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약속 결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2.21 '천일의 약속' 빵터진 수애의 발차기와 수애 죽음 해피엔딩인 이유 (29)
  2. 2011.12.20 '천일의 약속' 수애의 사랑과 모성애, 고상한 치매의 비호감? (14)
  3. 2011.12.14 '천일의 약속' 온 몸으로 운 김래원의 오열과 수애의 자살가능성 (4)
2011.12.21 08:13




쪽대본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 마지막회를 일찌감치 탈고하고 얼음주머니를 배에 대고 있는 심정으로 천일의 약속을 손에서 떠나 보냈다는데, 저는 앓던 이가 쏙 빠진 것같은 후련한 마음입니다. 마지막회는 드라마의 주제가 정리되는 가장 중요한 회이기에 단단히 마음먹고 지켜봤지만, 눈물보다는 수애의 발차기에 한 번 웃고, 뒷통수 얻어맞은 얼얼한 기분입니다.
쪽대본처럼 부산스럽게 흘러버린 마지막회는 수애의 치매과정을 고속으로 필름을 돌리듯 정신없이 보여주기에 바빴고, 바쁘게 바뀌는 화면을 따라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시청자는 기저귀를 차려고 낑낑대던 수애를 안고 우는 지형과 함께 잠시 울다가, 느닷없이 나와버린 공동묘지 장면에서 허걱하고, 정신수습할 사이도 없이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엔딩자막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네요.

빵터진 수애의 발차기
드라마가 끝나고 들었던 생각을 한줄요약을 하면, 배우들이 작품 살리느라 고생많았네 정도? 한줄보태기를 한다면, 서연이라는 치매환자는 공주처럼 살다간 행복한(?) 치매환자라는 것, 또 한줄을 더 보탠다면 '혹이라도 나에게도 그 병이 온다면 저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혹은 나는 지형이처럼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리고 굳이 더 한마디를 하자면, 치매보험에 드는 것이 좋겠다는 보험광고는 성공적이었다는 점ㅎㅎ. 고모님이 치매보험 6개나 팔았다고 어찌나 좋아하는지 말입니다.
하긴 뒷치닥거리 그렇게 열심히 해주고, 엉덩이까지 별안간 걷어 차였는데, 재민이 실적 올리게 보험이라도 많이 팔았으니 그게 어딘가 싶고 말이지요. 경찰서에서 서연을 찾은 장면에 이은 수애의 발차기,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과장은 아니지만 황당한 편집에 웃음보가 터져버렸네요. 급한 마무리와  함께 수애의 병세 진행과정만을 나열하다 보니,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우스운 장면이 되고 말았습니다.
치매환자가 공격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과장은 아닙니다. 드라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지요. 예은이 머리가 안 예뻐 보인다고 가위를 들고 위험천만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도 다반사일 겁니다. 장수하셨던 친정할아버지, 할머니도 말년에는 치매가 찾아 왔었습니다. 치매환자가 특히 좋아하는 것이, 저희 친정할머니를 보면 가위를 그렇게 좋아하시더군요. 한밤중에 일어나 이불이며 옷가지들을 잘게잘게 잘라놓는 일도 많았고, 특히 벽지나 휴지를 찢는 것은 매일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때야 치매시설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다들 집에서 마지막까지 모시는 경우가 많았지요. 수애처럼 예전 살던 곳으로 가서 온 가족들이 찾으러 다닌 일도 많았고, 경찰서에서 모시고 온 적도 많았어요. 특히 오래전에 사시던 시골동네를 하루종일 걸어가서 논두렁에서 잠든 할아버지를 동네 어르신이 알려줘서 모시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노인성 치매는 노화와 함께 오는 것이기에 그 병증이나 예후를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서른 살 여자에게 찾아온 치매는 드문 케이스입니다. 예전에 친구 오빠가 수애와 같은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세상을 떴다는 것을 쓰기도 했는데, 그래서 저는 특별한 관심으로 이 드라마를 봤습니다. 마지막까지 오빠의 곁을 지켰던 올캐언니와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을까, 김수현 작가가 그려내는 순애보 속에서 간접적으로 알고 싶었거든요. 이렇다 하게 가슴을 울린 답은 주지 못한 것 같아 드라마가 주는 감동이나 메시지를 떠나, 작가에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사랑보다는 치매수애의 명연기와 마지막까지 보릿자루가 돼 버린 김래원이 불친절한 작가를 만나 작품운이 없었다는 찜찜함이 많이 남네요. 드라마를 통해 치매로 죽어가는 여자를 지키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느끼고 싶었지만, 결국은 수애를 위한 수애의 드라마, 치매수애만이 남았군요. 치매를 앓아가는 한 여인을 지켜보는 박지형이라는 인물을 감정을 절제하고 묵묵히 보여준 김래원의 연기는 좋았지만, 여주인공 하나를 위해 모든 배우들이 들러리가 돼버린 것은, 연기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서연의 마지막 인사, "안녕, 잘있어"
뒤죽박죽된 서연의 기억들,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정신이 돌아왔다, 서연의 치매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고모부도 고모도, 재민이도, 지형이마저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진행되지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알아보지 못하고 말을 걸고, 행동도 난폭해지기도 하지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것에 서연은 더 지쳐가기만 합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서연의 기억들이 스르르 소리없이 빠져나가, 빈껍데기 호두알처럼 쪼그라드는 것을 지켜보는 지형과 고모,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몰래 울었을지, 그저 대신 아파주지 못함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지요.
예은이의 머리를 잘라주겠다고 가위를 들고 있는 모습에 기겁한 지형은 결국 방배동으로 예은이를 보내기로 합니다. 조카를 안고 우는 문권이 박유환때문에 울었네요. 이 다음에 크면 엄마 얘기 다 해준다며 아기를 안고 우는 박유환의 눈물이 짧은 장면으로도 가슴 먹먹하게 하더군요.
예은이와의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하기만 한 서연, 한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던 서연이 잠깐 예은이의 볼을 만지는 순간은 자신이 예은이 엄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안녕, 잘있어". 자신이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서연의 마지막 인사, 그리고 한참이나 예은이와 눈을 마주치는 서연이었지요. 지형의 가슴에 안겨 예은의 눈을 좇는 서연의 눈에는, 곧 잊혀져 버리겠지만 마지막으로 딸의 얼굴을 기억하려는 서연의 짧은 희망도 같이 느껴지더군요.
예은이가 나가는 것을 보지 않은 서연, 멍하게 앉아 있던 서연이 지형을 올려보고는 웃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싶을 정도로 아이이게 무감해했던 서연이는, 처음 정식으로 아이 얼굴에 손을 대고 말했다. '안녕, 잘지내'라고... 아내는 아이가 나가는 것을 보지 않았다. 아내는 웃는다. 무슨 의미로 웃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서연에게서 아이가 일찍 지워져 버렸는지, 시청자도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치매라는 것이 이토록 잔인한 것인지, 지켜보는 이만 답답할 뿐이지요.
서연은 많은 시간은 서연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되어 삽니다. 옷을 사가지고 온 사촌언니 명희에게 "나쁜 기집애"라며 뺨을 때리기도 하고, 모든 여자들은 아주머니가 되고 남자들은 아저씨가 되어가죠. 먹을 것에 집착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지요. 기저귀를 하자는 지형의 말에는 잠시 이서연으로 돌아와, 처참하게 부서져 가는 자존심때문에 분노하고 울기도 합니다.
한밤중에 기저귀를 차려고 버둥대는 서연을 보며 우는 지형, 그렇게 똑똑하고, 분명한 것 좋아하고, 깔끔했던 서연이 망가지는 것을 지형도 볼 수가 없었는지, 하지말라고 괜찮다고 우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지형이 왜 우는지조차 모르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고 텅비어 버린 세상을 힘없이 바라보는 서연의 초점없는 눈빛은 또 얼마나 아려오던지요. 그리고 짧은 시간, 흑백으로 화면이 바뀌면서 서연은 차디찬 땅에 쉬고 있었습니다. 서연의 잃어버린 기억을 그곳에서 다시 찾았을지,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만 남기고, 짧지만 행복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서연의 죽음, 해피엔딩인 이유
저는 서연의 죽음을 새드엔딩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죽음이 반드시 새드엔딩인 것만은 아니지요. 서연에게는 삶이 고통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습니다. 더 오랜 시간 서연을 붙잡고 있는 것은 서연에게도 비극이고, 지형에게도 힘듦이었습니다. 불치의 병 치매, 서연의 죽음은 예정된 일이었고, 서연은 누구보다 공주처럼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갔으니, 서연이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쁜 삶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지켜주고 보살펴줬다는 것만으로도, 서연은 두려움 속에서 마지막을 마감하지는 않았으니 말이지요.
시설로 보내자는 지형 아버지의 말에도 마지막까지 지켜준다는 약속을 지킨 지형,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싶은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 이런 사랑', 지형의 사랑을 마지막까지 살려주지 않은 작가로 인해 그 사랑이 살지는 못했지만, 시청자는 작가가 보여주지 못한 사랑까지도 끄집어내서 읽으려고 했습니다. 지형의 사랑을 조금더 할애를 했다면, 순애보도 살았을텐데 많이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서연의 죽음은 지형에게는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래 끌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자연사였으니 도덕적 지탄에서도 빗겨간 김수현 작가였고 말이지요.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도 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산 사람마저 죽은 사람처럼 일상생활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치매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형과 고모네 식구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도, 서연의 죽음은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닐 듯싶군요. 기억을 잃어가면서 자존심이 송두리째 내팽겨지는 고통을 내려놓은 서연이게도 말입니다. 매정한 말이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치매환자는 드물기 때문에 말이지요.
딸 예은을 데리고 서연을 찾은 지형, "난 아직이다, 서연아...아직이야". 지형의 사랑은 진행형이었고, 여전히 지형의 가슴에 서연이 자리하고 있음을 암시했지요. 아마 더 오랜 시간 지형은 서연을 사랑하며 살 듯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겠지요. 행복했던 순간, 사랑스러웠던 순간, 아프고 망가져가는 모습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지형의 사랑, 지형의 사랑이 어떤 색깔이었는지 쉽게 말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뜨거운 사랑도 아니었고, 운명같은 사랑도 아니었고, 가슴 저리는 시린 사랑도 아니었고, 두근두근 설레이는 달달한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며 솔직히 서연의 지형에 대한 사랑은 많이 느끼지 못했지만, 지형의 서연에 대한 사랑은 느꼈어요. 지형의 사랑은 초반에 그토록 욕을 먹었던 책임지는 사랑이었습니다. 향기를 버린 것에 대한 도덕적 지탄을 가장 많이 받았고, 약혼자가 있음에도 다른 여자와 놀아났다고 비난 속에 있었던 캐릭터였지요. 서연도 그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는 부분이었고요.
그러나 지형은 한 여자에게만은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했고 약속을 지켰습니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요. 향기에게는 배신이었지만, 지형은 더 힘든 사랑을 선택했고, 스스로 진 십자가를 끝까지 벗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지만(이 부분은 작가의 책임), 선택에 대한 책임도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형은 서연을 선택하면서 희생이 아니라고, 서연이 없으면 자신이 불행해 질 것이기에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치매가 진행되어 가면서는 희생과 헌신의 사랑을 보여줬지요. 현실에서는 보기드문 순애보지요. 이런 사람에게 이런 사랑을 받아본 서연은 참으로 행복한 여자입니다.
사족같은 오지랖이지만, 지형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군요. '사랑은 시간이 지나가게 한다.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한다'는 말을요. 서연의 병수발을 들었던 3년, 천일의 약속을 지키는 동안 지형에게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서연과 함께 더 오래 있고 싶다는 마음이었기에, 오히려 짧았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긴 시간이었을 지라도 말입니다. 할만큼 했고, 사랑에 대한 책임까지 지극한 마음으로 지켰던 지형이기에, 그에게 시간을 약으로 주고 싶군요. 
서연에 대한 추억과 기억은 공룡화석처럼 깊이 남겠지만, 서연에 대한 사랑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게 했으면 싶군요. 지형이같은 남자라면 예은이가 딸려있어도 좋은 여자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할 기회 또한 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사랑이야기는 실종되어 버린 감이 있지만, 연자들의 연기는 그래도 좋았습니다. 치매환자를 연기하는 수애의 연기는 매회 병 진행의 정도에 따라 표정도 바뀌어갔고, 나중에는 실제 치매환자들처럼 무표정의 뚱한 표정연기로 실감나게 보여주면서 연기폭을 넓혀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또한 작가의 홀대(?)에도 세심한 감정선으로 보이지 않는 지형의 사랑을 표현하려 애쓴 김래원의 연기도 진중하고 묵직하니 좋았습니다. 지성과 인품을 갖츤 강수정이라는 어머니상을 통해 보고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가족 누구에게도 올 수 있는 치매이기에, 앞으로 치매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까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도 해보게 했습니다.
 
치매라는 병이 찾아 온 서연에게는 비극이지만, 그래도 그만한 사랑을 받았으니 행복했노라고, 사랑하는 여자를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지형의 사랑도, 끝까지 책임졌으니 비겁했다는 미안함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이만하면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네요. 무엇보다 서연과 지형이 치매의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다행일 듯싶고요.
자신의 늪으로 지형을 끌어들이기 싫어했던 서연, 그 늪이 자기의 몫이라고 걸어 들어갔던 지형,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수도 없이 반복했던 천일 동안의 약속, 늪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시간이 행복했노라고, 그들은 오랜 시간 후에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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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0 08:25




드라마 결말에 이르러서는 비호감 주인공이나 조연들도 호감으로 돌아서고 상처들도 봉합의 과정을 거치는데, 천일의 약속 여주인공 수애는 마지막까지 민폐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하는 것은 김수현 작가의 실수가 아닐까 싶네요. 수애의 모성애와 사랑(?)은 치매환자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게 합니다.
자신이 치매라는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똑똑한 서연은 여전히 시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읊어대는 고상한 치매환자입니다.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문학적 과시욕은 아닌가, 혹은 메말라 가는 현대인들에게 시 하나는 읊고 외우고 살라는 작가의 진심어린 충고인지, 그 진심을 읽기가 힘들군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하필 치매환자가 매회 한 두편씩은 읊어내는 시구절은 서연이 치매환자가 맞기는 하나 싶게 만듭니다. 치매환자이니 젖은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눕고, 카레를 부어 손으로 밥을 집어 먹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똥오줌 못가리는 치매환자의 실상을 그런 식으로 묘사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게 똥오줌이라고 생각하면 말못할 수치이며 비극이고,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슬픔을 떠나 힘겨운 뒷치닥거리지요. 묵묵하게 서연의 병수발을 들고 있는 박지형의 순애보는 순애보가 아니라, 도우미에서 간병인까지, 회사일까지 줄여가며 온갖 잡일을 다해내고 있으니, 그 정성과 마음이 갸륵하고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제왕절개로 딸을 낳은 서연, 지형과 서연의 딸 예은이는 무럭무럭 커가는데, 서연은 점점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치매증세도 심해지지요. 애를 떨어뜨릴까봐 겁나서 아기를 안지도 못하는 서연, 예은이가 울어도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발만 동동거리는 서연, 아기를 혹이나 어떻게 할까 염려하는 모성애(?)때문이라지만, 본능적인 엄마의 행동마저 제어하는 서연을 보니, 가슴 한 쪽이 쓰라려 오면서도 뭔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는 모성애였습니다. 아이와 눈맞추고 토실토실 살쪄가는 아이 엉덩이도 토닥거리고 싶은 것이, 서연이 누리고 싶었던 행복이라며,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을 금세 잊어버린 서연은 확실이 치매가 맞기는 합니다.
떨어뜨리면 어떡하냐고, 아기를 집어 던지면, 환각이 생겨 아기가 괴물로 보여서 죽이려고 밟아대면 어떡하냐는 서연의 말에서, 아기를 지키고 싶은 엄마의 마음도 읽혀지기는 하지만, 그저 독한 서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얼마나 아기를 안고 싶을까요. 그런데도 아기가 어떻게 될까 걱정되어, 아니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서연은 엄마의 감정을 누르고 아기를 보호하려는 게지요. 그 마음을 알면서도 아기가 울면 자연히 손이 가는 엄마의 본능을 누르는 서연의 감정은, 치매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강해 보입니다. 본능마저 제어하는 것이 모성애의 힘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냥 안고 있으면 된다는 문권의 말에 잔소리하지 말라며, "나도 다 생각이 있단 말이야.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방을 나가버리는 서연을 보며, 향기를 만나고자 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했습니다. 아이에게 정을 남겨두지 않으려는 서연, 아기를 너무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 손에 아기를 주고 싶지 않는 마음이 들까봐, 애써 아기에게 무심하게 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의 병세가 심해질수록 아기에 대한 걱정이 늘어가는 서연은 예은이를 방배동 지형네 집에 보내자고 말하지요. 자신을 믿을 수없다며, 아기있는 데서 엄마가 똥싸고 오줌싸는 것 싫다고 말이지요. 괜찮다는 지형이지만, 고모가 힘들어서도 안된다고 서연은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제정신일 때는 예은이의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게 보일까요? 그런 아이를 두고 죽어야 한다는, 아니 그 예쁜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도 모르게 될 거라는 것때문에, 혹이라도 아기를 어떻게 해버릴까 서연은 불안하고 걱정됩니다.
갑자기 베란다에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천길 낭떠러지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 보는 모습은 역시 자살낚시였지만, 서연이 자살을 하려고 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자살이라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떤 상태인지를 인지하고 있을 때 행하는 행동이기에, 처참하게 으깨져 죽은 모습을 남길 서연은 아니지요.

그보다는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는 서연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은이에게 의도적인 거리감을 두려는 서연의 모습에서도 엿보이기는 했지만, 짐작이 틀리지 않아서 당황스럽더군요.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서연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향기를 만난 지형, 향기에게 못할 짓을 한 지형이기에 향기를 만나 부탁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서연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들어주고 싶다며,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다는 지형의 부탁에 향기는 서연을 찾아 옵니다.
향기가 내미는 꽃바구니를 받아들며 뜬금없이 김용택님의 봄날은 간다 중 서리편을 읊는 서연, '꽃도 잎도 다 졌니라 실가지 끝마다 하얗게 서리꽃은 피었다마는 내 몸은 시방 시리고 춥다 겁나게 춥다 내 생에 봄날은 다 갔니라', 서연의 죽음에 대한 자기정리적인 시였지만, 향기를 앞에 두고 그 어색하고 뜬금없는 장면이 섬뜩스럽게 무섭기까지 하더군요.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서연의 표정이어서 향기가 누군지 모르고, 자기만의 치매 세계로 들어가 버린 서연으로 착각하게 만들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서연이 문학했던 사람이었던 지라 치매에 걸려도 참 우아하고 고상하군요ㅎ;;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내가 저 이를 향기씨한테 떠나 보냈을 때보다 더 힘들었을 거예요. 만나서 이해와 용서...염치없어요. 미안해요". 지형의 이별통보는 벼락맞은 거였노라고 고백하며, 하지만 사랑은 두 마음이 같아야 완전한 건데, 지형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향기였지요.
주위를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추는 서연, 향기를 부른 이유를 말하지요. "나는....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때까지 오빠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거든, 내가 없어졌을 때 향기씨가 옆에 있어 줬으면...뻔뻔스럽지만 어쩌면 더 박지형이라는 남자를 나보다 더 잘아는 사람일 지도 모르니까...". 지형을 향기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는 두통을 호소하는 서연이었지요. 지형의 가슴에 안겨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서연, "나는 정말 한심하고 비열해, 말도 안돼, 나 어떡해...".
향기에게 지형을 부탁하고 우는 서연에게는 두가지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밤에 베란다에서 서연이 위험한 행동을 했던 것을 알고는 지형이 그랬지요. 지형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말라고요. 도망치려고도 하지말고 배신하지 말라고 말이지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서연은 자신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습니다. 자기만을 바라보고 눈만 마주치고 있는 것으로도 행복하다는 지형을 머지않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서연은, 그렇게 자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지형을 두고 자꾸 삶을 포기하려는 자신이 한심하고 밉습니다. 그리고 향기에게 또 미안한 죄를 지으려는 자신의 비열함이 밉습니다. 내 남자였다며 향기에게서 지형을 빼앗은 서연, 그리고 이제는 그 남자를 돌려보낼테니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자신이 너무나 비열해서 밉습니다.
작가는 서연 스스로의 입을 통해 자신을 비열하다고 서연을 위한 변명을 마련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서연이가 참 야속하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것은 저의 얄팍한 이해심과 너그러움때문일 듯합니다. 향기가 끝까지 지형을 기다리고 말고는 서연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지요. 서연이 부탁해서도 안될 말이고요.
향기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서연이 떠난 후에도 지형과 아이를 택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향기의 사랑이지, 서연이의 지형에 대한 사랑이나 진심으로 향기에게 하는 사과는 아니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지형을 모습만을 좇고 있는 향기의 눈에서 향기가 여전히 지형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읽었겠지만, 마치 유언처럼 향기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조금은 뻔뻔한 이기심같아 보입니다. 지형이 향기를 끝까지 여자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혹이나 두 사람이 훗날 결혼을 한다해도 향기는 지형의 껍데기만을 안고 사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어서 말이지요.
정말 향기에게 미안하고 향기를 지형에게 보내고 싶었다면, 향기가 아니라 지형에게 부탁을 했어야 순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떠나면 향기와 다시 시작해 보라고, 예은이를 위해서라도 무릎꿇고 싹싹 빌어서 평생 향기 눈에서 눈물 쏟게 하지말고 위해 주고 살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향기에게 유언처럼 부탁을 하고 것은 신파로밖에 보이지 않네요. 
사랑이라는 감정에 무뎌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연이 그것이 향기에게 하는 사과였고, 지형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다 이해하기는 힘들더군요. 지형이 서연을 끝까지 잊지 못하고 그 추억만으로 살아간다면, 향기는 처녀귀신으로 늙으라는 말인지 뭔지...착한 향기는 그저 서연이 안됐고 지형이 안쓰럽지만, 서연의 부탁은 내내 향기에게는 짐이 되지 않겠냐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향기를 만난 서연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치매증상도 심각하게 나빠져 버렸지요. 불과 몇시간만에 이렇게 증상이 악화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귀신처럼 앉아 있지를 않나,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추한 모습으로 변해가지요. 오즘싸는 치매환자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 뿐이 아니었지요. 욕실 청소를 하고 몰래 오열하는 지형을 위로하는 재민을 뒤로하고, 카레밥을 손으로 집어먹는 모습까지 나와 시청자를 놀라게 했지요. 옥에 티라면 서연이네 집은 밥을 냉장고에 넣는다는 점? 치매 어른을 둔 가정에서 똥을 집어먹는다는 얘기들도 많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연상되어서 가슴 아프면서도, 주위 가족에게 힘겨운 상황이라는 생각에 가슴만 무거워지네요. 
마지막회 한 회만을 남겨둔 천일의 약속, 지형과 서연의 예정된 시간 천일이 다 되어감에도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순애보는 여전히 감금상태입니다. 지형이 미치겠다는 말로 삶과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서연에 대한 안타까운 눈물연기를 보였지만, 김래원의 사랑에는 극히 인색했던 김수현 작가였기 때문에 말이지요. 수애의 치매와 치매진행 과정에 중심을 두다 보니, 사랑보다는 고상한 치매환자의 짧은 삶이야기가 되고 말았지요. 드라마 마지막까지도 이 드라마가 치매환자 이야기인지, 작가가 마지막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던 순애보 정통멜로였는지, 무게중심을 이동시키지 않은 것은 작가의 실수입니다.
"나를 없애버리고 싶어. 결혼 안해야 했어. 행복하고 싶었어. 행복할 줄 알았어"라는 서연의 말도, "나는 너고, 너는 나 자신이야. 우린 한 사람이야, 사랑해 서연아"라는 지형의 말도, 절절하게 와닿지를 못하고 흩어져버리는 멜로는 처음입니다. 이기적인 민폐 여주인공이 되어버린 서연의 말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지형의 사랑도 왜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회에서는 치매가 아니라, 감동으로 적시는 두 사람의 사랑때문에 울 수 있을지, 오래 참은 김에 마지막까지 참고 봐야겠네요. 치매수애가 남는 드라마가 아니라,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런 사랑도 있구나'로 남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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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4 12:13




여러가지 궁금증을 남겼던 천일의 약속 18회였습니다. 갑자기 재등장한 노향기, 서연의 진통, 그리고 베란다에 남겨진 서연의 슬리퍼를 통해 자살을 암시한 장면도 나와서 시청자를 경악하게 했는데요, 종잡을 수 없는 엔딩때문에 애가 타네요. 서연이 죽을 것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서연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할 지 김수현 작가의 생각이 가장 궁금한 대목이기는 했습니다.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느끼기에는 두 사람의 사랑보다 알츠하이머의 병증에 치중해, 지형의 순애보가 100% 전달되기는 어려웠지요. 이번회 지형의 지형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는 한 장면만으로 지형의 존재감이 확인되기는 했습니다. 천일의 약속을 보면서 수애의 오열신보다, 지형의 오열에서 더 많이 울었네요. 눈물조차 보일 수 없는 지켜보기만 하는 남자의 숨죽인 오열이 너무나 가슴아파서 말입니다.
지형의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간 서연과 지형, 지형의 아버지 박창주의 한마디가 초반부터 저를 울리더군요. 서연에게 인사말을 가르치는 강수정과 박창주의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더랍니다. 강수정이 보여준 인품을 통해 왜 박창주가 강수정의 말에 꼼짝 못하는 지를 알았지만, 여우처럼 굴지 않아도 남편을 잡는(?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부부사이라고 하고 싶네요) 비법은, 역시 인격과 품성이라는 것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었고, 향기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짚어주는 아버지, 더구나 아이까지 가졌다고 하니 박창주는 서연과 지형의 선택이 현명하지 못했다고 말하지요. 서연의 담당의사와 통화를 했다는 말에 가족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는 울컥해지지요. "아이도 태어난다는데 어떤 투지로 병과 맞설거냐?"며 서연의 심기를 굳건하게 해주려는 시아버지 박창주였지요.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 서연과 지형은 아버지의 용서와 응원에 감사하고 있었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지형의 눈빛에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들어 있었지요. 그런데 박창주의 한마디에 그만 울컥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말없이 밥을 먹고 있는 서연을 향해, 너무나 따뜻한 음성으로 "서연아..."라고 불러주는 장면이었어요.
'서연아'라는 대사에 그동안 서연이가 받아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다 들어 있었거든요. 물론 서연남매를 데려다 키우자는 고모부의 큰사랑도 넘치고 넘쳤지만, 시아버지 박창주의 사랑은 또 다른 의미로 커보였습니다. 이렇게 복도 많은 서연이가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 하느님도 무심하십니다.ㅠㅠ
"너한테 허락된 시간을 헛되이 쓰지말고, 할 수 있는 노력 필사적으로 다해서 너를 지켜. 포기하면 안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있지요. 경제적으로 힘들면 어머니한테 도움청하라고 지형을 응원하고, 서연에게는 "네 어머니는 부처가 현신한 사람이니 의지하라"며, 서연을 편하게 해주려는 박창주였지요. 서연과 지형을 보내고 지형엄마 강수정과 나눈 대화는 더욱 감동적이고, 묵직한 남자의 책임감이 느껴지게 하더군요. "지가 선택한 길이니 마지막까지 비겁해지지 말라고 해".

시아버지를 보고 돌아온 서연은 기분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집안일도 다시 의욕적으로 하려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말이지요. 동생 문권에게는 어머니를 책임져 달라며 유언을 남기기도 했지요. 지난 글에서도 서연이 어머니를 용서하고 화해했다고 어머니와의 재회에 대한 글을 썼는데, 용서를 하고 내려놓는 서연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세상에 용서못할 부모도 없고, 용서하지 못할 자식도 없는 것이 천륜아니겠어요. 독거노인 만들지 말라는 말이 참으로 아프게 들리더라고요. 김수현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은 어머니를 독거노인이라고 표현하는 과감성에서도 보여지더군요. 
하루하루 서연의 상태는 나빠져 가지만, 서연도 지형도 애써 태연하고 싶어합니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일상에서의 실수처럼, 그렇게 서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요. 그런데 서연의 이미가 찢어지는 사고가 나지요. 서연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 아기처럼 엉엉 울고만 있는 서연의 모습이 어찌나 처연스럽던지요. 이마를 꿰매고 지형의 손을 잡고 잠든 서연, 서연을 보는 지형의 마음이 찢어지지요. 아내는 그렇게 아기가 되어 가며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어요. 상처가 아파서가 아니라, 신경들이 망가지고 둔해져 가고 있었지요.
잠든 서연을 두고 다른 방으로 가서 끝내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마는 지형, 지형은 그동안 울지도 못했습니다. 울면 지형 자신이 무너질까봐서요. 정말로 서연이 없어진다는 생각속에 빠지기 싫어서요. 속으로만 흘리던 눈물이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터져나온 순간, 지형도 끝내 참지를 못하고 비명과도 같은 신음을 밀어넣으며 오열하고 맙니다. 오열하는 지형을 보며 한참이나 함께 울었습니다. 입을 틀어막은 김래원의 손에 핏줄들이 곤두섰더군요. 온몸으로 울었고, 비명과도 같은 고통을 온힘을 다해 참는 감정이, 김래원의 핏줄 선 손만으로도 확인이 되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음....이제 숙제를 하나 풀어야 겠습니다. 시청자를 경악하게 했던 수애의 자살암시 장면입니다. 우선 수애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자존심 강한 이서연이 점점 악화되어 가는 자신의 몸상태때문에 주변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참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지요. 치매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드라마보다 실제로는 백 배 천 배 힘들고, 무엇보다 가족들의 삶이 망가진다는 것입니다.
집을 비울 수도 없고, 온종일 환자에게서 눈을 떼면 안되는 것이 치매입니다. 가스불을 잠그지 않아 화재를 내기도 하고,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져 골절상을 입는 일도 다반사고요. 대소변문제 또한 크지요. 노인성 치매환자의 경우도 본인이 치매라는 것을 알면, 세상이 아득해지고 정신있을 때 죽음을 택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살을 시도한다는 사례도 많지요. 서연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자살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서연이 지형을 거부하면서 했던 말이 자꾸 맴돕니다. 당신 인생까지 망가뜨릴 수 없다며, 당신 잡고 같이 늪으로 빠질 수는 없다는 말 말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는 난산끝에 잘 낳았을 것이고, 다시 겨울로 돌아간 것을 보면 몇개월이 지난 듯 보입니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는 것은 서연의 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겠지요. 정신이 남아있을 때, 자신으로 인해 지형과 가족들이 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지요. 솔직히 제가 서연의 입장이어도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서연의 자살은 제작진의 낚시라는데 무게를 싣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말라며 필사적으로 노력하라는 시아버지 박창주의 응원을 서연이 설마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김수현 작가가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순애보를 완성시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김작가의 전작 완전한 사랑에서 차인표를 심장마비로 죽여버린 예는 있었지만, 서연의 선택을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그녀의 사랑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치매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자살을 종용하는 것과 진배없는 무책임한 결말로 낸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것을 작가가 모를리도 없을 거고요.
남은 가족들을 위해 자살을 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잖아요. 빈껍데기가 되어 가더라도, 가족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부모님이라도 눈만 마주치는 것으로도,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이 가족이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부모님이잖아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는 않습니다. 치매환자라고 다를 것 없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며 죽어가는 것과 암세포가 온몸을 갉아먹어 죽어가는 것과 죽음은 매한가지라는 것이지요.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치매의 무서움도 보았지만, 치매 또한 불치병 중의 하나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봤습니다. 망가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비관하고 스스로 더 작고 초라하게 움츠러들기 보다는, 기억이 남아있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족들의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암환자가 죽음을 준비하고 주변정리를 하는 것처럼, 치매환자에게도 기억이 남아있을 동안에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게 하는 것, 극중 지형의 역할이 그런 것이었다는 것을요. 자기가 누구인지를 잃어가고,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잊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불행인지, 서연은 가장 처절한 정신적으로 고통속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서연을 웃게 하는 마지막 한 사람, 아니 두 사람, 지형과 태어난 꼬맹이겠지요. 지형에게 자살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게 하는 정말 바보스러운 선택을 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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