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권'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12.06 '천일의 약속' 섬뜩했던 수애의 신경질, 가장 애처로운 김래원 (7)
  2. 2011.11.02 '천일의 약속' 김래원, 두 여자 농락한 나쁜남자라고? (12)
  3. 2011.11.01 '천일의 약속' 수애, 시청자 울린 한마디 "아직 아냐" (8)
  4. 2011.10.26 '천일의 약속' 박유환의 오열, 드라마 분위기를 바꿔버리다 (14)
2011.12.06 11:14




향기 오빠 노영수(송창의)의 등장으로 드라마 분위기가 조금은 밝아진 듯합니다. 서연을 볼 때마다 무거운 납덩이가 되어 천길 물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무거움이 짓눌렀는데, 그나마 중간에 숨통을 트여주는 캐릭터들 때문에 잠시 잠깐 웃기도 했네요. 노홍길(박영규)과의 감칠 연기가 제대로더군요. 점잖은 신사분위기 송창의가 퍼머머리에 능청스러운 한량같은 캐릭터로 나와 놀랐네요. 향기네 집 분량을 늘려서라도 분위기를 업시켰으면 생각이 들기까지 하니, 이 드라마가 정말 버겁기는 한 가 봅니다. 
서연의 치매증세와 부작용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냉장고에 넣어둔 서연때문에, 문권이 아무 생각없이 던진 농담에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지요. 신경질, 우울증도 치매의 병증 중 하나라며, 조용히 문권을 달래주는 지형을 보면서, 향기도 불쌍하고 서연도 불쌍하지만, 가장 불쌍한 인물이 박지형같더군요.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에 지형이 감당해야 할 사랑이지만, 지형을 보면서 긴 병에 효자없다는데 얼마나 잘 견딜 수 있을까, 아니 서연의 심해지는 증상을 보며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갈까를 생각하니,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요.
정나미 떨어지는 서연의 신경질, 미운 것은 서연 자신
"웃지마, 아무도 웃지마. 비웃지마", 자신을 바보 취합하지 말라며, 서연은 참았던 감정을 폭발하고 말았는데요, 지형과의 행복한 시간도 어느 날에는 아득히 먼 과거, 아니 기억도 하지 못할 추억들이 될 뿐이고, 자신은 부정할 수 없는 치매환자라는 사실에, 서연은 극도의 신경과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게지요. 날마다 행복하다고, 억지로 강요하고 있던 것들이 제어되지 못하고 나와 버린 것이죠.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냐"라는 노래가사가 있지요. 서연의 상황이 그런 것 같습니다. 억지로 살아내는 것, 이미 알고 있는 끝을 향해, 마치 알지 못한 듯, 보지 못한 듯 기를 쓰고 살아가는 것말입니다.
고모와 목욕탕에 가기로 약속한 것을 또 잊어버린 서연, 혹이나 길을 잃을까봐 몰래 따라나온 지형을 모른척해주고, 동생이 마중나온 것도 애써 본 본척했는데, 그만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냉장고에 넣은 자신에게 서연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지요. 자신을 우물가에 내 놓은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것에 서연은 못마땅합니다. 신경써주는  지형과 문권때문에 자신이 치매환자라는, 뗄 수없는 껌딱지가 엉겨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것같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맙니다.
"왜 감시해?"라며, 화를 내는 서연은 급기야 해서는 안되는 막말까지 퍼부어 버리지요. "다 보여. 느껴. 잘난 척 그쯤하고 가". 자신의 병이 재미있는 오락거리냐며, 자격지심까지 느끼는 서연은 "이건 내 누나가 아니야"라는 문권의 말을 듣고는 정신을 차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지요. 화가 나는 것은 서연 자신인데, 공연히 동생과 지형에게 화를 낸 것이 미안하고 창피한 서연입니다.
서연의 신경질에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고 오히려 문권을 다독이는 지형이었지요. "당황해서 그래, 한 번씩 거칠어 지는 것도 증세 중 하나래. 이해해". 서연의 신경질과 우울증이 아기를 낳겠다고 약을 끊어서 심해진 것이라는 말에도, "덕분에 뭐든 열심히 먹어주니까 고마운 일 아니냐"고 위로하는 지형이었습니다. 울고 있는 서연, 눈에 띄게 심해가는 사연의 증세에 미소로 괜찮다고 말해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지형입니다.  
서연의 심정과 병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연의 버럭질과 신경질이 심해질 때마 가슴이 조마조마해 죽겠네요. 서연이 자신의 병때문에 화도 많이 내고, 울기도 하고, 신경질도 많이 냈지만, 이번처럼 섬뜩하게 다가왔던 적은 없었어요. 눈을 뒤집고 악을 써대는 수애의 표정이 무섭기 까지 했습니다.

박지형의 바라만 보는 사랑, 그래서 애처롭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 비일비재해 질텐데 지형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저는 아픈 서연보다는 서연을 참아내는 지형이 더 안쓰럽고 불쌍해서 미치겠습니다. 지형의 어머니 강수정이 어떻게 허락할 수 있었는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지성이 감탄스럽고 존경스러웠는데, 그런 길을 가려는 지형이 이제보니 가장 강한 사람이었더군요.
놀라웠던 것은 지형의 태도였습니다. 흥분하지 않는 놀라운 감정절제력이었습니다. 지형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혹은 초인간적인 사랑의 힘으로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는 여자의 곁에 머물겠다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사랑이 맹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지형의 차분한 표정으로 표현해 주더군요.
극중 박지형이라는 남자는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향기에 대한 미안함, 양가 집안의 문제, 그러나 무엇을 가장 고민했을까요? 아마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었을 겁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환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다는 약속은 지형의 흔들릴 수도 있을 감정에 대한 주문같은 것입니다. 지형도 치매가 어떤 질병인지는 대충 알았을 터이고, 서연때문에 더많은 자료들을 찾아 봤겠지요. 예를 들면 치매에 좋은 음식을 비롯해서 좋은 운동, 끝말잇기 등등 말입니다. 지형이 치매환자의 병증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형은 보다 중요한 참아주는 것을 잘하더군요. 그리고 모른척 해주는 것을 잘한다는 겁니다. 환자를 흥분시키지 않는 것, 지형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이겠지요. 버럭 서연을 보는 것이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했는데, 지형이 같이 버럭대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다 싶을 정도입니다. 서연은 자신이 아픈 환자니까, 이런 응석정도는 이해해 달라는 듯 내키는 대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지형은 좀처럼 감정을 폭발하는 일이 드물었지요.
개인적으로 서연이라는 캐릭터보다 지형의 캐릭터가 점점 더 안쓰럽고 눈에 밟혀옵니다. 서연이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할 때마다 허공을 향해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곤하는데, 그 감정을 잘 추스려서 드라마에 몰입하게 하는 캐릭터가 지형입니다. 서연은 드라마 속에서도 혼자만의 방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지형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도 과장된 웃음소리는 극 몰입을 오히려 방해해 버리고요.
진짜 즐거운 표정이라기 보다는 부자연스러워 보였는데, 작가도 이런 것을 느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모의 입을 통해 변명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목욕탕에서 고모의 신을 신으려는 서연에게 퉁을 주니 서연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부러 크게 깔깔 웃더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서연의 웃음은 지형과의 과거 시절 회상씬에서도 유독 부자연스러워서, 되도록이면 수애는 웃음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미소짓는 모습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아마 수애가 가진 분위기때문인 듯도 합니다. 
사실 서연이라는 인물이 수애의 연기력을 떠나, 가끔 그 캐릭터에 갸우뚱하게 하는 면도 없지않지요. 극 초반 베드신의 영향도 있었고요. 강수정이 남편 박창주에게 그애를 한 번 만나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을 거라고 설득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서연의 성격은 강수정이 받은 인상과는 좀 거리가 있는 모습들도 많지요. 그래서 가끔 시청자에게는 이중인격적인 내숭 서연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약혼자있는 남자와 사랑했다는 점을 굳이 들지 않아도 말입니다.
모든 치매환자가 서연과 같은 유사증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지극히 얌전해 지거나 사람을 겁내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포악해지기도 하고, 케이스마다 다르다고 하더군요. 말이 어눌해지고 행동이 느려지는 것은 비슷하지만 말입니다. 서연의 경우는 거칠어지는 케이스인 듯 합니다. 그래서 가끔씩 터지는 서연의 신경질이 이해는 되지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굳이 버럭 화를 내거나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더 아리게 전할 수도 있는데, 분노폭발만이 다는 아닌 듯해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알츠하이머 환자라며, 편집장에게 사표를 내고 돌아서서 눈물이 고였던 장면은, 오히려 다 많은 감정들을 전달했던 것 같습니다.
서연의 심정이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있다고 백번천번 마음을 다독이지만 서연이 지형을 사랑한다면, 또한 고맙다면, 그리고 미안하다면, 자신을 몰래 바라보는 지형의 감정도 생각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온전히 자신의 삶을 통째로 들고 온 지형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아프니 이해해 달라고 하기보다는, 지형의 아픔도 서연이 봐줬으면 합니다. 서연이 아픈 환자라는 것에 동정과 연민이 크지만, 고통은 더 오래 살 지형의 몫이 더 크지 않겠어요. 그동안 지형과 서연의 사랑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에 공감했다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 강요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두 사람의 사랑에 애절하고 절절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보다는 서연의 치매에 힘을 너무 쏟은 이유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형의 사랑이 외사랑같아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때문이지 싶기도 하고요.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김수현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사랑이 서연의 사랑이 아닌 듯하더군요. 박지형과 노향기의 사랑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서연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서연은 자기고통이 버거워 지형의 사랑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 보이지요.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뜨거운 법이니까요. 그런데도 서연에게 조금 욕심을 내어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서연 자신의 고통 못지않게, 지켜보는 지형의 고통 또한 크다는 것을 서연도 봐줬으면 하는 것이랍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은 더 가슴으로 전해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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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09:26




김수현 작가가 천일의 사랑을 시작하면서, "이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말이 생각나는데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번 6회를 보면서 이해가 되더군요. 그만큼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청자에게는 이해불가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골치아프게 꼬여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박지형과 이서연의 사랑은 불륜이었고, 이들의 사랑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힘든 설정들이 많지요. 
동정을 받아야 하는데 동정을 받을 수 없는 여자 이서연, 너무나 착한 여자 향기의 눈물을 쏟게 하는 것이기에 그 선택을 응원할 수 없게 만드는 박지형, 다른 여자에게 가겠다는 남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쁜 행각을 해서 시청자가 조금은 미워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게 만드는 착한 노향기. 이들의 삼각관계는 여타의 드라마에서 보던 삼각관계의 기본틀에서 빗겨나 있지요. 사랑의 방해꾼 악역이 있으면, 얼마나 드라마를 편히 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구도를 깨버린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큰일났다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래원, 아니 극중 남자주인공 박지형은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싼 인물입니다.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고,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현대판 열녀 노향기 뒤에서 딴 여자랑 연애를 한 녀석을 감싸줄 건덕지가 별로 없지요. 이서연을 사랑한다는 감정도, 서연을 버리고 노향기와 결혼을 감행하려 했던 것에서, 비겁한 놈으로 그 진정성이 퇴색되어 버렸고 말이지요. 결혼할 여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남자 잠시 도둑질 좀해보자고, 맞불을 지핀 이서연 역시도, 동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지요.
게다가 낚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향기의 심상치않아 보이는 임신 가능성은 도저히 박지형을 곱게 봐줄 수 없게 합니다. 임신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튼 잠자리까지 같이 한 여자(그것도 두 사람 모두와)를 결혼 이틀 전에 버리는 남자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는 없지요. 노향기는 임신은 아닌 듯하지만, 만약 임신이라면 에고, 정말 머리에서 김이 폴폴 나오게 복잡해지겠네요.
박지형이라는 인물은 지형엄마와 향기의 말대로 정말 결혼생활을 한 자신이 없었고, 사랑이 아니었으면, 향기를 정리했어야 했습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우유부단하게 질질 끌고 오다, 결국은 이 사단을 만든 무책임한 남자가 맞아요. 지형을 위한 변명을 해줄 수 있다면, 양가 집안 사이에 얽혀있는 이해관계, 비슷한 집안끼리의 편한 결혼, 게다가 멸종 희귀종 같은 노향기의 지고지순한 사랑까지 겹쳐서, 지형이 사랑 하나만을 선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겠지요. 그래서 어찌 어찌 살다보면 잊혀지겠지, 그냥 저냥 아이낳고 살아지겠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밍기적거리다 결혼 문턱까지 이르렀고요.
그런데 서연에게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넋나간 사람처럼 서연의 문제에만 골똘하더니, 결국 향기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털어놓고 결혼을 못하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지난 5회까지 서연을 중심으로 전개를 했다면, 이번 회는 지형의 파혼선언과 함께 박지형과 노향기를 둘러싼 인물들의 등장이 많았지요. 역시 내공의 중년배우들은 드라마를 꽉차게 했습니다. 이미숙, 박영규, 김해숙, 임채무 중년 4인방의 반란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드라마를 임팩트있게 끌고 나가더군요. 김수현 작가의 특징인 길고 강한 대사가 입에 착 달라붙어, 호흡마저 지문으로 소화시키는 중년배우들이었습니다.
특히 향기 엄마 오현아(이미숙)의 연기는 말이 필요없이 강렬했지요. 노향기의 엄마이자, 성깔 대단한 부자집 사모님의 캐릭터를 어쩌면 그렇게 실감나게 보여주는지, 그녀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와도, 나라도 저 상황에서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처럼 자연스럽더군요.
향기를 잘아는 엄마이기에 "내가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깨자고 했다"는 거짓말에 따귀를 올려붙이는 오현아, 정말 바보 등신같은 딸래미를 보는 엄마의 속터지는 심정을 그대로 보여줬지요. 씹어 물어뜰을 놈뿐이겠습니까? 빤스만 입혀서 광화문 네거리를 머리채를 잡고 열두바퀴를 돌고, 볼이 터지도록 귀싸대기를 맞아도 싼 놈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제부터 이 나쁜남자 박지형을 아껴주려고, 편을 들어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제 글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표현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바람둥이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남자 박지형의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해주려고 합니다.
박지형에게 노향기와의 결혼은 잘 포장된 고속도로를 근사한 럭셔리 중형세단을 타고 달리는 인생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이틀을 앞두고 고속도로와 중형세단을 버리고, 가시밭길 맨발을 선택했습니다. 부모님의 결사반대에도, 향기의 지고지순한 외사랑에도 나쁜 자식, 나쁜 남자가 되려는 박지형, 어쩌면 서연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냥 서연에게 나쁜 놈이 되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결혼을 했을 지도 모르지요. 살다가 도저히 서연을 잊을 수 없어서 이혼을 하고, 서연을 다시 찾았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고요.
결혼앨범 사진까지 찍고 청첩장까지 나왔는데, 정신 나간 미친놈 소리가 딱 어울리는 미친 짓을 하고야 마는 박지형을 보면서, 어쩌면 서연에게 이별통보를 했던 것보다, 향기의 사랑을 외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연은 지형의 사랑을 동정이라고, 극구 거부하리라는 것을 지형도 알고 있을 겁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서연이기에 지형의 미친 결정은 자신이 더 초라하고 비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죠. 바보가 되어 가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약도 마다하는 서연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서연이, 바보가 되어 누군가의 짐이 된다는 것에 자존심 상하고, 아파하는 서연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지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형은 서연을 택하려고 합니다.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그의 생활을 얼마나 힘들고, 흔들리게 하고,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치매가 어떤 병이라는 것쯤은 지형도 알고 있겠지요. 자식도 힘겨워 치매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잖아요. 아, 물론 요양시설에 의탁하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도와 형편에 따라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그 가정의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서연을 택할 남자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제 자식이라도 솔직히 거품물고 뜯어 말리고 싶을 겁니다. 이 글을 읽는 분중에 미혼남성이 있다면, 지형의 입장에서 솔직히 서연의 곁을 지켜주겠다고, 결혼을 깰 수 있을까 자문해 보시면, 지형과 같은 선택을 하는 분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김수현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천일의 약속, 김수현 작가는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겠느냐고, 시청자들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제는 아주 먼 옛날의 동화가 돼버린, 공룡화석처럼 오래된 이야기가 돼버린 사랑, 그 주체하지 못할 미친 감정을 박지형과 이서연을 통해 끄집어 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여자에게만 착한 남자가 되려는 박지형의 사랑을, 그래서 응원해 주려고 합니다. 가장 힘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을 잃어가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박지형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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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1 09:15




지형과 재민, 그리고 동생 문권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것에 자존심 상해하고 분노하는 서연. 무너지지 않으리라 덧셈 뺄셈을 반복하고, 심지어 주기도문까지 영어로 외우며 자신의 병을 부정하던 서연이 무너지는 모습에 함께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동안 치매라는 것에 대해 너무나 피상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려 했던 제 머리가 산산히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네요. 그리고 당해보지 않았기에, 경험하지 않았기에, 머리로만 치매를 이해하고 아파하려 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연의 고통은 그동안 막연하게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미치지 못했고, 바보가 되어가는 것를 거부하는 몸부림이 먼저였지요. 비약보다는 단계적 심리묘사를 해가는 작가의 섬세함이 와닿더군요. 그래요, 만약 치매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면 '내가 바보가 된다고?'라는 반응이 먼저일 듯합니다. 기억이나 추억이 지워져간다는 것은 다음 고통일 듯합니다.
재검을 받고 치료를 하자는 지형과 재민의 권유를 뿌리치는 서연, "난 멍청이 돼가면서 느리게 죽어가는 것보다, 빨리빨리 끝내고 싶어. 주변사람한테 폐끼치면서 동정받으면서,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그렇게 무거운 보따리고 길게 끌고 싶은 생각없어. 텅텅 빈 껍데기로 사고나 치면서 가까운 사람 아까운 시간 갉아 먹으면서...". 
그래도 치료를 받으며 시간을 벌자는 지형에게 착한 "남자 흉내 그만내고 꺼지라"며 독설을 내뱉은 서연이었지요. 그리고 덧붙이는 서연의 말이 가슴을 후벼파더군요. "강요하지마, 지금 이대로 난 아니다 우기게 놔둬". 자신이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서연은 강한 자기부정과 최면을 걸며 버티고 있었지요. 메모장을 써가며 일일이 체크하고, 어려운 단어들만 골라가며 반복해서 외워보고, 다른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는 건망증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안간힘을 써가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되자 정말 사실이 되는 것같아 더 두렵고, 화나는 서연입니다. 들키고 싶지않은 치부, 홀라당 벗겨져 자신의 머리속을 누군가 들여다 보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화나는 서연이지요. 증세가 심해져 누구나 다 알아채기 전까지는 정상이고 싶었던 서연입니다. 그때는, 그때는 자신이 바보가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테니까요. 그래서 상할 자존심도 남아있지 않고,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도 모르고, 동정을 받고 있는 것도 모른채, 심지어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도 모른채, 텅빈 나무처럼 그렇게 멍하니 고통없이 그들의 눈을 마주할 수 있을 것같아서 말이지요.

죽을만큼 사랑했던 지형, 그래서 그 행복했던 어느 순간에는 이대로, 사랑하는고 행복한 상태로 그 시간이 정지되기를 바랐었고, 한 번쯤은 신이 그녀를 돌아다 봐주기를 바랐던 서연이었습니다. 불행으로 점철되었던 그녀 인생에서 단 한번의 축복으로 허락해 주기를 바라기도 했던 서연이었지요. 그러나 그것이 헛된 망상임을 알았을 때, 서연은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행복같은 것은 없다고, 신의 축복이나 선물따위는 그녀의 인생에 없다고, 아니 보란듯이 거절하겠다고, 그것이 이서연이 박지형에게 내세울 수 있는 자존심이었고, 신에 대항하는 무기라고 생각했던 서연이었지요.
그래서 그 사람이 결혼 날짜가 잡혔다고 이별통보를 받고서도 서연은 무너지지 않았지요. 그 사람 앞에서 무너지는 것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남루한 인생을 두번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서연이 살고 싶다고, 아직은 아니라고 치매를 부정하며 무너져 우는 모습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더군요.  

서연은 재민에게 자신의 병을 알린 문권에게 불같이 화를 내지요. 차라리 그럴 수만 있다면 누나의 머리와 자기 머리를 바꾸고 싶다고, 대신 죽어줄 수 있다면 죽겠다는 동생 문권(박유환)의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문권의 말이 정말 제가 동생이어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 가슴 짠하게 울려오더군요. 이 드라마 왜 이리 슬퍼요?ㅠㅠ
죽을 날짜 받아 놓은 사람처럼,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진단을 받은 서연에게, 지금 그 누가 무슨 말을 한다한들 위로도, 병을 없애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머리를 대신 바꾸고 싶다는 동생 문권이나,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서연이나 가슴만 답답하고 힘들 뿐이죠. 매순간 절망이 가슴을 숨도 쉬지 못하게 내리누르고 있는 것을, 서연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다 알지 못하겠지요. 
동생에게 불같이 화를 쏟아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배달전화번호를 찾아 만두국을 시키려는 서연, 그러나 가방을 회사에 두고 왔다는 문권의 말은 그녀의 가슴을 쿵!하고 내려치지요. 대신 전화를 걸겠다는 문권에게 "바보 취급하지마. 아직 아냐"라며, 만두국을 시키는 서연은 그렇게 바보가 되어 가는 자신과 마주하기를 겁내고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을 잃어가며, 바보가 되어가면서 느껴야 하는 서연, "아직 아냐"라는 단 네글자의 짧은 말이 이렇게 가슴을 아리게 하다니, 드라마가 끝나고서도 한동안 멍해져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형(김래원)의 넋나간 표정처럼 그렇게 말이에요.
아직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 걸까? 서연은 아직은 바보가 되지 않았다고 언제까지 말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금 이대로 멈춰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겹치니 펑펑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연은 그 시간이라는 놈이 제트기처럼 빨리 지나가 주기를 바랐을 겁니다. 지형을 떠올려도 가슴 아프지 않게, 그래서 어느날 백화점에서 배가 불러 만나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지나갈 수 있게 말이지요. 5년 후에는 아빠가 된 지형, 10년 후에는 40대 아저씨가 된 지형을 만나도, 그저 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누렇게 희미해진 옛날 사진처럼, 내려놓은 지도 모르게 내려놓았다가, 언젠가는 공룡시대 화석처럼 그렇게 잊혀질 수 있게, 아니 잊을 수 있게 말이지요.
도로의 자동차들처럼 시간이 그렇게 휙휙 지나가 주길 바랐던 서연은, 이제는 제발 가지 말아달라고, 멈출 수 있으면 멈춰달라고, 아직은 아니고 싶다고 빌어보는 서연입니다.
비로소 혼자 감당하고자 하는 서연의 마음이 읽혀지기 시작하더군요. "자존심...너무 아프다. 나는, 내 인생은 마지막까지 이렇게 남루해야 되는 거니!...". 그동안 안간힘을 쓰고 서있던 서연이 맥이 풀려 쓰러져 버리고, 재민에게 "오빠, 나 좀 집에 데려다 줘"라며 오열하는데, 서연의 말이, "오빠 살려줘, 살고 싶어"처럼 들리면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아직은 살고 싶다고, 아직은 이서연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고 말이지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병을 부정하던 서연이 장재민에게 안겨 엉엉 우는 장면은, 그냥 서연에게 투영되어 있는 수애의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듯이, 살고 싶다고 아프게 우는데, 가슴을 먹먹하게 하더이다.
그동안 수애가 맡은 서연이라는 캐릭터가 대사의 부담감과 사랑, 이별,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 등 너무나 많은 감정선들이 얽혀있어서, 무엇이 그녀의 주된 고통인지 애매모호한 감이 있었는데, 그 혼재된 모든 감정들을 목놓아 우는 오열로 정리를 해주더군요. 아마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서연때문에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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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6 09:30




연예인들 중에는 형제 자매 남매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엄정화-엄태웅, 김태희-이완, 하지원-전태수, 산다라박-천둥, 소녀시대 제시카-에프엑스(fx) 크리스탈, SS501 김형준- 유키스 김기범 등 생각나는 분들만 해도 정말 많네요. 누나 혹은 동생, 형의 후광을 입은 덕도 봤겠지만, 그보다는 각자의 개성과 활동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연예인들이지요.
JYJ 박유천(미키유천)의 동생 박유환도 형제 사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특히 박유천은 성균관스캔들로 연기자로서도 성공한 케이스로 인기를 얻었지요. 비슷한 용모에 해사한 이목구비의 박유환, 그를 처음 본 것은 종영한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애늙은이 어린 삼촌 한서우라는 역할을 통해서 였습니다. 데뷔작으로 알고 있는데, 첫연기치고는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배우입니다. 발성상 발음이 새는 문제와 혀짧은 소리가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요. 박유환의 발음이 거슬림에도 그를 눈여겨 보았던 것은, 연기를 참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진정성있게 전달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천일의 약속에서 주인공 이서연(수애) 동생으로 박유환이 나왔을때, 솔직히 연년생 동생으로는 수애와 차이가 난다 싶었고, 대사까지 깎듯한 존댓말을 쓰는 바람에 나이차가 10년정도는 차이가 나나? 싶어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하더군요. 이번 4회부터는 말을 내려 듣기 편해졌습니다만. 아무리 누나가 어머니같은 존재이고, 어려서 문권(박유환)이 공부를 게을리 한다고 책을 불태우겠다고 성냥불을 긋는 서연의 꼬장꼬장한 성격탓에 말도 못내렸나 싶기는 했지만, 요즘 누나 동생 사이에 존대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 분위기탓인지 어색스러웠거든요.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도 아닌데 싶어서ㅎ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서연은, 자신의 행동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정상인 자신을 확인하려 하지요. 컵라면이 퉁퉁 불어터진 것을 보고는, 원고에 집중하느라 그랬다고 부정을 합니다. 세면대의 물을 잠그지 않고 나간 서연,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라며, 애써 엿같은 알츠하이머와 연관짓지 않으려고 하지요. 서연이 애쓰는 모습이 강박증처럼 되어가는 것이 안쓰럽더군요. 점점 더 심해지겠지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그녀의 기억들이 소리없이 스르륵 하고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고통인지, 그 공포와 싸우고 있는 서연이 되어 보지 않고는 다 알 수 없을 듯합니다. 하루하루 알게 모르게 지워져 가는 그녀의 기억들은,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그녀의 생명이 단축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겠지요. 
매일매일 떠오르는 지형과의 추억은 그녀를 더 힘들고 아프게 할 뿐이지요.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다고 한번만 만나자고 했다는 지형의 말에도, '마음 불편할 필요없다고, 미안해 할 필요없다고 전해달라'고 했을 뿐이지요.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기억을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마음으로는 지형을 붙잡고, 또 붙들고 싶은 서연입니다.
소태씹은 표정으로 결혼준비를 하는 지형도 마음은 온통 서연에게로만 향하지요. 하루하루 결혼날짜가 다가올수록 서연에게로 더 달려가고 있는 지형입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뚱한 지형에게 향기의 엄마(이미숙)가 결혼깨자며 불같이 화를 내도, 착한 향기의 오매불망 사랑고백도, 서연에게 더 달려가고 있는 지형을 잡지 못합니다. 향기엄마 이미숙의 성깔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친구 누나의 부음에 조문을 가려던 문권은 자동차키를 찾으러 들어갔다가, 서연의 서랍에서 메모지를 발견하게 되지요. 요즘들어 깜빡증이 심해진 누나가 별걸 다 유치하게 하고 있구나 라는듯 피식 웃던 문권은, 서연의 약처방전을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지요. 그리고 그 약이 알츠하이머와 우울증 약이라는 것을 알고는 경악합니다.
재민에게 누나가 치매인 것같다며 걱정하는 문권, 재민은 병원을 찾아가 서연이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확인하지요. 서연의 병을 알게 된 문권은 하늘이 노래지고,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6살 어린 나이에 동생을 위해 라면을 끓여주던 누나, 라면도 떨어지자 맹물이라도 먹여 동생의 허기를 채워주려 했던 누나는 엄마이자 아버지였지요. 그런 누나가 치매에 걸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5~6년 내에 죽게 된다는 것이, 무슨 막장드라마같은 이야기냐고 받아들이기 힘든 문권이지요. 
"이게 뭐야, 이 등신아, 누나". 약 처방도 받지 않은 누나를 이제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모른 척 연기를 해야하느냐며 오열하는 문권, 박유환이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는데, 심장이 쿵! 하면서, 돌덩이가 얹혀오는 것같더군요. "우리 이렇게까지 재수가 없어야 해? 누나도 나도, 참 더럽게 재수가 없어요".
지난 회(3회)알츠하이머형 치매라는 진단을 받고도, 너무나 침착했던 서연때문에 사실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이라는 느낌은 생략돼 버렸지요. 혼자 병소주를 마시며 오열하는 서연, 분노의 양치질로 치매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서연을 통해, 그 아픔이 전달되기는 했지만, 서연의 지나친 담담함에 알츠하이머는 서연의 병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4회에서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는 문권을 보면서, 치매가 순간  '내 일이기도 하고, 내 주변의 일이기도 하고, 또 내 부모님의 일이기도 하구나' 라는, 그런 먹먹하고 불안한 감정으로 다가왔습니다.
남자들은 감정표현을 참 잘 절제한다고 하지요. 사람이 죽어도 남자들은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꺼려합니다. 발뻗고 주저앉아, 아이고 대이고 하는 여자들과는 달리, 남자들 대부분은 굵은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죠. 박유환은 어린 나이에 받아들여야 하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을, 그 나이에 맞게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함께 있던 이상우의 눈에 고이는 눈물이 절제하는 남자의 깊은 아픔을 보여 주었다면, 박유환은 세상 유일한 피붙이이자, 엄마이기도 한 누나에 대한 감정을 오열로 보여 주었지요.
 
박유환은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도 큰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조카 한상원의 무식함을 지적해 주는 장면에서는 어린 나이지만, 조선시대 선비가 나왔나 싶게 고지식하고 박학다식하다가도, 엉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 그러면서도 사려깊은 애늙은이 모습이 매력적인 캐릭터였지요. 아마 박유환의 마스크에서 나오는 절절함이 배인 진정성때문이었던 듯합니다. 연기를 하는데도 연기같지 않은, 뭔가 부자연스러우면서도 또 진짜같은 그런 느낌말입니다. 한마디로 가능성이 보이는 신인배우였습니다.
그리고 천일의 약속 4회에서 오열하는 박유환은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어, 그의 빠른 성장이 놀라웠습니다. 진짜 자신의 누나에게 닥친 불행처럼 그렇게 절절하게 우는데, 순간 이 드라마에 흐르는 슬픔이 가슴을 퍽 하고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박유환의 오열로 비로소 서연의 알츠하이머가 피부로 다가오기 시작하더군요. 박유환의 오열장면은 천일의 약속을 비극과 슬픔의 코드로 한순간에 바꿔버린 장면이었습니다. 여전히 그의 취약점이라 할 수 있는 발음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감정으로 전달할 줄 아는 배우 박유환, 박유천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박유환이라는 이름으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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