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주'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2.08.02 '각시탈' 주원, 못하는 게 없는 이 남자 키스도 잘하네 (4)
  2. 2012.07.19 각시탈: 소름끼치는 키쇼카이의 정체, 정한론은 현재진행형 (5)
  3. 2012.07.07 '각시탈' 담사리의 폭탄투척 계획, 역사의식 위해 용어는 고치자 (1)
  4. 2012.06.23 '각시탈' 살아있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의 정체와 그 무서운 음모 (5)
  5. 2012.06.15 '각시탈' 주원의 연기성장 보여준 오열과 통쾌한 폭풍싸대기 (8)
2012.08.02 11:53




담사리의 공개처형장에 나타난 각시탈, 온몸에 다이너마이트를 칭칭 감고 장렬한 산화로 조선인과 일본경찰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담사리 처형장에 백의를 입고 나타난 조선인들이 심금을 울렸지요. 조단장과 오동년때문에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울컥하게 했던 실체는 일제강점기 조선독립을 온몸으로 외쳤던 순국선열 애국투사들에 대한 감사함이었을 겁니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멈추지 않은 저항이 있었기에, 결국 승리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조선인의 희망이었던 각시탈의 산화는 삼천리 방방곡곡을 통곡의 울음바다로 만들었을 듯 합니다. 암울한 시대, 조선인들에게 각시탈은 위안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각시탈이 경성역에서 슌지의 총을 맞고, 스스로 자폭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백의'는 일제가 두려워 하는 조선인의 분노이며 항거였습니다. 3.1만세운동에 집결한 조선인들이 백의를 입고 거리에 나선 것과, 일제에 대항에 전국에서 일었던 의병들이 백의를 입었던 것에 일제는 일종의 백의 노이로제가 있었습니다. 경성역(현 서울역) 광장에 모인 조선인들이 백의를 입고 담사리의 처형장에 나타난 것으로, 조선인의 꺼지지 않을 저항의식을 온몸으로 보여준 시위였던 것이지요.
담사리와 함께 가겠다며 두루마기를 벗어제친 조단장을 필두로, 오동년(이경실), 득수로 이어지는 백의항의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은, 백의가 상징하는 조선독립에 대한 의지, 항일저항의식의 뜨거움때문이었을 겁니다. 슌지의 총탄을 맞은 오동년, 생사가 걱정되네요. 감칠맛나는 조연으로 서커스단에 생기를 불어놓은 이경실이었는데, 죽음으로 하차하면 서운할 듯합니다.
각시탈 이강토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그는 누구인가?
담사리의 처형장에 나타나 밧줄을 끊어준 각시탈, 다행히(?죄송) 강토는 아닌 듯 싶습니다. 주원과는 차이가 나는 하관과 목주름때문에 강토 대신 나타난 각시탈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요, 온몸에 다이너마이트를 감고 공개적으로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했지요.
강토 대신 나타난 각시탈은 적파동지와 함께 있던 독립군 동지인 듯 싶습니다. 비주얼이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엔젤클럽을 관두고 낙향해서 고기나 잡고 살겠다는 뽀글머리 종업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대역이라고 해도 너무 비주얼에 차이가 나는 것같아 가능성 1%, 아무래도 적파동지랑 함께 있던 독립투사였을 가능성이 더 커보이죠.
목단을 구출하다 부상당한 강토는 몸을 자유럽게 움직이기 힘든 상황입니다. 적파동지 등과 담사리를 구출할 계획을 세운 강토, 적파동지가 처형장에는 나타나지 말라고 목단을 통해 신신당부를 했지만, 기어이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각시탈을 썼던 강토였습니다. 목단의 아버지 담사리만은 꼭 구하고 싶었던 강토였기 때문입니다.
담사리가 그랬지요.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아 보이지만 세월이 흘러 바위는 모래알이 될 것이고, 그 모래를 병아리가 밟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독립군 대장 담사리가 앞으로도 조선독립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기에 강토는 꼭 구하고 싶었습니다. 강토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강토와 같은 생각을 했을 인물이 담사리 휘하에 있는 독립군 동지였을 듯합니다. 조선인들의 희망, 암울한 조선인들에게 횃불이 되고 있는 각시탈을 독립군 동지들도 반드시 살리고 싶어했겠지요. 각시탈의 생존은 일제에 대한 조선인들의 저항과 독립에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으니 말이죠.
상상해본 시나리오는 담사리 처형장에 나타난 각시탈을 제압해(이미 적파와 동지들은 목단을 통해 각시탈이 이강토라는 것도 알았으니), 탈을 빼앗아 쓰고 각시탈을 대신해 나타난 거겠지요. 폭발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적파동지와 강토가 협력해 담사리를 구출했을 것이고, 담사리와 떠나면서 적파동지가 강토에게 부상을 입혔을 듯도 하고요. 나무에 꽁꽁 묶어두고 떠나 강토가 경찰서에 출근하지 못했던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겠고요. 가짜 각시탈의 자폭으로 강토에 대한 슌지의 의심에서 당분간은 또 벗어날 수 있을 것같아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강토가 아직은 종로경철서에 남아 키쇼카이의 끔찍한 야욕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경성천도라니, 이런 후레 삐리리 자식들같으니라고!!!

못하는 게 없는 주원, 키스도 잘하네
목단이 강토가 각시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애정라인도 급물살을 타게 되었는데요, 강토와 목단이 애틋한 키스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었지요. 독립군 잡아먹은 식인귀, 왜놈 앞잡이 이강토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영이 도련님이었다는 사실에 목단은 주저앉았습니다. 아버지와 자신을 구해준 조선의 희망 각시탈이 도련님일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도련님이 왜놈 경찰이나 하고 있었다니 실망을 넘어 분노했던 목단이었습니다.
라라(채홍주)에게 잡혀간 목단을 구하러 온 각시탈, 처음으로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어서 도망가", 초조하게 기다리던 목단 앞에 각시탈을 태운 말이 나타났지요. 피투성이가 된 각시탈, 그의 손에 꼭 쥐고 있는 단도, 그리고 목단은 숨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벗긴 탈속의 얼굴, 각시탈이 이강토였다니...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제국경찰 이강토가 어떻게 각시탈일 수 있었는지,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의식을 잃고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목단의 단도, 드디어 만났습니다. 살아만 있으라고, 살아만 있으면 꼭 찾겠다고 약속하며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칼을 주었던 도련님을 말이죠.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말도, 각시탈이라는 것도 모르고 증오만 했다는 말도, 눈물이 되어 흘러내릴 뿐입니다.
각시탈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어가는 박기웅과 일본경찰과 각시탈을 오가며 두 개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주원의 열연을 보면서 흐뭇한 것은, 드라마를 통해 놀랄 정도로 연기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슌지의 숨겨진 본성이 나올 때마다 박기웅의 연기폭발에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박기웅이 슌지라는 캐릭터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잔인함을 폭발시키고 있다면, 내면적으로 더 단단하게 성장해 가면서도 부드러움을 더하고 있는 배우가 주원입니다.
강토라는 캐릭터를 완성해 가는 주원을 보면 소리없이 강하다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요즘들어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주원의 대사톤에 실린 감정의 굵기와 깊이입니다. 
각시탈을 쓰게 된 이유를 말해주는 장면에서는 가슴 속 깊은 응어리를 눈물 한 줄기로 쏟아냈지요. "그토록 잡고 싶어했던 각시탈이 알고 보니 내 형이었어. 형이 어머니를 죽인 켄지한테 복수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를 죽인 원수인 줄도 모르고 내가 켄지 편이 돼서 각시탈과 싸우다가 총으로 쏴버렸어. 처음엔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형이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이 탈을 썼는데, 설령 아버지의 원수를 다 갚는다고 해도 이 탈을 벗을 수 없을 것 같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 눈길 가는 곳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 눈물 한 줄기로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마저 누르는 성장한 강토의 모습을 확인하게 했지요.
형과 어머니,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각시탈을 썼던 강토, 이제 조선인을 위해 각시탈을 벗지 않겠다고 합니다.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더라도 힘겨운 길을 가려고 하는 강토와, 열 길 물속이라도 뜨거운 불구덩이라도 그 길에 함께 하겠다는 목단입니다.
주원에게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는 감미롭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는, 연기잘하는 기대주, 풋풋한 신인이라는 느낌이 강했지요. 1박2일에서는 성실하면서 귀여운 막내로 자리매김을 한 주원이지만, 처음으로 주원에게서 멜로를 캐릭터 이상으로 잘 소화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 장면이 목단과의 키스신이었습니다. 강토와 목단의 키스신은 설렘보다는 애틋함이, 뜨거움보다는 처연하리 만큼 애잔함이 느껴지더군요. 주원의 연기가 각시탈을 계기로 한층 성숙하고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키스신을 보면 대부분은 달달함을 느끼든지, 열정적인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데, 주원과 진세연의 키스신은 사랑과는 또 다른 감정이 전해졌는데요,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시탈이 로맨스 드라마는 아니지만 강토와 목단의 러브라인이 스토리의 중심축 하나이기에 그동안 기대했던 장면이 강토와 목단의 키스씬이었습니다. 각시탈을 쓴 상태에서 목단에게 이마키스를 해준 장면이 있기는 했지만, 탈을 벗고 강토와 목단으로 만났을때 주원이 어떤 감정선을 보여줄지가 기대되었거든요. 주원의 키스씬 해석은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주원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키스를 했는데, 목단에 대한 사랑의 순수함, 두 사람이 겪고 있는 시대적 아픔,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현실을 키스신에 다 담아내더군요. 화면에 두 사람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낸 영상미도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습니다.

 

대개가 남자배우가 키스신을  주도하다보니 주원을 통해 전달되는 분위기를 눈여겨 봤는데요, 주원은 사랑한다는 열렬한 고백이나 확인과는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더군요. 강토와 목단의 눈물은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조선의 눈물이 함께 흐르고 있었지요. 강토와 목단의 키스신은 남녀의 사랑 이상의 복잡한 감정선들이 전해졌습니다. 각시탈인줄도 모르고 증오의 말을 쏟아부었던 목단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했고, 목단과 자신을 위로하는 키스이기도 했고, 목단에게 그동안 말해주지 못해 답답했던 각시탈의 정체에 대한 홀가분함이기도 했고 말이죠. 
주원은 그런 절절하고 애틋한 모든 감정에 감미로움까지 더해 전하더군요. 주원과 진세연의 키스신은 전쟁중에도 사랑은 피어나듯이, 절박함 속의 감미로움을 잘 표현한 장면이었습니다. 진한 키스에서는 열렬함은 잘 표현되지만 놓칠 수 있는 감정선이 여운이 길게 남는 감미로움인데, 주원의 키스신에서는 오랜만에 그런 감정을 느껴봤답니다ㅎ. 소리없이 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배우 주원, 목단과의 키스신은 주원의 필모그라피에 감미로운 남자라는 것을 추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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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9 14:29




난데없이 친일논란에 휩싸였던 각시탈, 저는 개인적으로 참 통쾌했던 장면이었습니다. 기미가요는 드라마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리랑을 부를 수도 없잖아요. 완창을 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죠.
그것보다는 욱일승천기를 찢지 않은 각시탈에게 불만이 나오기도 했는데, 저는 다른 시각으로 봤습니다. 일한합방 축하 현수막을 칼로 베어버린 장면은, 욱일승천기를 벤 것 이상의 큰 의미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욱일승천기를 찢는 것보다 합방축하 현수막을 찢는 장면으로, 합방을 부정한다는 항일정신을 더 상징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베일에 싸여있던 키쇼카이의 목적이 드러나면서는 더더욱이나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와닿기도 했고요.
목단을 피신시키려는 강토에게 총을 겨누는 슌지, "역시 네놈이었어. 반갑다, 각시탈". 강토를 의심해 온 슌지가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만 강토였지요. 그러나 강토가 각시탈이라고 밝히지는 않겠지요. 그럴듯한 변명으로 이번에도 빠져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슌지 앞에서도 탈을 벗을 강토지만, 슌지는 실수를 했습니다. 각시탈은 탈을 벗고 나타난 적이 없었죠. 각시탈의 단벌의상인 백의를 입고 말입니다. 백의착용금지령을 내린 일제, 이시용을 보니 뼈를 오득오득 소리가 나게 씹어주고 싶더군요.
사실 백의금지를 내린 것이 일제강점기때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숙종때도 청의를 입으라는 명이 내려지기도 했고, 백의에 대한 분분한 의견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오행설에 입각해 청색옷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고, 흰색이 제례때 입는 소복의 색이다 보니 평상복은 색깔옷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기도 했고요.
어디선가 읽었는데, 백의민족은 단군의 자손을 뜻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더군요. 단군의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라는 해석이었는데, 여튼 각시탈에서도 백의금지령이 내려지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내린 백의금지령은 그 이전에 내려졌던 것과는 의도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빨래하기가 힘들고 위생에 문제가 있다는 예시를 하기도 했지만, 사실 따지고 들어가보면 일제가 백의에 일종의 노이로제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한말 단발령이 내려지자 각지에서 의병들이 들고 일어났죠. 그때 의병들이 흰옷을 입고 집결을 했다고 합니다. 백의는 일제에 대한 저항, 항거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키쇼카이의 목적이 드디어 밝혀졌지요. 지난 글에 키쇼카이의 정체에 대한 유추를 했는데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돋더군요 (2012/06/23 '각시탈' 살아있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의 정체와 그 무서운 음모). 메이지 유신이후 대두된 정한론자들이 키쇼카이였더군요. 명성황후를 시해한 극우세력이기도 합니다. 1870년대부터 제기되었던 정한론은 말그대로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을 조선이라고도 하고, 한국이라고도 했습니다. 소름끼치게 무서운 야심은 그들의 경성천도 목적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글에서 일본 역사와 함께 언급을 하기는 했지만, 경성천도설은 실제로 제기되었던 주장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무서운 것은 이들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정한론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당시 두 개의 정치세력으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조슈 번 지역 출신들의 조슈파(드라마에서는 콘노국장과 총독이 이 세력에 해당되죠)와 지방 사무라이로 중앙에서 축출된 강경파입니다(우에노 키쇼카이 회장과 기무라 타로 같은 사무라이)였습니다.
강경파가 주장한 것이 정한론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이 이뤄진 당시에는 내실부터 다지자는 부국강병론자들인 조슈파와 대립해, 지방으로 내려간 정한론자들이 난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이게 유명한 서남의 난입니다. 이후 이들 강경파는 조슈파를 견제하기 정치세력으로 결집하고, 중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는데요, 조슈파와 강경파는 조금씩 타협을 해가기 시작했죠. 부국강병을 이루고 해외식민지를 무력으로 넓혀가야 한다는 군국주의로 합일점을 찾은 것이죠. 이때부터 정한론은 일본의 정치이념이 됩니다. 

지난 글에서 키쇼카이의 정체에 대해 추측을 해봤을 뿐인데 너무 비슷해서, 경성천도설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키쇼카이 회장 우에노(전국환)은 1870년대부터 주장된 사무라이 강경파들의 정한론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입니다. 무서우 것은 그의 입에서 경성천도 계획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섬나라 일분인들에게는 대륙진출은 꿈이었습니다. 조선은 그들의 제국주의 꿈을 향한, 대륙으로 들어서는 첫관문이었죠. 1930년대는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기치 아래 일제가 군국주의를 확장하는 절정기였습니다. 일제의 제국주의 야욕은 경성천도 계획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요.
일본의 경성천도설은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자 도요카와 젠요란 자가 주장했던 것입니다. 도요카와 젠요는 일본 수도 도쿄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조선의 경성(서울)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경성천도와 관련, 구체적으로 800만명의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하게 하고, 조선인 800만명을 일본으로 이주시켜 조선을 영구적으로 종속시키려는 계획을 짰던 인물입니다. 대동아 공영권에 대한 야심이면서, 지진, 해일 등으로 불안한 일본의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기 까지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900 여회에 걸쳐 한반도를 침략해 온 일본, 끈질기고 지속적으로 침략해 온 이유는 내륙진출에 대한 침략근성때문이었습니다. 키쇼카이의 음모처럼 말이죠. 이들의 목표는 조선을 완전하게 일본화시켜 조선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조선말, 글, 민족성, 의복, 성씨와 이름에 이르기까지 모두 없애버리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것이죠.
800만명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키고자 했던 경성천도 계획은 도요카와 젠요라는 미친놈의 망상, 키쇼카이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의 정체였던 것입니다. 키쇼카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망령조직이며,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일본군국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그 속에 조선을 정벌하자고 했던 정한론이 뿌리깊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뿌리깊은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은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잖습니까? 애국가나 아리랑을 부르면 가슴 밑바닥에서 차오르는 감정, 그것을 우리는 우리민족의 정서라고도 합니다. 한민족, 백의민족으로 면면히 내려온, 역사를 살면서, 배우면서, 거치면서, 몸으로 마음으로 정신으로 습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군국주의도 뿌리에서 뿌리로 이어지고 있는 그네들의 정서입니다. 그 무서운 정서의 바탕에 정한론이 깔려있다는 것, 결코 좌시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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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7 12:44




일제강점기 이름없는 영웅 각시탈, 2대 각시탈 강토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희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지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주원과 박기웅의 좋은 연기가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는데요,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적이 되어 총과 칼을 겨눠야 하는 현실,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불러보지도 못하는 각시탈의 애환을 잘 그리고 있지요.
합방기념일에 폭탄을 투척하려는 담사리의 계획을 돕기로 결심한 강토, 목단에게 채찍질을 하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못하는 강토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옵니다. 탈을 벗은 순간 왜놈 앞잡이, 왜놈의 개로 목단의 서슬퍼런 욕을 들어가면서도 각시탈임을 밝힐 수 없는 것은, 그의 어깨에 짊어진 큰 일 때문입니다.
괴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슌지, 누구보다 슌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강토였습니다. 형 강산이 각시탈인줄도 모르고 각시탈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자신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형 강산이 괴물이 되어가는 강토를 보면서 얼마나 홀로 괴로워했을 지, 강토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그날 형도 그랬겠지요.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형의 등에 기대 울던 강토의 고백을 형도 같은 심정으로 들었겠지요. 자신을 잡기 위해 동생이 조선사람들이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일제의 개가 되어가는 모습을 피눈물을 흘리며 볼 수밖에 없었겠지요. 각시탈만 잡으면 학교 선생님으로 돌아가겠다는 슌지, 강토는 알고 있습니다. 슌지가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 것임을 말이지요. 슌지가 총을 겨누게 될 각시탈이 형제와도 같았던 친구 강토였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강토가 슌지의 가슴에 총을 쏠 날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물론 저야 이런 장면을 간절히 바라지만요). 
클럽에서 강토를 죽이려고 했던 애국청년단 박동지, 채찍을 들고 강심제 주사를 찔러가며 박동지를 고문하는 슌지는 짐승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강토는 이제 고문실이 무섭습니다. 과거 독립운동가를 잡아 고문했던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지요.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은 박동지를 구출해 나가려던 강토, 그러나 슌지와 맞딱뜨리게 되었지요. 각시탈을 구하기 위해 대신 총을 맞는 박동지, 죽어가면서 건넨 신분증으로 담사리와 만날 수 있었지요. 
합방기념일에 종로서 무기고에서 폭탄을 탈취해 거사를 치르려는 담사리, 우체부로 변장해 종로서를 유유히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타로와 마주한 장면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을 때, 정말 조마조마했거든요.
거사가 끝나면 아버지를 따라 경성을 떠나기로 한 목단, 경성을 떠나는 것이 각시탈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목단을 잡기 위해 출동한 슌지는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에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지요. "넌 왜놈일 뿐이야". 각사탈이 목단의 첫사랑 도련님이라는 것을 확신한 슌지, 각시탈을 잡아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습니다. 형을 죽이고 첫사랑 목단마저 빼앗아간 각시탈이니 말입니다.
목단을 구한 강토, 품에 안겨오는 분이를 불러보지도 못하고 각시탈을 쓰고 하염없이 답답한 눈물만 흘리는 강토입니다. "(분이야. 내가 영이야) 나 좀 똑바로 쳐다봐, 나 모르겠어?", 각시탈을 써야 도련님 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강토, 그 말 못하는 속이 얼마나 아프고 답답할지, 탈 속에서 강토가 얼마나 더 오래 울어야 하는지, 당장이라도 탈을 벗고 말을 해줬으면 싶은데, 아직은 때가 아니겠지요. 각시탈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목단이 더 위험해질테니까요. 강토의 슬픔은 깊어만 갑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안타까운 게 주원입니다. 탈을 쓰고 있지 않은 주원의 표정연기가 날로 깊어지고 있는데, 슌지와 대치하면서 느낄 갈등, 목단을 바라보는 애틋한 감정들을 탈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까울 지경이랍니다. 각시탈의 눈 부위라도 좀 크게 파줬으면 싶더라고요. 주원의 좋은 감정연기를 다 감상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워서 말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더 아쉬운 점은, 합방이라는 단어입니다.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한일합방, 일제시대라는 표현을 생각없이 사용했는데요, 가끔 그 습관이 나와 글에 실수를 할때는 독자분들이 감사하게도 지적을 해주시기도 합니다.
물론 일한합방이라는 용어는 드라마속 일본놈들은 사용하는 게 맞겠지요. 그런데 담사리를 비롯, 독립투사들의 입에서 한일합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조금 고쳤으면 싶더군요. 물론 고증적으로 틀린 단어는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나 학생들을 위해서 합방이라는 단어대신, 경술국치일 혹은 국치일이라는 용어를 일부러라도 사용했으면 싶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내선일체, 황국신민이라는 단어를 보면 들어가서 찢어버리고 싶답니다. 글을 써내려 가면서도 합방기념일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꺼려지고 싫은데, 합방이라는 단어는 우리 애국투사들만이라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드라마에서 합방일이라고 나오는 날은 1910년 8월 29일을 말합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데라우치를 총독으로 보내, 조선경찰을 해산시키고 일본헌병이 조선을 감시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매국노 이완용에게 대한제국병합 조약 문서의 도장을 받으라는 지시를 합니다. '대한제국 황제는 조선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천황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치욕적인 합병문서에 순종황제는 끝까지 거부를 했고, 뼛가루로 내도 시원치 않을 이완용이 조선황제를 대신하는 위임장을 강제로 받아 도장을 찍었죠. 그리고 조선총독부 데라우치 총독이 한일병합 조약을 발표하게 되었지요. 그 날이 1910년 8월 29일입니다. 대한제국(조선)이 사라진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방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그 날이 바로 경술국치일입니다.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오래전에 기사에서 본 사진이 기억나서 사진자료를 함께 올렸습니다. 왕의 집무실인 경복궁의 근정전에 일장기에 걸렸던 날입니다. 눈물나게 슬픈 사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담사리나 독립운동하는 분들만이라도 합방일을 국치일로 표현해 주었으면 합니다. 경술국치일을 단순한 두 나라의 합방으로 보느냐, 나라를 잃은 날로 보느냐 하는 것은, 역사의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일합방이 되었든, 일한합방이 되었든, 일본이 한국을 합병했다는 의미는 변하지 않습니다. 한국을 앞에 둔다고 우리가 주체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다 라는 의미밖에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한일합방은 굴욕적인 불평등 강제조약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었는데 그게 무슨 조약입니까? 내지와 반도라는 구분으로 조선이 일본의 한 지방이라는 의미가 되어버렸는데 말입니다. 합방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제국주의 야망에서 나온 용어일 뿐, 우리에게는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치욕의 날입니다. 순종황제도 끝까지 옥새를 찍기를 거부하자 일제가 조선을 강체로 탈취한 사건, 드라마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합방일이라고 표현은 하고 있지만, 국치일이라는 걸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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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3 10:03




박선영 SBS 아나운서가 8시 뉴스 클로징에서 개념멘트로 일본 우익단체에 일침을 날려 박수를 받고 있는데요, 당연한 말인데도 이런 멘트를 해아 하는 현실이 울분을 자아내게 합니다. 뉴스를 보지는 못했지만 기사에 의하면 박선영 아나운서는, "위안부 소녀상 옆에 막대를 꽂으면서까지 일본이 내세우려는 다케시마라는 섬은 지구 어디에도 없습니다. 독도가 있을 뿐이죠. 그런데 일본은 이 다케시마를 하루 아침에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겐 분노 못지 않게, 역사를 지키고 이어나갈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고 하는군요. 박선영 아나운서의 속시원한 일갈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박선영 아나운서의 개념멘트는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는 대조적이군요.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케시마를 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라고 했던 발언의 진위가 뭔지 궁금해서 말이죠.

드라마 각시탈과 상관없는 박선영 아나운서의 멘트를 인용한 것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아직도 살아있는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파시즘이, 드라마 각시탈에서 의문의 비밀단체 키쇼카이와도 관련이 있는 연장선상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찢어버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일장기나 욱일승천기가 아니에요. 황국신민(皇國臣民)과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글귀입니다. 일제의 군국주의 파시즘의 대명사가 그 4글자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도 내지인과 반도인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지요. 내(內)는 일본을 선(鮮)은 조선을 가르키죠.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뜻으로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중국 침략에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내세운 민족말살정책이었습니다.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일본은 조선에 대한 강압적인 정책대신, 회유정책으로 변환했죠. 일명 문화정책으로, 채찍 대신 당근을 쓴 것이죠. 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지원하고, 조선인을 요직에 등용하기도 하는 등 표면적으로 차별을 줄이는 것으로 말이죠. 조선과 일본은 하나이며, 천황의 신민이라는 황국신민화 정책이 그것입니다.
3.1운동으로 조선의 저항에 뜨거운 맛을 본 일제가 식민지 정책을 변환한 것도 이유이지만, 그보다는 더 무서운 이유가 숨어 있었습니다. 내선일체, 황국신민이라는 기치아래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간악한 음모가 그것입니다. 반도인과 내지인은 하나라는 말로 그들의 전쟁에 조선인을 총알받이로 징용하려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기치를 걸고,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에 조선인을 징병하고, 학도병으로 징집하고, 종군위안부로 처녀들을 전쟁터로 끌고 간, 민족 말살정책의 대명사가 바로 이 황국신민화, 내선일체였던 겁니다. 그래서 드라마인데도 내선일체라는 글귀만 보이면, 브라운관으로 들어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지구 역사상 가장 잔혹한 비극이 나찌의 유대인 학살과 일제의 만행입니다. 난징대학살과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군국주의 파시즘 광기의 끔찍한 한 예일 뿐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주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의 현재에도 살아있는 군국주의 침략근성입니다. 독도는 그들의 침략근성이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광기입니다. 아, 열받네요. 오늘 글은 좀 과격하고 거칠어질 듯하군요.
중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아시아 정복의 전초기지로 삼았죠. 여기에는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기 힘들었던 독립군들이 만주로 대거 이동해 독립운동을 했던 이유와도 상관이 있습니다. 만주국은 독립군을 잡는 활동으로 이어졌으니까 말입니다. 만주국하니 생각나는 인물이 있군요. 대구소학교 교사를 하던 박정희가 교사를 때려치고, 혈서로 천황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만주군 장교로 활동해 명백한 친일의 행적을 남겼으니 말입니다. 출신성분은 다르지만 각시탈 강토와 칼을 겨누게 될 기무라 슌지와 비슷한 부분이 많군요. 소학교 출신의 일본경찰이라...
아무튼 해방후 반민특위가 흐지부지되고 6.25가 발발하자, 만주군관학교 수석으로 졸업한 박정희의 경력이 우대받으며 인생 대역전(?)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으니, 박정희는 6.25를 일으킨 김일성이 살려준 셈이기도 하군요. 역사는 이렇게 아이러니한 부분이 많습니다. 쩝.

 

키쇼카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하는데요, 조선이 쇄국으로 문호를 닫고 있던 시기,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분, 박정희가 일본을 얼마나 흠모했으면, 유신이라는 말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지...
일본이 미개한 조선을 개화문명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 메이지 유신의 성공에 기인합니다. 1867년 15세의 나이로 천황에 즉위한 메이지를 중심으로 일본은 강력한 왕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죠. 이 과정에서 중앙권력에서 도태된 사무라이도 있었고, 반발세력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강경파였던 사무라이들은 정한론을 주장했다 중앙권력에서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각시탈이 응징을 하고 있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에 대한 추리가 가능합니다. 키쇼카이 수장 우에노(전국환)는 정한론자로 사무라이들을 규합해 비밀조직을 결성했고, 사무라이 출신 기무라 타로(천호진)도 피의 맹세를 한 사무라이 출신 중의 한 사람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조선총독부 총독과 고향선후배 사이인 콘노 곤지(김응수)와 기무라 타로(천호진)가 앙숙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 내에서도 권력암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키쇼카이는 극우 성향의 군국주의 추앙자들인듯 합니다. 우에노 앞에서 할복을 했던 조직원의 모습도 나왔던 것처럼, 일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무라이 정신을 잇고 있는 극우단체지요. 군국주의가 위험한 것은 국민을 군인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황국신민화라는 말에는 조선인을 그들의 전쟁을 위한 군인으로 만들려는 군국주의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고요.
섬나라 일본에게 중국, 시베리아의 광활한 영토는 꿈이었습니다. 조선말 청일전쟁을 빌미로 조선에게 요구했던 것이 청국을 치려고 하니 길을 내달라는 것이었죠. 조선을 합방한 이후 식민지가 된 조선은 뻥뻥 뚫린 길이나 다름없었죠. 철도개설도 중국과의 전쟁을 위한 물자, 병력 수송용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각시탈의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 후반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시기는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기치 아래 일제가 군국주의를 확장하는 절정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내에서는 흥미로운 사건들도 꽤 있었습니다. 피의 형제단이라 불리는 조직에 의해 일본 수상 2명이 연거푸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는데, 만주침략에 비판을 했던 수상을 군부에서 암살한 사건입니다. 1936년에는 일본역사에서는 유명한 2.26 군사쿠테타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천황의 강력한 통치를 주장하는 쿠테타였음에도, 천황이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 2일천하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군부의 힘은 더 막강해지고, 극우세력이 공고해지는 등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죠. 피의 형제단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사무라이 극우단체로, 각시탈에 등장하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와 비슷해 보이더군요.
메이지 유신이후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일본의 국신이었습니다. 일본을 지탱하는 구심점으로 일본=천황이라는 종교적 맹신은 그들 특유의 민족주의를 만들고, 천황에 대한 충성이 곧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극우적 충성관을 공고히 했다는 점입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천황의 항복을 받았으면서도, 전범으로서 일본 천황 쇼와(昭和)는 재판도 받지 않았죠. 극우파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의 신사참배를 군국주의의 부활로 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피의 형제단이나 2.26사건을 주도한 청년 장교들은, 공통적으로 사무라이 무사정신으로 무장된 극우단체라는 점에서 키쇼카이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는 할복충성심을 보이는 인물들입니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보면 그 맹신적인 충성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고 말이죠.
단적인 예로 1945년 오키나와의 참극을 들 수 있습니다.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본군의 저항을 받아야 했죠. 일본군은 부족한 병력을 보총하기 위해 방위대를 소집했고, 오키나와 주인 들 중 노인과 아이들을 제외한 10만여명의 민간인들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두 달여가 계속된 오키나와 전투는 결국 일본의 패배로 끝났지만, 그들의 완강한 저항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미국이었습니다. 사령관을 비롯 전 부대원이 자결해 버린 그들의 정신세계, 군인정신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지요. 그들의 자결저항에 기겁한 미국이 원자폭탄이라는 지구상 최대 비극무기를 사용했던 것도 그때문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천황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준 단적인 예가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오노다의 30년 전쟁입니다. 오노다는 22세였던 1944년에 필리핀에 있는 미군기지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났다가 30년 만인 1974년에서야 투항하고 일본으로 돌아감으로써, 30년동안 태평양 전쟁을 치룬 군인입니다. 

1974년 필리핀의 정글에 나타난 52세의 오노다, 아직도 TV를 통해 본 장면이 눈에 선하군요. 홀로 30년을 전쟁을 치르면서 그는 가족과 친구들이 전쟁이 끝났음을 알려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출격명령을 내린 직속상관에게서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혀, 더 놀라게 했습니다. "죽지말고 데리러 올 때까지 버티라"는 상관의 명령만을 믿고, 가족과 친구의 모습도 멀리서 보면서도 만나지 않았던 그는, 상관이 작성한 투항명령서를 받고서야 패전을 인정하고 정글을 나왔습니다. 일본은 그를 영웅으로 환영했지만, 세계인들은 일본 군국주의 광신도에게 경악했지요. 주군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일본인 특유의 군부 파시즘의 한 예가 오노다입니다.
치떨리는 일제의 한민족말살 정책은 경성천도 계획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삐리리 잡종개자식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 계속적으로 그들의 군국주의 망령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독도문제도 마찬가지고요. 혹시 일본의 경성천도설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책 리뷰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자 도요카와 젠요란 자가 ‘경성천도론’이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도요카와 젠요는 일본 수도 도쿄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조선의 경성(서울)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경성천도와 관련, 구체적으로 800만명의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하게 하고, 조선인 800만명을 일본으로 이주시켜 조선을 영구적으로 종속시키려는 계획을 짰던 인물입니다. 대동아 공영권에 대한 야심이면서, 지진, 해일 등으로 불안한 일본의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기 까지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조선을 일본화시키려는 조선말살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치가 떨려서 이런 놈은 부관참시라도 하고 싶군요.

물론 계획대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일본의 수도가 경성(서울)으로 되고, 800명도 아닌, 800만명의 일본인이 조선으로 이주했다면, 아이고 머리가 아찔해 옵니다. 일본인들에게 조선은 마음의 고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미친 소리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남산소학교 선생이었던 기무라 슌지도 비슷한 말을 했었죠. 조선인에게 우호적인 기무라 슌지의 조선사랑은 위험하기 짝이없는 일본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대변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유모를 어머니처럼 여기고 첫사랑 목단에 대한 순애보로 슌지라는 인물을 착하게 그렸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선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와 일맥상통한 축적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것이 900 여회입니다. 왜 그렇게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침략을 해왔겠습니까? 조선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고 싶은 땅, 뭍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지지 못하는 땅, 그림의 떡 조선은 오랜 침략의 역사를 통해 알게 모르게 희망봉이 되어왔던 것이죠.
각시탈에서 키쇼카이 조직이 상징하는 것도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키쇼카이는 동경 본부를 비롯 경성(서울)지부를 설치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단체로, 구체적으로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일본내에서는 정치적 패권싸움을 하는, 일본제국주의의 극우파 조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조선을 완전하게 일본화시켜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조선말, 조선의 민족혼, 조선의 글, 조선의 땅까지 빼앗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것이죠. 
경성천도, 800만명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키고자 했던 계획은 도요카와 젠요라는 한 미친놈의 망상이 아니라, 키쇼카이로 상징되는 극우파 비밀조직이 그 배후였음도 짐작하게 합니다. 2대 각시탈을 쓰고 얼굴없는 영웅 각시탈의 길을 선택한 강토, 그의 복수를 형과 어머니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라고 보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키쇼카이는 5쳔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조선을 한 국가로서도, 민족으로서도 말살해 버리려는 조직이기 때문이죠.
비록 드라마속 비밀단체이지만 키쇼카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망령조직이며, 오늘의 우리에게 역사는 반복될 수 있음을 환기시켜 줍니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일본의 신군국주의 망령에 감정적인 분노 못지않게, 역사를 지키고 이어나갈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박선영 아나운서의 멘트처럼, 오늘 우리들이 드라마속 강산과 강토처럼 각시탈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이 마음의 고향같다는 망발을 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가까운 이웃임에도 먼나라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세습화된 사무라이 정신이 신군국주의 침략의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친구로 오는 일본인은 환영하지만, 여전히 버리지 못한 제국주의 침략근성은 사양합니다. 한마디로 '사요나라, 꺼져!'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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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5 09:39




만주로 장사를 떠났다, 계집에게 빠져 가솔들을 버리고 가버렸다, 노름에 빠져 전답을 팔아 챙겨 가버렸다 등등 독립운동을 하며 몸을 숨겨야 했던 우국지사들은 욕된 오명도 무릅써야 했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그나마 남아있는 가족들을 지키고, 일제의 감시를 피하는 한 방법이었으니까요.
독립운동가의 집안이 조선인들에게 추앙을 받기만 했을까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감시망은 두터워졌고, 이웃조차도 눈에 띄게 가까이 지내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불똥이 튀길까 두려워서 였죠. 국내에 남아 연락책이 되기도 하고, 군자금을 전달하기도 하면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도 비참하게 살았던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신분이 들통나서는 안되는 일이기에 말이죠. 각시탈처럼...
강산이 각시탈임을 숨기기 위해 목숨으로 비밀을 지킨 어머니, 그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이강산이 조선 하늘을 울립니다. 바닥이 차다며 죽은 어머니에게 일어나라고, 넋나간 사람마냥 혼잣말을 하며 우는 강산의 눈물에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그런데 연이은 비극으로 눈물이 마를 틈을 주지 않았지요. 형이 각시탈인 줄도 모르고 형의 가슴에 총을 쏴버린 이강토, 그것도 어머니를 죽인 기무라 켄지에게 복수를 하고 있었던 형인데 말입니다. 이토록 슬픈 비극이 있을까 싶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자신을 책망하며 분노하며 뛰쳐나간 강산, 강산의 쇠퉁소를 막은 이는 안타깝게도 동생 강토의 총이었습니다. 총을 맞은 강산은 아버지 이선의 호위무사였던 백건의 도움으로 집으로 갈 수 있었지요. 어머니의 시신을 두고 몸을 피할 수 없었던 강산이었기에 말이죠. 강산의 핏자국을 따라 각시탈을 쫓아온 이강토, 믿기지 않은 모습에 경악합니다. 바보천치 형이 각시탈이었다니, 그 형을 자신의 손으로 쐈다니, 악몽입니다. 얼른 깨어나고 싶은 악몽입니다.
"미안하다. 내가 다 해결하고 싶었는데... 너한테 짐주지 않고 내가 다 해결하고 싶었는데...", 꿈이 아니었습니다. 악몽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강토 잘생겼네. 내동생 우리 영이 보고 싶어서 어쩌지...", 그게 형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어릴 적 강토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는 형, 예전 다정했던 그 모습입니다.
형이 진짜로 죽었나 봅니다. 어머니를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형이 죽었나 보다고 소리쳐도 어머니가 나오지 않습니다. 방으로 뛰쳐들어간 강토, 어머니가 고이 잠든 모습을 봅니다. 형이 죽었다는데도 잠만 자고 있는 어머니입니다. 일어나라고 이불을 걷었는데 어머니 저고리에 피가 흥건합니다.
오열하는 주원, 각시탈 형제들 신현준과 주원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주원의 폭풍오열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이 남자들 연기를 어쩜 이리도 잘하는지, 두 남자가 해도해도 너무 하네요.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사실적인 오열연기를 하다니 말입니다.
신현준과 주원의 폭풍오열 공통점은, 무장해제였습니다. 연기가 아니라 스토리의 캐릭터와 일치되어 온몸으로 슬픔을 토해내는 것이었죠. 그 감정폭발은 고스란히 스토리가 되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고, 가족을 잃은 망연자실함은 카메라 앵글을 넘어 흘러넘치게 합니다. 신현준과 주원의 오열은 강한 화력에 끓어 넘치는 죽처럼, 슬픔이 끓어 넘치는 것을 느끼게 하더군요.
이강산과 이강토의 비극을 정점으로 찍은 비극은 아이러니한 서글픔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형을 잃은 강토의 슬픔에, 서글픔으로 마감을 해버리더군요. 각시탈이 뿌려준 돈을 받아 기쁜 시장사람들, 가난한 조선인들에게 각시탈은 희망을 상징하는 구세주였습니다. "각시탈을 위하여"라며 건배를 하는 그 시각, 각시탈 이강산은 숨을 거두고 있었지요. 아무도 모르게 말입니다. 조선인들에게 이름자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각시탈 얼굴없는 영웅, 그 슬픈 운명을 혼자 짊어진채 말입니다.
각시탈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이강토의 집에 불을 질러버린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왜놈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인들을 핍박하는 이강토에 대한 복수를 통해, 각시탈에게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들이 환호하는 얼굴없는 영웅, 이름없는 애국지사 각시탈이 마당에 누워 숨져있는 것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어머니의 시신과 각시탈 강산이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은 시대의 비극을 극대화한, 아이러니한 서글픔, 가슴 먹먹한 서글픔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형이 불에 타는 것을 울며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강토, 백건을 통해 강산의 모든 것을 듣게 되었지요. 아버지의 원수, 반역의 배신자들을 처단해 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아버지의 원수는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관계만이 아니기에, 한 집안의 복수 서사극과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기무라 켄지에게 복수를 하러 간 강토는 아직은 제2의 각시탈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죽인 것에 불과했으니까요.

무차별 난타를 하는 강토때문에 환호성을 질렀네요. 기무라 켄지를 북어패듯이 패주는데, 얼마나 통쾌하고 짜릿한지 말입니다. 탈속에서 드러나는 강토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지요. 강토의 폭풍싸대기를 맞고 일그러지는 기무라 켄지(박주형)를 보니 어찌나 시원한지, 간만에 시원한 활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두 손가락으로 켄지의 목줄기를 따버리는데, 피를 토하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놈 안죽고 살아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것같아서 말이죠.
목단이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에 경찰서로 달려온 슌지와 2대 각시탈이 될 강토가 마주치면서, 각시탈의 이야기 2부로 접어들었는데요, 목단을 사이에 둔 강토와 슌지의 연정과 그들의 우정이 어떤 형태로 시대의 비극과 마주하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1대 각시탈이었던 신현준이 죽음으로 하차를 한 것이 아쉽네요. 바보연기와 각시탈을 오가며 좋은 연기를 보여준 신현준, 강토와의 마지막 대화가 아직도 귀에 맴도네요. "내 동생, 우리 영이 보고 싶어 어쩌지...", 강산은 죽어가면서 강토에게 자신의 뜻을 이어달라거나, 거창하게 나라를 되찾으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을 떠나는 형의 마음만 전하고 갔지요. 강토가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고 있던 일도, 각시탈이라는 정체도 숨겼던 것처럼 말이죠.
강토는 그런 형이 더 원망스럽고 그립습니다. 차라리 대신 마무리를 지어달라는 유언이라도 했더라면, 강토는 싫다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형은 아무 짐도 지워주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형을 쏴버린 자신을 어떻게 용서하라고, 어머니를 죽게 하고 형제를 비극으로 몬 각시탈만을 남겨둔채 말입니다.
어머니를 죽인 켄지를 각시탈을 쓰고 형과 자신의 이름으로 복수했지만, 강토가 형 강산에 이어 각시탈을 쓸 지는 아직 모릅니다. 강토가 각시탈을 써야 하는 이유를 이제는 강토 스스로가 찾아야 합니다. 형과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각시탈, 그것이 힘없는 조선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일본경찰이 아닌, 조선인의 눈으로 보게 되는 날 말입니다.

주원의 연기가 물만난 고기처럼 살아나고 있어 각시탈의 재미를 한층 살려주고 있는데요, 마준이로 첫인사를 나눈지가 얼마되지 않았는데, 대사의 어색함이나 표정의 강약을 조절하는 연기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입니다. 켄지를 두드려 패줄때, 얼마나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들부들 떨리고, 탈 속의 눈이 활활 타오르는 듯 하더군요. 탈을 벗기고 그 표정을 보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처음 주연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주연으로서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미안할 정도의 연기력에 놀랐습니다. 배역이 연기를 성장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연기력이 배역을 살리는 경우도 있지요. 각시탈은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일본경찰 이강토는 비열하고 잔인할 정도의 차가움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신현준이 각시탈과 바보로 1인2역을 했다면, 주원은 각시탈과 왜놈앞잡이 순사로 1인2역을 하는 캐릭터인데, 액션신이나 목단과의 감정선, 그리고 일본경찰로서의 냉혈한 모습까지 흠잡을 수 없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서, 이강토라는 캐릭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주원이 혼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드라마 속에서도 보인다는 점입니다. 열심히 찍는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죠. 캐릭터에 몰입하고 열심히 한다는 것은 연기자에게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자세입니다. 형의 정체와 죽음 앞에 망연자실 충격에 빠지는 모습이나 어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모습은, 그 캐릭터가 되지 않고서는 그런 격정적인 감정을 폭발하기가 힘들죠. 마치 어미잃은 짐승의 울부짖음을 보는 듯했습니다.
지난회 신현준이 어머니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장면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주원의 오열도 그러하더군요. 연기를 하는 배우의 표정이 아니라, 극도의 슬픔 앞에 사람에게서 나오는 원초적인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듯한 느낌말입니다. 드라마 한 신에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연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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