, 희망의 의지는 결코 꺾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대길이 역시 새 세상을 위해 죽었어요. 송태하가 바꾸겠다는 세상, 그 세상과 언년이가 같은 무게였고, 같은 의미였기에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대길이는 설화에게 이렇게 좋은 날이라고 했을 지도 몰라요. 대길이 그랬지요. 누구나 죽을 수 없는 이유 하나쯤은 있는 거라고요. 대길이가 죽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언년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대길이는 또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에요. 언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마지막 대길의 죽음은 언년이와 함께 사는 앙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 송태하가 꿈꿨던 세상, 업복이가 꾸었던 세상과 명분을 함께 했어요. 청으로 도망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 송태하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송태하 역시 비겁한 도망이 아니라, 떳떳한 죽음을 택함으로써 언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어요. 언년이는 늘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궁금해 했고 답을 바라고 있었어요. 그래야 자신도 나리를 따르지 않겠느냐고요. 언년이에게 송태하가 "청으로 가지 않습니다" 라고 했을 때 고맙다고 했던 이유는 송태하가 또 다시 도망자의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을 겁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희망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이 있지요. 드라마 추노는 이 희망을 놓치지 않는 한, 희망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살아있는 한 실패는 있어도 절망은 없음을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마지막 대길이가 태양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은 끝나지 않은 혁명, 민초들의 노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계속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업복이나 대길이는 죽었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긴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죽음으로 희망을 말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들 가슴에 살아있고,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우리들의 누이, 형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추노 시즌 2로 그 이야기를 계속 해주었으면 싶네요. 
추노의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수고하셨다는 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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