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귀'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0.03.28 '추노' 언년이 캐릭터 실패 이유 네가지 (96)
  2. 2010.03.25 '추노' 업복이와 초복이 노비키스에 담긴 의미 (32)
  3. 2010.03.21 하이킥 세경과 추노 언년이, 그들은 귀신이었다? (59)
  4. 2010.03.19 '추노' 가장 무서운 인물, 업복이의 분노 (31)
  5. 2010.03.18 '추노' 좌의정 이경식 손아귀에 놀아난 혁명 (16)
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96
2010.03.25 07:37




긴 시간 함께 해왔던 추노가 이제 마지막회를 남기고 있습니다. 추노의 결말은 누가 죽고 살아 남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천성일 작가와 곽정환 감독은 추노의 메세지를 단 한컷에 담아 추노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 그 한 컷에 추노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함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추노의 주인공은 대길이도 송태하도 언년이도 아닌, 바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우리들이었습니다. 노비의 문신을 새기고 살아가는 수많은 업복이와 초복이의 모습을 닮은 우리들이 바로 추노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노비당을 이끌었던 그 분이 예상했던 대로 좌의정의 수하였고, 비열하고 추잡한 인간이었음이 드라마를 통해 드러나는 순간, 그 섬뜩한 웃음이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 분의 정체가 아니라 그 분의 대사때문이었어요. "냄새 나, 가까이 오지 마" 그리고는 개놈이를 사정없이 죽여버리지요. 어안이 벙벙한 끝봉이가 왜 우리한테 이러세요? 라고 물었지요. "모자란 놈들이라 다루기가 쉬우니까" 라고 그 분이 대답했는데, 저는 그 분이 지었던 싸이코같은 웃음보다 그 대사에 치를 떨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렇게 예리하게 대놓고 우리들에게 묻고 있는지, 그 대담성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민초를 대변하는 바닥인생들, 그들은 하나같이 모자라고 무식하고 우매한 민중들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글을 깨우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달콤한 사탕발림에 죽도록 이용당하고, 이용당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자각없는 민초들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였습니다. 무식하고 모자라면 당한다는... 결국 붓든 자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이름없는 개놈이와 끝봉이, 강아지들이 우리들의 모습이었던 것이죠.
추노의 메세지를 담아 낸 업복이와 초복이의 키스 이야기를 드라마 속에서 하겠습니다. 선혜청을 습격한 후 하루를 산속에서 자고 온 업복이는 초복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초복이 어디갔느냐고 묻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지요. 초복이가 시집을 갔다는... "누가 시집을 갔대요? 초복이가 왜 시집을 가요?"  왜 마음대로 시집을 보내느냐며 우리가 짐승도 아니고, 니들이 뭔데 사람을 마음대로 팔아 라고 업복이가 주인양반을 향해 울부짖고, 그 분노는 기어이 업복이 손에 낫을 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목숨을 살려달라는 말도 양반이랍시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자구절만 읊어대는 주인양반에게, 업복이가 알아듣게 얘기하라는 대목에서는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결국 무릎을 꿇고 목숨을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모습이 통쾌하기까지 했네요. 주인 양반을 위해 풀질하고 곡식 추수하던 낫이라는 연장이 업복이라는 노비의 손에서 신분을 거역하는 분노의 의미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초복이의 남편이 될 노비가 업복이의 얼굴에 새겨진 노비낙인을 보고 도망친 적이 있었느냐고 묻지요. 초복이는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며 추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도망치면서 사는 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초복이는 자신의 남자가 있다며 첫날밤 합방을 거부하지요. 초복이는 여전히 당차고 야무졌습니다. 초복이는 정해 준 운명을 거부할 줄 아는 여자였어요. 노비의 운명은 주인이 정해 준 것이었어요. 시집가라면 가고, 남의 집으로 팔려가도 힘없이 주인의 말에 순종해야만 하는 가장 수동적이고, 자신의 의지가 없는 계층입니다. 초복이는 이렇게 남이 정해 준 운명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자기 운명을 자기가 개척하려는 인물인 게지요.
자기 남자가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순간 업복이의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초복이는 업복이가 자신을 데리러 와줄 것을 믿었고,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던 "어디가면 어련히 찾아갈려고..." 했던 말을 놓치지 않았어요. 양반들처럼 업복이가 구구절절 연애편지로 마음을 전한 일도 없었지만, 다리 아프다고 업어달라면 정말 다리가 아파서 그러는 줄 알고 등을 내밀었던 무신경한 아저씨 같았지만,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업복이의 순진한 사랑을 초복이도 다 알고 있었어요.
월악산 영봉으로 초복이를 홀로 보내며 업복이도 남자로서, 약한 개인으로서의 고민을 합니다. 끝봉이가 오늘 밤 장례원을 치기로 전했던 말도 다 잊고 싶은 업복이입니다.
"초복아, 우리 그냥 도망가서 우리 둘이 살까? 나는 사냥하고 너는 농사짓고...  호랑이 잡아서 큰 값에 팔아서 꽃놀이도 가고, 물놀이도 가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애기도 낳고... 우리 둘이 그냥 그렇게 살까? 그렇게 살길 바라나?"
이 말을 듣는 초복이도 속으로는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을까 싶어요. 좋아하는 아저씨랑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살며, 해저녘에는 아저씨 등에 업여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쌀밥에 고기반찬이 아니어도, 강냉이 죽에 푸성귀만 먹어도, 다른 사내에게 팔려가지 않고 아저씨랑 사는 행복을 초복인들 어찌 꿈꾸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초복이는 업복이를 장례원 약속 장소로 가라고 말합니다. "그럼 세상은 누가 바꿔요? 가서 싸워야지요" 초복이는 남편이 될 뻔한 사람에게도 당당히 말했지요. 도망치며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요. 도망치며 살지 않을 거라고요. 초복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도 혁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여자에요. 세상을 바꾸는 일에 왜 여자는 안되느냐고 따지고, 때로는 좋은 일을 위해 나쁜 사람과 손을 잡기도 하고 손을 놓기도 해야 한다는 가장 강하고 실존적인 여자에요.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을 잡아주길 바라면서도, 큰 일을 하라며 동지들을 배신하지 말라는 초복이에게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 고 하는데, 초복이와 업복이의 이별은 가장 슬프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믿음직스러웠어요. 두려움 앞에 가장 먼저 도망칠 것 같았던 초복이와 업복이는 가장 강한 인물들이었어요.
초복이 업복이에게 오실거냐고 물었지요. "내가 널 거기다 혼자 두고 어찌 혼자 사나? 꼭 가겠다" 고 말한 업복이가 초복이를 찾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마지막회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요. 사람 취급도 못받던 노비 업복이에게 노비가 주인되는 새 세상에 대한 꿈을 말해 주었던 그 분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개놈이 끝봉이 모두에게 칼을 들이 댄 사실을 알고, 업복이 어디를 향해 그 분노를 터뜨릴지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개죽음 당하지 않을 것이라 했던 업복이의 말에 끝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게 되고요.
동지들을 향해 가던 업복이 걸음을 멈추고 초복이에게 키스를 했는데, 저는 그 장면이 지금까지 추노에서의 장면 중 가장 의미있고 아름다웠던 장면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업복이와 초복이의 볼에 새겨진 노비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드러났던 노비키스는 드라마 추노의 메시지였어요. 업복이와 초복이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도망노비들이에요. 초복이는 상전의 명령을 무시하고 팔려 간 집에서 도망나왔고, 업복이는 초복이를 팔아 넘긴 주인을 살해하고 도망나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업복이와 초복이의 도망은 이번 한 번이 아니었지요. 초복이는 과거에 도망쳤던 전력으로 낙인이 새겨졌고, 업복이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지금의 도망은 도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의 도망은 노비로서의 현실적인 고달픔으로 인한 도망이었지만, 이번의 도망은 꿈을 꾸기 위한 도망이었거든요. 사람답게 살겠다는 희망을 향해 현실을 거부하고 나온 것이에요. 
업복이가 주인양반에게 했던 말이 있어요. "니들이 뭔데 사람을 마음대로 팔아?" 업복이의 자각은 '사람'이라는 이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짐승처럼 취급받으면서도 노비라는 이유로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스스로 낮았던 자가 사람임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메세지는 작가가 언년이의 입을 통해서도 전했어요. "세상에 노비라는 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답니다"  
마지막회 한 회를 남기고 많은 시간 업복이와 초복이의 애절한 이야기에 할애한 것은 마지막 엔딩장면 노비 문신이 각인된 업복이와 초복이의 키스신을 위한 것이었어요.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는 이별의 키스가 아니었어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초복이, 그냥 도망가서 살까? 라고 물었던 업복이에게 도망치지 말자고 말한 초복이, 현실을 회피하고 도망쳐서 숨어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가서 싸우라고 말한 초복이,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 며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과 함께 슬프게 웃는 업복이, 두 사람의 노비키스가 이 드라마가 말하는 희망의 메세지였습니다.
대길이 말했지요. "세상에 매여있는 것들은 말이야, 그게 다 노비란 말이지" 라고요. 돈, 권력, 세상적인 욕망들에 매여사는 우리 모두는 현대판 노비인지도 모릅니다. 알게 모르게 좌의정과 그 분으로 대변되는 권력에 농락당하고, 이용당하는 노비당 노비들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노비당 그 분이 좌의정에게 "심지어는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놈도 있다"라고 말하자, 좌의정 이경식이 "그건 곤란하시네.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야지. 그게 신념으로 바뀌면 아니 될 일이야"라고 말했지요. 좌의정의 말을 온 몸으로 거부한 이들이 업복이와 초복이었습니다. 초복이가 업복이의 "그냥 우리 둘이 살자"는 말을 거부하고 동지들에게 보낸 것, 그것은 세상이 언젠가는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어요.
드라마 추노는 노비키스를 통해 21C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노비처럼 살것인가, 아닌가" 에 대해서요. 희망과 신념을 버리지 않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업복이와 초복이, 가장 신분이 낮았고 약했지만, 가장 강한 사람들로 태어 난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가 드라마 추노의 핵심이자,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인 이유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4 Comment 32
2010.03.21 07:34




지붕뚫고 하이킥을 새드엔딩이다 해피엔딩이다 라고 구분지을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저는 하이킥 결말은 허무였다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허무주의 성향인지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세경의 성장과 행복을 그리고 싶었고, 지훈이 마지막에 사랑을 깨닫는 각성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다는 결말 의도는 감독의 뜻대로 그려졌는지 아닌지는 하이킥을 시청해 온 시청자들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마지막회를 보고 지독한 짝사랑에서 나왔던 비극적 결말이라 더 이상 이 드라마를 생각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뭔가 끄적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찝찝한 감정을 한 번은 집고 넘어가고 싶네요. 
신세경 귀신설에 별의별 소문들이 떠도는 하이킥의 결말은 어떤 방식으로든 충격을 줘야겠다는 감독의 강박관념이 빚은 오기인지 치부인지 조차 모르겠지만,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을 했습니다. 개운하지 못한 미련만을 남기고 말이지요. 세경의 짝사랑과 뒤늦은 지훈의 사랑을 위해 죽음을 순교처럼 미화하고 싶을 정도로 세경의 짝사랑이 아름다웠는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하지 않는 짝사랑을 받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죽음이 희망과 행복이라는 복선을 깐 듯 정지시켜 버린 하이킥 세경과 지훈의 죽음에 대한 역설은 추노 송태하나 대길이,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게 시집가는 초복이에게나 어울릴 법합니다.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이들 삶은 세경이에 비하면 훨씬 고단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대길이는 빼야겠네요. 대길이는 죽는 것만은 끔찍히 싫어하는 것 같아 보이니까요.

하이킥 마지막회에서 제가 애정을 놓은 인물이 있었다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세경이었습니다. 물론 신세경 연예인에 대한 애정은 아니에요. 동생을 데리고 힘들게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는 세경이에게 애정을 가지고 응원하지 않은 분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이킥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고 잘되기를 바랐던 인물이었을 겁니다. 세경이 지독한 짝사랑을 시작하면서,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도 했고, 지훈이를 짝사랑하는 세경이 힘들어 보여 짝사랑을 털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세경이 짝사랑을 털어내는 모습에서는 잘했다고 응원까지 했습니다. 이제 20살 세경이 앞에 얼마나 많은 인연이 있을텐데 지훈이 하나에 목맬 필요는 없어 보였지요.
종방을 향하면서 세경에게 이민이라는 문제를 터뜨리면서 제작진은 세경과 지훈의 분위기를 급반전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을 했지요. "가지마라"며 붙잡는 지훈의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주기도 했고, "내가 널 붙..."이라며 말을 끊는 지훈이의 오락가락 감정도 한번씩 넣었지요. 
그때까지 시청자들의 대부분 의견은 이제와서 지훈의 감정을 억지로 보이는 것이 무리라는 목소리를 높였고, 그동안 정음에게 보여준 감정은 뭐였느냐며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병욱 피디는 '자각'이라는 고도의 지적 언어로 지훈이 세경을 사실을 좋아했는데, 이제서야 알았다는 식으로 포장해 버렸습니다. 네, 저는 포장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됩니다. 무슨 해탈의 경지도 아니고 득도를 한 것도 아니고, 사람 좋아했던 감정을 깨닫는 것을 자각이라는 용어까지 써야 했는지, 그것은 제작진의 고도의 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송태하처럼 부인 언년이가 종이었다는 사실에 뼈속까지 양반이었던 신분에 대한 각성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해리가 신애에게 "은혜는 못갚아도 원수는 갚는 정해리야" 라고 하는 대사를 보니 제작진이 추노를 참 열심히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노에서의 주인공들이 신분적인 자각 혹은 각성을 했다하니 지훈이에게 사랑의 자각이라는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씌우기까지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훈이의 각성은 여전히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장 행복하기를 바랐고, 잘 되기를 바랐던 세경이 뒷통수를 친 것에서는 미워지기 까지 했습니다. 윤중로 벚꽃나무 아래에서 준혁과 이별키스를 했다는 것은 세경이 준혁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혀 없었던 고마움이었을까요? 그러기에는 세경의 표정과 준혁의 입술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헤어짐에 대한 슬픔도 있었고, 준혁에 대한 흔들림도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지훈에 대한 마음을 털어냈다고 보여주었던 감쪽같은 모습들 때문이었지요. 지훈이를 편하게 대하는 모습, 빨간목도리에도 흔들림 없는 듯한 모습, 심장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가까이서 지훈의 수학수업을 받을때 조차도 세경의 표정은 덤덤했습니다. 덤덤한 척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감쪽같이 말입니다. 

공항가는 길에 세경이 지훈에게 고백했지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고, 그래도 떠나기로 하고 좀 힘이 들긴 들었어요. 아저씨랑 막상 헤어지면 보고 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그 동안 마음에 담은 말들 꼭 한 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끼이익 꽝...." 신세경, 이지훈 빗길 교통사고로 사망...... 뭐 이런 상황이었겠지만 그 전 정지장면에 웃는 세경의 얼굴을 보니 귀신설이 생각나며 오싹해지더군요.
세경이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는데 왜 그 순간이 세경에게 행복한 순간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만약에 말입니다. 세경이 고백하는 순간 지훈이가 진지하게 "세경아, 사실은 나도 널 좋아했어. 그런데 이제서야 알았어.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 뭐 이런 말이라도 했더라면 세경이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 말이 이해라도 가겠습니다.
무엇보다 공항에 가는 길에 지훈이에게 고백하는 과정은 참으로 세경이 답지 않았고 뻔뻔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대전에 정음이를 보러 가겠다는 말에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세경은 지금이 아니면 영영 고백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담담하게 지훈에 대한 감정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좀 비꼬겠습니다. 정음이랑 잘되기를 바란다면서 정음이 붙잡으러 가는 남자에게 좋아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무슨 뻘짓? 세경이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에 솔직했나요? 맨날 청승스럽게 눈물만 떨구고 무슨 질문을 해도 "그냥요..."라며 답답스런 대답만 하더니만...  
엔딩장면에서 지훈이 눈이 시뻘겋게 변하고 눈물이 가득 고였지요. 지훈의 눈물이 감독이 말하는 자각이었군요. 세경이 지훈이 좋아한다고 처음 고백했나요? 지훈이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LP판이랑 빨간목도리에 대한 의미를 지훈이 알았거든요. 그런데도 지훈은 요지부동이었어요. 세경의 마음을 알았지만 정음을 더 애타게 찾았고, 정음을 그리워했었던 지훈이었어요. 그런데 아저씨 좋아했고,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말에 실은 세경이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득도를 하셨다? 네, 원효대사가 한 수 배워 갈 각성입니다.
하이킥 125회에서까지의 세경은 누구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랬던 인물이었는데, 마지막회에서는 세경이는 최고의 악역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경이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한 것은 사실 없어요. 세경이의 사랑 하나에 세경이와 지훈이의 목숨까지 걸고 이어주고 싶어한 무리수가 세경이라는 인물을 시트콤을 통해 악역을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세경의 죽음은 여러 사람에게 평생 상처로 남아 버렸습니다. 신애는 언니를 잃었고, 몇달만에 딸들과 함께 살겠다고 한국으로 온 세경의 아빠는 졸지에 사랑하는 큰 딸을 잃어 버렸습니다. 성장하고 싶어했던 세경은 20살 나이에 사랑앓이만 하다 짝사랑했던 지훈을 물귀신처럼 저승길 동무로 동행하고는 죽어버렸고요. 세경의 행복과 성장을 바랐던 시청자는 세경이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잃어버렸습니다. 세경이의 청춘과 인생과 미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채로 말입니다. 준혁의 사랑만 받고, 지훈이만을 사랑하다 간 세경이었습니다. 
 
지훈의 집은 또 어떻습니까? 이순재옹은 하나 밖에 없는 잘난 서울대 출신의 의사아들을 잃었고, 현경은 아들같이 사랑했던 동생을 잃었습니다. 정음은 자신을 데리러 오는 길 중간에 사고를 당했으니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고, 세경누나에 대한 고운 첫사랑을 간직해야 할 준혁은 첫사랑과 삼촌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평생 아픈 화상처럼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누가 만들었습니까? 세경이의 집요한 짝사랑이었습니다. 순간 세경이 진짜 귀신처럼 보이더군요. 지옥에서 온 식모의 에피를 엮어 세경이 귀신이었다는 말들도 있는데,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세경의 웃는 모습을 보니 으시시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합니다.

언년이와 세경이, 그들은 귀신이었다?
인터넷에서 추노에 관한 재미있는 결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실은 언년이가 억울하게 불에 타죽은 노비 귀신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언년이가 귀신인 것을 안 호위무사 백호, 자객 윤지(이 분은 퇴마사라네요), 천지호가 다 죽어나갔다는.. 갑자기 작가나 제작진이 인터넷에 떠도는 언년이 귀신설을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경이 감독이 말한 신분계급의 사다리 뭐 그딴식의 원한을 품어서 죽었다가 환생한 처녀귀신이었고, 신분의 벽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지훈을 데려간다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귀신설 하나 만들어 보겠습니다. 과거에 세경이라는 여종이 주인집 도련님을 사모했습니다. 도련님은 여종 세경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요. 주인집 도련님은 과거 장원급제한 인물에 다른 훌륭한 양반규수 정혼녀까지 있었어요. 세경이라는 여종은 말도 어수룩하고,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는 얌전한 여종이었어요. 일 잘하고 살림 잘하고, 예쁘고 착한데, 흠이라면 여종이었다는 거죠. 언년이 처럼요.
세경이라는 여종은 어느 날 소 한마리에 다른 집으로 팔려가고, 그 날 도련님이 혼례를 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짝사랑에 상사병이 깊어져 여종은 자신의 신분을 저주하다, 도련님께 좋아한다는 고백 한 번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습니다. 한이 깊어 구천을 떠돌더 여종은 현재의 세경으로 환생해서 성북동 순재네 집에 식모로 들어오게 되었지요. 도련님과 닮은 지훈이를 보고 세경은 사랑에 빠졌지요. 물론 짝사랑이었어요.
그런데 지훈이는 다른 여자 정음이를 사랑했죠. 귀신이었지만 지훈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고, 또 착한 귀신이어서 지훈을 고이 놔주려고 했는데, 어느 날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자신이 지훈이라는 고고한 신분의 남자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한을 품고 죽었고, 도련님을 잡기 위해 환생한 귀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게 지훈이가 딱밤을 때렸을 때 세경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세경이 그때 깨달은 거예요. 자신이 사랑했던 도련님이 지훈이였다는 것을요. 지훈이를 그냥 두고 혼자 저승으로 돌아 가려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마음이 바뀌고 말았어요. 귀신 마음 바뀌는 것을 사람인 우리야 알 수 없지요. 마지막 하늘로 돌아가야 하는 날(즉 비행기를 타는 날), 여종 세경 귀신의 딱한 사연을 전해 들은 옥황상제는 눈물을 흘리고(공항 가는날 비가 억수처럼 내렸죠) 귀신 세경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지훈이도 데리고 오라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옥황상제의 전언을 들은 귀신 세경은 너무 고마워서 미소를 지으며 지훈이를 데리고 갔다는 전설같은 납량특집이었습니다. 뭐 이런 나레이션이 곁들여지는 거죠. 
세경이는 좋아하는 사람과 죽음을 함께 했으니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가도 못가고 몽달귀신된 지훈이, 세경의 가족, 지훈이네 가족, 황정음, 그리고 세경이를 사랑했던 시청자들 모두에게는 슬픔을 준 최고의 악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세경은 죽어서도 행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기때문에 지훈이 죽었는데 세경이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겁니다. 지훈이는 행복해 하며 죽었을까요?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젊어 황천길로 가는 것을 행복해 하겠습니까? 사랑의 자각이고 뭐고 간에 죽음의 순간은 공포밖에는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요. 세경이의 남은 가족들, 그리고 졸지에 날벼락 맞은 지훈네 가족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대못을 박은 세경이, 정말 최고의 악역입니다. 세경이를 응원했던 시청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음으로 맞바꾼 짝사랑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허무와 슬픔, 좌절감으로 남았습니다. 지훈과 함께 있었던 찰나가 세경에게는 행복했는지 모르지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충격과 허탈이었습니다.  
세경의 행복을 위해 남은 사람들에게 잔인한 슬픔은 안겨 준 또 다른 하이킥 최고의 악역은 "큐" 사인을 내린 분이었겠지만요.

*감독의 결말 의도는 지난 글 <지훈-세경을 죽인 이유, 감독의 지독한 짝사랑>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인용하여, 분석글을 올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5 Comment 59
2010.03.19 12:44




추노 22회의 큰 사건은 노비당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궁궐로 들어가는 곡식창고인 선혜청을 습격한 사건이 그것이지요. 선혜청을 습격했다는 것은 그들의 총구가 궁궐을 향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아직까지 노비당이 누구의 조종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추측만 난무하고 있기에, 좌의정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또 다른 반전이 숨어있을 수도 있기에 섣불리 규정하기도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이제 2회분량을 남기고 그동안 터지지 않았던 업복이의 분노를 마지막으로 터뜨렸습니다. 업복이를 추노 속 등장인물들 중 마지막 뇌관으로 남긴 것은 그 혁명관의 위험성때문이었을 겁니다. 양반세상을 뒤업고 노비들이 주인인 세상을 만든다는 노비당의 혁명론은 입 밖에 내는 순간 능지처참형에 처해질 수 있는 체제전복성을 가진 것입니다. 이는 왕을 바꾸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겠다는 반정 혹은, 다른 왕조를 세우는 역성혁명보다 훨씬 무섭고, 위험한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서는 말이지요. 물론 고려시대 만적의 난도 있었고, 천민인 망이 망소이의 난도 있었지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며 노비들의 세상을 꿈꿨던 만적의 난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했지만, 노비들의 난은 말 그대로 세상을 뒤집는 논리이기에 조선 지배계층으로서는 가장 무서운 난일 것입니다. 등골이 서늘하다 못해 오줌을 지릴만한 일이지요. 만약 성공한다면 말이지요. 
업복이로 대변되는 노비당은 신분계급상 가장 낮은 계급입니다. 계급의 취급조차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요. 노비와 소 한마리로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시대였으니, 보리쌀 닷되에 팔려 간 사당패나 다름없었던 사유재산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업복이의 등장은 첫회부터 있었습니다. 국경에서 대길이 패거리가 도망도비 모녀를 잡았을 당시부터 나왔던 인물이 업복이 공형진입니다.
관동포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빚때문에 노비로 팔려가 도망가다 붙잡혀 와서, 얼굴에 노비 낙인이 찍히고, 자신을 붙잡아 온 추노꾼 이대길의 대갈통에 구멍을 날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지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르쳐 준 것은 노비들의 모임이었어요. 업복이는 아마도 노비당 그 분의 포섭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 분이 좌의정이나 권력의 배후라는 가정이 맞다면 말이지요. 업복이의 방포술을 노비들에게 익히게 하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선혜청을 습격하기 전에 업복이는 노비당 그 분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지요. 동지 중 누군가가 잡혔을 때는 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노비당의 선혜청 습격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업복이는 포로로 잡힌 강아지라는 노비동지를 자기 손으로 쏴야 했습니다. 업복이는 지금까지 노비당 그 분의 임무를 받고 양반을 죽이면서도 늘 고민했던 인물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막 죽여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초복이에게 심정을 터 놓기도 했지요. 업복이가 자의적으로 죽인 경우는 반짝이를 밤마다 괴롭힌 양반뿐이었어요.
강아지라는 동지를 자신의 손으로 쏘고 주저앉아 우는 업복이는 처음으로 살인의 슬픔을 느끼는 듯했어요. 그동안 노비당 그분의 지시로 죽였던 양반들은 막연한 죄책감으로 괴로워 했지만, 직접 동지의 가슴에 충구를 겨눠야 했기에 업복이가 느꼈을 인간적인 고뇌는 컸을 겁니다. 큰소리도 내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울음을 밀어넣는 모습은 업복이를 연기하는 공형진의 내공을 압축해서 보여주었던 장면이었어요. 
선혜청을 공격하고 강아지를 쏘고 돌아와 동지를 죽인 죄책감에 업복이가 울고 있던 시각, 초복이는 내일이면 다른 집 씨종에게 팔려간다는 말을 하기 위해 업복이를 기다립니다. 노비당 모임이 끝나고 밤이면 수줍게 밤길을 함께 걷고, 아저씨 등에 업혀 여자로서 두근거림도 느껴봤던 초복이, 얼굴에 노비 낙인이 찍혀 사람구실도, 여자로서 사랑도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햇던 그녀에게 찾아 온 사랑은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어요. 노비들에게는 사랑도 금지되어 있었지요. 주인양반이 좋아하는 남녀 종을 맺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인이 짝을 정해주면 부부연을 맺는게 당시의 노비들 혼인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업복이와 대길이의 사랑은 그 신분이 하늘과 땅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네요. 대길이는 양반이었기에 노비를 마음대로 사랑하지 못했고, 업복이는 종이기에 사랑도 주인의 허락없이는 사랑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금지된 사랑과 허락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초복이가 다른 집 씨종에게 시집갔다는 말을 들은 업복이가 낫을 들고 주인양반을 향하는 것은 업복이의 신분적인 분노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업복이는 그 동안 양반사냥을 하면서도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고 옳은 일인지 의문을 가져왔지요. 그런데 고백 한 번 제대로 못한 초복이가 다른 집에 팔려갔다는 것을 알고, 업복이는 비로소 낫을 들고, 총을 들 명분을 스스로 찾아 버렸습니다. 비로소 양반이라는 가진 자들의 대갈통에 총구를 겨냥해야 할 이유를 찾은 것이에요.
업복이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가장 낮은 계급에서의 각성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대길이 송태하에게 했던 말이 있었어요. "너는 방법이 틀려먹었다. 싸움은 말이지, 도망을 가다가다 갈데가 없을 때 싸우는 거다" 라고 했었지요. 업복이가 지금 그런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떨어질래도 떨어질 수 없는 가장 낮은 신분, 사랑마저도 주인이 마음대로 정해주는 세상, 대길이의 말대로 그 지랄같은 세상을 향해 총을 들어야 한다는 각성을 이룬 것이에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요? 업복이가 고양이를 물기 위해 이빨을 세운 것이지요.
잠깐 옆길로 이야기가 새는데 언문도 깨치지 못한 업복이나 설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대길의 이름자를 알려 달라고 해서 대길이를 위해 지은 옷에 이름을 수놓는 장면이 있었지요. 그리고 언년이 원손 석견에게 송태하가 적어 둔 소현세자 회고록을 읽어 주는 장면에서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가면 "백성들에게 새로운 것을 알리는 책을 많이 편찬 할 것이다" 라는 대목이 있었어요.
업복이와 설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조선의 사대부들이 하층계급에게 글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업복이나 설화같은 하층민의 지적자각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피지배계급의 지적자각과 각성은 지배계급을 위협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기에,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보호막을 쳤을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드라마에서 언급되었던 부분처럼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고 보위에 올랐다면, 더 많은 백성들이 지식에 눈을 뜨고, 조선도 더 일찍 개화에 눈을 떳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치더군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이고, 만약이라는 가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현세자가 역사적으로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추노에 흐르는 주 테마는 결국 사랑이었어요. 대길이는 언년이를 사랑해서 양반 상놈 없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대로 사랑하는 세상을 꿈꿨지요. 업복이는 종이기에 사랑이라는 지극히 감정적인 것마저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봉건사회의 계급모순에 눈을 뜨게 되었고요. 사랑때문에 신분의 각성을 한 것은 대길이와 업복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년이가 종이었음을 알게 된 송태하의 신분적인 한계 역시 같은 선상에서의 눈뜸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요.  
두 사람은 금지된 사랑과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했다는 닮은 점이 있어요. 그 사랑때문에 대길이는 인생이 바뀌었고, 업복이는 분노의 총을 들게 되었지요. 송태하의 한계는 개인적인 극복인지, 사상의 벽까지 깬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아마 깨기 힘든 벽일 것이지만 그렇다고 송태하가 잘못되었다고는 규정지을 수만은 없겠지만요.
칼든 자보다 붓든 자가 무서운 법이라고 최장군이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대길이 "무섭기로 치면 총든 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지" 했던 대사가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업복이의 분노를 마지막에 터뜨린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총든 자 업복이가 추노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업복이의 분노가 물론 성공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총든자, 즉 업복이가 무서운 것은 그 총구가 양반이라는 지배계급을 구체적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업복이의 분노는 대길이와도 송태하와도 다른 의미입니다. 바로 최하층 계급의 신분해방으로 연결되는 분노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초복이를 잃고 낫을 든 업복이가 찾아갈 곳은 언젠가 노비들 모임에서 들었던 도망노비들이 모여사는 곳일 겁니다. 대길이가 은실이 모녀를 안돈하라 보냈던 월악산 짝귀산채가 그 곳이겠지요. 가장 비천한 계급 업복이가 월악산 산채에 합류하게 될 날도 머지 않은 것이지요.
이렇게 월악산 산채는 세상을 바꾸려 했던 자, 사랑을 쫓았던 자, 세상을 등진 자, 세상에 쫓기는 자 등 쫓고 쫓기는 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될 것 같습니다. 버림받은 사람들,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지막 요새 월악산 산채가 처참하게 짓밟힐지, 좌절의 역사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 둥지가 될지 다음주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확인되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31
2010.03.18 09:21




추노 21회를 보며 이 드라마가 벌여놓은 것이 너무 많아 정리하기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합니다. 이번 회 보여 준 내용은 언년과 대길, 송태하 그리고 설화의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애절한 사랑과 송태하의 하나남은 부하 곽한섬의 죽음을 큰 축으로 다뤘습니다. 특별한 대사없이 주구장창 열심히 달리는 황철웅도 간간히 존재감을 드러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무엇보다 이번회 주목을 해야 할 인물이 좌의정이었어요. 베일에 싸여있던 좌의정의 음모를 직접적인 설명으로 보여주었지요. 좌의정과 그 수하 박종수의 대화를 통해 좌의정이 꿍꿍이를 드러낸 것이지요. 노비당도 결국 좌의정의 탐욕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는 살인도구일 뿐이라는 것도 여실히 밝혀졌지요. 저는 좌의정이 노비당 그분의 배후 인물이 아니기를 여러 의미에서 바랐지만, 희망과 권력의 갭이 너무 컸네요. 노비당 그분이 자발적인 각성에 의해 움직이는 가장 낮은 자들의 분노였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드러난 좌의정의 속셈은 권력도, 왕권에 대한 도전도 아닌 부의 탐욕이었습니다. 청과의 전쟁을 유도해 그동안 모아 온 물소뿔을 매수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자 함이었지요. 좌의정의 말을 빌어 보겠습니다.
"원손을 보위에 올리려 역모가 일어난 터, 원손은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시지... 이로써 조정은 우리 목소리만 낭자하게 될 것이야. 그 후로는 마지막 한 가지만 남게 되시지. 대대적인 호적정리로 노비들을 모아 북방으로 올려 보내셔야지. 본격적으로 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그때 물소뿔을 푼다"
좌의정의 음모는 인조의 어심을 읽어 청을 징치코자 함도, 원손의 복위를 통한 반정을 저지하려 함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탐욕을 위해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에요. 띠웅~ 그동안 추노에 담겨진 메세지를 찾고자 나름대로 드라마를 연구하다시피 분석해 왔던 저는 헛수고 했나 싶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좌의정을 보며 드라마 추노에 흘렀던 민초들의 항거, 혹은 좌절된 희망에 대한 길바닥 사극의 기획의도 자체가 실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심한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결국 우리 모두는 좌의정 이경식의 손아귀에 놀아난 꼴 밖에는 안됐으니까요.
추노가 시작된 발단부터 집어보기로 하지요. 물론 대길이 언년이를 찾는 것은 언년에 대한 대길의 지독한 사랑, 그 개인적인 의미였으니 일단 제껴두기로 하지요. 언년이가 송태하와 엮이면서 대길이도 원손이라는 정치적인 상황에 휩쓸리기는 했지만요.
우선 혁명을 담당했던 한 축 송태하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게 순서겠군요.
송태하가 마방관노로 떨어지게 된 것은 황철웅의 간계에 의한 것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죽고 없어진 임영호를 제거하기 위한 좌의정의 술책이었지요. 송태하의 목숨을 담보로 임영호의 정계은퇴라는 목적을 좌의정은 성공했고, 고속승진을 거듭한 끝에 현재 좌의정이라는 자리를 꿰찼지요.
좌의정의 다음 단계는 원손의 제거였어요. 어린 원손을 빌미로 반정의 씨앗을 제거한다는 것은 애초에 없었고, 소현세자의 세력을 제거한다는 의미가 큰 것이었지요. 즉 조정에 반청세력들만 남기겠다는 뜻이었어요. 좌의정이 계획하고 있는 일은 청과의 전쟁이었으니 말이지요. 원손을 따르는 세력, 엄밀히 말하자면 소현세자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좌의정은 제주도의 참상을 그린 그림을 유포했지요. 소현세자의 잔당들을 색출하기 위한 좌의정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동굴에 불을 지피고 여우를 잡 듯 말이에요. 어린 석견이 상주가 된 모습을 본 유생과 선비들은 비분강개하여, 원손을 왕위에 올리고 썩은 정치를 혁파하겠다는 혁명의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송태하의 도주가 있었고, 좌의정은 조선 최고의 추노꾼 대길에게 송태하를 추쇄하는 일을 맡겼지요. 한편으로는 사위 황철웅에게도 송태하와 원손을 처리하라는 명을 내렸고요. 유생들의 수장이었던 조선비를 회유해 변절케하고, 남은 세력과 수원의 이재준 대감까지 명단을 입수하고, 이번 회 이재준 대감을 제거하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곽한섬이 비명에 가버렸네요. 곽한섬의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저승에서는 이뤄주는 CG로 궁녀 장필순과 함께 고이 하늘나라로 모셔 주었습니다. 곽한섬과 장필순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충직한 곽한섬에 대한 예우였는지 생뚱맞게 환시를 통해 가는 길 고이 모셔 주어서 감동적이었다고 해야하는지, 판타지스러웠다고 해야 하는지 잘모르겠습니다만. 
좌의정은 전쟁을 통해 조선의 영토를 확장시키겠다 혹은 임금에게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 준 청에 분노함도 아닌, 자신의 배를 채울 꿍꿍이만 했었던 것 뿐이었어요. 악의 축 중심인물의 꿍꿍이가 자신의 곳간에 있었다니, 그리고 우리는 좌의정 곳간때문에 조선팔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나 싶습니다. 추노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임금의 옥좌도 당파싸움도 세자자리도 아닌 좌의정 곳간이었습니다. 좌의정을 보니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전쟁이나 이라크 침공 등 전쟁을 통해 무기판매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나라가 생각나더군요. 
결국은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좌의정의 탐욕에서 비롯된 쫓고 쫓기는 얘기에 희망이니 혁명이니 세 세상이니 하는 꿈을 주인공들과 함께 꾸었나 싶어 허망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재벌들을 위해 개미처럼 일하지만, 고용불안으로 늘 생계의 위험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결국 배부르는 것은 거대 재벌이고, 서민들의 생활은 팍팍하기만 한... 
좌의정의 손아귀에 놀아난 송태하의 혁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작이 좌의정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에요. 좌의정이 짜 준 판에 송태하가 들어가 일단 원손을 구하고 보자며 칼춤부터 췄으니, 송태하가 혁명관을 세우기도 힘들었고, 송태하와 부하들이 준비한 거사 역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변절한 조선비가 오히려 영리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大를 희생하고 小를 건졌는지, 小를 희생하고 大를 건졌는지 그것은 역사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추노의 한 축을 움직였던 송태하의 혁명의 시작이 좌의정 이경식의 탐욕에서 비롯되었고, 그 끝 역시 좌의정에 의해 좌절된다는 것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네요. 노비를 해방시켜 북방으로 올려 보낸다는 좌의정의 계획은 무모한 무리수로 까지 보입니다. 판을 이 정도로 짤 정도의 권력이라면 군권을 장악해서 북진을 추진할 수도 있을텐데, 노비들을 신분해방시켜 북벌의 도구로 쓰겠다는 것은 늙은이 망발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소뿔을 팔기 위해 노비들의 호적정리까지 단행하겠다니 좌의정이 어찌보면 신분해방의 선봉장으로 봐야 하는지, 사리사욕에 눈 먼 저승길 가까운 노인네의 탐욕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추노 속 송태하를 축으로 한 희망은 좌의정의 농간에 놀아나 앞뒤 분간없이 일을 진행하다 이재준 대감과 곽한섬의 죽음과 함께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좌절되었고, 남은 희망은 대길이의 사랑에 걸어볼까 합니다. 양반 상놈 없는 세상을 꿈꿌던 대길은 그나마 좌의정의 탐욕과는 관계없이 희망을 노래했던 파랑새였으니 말입니다. 언년이에 대한 사랑 하나로 새 세상을 꿈꿨던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었으니까요.
파랑새들의 터전 월악산 산채, 그곳이 제가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추노의 희망입니다. 삶의 가장 저변에 있는 밑바닥 인생들의 평화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쥐도 구멍을 내 주고 쫓는다고 하지요. 조선의 인구 절반이 도망노비로 전락해 가는 암울한 시대, 삶의 팍팍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해 도망가야 했던 그들이 숨어들 곳 하나는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