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 폐서인'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6.15 '동이' 이소연의 장희빈, 한계에 갇힌 연기 아쉽다 (37)
  2. 2010.06.02 '동이' 숙종을 당황케 한 고요한 존재감 상선영감, 빵 터지다! (26)
  3. 2010.06.01 '동이' 인현왕후의 비극, 품위로 승화시킨 박하선의 연기 빛났다 (10)
  4. 2010.05.26 '동이' 고난을 택한 동이, 실세 장희빈을 버린 이유 (18)
  5. 2010.05.25 '동이' 도사의 예언 따라가는 장희빈, 얻을 것과 잃을 것은? (11)
2010.06.15 07:36




의주에 온 장희재와 맞닥뜨린 동이는 귀양 온 심운택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나 싶었는데, 결국은 장희재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잡히게 되나 봅니다. 장희재가 하필이면 동이가 있는 의주땅에, 그것도 동이가 몸담고 있는 상단 변행수를 통해 역관을 만나, 모종의 거래를 하는 우연은 드라마니까 가능하겠지요. 그것보다 기막힌 우연은 드라마 초반 동이를 장악원에 넣어 주고 사라져 버린 기생 설희와의 만남이었지만요.
나쁜 장희재 놈 눈에 보이는 게 없는지, 조카의 세자책봉 고명을 위해서라면 군사기밀까지 청국에 팔아 넘기려고 합니다. 게다가 심운택을 통해 도성에 소식을 알리려 한 동이의 서찰까지 가로채 우편물을 사전검열하는 월권행위까지 저지르고 있으니, 가히 장씨 남매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스러웠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었지요.
장희재가 청사신과 거래하려는 것이 조선의 군사기밀임을 알게 된 동이는 한시바삐 도성으로 가서 알리기 위해 보따리를 싸지만, 장희재에 의해 불들리고 맙니다. 어서 서용기 종사관과 차천수가 와서 구해야 할텐데, 동이와 심운택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듯 싶네요. 물론 불사신 동이는 끄떡않고 살아 나겠지만요.  
동이가 평안도 의주에서 심운택(김동윤)과 함께 장희재가 의주에 왜 왔는지 알아 내려고 하는 동안, 도성의 궁궐에서는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일고 있지요. 사씨남정기를 읽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쫓아낸데 일말의 후회를 하는 뉘앙스를 풍겼고, 눈치 빠른 중신들은 숙종의 심정변화를 해석하기 바쁩니다. 물론 X줄타는 사람들은 중전 장씨의 측근인 남인세력들이지요. 중전 장씨는 청으로부터 세자 책봉 고명을 받으면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태평스럽지만, 주상전하가 동이를 은밀히 찾고 있다는 보고에 그녀의 속도 타들어 갑니다.
동이를 찾고 있던 것인지 알기 위해 숙종의 처소에 들른 장희빈은 임자잃은 꽃가죽신 당혜를 발견하고는 숙종의 멀어진 마음을 확인하고는 눈물을 떨구고 맙니다. "심중에 동이를 묻어 두고, 그토록 애타게 그 아이를 찾으면서 저를 향해 거짓 미소를 보이셨던 것입니까?"(궁금하면 숙종의 답을 대신해 주겠습니다: 거짓 미소까지는 아니고.. 그게..그러니까...그래, 그렇다. 어쩔래?)
중전장씨는 보다 확실하게 인현왕후를 없애기 위해 은밀히 일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믿음직한 끄나풀이 된 감찰부 최고상궁 유상궁에게 복위를 꾀했다는 죄목과 더불어 아주 죽여 버리라고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명을 내리지요. "백가지 증험을 들이대 봐라. 폐비가 죽어 버리면 증험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면서요. 중전 장씨의 계략에 인현왕후의 복위는 또다시 난관에 빠지게 생겼습니다. 동이마저 장희재에게 붙잡혔으니, 큰일이네요. 
그나저나 숙종의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얼굴에 화색도 안돌고,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된 듯 수척해지고, 수심이 가득합니다. 서종사관에게 은밀히 동이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동이에 대한 소식은 함흥차사 마냥 소식이 없고, 다급한 숙종은 서용기를 직접 만나 진척상황을 점검하기 까지 하지요. 동이의 이름이 쓰인 돌편지를 보고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는 숙종은 제발 동이가 살아있기만을 바랍니다. 마음 속에서는 수천가지 질문이 쏟아집니다. "대체 의주 그 먼데까지 왜 간 게야? 왜 즉각 내게 달려 오지 않았느냐? 몸은 다친데 없느냐? 밥은 안 굶고 있느냐? 돌아오면 매일같이 어식을 하사할테니 얼른 와라." 등등의 말들이 번개처럼 숙종의 마음을 후비고 갑니다.  
그런데 이번 회에 평양기생이었던 설희가 의주 기방의 행수가 되어 동이와 해후하고, 결정적으로 장희재의 죄상을 알아내는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어째 밋밋한 기생행수라서 적잖이 실망을 했네요. 장희재의 수하에 의해 붙들리게 될 찰나, 동이가 설희에게 다급하게 "저, 천동이에요. 저 모르시겠어요? 변가상단에서 일하고 있는 종, 한양에서도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라며 미친 척하고 찔러보는 대목에서는 다소 실소를 금하지 못하겠더군요. 기억력 뛰어난 동이가 설희를 알아보고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무턱대고 아는 체 했다는 말에 동이답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요즘 동이를 보면서 여자 연기자들 중에 강한 캐릭터가 없이 너무나 평면적이라는 점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동이의 등장인물 중 장희재와 심운택, 그리고 영달이와 황주부를 빼고는 개성있는 캐릭터를 찾아보기가 힘드네요. 물론 남자 배우 중 단연 개성넘치는 숙종 지진희가 극의 재미 반을 살려내고 있지만 말입니다. 급부상한 매력남 상선영감도 빼놓을 수 없고요.
그 중 가장 캐릭터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 초반부 새롭게 재조명된 캐릭터라고 기대를 모았던 장희빈인 것 같습니다. 기생 설희의 재등장도 동이와의 만남만을 위해 반짝 등장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강렬하지는 않았고요. 드라마의 주인공인 동이의 캐릭터는 워낙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고, 중구난방으로 설치고 다니기에, 동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동적일 수 밖에 없지만, 동이의 감정선보다는 상황이 입체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기대하고 보고 있었던 캐릭터는 장희빈인데요, 갈수록 같은 이미지만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반부의 강렬하면서도, 품격있었던 장희빈은 갈수록 캐릭터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 같습니다. 숙종의 여인들을 다룬 모든 사극에서 장희빈의 해석은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그 이미지가 오랜시간 동안 각인되어 왔는데, 이번 장희빈은 아직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드라마 초반 이병훈 감독의 손에서 새로 탄생할 장희빈은 품위있고, 우아한 장희빈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25회가 진행되는 동안 품위와 우아가 발목을 잡고, 오히려 더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캐릭터가 장희빈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희빈은 동이를 버리고 인현왕후를 폐비시키는 음모 과정을 거친 후 좀 다른 모습으로 환골탈태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빛과 그림자로 동이와 장희빈의 캐릭터가 대립적으로 설정되었을 때부터 장희빈은 악역이고, 패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장희빈은 끝까지 자신이 패자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인물이었고, 사약을 받는 순간까지 독기를 버리지 않았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지요. 인현왕후가 복위되고서도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저주를 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발악을 떨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이에서의 장희빈은 이미 패자가 된 듯한 인물로 강렬함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번회 당혜를 보고서도 장희빈은 사랑을 잃은 슬픔만 간접적으로 그녀의 방백을 통해서 표현했을 뿐이에요. 이는 장희빈을 연기하는 이소연이 스스로 '품위있고 우아한 장희빈'이라는 캐릭터의 한계에 갇혀 더 이상의 감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장희빈 캐릭터의 매력은 가시돋힌 장미인데, 지금의 이소연에게서는 장미의 향만 느껴질 뿐입니다. 장미로서의 장희빈을 표현하는 이소연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시를 표현하는 부분은 조금 약하지 않나 싶습니다.
장희빈이 지난회 벌컥 화를 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서슬퍼런 한기가 느껴졌어야 했는데, 표정만 사납게 지었을 뿐 크게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번 회 숙종이 동이를 위해 준비한 당혜를 보면서도 실연당한 듯한 여인의 슬픔만이 감지되었을 뿐, 장희빈에게서 뗄 수없는 투기의 표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슬픔과 분노, 투기가 함께 묻어나오는 감정표현을 보여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감찰부 유상궁에게 인현왕후가 복위를 꾀하려 한다는 증험을 만들라는 대목에서도, 그리고 인현왕후를 죽이라는 암묵적인 명을 내릴 때 조차도, 장희빈의 표정은 다른 장면들에서의 표정과 같았어요. 이런 장면에서는 여배우들이 표현하기 쉬운, 특히 눈이 큰 이소연이기에 더 강점일 수 있는 눈빛의 변화를 통해 강하게 보여 주었어야 했는데, 너무 우아를 지키려다 보니 오히려 사실적인 감정표현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배우 이소연의 눈을 볼때마다 감정표현에 상당히 유리한 눈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상대방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쏘는 듯한 눈빛은 특히 그녀가 연기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눈빛이에요. 그런데 그 눈빛의 한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 화를 내거나, 사나운 표정이 되지만, 독기를 품고 냉기를 폴폴 넘치게 하기에는 부족하지요. 이소연의 눈빛연기를 보다보면 느끼는 점 하나가 머리와 눈동자가 같은 궤도로 움직인다는 점이에요. 눈동자의 변화와 함께 고개를 항상 살짝 돌려주는데, 고개를 돌림으로써 독해 보여야 할 눈빛은 상대적으로 감해져 버립니다. 그러다보니 장희빈의 새로운 캐릭터 '품위와 우아'를 죽어라고 지키기 위해, 상황에 따라 폭발시켜야 할 감정선도 그녀가 가진 매력적인 눈에 비해 약하게 표현될 때가 많고요.
장희빈의 현재 상황은 여름에 독을 가득 품은 뱀이어야 하는데, 동면을 취하려는 뱀 같아요. 장희빈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그 독기 품은 뱀을 자꾸 우아와 품위 속에 한정시키려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희빈이 숙종을 치맛폭에서 데리고 놀았는지, 숙종이 양다리 세다리 걸쳐가며 장희빈의 치맛폭을 이용했는지는 350년전의 숙종과 장희빈만이 알겠지만, 명문가의 여식도 아닌 장희빈이 한 나라의 국모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그만큼 배포와 그릇이 컸었다는 것을 말하겠지요. 아마 현세에 태어났다면 한 나라를 주무를 수 있을 만한 여걸이었을 겁니다. 장희빈이 교태전으로 처소를 옮기고, 후원 연못가에 피어있던 금낭화를 보며 했던 말이 장희빈을 성격을 가장 잘 나타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작고 여린 꽃은 싫구나. 난 활짝 핀 꽃이 좋다. 결국 언젠가는 지게 되더라도 말이다" 라며 취선당의 모란을 옮기라는 대사가 있었지요. 물론 장희빈이 꿈속에서 했던 말이지만요.
드라마에서 동이와 인현왕후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굳이 필요없는 캐릭터에요. 인현왕후도 나름 강한 왕비의 모습도 보여 주었지만, 앞으로 환궁해서는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주로 보여줄 듯 싶고, 천방지축 동이야 항상 활짝 핀 꽃처럼 방긋방긋 기분좋은 미소를 머금을 것이고요. 표독스러웠던 명성대비마저 드라마에서 하차했으니, 이제는 드라마 동이의 긴장감을 살려 줄 인물로 장희빈의 캐릭터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아와 품위도 좋지만, 악랄하고 투기로 눈이 뒤집힌 장희빈의 가시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장희빈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는 인물일 수 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초반 지적인 장희빈의 모습도 얼핏 보였지만, 이제는 독기 품은 뱀의 모습으로 강렬하게 변화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이소연이 만들어 가고 있는 장희빈이라는 매럭적인 인물이 입체적이지 못하고, 뭔가 빠진 듯한 캐릭터가 되어가는 이유는 동이를 부각시켜야 하는 제작진의 고민도 반영되었겠지만, 이소연이 더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품위있고 우아한 장희빈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2 Comment 37
2010.06.02 08:18




감찰부 궁녀를 이끌고 동이를 엄호하러 간 정상궁은 내수사의 강한 반발에도 원칙과 규율대로 해야겠다며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동이는 힘이 나지요. 감찰부 궁녀들이 금군을 동원한 내수사 내관들에 의해 진입이 저지당하고, 감찰부 정상궁과 내수사 전수가 숙종의 부름을 받고 대전을 향합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숙종은 척 보니 어떤 상황인지 다 파악이 됩니다. 내관들이 관리하는 궁궐 재정담당 기관이다보니 궁녀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고, 관행처럼 내수사에 대한 감찰은 어물쩍 넘어갔는데, 감찰부 나인 하나가 그런 내수사를 들쑤시고 다녔다니 분명 풍산이 동이밖에는 그럴 인물이 없다고 짐작하는 숙종입니다.
숙종은 숙종대로 구리와 주석의 품귀현상으로 상평통보의 유통에 차질이 빚고 있다는 말에 비밀리에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일이 잘못 꼬이면 조사에 치질을 빚을까 일단 덮으라는 명을 내리지요. 정상궁의 말을 들은 동이는 숙종에게 실망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비록 어리버리 하기는 했지만, 판관나으리일 때나 임금일 때나 의혹과 비리에 대해서는 눈감는 분이 아니셨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요.
숙종도 동이가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을 것을 예상합니다. 동이 성격에 아마 속으로 욕을 엄청 해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숙종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진심을 알려야 하는데 묘책이 떠오르지 않지요. 그러고보니 장다리와 꺼꾸리 친구들이 있었네요. 황직장과 영달을 불러 은밀히 동이와의 접선 장소를 알려주는 걸 보니 농이나 던지는 임금인줄 알았는데, 주위 눈치도 살피고 속도 깊은 숙종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동이와 몰래 핑계삼아 궁밖 교외데이트를 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응큼한 숙종.ㅎ
두리번 두리번 약속장소에 나타난 동이를 보니 숙종 얼굴이 벌써 환해집니다. "왔느냐? 헤맬까 걱정했는데 누가 강아지 아니랄까 봐 길 하나는 잘 찾는구나" 반색하며 동이를 맞는 숙종은 왜 내수사 감찰을 일단 덮으라고 했는지 설명하지요. 감찰궁녀 시험에서도 여러가지 공부를 시켜주더니 오늘은 경제수업입니다. 상평통보를 주전하는 주재료인 구리와 주석의 품귀현상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바로 감찰부에서 조사를 하게 해주겠다고 약조를 하며 걱정 붙들어 매라고 삐져있었을 동이를 달랩니다. 동이 성격이 워낙에 집요해서 말이지요. 동이의 성격을 잘 아는 숙종이기에 자신의 명에 동이가 실망했으리라 훤히 꿰뚫어 봅니다. 누가봐도 욕할 상황이지요. 동이라면 아주 대놓고 했겠지요. 무슨 임금이 자기집 곳간 털리는 줄도 모르고, 곳간 털렸다고 신고해 주고 도둑놈까지 잡아 바치겠다는데 그걸 막아? 이러면서 말이지요.
"이런, 한심한 임금이 다 있나 하고 욕도 하고 그랬지?" 욕은 하지 않았지만 실망은 했음을 감추지 못하는 동이를 보고 숙종은 금새 또 섭섭합니다. 그래도 판관나으리라고 알고 있었던 적부터 담넘고, 도망치고, 밤이슬 맞으며 쌓은 정이 얼만데 말이지요. 
중요한 일을 이리 따로 불러 귀띔해주고 동이에게 걱정말라고 까지 안심까지 시키니 동이는 궁금하기만 하지요. 하늘같은 임금님께서 감찰상궁도 아닌 일개 궁녀를 불러 그 같이  중요한 일을 말해주다니요. "어쩐지 너한테만은 잠시라도 오해를 받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널 이런 자리를 마련해 보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옆구리 찔러 절받기 선수인 숙종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동이의 대답이 "네..."라고 웃거나 고개만 끄덕여줄 것 같거든요. "어떠냐? 성은이 망극하지 않느냐?" 아무튼 동이도 숙종을 웃게 하지만, 숙종 역시 동이를 이렇게 웃겨 주십니다. 그래서 동이는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할 임금님이지만, 자신을 웃게 해주는 임금님이 참 좋습니다. 천수 오라버니와는 다른 감정으로 좋습니다. 천수 오라버니는 늘 동이를 보호해 주었던 돌아가신 아버지와 오라버니같지만, 임금님과 함께 있으면 재미있습니다. 자신을 보며 껄껄껄 목청이 다 드러나도록 호탕하게 웃는 임금님이 너무 미남자십니다. 폐위전 중전마마께서 전하는 웃는 모습이 멋지신 분 아니냐며 전하를 웃게 해달라고 하셨는데, 정말 임금님의 웃는 모습이 좋아집니다.
감히 다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겠지만, 자신에게 저자에서나 사용하는 풍치지 말라고도 하시고, 황직장 나으리랑 영달이랑 주막에서 얼큰하게 취할 때는 술주정도 제법 하십니다. 매일같이 영달이 꿈에 나타나 사약을 내리시고는 그 사약을 임금님이 마셨다고 목이 댕강 잘려나갈 말을 해도, 그건 칡즙이었다며 더 유쾌하게 웃으실 줄 아는 임금님입니다. 성정이 고약했더라면 그 자리에서 왕을 능멸했다는 죄로 능지처참을 시킬 법한데도 말입니다. 동이는 임금님은 술주정도, 껄껄껄 웃는 것도 안하시고 근엄하게 무게만 잡는 분이신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임금님이 동이가 오해했을까봐, 동이에게만은 잠시라도 오해를 받기 싫었다며, 내수사 일까지 해명을 해 주십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불러서는 자신이 즐겨읽는 서책이라며 지미있는 책까지 건네 주십니다. "간혹보면 너의 말과 행동거지가 좀 무지한 것 같아서 수양을 하라고 주는 것이니, 뭐 황송할 것 까지는 없다"라고 농까지 건네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정곡을 콕콕 찌르는 것도 잊지 않는 숙종입니다. "넌 진득히 앉아서 서책을 보기엔 세상만사에 관심이 너무 많은 듯하다. 사실 넌 좀 산만하고 분주한 것은 사실이야". 사고만 터졌다 하면 그 중심에 동이가 있으니, 숙종은 동이가 너무 걱정되거든요. 한밤중에 짤짤거리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일러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니 동이의 영특하고 호기심이 넘치는 것이 좋아보이기도 하지만 걱정도 되거든요. 묶어 둘 수도 없고 말이지요.
이렇게 진담반 농담반 우스개 소리도 나누지만, 동이는 임금님이 점점 좋아집니다. 줄대서 뒷문으로 한성부 판관직이나 얻었나 싶었던 분이었는데, 알고 보니 임금님이셨고, 감히 임금님의 등을 우지끈 밟고 담을 넘었는데, 오히려 예전 판관나으리처럼 편하게 대하라고 어명까지 내리는 분이시지요.
중전마마와 희빈마마 사이를 오갔던 임금님이 어떤 사랑을 했는지 동이는 잘모릅니다. 정치도 모르고, 나라 경제도 모르는 동이에요. 다만 동이는 옳고 그른 진실만을 따르고 믿고 지키고 싶습니다. 그런데 농도 잘하시고, 저자의 평범한 사내들의 웃음을 부러워하는 임금님의 눈이 무엇인가로 가려진 듯합니다. 장희빈의 계략에 이 미남자의 눈이 자꾸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동이는 또 다짐하고 약속합니다.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미남자로만 보이는 임금님이 옳은 것을 볼 수 있도록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겠다고 말이지요. 임금님이 준 책이라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달달 외워서 임금님이 바라는대로 학식까지 두루 갖춘 감찰부 최고 궁녀가 되겠다고요. 그래서 이 미남자를 주변에서 속이지 못하도록 임금님의 눈과 귀가 되어 주겠다고요. 그리되면 억울하게 장희빈에게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초가로 쫓겨가신 중전마마를 임금님이 꼭 다시 찾으실 거라고 믿는 동이입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니까요. 
그나저나 이번회는 상선영감과 숙종때문에 빵 터졌네요. 재미있는 서책을 읽다 동이 생각이 난 숙종이 상선영감을 불러 천나인을 불러 달라니, 시간이 침소에 들 시간인지라,  상선영감 왈, "침소로 말입니까?" 숙종이 아무 생각없이 "그래..". 그런데, 어라 뭔가 이상하다...허걱, 숙종도 얼떨결에 대답했다가 놀랐는지 "침소???"라고 되묻지요. 그 때 상선 영감의 표정은 '드디어 때가 왔구나' 싶었는지 의미심장하게 웃습니다.ㅋㅋ
"하명하시면 지금 침소로 들이겠습니다" 라며 숙종보다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하긴 임금님의 그림자처럼 최측근에서 임금을 보필하고 있으니, 아마 숙종보다도 더 속마음을 잘 알 것도 같습니다. 동이 이름만 나오면 입이 귀에 걸리고, 눈이 반짝반짝해지는데 상선영감이 모를리가 없지요. 
당황한 숙종이 말도 어버버 거리면서"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그런 것 아닐세.."하자 뻘쭘해서 나가는 상선영감이었지요. 그런데 상선보다 숙종이 더 뻘쭘해진 것 같더라고요. 상선이 나가자 "침소? ...사람을 어떻게 보고...."라고 말끝을 흐리는데, 얼굴까지 벌개지는 것 같더라고요. 숙종 정말 당황했나 봅니다(과연 그랬을까요? 고얀 내관같으니라고,  한번 더 물어봐주지... 이런 마음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답니다.ㅎㅎㅎ).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임금의 한마디면 옷고름 바로 풀 일이지만, 동이는 조금 다르거든요. 그 녀석한테는 약점을 많이 잡혀서 체면을 더 세워야 한단 말이죠. 그 녀석이 자신을 남자로 생각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게다가 풍산이 녀석은 어깨가 떡 벌어지고, 까무잡잡한 남자가 이상형이라고까지 밝혔는데, 에잇, 그런 사내녀석들 다 잡아서 저 멀리 국경근처에 다 몰아놓고 성이라도 쌓으라고 하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다음에는 동이가 생각하는 미남자에 대해 다시 물어 볼 것도 같습니다. 백옥같이 매끄러운 피부에 초롱초롱한 눈, 오똑한 코 이정도면 괜찮지 않느냐고 어명으로라도 미남자의 기준을 바꾸라고 말이지요.  

동이는 날마다 사건 하나 들춰서 생명의 위협에 처하고, 숙종은 그런 동이때문에 노심초사 속이 타들어 갑니다. 꼭 한 사람은 웃게 하고 싶은 동이, 꼭 한 사람에게는 오해를 하게 하고 싶지 않은 숙종, 그 이유가 무엇인지 두사람 사이에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삐리리 감정을 조금씩 알아 갈 때도 됐는데, 상선 영감도 눈치채고, 장희빈도 눈치챘는데 두 사람만 모르고 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3 Comment 26
2010.06.01 09:08




인현왕후가 폐서인되어 궁궐 밖으로 쫓겨났을 때 백성들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철이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다. 메꽃같은 우리 딸이 시집 삼 년 살더니 미나리꽃이 다 피었네" 사철 생명력을 가진 민씨 인현왕후와 키는 크지만 한 철일 수 밖에 없는 장희빈을 빗댄 노래입니다.
동이가 찾은 증험들도 인현왕후의 폐서인을 결국 막지 못하고, 눈물로 인현왕후의 폐위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소복으로 갈아 입고 검은 가마를 타고 궁을 떠나는 인현왕후의 모습을 보며, 마치 당시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듯 눈물이 흘렀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장희빈과 장희재가 쳐 놓은 덫에 걸리고 말아 폐서인되지만, 역사적으로는 서인을 견제하려는 숙종의 정치운영의 방편이었고, 장희빈과 남인의 득세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면서 백성들의 사랑은 컸습니다. 인현왕후가 폐서인되어 살던 초가 근처를 지나는 백성들은 누구나 눈물을 떨구고 갔다는 야사들도 전해질 정도로 말이지요.
동이는 손에 넣은 증험을 가지고 어떻게든 중전의 무고함을 밝히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렸습니다. 중전을 폐위한다는 어명이 내려졌고, 더구나 명성대비의 서거로 숙종의 마음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명성대비의 시해에 관한 모든 증거들이 인현왕후를 지목하고 있었으니, 숙종으로서도 더 이상 중전의 편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정실부인을 내치는 숙종의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사실의 진위를 떠나 자책감이 컸을 숙종입니다.
동이가 인현왕후의 무고를 밝혀줄 증험을 가지고 숙종을 알현하기를 청하지만,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에 낙담하는 동이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숙종의 처소 근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동이에게 서용기가 찾아 오지요.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증험들을 묻어두라며 서용기는 동이에게 기다리라고 합니다. 지금 그 증험들을 내놓아봐야 사건 재수사도 어려운 상황이고, 증험마저 남인들 손에 없어져 버릴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지요.
인현왕후의 폐위 소식에 누구보다 가슴 아픈 동이입니다. 더구나 손에 인현왕후의 무고를 밝혀줄 증험까지 있는데, 아무 손도 쓰지 못하고 이대로 물러 설 수 밖에 없음에 동이는 원통하고 분통할 뿐입니다. 그런 동이를 인현왕후는 오히려 위로해 주지요. 인현왕후는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운명으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다만 가장 가슴 무거울 숙종이 걱정될 뿐입니다. "넌 슬기롭고 지혜로운 아이야. 부디 나를 위해서라도 이 시간을 견뎌다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리고 전하를 부탁한다. 누구보다 힘들고 아파하실 분이다. 성심을 헤아리고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해다오, 너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도 좋은 분이 아니냐"  
동이와 인현왕후는 진심과 진실이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 봅니다. 내쫓김을 당하면서도 지아비의 마음 아픔을 먼저 걱정하고 다독거려 달라고 부탁하는 중전마마의 마음이 진심임을 동이는 잘 알지요. 한 번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았던 중전이었습니다. 성심을 어지럽힐까봐 신경쓰이는 일은 혼자서 감당하려고 했었던 인현왕후였어요. 투서가 전해졌을 때도, 혹이라도 국사에 힘든 숙종이 신경쓸까봐, 모후의 회복되지 않은 건강상태를 더 염려할까봐 혼자 은밀히 해결하려던 인현왕후 였어요. 그 일이 인현왕후의 덜미를 잡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채 말이지요.
동이는 그럼에도 답답합니다. 진실의 패를 쥐고 있는데, 서용기 종사관의 말이 모두 옳다고 말하는 중전마마입니다. 동이는 아직 정치를 모릅니다. 진실은 무엇이든 힘을 가질 수 있고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동이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동이의 생각처럼 단순하게 진실과 의로움으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동이는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때로는 몸을 낮출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숨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요. 서종사관의 말처럼 힘과 권력이 진실따위를 우습게 누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것이 권력이고, 그 힘을 지금은 장희빈과 그 뒷배인 남인이 쥐고 있다는 것을요.
동이는 이렇게 정치적으로도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희빈에게 가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동이는 진실이라는 힘을 가졌거든요. "제가 아는 마마는 한낱 천비를 위해서도 고개를 숙이던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믿고 따르던 마마는 이제 계시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동이는 장희빈이 더 이상 무서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동이가 인현왕후에게서 보았던 것은 진실과 진심이 가진 힘이었습니다. 한 때 믿었던 장희빈은 권력이라는 힘을 위해 진실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동이는 더욱 당당할 수 있는 거예요.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고, 진실이란 권력 보다 강한 힘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인현왕후의 당부는 그래서 동이의 다짐이 되고 약속이 됩니다. 반드시 인현왕후의 무고를 밝히고, 인현왕후를 다시 궁으로 모실 때 까지 장희빈에게 진실의 힘으로 응징할 것이라고요. 인현왕후는 동이에게 숙종의 환한 미소를 되찾아 주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숙종이나 인현왕후는 동이의 환한 미소가 너무 좋습니다. 인현왕후도 동이의 환한 웃음을 보면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왜 숙종이 동이를 맑은 아이라고 했는지 인현왕후는 동이의 얼굴만 봐도 읽힙니다.
동이는 인현왕후의 마지막 당부를 잊지 못합니다. 누구보다 힘드실 분이 전하이시다. 네가 웃게 해드려라 라는...
오랜만에 본 숙종의 얼굴은 근심과 수심으로 가득차 있지요. 황직장과 영달을 불러 얼큰하니 취기가 도니 숙종도 근심을 잠시라도 잊은 듯 보입니다. 하지만 동이의 눈에는 숙종의 슬픈 웃음이 다 보입니다. 인현왕후를 내친 숙종이라고 마음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나봅니다.
그나저나 내수사로 감찰파견을 나갔던 동이가 큰 사건을 하나 물었네요. 내관들의 비리가 담긴 출납일지를 손에 넣고,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할 정도로 맞고 감찰부로 돌아 왔었는데, 지칠줄 모르는 동이가 다시 내수사를 찾아갑니다. 보고를 들은 정상궁이 감찰부 궁녀들을 이끌고, "내수사에 대한 감찰을 하겠습니다"라고 할때는 정말 통쾌했답니다. 동이에게 천군만마가 생긴 듯 힘이 불끈 솟더라고요. 정상궁 김혜선의 눈에 불을 품는 듯한 눈빛에 내수사 관원들도 옴짝달싹 못하고 덜덜 떠는 모습이더라고요. 동이에게 그나마 든든한 지원군이 생겨서 기분도 좋았어요. 얼굴을 얼마나 야무지게 때렸는지 아주 시뻘겋더라고요. 감히 여자에게 손을 대다니.;;;감찰부과 내수사의 한판승부로 동이가 동희빈을 한방에 보낼 수 있는 약점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그것이 인현왕후를 다시 궁궐로 환궁시킬 수 있을 증험이 될지 기대해 봐야 겠습니다. 그런데 예고편에 동이가 칼에 베이는 듯해서 걱정이 크네요. 아직도 동이가 넘어야 할 파란만장한 산들이 많은가 봅니다.
동이 21회를 보면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폐위 어명을 받는 인현왕후 박하선의 절제된 감정연기였어요. "기사년 5월 2일, 중전 민씨를 서인으로 삼고 지위를 삭탈한다. 중전민씨는 사가로 출궁을 명한다" 숙종의 어명을 받은 인현왕후는 끝까지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상궁들과 나인들의 흐느낌 속에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는 인현왕후 박하선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궁을 쫓겨가면서도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품위를 유지하는 모습은 과거 인현왕후도 그러했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한 번 시집가면 죽어 그 집 귀신이 될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는 반가의 규범을 익히 배우고 새겼을 인현왕후입니다. 죽어 귀신이 되어야 할 시집에서 쫓겨나는 신세, 여염집 마님이었다면 자진을 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인현왕후는 출가한 여자이기 전에 국모였던 인물입니다. 궁을 나가는 인현왕후를 보며,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왕실 내명부의 최고자리 교태전의 주인이었던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계략으로 폐서인이 되는 수치를 받았을 때 죽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말이에요. 하지만 인현왕후는 국모였기에, 왕의 여인이었기에 죽을 수 없었겠구나 싶더군요. 그것은 곧 어명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겠죠. 
인현왕후를 폐위한다는 교지를 읽는 동안 박하선은 미동조차 않고 눈만 지긋이 감더군요. 마치 "슬퍼하지 마라, 다 운명이다" 라고 말하듯이요. 절제된 인현왕후의 감정을 보여준 박하선은, 몸동작도 표정도 중전의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불안감과 슬픔마저 감춘듯 흔들림없이 의연한 인현왕후의 모습을 보니, 지켜보는 것이 더 아프고 슬퍼지더라고요. 
님찾아 꽃가마 타고 왔을 적 임금에게 사랑받으며, 왕가의 대를 이을 왕손도 낳고, 어질고 덕있는 국모가 되리가 꿈도 꾸었을 겁니다. 그러나 중전이라는 자리는 깊고 깊은 구중궁궐만큼이나 고독한 것이었고,, 지아비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궁에 들어왔을 때 타고 왔던 꽃가마가 아닌 검은 가마을 타고 궁을 나갑니다. 기나긴 인고의 세월과 외롭고 고독했던 그녀의 슬픈 운명처럼 말입니다. 소복을 갈아입고 궁을 뒤돌아 보는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드라마 속이었지만, 당시 조선 백성들이 땅을 치고 통곡하고, 산천초목이 다 울었다는 심정이 이해가고도 남을 정도였어요. 인현왕후 역의 박하선을 보니 한과 억울함, 슬픔과 수치심 등등의 모든 감정을 깊은 눈빛 속에 담고는, 인현왕후의 성품을 제대로 보여 주더군요. 폐위되는 인현왕후의 슬픔마저 우아하고 품위있게 승화시켜 보여 준 박하선의 연기가 좋았던 장면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10
2010.05.26 11:08




물귀신이 될 뻔했던 동이는 명줄 하나는 타고 났습니다. 동이의 든든한 수호천사에다 박학다식하기까지 한 차천수 오라버니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중전마마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뛰어 다녔지만, 명성대비 독살음모 사건의 배후가 중전마마라는 모함은 탐정동이가 처음으로 실패하는 사건이 될 듯합니다. 물증을 손에 쥐고도 밝힐 수도 없을 증험들이 되고 말것 같네요. 실질적으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의금부가 오태석과 장희빈의 손아귀에 들어갔는데, 동이와 포청 서용기 종사관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일 듯 싶습니다. 오늘날 검찰과도 뭐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임금으로 밝혀지지 않은 판관나으리로서 숙종이 동이와 사건을 파헤치고 다녔다면, 진실이 밝혀질 수도 있었을텐데 안타깝기만 합니다. 
명성대비의 승하는 숙종의 중전폐위 결심을 굳히게 합니다. 늘 정치적으로 여자관계에서 대립각을 세웠던 어머니였지만, 정치인으로서의 명성대비와 어머니는 숙종에게 다른 의미지요. 돌아가는 정황과 나온 물증들이 명성대비의 탕약사건 배후가 중전임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 마당에 더이상 숙종도 인현왕후를 지켜내지 못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요부 장희빈의 꼬드김에 넘어 갔겠지만, 드라마에서는 대비의 죽음으로 인현왕후 폐서인을 엮었네요. 여튼 이 일은 인현왕후가 궁궐에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말듯 합니다. 동이가 수장당할 뻔하면서,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장희재와의 담판을 통해 시간을 벌어보고자 했지만, 명성대비의 승하와 중전마마의 폐위 절차를 진행하라는 어명이 내려졌다는 말에 허탈하기만 한 동이입니다.
동이와 장희빈의 결벌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둘 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듯 아픕니다. 한 사람을 진실 앞에 목숨을 걸었고, 또 한 사람은 목숨과도 같은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동이는 장희빈이 마지막으로 동이가 내민 손을 잡았다면, 평생 뒤따를 빛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이도 알고, 장희빈도 알고 있는 진실에서 장희빈은 눈을 돌려 버리고 말았지요.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말이지요.
정상궁이 중전마마의 은밀한 명을 받고 투서사건을 조사한다고 했을 때, 동이는 이 일에 취선당이 배후로 지목되고 있음에 가슴아팠고, 반드시 장희빈의 무고함을 밝혀주려고 했어요. 동이가 알고 있던 장희빈은 결코 그런 잔인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동이는 이 일이 희빈의 오라비 장희재가 꾸민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희빈은 나서지 말라고 했고, 덮으라 해버렸습니다. 눈감아 달라고, 불의를 모른척 해달라고 했습니다.
빛은 어둠을 품지 못합니다. 어둠이 더 짙은 어둠을 품고, 빛은 빛을 품을 때 더 눈부신 법입니다. 동이는 꿈이고 빛이었던 희빈이 제 빛을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희빈의 모습에 동이는 삶이 꿈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허탈함을 느낍니다. "마마는 제게 꿈이고 빛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마마를 뵈며 뜻을 품었고, 길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마마께서 가시는 길을 따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중전마마는 겨우 서너 번 뵌 분이지만, 동이에게 인현왕후의 인상은 강했습니다. 인현왕후의 탕약이 잘못되었을 때, 의혹은 취선당 장옥정에게 쏠렸었지요. 취선당에서 나온 반하가 궁에서 사용하지 않은 약재였고, 꼼짝없이 장옥정은 중전시해 음모에 물고를 당할 뻔 했었지요. 동이가 죽은 시신에서 찾은 증거로 장옥정은 위기에서 풀려날 수 있었고, 동이의 탁월한 자질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현왕후가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었다면, 아니 장옥정에 대한 투기로 장옥정을 내칠 마음만 먹었다면, 인현왕후에게 동이는 눈엣가시였을 겁니다. 임금의 사랑을 빼았고, 인현왕후를 고독하게 만든 장옥정의 무고를 밝힌 동이가 얼마나 미웠을까요? 하지만 인현왕후는 동이의 자질을 칭찬해 주었고, 내심 장옥정이 자신을 음해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았음에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그녀는 조선의 어머니였으니까요. 후궁까지도 다 끌어안아야 하는 국모여야 했고, 투기하는 여인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인현왕후 속이 타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이 일을 계기로 인현왕후는 동이를 내명부 소속 궁인으로 명하는 언문교지를 내렸지요. "그 아이의 재주가 뛰어나고, 심성이 맑은 아이다는 숙종의 부탁도 있었지만, 인현왕후가 넓고 깊은 성정을 가지지 않았다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투기심이 있었다면 자기를 견제하는 취선당 장옥정을 구해준 장악원 노비를 궁녀로 승격시키지 않았을 테지요. 감찰부 최고상궁을 위시한 감찰부 나인들의 항명시위가 있었을 때도, 국법에 천인도 궁인이 될 수 있음을 들어 단호하게 동이의 법적인 바람막이가 돼 주었어요. 물론 동이는 장희빈이 천거해 줬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하명을 내린 것은 내명부의 최고자 중전이었지요.

동이와 인현왕후의 특별한 인연은 감찰부 나인의 정기시재에서 동이를 고의적으로 불합격시킨 때였지요. 빗속에 꿇어 앉아 재시험 기회를 달라며, 1인시위를 하다 동이가 쓰러져 버렸던 일이 있자, 인현왕후는 친히 감찰부를 찾아 동이와 접견을 합니다. "네 얘기를 듣고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었는데 생각보다 가녀려 보이는구나. 시재를 치루게 해달랬다지? 다른 궁녀들과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너도 똑같이 할 수 있겠느냐? 자신이 있느냐?" 며 동이에게 재시험의 기회를 주었던 인현왕후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명을 거역한 감찰부 최고상궁을 경질하고, 편견과 아집이 심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맡길 수 없다며 유상궁(임성민)의 지위도 격하시켜 버렸어요.
동이에게 비친 인현왕후는 공명정대한 사람이었어요. 자신이 취선당 장옥정의 신임을 받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동이에게 기회를 주고 힘을 주었던 분입니다.
인현왕후에게 전달된 한 장의 서찰은 결과적으로 인현왕후를 옭아매는 덫이 되고 말았습니다. 투서의 필체를 찾아, 투서를 한 내의녀를 추적하고, 허의관이 약재를 넣는 것을 보았다는 자백까지 받으면서, 동이는 고뇌에 빠집니다. 허의관과 내통한 나인이 취선당 장희빈 처소의 나인 영선이었기 때문이지요. 이 중대한 일을 목격한 동이는 취선당 장희빈이 대비마마의 탕약에 관여되었다는 것을 알고 물증을 잡아 허의관의 진술을 받게 되었지요.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허의관은 일만냥에 매수된 장희재의 사람이었고, 모든 일을 지시한 분은 중전마마라는 청천벽력같은 진술이 나왔습니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장희재와 장희빈가 꾸몄던 것이었고요.
동이가 희빈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뛰어든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희빈의 불의에 동이의 정신적인 빛과 결별을 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현왕후를 잡기 위한 장희빈 남매의 더러운 짓이었던 것이죠. 동이는 인현왕후에게 화살이 쏟아지자 중전마마를 뵙기를 청합니다. 인현왕후는 오히려 동이와 정상궁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요. 자기때문에 공연히 감찰부까지 연루되어 해라도 입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요.
인현왕후의 말을 들은 동이가 순간 감동의 찡한 표정이 되더군요. 자기의 죄목 아닌 죄목들을 찾아, 결과적으로 대비를 시해하려했다는 누명을 쓰게 해버렸는데도 인현왕후는 오히려 감찰궁녀들에게 사과를 했던 것이에요.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동이에게 살려면 입다물고 있으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던 장희빈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어요.
동이는 인현왕후를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현왕후의 강직한 성품과 사람을 품는 국모로서의 모습은 동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지요. 그런데 동이가 인현왕후를 택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어요. 바로 억울함이에요. 동이가 궁에 들어 온 이유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였어요. 음변과 인현왕후의 탕약 문제로 장희빈이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도, 동이는 그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그 때문에 장희빈과의 특별하면서 아픈 인연도 시작되었고요. 동이는 억울한 누명을 그냥 덮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한 나라의 어머니, 국모인 중전마마가 누명을 뒤집어 쓰고 궐을 나가게 된 것을 동이는 그냥 넘길 수가 없습니다. 동이가 알고 있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불의는 반드시 응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이는 장희빈도, 인현왕후도 지위를 보고 택하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릇된 것에 대한 진실, 귀한 생각과 천한 생각을 보고 택한 것이에요. 숙종이 오래 오래 믿을 수 있는 벗으로 남아달라고 했던 것도 동이의 이런 맑은 심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간악한 음모에도 자애로운 빛을 잃지 않은 스스로 귀한 사람이 되었고, 장희빈은 불의의 한통속이 되고 진실에 눈감으며 스스로 천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스로 귀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이가 인현왕후를 따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실세가 누구냐에 따라 나인들의 텃세까지 서열이 되는 궁궐임에도 출세의 지름길, 장희빈이라는 권세를 버린 동이는 인현왕후의 억울함을 끝까지 밝히려 들 것입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풍산개가 동이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5 Comment 18
2010.05.25 11:05




천하의 장희빈도 그녀의 예정된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나 봅니다. "그림자가 빛을 넘어설 수 없다"는 도사의 예언대로 장희빈은 그림자의 운명을 걷게 되었고, 동이는 빛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명성대비의 탕약사건을 지시한 사람이 중전마마라는 허의관의 진술은 궁궐을 발칵 뒤집고, 연이어 나온 증혐들 앞에 인현왕후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인현왕후에게 씌워진 모함을 풀겠다는 동이는 허의관집에서 나왔다는 환(어음)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인현왕후의 사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임상주 상단이 일만냥의 어음을 돌릴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동이는 누군가 가짜 환을 발행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상단 서기를 미행하는 차천수를 기다리다 장희재가 보낸 사내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습니다. 이래저래 골치아픈 숙종이 이번 밤에는 야행을 나오지 않을 것 같고, 아무래도 서용기 종사관에게 걸린 차천수가 어찌어찌해서 동이를 구하게 되겠지요.
동이 걱정은 되지 않은데, 인현왕후가 걱정이 되네요. 명성왕후를 시해하려 했다는 물증들 앞에 인현왕후 처소 나인과 사가 사람들이 의금부로 압송되어 고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인현왕후의 가슴은 찢어집니다. 중전의 체통이고, 자존심이고, 다 버리고서라도, 자신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만은 막고 싶었던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불러 부탁을 합니다. 그만 이 일을 덮어 달라고 말이지요.
끝까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발뺌을 하는 장희빈을 보고, 인현왕후는 처음으로 여인으로서 겪었던 속내를 털어 놓습니다. "한때 난 자네를 참 많이 부러워 했네. 늘 당당하고, 빛나던 자네가 미울만큼 부러웠지. 내가 가진 건 고작 중전이라는 허울뿐인 자리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 적도 많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참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이제 알았네. 자넨 내가 그토록 고통스러울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어".
하지만 돌아 오기에 너무 멀리 가 버린 장희빈입니다. 허울뿐인 그 자리도 내려놓게 될 것이라며, 인현왕후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아니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엄포까지 놓습니다. 처소로 돌아 온 장희빈은 동이를 제거하겠다는 오라비 장희재의 말을 받아 들이고 말지요. 누구보다 마음이 심란할 숙종을 위로하러 갔다가, 동이와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본 장희빈은 단순히 풍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말괄량이 천방지축 소녀가 아니라, 여인으로서 동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알아챕니다.
10년을 임금의 여인으로 살아 온 장희빈이었어요. 궁궐 밖으로 내쳐졌을 때도 자신을 잊지 못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궁으로 다시 들여 후궁으로 앉혀 주었던 금강석같은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동이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마치 근심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듯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입니다. 무슨 얘기인지 손뼉까지 쳐가며 웃습니다.
한 번도 왕의 사랑이 자신을 떠나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윤씨부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내의 마음이라고 얼른 회임하라며 탕약을 들이밀던 일도 생각납니다. 그 탕약사건으로 중전을 시해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약재를 들여 와 곤궁에 처한 동이를 구하기도 했던 장희빈이었습니다. 그때 장희빈은 어머니에게 "전하의 마음을 믿지 못하니, 품안의 자식을 믿으라는 말이냐?"며, "전하도, 자식도 믿지 않습니다. 오직 제 자신만을 믿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었지요.
임금이 국정에 휘둘려 자신을 내칠 때도, 마음만은 내치지 않았음을 장옥정은 믿었어요. 자신의 체면, 지위 따위는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려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임금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영원할 거라고 믿었어요. 자신이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고, 숙종 역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철썩같이 믿었기에, 세간의 여인들이 하는 '사내놈 마음 믿을 것 못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자신과 숙종만은 예외라고 생각했어요. 왕자까지 생산했으니 더더욱 임금의 마음이 다른 여인에게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자기의 남자가 다른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게 눈에 들어옵니다.
마마는 그럴 분이 아니라며 멈춰달라는 동이, 자네 손에 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며 멈춰달라는 중전, 두 사람의 말이 한결같이 같은 말로 들릴 뿐입니다. "네가 이 모든일을 꾸몄음을 안다" 라는...

장희빈은 멈출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달리는 말을 타고 있습니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달리는... 멈추려 해도 고삐를 함께 쥔 손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이 장희빈의 채찍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여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 한 남자만을 사랑하면서 처음으로 품었던 꿈, 조선 내명부의 최고 자리 교태전의 주인자리를 꿈꿨습니다. 신분때문에 천대받고, 설움받은 것을 되갚아 주고 싶었습니다. 그곳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습니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자존심과 당당함을 버린 날, 장희빈은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온갖 권모술수와 비열함도 용납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 장희빈입니다. 당당했던 자존심도 버리고, 오라비의 술수를 모른척, 못본척 눈감아 버리면서, 오태석의 뒷배를 이용해 가면서 말이지요.
조선의 왕좌가 하나이듯, 교태전의 주인도 한 사람뿐입니다.  그 자리는 왕좌의 주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신이어야 합니다. 한걸음만 가면 교태전의 주인자리가 자신의 것입니다. 중전의 자리, 국모의 자리, 자신의 아들 왕자의 모후,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모습까지 모두 봐야 합니다. 장옥정의 꿈이 그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장희빈은 자신이 향해가고 있는 찬란한 빛에 눈이 부셔 미처 보지 못했어요. 함께 손잡고 자신을 향해 웃고 있던 숙종이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첫 눈에 귀한 상이라 마음에 담았던 아이, 정직하고, 강직하고, 유난히 눈빛이 맑았던 아이, 자신의 어린 모습을 너무도 빼다 닮은 아이를 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장희빈이 교태전의 주인자리에 가까이 갈수록, 숙종의 마음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제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중전이라는 자리, 미래 왕의 모후라는 자리는 달콤하기만 합니다.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는 꿈입니다. 
장희빈은 그때까지도 도사의 예언을 다 헤아리지 못했어요. "항아님께서는 운명에 정당하게 맞서려 하실 겁니다. 허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지 마십시오" 라고 했었던 충고를 말이지요. 장희빈은 인현왕후와 명성대비의 모든 일이 자신의 꿈이 이뤄지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굴러 가고 있는 운명처럼 말입니다. 최고의 주인자리에 앉게 될 운명은 정당하게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궁에 들어와 대비와 서인들로부터 온갖 모함과 핍박을 받았지만 왕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자였고, 왕가의 대를 이을 왕자도 생산한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자리 주인이었기 때문이에요.
허울뿐인 중전의 자리를 명실상부한 중전의 자리로 만들고 싶은 장희빈입니다. 장희빈은 다가 온 꿈 앞에 진실의 눈을 감아 버립니다. 진실을 택한 동이와는 반대로 말입니다. 그만 멈춰달라는 동이를 거절하면서 장희빈과 동이는 빛과 그림자가 자웅동체처럼 붙어있어 누가 빛이고, 누가 그림자인지 몰랐던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진실의 빛은 거짓의 빛보다 밝고 강합니다. 야망을 위해 진실의 눈을 감아버린 장희빈은 그녀가 품었던 꿈을 이루고 모든 것을 얻게 되겠지만, 꿈보다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한 남자의 맑았던 사랑을 잃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을 갈구할 수록 그녀는 외로울 수 밖에 없고, 권력에 집착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말했듯 이제는 자신 밖에는 믿을 사람이 없을 지 몰라요. 그녀에게서는 사랑보다 권력을 탐하는 냄새가 짙어져 갈 뿐이니까요.
숙종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궐에서 오래오래 믿을 수 있는 벗 동이를 얻을 때, 장희빈은 그의 믿음과 사랑을 잃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중전의 자리는 허울뿐인 자리, 그림자가 되고 만다는 인현왕후의 충고도 무시한채 말입니다. 궁궐이라는 곳에서 임금의 여자가 사랑을 잃을 때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장희빈은 지금은 알지 못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인현왕후가 그 답안이었음에도 말이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2 Comment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