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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9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최고의 코믹왕은? (9)
  2. 2011.12.17 '뿌리깊은 나무' 결말반전, 세종과 정기준은 화해할 수 있을까? (5)
  3. 2011.12.03 '뿌리깊은 나무' 세종-정기준의 끝장토론, 어떻게 설득할까? (16)
  4.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7,8회' 베일에 싸인 정기준, 누구일까 (3)
  5.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6회' 강채윤이 감춘 군나미욕, 글자에 숨겨진 비밀은? (3)
2011.12.29 09:42




명품연기 명대사를 남겼던 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가 남긴 최고의 감동은 백성을 땅끝까지 내려가 사랑한 지극히 고독했던 인간세종, 그리고 군왕 세종의 업적 한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페셜로 방송한 뿌리깊은 나무 제자해는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7과 드라마 주인공들의 뇌구조를 공개해 큰 재미를 주었는데요, 특히 강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연기의 혼을 실은 배우들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보너스 재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명장면 베스트는 젊은 이도가 태종 이방원에게 처음으로 맞서는 장면으로 꼽혔습니다. 송중기와 태종 이방원 역의 백윤식, 그리고 무휼의 존재감을 드러낸 명장면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의 시작이 그날부터 시작되었으니, 드라마의 탄생배경이기도 합니다. 어린 똘복이를 구한 이도, 그가 구한 첫백성은 왕의 대의를 지랄하지 말라고 욕을 하는 백성이었고, 글자를 몰라 아버지와 동무를 잃은 분노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도 없는 가여운 백성들이었죠.
그가 처음으로 본 궁궐 밖 세상, 조선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사대부들을 위한 나라, 백성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나라, 백성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말로만 떠들고 있었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서면서 세종이도는 그가 꿈꾸는 조선, 모두를 품는 거대한 마방진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관문이자 결실이 백성들의 말을 본 뜬 조선의 글자,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수많은 명장면들이 시청자를 감동의 도가니로 넣었는데, 아쉽게도 빠진 것이 있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정륜암에서의 정기준과의 끝장토론 장면과, 광평을 잃은 세종이 슬픔을 가누지 못할 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강채윤의 비난을 들은 후 고뇌를 끝내면서, 훈민정음이라는 네 글자를 적는 장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사실 모든 한장면 한장면이 버릴 수 없는 명장면들이었던 이유는, 한글이 요술방망이로 뚝딱해서 나올 수 없는 연구와 노력의 산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한석규의 연기는 근엄세종, 카리스마 세종, 지극히 인간적인 세종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았지요. 연기본좌 한석규의 미친연기는 매회 불이 활할 타오르듯 시청자를 매료시켰고, 조연들의 연기와 완벽한 한 호흡을 이루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지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었으니, 밀본 정기준과의 첨예한 대립이라는 무거움 속에서도 깨알같은 웃음으로 허를 찌른 반전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무거운 축을 담당했으면서도 허를 찌르는 세종의 코믹함(?)은 무휼과 밀당하는 장면에서도 귀요미돋는 달달커플 한쌍으로 가장 사랑을 받았고 말이지요.

 

명장면 베스트 번외편으로 제가 뽑은 코믹명장면으로 뿌리깊은 나무 그 역병같았던 드라마의 또다른 매력들도 감상해 보실까요? 코믹왕도 선정해 봤는데요, 드라마 속에서는 세종을, 드라마 밖에서는 조말생 대감 이재용을 코믹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처음 똘복이가 강채윤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겸사복으로 궁에 들어왔을때, 강채윤은 사기꾼같은 입담에 행동도 깨방정 자체였지요. 이도를 죽이겠다는 숭악한 마음을 감추기 위함이었지만, 강채윤의 코믹깨방정을 압도한 인물이 있었지요. 용포를 입고 인자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세종대왕이 현신했나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일치했던 석규세종입니다. 닉네임으로 욕세종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하례는 지랄이라며, 거침없이 쏟아지는 욕은 물론이거니와 똥지게를 진 모습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지요.

 

욕세종 등장, 감칠맛 나는 충격 "우라질, 지랄하고 자빠졌네"
인상적인 욕세종의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 두 장면으로 압축해 봤습니다. 경연장에서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해 신하들이 주절주절 반대가 극심했었지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완강한 조말생대감의 코앞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던 장면, 뜨헉!하고 놀라는 조말생대감의 표정은 대사없이도 웃음 빵터지게 했던 코믹장면이기도 했지요.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벌이시나이까, 공자왈 주자왈에 대한 세종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우라질". 아직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한자로 쓰기는 했지만, 그 신랄한 비웃음이 통쾌했던 장면입니다.
욕세종의 절정은 정기준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 하고 있음을 알고 도성에 방을 붙이고 이적(오랑캐)의 글은 안된다며, 여론몰이를 하자 내놓은 대답이었지요. 광평을 납치해서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했지만, 세종은 광평의 목숨을 두고 협상하지 않겠다며, 그 참혹한 심경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지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그저 눈만 껌벅이며 아무 대꾸조차 못하고 얼음땡 시켜버린 장면이었죠.
손뼉도 마주해야 소리가 난다고, 그 황망한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입맛만 다시는 황희대감, 눈동자 굴리는 소리까지 들리게 느껴졌던 이신적(안석환)의 눈동자 연기는, 중년연기자들의 연기내공이 이런 것이라고 확인시켜준 명품연기였고 말입니다.
세종과 무휼의 밀당, 귀여운 남남로맨스 
세종이 무휼을 놀려먹는 모습도 코믹명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했던 장면들이었지요. 이도를 죽이겠다고 칼을 숨기고 들어온 강채윤, 채윤에게 밀명을 내리면서 독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신경써주지 않았다고 무휼을 놀리는 장면이었죠. 앞으로 3보 이내에 있으라며 무휼을 뻘쭘하게 만들었지요.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장난기는 그뿐이 아니었지요. 공포심에 대한 힌트를 채윤이 알아들었을 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세종, 무휼 너도 말귀를 못알아 들었지 않았느냐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세종이었죠.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엉거주춤 세종의 뒤를 따르는 무휼에게서 조선제일검 내금위장의 체면은 땅에 곤두박질을 쳤지만, 스트레스 많았던 세종의 유일한 쉼터는 무휼이었기에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은 투기하는 무휼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했다죠ㅎ.
세종의 놀림을 조석으로 받은 인물 가운데 정인지 역시 빼면 섭하지요. 소이의 출중한 암기력과 방대한 업무를 칭찬하면서, 정인지에게 소이의 녹봉 십분의 일만 받으라고, 놀고 먹는다는 말로 정인지를 하얗게 질리게 만들기도 했지요. 훗날 정인지가 어떤 인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생각하니,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말로 들리기도 하네요. 정인지가 세조의 왕위찬탈을 적극 도왔던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초탁과 박포, 우리를 빼면 섭해요
사실 드라마에서 코믹감초역할로 배치한 인물이 초탁과 박포, 그리고 옥떨이 정종철일 겁니다. 특히 초탁과 박포는 북방떨거지와 한양돼아지새끼라며 티격태격 앙숙처럼 보였지만, 누구보다 채윤의 곁에서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줬던 인물들이지요. 채윤이 죽었을때 가장 슬프게 울었을 친구들이었는데, 마지막회 반포식장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가 잡지 않아서 쪼금 서운하기도(ㅎ) 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소이의 시신을 광화문으로 데려온 이들도 초탁과 박포였겠지요.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보니 연두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개파이가 아니라 박포(신승환)였다는군요.ㅎ

이신적과 한가놈의 바퀴달린 눈동자, 소리까지 들리더라
박포와 초탁외에 대놓고 웃기지는 않았지만, 시청자들에게 표정만으로도 즐거움을 선물해 준 분들이 있었지요. 바로 이신적(안석환)과 한가놈(조희봉)입니다. 안석환의 능수능란한 눈동자 연기는 대사보다 더 많은 내면심리를 전해줘, 그의 표정연기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엿보게 했지요. 본명이 한명회로 밝혀진 한가놈의 찌그러진 표정과 눈동자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극적 재미였습니다. 밀본에서는 정기준의 참모 한가놈이 가장 두뇌가 명석하고, 사태를 분석하는 눈도 날카로웠지요. 소이의 속치마에 적힌 글자로 한글을 쓰고 읽는 법을 독학하고, 연두와 개파이에게 한글까지 가르쳤던 두번째 한글선생님되시겠습니다. 첫 선생님은 채윤에게 한글을 가르친 소이가 되겠고요.
이 외에도 재미있는 코믹장면들이 많았지만 다 열거할 수는 없겠네요. 이 장면들 정리하느라 1부부터 24부까지 재복습했답니다;;. 추천안하고 글만 읽고 쌩가버리면 삐질거임! ㅎㅎ 농담입니당^^

"전하의 글자는 달랑 스물여덟자다"
코믹장면은 아니었지만, 코믹보다 더 기분 즐겁게 웃겼던 장면을 꼽아본다면 광평대군과 채윤의 대화입니다. "5만자 중에 천자를 배우는데도 그리 오래 걸렸는데, 도대체 전하가 만드신 글자는 몇글자나 되십니까? 5천자요? 아니면 3천자요?". "스물여덟자". "천 스물여덟자요?". " 아니 그냥 스물 여덟자". 
스물여덟자라는 그 짧고 강한 말에 배여있던 광평대군의 자신감과, 헛소리를 들은 듯한 채윤의 표정이 대조적으로 클로즈업되었는데, 다시 봐도 스물여덟글자에 삼라만상을 다 담을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이 가슴벅차게 자랑스러움으로 밀려오더라고요.
코믹명장면 베스트를 정리해 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최고의 코믹왕 본좌에도 역시 세종이 1위^^. 

신세경이 반한 당구치며 춤추는 조말생대감, 귀요미 훈남등극
여기서 끝나면 진짜 섭섭하지요. 촬영장 에피소드에서 월척 코믹왕이 등장했답니다. 드라마에서는 욕세종, 삐짐대왕, 짓궂은 세종이 코믹왕이었지만, 촬영장 에피소드를 통해 공개된 연기자들의 모습에서 의외의 반전왕이 있었으니, 놀랍게도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습니다. 조말생은 드라마에서도 멋진 보수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도 했고, 밀본 정기준을 속이고 한글유포의 임무를 위해 나인들을 궁밖으로 빼돌린 연극에서도, 최고의 배우로 등극했던 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재용의 촬영장에서의 소탈하고 장난기있는 모습에 하트뿅뿅이었답니다. 촬영장에서는 인기만점 훈남에다가 후배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분이더라고요. 신세경의 이상형으로 뽑히기도 했답니다. 이재용의 구레나룻이 멋지다는 신세경, 이재용은 자신의 매력을 멋진 옆선이라며 자신있게 자랑하기도 했는데요, 위로 치올라간 눈썹과 어울리게 구레나룻도 길게 빼서 단호한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재용의 소탈한 다른 모습에 빵터졌으니, 귀여운 모습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었답니다. 정말 귀요미 이재용이었습니다. 늘 재미있는 말과 행동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훈훈하게 하기도 하고, 소품을 이용해 당구치는 모습으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더군요. 소탈한 모습과 재미있는 모습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즐겁게 만든 중년연기자 이재용, 뿌리깊은 나무 카메라 밖 코믹왕이셨습니다. 

대본, 연기자, 연출, 시청자의 사랑이라는 네박자가 맞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드라마를 빛낸 모든 연기자들에게 조말생대감의 입을 빌어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뿌리깊은 나무 24부까지 오는 동안 내내 행복했고, 한글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님, 정말정말정말 존경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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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09:04




뿌리깊은 나무에서 간댕이가 배밖으로 나오다 못해 심지어 마당까지 쓸고 있는 인물이 둘 있었죠. 감히 임금의 이름자를 부르는 대역죄인들로 그 자리에서 목을 뎅강 잘라버려도 할말없을 강채윤과 정기준입니다. 유일하게 세종을 이도라고 칭하며 어금니를 갈던 인물들이죠. 세종과는 개인적인 원한과 사상적 이념적 대립으로 얽혀 드라마의 대립축을 형성했던 인물들입니다. 강채윤은 드라마 중반까지도 세종과 화해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원수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고, 정기준은 세종의 권력을 무력화시켜 상징적인 꽃으로 남겨두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큰 변수가 생겼지요. 세종이 만든 글자때문입니다. 세종의 글자는 강채윤에게는 생생지락의 희망이 되게 했고, 전장을 누비며 갈아왔던 복수심을 내려놓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백성도 대의라는 것을 가져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설레이게 합니다. 소이와의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그의 아들 딸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또 그 아들 딸의 아들 딸들이 글자를 익혀, 지금보다는 삶이 덜 고달파질 것을 꿈꾸게 하죠.

정기준에게 글자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게 하는 것이 세종의 글자였고, 혁명과도 같은 글자, 역병과도 같은 무서운 파급력을 가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분산, 그것도 백성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무지몽매한 군중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것이었으니, 정기준은 혼돈에 빠질 조선의 미래를 염려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도의 무책임한 책임 떠넘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성리학보다, 사대부의 임무보다, 정도전의 밀본지서보다, 글자를 막는 것이 그의 시대적 사명이 된 것은, 어찌보면 백성에게 권력을 나눠주려는 세종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해, 백성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정륜암에서의 끝장토론은 무승부였고, 어느쪽도 설득하지 못하고 설득당하지도 못했지요. 책임부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들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세종도 정기준을 만나고 와서 흔들렸고, 정기준 역시 사대부가 백성을 교화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 대한 고민에 직면하게 되었고요.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화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서로의 길을 더 치열하게 가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말입니다. 불씨일대기를 펴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버린 정기준이었고, 글자로 인해 벌어질 미래가 혼돈일 지, 희망일 지는 그들의 몫으로 두겠다며, 현재의 백성을 위해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겠다는 세종이었지요.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를 쓰면서 맨 마지막으로 바를 정(正)자를 썼던 것은, 백성에게 글자를 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그가 내린 결론이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정기준을 어떻게 처리할까는 제작진 뿐만이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이제 2회만을 남겨두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 어떤 결말이 될지, 아니 누가 죽게 될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두고 지켜보겠지만, 저는 정기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더 무게를 두고 생각중입니다. 작가는 아니지만;;
정기준과 강채윤은 세종에게는 임금으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어떤 군왕이 될 것인가에 대한 아킬레스건이자 트라우마였고, 과제였습니다. 세종이 강채윤을 두번째 판관이라면서, "가장 멀리있는 자이니 가장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더냐" 라고 했었지요. 강채윤과 정기준의 공통점은 세종에 대해 아버지를 죽게 한 원수, 혹은 그 아들이라는 복수심과 분노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세종이 하는 일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인간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이기에, 가장 멀리있을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그들이 세종의 글자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다른 누구의 판단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채윤과 정기준이 원한과 증오심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한다는 것이야 말로 글자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두 사람 모두 세종의 글자를 보았고, 강채윤은 머리를 조아려 완전히 세종에게 감복하고 그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처음으로 뱉은 강채윤의 인사는 판관으로서 글자에 대한 그의 의견이기도 했습니다. 정기준도 세종의 글자를 판단했고, 놀라운 글자, 훌륭한 글자라고 인정했지요. 그러나 글자가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세종의 뜻에 동의하지 못하는 정기준이지요.
정기준은 세종에 대한 글자를 보고 공포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글자를 알게 된 백성이 지혜를 가지게 되고, 들끓는 군중의 욕망이 정치를 향하게 될 때의 혼돈에 대한 공포입니다. 백성의 욕망에 대한 경계이지만, 정기준의 생각을 사대부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정륜암에서 세종은 정기준에게 핵심적인 말을 했었습니다. 정기준이 경계하고 걱정하는, 백성이 힘을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에 대해서 말입니다. 정기준은 백성의 들끓는 거대한 욕망을 만나면 공포에 질리게 된다고 했죠. 그 욕망들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요. 욕망들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세상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백성의 욕망은 정치를 향하게 돼 있으며, 나아가 그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려 들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까지 했지요. 백성들이 뽑은 지도자가 실정을 하면, 그 백성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것이냐며, 세종이 글자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나눠주려고 하는 본심은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지요. 자신이 백성으로 살았기에 백성들에게 희망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책임을 질 수 있는 몇몇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면서 말이지요.
그 때 세종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대체 너는 백성에 대한 신뢰가 어찌 그리도 없단 말이냐? 정말 측은한 일이다".
세종은 울부짖고 분노하는 백성을 통해, 힘없는 백성과 무서운 백성을 동시에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랜시간 참고 인내하며 설득해왔죠. 강채윤을 설득한 것이 그 예지요. 그 진심이 전해졌을 때 강채윤은 완전한 세종의 백성으로 거듭났고, 누구보다 강하게 신뢰할 수 있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힘이 아닌 말로 설득했고, 취함이 아니라 베품으로 설득했고, 명령이 아니라 허락으로 설득했고, 고기를 잡아 먹여주지 않고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쳤고, 고기가 아닌 그물을 주었습니다.
강채윤은 여전히 감시자입니다. 왕의 가장 강한 견제자입니다. 윗것들 싸움이 아랫것들을 살리는지 죽이는지를 두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그래서 죽이면 안되욤!!!

중요한 정기준을 어떻게 처리할까의 문제입니다. 세종은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습니다. 그를 이도라고 부르는 가장 멀리있는 자 중 한사람만을 설득했으니 말입니다. 정기준과의 화해, 혹은 정기준을 설득해야 만이 세종의 대의가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의에 대한 평가는 말 그대로 후세의 몫일지라도 말이지요. 
여기서 강채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강채윤은 백성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소이와 나인들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들은 한글창제에 동참하고 유포라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일이라고 신명나게 합니다. 명령을 받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일을 합니다. 강채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멀리있는 자가 가장 가까이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주인의식이었습니다. 희망에 대한 설레임때문이었습니다. 
정륜암에서 정기준은 칼을 겨누고 있던 강채윤을 천 것이라는 말로 자극하려 했지요. 어찌 아비를 죽은 원수인 임금의 편에 설 수 있느냐며, 그것을 천한 노예근성이라고 채윤의 감정을 자극하려 했었지요. 그때 채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칼로 대답하려는 것을 소이가 말려 상황을 정리시켜 버렸고요.
세종과 정기준이 남겨둔 토론의 결말은 강채윤과 정기준이 해결지어야 할 문제와 같은 것입니다. 백성의 책임, 백성의 욕망에 대한 답이 바로 강채윤이기 때문입니다. 강채윤이라는 인물은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캐릭터입니다. 처음 강채윤이 등장했을때 깨방정을 떨며 사기꾼처럼 위장했던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겸사복이 되어서는 원수 이도를 죽일 기회가 가까워졌음에 오직 어사주를 받는 날을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수사에 뛰어드는 수사관으로 진중해져 갔지요. 세종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이후 강채윤은 가치관의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글자가 밥을 주는 것도 아닌데, 글자를 백성들을 위해 주네마네 하는 임금도 웃겼고, 백성들이 글자 좀 익히는 것이 뭐 대수라고 성균관 유생이 투신자살까지 하는지 한마디로 꼴갑들이었지요.
윗것들의 싸움이 윗것들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글자가 줄 희망때문이었습니다. 아랫것들이 똑똑하지 못하면 윗것들의 싸움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희망을 가지고 주체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기준이 간과한 것은 이것입니다.

강채윤은 세번에 걸쳐 세종을 잡아주는 백성 역할을 충실히 했지요. 집현전 학사의 죽음이 연이어 벌어졌을때, 흔들리는 세종은 강채윤의 "결심이 왜 결심이겠느냐"는 말에 너는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라고 의지를 세웠지요. 광평대군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세종에게 강채윤은 한발짝 더 나와 힐난하기 까지 했습니다. "전하는 한방울의 눈물을 흘리실 자격이 없으십니다" 라고요. 위험에 처한 소이때문에 또 세종은 흔들렸지요. 그때도 강채윤은 백성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또 흔들리고 계십니까? 흔들림없지 전하의 길을 가십시오".
정기준은 왜 강채윤이 세종의 일에 함께 하는지 그것을 욕망때문이라고, 이도가 심어준 거짓 사탕발림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백성에 대한 신뢰가 없는 그이기에 말이지요. 세종을 가장 신뢰한 것은 결국 백성이었습니다. 백성이 신뢰하는 것은 세종이 아닙니다. 세종의 뜻이며, 백성에게 향하려 한 세종의 진심입니다. 백성은 정기준의 우려처럼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빠듯해서 정치에 관여할 여력이 없는 것이 백성입니다.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잡초처럼 스스로 자생하고 커갑니다. 강채윤을 변화시킨 것은 세종이 아니라, 세종이 뿌리내려 주려한 희망때문이었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세종을 세워줬던 것은 백성 강채윤이었지요. 백성을 위한다고 말로만 성리학의 나라, 사대부 선비입네 하면서, 진정 백성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왜 반대하느냐고 따질 수 있는 인물은 세종이 아닌, 백성 강채윤입니다. 그가 임금이나 사대부나 그토록 강조하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정기준의 우려처럼 백성은 무지몽매하지만은 않지요. 스스로 판단하고 자각하고 커가는 것이 백성입니다. 글자는, 세종의 글자는 이런 백성들을 더 많이 만들 것이며, 이렇게 자각하는 백성이 많아지면 사대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깨어있는 백성은 사대부를 깨어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이는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똑똑한 국민은 결코 멍청한 정치인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똑똑하고 강한 백성이 있는 한, 나라는 결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왕조의 이름이나 지배세력은 달라지겠지만, 백성은 결코 뿌리가 잘려나가지 않습니다. 정기준이 이 부분에서 세종과 화해했으면 싶군요.
결말에 반전이 있을 거라는 예상도 되고, 정기준의 자결과 밀본의 와해를 다룰 가능성이 크지만, 저는 왠지 세종이 정기준을 살릴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세종이 반쪼가리 윤평에게 했던 말이 있었지요. "나는 피로써 갚지 않겠다. 다만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네 놈들이 어떻게 실패하는지". 세종의 치세에 사사시킨 예가 없다는 점에서도, 정기준이 잡힌다면 사형을 시킬 세종은 아닐 듯합니다. 물론 정기준의 최후는 배신한 밀본원에 의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광평대군에게 사과하며 했던 말처럼, 깔끔하게 자결로 마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도 저는 혼자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키득거린답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산골오지니 섬에 귀양을 보내 숨어살게 하면서, 그곳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훈장을 하라는 것으로 벌을 내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정도전의 후손에 대한 세종의 마지막 예우로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정기준과 세종이 화해해야 하는 이유는 세종이 꿈꿨던, 모두를 품는 마방진이 진정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입니다. 정기준은 세종이 마지막까지 참고 인내하며 설득해야 할 마지막 조각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글자가 백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역사를 어떻게 다르게 했을 지, 세종도 정기준도 모르는 일입니다. 희망의 씨앗일지, 지옥문을 여는 시작일지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백성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살기와 원한을 버리고 글자를 지키려는 강채윤, 목숨을 걸고 글자를 유포시키려는 소이와 같은 나인들의 설레임, 그것은 역사의 주체가 되어가는 작은 시작이었을 겁니다.
희망은 스스로 만들어갈 때 힘이 되어 움직입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을 믿는 것이며, 미래를 믿는 것이기에 희망이라 하는 것이겠지요. 씨를 뿌리는 농부가 수확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씨를 뿌릴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백성들에게 일렁이고 있는 희망을 정기준이 마지막까지 외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기준 그 역시도 백성에게 이로운 것을 고민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을 거라 믿기에 말입니다. 정기준이 죽음을 맞이하든, 제가 생각하는 한글훈장님이 되라는 벌((ㅎㅎ)을 받든, 마지막에 한가지는 꼭 했으면 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까지는 아니어도, 이도가 아니라 '전하'라고 진심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제가 바라는 해피엔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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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3 09:07




"어이! 정기준, 오랜만이야. 무작스럽게 반가워", 이런 말이야 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정기준과의 해후이기에 세종의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아무 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한 것이 아닌가, 이도"라며, 계급장 미리 떼고 선수치는 정기준의 발칙함을 대인배 세종이 일단 '빌어먹을 놈'이라고, 눈감아주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한마디는 해줘야 할 듯싶군요. "그래도 내가 왕인데 말 뽄새하고는...".
사실 정륜암에서의 팽팽한 긴장감때문에 토론을 하게 될지 다음으로 미뤄질지는 아직은 모릅니다. 무휼과 개파이가 2차 격돌을 세종과 정기준의 토론에 앞서 치뤄 버린다면 말이죠.

"너의 조선은 이방원의 조선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세종은 하루도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지옥에서 살아왔노라고 고백했지요.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이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은 평온한 것이다". 세종이 인내하고 기다리며 내놓은 답은 '우리 글자'였습니다. 허나 정기준은 정면으로 틀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현전 학사를 살인하고 유생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까지 말입니다.
정기준과의 토론을 이어가려는 세종, 뜻밖에 정륜암에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정기준을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관심사가 세종이 어떤 논리로 정기준을 설득할 것이며, 또한 정기준은 어떤 논리로 세종을 반박할 것인가가 되겠지요. 세종과 정기준이 중단했던 경국대전의 다음 말이 토론의 핵심이 될 듯합니다. 지난 글에서 이부분을 정리했었는데요, 시간많이 들여서 정리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 글은 다시 복구시키지 못할 것같아 중요한 부분만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읽으신 내용도 나올 겁니다. 그래도 글 끝에 보너스도 있으니 읽어주시길^^  

어린 이도와 정기준이 주고 받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정보위(正寶位)에 대한 대화는,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흐름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백성이 어떠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문제 의식이 정기준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고, 어린 똘복이와 소이와의 만남을 통해 백성의 실체를 발견하고, 백성이란 무엇인가를 자각하면서, 그 결과물 한글을 내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대립은 결국 국가를 지탱하는 뿌리가 누구인가를 놓고 싸우는 이념적 사상적인 통치관의 대립입니다. 신권이냐 왕권이냐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나라의 주체가 누구이냐에 대한 가치관의 대립인 셈이지요. 물론 정기준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도전의 사상을 신봉해 온 조카이자 밀본의 수장이라는 자가,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도전을 잘못 이해한 반성리학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세종이나 정기준이나 조선을 아꼈다는 겁니다. 또한 조선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기준이 왕의 독재를 견제하는 재상정치, 선비의 나라를 부르짖는 것도, 세종이 힘이 있는 백성을 만들겠다는 것도 모두 조선의 강건함에 대한 희망입니다. 정기준의 밀본이 드라마상에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소인배 무리집단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정기준의 촌철살인적인 한마디, "이도는 훌륭한 왕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요? 또 그 다음은요?"에는, 조선의 앞날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말입니다. 정기준의 우려와 예언은 적중했고, 이후 조선왕조에서 세종을 넘는 성군은 나오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개혁군주 정조가 있었지만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요.

세종이 하는 일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음을 알고,  "고작 글자라니..."라며 했던 정기준의 파안대소는 한자 이외의 자국의 글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사대부유림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조차 개 풀뜯어먹는 일이었음을 하나로 정리해 준 장면이었죠. 그런데 정기준과 똑같은 반응을 한 인물이 있었죠. 대놓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하게 지랄을 떨어가며 만드냐'고 왕의 안전에서 코웃음쳤던 강채윤입니다. 
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세종이 보았다던 백성을 봤습니다.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이 사체해부를 한 것에 격분한 성삼문과 박팽년을 설득하던 장면입니다. "뱃사람들이 거대한 자연을 만나기 때문에 미신을 잘 믿는다는 것이, 세종이 만난 백성에 대한 믿음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가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사랑했다는 애민사상에서 틀어, 백성을 가장 두려워했다로 생각해 봤습니다. 강채윤을 그렇게 표현했었지요. 가장 두려우면서 가장 멀리있는 자, 그래서 믿음이 가는 자라고 말이지요.

영원한 것은 임금, 사대부, 사상, 나라도 아닌 백성
정기준과의 사당에서의 첫만남에서의 토론내용 경국대전 정보위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왕은 허군이고, 실군은 관에 총괄하는 재상총재의 것이다. 이것이 조선을 건국하신 삼봉선생의 치국의 기본사상이다. 주역에 이르기를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이다. 무엇으로 그 위를 지킬까보냐? 이에 말하기를 인(仁)이다. 현능한 자들은 지혜를 바치고 호걸들은 힘을 바치며, 백성들은 맡은 바에 분주히 복무하되 오로지 임금의 명령에만 따를 뿐이다". 정기준은 조선경국전 정보위 구절이라며 다음 구절을 알고 있느냐고 이도에게 물었지요.
다음구절은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입니다. 정기준은 "지금의 주상(태종 이방원)은 그러한가?" 라며, 네 아비는 삼봉의 조선을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라며, 이도에게 충격을 주었지요.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세종은 정도전을 추모하는 정륜암에서 정도전을 다시 거론합니다. "그의 책을 읽고 또 읽고 내린 결론이다", 삼봉만은 내 뜻과 함께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말이지요. 
해서 경국대전 정보위 다음 구절을 살펴보니 이런 말이 이어지더군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하게 얻는 것이 아니요, 도를 어겨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방법 역시 인(仁)일 뿐이다. 인군(人君)은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그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아서 불인인지정(不忍人之政)을 행하여, 천하만민이 모두 기뻐해서 인군을 마치 자기 부모처럼 우러러 볼 수 있게 한다면,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위망 복추의 우환을 끝내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인(仁)으로서 위(位)를 지킴이 어찌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불인인지정은 쉽게 말해 측은지심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곰곰이 되짚어 본 문구가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의 구절입니다. 

20여년이 지나 세종과 정기준은 어떠한 의미로든 성장해 왔고, 나름대로의 명분과 대의를 향해 그들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정기준은 그가 그토록 금과옥조로 여긴 정도전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힘으로 위협할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겨우 폭력이라니 라며 이도를 비웃었던 그가 폭력으로 맞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이도에게 공맹의 도가 어떠하며, 삼봉선생의 조선건국이념이 어떠하며를 설파하던, 그 정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뱃사람이 미신을 믿는 것은 바다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거친 파도가 그들을 삼켜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만조의 기쁨을 누리게도 합니다. 세종이 만난 백성은 아버지를 잃어 울부짖는 똘복이였죠. 임금을 지랄이라고 욕을 하는... 이도는 충격을 받았고, 큰 깨달음을 얻었지요. 물론 똘복이처럼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는 일이 없게 글자를 만들겠다는 동기가 되기도 했지만, 이도는 분노하는 백성을 만난 것에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군왕을 어찌 백성의 어버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왕이 자격이 있는가?를 물었던... 어린 날 정기준이 던졌던 물음과도 같았죠.  

이도가 깨달았던 것은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 엎기도 한다는 겁니다. 백성이라는 거대한 바다, 무서운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조선의 왕, 재상도 의미가 없는 것이며, 재상의 나라가 옳으냐 왕의 나라가 옳으냐도, 다 쓰잘데기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죽여버리겠다며, 임금배때지라고 칼이 안들어가겠느냐며 무섭게 광분하던 똘복이, 백성은 그런 존재였던 겁니다. 무섭죠. 멀죠. 가장 정직한 반응을 하니 가장 믿음직한 판관인 것이죠.  

그동안 세종에 대해서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치 위민정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큰 것 하나를 간과했는데, 공포, 두려움, 무서움입니다. 누구에 대해? 바로 백성이죠. 성나면 배를 집어 삼켜버릴 수 있는 거대한 바다, 백성말입니다.
세종의 백성을 두려워 하는 마음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뼈있는 가르침이고 통치철학입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국민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민이 두렵다고 말하는 분들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다, 백성을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여겼는지, 똘복이를 통해 보여지는 그의 백성에 대한 자세는, 정기준의 틀에 박힌 성리학적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정조전의 사상도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가장 낮은 자 백성을 두려워하는 왕, 가히 혁명적 자각에 이르렀던 세종입니다. 

세종의 끝장토론, 정기준을 설득할 수 있을까?
정기준과의 토론, 백성과 인(仁)이 주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인(仁)일 뿐이다'.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귀족들이 멸했지요. 왕조와 지배층은 무너졌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백성이었습니다. 조선 또한 언젠가는 망할 것이라고 세종은 단호하게 말할 것입니다. 그 지배층 사대부 양반들도 말입니다. 사상이라는 것은 계절의 변화처럼 새로운 사상이 생겨나면 밀려나는 것이고, 영원한 것 또한 없지요. 임금과 지배층은 바뀌어도 늘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것은 백성이라는 거대한 바다입니다. 배도 뱃사람도 바뀌어도 바다는 그대로듯이 말입니다.
삼봉이 만세대대 영원한 조선을 꿈꿨듯이, 이도 역시 조선이 만세를 누리기를 바라고, 정기준 또한 그러할 것이라는 것은 세종은 알고 있습니다. 정기준이 분노하고 세종에게 틀렸다고 하는 것은 조선이 흔들릴 것임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러나 정기준은 간과했습니다. 사상과 지배층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 나라의 뿌리 백성이었음을 말이지요. 
정륜암에서 세종에게 정기준이 설득당할 것일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나 정기준은 세종의 말에 그의 사상에 큰 혼란을 일으키기는 할 것입니다. 세종의 말은 "백성없는 나라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정기준에게 더 큰 혼란을 줄 인물은 아마도 우의정 이신적과 심종수가 되지 않을까 추측도 해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를 위해 배신때릴 인물들이죠. 재상이 되겠다는 욕망때문에 말입니다. 
밀본원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죠.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제대로된 사대부가 조선을 이끌 것인가? 이신적같은 박쥐형의 인물은 언제나 나올 것이고, 권력이 인품이나 수양의 정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밀본원들을 통해서도 확인했던 정기준이기에 말입니다. 그럼 누구를 믿을 것인가? 영원무구할 조선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결코 갈아치울 수 없는 나라의 뿌리 백성이지요. 여기까지 깨닫게 되기까지 정기준은 세종에게 계속해서 반기를 들겠지만, 마지막은 세종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까요? 
"지랄하지 말라고 해", 세종이 처음들은 백성의 말이었습니다. 세종은 당황했지요. 궁에서는 한번도 듣지못한 말이었고, 삼봉의 책에도 공자의 책에도 나오지 않은 말이었으니까요. 세종이 전국팔도의 욕을 수집하고, 노랫가락을 수집했던 이유는 그것이 한자로 쓰여지지 못하는 우리말, 백성의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한자로 쓰여지지 못하니 우리 말은 수백년이 지나면, 하나 둘 없어져 버렸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고 잘 쓰는 우리말이 '얼'과 '마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얼을 한자로 혼(魂), 혹은 정신(精神)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얼'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와는 뭔가 다르지요. 마음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고, 감정이라고 하기에도 충분치 않고 말입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은 이런 말들이 지구상에 없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가 말입니다. 

****다음은 세종과 정기준이 나눌 대화를 재미삼아 써 본 것입니다. 그저 웃고 가시옵소서.
세종
: 네가 정기준이냐? 근데 말뽄새가 그게 뭐냐? 임금한테 반말이나 지껄이고, 네가 아는 성리학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더냐? 내가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 아니냐?
정기준: 이도 너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 사대부의 나라 조선의 왕이 될 자격이 없다. 글자라니...백성에게 권력을 줘서 사대부를 무너뜨릴 것이 아니더냐? 너의 글자에 성리학의 도를 담을 수 있더냐? 소양없는 백성들이 너도나도 글자를 안다고 날뛰고,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결국 조선은 너의 글자로 인해 망할 것이다.
세종: 지랄하고 자빠졌네. 네가 조선인이냐, 중국인이냐? 한자가 어느 나라 글자더냐? 네가 나의 글자를 두려워 하는 이유는(목에 힘주어 강조), 글이 곧 무기이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말이다, 중국의 글자가 조선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 답할 것이냐? 결국에는 한자라는 무기에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 되거나 망할 것 아니겠느냐? 하여 나는 조선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을 지키는 그 방법이 글자다.

정기준: 중화는 삼봉이 세운 조선건국의 이념이고, 너의 글자는 중화를 거스르는 반역사적 글자이다. 그걸 정녕 모르는 것이더냐?
세종: 중화를 거슬러? 옘병할... 중화가 밥을 주더냐, 고기를 주더냐? 밥은 말이다, 한자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새벽부터 밤늦게 일하는 백성들이 주는 것이다. 하여 내 너무 고마운 백성들에게 쉬운 글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인데, 그게 그리 고까운 일이더냐? 사람을 죽여가면서 까지 반대할 정도로?.
백성을 위한 성리학이 고작 말뿐인 것이었더냐? 그러고도 네가 사대부 선비더냐? 백성없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있더냐? 조선을 지키는 것은 성리학을 지키는 것도, 사대부의 권익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백성을 지키는 것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 삼봉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백성의 마음을 얻지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길 것이라고,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이어야 한다고...하여 내 그리하기 위해 지옥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 나의 조선, 백성에게 가는 나의 길에 너의 대답이라는 것이 고작....
참 내 너에게 말을 전하라 했는데 들었느냐? "겨우 폭력이라니..."
정기준:.......(방백) 에잇, 자존심상해(쪽팔려!라고 싶은 것을 참았음^^).

* 다음 Life On Award 2011 커뮤니티 '티스토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하러 가기:
http://campaign.daum.net/LifeOnAwards2011/vote/community/tistory#m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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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46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제작진이 함구령까지 내렸다는 정기준의 정체에 대해 많은 궁금증과 추측들이 오가고 있는데요, 그중 가장 설득력있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 백정 가리온(윤제문)일 듯합니다. 가리온의 호위무사같기도 하고, 가리온이 그의 호위무사같기도 한 의문의 사나이 개파이(김성현) 역시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는 강력한 후보 중의 한사람이죠.
그런데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존재감과 무게감이 백정의 역할에 그치기에는 화면장악력이 너무 크죠. 곤구망기를 저자에 퍼뜨리고 다니며, 그 얄팍한(?) 학식을 자랑하고 다녔던 한가놈(조희봉)도 용의선상에 올려 놓았지만, 그냥 글좀 읽는 허풍쟁이 양반캐릭터가 더 맞을 듯하고요.
이미 많은 분들이 세종과 가리온의 독대장면에서 가리온의 범상치 않은 대사를 통해, 그가 큰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짐작했을 겁니다. 허담의 사인이 건익사공이라고 밝혔던 가리온이 이런 말을 했었지요. "이샤영 대감을 따라 다닐 때 북방오랑캐한테 들었습니다". 세종이 이세영을 도와 무언록을 편찬한 것을 칭찬하자, 가리온이 의미심장한 대사를 했지요. "어릴 적 소인의 아비가 도적들한테 화살 수십발을 맞고 죽었습니다. 젊은 혈기에 큰일을 내려는데 이세영대감이 절 달래서 중국으로 데려갔습니다. 은혜는 소인이 입었습니다".
워낙 천한 백정의 역할을 윤제문이 잘 소화를 하고 있기때문에 그를 정기준이라고 의심할 수 없게 하지만, 이 대사를 들은 우리 눈치빠른 시청자들은 곧바로 그 은유적인 말뜻을 파악하기 바빴지요.
정도광과 정기준을 추적해 오던 조말생에 의해 정도광이 반촌에 들어갔음이 발각되었던 날, 악연인지 인연인지 이날 똘복이가 반촌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나오다, 정도전의 밀지와 똘복이 아버지 유서가 뒤바뀐 일이 있었지요. 도망치던 정도광은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죽음을 당했고, 목숨을 구한 윤집사가 아들 윤평과 정기준에게 정도광의 죽음을 알렸죠. 복주머니 주인을 반드시 찾으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지요.
화살 수십발을 맞고 죽었다는 말은 정도광의 죽음과 일치하고, 도적이라는 표현은 정기준이 과거 세종에게 했던 말과 일치했지요. "네 아비(이방원)는 삼봉의 조선을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 라고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정기준의 정체를 노출시킬 제작진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가리온(윤제문)이 조선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이라는 사실입니다. 감히 사대부가 칼을 쥐고 짐승을 도축하는 일은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더구나 밀본의 본원께서 말입니다. 또한 시체검안에서는 조선최고라는 말처럼, 사대부가 죽은 시신에 손을 댄다는 것은, 그들이 목숨처럼 받드는 공맹의 도에 심히 어긋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리온은 용의선상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빌미가 되기는 하죠.

그러나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또한 비록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기는 하지만, 천한 백정치고는 그가 상당히 학식이 있고, 배운 티가 난다는 것이 그를 강하게 의심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화살꽂이가 되고, 일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한 정기준에게는 이방원은 죽이고 싶은 원수였을 겁니다. 하지만 글을 내세운 분들은 원수를 갚겠다고, 똘복이처럼 직접 칼을 들이대지는 않지요. 권력을 가진 자에게서는 권력을, 부를 가진 자에게서는 부를 빼앗아 더 잔인하게 복수를 하지요. 
왕을 단지 화려한 꽃일 뿐이며, 꽃이 부실하면 꺾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재상체제를 세우기 위해 밀본이라는 비밀조직까지 만들었던 정도전 일가의 소생이라면(아, 물론 드라마상 이야기입니다), 짐승을 도축하고 시신에 칼을 대는 일도 하며 와신상담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요. 더구나 어린 정기준의 어린 시절 성정을 보면, 독기가 폴폴 넘쳤던 인물같아 보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정기준의 아역배우의 연기미흡때문에 이런 인상을 남겼을 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죠.

그리고 어린 정기준의 얼굴과 윤제문의 얼굴형을 보니 상당히 닮은 구석도 있더군요. 넙대대하고 쌍커풀없는 모습은 싱크로율이 상당히 일치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말생이 세종 이도에게 보여준 암행록에 그려진 정기준의 용모파기를 보니, 싱크로율 거의 100% 일치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용모파기에 그려진 귀와 윤제문의 귀였습니다. 부처님 귀처럼 크게 늘어진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더군요. 별걸 다 가져다 붙인 것 같죠?ㅎㅎ

정기준의 몽타주는 하나의 단서일 뿐이지만, 저는 지난 회 세종의 독백을 들으며, 순간 또다른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강채윤이 이런 말을 했었지요.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종의 방백이 이어졌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20여년이 흐른후 밀본의 3대 본원임을 알리며 등장한 정기준, 정기준도 강채윤이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궁으로 들어온 그 강한 결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채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칼을 갈아온 정기준입니다. 멸문지화를 당한 정기준은, 정기준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유배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태종과 조말생이 끈질기게 그를 추적했었기에, 조선에서 발붙이고 살아남기는 어려웠고요. 역적인데 살려둘 리가 없죠.
그러나 알게 모르게 이방원의 칼의 정치를 혐오한 사대부나 조정대신들은 입밖으로 내서는 안되는 이름 정도전을 흠모하고 따랐으며, 정신적 지도자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무언록을 편찬했다는 이세영도 그쪽이었을 듯합니다. 그래서 정기준을 중국으로 데려가 살렸다고 보여지고요. 

또 하나의 가정은 가리온과 이방지(우현)의 관계입니다. 출상술을 통해 윤평이 강채윤과 마찬가지로 이방지의 제자였음이 드러났고, 윤평은 수하에게 이방지를 수소문하라는 명도 내렸지요. 그리고 더 의심스러운 점은 건익사공이나, 대침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가리온이 정학하게 알았다는 점입니다. 허담의 사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건익사공을 아는 자의 소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북방오랑캐에게 들었다는 것치고는 너무 허술한 대답이었죠. 시체가 검안소에 왔을 때 옷깃에 물이 묻어있었다는 말도 과장이 심했고요. 물 한바가지를 들이부었다면 모르겠지만, 거의 한방울로 비강을 막아 죽이던데, 옷깃을 적실 정도의 물을 흘렸다는 것도 이상하죠. 
그런데 가리온은 너무나 정확하게 그 사인을 집어 냅니다. 윤필학사의 주검을 보고도 한방에 머리 뒤에서 대침을 뽑아냈지요. 물론 시신의 상태를 보고 추측을 했을 수도 있지만, 너무 귀신같지요. 이는 살해의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집현전 학사를 죽인 윤평은 이방지로부터 배운 방법을 사용했고, 이방지와 가리온, 윤평이 서로 연결되는 인물이라면, 가리온은 윤평이 살해한 방법을 시신의 상태만으로도 유추해낼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죠.

또 하나 이방지는 조선제일검 무휼에게 유일하게 패배의 상처를 준 인물입니다. 이방지와 무휼은 왜 싸웠을까요? 이는 이방지가 무휼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하고, 확대해석하면 이방지는 이방원의 사람이 아닌, 정도전의 사람이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 가정이 맞다면 이방지-가리온-윤평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고요.
20여년전 이신적(안석환)에게 사람들 틈으로 숨어들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정기준, 그는 철저하게 신분을 감추고, 말투도 바꾸고, 가장 의심하기 힘든 사람으로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죠. 도담댁이 있는 반촌, 백정이라는 신분은 정기준을 감쪽같이 감출 수 있었고, 굳이 밤이슬을 맞아가며 숨어다닐 필요도 없을 것이고요.

정기준이 가리온이라면, 시청자들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정말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똘복이가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한 길을 걸어왔듯이, 세종 이도가 문이 통치하는 조선, 백성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한 길을 걸어왔듯이, 정기준은 백정이 되어서까지 재상중심의 조선을 꿈꿨던 정도전의 조선을 되찾겠다고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이 닮아있지 않나요?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길을 어쩌면 이 세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걸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약 가리온(윤제문)이 정기준이 맞다면 말이죠. 그리고 눈여겨 볼 재미있는 구도는 이 세사람이 큰 틀의 조선이라는 거예요. 똘복이-백성, 정기준-양반사대부, 이도-왕이라는 큰 틀말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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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39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윤필이 남긴 사자전언으로 20년만에 재등장한 밀본, 곤구망기(ㅣ口亡己)를 통해 세종이 비밀리에 그의 비밀조직인 천지계원들과 하는 일이 한글창제임을 드러냈지요. 곤구망기에 대한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지만, 여전히 모든 사건의 핵심이 들어있는 한자가 풀리지 않아 전전긍긍했네요. 
풀리지 않은 의문은 윤필이 남긴 군나미욕(君那彌欲)이라는 글자인데요, 아무래도 내용 일부가 불에 타서 없어진 듯하지만, 군나미욕이라는 글자는 강채윤이 한글창제를 둘러싼 비밀에 접근하게 될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문을 품어야 할 대목은 왜 윤필이 집현전으로 들어가려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고자 함이었는지 입니다.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으로 집현전은 출입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집현전  학사들은 사가독서를 하라는 명이 떨어졌지요. 집현전으로 둘어가려던 윤필을 때마침 순찰을 돌던 강채윤에 의해 제지당하고, 1차 진입은 실패했지요. 윤필은 그날밤 다시 집현전으로 몰래 들어갔고, 윤필은 무엇인가를 찾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윤필은 서고가 아닌 허담이 죽은 책상을 뒤졌죠. 책상 아래에서 비밀문서통을 발견하고 펼쳐 읽고 있던 순간, 강채윤에 의해 발각되었고 말이죠. 그리고 문제의 타다남은 군나미욕이라는 글이 쓰인 비밀종이를 불에 태워버리려고 했지요.

불에 던져진 종이를 강채윤이 출상술을 이용해 건져냈고, 초탁의 구슬에 나가떨어진 윤필은 잠시 기절상태였습니다. 그때 부엉이 소리가 들리더니, 가면(윤평-이수혁)이 나타나 윤필을 납치해 유유히 빠져나가버렸죠. 윤평 역시 출상술을 썼고, 강채윤은 스승 이방지에게서 배운 출상술을 또 쓰는 놈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요.
강채윤은 불에서 건진 종이를 무휼에게 보고하지 않고 숨기고 있는데요,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곳곳에 미스터리를 풀 단서들을 남기고 역으로 풀어가는 방식에 능한 작가들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단서라고 볼 수 있지요.

군나미욕에 대해서는 허담의 죽음부터 거슬러 갈 필요가 있는데요, 허담과 고인설은 비바사론(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과 관계된 인물이지요. 허담이 죽은 날 비바사론도 함께 없어졌다고 나왔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 비바사론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담댁과 가면 윤평과의 대화에서도 비바사론에 대한 얘기는 없었고, 밀본의 핵심조직원으로 밝혀진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 역시도 비바사론에 대한 것은 언급을 하지 않았지요.
밀본에서도 천지의 조직원들을 다 파악한 것은 아니고, 핵심요원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요, 성삼문과 박팽년조차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고, 곤구망기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8명밖에 없다라고 한 세종의 말을 빌어보면, 그 조직이 철저히 비밀에 가려진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리 장성수(류승수) 역시도 천지계원이고, 성삼문과 박팽년보다는 핵심인사 같아 보이더군요. 윤필이 타살되었다는 성삼문의 말에도 "그런 소문을 왜 나만 모르고 있었느냐"며 시치미를 떼는 모습도 의뭉스럽게 보였고 말이지요.

그럼 윤필은 왜 허담이 죽은 현장을 가려했던 걸까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천지계는 2인1조로 운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한 조일 가능성이 크고, 허담과 윤필이 또 한조일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각자 비밀리에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서로 공유를 했고요. 따라서 허담이 강채윤으로 부터 건네받은 비바사론에 대해서는 세종과 정인지, 무휼말고도 허담과 윤필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요.
 
허담이 집현전 번을 섰던 날 살해를 당했다는 것은 집현전 내부에 첩자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심종수(한상진)의 정체를 통해 풀렸지만, 비바사론이 집현전 내부에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중요한 일을 공개적으로 기록할 수도 없었고, 같은 팀이었던 한림과 윤필은 자신들이 연구한 것을 비밀리에 집현전에 남겨두기로 했겠죠?(제 추측).

윤필과 허담은 같은 것을 정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글은 자음과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글자지요. 집현전 학사들은(한글프로젝트팀)은 각자 팀별로 우리 말 첫소리 중간소리, 끝소리를 각자 분담해서 정리를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산스크리트어로 된 범어 경전 비바사론입니다. 산스크리트어를 보면 우리 한글과 비슷한 모양이 많아 그 어원에 대한 논쟁도 뜨거운데, 이런 것은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닌 듯해서 패스합니다만, 여하튼 허담과 윤필은 같은 글자를 연구하던 팀이었던 듯합니다. 

군나미욕이라는 글자(임금군, 어찌나, 두루미, 하고자 할 욕)를 가지고 이뜻 저뜻 만들어 봤지만, 스토리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너무 골머리를 쓴 탓에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오더라고요. 
그런데 6회에서 곤구망기라는 사자전언을 밀본이라고 푸는 세종을 보며, 퍼뜩 찾아보고 싶은 자료가 있었어요. 세종이 곤구망기를 보고 '밀본'이라는 글자를 조합한 것은 이미 ㄱ, ㄴ, ㄷ, ㅏ, ㅗ, ㅣ 등의 28글자를 거의 만들었음을 의미하고, 그것을 소리내어 읽는 방법까지 일렀음을 말하지요. 훈민정음은 그 공표를 두고, 3년의 시간차를 두었지요. 1443년에 이미 완성되었는데, 1446년에야 공포를 했으니 말입니다. 이는 보완해야 할 문제도 있었지만, 그만큼 한글을 둘러싼 반발세력의 저항에 부딪쳤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대주의 유학파 최만리같은 학자가 대표적이지만, 중국의 견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그 비밀스런 기간을 픽션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니, 군나미욕의 궁금증이 풀렸네요. 군나미욕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술된 '예'였습니다. 윤필과 허담은 훈민정음 창제한 이유과 글자를 읽는 법을 정리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리작업 일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작업은 비밀점조직으로 구성되어 각각 팀별로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일부인데요,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은 분들은 직접 훈민정음 해례본 자료를 참고하시면 될 듯하고요, 여기서는 군나미욕에 관련된 것만 정리합니다. 해례본 사진자료에서도 'ㄱ'과 'ㅇ'에 관한 부분을 보면 군(君)자와 욕(欲)자의 첫소리라는 것이 쓰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ㄱ. 牙音이니 如君字初發聲.이요 竝書하면 與字初發聲하니라
ㄱ는 엄소리니 군(君)자의 처음 펴어 난 소리와 같으며
ㄴ.舌音이니 如那字初發聲하니라
ㄴ는 혀소리니 나(那)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ㅁ.脣音이니 如彌字初發聲하니라
ㅁ는 입술소리니 미(彌)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ㅇ.후음이니 如欲字初發聲하니라
ㅇ는 목소리니 욕(欲)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첫소리(자음) ㄱ. ㄴ. ㅁ. ㅇ을 소리내는 한자 예가 군나미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윤필과 허담은 ㄱ,ㄴ,ㅁ,ㅇ 에 대한 정리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세종의 치밀한 조직관리때문에 더 놀랐습니다. 또한 혀소리, 목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등등으로 세분화하여 얼마나 체계적으로 만들었는지, 새삼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창조물인가에 깊은 감사와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똥지게를 진 모습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올 줄 아는 세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극중에서는 똘복이가 지랄이라는 말을 하는 것에 놀라고, 궁녀들에게 저잣거리의 천한 말을 배우기도 하고, 욕도 하는 세종이지만, 진정으로 백성의 모든 소리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어쩌면 반쪽짜리 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우리 말 발음중 격음이나 경음은 비속어나 욕에 많이 들어가죠(이를테면 ㅇㅇ끼라든가, ㅇ발같은 말). 세종이 욕을 몰랐다면, 고매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그래서 백성들의 소리, 신음소리, 하다못해 개새끼 왕왕거리는 소리까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자음 한 두개, 혹은 모음 한 두개가 빠진 한글이 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세종이 태종의 처소를 나오며 방백하는 장면이 있었지요. "아버지는 제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십니다"라고요. 세종 자신조차도 몰랐을 듯합니다. 한글이 얼마나 엄청나고 위대한 업적인지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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